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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 기본 카테고리 2020-09-2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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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저/공보경 역
한스미디어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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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가 너였을 때>는 미국 작가 민카 켄트의 스릴러 소설이다. 작가의 데뷔작 <훔쳐보는 여자>는 세계 각국에 번역 판권을 판매했고 영화화도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 후 네 번째 소설까지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심리스릴러계의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이번 작품 <내가 너였을 때>는 다섯 번째 소설이며, 나는 한스미디어 포스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처음으로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만약에!

나와 똑같은 얼굴로 내 이름을 하고 사는 여자가 있다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겠지!

내 행세를 하고 있는 저 여자는 누구일지 꼭 알아내야만 한다!

 

주인공 브리엔은 얼마 전 강도 습격을 당했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운이 좋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칼에 찔리고 폭행 당해 피투성이인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살아있으니 말이다. 6개월전에 당했던 사건 이후로 브리엔은 철저히 고립되었다. 외조부가 물려주신 성같이 커다란 집의 4분의 1만 쓰면서 외롭게 지내고 있다. 세입자 나이얼이 있어서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는 종양외과 의사이고 예의바른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2주전 자신의 이름으로 원룸이 계약되었다며 열쇠가 든 우편물이 도착한다. ‘브리엔 두그레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여성의 존재를 실제로 확인한 후 진짜 브리엔은 점차 혼란에 빠진다.

 

내가 진짜 브리엔이 맞다.

내가 나인데 나를 증명해야 하다니!

누구에게 증명하나

 

1장은 브리엔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고 2장부터는 나이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브리엔과 나이얼이 교차로 서술한다. 1장의 마지막 즈음, 소설의 3분의 1이 끝나갈 때 쯤, 진짜 브리엔이 사실은 케이트 콘웨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이얼 엠벌린이 실은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둘의 혼인 신고서가 그것을 증명하며 둘은 이미 3년 전에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이 어떻게 세입자?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했다. 브리엔이 직원이었는데 둘이 친구처럼 지내다가 점점 그녀를 따라하기 시작하더니 거의 스토커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얼이 케이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으로 1장이 끝난다

 

내가 분명 브리엔인데 나더러 케이트란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출생신고서부터 혼인신고서까지 모든 서류들이 내가 케이트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나는 브리엔으로 살아온 기억밖에 없는데...

 

1장까지 읽었을 때 위처럼 브리엔 입장이 되어보니 무슨 음모에 빠진 게 아닐까 싶었다. 한편으론 강도 사고 때문에 기억에 이상이 온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케이트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2장으로 넘어가 나이얼의 시점으로 쓰인 내용을 읽으니 기가 찼다. 모든 것은 나이얼이 꾸민 짓이었다. 이 내용은 리뷰에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러면 더 이상 리뷰를 연결해서 쓸 수 없어서 공개해야만 했다. 반전을 밝히면 어쩌냐고 해도 할 수 없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1장에서 나이얼이 세입자에서 남편으로 변신할 때 눈치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얼이 왜 브리엔에게 접근했는지 그 이유와 어떻게 감쪽같이 신분을 속이고 남편행세를 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2장은 이 내용들을 밝히고 나이얼의 사기행각의 디테일도 확인할 수 있어 1장보다 훨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읽을 땐 꼭 이런 마음이 든다. 사기치는 사람을 욕하면서도 들통나지 않았으면 하는, 웬지 사기꾼의 편을 드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의사 나이얼 행세를 하는 그 남자는 어릴 때부터 남을 속이는 것을 보고 자랐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환심을 사는지도 잘 알고 있으며 문서위조는 기본실력이다. 온 인생이 거짓말로 점철된 사람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란 생각에 측은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 사기꾼이 되는 건 아니란 양가감정이 들었다또 다른 마음으로는, 나이얼의 사기행각이 들통나서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정신 병원에 갇힌 브리엔이 자신을 되찾길 바라게 되었다.

 

줄거리를 계속 쓰면 책의 결말까지 나오게 되므로 더 이상은 쓸 수가 없다. 브리엔이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 나이얼은 체포가 될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스릴러 소설 장르로서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주인공이 사기꾼인 경우 그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설득당하게 되는데 그것이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고 언짢다는 사람도 있다. 사기야 사람 사는 곳에선 끊이질 않지만 요즘은 온라인 사기가 극성이라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일명 보이스피싱은 언택트시대에 더 늘고 있다고도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사기를 왜 당하냐? 바보냐?라고 하지만 진짜처럼,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논리로 작정하고 다가오면 깜빡 속는다고 한다.

