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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 일상의 독서 2021-03-3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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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약 132억 원에 낙찰되며 김환기는 한국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가를 기록한 주인공이 되었다. 유영국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단색화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화가이다.

1932년 안좌도의 대지주의 아들 김환기는 스무 살에 몰래 섬을 빠져나와 일본에서 중학교 유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가업을 이어가라고 하지만 자신은 다시 유학을 가고자 했고 이에 아버지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다시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연결해준 여인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았으나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다시 한 번 섬을 탈출한다. 그는 타인의 관심없이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끝에 '그림'을 선택한다. 김환기는 그 당시 아방가드르 화가들의 대세인 순수추상 대신 구상과 추상을 짬뽕시킨 '반추상' 양식을 추구하며 동시에 '조선이 가진 미의 정수'를 자신이 그림에 담고자 한다. 1942년 환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든 소작인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땅문서까지 돌려 주고 아내와도 이혼을 한다. 

한 편 변동림이라는 여성은 작가 이상과 결혼을 한지 4개월여만에 이상의 요절로 스물 둘의 나이에 혼자가 된다. 김환기와 변동림은 일본 시인의 소개로 만나게 되고 결국 양가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하고 변동림은 김향안으로 이름까지 바꾼다. '조선의 미'를 탐구하며 백자의 아름다움에 빠진 김환기는 40대에 비로서 백자의 미를 반추상 세계와 결합한 작품을 담아낸다.


 

 

 

 

 

 

 

 

 

 

 

 

 

 

 

이제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를 위해 향안은 프랑스로 본인이 먼저 나가 환기의 파리 진출을 위해 애쓰며 결국 1956년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잡고 3년간 프랑스에서 200여점의 작품을 쉼 없이 쏟아내며 개인전도 성공하고 평단의 호평도 받지만 생활고는 지속되었고 1959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1963년 쉰하나에 접어든 그는 미국 뉴욕으로 가 다시 예술 인생 최후의 도전을 벌인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고난의 시간을 거쳐 뉴욕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그는 무한한 '점의 우주'를 창조한기에 이른다. 이' 점의 우주'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산물이기도 하다. 고국에 있는 친구 김광섭이 <저녁에>라는 시를 환기에게 띄워보내고 그는 이 시의 가사에서 작품의 제목을 붙인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부터 김환기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종일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작업을 하다보니 목과 척추에 손상을 입어 1974년 척추 디스크수술을 진행하고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었으나 병원 실수로 낙상 방지 장치를 해두지 않은 탓에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에 충격을 받고 뇌사 상태에 빠지고 결국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랑이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다. 곧 지성이다." (향안)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조원재 저
블랙피쉬 | 2020년 11월

 


 김환기의 끝없는 도전은 아내 김향안의 내조가 무엇인지 완벽함 속에 이루어진거라 해도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라 여겨진다. 자신도 파리로 가 공부를 하고 싶었던 맘에 불어를 배우고 있었고 먼저 파리로 가서 남편의 파리 입성을 위해 애를 쓰고, 남편이 미술을 하니 자신도 미술을 알아야 한다며 그림 공부를 하고,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기 위해 원고도 쓰고, 백화점에 나가 일을 하는 등 끊임 없이 김환기를 위해 애를 쓴다. 이런 그녀의 믿음과 사랑이 없어다면 김환기의 성공은 더 어렵거나 이루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김환기의 죽음이 너무 허망해서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였지만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리고 삶을 지탱해주는 한 없는 믿음과 사랑의 부부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출처 : https://youtu.be/Og4NY3kt5J4 [아름다운음악세상] 유심초_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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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님 감사합니다 ^^ | 일상 한자락 2021-03-3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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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주는 아이 둘 다 등교를 하는 나에게는 정말 축복같은 한 주이다.

그래서 어제는 혼자 집에서 밀린 일들을 해치우고 

오늘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애들 등교 후 바로 집을 탈출~~

 

 

 

작년 10월경에 잠깐 만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들을 오늘 드디어 만나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와보니.....

 

 

 

 

 

 

사랑님이 보내주신 사랑의 택배가 현관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니 이것은 종합선물세트라고 해야 맞는 것이겠지요.

