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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로드라는 이름이 주는 불편함 | 기본 카테고리 2021-08-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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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피로드

윤성학 저
K북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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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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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로드]

제목이 주는 생경함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거시역사의 장구한 흐름 속에서 실크로드나 초원길(스텝로드)이 보여준 그 거대한 존재감과 

웅장한 서사들을 떠올리며 기대감이 부풀기도 했다.

허나 책을 다 읽은 후엔 오직 한가지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하다.

이 길을 과연  '모피로드'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사는 그 목적과 과정이 스페인의 아메리카대륙 정복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는데, 결국 모피를 얻기 위한 약탈과 살육의 연대기이며 시베리아 원주민에 대한 침탈과 식민화의 역사이다.

러시아에게 시베리아는 모피라는 고부가가치 재화를 거저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화수분 그 자체였는데, 그 땅에 살고 있던 120여개 부족 20여만명의 원주민들은 여전히 동물 뼈와 석기를 사용하는 미개한 노예들일 뿐이었고 이런 원주민들에게는 회유를 위한 가식과 위선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러시아는 폭력이 가진 효율성에 아무런 망설임없이 기댈 수 있었다.

이 자비없는 폭력은 결국 그 것이 수반하는 파괴의 비효율성이 효율성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통제 되기 시작했으나 시베리아 원주민의 운명은 모피를 위해 피부가죽이 벗겨진 채 씨가 마른 검은 담비나 북극여우, 해달 등의 동물들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떨어져버렸다.  

이런 참담한 역사를 품고있는, 피웅덩이와 뼈무더기로 이루어진 그 길을 그저 '모피로드'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것일까? 양방향의 교역로가 아닌 그저 일방향의 약탈로였던 길을 말이다.

만약 우리가 임진왜란전쟁에서 왜에게 정복당했다면 이 또한 일본이 고부가가치 상품이자 위신재인 도자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개척한 '세라믹 로드'라 불리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해진다. 

모피로드라는 이름은 학계에서 명명법에 따라 지은 가치중립적 명칭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탈과 폭압의 역사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에 의도 되었건 그렇지 않건 결과적으로 제국주의가 자행했던 가장 거대한 규모의 범죄가 은폐 되었다고 생각한다. 양자간 우열이 모든 것에 우선했던 지난세기의 과오를 딛고 이제 호혜의 미덕을 최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21세기 지성의 흐름에 맞게 모피로드라는 이름도 다시 명명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피로드의 역사에 대한 감상과 별개로, 저자는 이 모피로드가 대한민국의 국익에 미칠 이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1세기 러시아의 신 모피로드는 두 갈래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북극항로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이다. 러시아는 이 신 모피로드의 동쪽 끝에 닿아있는 아시아-태평양 경제권과 연계해 나날이 쇠퇴해가는 시베리아지역의 부흥과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하는 사정이 있으며 모피로드의 종착지에 위치한 우리나라도 이 길을 이용하면 유럽까지의 운송시간이 10여일 정도 단축된다. 허나 저자는 이 신 모피로드가 새로운 물류 네트워크의 한 축을 차지하기엔 아직 불안요소가 많은 점도 지적하며 다만 그 가능성까지 섣불리 경시하지는 말자는 정도의 소개로 마무리 하고 있다. 

책의 단점은 우선 다듬어 지지 않은 문장이 계속, 특히 책의 후반에 갈 수록 눈에 띄게 보인다는 점이다. 어느 책이든 오타나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모피로드]는 후반부로 갈 수록 다른 책에 비해 많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표지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요즘 출간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책들도 '리커버 특별판'으로 재출간 될 정도로 커버 디자인이 독자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나 역시 커버 디자인이나 책 제목의 폰트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가곤 하는데

[모피로드]의 커버는 책이 담고 있는 가치를 보여주기에 빈약한 디자인이라 아쉽다. 좀 더 무게있는 표지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허나 책 [모피로드]가 담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기에 숙독할 가치가 충분히 높다고 생각한다. 350페이지 정도의 적절한 분량에 시베리아의 역사는 물론 러시아와 한국의 접촉도 빠짐없이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크게 1.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2. 러시아와 한국 3. 신 모피로드와 한국 이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조선 효종때의 '나선정벌'로 기억하는 한국과 러시아와의 첫 조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그리고 조선말 고종과 민비가 의존했던 러시아제국의 입장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특히 굉장히 유익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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