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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물음에 대답하는 교회로의 회복 | 종교 2018-12-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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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육신적 교회

마이클 프로스트 저/최형근 역
새물결플러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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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 깊이 있는 선교적 교회를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이 필독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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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는 시드니 북쪽의 맨리에 "Small Boat Big Sea"라는 선교적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하여 목회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작은 예수들』(포이에마, 2009),『새로운 교회가 온다』(Ivp, 2009),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SFC, 2015) 등을 통하여 선교적 공동체의 필요성과 구체적 대안 등을 역설한 바 있다. 그의 글은 쉽고도 힘이 있다. 이는 그가 믿고 있는 바를 살아내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생명력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1장에서 4장에 걸쳐 현시대를 분석한다. 탈육신이라고 명명한 현시대는 어떤 하나의 세계관에 대한 헌신이나 충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사회로부터의 이탈과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대상화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게 거리를 만들어 우리와 그들의 생각을 분리한다. 이러한 대상화는 사람들을 비인격화하여 항상 무시하고 경시하며, 희생시키고 괴롭히는 것으로 귀결된다. 또한 불안정함과 가벼운 행위들, 스크린 문화와 가상 현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탈육신적 현상의 주요원인은 이원론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지배하는 몸 대 영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몸과 몸의 형태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이원론적인 토대로 인해서 우리의 몸과 정신/영혼 간의 단절이 일어난다. 이러한 단절은 도덕성의 영역에서 극대화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몸은 해방되어야 할 감옥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에서 인격이다(93)."


저자는 탈육신적인 시대의 풍토에 적절한 응답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그러한 응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는 철저히 구체화된 종교라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셨다. 내적 확신이나 느낌은 행동으로 드러날 때 가치가 있다. 또한 성육신은 예수를 따르는 것을 포함하며, 이는 지속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받는 것으로 확장된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가능한 빨리 세상에 오셨다가 인간을 고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과 우리 사이의 우정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143)."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몸으로 부딪히고, 함께 삶을 공유하셨다.


진정한 제자도란 무엇인가? 이는 우리의 지적 향상이 아니라, 핵심 욕구의 변화이다. 우리의 출발점은 세계관이라기보다는 욕구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K. A. 스미스(James K. A. Smith)의 Desiring the Kingdom을 적절하게 인용하며 요약한다. 결국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본질적인 요소는 사랑이며, 우리는 사랑에 따라서 행동한다. 사랑으로 행동할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은 '교회'라는 한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통합된 접근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예배하면서 다른 모든 영역을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낸시 머피(Nancy Murphy)의 "영적인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풍성하고 역동적인 연합으로의 초대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는 어떠한가? 탈육신적 충동은 우리의 선교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에서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행동주의를 보이는가하면, 교회와 세상은 점점 이원화되고, 복음전도는 점점 더 내면화되고 개인화된다. 우리의 선교가 복음을 진정으로 믿고 주변 이웃들의 삶에 깊숙히 개입해서 복음을 실천하는 겸손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근거해야 한다는 기독교 이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205).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 의무에 대해 복음의 조명을 구해야한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가 어떻게 드러나야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삶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사회 문제들에 정면으로 대응해야한다. 우리는 평화를 중재하며 이웃을 섬겨야한다(265)."


점점 개인화되고, 분리되며, 탈육신화되어 가는 이 시대 가운데 교회는 분명한 대답을 제시해야한다. 그것은 정답의 형태가 아니다.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며, 그 여정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의 삶이다. 여행객으로서 추상적이고 분리되어있는 모습이 아니라, 순례자와 나그네로서 참여하고 집중하며 경청하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의 삶 전체를 드려야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세계를 다스리신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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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격적 앎을 통한 참된 변화로 나아가기 | 종교 2018-12-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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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제임스 스미스 저/박세혁 역
IVP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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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방향으로 존재와 인격을 변화시키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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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은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더욱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가 모호했던 많은 크리스쳔들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정작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한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무기력한 듯 보였다. 더 많은 것을 알게되면 더 많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앎이 더해진다고해서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에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저자인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는 캘빈 칼리지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 철학자이다. 그는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논의를 뛰어 넘어, '예배'라는 관점으로 인간, 문화,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한 대안적인 기독교교육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지성을 위주로 논의되었다면, 새로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통합적 관점에서 인간의 욕구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관점이나 관념, 즉 지성적인 작용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한다. 즉 우리의 궁극적인 사랑을 '욕망'으로 표현한다면, 이러한 욕망은 우리에게 그저 전달되는 관점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서 '형성'되어진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전제에 따른다면 우리의 예배는 다른 차원의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즉 우리의 예전(예배)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하는 반복적인 실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를 제자로 훈련시키는 교육 방식이 된다.


