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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의 바이블 | 리뷰 카테고리 2011-07-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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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솔로지 - 신화의 시대

토머스 불핀치 저/김은실 역
오늘의책 | 201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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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토머스 불핀치가 1855년에 완성한 <신화의 시대, The Age of Fable>로서, 벌써 지금으로부터 160년 가까이 된 책이지만, 아직도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바이블로 여겨질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미솔로지>를 쓴 불핀치의 업적은 무엇보다도 방대하여 정리하기 어려웠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였다는 데 있다. 작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애매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게 해 주었다. 둘째, 그는 복잡한 신화를 주석이나 사전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신화의 가장 즐거움의 요소인 이야기식 전개로 독자로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셋째,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 유명한 시들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신화가 문학의 충직한 종이자 동맹자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대학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E. Hamilton의 <Mythology>를 영어로 읽어냈다. 그 때는 영어공부가 목적이었고,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에 급급해서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해밀톤은 다양한 원전으로부터 온 신화들을 통합하려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원전에 가깝게 소개하려는데 초점을 맞춘듯하다. 그의 책에는 신화의 문체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까지 있어서 조금은 버거웠다. 솔직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은 일본판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세트를 통해 익혔다. 그리고 십년 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신화를 여는 12가지 열쇠)>를 읽었다. 지금은 이윤기 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시리즈로 5권이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이윤기의 책은 많은 그림들과 사진들이 잘 배열되어 있어서 눈으로 보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오늘의 책’ 출판사에서 펴낸 토머스 불핀치의 <미솔로지>는 화려한 조판은 아니지만, 저자의 의도에 맞게 이야기식 전개를 잘 살려 한권으로 보기 좋으면서도 묵직하게 만들어 냈다. 각 장(chapter) 앞부분에 적절한 크기의 그림이 있고, 가끔 관련 사진이나 그림들을 수록해 놓았다. 모두 흑백 그림이어서 더 고풍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이탤릭체로 가운데 정렬로 기록된 시들도 책을 고급스럽게 느끼게 했다. 참 마음에 든다.

불핀치는 친절하게 prologue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과 신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소개함으로써 장장 88장에 걸쳐 방대하게 기록될 신화 이야기의 틀을 제공한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를 66~70장에서 언급하고 트로이 유적을 발견한 하인리히 슐리만의 이야기도 간략하게 곁들인다. 이 이야기가 끝나자 <오디세이아> 대서사시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아이네이아스>를 이어간다. 마지막으로 불핀치는 epilogue에서 그리스의 신들이 어떻게 로마의 신으로 대치되었는지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제우스(Zeus)는 주피터(Jupiter)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비너스(Venus)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는 다이아나(Diana)로, 사랑의 신 에로스(Eros)는 큐피드(Cupid)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는 바커스(Bacchus), 지혜의 신 아테나(Athena)는 미네르바(Minerva)로, 등 등. 그리스 신들은 이름만 바뀐 채 로마의 신이 되어 그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신화의 신들을 믿지는 않지만, <미솔로지>를 읽으며 고전 문학작품들을 친숙하게 대할 것이고, 인생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들은 지금 우리 문학과 정신세계에서는 아직도 살아 활동한다!

나는 <미솔로지>를 읽고, 이 책을 이윤기의 책, 해밀톤의 책과 함께 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 놓았다. 아마 <미솔로지>를 가장 많이 보물처럼 꺼내 읽게 될 것이다. 하드 카버(hard cover)였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그러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바이블’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책, <기사도의 시대, The Age of Chivalry, 1858>와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 Legends od Charlemagne, 1862>도 ‘오늘의 책’ 출판사에서 <미솔로지>와 같은 형태로, 시리즈처럼 제작 출판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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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환상을 무슬림 선교의 접촉점으로 삼을 수 있을까? | 리뷰 카테고리 2011-07-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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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슬림의 꿈과 환상

베리 피터스 저/전병희 역
대장간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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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의 꿈과 환상>은 아랍 국가에서 사역을 하면서 무슬림들이 종종 꿈과 환상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접한 선교사가, 하나님이 무슬림들의 개종을 위해 꿈과 환상을 사용하심을 인정하고 꿈과 환상을 무슬림 선교의 접촉점으로 삼을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개진한 책이다. 원 제목이 이러한 논지를 잘 보여준다. “The role of dreams and visions in the apostolate to Muslims and its application in cress-cultural ministry.”