맥주, 안주, 간식에 책, 붓펜, 수제비누, 사랑님의 마스코트 뱃지에 그리고 사랑을 듬뿍 담아 적어주신 카드까지 ^^

집에 돌아오는 길 교통체증 속에서 둘째 학원 가기전 간식도 못 챙겨주고 보내서 좀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는데 사랑님이 보내주신 요걸 받자마자 미안한 함 싹 가시고 신나서 큰 애 한테 자랑을 막 했드래요 ~~

이곳에서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인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랑님이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친구가 된 우리의 인연 ^^

친구를 만나서 좋고 친구의 사랑을 받아서 더 없이 좋은~~

우리의 인연이 오래도록 오래도록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

사랑님 감사합니다 ^^

오늘 농땡이를 길게 피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할 일 가득이었기에 늦은 밤 포스팅이 되어버렸네요~~

좀 더 늦은 밤 사랑님이 보내준 맥주로 몸을 지지고 푹 자아겠습니다 ㅎㅎ

사랑님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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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 아이의 낙서처럼 심플한 그림 | 독서습관캠페인 2021-03-2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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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 오늘 읽은 책 참여

'예술가는 외골수'라는 이미지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증명한 화가.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한 밤중에 몰래 그림을 그리다 들키면 매를 맞을 정도였지만 그림에 대한 포기를 몰랐던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충청남도 예산에 있는 수덕사에서 반년간을 지내게 된다. 이 곳에서 나혜석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하게 경험을 간직한 그는 스물 두살의 나이에 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과 중등부 특선상을 받음으로써 집안의 인정을 받고 도쿄에 있는 제국미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다. 해방이후 좌우 이념 대립에 흔들리지 않는 민족의 진정한 미를 발골해 예술로 승화하려했던 신사실파와 뜻을 같이 한다. 전쟁중 부산으로 피난을 가 심신을 가누지 못하고 폭음을 하고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 그는 아내의 권유로 충청남도 연기군에 있는 고향집으로 가게 된다. 심신의 안정을 찾은 그는 오로지 잡념이 없을 때만 그림을 그리는데 그럴 때는 식음을 전폐하며 그림에만 매진한다. 한국전쟁이후 교수 생활을 하다 속세의 욕망을 비우고 오로지 그림만 그리고자 교수직도 내려 놓고 급기야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자연을 향하고 고독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마치 수도승이 수행을 하듯 12년간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덕소 부근 강가에서 생활을 한다.

<어부>
<가로수>


 

 

 

 

<강변 풍경(세한도)>


그림이 심플합니다. 더할 만큼 모두 더했고 뺄만큼 모두 뺏습니다. 그래서 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더 할 필요가 없습니다. 화가의 무욕이 곧 그림의 무욕이 된 것입니다.(p.216)

 

 

 

이 작가에게도 아픈 가족사가 있다. 욱진의 나이 마흔여덟에 낳은 늦둥이 형구가 태어난 후 그의 그림에는 '가족'이 등장하게 되는데 형구가 백혈병으로 앓게 되어 이 부부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항암치료에 온갖 애를 쓴다. 마음의 아픔을 달래고자 아내는 불심에 더더욱 몰두했고, 남편 욱진은 더더욱 그림에 몰두했다. 그는 자신이 머물던 덕소가 개발이 되기도 하고 아들의 간호를 위해 1975년 가족이 있는 서울로 자리를 옮기고 1979년 형구의 나이 열다섯에 세상을 떠난후 1980년에 결국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어느날 제자와의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잘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나로서 족한 것이지 왜 남하고 비교하는가.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열등의식이 생기고 자아가 망가진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결국 자아의 순수한 발현이어야 하지 않는가. 비교하다 보면 절충이 될 뿐이다. 누구의 그림이 좋다 하여 그것을 부러워하여 내가 그렇게 그리고자 한다면 그게 어디 그림인가. 자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에 대해서 인정할 것은 다 인정하고 자기는 자기로서 독립할 있어야 한다. 예속한다는 것은 자아의 상실이다. 너를 찾고 너를 지켜라. 자유로 가는 길이 거기에 있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조원재 저
블랙피쉬 | 2020

 

 


그가 걸은 미술의 길은 무소유의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주변에 신경을 쓰지않고 오로지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오지에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곳을 찾아서 그림 그리는 것에 몰입을 했다. 처음 그의 그림을 접하면 아이가 그린 듯한 평범한 그림처럼 느껴졌는데 그가 추구하던 미술의 세계에 자신만의 방향성을 세운 것을 알고 나니 어쩌면 이렇게 무욕을 완벽하게 그림에 녹아내릴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작가가 그림에만 매진할 수 있게 생계를 책임지며 남편의 그런 집념을 이해한 부인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욱진작가처럼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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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 일상의 독서 2021-03-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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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
     

 

 발갛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거나

 손끝으로 풀을 만지며 신선한 향을 맡는 것처럼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순간순간 밀려오는 기쁨으로

 빙글빙글 돌며 하늘을 향해 목청껏 소리쳐요.