 

p.179 

 

열세 살이 채 안되었을 때부터 나는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 사람들이 언제든 내게 문을 열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진실이라서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다는 말!

 

요즘 더욱 느끼게 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유튜브 등등,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을 자꾸 보니까 추천 영상이 뜨고 그걸 또 계속 보게 되고 진짜라고 믿는다. 그곳에서 하는 말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듣고 싶은 말을 들으며 만족하고 여력이 되면 후원을 한다. 자신이 먹이 준 그들은 본인에게 새로운 피드라는 이름으로 돌려준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인줄 모르고 돌고 도는 이 시스템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는 따로 있다!

 

, 스포를 줄이려고 했더니 리뷰가 영 다른 쪽으로 흘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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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일상에서 어떤 쓸모가 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20-09-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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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의 쓸모

강은진 저
다산초당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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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쓸모>는 아트 큐레이터 강은진씨의 신간이다. 10여년 넘게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의 삶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그들의 삶에서 교양, 지식뿐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화가를 비롯한 디자이너, 건축가, 컬렉터, 후원자 40여명의 삶을 통해 32가지 통찰을 소개하고 있다. 1부는 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여섯 가지 가치를, 2부는 시대를 매혹한 스마트한 전략가로서의 측면을, 3부는 예술이 브랜드가 되는 과정을, 4부에서 현대 예술을 통해 우리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5부에서는 예술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본다. 저자는 이 32가지 예술의 통찰이 독자의 삶에 든든한 무기가 되고 당당하고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예술 관련 서적을 챙겨 읽는 편이다. 특히 신간일 경우 같은 예술가라 하더라도 기존과 다른 새로운 정보들이 있기도 하고,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를 예로 들어보자. 너무나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몹시도 단편적이다. 그림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이 고흐의 그림이라는 건 기본이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정보도 알고 있다. 그 외 동생 테오가 형을 많이 후원해 주었다는 것이나 다른 그림들의 메이킹 스토리까지 안다면 고흐관련 책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 할 것이다. 테오는 형이 죽은 이듬해에 죽었고 그 둘은 생전에 8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있다.

 

고흐가 사후에 유명해졌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유명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는데 바로 테오의 아내 요한나 덕분이었다. 그녀는 한 점도 팔리지 않았던 고흐의 그림과 둘이 주고받은 편지의 가치를 알고 그것으로 빈센트 반 고흐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보통은 짐같아 보이는 그림과 편지를 버리거나 불태워 버렸을텐데 테오의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1915년 뉴욕에서 전시회를 연 이후, 비운의 천재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책을 출간한다. 고흐의 철학이 녹아있는 편지들을 직접 번역하고 정리해서 출판사에 투고해서 <빈센트 반 고흐 : 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고흐의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다.

 

위 내용은 ‘3부 예술은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의 첫 챕터 ‘캐릭터를 팔아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3부에서는 제목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화가나 예술사조가 어떻게 유명해지게 되었는지를 살피면서 예술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장에서는 유명 화가뿐아니라 인상주의가 만들어진 히스토리, 알콜중독자였던 잭슨 폴록을 후원한 기획자 페기 구겐하임, 예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염원한 윌리엄 모리스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된 예술가들을 다룬다.

 

고흐 이야기부터 시작하다보니 3장을 가장 먼저 소개하게 되었지만 이 책은 각 장 모두 저자의 희망처럼 독자들 저마다 예술애서 쓸모를 찾아내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데 도움받을 수 있다. 저자의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아니 텍스트니까 술술 읽힌다고 해야하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 위주로 몇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1부에서 저자가 독자에게 강조하는 내용을 인용해 본다.

 

 

p.22

 