사역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조차도 사고의 변화가 곧바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음을 경험했다. 좋은 교재나 강의 등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소그룹에서의 교제와 사랑, 관심과 지속적 만남 등이 훨씬 더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동안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던 사랑과 변화의 관계성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속시원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저자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사회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응은 지성적인 가르침에 매우 의존되어 있었다. 우리의 전 존재는 이미 세속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공격 혹은 감화? 등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교회는 대항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이끌려가는 모양새다. 더욱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경험과 감성 등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는 이전의 모습만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제임스 스미스는 이러한 세속 문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계 형성적 예배'를 제안하고 있다. 


온 몸으로 경험하며, 반복적으로 형성해가는 전인격적 앎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적으로 충족시켰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앞으로 이 책은 세계관 논의 뿐만 아니라 예배와 제자도, 하나님 나라 등의 굵직한 주제들을 위한 기본적 전제로서 매우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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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 종교 2018-12-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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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저/오광만 역
이레서원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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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베일리의 탁월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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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의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는 본래 Poet & Peasant의 번역서로 이전에 『시인과 농부』로 번역되었던 책이다. 저자 베일리 박사는 부친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선교사로 계셔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본인도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이집트,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사이프러스 등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중동에서의 오랜 생활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을 중동의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에 서구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왔던 것을 탈피하여, 신약성경이 쓰여졌고 읽혀졌던 그 때 당시의 상황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문맥 가운데서 성경을 읽어야만 성경의 원래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동에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주장이 단순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명제로 머물지 않게 해준다. 성경의 본문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여러 책 중 Poet & Peasant은 베일리 박사를 세상에 알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누가복음의 비유 중에서 네 개의 본문을 택해서 팔레스타인 농부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동의 농촌 문화와 더불어 이러한 비유들의 문학적 양식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이 비유들이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많은 논란과 다양한 견해가 있는 누가복음 16장 1-8절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자신의 해석학적 틀에서 명쾌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방법론의 문제를 다룬다. 2부는 1부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가지고 누가복음 예루살렘 여행 기사 속의 비유 네 편과 시 두 편을 분석한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1부에서 제시한 방법론이다. 베일리 박사가 비유 연구에 사용한 해석방법론은 "동양식 주해"다. 


이 방법론의 핵심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중동의 농경문화를 이해함에 있다. 이러한 이해가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함에 필수요소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동양어 역본들의 사용이다. 번역은 그 문화권의 정서를 반영한다. 그렇기에 베일리 박사는 아람어와 콥틱어 역본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변의 문화가 반영된 번역을 통해 세밀한 해석들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유의 문학적 구조이다. 이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강조한 부분이지만, 베일리 박사는 더욱 명쾌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유대인들의 삶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문학적 기법인 대구법과 수미상관법을 더 세밀하게 적용하고 발전시킨다.


이러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통해 저자는 누가복음 16:1-13, 11:5-13과 누가복음 15장을 분석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해석하고 적용했던 부분들도 있지만, 저자는 본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자신의 해석학적 방법을 하나하나 적용시킨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해석과 저서들이 있지만, 베일리 박사의 이 책은 필수적으로 구비해야할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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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 | 일반 2018-12-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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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

윤호,주은 공저
아토포스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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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역경보다 뛰어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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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통과 역경 가운데, 그것을 오롯이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는 잠시 감동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존재의 근간을 뒤흔들지는 못한다.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내 생각과 가치관의 일정부분을 변화시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르다. 결론없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분투하여 이겨낸 눈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이 안에는 저자의 아픔과 슬픔, 외로움과 치열함이 꿈틀대고 있다. 다름의 이유는 '공동체'다. '공동체'는 곧 '관계'의 이야기이며, '사랑'의 이야기이다. 


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은 개인적인 어려움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현실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제3자의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이다. 우리가 겪어야 할 미래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눈물은 나의 아픔이 된다. 또한 그와 그녀가 경험한 현실의 장벽은 비슷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공감과 위로가 된다. 


