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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외계인 - 박연철 | 2019-04-29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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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안녕! 외계인

박연철 글그림
시공주니어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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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자세히 관찰하여 발견한 외계인 친구들. 기발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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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심심해.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그런 아이들에게 '외계인 한 번 만나볼래?'하며 건내볼 책이 있다.


<안녕! 외계인>은 그림책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로 유명한 박연철 작가의 그림책이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의 그림과 내용, 모두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이번에 출간된 <안녕! 외계인>도 역시 보통 그림과 보통 내용이 아니다. 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진짜 진짜 외계인이라니.



처음 표지를 보고 책장을 넘겼을 때, 그림 중간 중간에 그려진 기다란 선들에 퍽 당황했다. 우리말에서 모음을 길게 늘어뜨린 형태인데 보고 있자니 어쩐지 눈이 어지럽다. 오징어 외계인인가? 하고 농담하기에 싱거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그림에 대한 호불호는 강할 것 같다.





한 외계인 아이가 친구를 찾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은 혼자 있기 싫은데 엄마, 아빠가 맨날 바빠서 자기랑 안 놀아준다며 불평을 한다. 아마 책을 읽는 많은 아이들이 맞아, 맞아 하며 옆에 있는 부모를 한 번 힐끗, 혹은 대놓고 쳐다볼 것이다. (웃음)

외계인 아이는 지구에서 친구를 찾는데, 친구 찾기가 쉽지 않다.






외계인 아이에게는 지구인이 외계인이다. 아이가 눈 동그란 지구인에게 '안녕! 외계인'하고 반갑게 인사하며 같이 놀자고 제안한다.



앗, 그런데 그 지구인이 알고보니 달걀 프라이다. 하하



<안녕! 외계인>은 이렇게 그림자처럼 흑백 처리한 그림으로 먼저 추측하게 하고, 다음 장에 흐린 사진으로 반전 정체를 제시하며 전개된다. 달걀 프라이말고도 자동차나 등대, 피라미드 등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한 번은 무려 변기까지 등장한다. 자동차가, 등대가, 변기가 정체를 밝히기 전에 어떤 그림자 그림으로 소개되는지 살펴보면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참으로 기발하다.


일상의 평범한 것을 전혀 새로운 외계인으로 만들어 냈다.


한 쪽에 등장하는 문장은 한두 개이고 반복적인 구조이지만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제법 논리적인 사고와 표현력을 필요로 하기때문에 그림책을 제대로 즐기려면 너무 어린 아기들보다는 말을 잘 하는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생까지 적절해보인다. 처음 읽을 때는 그림자 그림을 보며 아이와 '이 지구인은 사실은 무엇일까? 누구일까?'처럼 정체 맞추기 놀이를 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우리 주변에서 외계인 아이가 헷갈릴 수 있는 '지구인'을 찾는 놀이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더 나아가면 엄마가 그림을 그리고, 아이는 외계인이 되어 '안녕! 외계인!'하고 외치며 그림을 보고 정체를 맞추는 놀이를 해도 재미있겠다. 아이가 그리기에 능숙하거나 그리기를 좋아하면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엄마가 맞추고 다시 아이가 설명하는 구조로 책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집만의 <안녕! 외계인> 책을 만들어도 재밌겠다. 공기청정기 외계인, 진공청소기 외계인, 수도꼭지 외계인 등......


외계인 아이는 지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지만, 이 외계인들조차 다들 하는 일로 바빠서 엄마, 아빠처럼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다. 아이는 지구에서 외계인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 가정이라는 품을 떠나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라는 더 큰 세상으로 떠나야 한다. 그곳은 마치 외계의 별처럼 낯선 곳. 하지만 내 아이에게도 그 시간이 왔을 때, 아이가 <안녕! 외계인> 속 주인공처럼 밝게 웃는 얼굴로 '안녕!'을 외치며 친구를 찾기를, 그리고 마침내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서 새롭고도 즐거운 관계를 맺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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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 2019-04-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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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리커버 에디션)