운동을 하면 근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예술을 감상하면 자연스레 심미안이 좋아집니다. 심미안이 잇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전자는 후자가 무의미하다고 지나치는 많은 것에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일상을 훨씬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요. 심미안을 지닌 사람에게 예술은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교양 지식이 아닙니다. 일상에 온전히 스며들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2부에서 흥미롭게 읽은 내용은 화가 '윌리엄 호가스'와 '자크 루이 다비드'이다. 호가스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17세기 영국의 사회상과 풍속을 알 수 있는데 동일 주제를 시리즈 형식으로 그렸다. 단순히 그림만 봐서는 숨어 있는 디테일과 화가의 주제의식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유행에 따른 결혼"시리즈를 저자의 설명으로 읽으니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살짝 아쉬운 점은 그림의 크기가 작아서 나같이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저자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그림속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돋보기로 확장해서 보고 싶단 생각과 함께 소장되어있는 런던 국립 미술관에 가보고 싶단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나 코로나19때문에 언감생심이다. 이전에는 책을 읽다가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바로 실행 계획을 짰는데... 물론 국내만 바로 가봤지 해외는 그러진 못했다. 그래도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짜는 건 희망이 있지만,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곳을 계획하는 건 그림의 떡이란 생각에 김이 샌다. 앗, 글이 삼천포로 많이 샜다. 다시 돌아가보자.

 

다비드의 그림중에 그 스토리도 알고 있었던 그림은 "마라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비다의 인생역정과 그림이야기를 읽으니 거의 프랑스역사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한 예술가의 일생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이야 워낙 유명해서 알지만(본적 있지만이라고 해야하나ㅠ) 화가가 누군지 몰랐는데 다비드였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다.

 

 

다비드의 생애를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p. 103

 

오늘날 다비드의 그림은 유럽의 대격변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입니다. 비록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논란 많은 생애였지만, 어쨌든 그가 시대를 매혹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를 또다른 기회로 삼았던 순발력과 권력자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아챈 영민함 같은 무기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는 그의 그림과 생애를 통해, 역사지식뿐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자가 알려주는 예술의 쓸모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리뷰로는 부족할 것이다. 예술책을 좋아하고 화가의 스토리텔링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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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은 내가 결정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20-09-25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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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1월 28일, 조력자살

미야시타 요이치 저/박제이 역
아토포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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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거의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가정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될 리 없는데 가정해보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 거의 매일 하루 한 권씩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니 깊이 생각하기에 시간이 모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문학은 문학대로, 비문학은 비문학대로 그 책의 장단점을 정리하는 위주의 리뷰를 써왔다.

 

그런데 <1128, 조력자살>을 읽으면서는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계속 생각했다. 이 책은 일본인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씨가 쓴 조력자살 팔로잉 논픽션이다. 고단샤 논픽션상을 받은 전작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의 속편이다. 다계통 위축증(MSA)를 앓는 여성 고지마 미나씨가 스위스의 라이프서클이라는 곳의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다. 처음 그녀가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시점부터 인터뷰, 라이프서클에서의 마지막, 그리고 사후에 그녀의 언니 둘과의 정리 인터뷰까지 촘촘하게 실었다.

 

처음 고지마씨의 메일과 그녀의 블로그 글을 그대로 소개하고 그녀의 지나온 생에 대해 자세히 서술할 때 조금 답답했다. 그녀가 조력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표현하려는 건 알겠는데 성공했단 건지 못했단 건지를 알려주지 않고 뜸을 들이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안락사를 희망하는 남자, ‘요시다 준의 스토리까지 교차 편집되어 있어 더 속도가 느렸다. 당장 뒤쪽으로 가서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참았다. 밀당의 편집력이 작가의 것인지 편집자의 기술인지는 몰라도 나같이 성질 급한 사람도 고지마의 1128일을 인내하며 같이 맞이하도록 만들었으니 성공했다. 인정!!ㅎㅎ

 

나는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써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직 실천은 못했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본인에게 있고 그것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을 때 필요한 조력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작년에 그 소설을 읽고 내 생의 결정을 내가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었고 스위스의 조력자살에 대한 기사를 찾아 읽게 되었다. 그 기사에는 동행했던 친구의 트라우마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그 현장을 지켜보는 이도 상처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했었다.

 

<1128, 조력자살>의 저자는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가족과의 소통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요시다씨는 말기암 환자로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알라지 않고 스위스로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로 가기 전에 암은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작가는 그가 가족의 관심을 받고 싶고 그들 옆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했다고 확신했다. 그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아 집에 찾아가서 부친을 만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들은 작가는 스위스가 아닌 가족곁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 요시다씨에겐 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지마씨는 싱글이라 언니집에 들어가서 살면서 보살핌을 받았으며 언니들은 그녀의 고통을 생생히 지켜봤다. 여러 번의 자살 시도를 막으면서 동생이 스위스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 자매는 같이 스위스행 비행기를 탔고 언니들은 동생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행복하게 떠나는 동생의 곁을 지킨 것은 그들에게도 만족감을 주었다. 질병명도 다르고 마지막도 달랐지만 작가는 요시다씨와 고지마씨의 사례를 통해 그들 곁에 가족이 함께 했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짚고 있다.

