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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사이언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이다미디어, 2016) | 리뷰 카테고리 2016-10-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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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라이프사이언스 저
이다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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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를 가진 자로 타종교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그 무지함 때문에 타종교에 대해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배타적이지 않았는지, 전세계적으로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그래서 세계 5대 종교를 도표와 지도로 비교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1장은 세계 5대 종교의 창시자, 핵심 교리, 경전, 성지, 교파 등을 한 눈에 보도록 정리한다. 2장부터 5장까지는 종교와 관련된 뉴스거리와 상식들, 경제적 문제와 분쟁을 다룬다. 나는 특히 ‘4장. 종교지도로 세계분쟁을 읽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종교적 충돌은 우리의 피부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종교의 충돌은 새뮤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지적하기 훨씬 이전부터 빈번히 발생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지를 둘러싼 3대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지금까지 지속되는 대립은 종교 충돌의 상징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종교 간의 충돌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의 가톨릭교, 세르비아정교, 이슬람교의 분쟁은 무려 2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북아일랜드군(IRA)과 개신교도들의 무력 투쟁, 이슬람교 내에서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싸움, 인도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대립, 등 수없이 많은 갈등을 열거할 수 있으리라. 이런 무력 충돌 이외에서 문화 정치적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 ‘부르카’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계속 확산되고 있고, 지하드(성전, 聖戰)라는 미명하에 IS의 지속적인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본래 이슬람교에서 ‘지하드’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대(大) 지하드’는 자기 내면의 ‘악’과 싸우는 정신적 수양을, ‘소(小) 지하드’는 공동체를 침략한 적과의 싸움을 가리킨다. 본래 무함마드는 대지하드를 장려했으며 소지하드는 어쩔 도리가 없을 때만 선택하라고 가르쳤단다. 무차별 자살 폭탄 테러는 이슬람의 지하드 사상에 위배되는 것이다(pp. 179~182). 이전에는 이슬람 하면 폭력적인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고등 종교는 신과 인간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모두와 평화롭게 살라고 가르친다. 종교간 교리의 차이보다 이런 거시적 가르침의 공통점에 집중해서 서로를 인정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에 함몰되지 않고 타종교인을 좀 더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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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노렌자얀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김영사, 2016) | 리뷰 카테고리 2016-10-2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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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아라 노렌자얀 저/홍지수 역
김영사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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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종교 진화적 관점에서 종교, 특히 초월적 감사자인 Big God을 믿는 거대종교가 어떻게 초사회성(ultra-sociality) 형성에 공헌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종교의 미래는 어떠할지를 진지하게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의 논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결속력이 강한 소규모 집단(게마인샤프트)에서 유전적으로 무관한 익명의 낯선 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규모로 지속적으로 협력을 실천하는 익명의 거대한 사회(게젤샤프트)로 급격히 변모하는 과정을 겪었다”(pp. 18~19). ,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혈연과 관계없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일에 거대한 신들(Big Gods) 을 섬기는 친사회적 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수렵채집 사회에 있던 샤머니즘은 도덕적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조상들이 믿었던 신은 비도덕적 범죄행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통해 달래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신은 인간의 도덕적 행동을 제대로 감시할만한 전지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였다. 하지만 친사회적인 거대 종교가 등장하면서 거대 집단 내 구성원들의 협력을 촉진시켰다. 왜냐하면 보는 눈이 있으면 언행을 삼간다는 말이 있듯,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는 초월적인 신의 존재는 인간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좀 더 올바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거대 사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속적 사회는 종교라는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왔다. , 거대종교 덕에 거대 사회는 구성원 간의 협력과 신뢰를 이루었다. 이제 목표를 이루었으니 사다리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일까? 실제로 덴마크 같은 무신론적 사회에서는 거대종교의 역할을 정부가 감당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강해지면 종교는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미래에 종교는 사라질 것인가? 저자는 친사회적 거대 종교가 세속 제도나 정부보다 유리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들의 높은 출산율이라고 말한다. 사실 아직도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아직도 종교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종교로 귀의하는 자들도 여전히 많다. 아마도 종교 간의 갈등과, 종교와 세속적 삶의 방식과의 알력은 다음 세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p. 351). 