고수리 저
수오서재 | 201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자신과 청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글쓰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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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는 분이 카카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브런치 글을 본 적은 없지만 브런치가 유명한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렸다. 그래서 이번에 수오서재에서 고수리 작가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가 나왔을 때, '카카오 브런치 누적 조회수 200만!'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책이나 옷, 머리 모양 등을 선택할 때 유행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누가 뭘 했다더라, 많이 팔렸더라 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웬일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가 뭔지 호기심이 동했나보다. 게다가 제목이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야 마는 존재. 겨울철 편의점 앞에서 김 나오는 호빵처럼 따뜻한 온기는 언제나 사람을 이끄는 법이다. 저자가 나도 모르게 눈물 흘리고는 했던 KBS 인간극장의 작가 출신이라는 것도 우호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는 작가 고수리가 살아온 개인사가 많이 담긴 에세이다. 그녀는 한창 예민했을 청소년기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온전히 사랑을 주며 편이 되어주는 엄마가 있었고, 모른 척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던 사람들이 있었고, 오히려 모른 척 해주어 그녀의 부끄러움을 감싸준 친구들이 있었다. 한때는 차라리 버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그녀를 살게 하는 글쓰기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괜찮다고, 이대로 쭉 걸어가면 된다고 말하며, 자신이 깨달은 행복의 작은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알려준다.


몇몇 문장이 예쁘고 따뜻하다.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순간에 붙잡힌다 해도 좋을 일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21쪽)


어른이 된 나는 우리 사는 세상이 다정하다고 믿는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옆자리 사람이 따스하다고 여긴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관공서에서, 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 잔잔한 애정을 느낀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우리는 사실, 누군가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신일지도, 무표정 속에 날개를 숨기고 걷는 천사일지도 모르니까. (39쪽)


그런 슬픔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눈물을 흘리며 견딜 수밖에. 녹아내리길 기다릴 수밖에. 그래도 엄마 말이 맞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졌으니까. 다행히도 나는 슬플 때 제대로 슬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42쪽)


행복은 견뎌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행복은 오늘 이 순간에만 반짝이는 조각 같은 것. 일단 잡아야 했다. 즐겨야 했다. 기뻐해야 했다. 아주 마음껏. (146쪽)



그녀의 기억이나 일상을 담은 짧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글이 쉬이 읽힌다. 무거운 가정사를 다루기도 했지만, 학교 방송반 시절의 가을 바람 떠오르는 기분 좋은 일이나 비오는 날 따뜻하게 먹었던 잔치 국수 이야기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20~30대 초반 청년들이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사랑으로 유년시절을 자라났거나, 청소년기를 벗어나 스스로 일어서야 하지만, 여전히 세상이 무섭고 명확하지 않은 미래에 조급하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골목길에서, 화장실에서 서러운 울음을 삼켜야했던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가 다독이며 건내는 위로가 각별히 다정하게 느껴질 것이다.


비록 나는 작가의 '괜찮다, 그대로 계속 가도 된다, 혹은 지금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어도 된다'(158~159쪽)는 말이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젊기 때문이며 내 '생각'이 나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현재에 집중하고, 주변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는 그녀의 모습이 좋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 소중함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미안해 하고 고마워 해야 한다. 느껴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추운 옥탑방에서 커다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저자의 어머니가 한지로 커튼 만드셨던 이야기이다. 커튼을 살 돈이 없어 한지에 시를 써서 붙이셨다는데, 물질적으로는 가난하나 정신이 풍요로운 분이라고 느꼈다.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시를 쓴 종이를 창에 붙여 추위를 피하는 기억이라니. 한지 커튼이 바람은 다 못 막았겠지만, 바람도 엄마에게서 아이에게로 문학에 대한 사랑과 문학으로 어려움을 버텨나갈 힘이 내려가는 걸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실질적인 힘이다. 시가 나오는 국어 문제집을 사주는 것보다 글이 주는 위로가 몸에 제대로 새겨졌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와 김용택 시인의 '꽃'이 인용된 것도 환호하게 했다.






덧1. 작가의 아빠와 글쓰기의 숙명을 다룬 이야기는 지난 달에 읽은 만화책 <올해의 미숙>이 떠올랐다. 거기에서는 아빠가 시인이었다.


덧2. 편집상 여러 새로운 시도가 감각적이기는 하나 가독성면에서는 조금 불편했다. 세로 목차나 세로 쪽수 표시보다는 가로 목차와 쪽수 표시가 알아보기 쉽다. 위아래 용지 여백을 줄이고 글씨를 더 키웠다면 읽기에 더 용이했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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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 W. G. 제발트 | 2019-04-27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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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저/이재영 역
창비 | 201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몰락한 문명 속을 방황하며 인간성 상실을 슬퍼하는, 황량한 현재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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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중 토성은 원래 서양에서 멜랑콜리를 의미하는 행성이라는 것만 알고 <토성의 고리>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우울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예상은 했는데,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서술하는 방식이 어지럽고,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무거움때문에 글을 읽어나가기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W. G. 제발트 (Sebald)는 독일 출신 작가로 영국으로 이주하여 독일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생전 <이민자들>(1992), <토성의 고리>(1995)를 포함한 4편의 소설과 다수의 에세이를 남겼다. <토성의 고리>는 그 중 세 번째 소설이다. 소설의 화자가 영국을 순례하며 경험한 것을 글로 출판한 듯한 책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작가가 장치한 허구가 뒤섞여 그 경계가 모호하다.