 

이 책은 안락사가 주제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는다. 르포 기사를 쓰는  전공을 십분 발휘하여 안락사를 다양한 각도로 살핀다. 어떤 사람들이 안락사를 선택하려고 하는지, 일본을 포함한 세계의 안락사법을 알려주고, 일본에서 불법이지만 스위스의 단체 라이프서클이나 디그니타스라는 곳에서는 합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정보를 주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다고 적극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선택은 독자에게 맡기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력자살 당일에 딸에게 말하지 않고 왔다며 집으로 돌아간 독일 남성의 사례를 굳이 왜 썼겠는가.

 

그래서 나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고지마씨처럼 뇌는 즉,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침대에 누워서 호스를 통해 음식을 주입받아야 하고 똥오줌을 남이 치워줘야 되는 상태가 된다면? 살아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보다 인간답지 못한 상태로게 누워있어야만 하는 것이 더 비참한 일이다. 그녀처럼 목을 매달려고 해도 몸에 힘이 없으니 계속 실패하게 된다면 조력자살을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조력자살의 당위성을 설득시켜서 유럽의 어디론가로 가야할 때 동행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고지마씨의 상황에 나를 그대로 대입해 보았다. 나 역시 그녀의 선택대로 할 것 같다. 허나 나의 가족이 그 언니들처럼 적극 동조해줄 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그녀와 나의 차이 발견! 그녀는 너무나 긍정적이고 밝고 언니들과의 유대관계가 좋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그 자매들의 관계는 돈독했다. 두 언니의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각각의 개성이 동생을 간호함에 있어 서로 보완이 되었다. 자매가 없는 나는 저렇게 사랑 넘치는 자매간이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죽음의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과연 내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어떠한 질병으로 정말 안락사를 원하는 상황이 닥칠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죽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없는 자매를 아쉬워 할 일도 없으며 라이프서클에 보낼 서류나 이메일을 영어로 써야할 걱정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꽤 시니컬한 결론에 이르렀다.

 

, 이 책을 읽다 흥분한 부분이 있는데 의사소통 때문이었다. 책에서 언급된 두 단체 라이프서클과 디그니타스는 자원봉사도 아니고 돈 받고 하면서 고객의 편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게 좀 화가 났다. 이메일로 연락해야 하는데 무조건 영어다. 그것을 번역하는 작업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고 자꾸만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안타까웠다죽음의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오는데 일의 속도가 느린 이유가 언어 때문이라니 이 무슨 어불성설인가. 신청하는 사람의 언어로 소통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고지마씨가 우리나라에 유학 왔었고 한일 번역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하니 웬지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의 사진을 순서상 그녀의 죽음 이후로 배치해 두었는데 이 역시 편집의 기술인 것 같다. 죽음 후에 보게된 생전에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환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에 그녀의 가족사를 언급하면서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어쩐지 정감이 가는 얼굴이더라니... 이 무슨 비과학적 논리냐 싶겠지만 정말 내 맘이 그랬다는 것을 쓰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살피고, 안락사 법제화의 필요성을 독자들에게 묻는다. 안락사만이 정답이 아니라 완화치료로도 존엄사는 가능하다는 쪽의 주장도 같이 싣고 있다. 고지마 미나씨의 마지막 날인 1128일까지를 팔로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일본 사회에서 안락사가 더욱 공론화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법제화에 앞서 안락사를 일반인들에게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안락사가 당장에는 중증 질환을 앓는 당사자와 가족의 문제로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닥칠 것이므로 미리 얘기하고 토론해서 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그러질 못하는 게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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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 | 기본 카테고리 2020-09-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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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

