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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바이북스, 2020) | 리뷰 카테고리 2020-11-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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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체성과 폭력

아마르티아 센 저/이상환,김지현 공역
바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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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할 때, 나는 수표를 입금하러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은행 창구 앞에서 자동차 창문을 열었습니다. 창구에 있는 약간 늙은 백인 여성에게 수표를 건넸는데, 그녀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수표도 이리저리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인이 큰 금액의 수표를 내민 것이 못마땅한 듯했습니다. 나는 그 여인에게서 동양인을 향한 경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동양인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책의 저자 아라르티아 센도 영국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 학장이었기에 그의 주소는 당연히 대학 학장 관사로 되어 있었습니다. 출입국 관리직원은 그가 학장과 가까운 친구인지 질문했답니다. 그 직원은 인도인이 영국 대학의 학장일 리가 없다는 선입관, 다시 말해 인도인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회적 정체성의 개념은 꽤나 복잡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차별과 폭력이 난무한 것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정체성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은 둘만 모이면 싸운다. 일본인은 돈밖에 모르는 경제적 동물이다.’ 이런 말들은 타자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인은 모두 이기주의자들입니까? 일본인들은 모두 돈밖에 모르는 자들입니까? 영국인과 인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서양인, 등은 서로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양한 소속 관계와 교제 관계 중에서 어떤 것에 우선을 두어야 할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독일의 나치 시대에 유대인들,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인도 카스트 제도 아래서의 천민 계급들이 그렇게 평가받았습니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주장할 자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제한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의 왜곡은 차별과 폭력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인간은 모두 동등하며, 동시에 인간은 모두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별, 고향, 종교, 정치적 성향, 경제력, 등 다양한 관계와 관점에서 자신을 이해합니다. 이런 것 중에 어느 하나만을 자신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타인에 대해서는 어느 한쪽 면만으로 바라봅니다. 타자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 때문에 지구상에 인종차별, 종교차별, 경제적 차별 등과 같은 차가운 차별과 이로 인한 분쟁과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입니다. 옳습니다. 문명 충돌론과 같은 주장 자체가 사회적 정체성의 왜곡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며,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차별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이 지구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와 다른 피부색, 언어,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와 포용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진영논리로 이해하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인식하는 사회는 차별과 갈등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정체성과 폭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개념, 정체성에 관해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이 땅의 정치인, 종교인, 사회 지도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땅의 평화와 희망찬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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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회 「윤리의 미래 - 좋은 삶」 (준평, 2020) | 리뷰 카테고리 2020-11-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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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윤리의 미래 “좋은 삶”