이 책은 내용 면에서도 독특하지만, 구성적인 측면에서도 새롭다. 두 명의 저자가 번갈아가면서 마치 대화하듯이 구성되어 있다. 서사적 진행이 아닌 관점을 달리한 구성을 채택한 책(대표적으로 '개미'와 '엄마를 부탁해' 등)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유기적이며, 촘촘하다.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그와 그녀는 어떠한 마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온다. '상대방의 마음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상대방의 상황과 상태, 마음 등이 고스란히 다음 장에서 표현되고 있다. 그러면서 더욱 풍성하고도 세심하게 내용이 파악된다. 


이 책은 전체적인 이야기의 진행을 두고 보면, 쉽고 재미있다. 그럼에도 한 문장, 한 문단에 들인 공과 깊이를 생각하면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단어 안에 내포된 의미를 충실하게 이해하는 선지식이 있다면 이 책을 더욱 의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각자가 이해하는 한계 안에서 다양한 층위가 있겠지만, 폭넓게 독자들을 아우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것은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을 것이며, 그 안에 숨어있는 사랑과 따뜻함 때문일 것이다.


숨이 막혀오는 이 사회에서, 대안없는 삶에 이리저리 치여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느정도라야 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몸이 망가진 채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혼자 있지 말라고..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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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성에 관한 최고의 책! | 종교 2018-12-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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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삼위일체와 교회

미로슬라브 볼프 저/황은영 역
새물결플러스 | 201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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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회의 삼위일체와 교회의 관계성에 관해 명료하게 정리한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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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프(Miroslav Volf)의 가장 큰 장점은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독해 능력일 것이다. 방대하고 폭넓은 텍스트를 다루면서도 핵심을 짚는다. 또한 그 텍스트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비판과 대안제시는 감탄을 자아내게한다. 자칫 철학과 인문학적 사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전혀 새로운 가치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할만한데, 그는 철저히 신학적 작업을 수행한다. 그는 결코 그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삼위일체 중심적이다. 그는 삼위일체의 영원한 페리코레시스적 교제 안에서 기독론과 성령론, 교회론을 재해석해낸다.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통찰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보여준다. 본 서평에서는 『삼위일체와 교회』의 모든 장을 다루지 않고, 핵심적인 장들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내용을 전개함에 있어 이후의 장들은 앞의 챕터들의 내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Ⅲ장 ‘교회의 교회성’에서는 교회론에서 다루어야 할 핵심적인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언급대로 교회성에 대한 질문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 즉 교회가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교회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 교회론은 다른 조직신학의 각론과 분리되지 않으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저자는 교회론은 구원론과 인간론, 삼위일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관점을 통해서만 온전한 교회론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론은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속적으로 고대한다. 한편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 사건과 성령 하나님의 보냄 이후에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그것을 드러내야한다.


저자는 교회성의 공통된 두 조건으로 성례전과 하나님의 백성의 현존을 말한다. 초기의 자유교회 전통은 여기에 그리스도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교회의 성서적 조직을 추가한다. 볼프는 이와 같이 최초의 침례교도인 존 스미스(John Smyth)의 신학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스미스의 사상을 자유교회 전통의 핵심적 사상으로 간주한다. 이후에도 볼프는 스미스와 Ⅰ,Ⅱ장의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와 지지울라스(John D. Zizioulas)의 교회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를 비교분석한다. 이는 곧 감독제와 자유교회에 대한 비교이다. 감독제와 자유교회의 가장 특이할 만한 차이점은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저자는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을 연결하는 주요한 통찰들을 제시한다. 특히 공동체적 신앙 고백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사안을 넘어서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차원임을 말한다. 교회적 발화의 객관적 수행과 교회의 모든 개인적 구성원들의 주관적 신앙을 연결시키는 통찰도 큰 공감을 일으킨다. 다만 교회의 존재에서 직임과 성례전의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에서 성례전에 비해 직임에 대한 분량이 적은 것이 아쉽다.