저자는 먼저 고대 세계와 성서에서 꿈과 환상의 역할을 정리한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자 홀(E. T. Hall)의 글을 인용해, 꿈을 과학만능주의적인 서구의 인식방식에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를 제공하는 생각의 한 형태임을 주장한다. 성경에서도 환상과 꿈의 회복은 메시야 시대의 표라는 것이다(욜2:28, 행2:17). 실제로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부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꿈을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로 보고 체험했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종교개혁교리로 꿈과 환상은 변두리로 밀려나고 꿈과 환상의 가치를 가르친 자들이 이단으로 처형당했다. 그럼에도 기독교 세계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꿈과 환상을 하나님의 계시로 경험했다. 저자는 19세기 침례교 설교가 고든(A. J. Gordon)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장 잘 깨어 있다.” 또한 Amazing Grace로 유명한 존 뉴턴(John Newton)도 꿈의 결과로 노예상인의 일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가 되었다고 말한다(pp. 29~38).

한편, 이슬람 세계에서도 꿈과 환상은 중요한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지고, 특히 수피즘(Sufism)의 신비적 운동에서 꿈과 환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꿈은 이슬람의 삶과 사고에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계속해서 행사한다. 따라서 현대 무슬림들은 다양한 꿈과 환상을 통해 이슬람 내부로부터 받게 될 엄청난 사회적 압박과 처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저자는 그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pp. 38~43).

이 책은 왜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무슬림들을 끌어당기실 때 꿈과 환상을 사용하시는지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 자신의 창조적 성격 때문이다. 둘째, 기독교 세계에서 무슬림 세계로 보내지는 선교사와 자원은 매우 부족하고, 무슬림 세계의 문맹률로 인해 인쇄된 자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셋째,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이전 접촉에 문제가 부분적으로 있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능숙한 논쟁과 변증에 무슬림 대중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슬림들은 대단히 관계적이어서 단순히 전달되는 정보보다 꿈과 환상에서 말한 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확실히, 이 책은 기독교 세계와 전혀 다른 타문화에서 사역을 할 때(in cross-cutural ministry) 세계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pp.44~46).

저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린다. 첫째, 꿈과 환상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이니, 무슬림들이 그런 체험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둘째,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에서 꿈과 환상을 언급함으로써 무슬림과 대화할 수 있다. 셋째, 기능적 관점(emic stance)에서 꿈과 환상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알-무바쉬쉬랏, Al-Mubashshirat, 좋은 소식, good news)이라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다. 넷째, 예수에 대해 무슬림이 꿈을 꾸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헌신도가 불성실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순나(sunna) 혹은 예언자적 실천의 한 부분이다. 다섯째, 우리는 꿈을 경험한 무슬림들에게 말할 준비를 갖출 수 있다(pp.46~50).