김인회 저
준평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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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뻔뻔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공평하지도 정의롭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의 저자 김인회는 서울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었고,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재직했습니다. 지금은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 형사법과 법조 윤리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조인이 윤리에 관한 책을 쓴 것은 법이 추구하는 정의와 공정 사회를 통해 윤리적인 좋은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윤리의 미래 ? 좋은 삶>는 개인의 좋은 삶, 공동체의 좋은 삶을 위해 윤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말합니다. 정의와 윤리 모두는 모두 개인과 공동체의 좋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하지만, 윤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윤리는 법보다 훨씬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개인의 인생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윤리는 대부분 관계에 관한 것, 즉 사회 공동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 과학, 정치, 법률 등의 가치에 윤리가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현대사회에서 윤리는 위기에 빠졌고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하지만 윤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을 말합니다. 그래서 5장에서 필수적인 윤리를 확보하고 발전시킬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나는 2장 윤리란 무엇인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윤리와 도덕은 거의 같은 것이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윤리는 제도에 더 가까운 개념이라서 경제, 과학, 정치, 법률, 사랑과 같은 다른 사회 운영원리와 비교할 때는 도덕이 아니라 윤리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어쨌든 윤리에는 여러 단계에서 여러 얼굴로 존재하는데, 제일 낮은 1단계는 법을 준수하고 범죄행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권력을 이용한 부패의 폐해를 말합니다. 부패는 반칙과 특권을 낳고 공정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의 2단계는 예의, 공손, 품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을 때 서로 충돌하며 신뢰가 무너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참된 대화는 사라집니다. 정치에 예의, 공손, 품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금 여당과 여당을 가릴 것 없이 막말과 욕설과 극단적으로 혐오스러운 표현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작태가 떠오릅니다. 이러니 어찌 이 나라가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희망찬 사회가 될 수 있나요? 윤리의 3단계는 존중, 공감, 신뢰입니다. 이런 가치는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윤리의 4단계는 정체성입니다. 저자는 윤리가 정체성에 닿아 있음을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설명합니다. 봉건사회에서 개인이 삼강오륜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체화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또 윤리에 관한 공리주의와 칸트주의의 대립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이해의 대립입니다. 윤리의 5단계는 자비와 사랑입니다. 윤리를 최대한 내면화하면 자비와 사랑이라는 영적 가치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헤매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윤리가 중요한 데, 현대는 왜 윤리 없는 행위가 판을 칩니까? 윤리 없는 경제생활이 편리하고 자유롭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대사회의 성공 공식이 윤리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윤리적으로 행동하면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은 윤리의 토대를 이루는 정의, 공정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정이 없으면 윤리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정치인과 법조인뿐 아니라 종교지도자와 경제지도자, 아니 좋은 삶과 좋은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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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다산의 마지막 습관」 (청림출판, 2020) | 리뷰 카테고리 2020-11-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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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저
청림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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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小學)을 통해 몸을 다스리는 길을 발견한 다산! 그를 따라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 사소한 일상을 위대하게 바꾸는 문장들을 마음에 새기고 습관으로 만들고 싶어, 경전을 읽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조윤제의 열렬한 독자입니다. 그의 책, <말공부>(흐름출판), <우아한 승부사>(21세기북스), <천년의 내공>(청림출판), <다산의 마지막 공부>(청림출판)을 읽었고, 이제 최신의 책 <다산의 마지막 습관>(청림출판)을 손에 잡았습니다. 동양고전에 정통한 저자는 이 책에서 다산 정약용이 <소학>에 집중해서 귀향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수신(修身)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실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 곳곳에 다산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여섯 꼭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입교(立敎) - 위학일익(爲學日益)’. ‘명륜(明倫) - 자승자강(自勝自强)’, ‘경신(敬身) - 독립불개(獨立不改)’, ‘계고(稽古) - 이대사소(以大事小)’, ‘가언(嘉言) - 붕정만리(鵬程萬里)’, ‘선행(善行) - 일일청한(一日淸閑)’. 이 여섯 꼭지 제목을 공부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배움이란 끝이 없으니 날마다 날마다 채우고자 배움에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쳐서 이겨야 올바른 선인의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말부터 단단히 단속함으로 자신의 몸가짐을 단단히 한다면, 그 단단한 몸가짐에서 단단한 마음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옛일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과 글의 내공을 갖추어야 합니다. 잘못된 삶의 자세는 오늘 고쳐야 합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깨끗하고 넉넉하게 살아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너무 넉넉하면 모두에게 부끄러워진다는 말이 마음에 닿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부끄러운 줄을 안다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 단숨에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닙니다. 습관을 들여 하루하루 조금씩 두고두고 읽어가면 자신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새롭게 고쳐가야 합니다. <소학>과 한문 공부는 덤입니다. 독서의 궁극적 목표는 지식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운 일상을 매일 새롭게 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올곧게 살아내는 데 있습니다. 왜 사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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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복 「한 컷의 인문학」 (웨일북, 2020) | 리뷰 카테고리 2020-11-2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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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 컷의 인문학

