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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 김금희 | 2018-05-2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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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애의 마음

김금희 저
창비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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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잃었어도 폐기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필연적, 우연적 만남의 낭만 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기 전에 김금희 작가의 대표작인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너무 한낮의 연애>가 어두운 편이라 장편인 <경애의 마음>을 읽기가 살짝 걱정이 되었는데, 재밌게도 주인공들이 전작에 나오는 인물들과 성격과 분위기가 겹쳐지는데도 불구하고 <경애의 마음>은 훨씬 희망적이고 살포시 미소가 지어진다. 전작의 인물들이 강풍을 맞으며 벼랑 끝에 겨우 서 있는 듯 하다면, 이번 소설의 주인공들은 폭우에 흠뻑 젖고 쓰러져 지독한 감기도 걸렸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로 걸어가는 것 같다.

 <경애의 마음>은 주인공 경애와 상수가 서로 얼마나 연이 닿아있었는지 마치 퍼즐을 짜맞추어 나가듯이 이야기를 구성한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었고,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고, 사랑에 관한 속대화도 주고 받았다. 작가는 보따리에서 떡 하나씩 꺼내주는 것처럼 그들의 인연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상수가 흘리듯 말한 이야기 속에서 경애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경애의 기억 속에서 상수가 스쳐 지나간 건 어떤 일이었는지,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의 만남을 자꾸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소설이 끝났다.

 이번 책에도 인물들은 1999년 즈음의 사람들이다. 주인공 경애와 상수는 그때 학교를 다녔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들 사이에는 그들이 모르던 다른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1999년 일어난 한 화재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 화재는 여러모로 욕 나오며 분노하게 하는 원인과 결과, 뒷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고는 했던 일이라 더욱 그러하다.) 경애는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여러 번 넘어진 아이였다. 큰 사고에서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헤어진 남자가 유부남이 되었어도 그와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했다. 밀턴의 '실락원'에 나온, 자신을 존재하게 한 것에 대해 창조주에게 원망하듯 묻던 구절을 인용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 애저녁에 버렸어야하는 것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상수는 번듯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가 가진 결핍은 컸다. 오래 아팠던 엄마를 떠나보내고 하나 밖에 없는 친구를 잃고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의 형은 다른 이를 때리고 소리지르며 분노를 발산했지만, 상수는 차라리 울음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상상으로 여지를 채우는 사람이다.

<경애의 마음>은 두 사람이 죽음과 상실을 어떻게 견뎌내며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자신이 파괴되었다고 여기고, 용서할 수 없이 화가 나지만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마음이라든지, 그런 사고가 일어나게 만든 창조주를 원망한다든지, 머리도 못 감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몇 년 전 상실을 겪으며 내 마음 한 구석이 망가져버렸고, 다시는 고치지 못하게 부서졌다고 생각했던 터라 공감했다.

 상수와 경애가 만나게 된 사정에는 로맨스라고는 조금도 없지만, <경애의 마음>은 낭만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고독하게 간직하다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상수의 모습에서 낭만을, 사랑의 상대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한 경애의 모습에서 낭만을 느꼈다. 진심은 통한다 - 솔직한 마음이 성난 군중을 가라앉히는 모습에서 낭만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다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건, 역시 낭만적이지 않은가? <경애의 마음>은 E가 말한 것처럼 필연과 우연이 적절히 섞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필연과 우연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운명적이고 낭만적이다.

 주인공의 이름 중 경애는 敬愛 공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책에서도 경애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인간에 대한 경애'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전작에도 나이 많고 기술을 익혔지만 현재는 밀려나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있는 인물이 있는데, 이 책에도 조선생이 그런 인물로 나온다. 원칙을 고수하는 뒷방 늙은이같은 존재지만, 그가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잠시 등장했던 노숙자 여인 역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불쌍하다'고 치부하고 넘길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술을 마시러 호프집에 간 청소년이라고 해도 억울한 죽음 앞에서 비행소년이라고 낙인찍고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경받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공장 부속품처럼 사람을 쓰고 버리는 시대라지만 사람은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참, 상수는 성을 붙이면 공상수라서 작가가 '공상'에서 따왔을지 궁금하다.)

 소설 곳곳에 음악과 영화를 배치한 것이 좋았는데, 내가 그 시절 사람이라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Best That You Can Do라는 영화의 ost 가사가 좋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랑에 빠지는 거라는. 그건 내 경험과도 맞닿아있다. 죽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나면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지금 내게 남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을 때, 온힘을 다해 사랑해야지. 경애와 상수가 그들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그들이 더 이상 외롭고 괴롭지 않을 것 같아서 두 다리 뻗고 잠들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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