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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소설 사이 어딘가~ | 기본 카테고리 2021-01-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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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커피와 담배

정은 저
시간의흐름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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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9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볶은 지 한 달 지난 파나마다. 파나마는 처음 볶았을 때는 맛이 복잡해서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달 이상 묵힌 다음 마시면 숙성되면서 맛이 부드럽게 하나로 모여져서 놀랍도록 맛있어진다. 긴 세월 있는 듯 없는 듯 분위기파로 지낸 배우가 갑자기 그것 자체가 새로운 성격이 되어 대단히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오래되어 기름진 커피로 내린 맛 좋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새삼스럽게 커피콩이 늘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숍에서 콩을 관리하고 직접 볶고 내렸으니까 저런 표현이 나오는 것일거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향과 맛에만 초점을 맞춰 볶은 콩을 주문해 집에서 드립으로 마시는 정도다.

 

담배에 관한 기억은 여섯 살 때, 할아버지가 주시는 담배를 받아 피웠다는데 깜짝 놀랐다. 무슨 오륙십년 전 이야기도 아니고 작가 나이가 40대인 것 같은데 여섯 살에 담배를? 어쨌든 그랬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발견된 녹음테이프에는 직접 녹음한 인생사가 들어있었다. 작가의 담배 관련된 기억으로 자동소환 되는 건 할아버지인 것 같다.

 

p.66~67

담배에 관한 나의 첫 기억은 이렇게 할아버지와 관련된 것들이고 그것들은 한 번도 담배를 떠난 적이 없다. 잘게 조각나서 들어 있는 담뱃잎처럼 그 기억들은 조가조각 부서진 채로 언제나 가라앉아 있다가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마다 잠시 소환되었다가 불꽃처럼 사라진다. 담배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 기억이 들어 있는 뇌의 어딘가가 잠시 환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후반부에는 할아버지 기억, 연애 실패담, 공무원학원 알바 비화, 커피숍 손님 등과 얽힌 이야기를 펼쳐 놓는데 당연히 커피와 담배가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작가의 확고한 취향을 알아가고 맘에 드는 문장에 줄을 그어보다가, 내 커피 취향과 비교하다 급 커피가 땡겨 물을 올리다가! 마지막에 뒤통수 씨게 맞았다.

 

아니, 이 책 에세이 아녔나?

사실 좀 이상하긴 했다. 무슨 여섯 살 짜리가 담배를 피웠단 거며, 커피숍 손님들의 루틴각은 우리나라가 아닌 것만 같았다. 이름 모를 외국 어딘가에 무뚝뚝한 카페 사장이 커피를 내리고 같은 손님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곳! 이상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러니까 현실과 허구 사이를 교묘히 왔다갔다 하는 그의 필력 때문에 가자미 눈이 되려했다가 또 어떤 지점에서 스륵 풀려버리는... 그러다 당한 거다!

 

마지막 글 “커피와 담배”는 허구임이 분명하다. 처음 커피숍에서 일한 지 10년 가까이 됐단 내용을 읽을 때만해도 알바로 커피숍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 그럴 것이라고 넘겨짚은 이유는 조영주 작가 때문이다.(뜬끔 소환 죄송요~ㅎㅎ) 오랫동안 낮엔 커피숍 알바, 밤엔 글쓰는 인생을 살았다고 했기에 작가들은 잘 그러나보다~~ 그랬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는 커피숍을 운영하며 늘 가게에서 쫓겨나는 꿈을 꾸었는데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읭? 이랬는데!

 

 

손님이 다 마시고 간 자리에 가서 빈 커피잔을 찍는 단골손님 이야기에서 확 깼다. 그 단골이 작가에게 속삭이듯 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쓸 순 없다. 뭔 내용인지 궁금한 사람들은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나만 당하기엔 쫌 억울하다.

 

하루키의 신간 소설집 <일인칭 단수>도 그랬다. 8편의 단편 소설을 읽으며 이게 지금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 헷갈리게 만들었다. 8편 중엔 아예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도 있다. 아아니! 이 소설가들이!! 독자 놀려먹기가 유행인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허무는 걸 재미 삼은 건지 예전부터 그래왔는데 독자들이, 아니 띨띨한 내가 이제야 눈치 챈 건지 모르겠다. 이 정도라면 나도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경계가 모호한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급 솟아오른다. 이런 눈치없는 독자에게 “야, 너두 소설가 될 수 있어!”라는 계시를 내리려는 큰 그림이었나...