마쓰나가 다다시 저/한상민 감수/황미숙 역
마음책방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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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들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나 역시 시댁 조카가 아니었다면 자폐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폐증을 포함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편견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 편견은 부정적이며 동정적인 시선이었을 것이다. 시댁의 조카를 처음 만났을 땐 초등학생이었고 지금은 성인이 되었다.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인지장애가 있는데 정확한 질병 이름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를 읽어보니 조카도 크게는 발달장애 범주에 들어가고 지적 장애를 동반한 자폐증인 것 같다. 물론 내 추측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여기서 질병명을 따지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형님이 그동안 아들을 키우면서 겪었을 고통과 기쁨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훈이 엄마가 지나온 시간이 우리 형님의 시간의 결과 매우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카는 훈이보다 나이도 많고 말을 하지 않으니 형님이 지나온 시간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훈이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인 화장실 변기의 제조사와 제품명을 깨알같이 정리해두었고, 변기의 물 내려가는 소리만 들어도 제품명을 맞힌다. 물론 그 능력으로 취업을 한다든지 뭔가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순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일본 책이다. 자폐아 훈이(가명)의 이야기를 소아과 전문의 마쓰나가 다다시가 썼다. 저자가 쓴 요미우리 신문의 장애아 관련 기사를 읽고 훈이의 엄마 다테이시 미스코씨가 연락을 했다. 저자는 훈이 엄마와 훈이의 17년간의 삶의 족적을 책으로 내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장점이 빛난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엄마가 자폐아인 자식의 이야기를 쓴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사가 쓴 것이었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건조하며 담담하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이는 대로 서술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썼다면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은 꽤 고통스런 경험이 독자에게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서사를 원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폐아를 바라보는 시각에 선입견을 까는 구실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우리(자식이나 친척 중에 장애인이 없는 사람들)는 미화된 자폐아를 미디어 통해 자주 만났다. 서번트 증후군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을 소재로 쓴 영화나 드라마는, 일반인과는 다르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을 통해 자폐의 어떤 한 면만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가족, 특히 주양육자인 엄마가 자폐아를 돌본다는 것은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싱글맘인 훈이 엄마가 혼자 키운 이야기다. 친정 아버지는 훈이의 자폐적 특징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비난의 눈빛으로 화를 내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조차 그러한데 다른 이들의 시선을 어땠을까.

 

p.107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그날도 훈이와 엄마는 유아실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방에는 스피커를 통해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곳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아빠가 들어왔다. 아이는 어린데도 차분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어른스러웠다. 굳이 유아실에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얌전한 아이구나 싶었다. 그런 와중에 훈이가 점차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뛰어다녔다. 엄마는 유아실에서는 그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아이의 아빠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혼을 안 냅니까? 어째서 철저하게 훈육하지 않는 거예요?”

엄마는 파래진 얼굴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우리 애는 자폐아예요. 장애가 있어서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그 아빠는 그래도 화를 냈다.

그래서 뭐요! 장애 핑계 대지 마시고 가정교육 똑바로 하세요!”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훈이의 손을 끌고 미사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처참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고 훈이를 때릴 뻔했다.

 

훈이는 어릴 때 소파에서 점프하듯 뛰어다니는 행동을 많이 했는데 감각과민과 관계있다고 한다. 화장실 핸드드라이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게 없는 화장실을 찾아다녔고 집에서도 청소기나 식기세척기 소리에 민감하다. 분노발작과 강박성 장애도 있다. 수영장 가기 전날 밤에 준비물을 계속 확인하는 강박을 보였는데 점차 나아지고는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자폐아의 행동 특징들을 실제 사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자폐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지하철 같은 공공 장소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직접 만난다면 조금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록에는 발달장애를 위한 기초정보도 실려 있다. 17년간 자폐아를 키운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은 완전 공감할 것이다. 일본의 정보이긴 하지만 기형아 검사와 학교정보 및 복지 혜택도 도움 될 것으로 보인다.

 

훈이는 이제 성인이 되면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자폐증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을 공감하거나 같이 뭔가를 하는 것을 잘 못한다. 엄마는 훈이가 취업실습을 나갔을 때 단순 노동이 무슨 기쁨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엄마 눈에 훈이가 집중하는 모습은 만점 이상을 주고싶었지만 회사에서 보낸 실습 평가표에는 내년도 실습은 받을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훈이 엄마의 가슴은 너무나 쓰라렸다. 하지만 엄마는 앞으로 훈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회사와의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언급한 시댁 조카는 그동안 장애 복지센터에 다녔지만 코로나 이후로 못가게 된지 6개월이 넘었다. 집에서 형님 혼자 아들을 케어하기 몹시 힘든 상황이다3년 전 아주버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더 힘에 부쳐 보인다. 이 책에도 언급되었지만 모든 장애아의 부모는 걱정한다.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죽게 되었을 때 그 후를... 그래서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는 게 소원이라고들 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같이 죽기를 소원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장애아가 있는 가정에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세상은 언제쯤일까? 너무 더딘 것 같다. 제도와 사회쳬계의 변화가 느려서 답답하지만 우리의 인식조차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날을 다양성 사회라고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각자 개성껏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장애는 그 범주에서 예외로 취급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폐증의 증상을 유별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생김새가 다르듯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봐주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책을 읽으면 좋겠다. 꼭 자폐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런 책들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책 읽는 이유를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것을 간접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이 나와 다른 삶의 결을 이해하는 텍스트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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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합일되는 삶 | 기본 카테고리 2020-09-2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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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서 산에 산다

