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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소설] 워터릴리 - 이보라 | 기본 카테고리 2017-06-2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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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세트] 워터릴리 - 제로노블 025 (총2권/완결)

이보라 저
제로노블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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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로맨스 소설 중에서는 보기 드문, SF 분야의 작품이네요.
가상 시대물이나 판타지 등, 현대물이 아닌 모든 분야의 작품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SF 분야의 작품은 특히나 배경 설정이 중요하게 작용하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어디까지나 제 기준에서 말하는 거지만, 이 작품은 합격점을 줄만 해요.

이 작품은 현대 문명이 사그라든 이후의 미래 세계에 스팀 펑크적인 분위기를 차용함으로써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유전공학의 정수인 클론과, 먼 과거에서 끄집어내어 온듯한 증기 열차가 공존하는 세계죠.

물론 기본적인 틀에 대해서는, 굳이 따지고 들자면, 완전히 새로운 발상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확실하게 작가님의 손길이 더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이 만들어 낸 그 독특한 세계는,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구요.

이 작품의 세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님페아'예요.
그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역시나 인간의 사정에 의해 버림받은, 인간 형태의 클론으로부터 진화한 존재죠.
진화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이 결코 대적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갖게 되었구요.
인간이 가혹한 환경 하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이 유폐되었던 장소인 '워터릴리'에서, 당대의 인간들은 꿈꾸지도 못할 자신들만의 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인간을 하등한 존재로 여기면서요.

이 작품은 그런 배경 속에서, 인간인 여주인공 채차연과 님페아인 남주인공 레프 이바노비치 마야코프스키가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지구상의 모든 장소를 외울 정도로 지리학을 공부하고, 그 모든 장소를 직접 가보기를 꿈꾸는 여대생이었던 차연은, 인간들끼리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갑작스럽게 군인이 되어야 했어요.
차연은 인명을 빼앗아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삶을 힘겨워했고, 그로 인해 군과의 마찰이 생겼죠.
그 결과 가혹한 고문 끝에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되어 도망자로서의 삶을 살게 됐구요.

그리고 차연은 도피 중에 자신의 삶을 또 한번 바꿔버릴 만남을 갖게 돼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상대인 레프와, 차연의 존재 자체를 바꾸어버린 '악령'과의 만남이에요.

레프가 악령에게 먹힐 뻔한 차연을 구해주면서 두 사람은 공동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처음에 그 생활은 차연에게만 의미가 있는 생활이었어요.
님페아인 레프는 인간인 차연을, 동등한 존재가 아닌 애완동물 쯤으로 여겼을 뿐이거든요.
그나마 애완동물 정도로는 생각해 주는 것도, 좋게 봐줘서 그렇다는 거죠.

차연과 레프의 만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악령을 처치하는 고스트버스터 콤비라도 되려나 싶었던 초반부와,
차연에게 집착하는 남자 조연인 윤벽선과 대결하는 중반부와,
님페아와 인류간의 전쟁 위기를 저지하는 종반부까지 쭉 이어져요.
그러는 중에 레프는, 초반에 보여줬던 태도가 무색할 정도로, 한없이 차연에게 빠져버리구요.
물론 차연 역시, 레프만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레프에게 의지하고 레프를 사랑하게 되죠.

결론적으로, 매력적인 배경에 매력적인 인물들까지 더해진,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어요.
일단 레프는 로맨스 소설의 남주로 각광받을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춘 남자예요.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설정이라는 약점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느물거리는 성격이 보완해 주고 있구요.
그리고 차연은, 첫등장 때만 해도 약하디 약해서 주변에 폐만 끼치고 있을 사람으로 보였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의외로 외유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신의 이상을 추구함에 있어서, 막무가내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과 주변 상황을 어느 정도는 고려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구요.

다만 두 사람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가 둘이 있는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생사불명으로 남아있던 레프의 약혼자인 로즈 테이라와, 남조인 벽선이예요.
사실 로즈와 레프의 약혼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연과 레프의 마음이 진전됨에도 불구하고, 로즈와 얽힌 진실 때문인지, 그 상황은 그리 껄끄럽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그런데 벽선의 일만은 꽤 깊이 마음에 남아 버렸어요.

원래 저는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집착남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사람은 아주 싫어해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인정하지도 않구요.
이 작품 속의 벽선이 바로 그런 존재예요.
차연의 꿈을 꺽어 곁에 두겠다는 목적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의 가혹한 고문을 주도한 인물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벽선에게는 신경이 쓰였어요.
벽선이 차연을 마음에 담게 된 그 상황이 사소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애초의 목적과 수단에 혼동을 느끼고 뒤틀려버린 벽선이 안타까웠어요.
제가 싫어하는 방향의 집착임에도 불구하고, 벽선의 감정만은 사랑이었던 걸로 인정해주고 싶을 정도예요.

만약 벽선이 차연에 대해 조금만 덜 집착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뒤틀려버리기 전의 벽선은 차연을 애틋한 마음으로 아끼고 있었고, 차연 또한 벽선에 대해 호감을 품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벽선과 차연의 관계가 잘 풀렸다면, 차연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도망자의 신세가 되는 일도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랬다면 차연과 레프의 만남도 없었을 테고, 차연이 주도적으로 님페아와 인간의 전쟁 위기를 막아내는 일도 없었을 수도 있죠.
그 결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님페아에게 패배해서 더욱 힘든 삶을 살게 되거나 멸망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구요.
그런데, 그런 상황을 고려해 보아도 벽선과 차연이 애틋하게 사랑하기만 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들 정도로, 제게는 벽선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연과 레프의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건 아니에요.
레프에게는 벽선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고, 레프와 차연이 보여주는 유쾌하고 가벼운 모습들도 좋았거든요.
그 덕분에 이 작품 속의 배경 상황이나 그들이 겪어내는 일들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의 분위기는 대부분 가볍게 유지되구요.

사실, 자원이 고갈되고 오염이 심각한 미래의 지구 환경,
인간에게 버림받고 멸종의 위기까지 갔던 클론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자리잡게 되기까지의 님페아들의 비정한 역사,
님페아와 인간의 전쟁 위기 등,
따지고 보면 암울한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그런 암울함에서 느껴질 수 있는 무게를 가볍게 해 주는 것이 레프의 존재죠.

여유롭게 보이는 레프에 의해 주도되는 레프와 차연의 관계, 님페아들이 보여주는 인간과는 조금 다른 성향들, 현실적인 생활 공간이라기보다는 놀이공원에 가깝게 느껴지는 워터릴리의 환경 등이 합쳐져서, 심각함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이 작품의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러한 분위기가 무언가 균형이 맞지 않는듯한 이질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게는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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