 

 "행복해, 난 행복해!"

 

 

 

 


  이웃님들의 블로그 속의 꽃잔치에... 그럼 난 책을 봐야지 ^^

   Joy님의 이벤트로 작년에 받은  <그날들이 참 좋았습니다> 이 책 속의  

   꽃이 만발하던 게 생각나서 당장 '봄' 속으로 풍덩

   요즘 이웃님들이 그리시는  수채화도 생각이 나네요 ~~

   이렇게 분홍이 꽃들에 파묻혀보는 상상으로 이 밤을 보내야겠다.

   행복해^^

 

 

<출처 : Spring is gone by chance (우연히 봄)  https://youtu.be/u-lDThoVB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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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 독서습관캠페인 2021-03-2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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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 오늘 읽은 책 참여

'울진 유부자'로 불리며 할어버지때부터 울진에서 사업을 하며 엄청한 부를 축척한 집안에서 1916년에 태어난 유영국은 우등생이었지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분노를 느껴 학교를 자퇴하고 '정신적 자유'를 찾기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예슬을 하기로 결심한다. 1935년 도쿄의 문화학원에 입학해 다른 곳보다 조선인이라고 차별을 하지 않는 학풍속에서 '야수주의'와 '추상주의'를 접하게 되며 미래에는 추상주의가 더 비젼이 있다 생각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추상주의를 선택한다.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시대적 상황으로 일본에서조차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자 그림을 접고 유학한지 8년 만에 다시 울진으로 돌아와 어부로 살게 된다. 어업에서 큰 성공을 하게 되고 해방이 되자 다시 미술을 하고 싶었던 차에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가 된 '김환기'의 추천으로 전임강사직을 맡게 된다.  1947년 유영구, 김환기, 이규상은 추상미술을 추구한다는 공동점을 가지고 '신사실파' 모임을 만들었고 그 후 장욱진과 이중섭 등도 신사실파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영국의 추상세계에 '한국의 자연' 이 담기기 시작한다. 어부를 하던 시절 앞으로 미술을 어찌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길일 열리자 그는 밥 먹고 잠자는 것을 뺀 모든 시간을 오직 그림을 그리는데에만 집중한다. 

 한국 전쟁이 터지고 기사회생으로  고향 울진에 도착했지만 생사의 기로에 놓였으나 서울에서 빌려준 돈대신 갱지를 받아 트럭에 실고 온 아내 덕에 전쟁통에 귀한 물건으로 바뀐 그 갱지를 높은 가격에 판매해 종잣돈을 마련해 양조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의 남다른 사업 수단으로 또 한 번 성공하자 주변에서 큰 사업 제안들이 들어오지만 그는 모두 거절을 하고 다시 미술의 길을 걷는다.

 

 

"돈은 살아가는데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어도 그림을 못 그리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그림을 못 그린다."( p.167)

 


 

 

 

 

 

 

 

 

 

 

유영국은 그 흔한 '산'에서 하나를 넘어 각양각색의 조형언어를 창조해 나간다. 그는 여든넷에 완성한 1999년작 작품(Work)>을 마지막으로 붓을 들지 못한다. 2002년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저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눅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서, 평생 자유로운 예술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조원재 저
블랙피쉬 | 2020년 11월


 

유영국은 그동안 봤던 이중섭, 나혜미처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좌절하고 인정받지 못해 허망한 말년을 보내지 않았다. 집안 내력이 있어서 그런지 사업에도 수완이 좋아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하는 사업이 최고가 되는지를 알았던 것 같다. 돈에 좌우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에 대해 가진 기준도 맘에 들었다. 그가 원한 '자유'를 화폭에 원없이 담아낸 그의 작품이 변화해가는 과정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이렇게 무언가에 몰입하며 행복했다는 그의 자세와 자유에 대한 의지를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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