이 책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무슬림 가운데 꿈과 환상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계심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인정은 사람이 더 이상 무슬림에게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 이끌고 계시는 무슬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찾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여전히 사도적 방법(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중요하다. 결국 무슬림들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랑하지 않고는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슬람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타문화에서 무슬림들과 어떻게 선교의 접촉점을 찾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잘 담겨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선교사의 역할을 균형있게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꿈과 환상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약점이 있음을 간과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열린 방식으로 선교에 임하고자 한다. 이 책은 타문화 선교(cross-cultural ministry)에 있어서 선교사들이 고민하고 접근해야 할 선교의 자세에 대해 많은 도전을 주는 책이다. 짧은 분량의 보고서이지만,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꿈과 환상, 배타적인 타문화권인 이슬람 세계에서 선교의 접촉점을 찾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해결책이 잘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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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책 읽기'의 달인, 이덕무 | 리뷰 카테고리 2011-07-2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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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저/권정원 역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 201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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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그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고 스스로가 인정했듯, 간서치(看書痴, 독서광 혹은 책에 미친 바보)였다. 그는 바둑, 소설, 여색, 담배를 모르고 오직 책을 벗으로 삼고 산 위인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책읽기의 달인이라고 해도 뜻이 통할 듯하다. 그가 책 읽는 일에 있어서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은, 그가 책읽기의 네 가지 유익에 대해 말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첫째,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배고픔을 잊는다. 둘째, 추울 때 책을 읽으면 책 읽는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와 추위도 잊는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천만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진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 버린다(pp. 49~52). 배고프거나 추울 때, 근심걱정이 많을 때, 기침 날 때 책을 읽어 보았는가? 안 해보았다면, 이덕무 앞에서는 책 읽기에 대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그가 오랜 굶주림에 <맹자> 일곱 편을 팔았고, 그의 친구 영재(유득공)도 <좌씨전>을 팔아 밥을 먹고 술을 샀다. 이덕무는 재치있게 말한다. “이는 맹자가 직접 내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내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오”(p. 155). 그는 단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친구 박제가는 자신에게서 오히려 단 것을 빼앗아 먹었다고 원망하고, 친구 이서구에게 그를 꾸짖어 달라고 쓴 편지는 웃음을 자아냈다. 참 인간적이고 멋있고 해학(諧謔)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을 부귀나 출세를 구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고,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 데 혼신을 다했던 조선 시대 선비의 정신을 그에게서 보게 된다.

이덕무의 산문집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책 읽는 모습과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중고등 학생들은 온통 대학입시만을 위해 책을 대하고, 대학생들은 외국어와 자신의 전공책만 보며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힘쓴다. 직장인들은 오직 성공만을 위해 성공학과 처세술, 자기 관리 등 실용서만 읽는다. 주부들은 월간 잡지들을 통해 연예인들에 관한 가십거리들만 들척인다. 자신을 진정으로 수양하고, 인생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이덕무는 누추한 자신의 집을 궁전처럼 여기며, 자기 방의 이름을 “팔분당(八分堂)이라고 지었다. 10분은 성인의 경지, 9분은 군자의 경지다. 따라서 선비로서 이덕무는 책을 읽는 목표를, 7분은 너무 목표로 미약하고 9분은 너무 이상적이여서 중간인 8분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출세와 성공이 아니라 오직 진리를 발견하고 자기 수양과 인격 함양에 뜻을 두고 책을 읽은 것이다.

그는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수백권의 책을 베끼고, 일평생 책을 가까이 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글을 쓸 때는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뽐내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첫 문집을 “영처고(嬰處稿)라 했다. 자신의 글이 어린아이가 장난치고 노는 것과 다르지 않고, 마땅히 처녀가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감추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자신의 문집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에서 이덕무가 자신의 글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깊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덕무가 인용한 석공 원굉도의 <독서>라는 시(詩)는 이덕무에게 참된 독서법을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나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책에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단정한 차림으로 옛사람을 대하네.

책에 쓰인 건 모두 피와 땀이라

알고 나니 정신을 돕네.

도끼를 들어 주옥을 캐고

그물을 쳐 고운 물고기를 잡는 듯

나도 한 자루 비를 들고

온 땅의 가시를 쓸리라“(p. 57).

가볍고 천박한 독서가 판을 치면, 그 시대정신은 그만큼 천박해진다. 이덕무처럼 책과 함께 노닐며, 책으로 행복해 하는 독서를 하는 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 그 시대정신은 더 맑고 깊어지고, 사람들은 소박한 일상을 즐기며 평온한 휴식을 좀 더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여기저기에 실려 있는 몽우 김영진의 그림도 많은 여운을 남긴다. 마치 이덕무의 책읽기의 정신을 구현해 놓은 듯하다. 너무 잘 만들어진 책이다. 마음에 큰 울림과 여운이 남는 즐겁고 행복한 책읽기였다. 이 무더운 여름에 어디 깊은 산속에 들어가 한 달만이라도 책읽기에 푹 빠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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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은 과연 종교의 심층을 보았는가? | 리뷰 카테고리 2011-07-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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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저
현암사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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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 교수 오강남은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를 뛰어넘는 동일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전제 아래 <종교, 심층을 보다>를 썼다. 그는 여는 글에서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를 다섯 가지로 열거한다. 첫째, 표층 종교는 자신의 육신이 잘되기만 애쓰나 심층 종교는 자기를 죽여 ‘새로운 나’로 태어남을 강조한다. 둘째, 표층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심층 종교는 ‘깨달음’을 중시한다. 셋째, 표층 종교는 신의 초월을 강조하지만 심층 종교는 신의 초월과 내재를 강조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의 입장이다. 넷째, 표층 종교는 자기 밖에서 신을 찾지만 심층 종교는 신을 찾는 것과 참 나를 찾는 것은 같다고 본다. 다섯째, 깨달음은 너무나 엄청나서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심층 종교의 사람들은 경전에 대한 ’문자주의‘를 배격한다. 결국 저자는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영성 혹은 신비주의(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종교적 체험과 깨달음)이 있다고 단언한다.