 

 

앗, 주요한 내용을 빠트릴 뻔했다. 나는 커피, 담배와 어울리는 단어는 고독이라 생각했다. 작가도 '미쉘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인용해 고독과 연결한다.

p.96

커피와 담배는 고립을 고독의 상태로 만들어준다. 커피와 담배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해준다. 각자의 안에는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부분이 있고 그것이 일으키는 중력의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스스로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더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숙해진다.

 

위 문장들 참 맘에 들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내면이라니! 나 그걸 인정하지 못해, 아니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모르고 있었나? 그래서 성숙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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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보다 영화~~ | 기본 카테고리 2021-01-2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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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담배와 영화

금정연 저
시간의흐름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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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2년 전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서랍 속에는 호프라는 담배가 들어있다. 넣어둔 담배를 꺼냈다가, 들여다보다가, 들었다놨다하는 모습들은 원고 쓰는 일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담배를 야금야금 다 피웠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이 책의 128번째 글(129번이 마지막 글)에서 그 담배의 마지막 개비를 피웠다고 썼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눈이 왔으며 다 피우고 나자 눈이 그쳤다고 했다. 그 때가 3월이었다.

 

"눈은 내가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몇 분 동안 존재하다가 사라져버렸다. 연기처럼, 혹은 영화처럼, 이게 픽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129번 글의 내용은,

"다른 한편, 그것은 현실이다."

이다.

 

나는 이 128번과 129번을 읽으며 시리즈 첫 책 <커피와 담배>를 읽으며 했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작가들은 에세이를 쓴 게 아니라 구라를 쓴 것 같다고! 앗, 오해마시라! 구라라는 말은 비하의 의도가 아니다. 지어낸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말을 ‘구라’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내 깜냥에 부합하는 어휘라고 생각하여 사용한 것이다. 즉 그들은 주어진 소재에 어울리는 글을 쓰느라 몹시 힘들었으며 최대한 재미있게 쓰고자 노력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혔듯 <담배와 영화>를 읽는 시간 동안 나도 힘들었다. 작가가 쓰느라 힘들었던 만큼 나도 읽기가 힘들었으며, 무슨 독서생활과 개인생활이 세트플레이가 되듯 지난 한 주 꽤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돈을 쓰면서 기분좋게 마무리하려했으나 영 찜찜함은 남았듯 이 책을 다 읽었는데도 상쾌하지는 않다. 그동안 이처럼 책과 내 생활의 감정이 유사하게 진행되었던 적은 없었다.

 

내 좋아라하는 양조위는 영화에 나오는 담배 피우는 남자인데, 이 책에서 그의 얘기는 너무 짧았고 감독 왕가위의 썰만 길었다. 그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뭐였을까? 작가는 아마도 나같은 단순한 독자들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유명 영화의 담배 장면들을 나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부족했다. 그럼 나는 이 제목의 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길 바랐던 걸까? 리뷰를 쓰며 곰곰 생각해봤지만 떠오르질 않는다. 아마 작가도 이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고 훨씬 글을 잘 쓰지만 힘든 작업이었을 거다. 그러면 출판사에서 잘못한 걸까? 그런 결론은 잠시 유보해야 한다. 나에겐 아직 책 두 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산책> 그리고 <산책과 시>이다.

 

금정연 작가의 부산 금정경찰서 의경시절 이야기는 이 책과 무슨 상관이었을까? 쿡쿡거리며 웃었던 부분이었다. 내가 금정구 주민이었던 적이 있어서였을까, 남동생의 의경생활을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책을 왜 읽느냐는 대화가 나오는 영화 <화씨 451>을 보지 못했는데 궁금하다. 영화 속에서 그 대화가 나온 맥락이. 이 책에서 작가는 담배를 피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저 영화를 인용했다. 이런 뜻으로! 흡연가들이 담배를 피지 않을 이유보다 계속 피는 전제 조건이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래와 같이 썼다.