<토성의 고리>의 화자인 '나'는 문학 작품, 작가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독일 및 네덜란드 등 다양한 나라를 다녀왔다. 실제 저자인 제발트와 배경이 겹치는 인물이라서 읽는 내내 제발트 자신의 여행기처럼 여겨졌다. '나'는 1992년 여름이 끝난 후 영국 도보여행을 다녀와서 파괴의 흔적들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결국 중병에 걸려 입원을 하고 위독한 와중에도 그는 머리 속으로 이전의 여행에 대한 기록을 쓰기 시작하고, 퇴원 후 메모를 모아 여행기를 작성한다.


그가 1장에서 제일 처음 서술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이자 글의 요약이다.


영국 도보 여행 중 목격한 파괴의 흔적들.


주인공이 영국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그는 멸망과 죽음의 잔해물만 만나게 된다. 고풍스럽고 근사했던 써머레이튼 저택은 관광상품으로 공개 중이지만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에 쪼그라든 것처럼 보인다. 그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빛나던 때를 영화필름처럼 되감기하여 자꾸 돌려보는 사람들이다. 한때 개체수가 너무 늘어서 자신의 과잉으로 질식사하기까지 했던 청어떼는 현재 찾아보기 어려우며, 환경 파괴로 기형으로 태어나는 동물들도 많아졌다.


그는 쇠퇴한 곳들을 바라보며 끔찍한 역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베르겐-벨젠 유대인 수용소가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를, 크로아티아의 보스니아 인종청소를, 벨기에에 잔혹하게 착취당했던 콩고를, 중국 태평천국의 난을 떠올린다. 게다가 이루 말하기 어려운 잔학한 학살과 죽음 가운데에서도 쿠르트 발트하임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히 움직이는 자가 UN 과 오스트리아의 수장이 되는 기가 찬 일도 발생한다는 것도 언급한다.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목숨을 물건보다 하찮게 버리고, 기계처럼 이용할까. 그리고 천하를 손 안에 움켜쥐었던 서태후가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몰락'이란 어느 한 순간 일어나는 거구나.


'나'가 여행을 하며 마음의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얻었던 것은, 그가 목격한 문명의 쇠퇴와 인간성의 상실 등 다시는 되찾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괴로움과 죄책감, 연민 때문일 것이다. 또 앞으로도 희망 없는 세상에서 버텨야 한다는 좌절감과 불안때문이 아닐까.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259쪽)


<토성의 고리> 말머리에는 아래처럼 토성의 고리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 』


토성의 고리는 이미 파괴되어 남은 파편들이지만, 토성의 중력때문에 더 멀어지지도 못하고 여전히 토성 주위를 맴돌고 있다. 예전의 아름답던 달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나' 역시 토성을 벗어날 수 없는 고리처럼 세상에 묶이고 폐허에 둘러싸여 괴로워한다.


그러나.


책 속에서 토마스 브라운이 애벌레나 나방에서 비밀스러운 환생 능력의 흔적으로 찾으려 노력하듯이(37쪽), '나'처럼 파멸과 상실을 발견하고 이를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직 세상은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그냥 책을 덥기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조심스럽게 반문해본다. 토성의 고리는 태양계에서 토성을 가장 아름답고 멋진 행성으로 만들어주는 장식이라고, 스스로에게 억지 위로를 해본다.



덧1.

<토성의 고리>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 잠시 떠올랐다. 처음에는 노집사가 첫 여행을 하며 쇠락해져가는 영국의 현재 모습을 보며 과거의 고고했던 기억이나 전쟁을 상기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남아있는 나날>에서는 여전히 묵묵히 앞으로 걸어나가는 발걸음이 있다면, <토성의 고리>는 아무리 빙글빙글 돌아봐도 광활하게 펼쳐진 폐허만이 존재할 뿐이다.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주제도 다르다.


덧2.

주인공의 지인인 재닌 데이킨스의 책상에 대한 묘사가 꼭 내 방을 보는 것만 같아서 유일하게 편하게 웃었다.


