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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요시타카 「빵과 서커스」 (예문아카이브, 2019) | 리뷰 카테고리 2019-05-1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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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빵과 서커스

나카가와 요시타카 저/임해성 역
예문아카이브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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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성경, 특히 신약성경에 관심이 많은 나는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로마 제국에 대해 알아가길 좋아한다. 지금까지 역사가와 기독교 신학자를 통해 로마 제국의 역사, 정치, 철학, 사상에 대해 배웠다. 그런데 이 책 <빵과 서커스>는 일본의 토목 기술사이며 환경건설공학과 교수인 나카가와 요시타가가 건축 토목의 관점에서 로마 제국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기존 학자와는 다른 시각에서 로마 역사를 풀어나간다는 점에 무척 참신하게 다가왔다. 분명 로마 도시, 상하수도, , 신전, 원형 경기장, 극장, 공공목욕탕, 도서관 등을 보면 당시의 정책, 문화, 삶의 방식을 실감 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로마의 토목 건축물을 연구하면서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로마 제국이 오랜 세월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그런데 왜 멸망했는가? 그리고 멸망 뒤에는 무엇을 남겼나? 일반적으로 목욕탕과 원형 경기장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쾌락추구와 성적 타락, 이어지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로마멸망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Iuvenalis)과거에는 정치와 군사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오매불망 오직 두 가지만 기다린다. 빵과 서커스를이라고 탄식했단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유베날리스의 탄식 후에도 무려 376년간이나 대제국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로마 제국을 지탱한 힘은 무엇인가? 저자는 토목건축 전문가답게 로마 도시를 자세히 살펴본다. 상하수도 시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로마의 가도, 시민의 복지와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무상 식량 배급과 공공목욕탕, 원형극장과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원형 경기장, 등은 로마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다. ‘빵과 서커스의 로마는 그만한 재원과 건설 기술, 유지, 관리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물론 빵과 서커스는 시민들을 나태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제국은 글로벌화, 속주민의 차별없는 등용 등의 강점을 바탕으로 탄탄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로마 제국은 왜 멸망하였는가? 저자는 로마 제국이 멸망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지점을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313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밀라노 칙령이 반포되어 기독교가 자리를 잡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는데, 이때부터 제국 내에 불관용이 심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국교화되지 않고, 이교 탄압을 하지 않았다면 서로마 제국이 476년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저자는 소위 정통 기독교를 제국 멸망의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는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지 않고, 로마시민을 바로잡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고,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고, 이슬람 등과 같은 세력의 대두에 대응해 지중해 제해권을 강화했다면 제국은 더 오래 존속되었을 것이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과연 저자의 주장대로 기독교가 제국에 주된 세력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로마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는가? 저자는 기독교의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를 로마 제국과 이민족 사이의 대립으로 설정했다(p. 300). 기독교의 정통 교리 확정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명백한 역사적 오류다. 로마군단에 이민족이 편입되면서 종교문제가 불거졌다고도 주장하는데, 이 또한 오류다. 또한 이민족들은 로마 제국에 편입되면서 기독교화되었다. 결코 종교문제가 제국 전체의 분열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국의 분열을 기독교가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이 책, 로마 제국의 흥왕에 대한 건축학적 설명이 돋보이지만 제국 멸망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어설픈 점이 꽤 보인다. 어쨌든 매우 흥미로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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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융 「법화경 마음공부」 (유노북스, 2019) | 리뷰 카테고리 2019-05-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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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법화경 마음공부