 

"예를 들어-이것이 가능하다고 전제를 해놓고 말하자면-담배가 건강에 정말로 좋다고 한다면, 담배를 피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담배가 건강에 유익하다면 담배는 더 이상 숭고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위 문장을 쓰면서 인용한 책은 리처드 클라인의 <담배는 숭고하다>이다. 온라인서점 책 소개를 보니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천박한 건강주의의 위선,

담배는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숭고하다.“

 

위 문장과 함께 떠오르는 얼굴, 나의 시아버지다. 당신은 평생을 골초로 살았지만 70대 중반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담배와 영화>의 1번 글 전체를 다시 베껴 쓰며 이 리뷰를 마친다. 글 쓰기 전 개운치 않았던 심정이 정리되었다.

인생은 계속 되니까!

1.

경고. 이 책은 순전한 허구다. 그러나 많은 부분은 사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단체, 작품 및 기타 등등은 사실과 다르지만 같을 수도 있다(중세의 철학자들을 따라 영원의 관점으로 응시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다). 이 책은 샐리 브라운의 인생철학을 따른다. 1996년 8월 3일 샐리 브라운은 찰리 브라운에게 자신의 새로운 인생철학을 선언한다.

무슨 상관이람?(Who cares?)

난들 알아?(HOw should I know?)

인생은 계속된다.(Life goes on)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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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시 사이... | 기본 카테고리 2021-01-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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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화와 시

정지돈 저
시간의흐름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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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히틀리, 뤼시앙 핀틸리,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피터 그리너웨이, 요아킴 트리에, 호세 파딜라, 미카엘 R. 로스컴.

 

 

 

 

나는 처음 들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영화감독이다. 정지돈 작가의 책 <영화와 시>에 위 이름들이 나온다. 읽다가 저 이름들 하나하나 검색해봤다. 감독 이름은 몰라도 영화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단 한 편도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영화와 시에 대한 글을 의뢰받았을 때부터 염두에 둔 작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아일린 마일스, 캐시 애커이라고 했다. 둘다 시인이다. 역시 나는 처음 들었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모르는 영화, 영화감독, 시인이 이렇게나 많다니!!

 

 

 

 

아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작가가 너무 마니아적인 게 아닐까? 덕후스럽다고 해야 하나? 책도 이미 양극화가 심각해서 앞으로는 책 읽는 사람을 두고 마니아라 부르게 될 지도 모른다고 예견한 사람도 있다.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선봉장으로 정지돈 작가가 딱 맞을 것 같다.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한 시인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앗, 여기까지 읽고 이 책을 비난하는 거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

 

오해 마시라!

 

오히려 자아반성에 가깝다.

 

 

유명짜한 영화 좀 봤다고 영화에 대해 안다고 착각했고, 시에 대해선 뭐 아예 무식하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세상은 넓고 알아야할 건 진짜로 많고도 많다!

 

 

 

러시아 작가하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브로드스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리가 없다. 198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정작가는 이렇게 운을 뗐다.

 

브로드스키는 <혁명과 모더니즘>에서 처음 알게 됐다.

<혁명과모더니즘>이 브로드스키가 쓴 책인줄 알고 찾아봤더니 이장욱이라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이 아닌가! 20세기 러시아의 시인과 이론가를 소개하는 책이었고 정작가도 이 책에서 브로드스키라는 작가를 만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 <창백한 말>에 브로드스키의 일화를 인용했고 그 소설로 2016년에 문지문학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브로드스키 일화는 인상적이었다. 1964년 재판에서 판사는 브로드스키에게 이렇게 물었다.

 

“피고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시인으로 활동하는가?”

 

그의 대답은 이랬다.