 

종교를 가진 자로서 매우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오강남 종교학 교수의 해제도 유익했다. 결국 종교의 기본은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 천국에 가고자 애쓰는 자는 진정한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일 것이다. 종교는 신앙인들에게 이기주의와 탐욕을 극복하고 도덕적으로 고결한 삶을 추구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타종교와 대립하기보다 같은 방향으로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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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다산책방, 2016) | 리뷰 카테고리 2016-10-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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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김기택 저
다산책방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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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인생길, 시가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을 체험한 김기택 시인, 그는 시에는 “신나는 즐거움, 슬픈 즐거움, 괴로운 즐거움, 지루한 즐거움, 무서운 즐거움”(pp. 9~10)이 있다고 말한다. 시를 통해 그는 지겹고 틀에 박힌 일상을 두근거리며 쳐다보게 되었단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그가 들려주는 시와 관련한 인생 이야기에서 나의 영혼은 정화되고 위로를 얻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 산문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학집배원’으로 임명받아 일년간 매주 월요일마다 인터넷망에서 시 편지를 배달한 것을 묶은 것이다. 목차를 보니 51편의 시 중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낯선 시(詩)에 기댄 시인(詩人)의 산문(散文)이 더 기대가 된다.

 

가을이니 ‘3부. 가을에 읽는 시’를 들추어 본다. 윤희섭의 <바람의 냄새>를 소개한 뒤, 김기택은 가을의 첫날을 냄새로 느낀다고 말한다. 가을의 냄새는 성장의 숨가쁨을 벗어나 여유롭게 내쉬는 호흡의 냄새란다. 가을바람의 냄새에는 세월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일까? 가을바람의 냄새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는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가을저녁 바람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래, 시(詩)를 통해 나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숨을 쉰다.

 

김혜순의 <잘 익은 사과>도 맛있다.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 … /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 … ”(p. 172). 김기택의 지적처럼, 이 시는 오감을 통해 사과가 걸어오는 말을 들려준다. 어제 저녁 아내가 깎아준 사과를 먹으며 나는 가을바람과 고향풍경을 오물거리며 온몸에 흡수했다. 가을에 먹는 사과는 내 영혼의 보약이다.

 

‘3부. 가을에 읽는 시’의 타이틀은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이다. 김기택은 박형준의 <사랑>을 실어놓고는 사랑은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일처럼 난해하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시인들의 시 일부를 언급한다. 이상의 <지비(지碑)>, 함민복의 <부부>, 장석남의 <묵집에서>, 윤제림의 <젓가락쓰기 혹은 사는 법>. 사랑이란 두부나 묵을 젓가락으로 붙잡는 것처럼 어려운 것인가? 그래서 사랑은 자주 깊은 슬픔을 열매로 맺는 것일까?

 

김기택의 말처럼 “슬픔에도 맛이 있다”(p. 237). 시인은 삶의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세월을 담아 향기로운 맛이 배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조은의 <등 뒤>에 배어있는 슬픔은 너무나 잘 익어 “눈없고 코없는 등으로도 눈물과 우는 얼굴의 주름과 어깨의 들먹거림이 선명하게 보일 것 같다”(p. 239)고 표현했다. 김기택의 산문은 시를 닮았다. 시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을에 읽는 시와 시인의 산문은 나의 가슴에 아련한 향수, 슬픔, 기쁨, 사랑, 추억을 가득 담아 주었다. 이 책,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잠 안 오는 밤 뒤적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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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드리지 「산을 옮기는 기도」 (넥서스, 2016) | 리뷰 카테고리 2016-10-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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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산을 옮기는 기도

존 엘드리지 저/김성웅 역
넥서스CROSS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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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기도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었는데, 기도에 대해 크게 도전받지 못했다. 읽을 때만 기도해야지 마음먹다가 결국 기도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엘드리지는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다. 저자 소개를 보니 프란시스 쉐퍼, 래리 크랩, 댄 알렌더의 지도를 받았단다. 신뢰가 간다. <산을 옮기는 기도>라는 책 제목 때문에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기도하라고 도전하는 책은 아닌지 의심했었는데, 기도에 대한 신선한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갈등, 이 세상의 골칫거리들, 아니 당신의 꿈, 욕망 그리고 환난이 당신을 기도하게 못한다면, 내가 지금 말하는 그 어떤 것도 그다지 호소력이 없을 것이다.”(p. 21). 마음이 뜨끔했다. 인생살이에 얼마나 많은 갈등, 골칫거리, 꿈, 환난이 있었는가. 그런 것들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기도한단 말인가! 기도하지 않는 나는 정말 믿음이 있는 것일까? 기도하라고 설득하지 않겠다는데 오히려 설득당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무기 사용법을 배우고자 하는 병사처럼”(p. 35) 기도를 배워보고 싶었다.