페이융 저/허유영 역
유노북스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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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타 종교 특히 오랜 세월 한국인의 심상에 깊은 영향을 준 불교의 가르침들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불경 연구가인 페이융을 통해 몇몇 불교의 경전들을 맛볼 수 있었다. <금강경>의 지혜를 알려주는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육조단경>의 지혜를 알려주는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이 그것이다. <금강경>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면서 집착하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지혜를 알려준다. <육조단경>은 현재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삶을 사는 것,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사는 지혜를 가르친다.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페이융을 통해 또 다른 불교 경전에 도전해 본다. <법화경>! 이 경전은 석가 말년의 가르침으로, 모든 불경의 왕이라고 일컬어진단다. 이 표현 하나만으로도 나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법화경>은 한마디로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불교의 기본 교리를 사제(四諦)라고 하는데, 기본이 되는 진리가 고통에 관한 것이다. <법화경>에 따르면, 인간은 삼계(三界)라는 화택(火宅)에 살고 있다. , 욕계(欲界, 음욕과 식욕의 세계), 색계(色界, 물욕의 세계), 무색계(無色界, 물질을 초월한 정신의 세계)는 편안함이 없어 불타는 집과 같다. 사람은 이러한 세상에서 태어나 죽기를 반복할 뿐 삼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중생에게 삼계화택의 악사가 되지 말고, 어서 빨리 삼계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수행을 통해서다. 신체적 수행(身安樂行), 말의 수행(口安樂行), 마음의 수행(意安樂行), 부처의 진리 가운데 머물도록 기도(誓願安樂行)해야 한다. 해탈의 방법에 따라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뉘는데, <법화경>은 이러한 양분화된 해탈의 방법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경전이다.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올 때, 양이 끄는 수레를 탈 수도 있고(聲聞乘, 사제를 깨달아 삼계화택에서 빠져 나감),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탈 수도 있으며(緣覺乘,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삼계화택에서 빠져나감), 소가 끄는 수레를 탈 수도 있다(菩薩乘,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삼계화택에서 빠져나감)를 탈 수도 있다. 어느 방법을 사용하든 궁극적으로는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수행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 부처는 참된 자아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강론으로 <법화경>의 주요 가르침을 정리하였다. 각 강론은 왜 인생이 고통인가?’ ‘어떻게 인생의 고통을 멈출 것인가?’ ‘어떻게 나만의 삶을 살 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까?’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아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많은 예를 들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개해 나간다. 따라서 이런 질문에 먼저 스스로 답해보고 각 강론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나는 마음으로 먼저 답을 달아보았는데, <법화경>의 가르침과는 사뭇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성경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일 게다. 덕분에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과연 이런 수행으로 스스로 구원(해탈)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법화경의 가르침을 현대인들에게 쉽게 설명한 훌륭한 오리엔테이션이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불교의 경전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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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 (21세기북스, 2019) | 리뷰 카테고리 2019-05-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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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속도에서 깊이로

윌리엄 파워스 저/임현경 역
21세기북스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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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디지털 세상, 스마트폰의 시대다. 스크린을 통한 네트워크는 언제나 좋은 것이며 네트워크는 확장될수록 좋다는 디지털 맥시멀리즘(Digital Maximalism)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지털로 인해 세상은 더 가까워졌고, 우리는 더욱 분주해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크린을 확인하고 싶어지고, 무언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1장의 제목으로 표현했다. ‘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분주함’! 저자가 지적한 대로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외부 지향적인 사고를 하고, 우리 내면의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 스크린이 우리의 삶을 주도하자 우리는 삶의 깊이와 충만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과연 군중과 자아,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계속해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선다.

 