제Ⅴ장 ‘삼위일체와 교회’에서 볼프는 라칭거와 지지울라스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교회와 삼위일체 사이에 상응하는 지점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고 있다. 삼위일체적 개념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서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 상호관계성 등을 고찰할 수 있다. 즉, “삼위일체적 용어를 통해 보편화와 다수화 사이의 이원론을 피해가는 것이다(323).” 삼위일체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통해서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더욱 다양한 발전적 논의가 가능하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이미 삼위일체적 논의를 통해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물론 서방교회 전통에서 신적 본질의 통일성이 우선되고, 동방교회 전통에서는 삼위 인격의 삼중성이 우선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차이는 서방교회는 보편교회를 우선하고, 동방교회는 지역교회를 우선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신학적인 차이가 실제적인 현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교회 전통에서는 교회와 삼위일체의 상응 관계에 대한 개념은 발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학적 근거가 기독론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프는 자유교회의 교회론을 삼위일체적으로 재구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모든 유비에는 한계가 있지만, 추상적이고 명제화된 개념에 비해 유비는 더욱 풍성한 이해를 함에 있어 많은 기여를 한다. 교회론적 인격과 교제의 개념에 있어서도 우리는 삼위일체에 대한 유비를 통해 더욱 풍성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비록 인간 존재는 피조물적 방식으로만 하나님에 상응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점을 인정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 “교회적 교제는 언제나 인간 존재를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게 하는 세례와 그러한 교제가 완성되는 종말론적인 새 창조 사이에 있는 길에서 실현된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역사적 최소치와 종말론적 최대치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333). “우리의 교회에 대한 이해는 이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볼프는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관계를 삼위일체의 개념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라칭거로 대표되는 서방교회와 지지울라스로 대표되는 동방교회의 차이는 각각의 전통이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확연하게 구분된다. 우리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하며, 저자는 이를 ‘페리코레시스’의 개념을 통해 발전시키고 있다. 물론 삼위일체의 페리코레시스를 통해서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상관성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더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성령의 내주함’이 교회의 페리코레시스적 교제의 매우 주요한 근거로 제시하는데, 어떻게 성령의 내주함이 가능한지에 대한 더욱 구체적 설명이 있었다면(물론 논지를 벗어나는 우를 범할 수 있지만), 더욱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었을 것 같다. 


제 Ⅶ장에서 볼프는 교회의 ‘catholicity’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이 전체성을 지향하긴 하지만, 저마다의 특정한 방식을 따라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보편성’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정작 상대방의 교회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보편성을 잃어버렸다. 즉 보편성이라는 용어를 자신들의 교회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말처럼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논의는 항상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고자 노력할 때에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보편성’은 언제나 통일성과 다수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즉 전체성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통합과 차별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것이다. 결국 교회의 내적 문제임과 동시에 외적 문제인데, 이러한 외적 차원은 포용성과 배타성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편성의 문제는 양적 이해와 질적 이해로 분류되는데, 저자는 양적 이해는 교회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보지 않는다. 지리적 차원에서의 보편적 확장은 교회의 결정적 특질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보편성의 양적 이해를 비판한다. 결국 보편성은 질적 이해로 귀결되며, 이는 충만함(fullness)으로 표현될 수 있다. 구원의 충만함이 실현된 교회가 보편적임은 모두가 동의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볼프는 이를 종말론적 구도 안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하나님의 종말론적 새 창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보편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종말론적 전체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새 창조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영화롭게 된 백성들이 상호 내주하는 것이다(계 21-22장). 인간과 세계의 전체 역사는 심판에 의해 부정성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새 창조라는 포괄적 실체로 편입될 것이다. 새 창조는 따라서 그 시초로부터 계속된 창조세계 전체의 총괄갱신(recapitulation), 즉 하나님, 그분의 전체 백성, 전체 우주가 하나의 분화된 통일성을 구현할 전체성일 것이다. 그 분화된 통일성은 교제인데, 삼위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게 될(엡 1:10; 고전 15:28을 보라) 그러한 교제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전일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종말론적 전체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 전체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전일성은 결국 창조된 실제 전체를 위한 구원의 종말론적 충만함이 가지는 교회론적 차원이다.(p. 442)"



통일성은 각각의 독특성과 함께 가야하며, 교회는 이러한 이해를 잘 실현시키고 구현해야 할 것이다. 삼위 일체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전체 하나님의 백성과의 포괄적 관계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보편성뿐만 아니라 각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보편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이러한 하나됨의 핵심적 요소이며,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그동안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우리의 호소는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렀던 것 같다. 논리적인 근거가 많이 부족하여, 그만큼 설득도 쉽지 않았다. 볼프의 이러한 주장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의 관계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갖게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각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와 우주적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더불어 계속되는 질문은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 교회의 현실 가운데 어떻게 하나됨을 이룰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에서 탈피해서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하면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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