“없다. 나를 인간으로 허락해준 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북극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가 1972년 추방당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인물과 작가의 사유가 나에게 낯선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정말이지, 이런 책!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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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며 시 읽기~ | 기본 카테고리 2021-01-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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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와 산책

한정원 저
시간의흐름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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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아름다운 시들이 발자국처럼 남기를 바란다

고 작가는 자기소개에 썼다. 미안했다! 이 책에 아름다운 시들이 실린 건 알겠는데 내게 발자국을 남기진 못했다. 사실 나 같은 시 문외한은 아름다운지 아닌지도 잘 모르나 작가가 쓴 글 속에 들어있어서 아름다운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와 산책>이 한정원 작가의 첫 책이란다. 첫 책이 아닌 것만 같아 작가 소개를 다시 보니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출연도 했단다.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이 곱고 따뜻하다 여기며 책을 읽었는데 영화 연출을 했다니 어떤 영화인지 보고싶다. 작가는 대학 때부터 시를 썼다했고, 초등학교 때는 아는 언니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줬다고 했다. 아마도 작가의 싹이 들어있는 씨앗이었던게 아닐까 싶다. 나는 시와 친해지고 싶지만 영 쉽지가 않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시인들의 시나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 외에는 잘 모르고 찾아 읽으려 하지 않다보니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지 못한 채 살다가 작년 가을부터 읽기 시작한 잡지 <창작과 비평>덕분에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잡지에서 우리나라 시인들을 소개하니까 어려워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고, 시인 추천도 받았다. 박정대 시인과 이정훈 시인이다. 박정대 시인의 산문시들은 형식상 접근하기 쉬웠고, 이정훈의 시는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장면이 그려졌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인은 백석과 이육사인데 그들의 시는 어렵지 않아서 좋다. 반면 우리나라 시 중에도 읽고 바로 이해되지 않는 시들은 많았다. 시어의 함축성 때문이라는 거 잘 아는데 모국어로 시를 난해하게 쓴다는 게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수준이 이 정도이니 외국시를 쉽게 읽었을리 없다.

 

<시와 산책>에서도 그렇고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작가들은 외국시를 많이 인용했다. 외국시들이 오히려 직관적이라서 그런건지, 시인의 특이한 삶을 소재로 쓰다 보니 자연스레 시가 인용된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또는 작가의 취향에 맞는 시인이었을 수도...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라는 꼭지의 제목은 미국시인 ‘에밀리 디킨슨’ 시의 한 구절이다. "나의 일은 맴돌기랍니다. 관습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트는 모습에 사로잡혔거나 석양이 나를 보고 있으면 그래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선생님."

작가는 1830년생인 디킨슨과 이웃하여 살았다면 가까운 이웃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자신과 디킨슨의 영혼이 몇몇 지점에서 겹쳐지기에 아무런 노력 없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디킨슨의 시를 읽어보면 그녀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이 추측성 입방아였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시인이 말하는 맴돌기를 ‘산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칩거의 이미지가 씌워져 있지만 대지가 딸린 자택 안에서 성실한 산책자로 살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것이다.

 

작가는 디킨슨의 시 “무명인”에서 말한 끔찍한 유명인보다는 캥거루 같았던 무명 시절을 사랑한다고 했다. 마음으로 친구 맺은 디킨슨처럼 작가도 시 쓰는 산책자가 되고 싶은 것 같다. 내 눈엔 이미 작가도 시 쓰는 산책자이다. ‘고양이는 꽃 속에’를 보면 산책하며 춤 추는 시인이 나온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챙겨주는 장소가 벚나무 아래인데 작가는 그곳을 ‘벚나무 식당’이라고 부른다. 늦가을에 태어난 십 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별이 되어 버렸다. 그중 하나 남은 고양이와 다른 성묘들을 위해 벚나무 식당을 여는 작가의 문장은 이렇다.

 

p. 149 나는 일부러 꽃그늘 밑에 그릇을 둔다. 몇 군데 나누어 준 밥그릇에 고양이들이 꽃잎처럼 둥글게 붙어 배를 채우는 동안, 나는 쪼그려 앉아 가만히 봄볕을 먹는다. 서로 다투지 않고, 나 자신과도 다투지 않는, 순한 시간이다. 나의 어린 고양이들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벌이 되었을까, 꽃이 되었을까, 중간이 되었을까. 무엇이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되었을 리 없을 테지.

 

말을 잃을 정도로 슬픔에 빠졌던 작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다 침묵한다던 작가가 다음엔 어떤 책을 내놓을지 기대된다. 시집이면 좋겠다. 나는 그 시집을 들고 산책을 나갈 것이다. 걷다가 발길이 멈추는 어느 곳에서 시집을 펼쳐 조용조용 소리내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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