오강남은 이 책에서 그리스로마 철학자들, 유대교 지도자들, 그리스도교 선각자들, 이슬람의 성인들, 동아시아의 사상가들, 인도의 영성가들, 불교의 선지자들, 한국의 다석 류영모와 신천 함석헌의 사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의도는 모든 종교나 철학자의 심층에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음을 밝히는데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저자는 철저히 다석(多夕) 류영모의 관점에서 모든 종교를 평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가 소개하는 류영모는 ‘종교의 심층을 통섭한 참 스승’이다. “예수,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유교, 불교, 예수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p.473)라고 주장하는 다석은 유교, 불교, 예수교 등을 모두 아우르는 또 하나의 통합 종교를 만들고자 한 것이며, 오강남은 그런 다석의 ‘종교’를 전하고 있다. 다석 혹은 오강남이 주장하는 종교는 (그들은 종교라는 표현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겠지만) ‘심층 종교’ 혹은 ‘깨달음의 종교’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오강남이 말하는 예수에 대해 특히 주의깊게 읽었다. 그가 말하는 예수의 침례와 시험 사건은 예수가 ‘의식의 변화(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경험한 사건이며, 예수부활의 사건은 제자들이 용기와 활력을 얻은 깨달음의 사건일 뿐이다. '회개하라‘는 말은 또한 ‘깨치라’는 의미다. 결국 ‘천국복음’도 세계 여러 종교의 신비주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하여, 내 속의 참나, 진아(진我), 얼나를 찾으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오강남은 기독교의 심층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내가 보기에는 '깨달음'이라는 관점에서 표층만 건드리고 있는 듯하다. 오강남에 따르면 기독교 뿐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도 그 심층에는 깨달음(특히 참 자아를 깨닫는 일)이 있을 뿐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자신이 깨달음으로 신이 되는 것만이 존재한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모든 세계 종교가 가지고 있는 ‘깨달음’의 영성(신비주의)이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다가 모든 종교의 독특한 가르침과 믿음을 몰살시키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저자는 각 종교의 독특한 가르침과 믿음은 표층에 드러난 것뿐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각 종교의 독특함에 매달리는 것은 아직 종교의 표층만 볼 뿐, 심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순환논리에 빠지고 만다. 모든 종교의 심층에 ‘깨달음’이 있다고 전제하고, 자아를 깨닫기만 하면 되지 어떤 종교 등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것은 세계의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살시키는 것이다. 거기에는 종교 간의 진정한 대화도 상호 인정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저자 혹은 다석 유영모가 주장하는 ‘깨달음의 종교’(심층 종교)에 굴복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저자 오강남은 모든 종교인은 ‘표층’만 보는 어리석은 자들이니 ‘깨달음의 종교’(심층 종교)로 개종하라고 주장함으로써, 스스로 타종교와의 대화와 이해를 거부하고 굴종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종교가 이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려면, 종교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는 종교 간의 공통점을 억지로 찾아내기보다, 종교 간의 엄청난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의 각각의 독특성과 믿음, 가치관들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그리고 종교 간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와 진지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해결책이다. 나는 오강남의 이 책의 논지에 실망했고, 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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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출발하여 인내와 아픔이 있는 중보기도자가 되게 하소서. | 리뷰 카테고리 2011-07-2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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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보기도 이렇게 하라