최성현 저
시루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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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최성현씨를 몇 년 전 <녹색평론>에서 처음 만났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이 그를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당시에 그의 책들을 찾아보았으나 읽지는 못했다. 이번에 가디언 출판사에서 나온 <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소개를 읽는 순간,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그래서 산에 산다>2006년 출간되었던 <산에서 살다>의 개정판으로 자작시 열세 편과 하이쿠 열다섯 수도 추가로 실었다.

 

 

강원도에서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농부의 일기, 혹은 에세이다. 이 책은 도시에 뿌리박고 살면서 언젠가는 자연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로망을 심어줄 것 같다. 산에서 농사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을 굳이 일부러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편하게 도시에서 계속 살겠다고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자연에 대한 것이지만 자연을 여행 삼아 다녀온 사람의 단상이 아니다. 그 곳에서 직접 생을 영위하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꽃, , 산짐승, 하물며 작은 곤충까지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철새인 벙어리뻐꾸기의 이동을 보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는 거의 법정 스님의 강독인 줄 알았다.

 

p.118

 

멀리 가는 것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삶에도 있다. 한곳에서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단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바뀐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일들을 통해 우리는 벙어리뻐꾸기처럼 먼 곳을 가지 않고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깊고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제가 있다. 사는 곳에서 좋은 여행을 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언젠가는 철새처럼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의 삶은 썩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육신을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소유로 애를 태우게 된다. 덕을 쌓기보다는 야박한 짓을 하기 쉽다. 사람보다 물질이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기 쉽다.

 

 

책 내용 중에 반야심경과 불교에 관한 것들이 꽤 있다. 저자의 책을 찾아보니 불교 역서도 있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이라는 제목으로 반야심경 해설서이다. 불교의 생명 중시 사상이 몸에 베인 것일까, 아니면 산에 살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늘 자연과 대화한다. 더 나아가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말벌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말벌이 저자의 집에 집을 지어서 떠나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강제로 헐어내는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결국 쫓아냈다. 저자는 그 과정을 서로에게 고단했다고 표현한다. 그 다음 해에도 말벌이 집을 지어서 지인의 추천으로 모기향을 피워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모기향에 덤벼드는 말벌의 행동이 기이하여 벌집을 확인해보니 애벌레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벌집 곁에 창문이 있어서 비닐로 통로를 내어 그 창문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말벌님에게 편지를 썼다.

 

말벌님에게

평화롭게 살기 위한 조치입니다. 같은 문을 쓰다 보니 서로 부딪치는 등 그동안 서로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쏘이기도 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창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벌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말벌 한두 마리가 그 비닐통로를 통해 창문으로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뒤로 말벌들이 모두 창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말벌집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스스로 처치하지도 못해 119를 불러 태워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말벌과 사람, 지위고하 없이 모두 같은 생명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말벌에게 사람에게 하듯, 오히려 더 깍듯하게 대했다. 책으로 자연보호를 배운 우리는 감히 생각도 못한 태도이다. 도시에 살면서 어쩌다 등산이라는 이름으로 산에 오르는 우리로서는 저자가 사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배울 것은 배우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따라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가 독자를 가르치려고 쓴 글은 아닐 것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나는 최근에 죽음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잘 죽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 중 사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죽음 이후 장례 절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인간도 지구 전체로 보자면 엄청난 유기질 자원이라고 했다. 아마존 원주민 수아르 족의 풍장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런 장례 방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상 풍장을 하기 힘들고, 뭣보다 장소가 부적합하다. 저자는 아직도 매장과 화장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중이라한다. 최근 수목장도 하는 추세이지만 그것 역시 화장을 먼저 해야 한다. 자연속에서 사는 저자가 풍장을 가장 자연스런 장례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산에 사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해 뜨기 직전에 일어나서 논밭을 돌아보는 시간이 가장 좋고,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던 새가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준 날이 가장 기쁜 날이고, 가을엔 청설모 우렁각시에게 겉껍질을 깐 밤을 얻고, 왕소등에 아줌마에게 조공하는 피는 산에 사는 세금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산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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