그는 철학자 일곱 명을 통해 탈출구를 찾았다. 플라톤, 세네카,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벤저민 프랭클린, 데이빗 소로, 매클루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플라톤을 통해서 가끔 세상과 거리를 두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휴대폰이 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터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도,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할 때도, 휴대폰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임마누엘(Immanuel,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로 믿는데, 현대인은 휴대폰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존재, ‘임마누폰(Immanuphone)’으로 받아들였다. ‘임마누폰내가 지금 즉흥적으로 만든 신조어지만 그럴 듯하다. 한번은 사무실에 휴대폰을 놓아두고 차로 멀리 지방까지 갔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휴대폰을 챙기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불안했다. 오늘 나에게 확답을 주기로 한 사람이 생각났다. 누군가가 내가 꼭 받아야 할 중요한 전화를 오늘 할 것만 같았다.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엄청난 모험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폰 없이 보낸 하루,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렇다. 인터넷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네트워크에 연결되고자 하는 충동이 가져오는 마음의 상태와 균형의 상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 해법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3장의 제목을 생각이 탄생하는 곳, 디스커넥토피아(Disconnectopia)’라고 붙였다. 저자는 주말 이틀에는 가정에서 모든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이를 인터넷 안식일’(Internet Sabbath)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몹시 힘들고 불편했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많은 일들이 더 이상 큰 불편이 아니라 사소한 불편이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바뀌었단다. 지금은 인터넷과 떨어질 수 없는 세대다. 그렇지만 스크린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현실 세계가 훨씬 중요하다. 현재 나와 함께 있는 사람, 내 주위의 자연 풍경, 등과 공감하고 사랑을 나눌 때 우리의 내면은 깊고 충만해지는 것이 아닐까? 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분주함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깊고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통찰력 있는 조언을 건넨다. 꼭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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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피글리우치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든, 2019) | 리뷰 카테고리 2019-05-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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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저/석기용 역
든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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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윌리엄 B. 어빈의 <직언: 죽은 철학자들의 살아 있는 쓴소리>(2012, 토네이도)를 읽으며, 스토아 철학에 대해 눈을 떴다. 스토아 철학은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알려주는 철학으로 평정심과 절제, 덕 있는 삶에 대해 가르친다. 이 책에서 제시한 네 명의 스토아 철학자들, 세네카, 무소니우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가르침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 후로 그리스 철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져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던 중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그리고 나는 스토아 주의자가 되었다>를 접하게 된 것이다. 원제목은 HOW TO BE A STOIC : Using Ancient Philosophy to Live a Modern Life이다. 뉴욕시립대학교의 철학교수인 저자는 에픽테토스의 <담화록(Discourses>을 기초자료로 하여 스토아 철학의 고갱이를 흥미진진하게 드러낸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아마도 다음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정심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게 허락하소서.” 이 기도문은 기독교윤리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자신의 설교에서 사용하여 유명해졌다. 그렇다. 인생은 신비한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지만, 인간의 힘을 넘어선 일들에 대해 때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평정심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무엇이 할 수 없는 일인지 분별해 내는 지혜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 욕망의 규율에서는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삶, 우리가 목표를 정하고 이루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올바로 살지만,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욕망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에 대해 말한다. ‘2. 행위의 수련에서는 스토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덕목을 설명한다. 이 덕목들은 기독교의 덕목들과 매우 유사하다.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직업이나 부의 소유, 그가 오른 지위와 명예와 업적과는 관계가 없다. 에픽테투스에 따르면, 인간을 좌절시키는 것은 물리적 고통이 아니라 수치, 두려움, 자기 존중의 상실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평정, 대담, 자유 이런 덕목들을 붙잡아야 한다. ‘3. 승인 훈련에서는 삶의 다양한 상황들에 반응하는 법에 대해 가르친다. 죽음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해야 하는지, 분노, 불안, 외로움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을 가르친다. 부록에 실린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계보와 가르침의 정리는 스토아철학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사상의 배경과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스토아주의가 금욕, 인내, 체념 만을 가르치는 소극적인 인생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최선의 삶인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살고자하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인생관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과 기독교, 특히 신약 성서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이 유사점과 차이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기독교의 윤리와 스토아 철학의 윤리를 계속 알아가고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은 윌리엄 어빈의 책과 함께 스토아주의에 대해 가장 흥미롭고 가르치고 실천적인 도전을 준다. 스토아 철학의 본질을 알고 싶은 자에게 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한 권만 추천하라면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의 경험과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곁들여 있어서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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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뒤부아, 엘리즈 루소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다른, 2019) | 리뷰 카테고리 2019-05-0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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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엘리즈 루소 공저/맹슬기 역
다른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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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사전에 새대가리우둔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넌 그것도 모르냐, 새대가리야이런 표현을 들어본 듯하기도 하다. 이 책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을 읽으면서, 이런 표현이 새들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새들에 대한 가장 모욕적 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류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쓴 이 책에 등장하는 새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새들이 얼마나 지혜롭게 사는지 알게 된다. 더불어 인간이 조금만 힘을 빼고 가볍게 살아가면 자연계는 더욱 아름답고 행복할 수도 있겠다 싶다.

 

새에게서 배우는 삶의 통찰은 무엇인가? 오리의 털갈이를 이클립스(eclipse)라고 한단다. ‘이크립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을 의미한다. 새롭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안에서 무엇인가 소멸하도록 놔둘 줄도 알아야 한다. 이클립스의 시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본래 우리 안에 있었던 힘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채우는 데만 급급했던 것 같다. 내 책장에는 책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고, 냉장고에는 몇 개월씩 눈길도 주지 않은 식품들이 들어차 있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은 언제 한 번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까? 비울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새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큰되부리도요뻐꾸기GPS 장치없이도 방향을 잃지 않고 멋지게 비행한단다. 거기에 반해 인간은 일상에서 가야 할 방향과 올바른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잃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유럽울새는 용맹하고 호전적이어서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권력과 용맹함을 혼동하고 외적으로 크고 용맹해 보이는 독수리에 더 감탄하곤 한다. 모래 목욕을 하는 암탉은 얼마나 행복한가? 저자는 여기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한다. 현재를 살아내라!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새들의 습관, 삶의 방식 등을 알려주면서, 거기서 인간이 배울 수 있는 철학을 언급한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제비이야기가 나에게는 가장 도전적이었다. 자연은 고통이 오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은 짧다. 반면 인간은 이미 다한 생명인데 억지로 연장하여 더욱 큰 고통 속에서 살도록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제대로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니, 오로지 지금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 참 산뜻한 철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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