더취 쉬츠 저/고병현 역
쉐키나(Shekinah MEDIA)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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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보기도 사역자 더치 쉬츠(Dutch Sheets)가 중보기도자가 되길 원하는 자들을 위해 쓴 가이드북으로, 원제목도 <The Beginner's Guide to Intercession>이다. 저자는 중보기도가 무엇인가 정확히 정의하기보다 중보기도의 동기부터 시작해서 중보기도자가 되기 위해 명심해야 할 사항들, 붙잡아야 할 중보기도의 원칙들을 재미있는 예화들을 들어가며 쉽게 알려준다.

먼저 그는 ‘중보의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구애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중보는 사랑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 중보기도 여정의 출발점은 바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랑을 나눈 부부가 배우자가 기대하지 못한 곳에 ‘슈밀리’라고 적는 게임을 했단다. ‘슈밀리(Shmily)’가 무슨 뜻이냐고? "See How Much I Love You"(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세요)이다. 그렇다. 중보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고, 또 중보의 대상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제 1장부터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교회의 사람으로 살아오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했고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며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기도로 주님과 친밀히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는지, 중보기도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는지 생각해 본다. 부끄럽다. 나는 입술로는 중보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나의 중보기도 여정에 ‘슈밀리’라고 써 붙인 곳이 없다! 아니, 나는 중보기도 여정의 출발점에도 서 있지 못했다.

저자는 ‘중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파가’라는 단어를 통해 중보기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파가’의 기본적인 의미 중 하나는 ‘만나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만나주신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사람을 바꾸고 믿음을 주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는 중보기도로 그 영광스런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만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중보기도라는 것이다. 또 ‘파가’라는 단어에 ‘착륙하다, 빛을 비추다’라는 뜻도 있단다. 중보의 장소는 하나님의 장소다. 즉, 중보라는 하늘로 향한 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드러난다. ‘파가’라는 단어에 ‘경계, 변경’이란 뜻도 있음을 배웠다. 우리는 중보기도를 통해 보호벽을 쌓는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순교의 위기에 있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중보기도는 베드로에게 보호벽이 되었다. 또 하나, ‘파가’에는 ‘목표물을 친다’라는 뜻도 담겨있단다. 우리가 중보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번개가 내려와 목표물을 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중보기도의 능력이다.

이 책 뒷부분의 두 chapter, ‘중보의 인내’와 ‘중보의 아픔’이 인상적이었다. 5만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은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가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63년간 기도했단다. 그 사람은 결국 뮬러가 죽고 나서 예수님을 영접했고, 뮬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또 중보기도는 서로의 약점과 고통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다. 저자는 긍휼에 관한 훌륭한 설명을 인용한다. “긍휼(compassion)이라는 말은 두 개의 라틴 단어, 즉 컴(com)과 파티(pati)에서 유래한 것이다. 컴은 ‘함께’라는 뜻이고, ‘파티’는 ‘고난 받다, 아픔을 느끼다’라는 뜻이다. 이 둘이 함께 쓰여 누군가 어려운 사람과 ‘함께 고난 받는’, 혹은 ‘같은 아픔을 느끼는’을 뜻한다.” 중보기도에는 이런 인내와 아픔이 반드시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중보기도 생활을 돌아본다. 아! 나는 이렇게 인내하며 중보기도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에서 남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회에 참석하곤 한다. 다른 성도에게 ‘제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하고 말하고 실제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라는 출발점에서 중보기도하지 못했다. 특히 인내하지 못했다. 한두 번 기도해 주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의무감에서 기도했지, 중보기도 대상자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며 기도하지 못했다. 이 중보기도의 가이드에 따라 나의 중보기도를 평가하면, 나는 아직 중보기도하는 일에 매우 서툴다고 솔직해 고백해야겠다. 그래도 중보기도자가 되고 싶다. 기도는 신앙의 본질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의 기도의 깊이만큼 나는 깊은 사람이고, 나의 기도의 넓이만큼 나는 넓은 사람이고, 나의 기도의 높이만큼 나는 높은 사람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는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나로 깊고 넓고 높은 중보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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