권기복 저
웨일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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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책은 창문 없는 집처럼 갑갑합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인문학적 지식을 한 컷의 그림으로 명쾌하게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기획된 책이 바로 <한 컷의 인문학>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수많은 이론과 주장들이 큰 소리를 내며 서로 충돌합니다. 이런 명제들을 곱씹어 보는 것이 인문학적 공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제들은 때로 너무 방대하거나 깊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합니다. 저자 권기복은 거대한 지식을 그림과 함께 명쾌하게 설명해 내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서문의 제목처럼, “인문학이라는 밥에 그림이라는 고명을 얹어서독자들에게 떠먹여 줍니다. 물론 꼭꼭 곱씹는 일은 독자의 몫이지만, 다양한 활자체와 활자 크기, 거의 모든 페이지에 있는 큼직한 만화가 지루함을 확 덜어내고 집중력을 높여 줍니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제일 먼저 들고 나옵니다. 현대 사회가 나르시시즘에 깊게 빠지게 된 연유, 소비사회에서 섹슈얼리티가 중요하게 된 이유, 오늘날 성평등과 동성애가 사회적 이슈가 된 까닭, 탈마법화된 사회에서 사랑이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많은 지식인의 주장을 소개하며 차근히 설명합니다. 2장은 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이 생기게 된 상황, 긍융의 탄생 과정, ‘금본위제가 사라지게 된 역사적 배경, 화폐제도의 허구성, 시장 논리가 삶의 영역을 침범할 때 일어나는 폐해 등을 말합니다. 3장은 자유주의, 4장은 마르크스주의, 5장은 공화주의를 설명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중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책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적 공부가 어렵다고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이 책으로 한 번 도전해 보세요. 마음에 남는 문장들도 꽤 많습니다.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p. 55).


사회적 신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영역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p. 131).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란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받기 위해 억지로 참아야 하는 고통이 되었으며, 노동에 매달리는 만큼 삶은 더욱더 비참해졌다.”(p. 215).


“‘민주는 권력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뜻이며, ‘공화는 이 권력이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쓰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 251).


진정한 공동체란 에게 공적 행위를 기대하는 사회다. 사람들이 스스로 나의 말과 행위에 사회의 명운이 달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p.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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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말의 사람 글의 사람」 (아침의 정원, 2020) | 리뷰 카테고리 2020-11-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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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말의 사람 글의 사람

이재영 저
아침의정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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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재영은 이채로운 이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교수인데, 글쓰기와 말하기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강연을 합니다.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을 찾아보니 여러 채널에서 노트 쓰기에 관한 강의가 있더군요. 이 책에서 저자는 말과 글에 관해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홀딱 반했습니다.


프롤로그에는 말과 글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말은 우리의 현재를 지속시켜 주고, 글은 우리의 시간을 영원으로 인도한다. 그러니 우리는 말과 글로 현재에 머물며 우리의 현재를 불변의 것으로 바꿀 수 있다”(p. 5).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말이 우리의 현재를 지속시켜 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2장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백록>의 저자 어거스틴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Dubito ergo sum)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존재와 관련해 시간에 대해서도 의심을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을 점령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 한 덩어리의 시간은 말이 끝남과 함께 과거로 흘러갑니다. 말을 하는 동안은 시간을 점령하여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을 하는 동안은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3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통해 말하기의 4요소(논리, 음성, 말투, 운율)를 설명하고 제5요소인 침묵을 언급합니다. 4장에서는 말의 사람들을 실례로 듭니다. 언어 조작의 선동가 히틀러 이야기부터 시작해 수사학으로 무장한 논쟁가 마르틴 루터, 소통의 달인 공자, 창조를 위한 위험한 말 폭풍의 대가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5장과 6장은 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마치 연속 강연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말의 힘과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깊이 깨닫게 한 독서였습니다. 저자가 서예 훈련의 비밀을 설명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서예는 임서(臨書) 수련인데, 임서 1단계는 형태를 그대로 본뜨는 형임(形臨)의 단계입니다. 임서 2단계는 형태를 본뜨는 것을 넘어 필의(筆意)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서 3단계는 자신만의 글을 뽑아내는 배임(背臨)의 단계입니다. 서예처럼 훌륭히 말하거나 글을 쓰려면 이런 단계를 거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좋은 생각 덩어리를 얼마나 오랜 시간 덩어리에 담아낼 것인가를 고민”(P. 273)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쌓아가고 이어가면서 자신만의 삶을 창조해 가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에 관해 깊은 사유하게 한 멋진 독서였습니다. 어떻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큰 깨달음과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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