 

존 엘드리지는 시편의 저자들처럼 먼저 ‘마음의 외침’으로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마음의 외침은 꼭 슬프거나 고통스러워서 지르는 신음만이 아니다. 기쁨에 겨워 나오는 소리와 찬양도 마음의 외침인 것이다. 명심할 것은 그 외치는 감정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다양한 상황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몰아넣으신다. 그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을 사용하는 법”(p. 89)을 가르치신다. 저자는 힘 주어 말한다. “우리는 개입하고, 관계를 맺고, 변화시키도록 지어진 존재다. 우리는 산을 옮길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DNA다.”(p. 108). 나는 이전에 기도에 대해 이렇게 강력하게 표현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이 책은 “지금 당장” 기도하라고 강력히 도전한다. 기도에 대해 말하고 토론하고 사색하고 염려하면서도 정작 기도하는 일을 비껴가는 것, 이것보다 더 사탄의 전술에 속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한 길 가는 순례자처럼, 내 인생에 기도가 항상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되가 하자.

 

책 마지막에 두 개의 소박한 기도를 언급한다(p. 266).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와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행2:17, 20~21). 저자가 ‘소박하다’고 표현한 이 기도는 위대하다. 주님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것을 확신하고 신뢰하면 기도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도할 것이다. 책을 덮으며 즉각 기도한다. ”주님,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령을 부어 주사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오실 때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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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년 「질문하는 믿음」 (샘솟는기쁨, 2016) | 리뷰 카테고리 2016-10-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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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질문하는 믿음

김석년 저
샘솟는기쁨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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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니, 믿음에 관한 열 가지 질문이 흥미롭다.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프롤로그부터 매우 도전적이다. “세상은 한 번도 기독교를 시도한 적이 없다. 기독교에 대해 말들은 많이 했지만, 기독교를 진정으로 시도한 적은 없다”(마틴 로이드 존스). 참된 믿음이란 무엇이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부. 믿음에 관한 열 가지 질문’에서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예수 임마누엘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예수를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p. 25)라는 표현이 마음에 확 닿는다. 그렇다. 예수는 신앙의 본질이지 결코 수단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를 이용해 나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내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를 놓지 않으시고 사냥개처럼 추적하신 하나님의 사랑 덕이다. 따라서 믿음의 행복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데에 있다. 저자는 믿음의 본질, 근거, 동기, 목적, 내용, 연합, 훈련, 능력, 비전을 일일이 질문하고 친절하게 답한다.

 

개인적으로 ‘2부.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서 더 많은 도전을 받았다. 믿음에 관한 지식을 가지기보다 올바른 자의식을 가지란다. 그것은 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추구하는 삶이다. 소유를 추구하면 불만과 불안과 상실이 따라오고 존재를 추구하면 주님을 닮은 사랑의 삶을 살게 된다. 저자는 특히 산상수훈의 팔복에 초점을 맞추어 존재추구의 믿음 생활을 설명하면서 일보다 관계를, 성공보다 사명을, 리더십보다 팔로워십을, 경건보다 은혜를 추구하라고 도전한다. 특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3:5) 경건주의를 경계한다. 경건주의가 신앙인의 이중성을 낳았다는 것이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은혜에 반응하는 것인데, 경건주의는 순서가 뒤바뀌어 경건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함을 받은 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pp. 207~208)라는 본회퍼의 말에 마음이 뜨끔했다. 교회의 규례들(예배참석, 십일조, 소그룹 참여, 전도, 봉사 등)에 힘쓰는 것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사실 규례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직분보다 그리스도 십자가를 자랑하고, 사명보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책, 비록 작은 분량이지만 믿음의 본질과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너무나 소중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저자의 오랜 목회에서 나온 깊은 신앙이 느껴진다. 하루에도 수십번 자신은 죽고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믿으며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김목사님의 기도와 토마스 머튼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겠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성령이여! 임하소서! 주여, 뜻을 이루소서.”(p. 220). “제 모든 것을 주님 손에 맡깁니다. …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p.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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