그 사무실에는 강의를 위한 메모와 편지, 온갖 종류의 문서가 엄청나게 널브러져 있어서 종이의 홍수에 파묻힌 기분이엇다. 그 놀라운 종이의 집적이 시작된 곳이 집중된 곳이기도 한 책상 위에는 차츰 산과 계곡이 있는 종이로 이루어진 번듯한 풍경이 생겨나쓴데, 이 풍경의 가장자리는 바다를 만난 빙하처럼 뚝 끊어졌고, 그 주위의 바닥에는 은연중에 사무실 한가운데로 이동해가는 새로운 퇴적층이 형성되었다. 책상 위에 끝도 없이 쌓여만가는 종이때문에 재닌이 다른 책상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게 된 것도 벌써 여러해 전의 일이다. 책상을 옮길 때마다 비슷한 축적과정이 반복되었는데, 이 책상들은 종이로 이루어진 재닌의 우주의 후기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셈이었다. (16쪽)


그녀는 얼핏 보기에는 자신의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어지럽게 놓인 것 같겠지만 실은 완성된, 혹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질서를 갖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종이나 책 혹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할 때 대개 재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 (17쪽)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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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사회 기사 위에 떨어진 눈물로 위로하다 | 2019-04-2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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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 쇳물 쓰지 마라 (리커버 에디션)

제페토 저
수오서재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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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사회 기사 위에 떨어진 눈물로 위로하는 진심어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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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뉴스 댓글을 캡쳐한 사진을 봤다. 우리나라 사회면 뉴스, 기사글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시로 적어 댓글을 남긴 것이다. 그 시를 보고 어찌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래는 내가 기사 원문을 찾아 캡쳐한 사진이다.




기사 원문

https://news.v.daum.net/v/20100907214614352




시인은 많은 기사에 댓글로 시를 남겼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제페토라는 별명을 사용하는 그는 끝내 자신의 본명과 같은 신상명세를 밝히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남긴 시들과 블로그의 글을 모아 시집을 출간하였다. 2016년도에 출간한 책을 나는 2019년에 읽었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래도 이제라도 읽어서 참 다행이다.


표제시 '그 쇳물 쓰지마라'를 다시 읽었다.

신문이라면 사회면 구석에 작게 몇 줄로 남겨졌을 기사다. 인터넷 뉴스이니 사람들이 제목이라도 많이 눌러보았을까. '저런, 안됐다'하고 넘어가버렸을지 모를 그 기사에 시인은 온몸으로 같이 울어주었다.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진 청년 대신 원통함을 호소하며, 사람 목숨 앗아간 쇳물은 그의 얼굴이나 그려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사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려준다.


그의 위로는 힘들게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 외로운 독거 노인, 가엷게 책상으로 몰리는 아이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향한다. 나아가 인간에게 희생된 곰 모자, 고릴라, 돌고래 등 동물들도 어루만진다. 내가 스쳐지나갔을 우리나라, 혹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 사건, 사고들을 시인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시집을 읽으며 내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동안 몰랐던 역사, 사회의 뒷모습을 알게 되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참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시도 가슴에 닿았지만, 소설보다 더 기가막힌 사연을 담은 기사에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과학 기사나 하다못해 날씨에 관한 기상 예보를 보고도 시를 썼기 때문에 모든 시가 서럽고 슬프지는 않다. 운명의 남자와 재회하기 위해 14년 간 사람을 찾아 다니는 여인을 응원하는 시도 있다.



필연을 믿으며


               제페토


세상이 생겨나던 일

우주 양쪽 끝에서

서로를 향해

바늘 한 쌍이 출발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허공에서 바늘 끝은

맞부딪힐 것이고

당신은 불꽃에 데일 것만을

염려하면 됩니다.

우리, 확률 같은 얘기는

하지 맙시다.


사회면 기사가 대체적으로 그러하듯 시집에는 씁쓸한 기운이 맴도는 기사와 시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온갖 비극을 다 만나고도 시인은 아직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서문에서 절망과 혐오가 가득한 아수라장 같은 세계에서도 봄꽃과 첫눈에 감사하고, 타인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소방관과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는 성자를 보며 살아갈 명분과 희망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의 시들도 좋지만, 책 앞쪽의 서문이 참 따뜻하고 감동적이어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댓글시인 제페토는 이런 마음으로 시를 썼다고 한다. 평범한 단어들이지만, 시인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읽자마자 내 마음에 새겨져서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속으로 자꾸 되뇌이게 된다.


나는 바늘이다. 찌르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고르고 골라야지. 살펴야겠다.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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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개가 팔팔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면 | 2019-04-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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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개다

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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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알사탕의 프리퀄. 노견 구슬이가 아직 어린 강아지일 때, 동동이네 집에 와서 벌어지는, 그리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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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이 개인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지만, 특히 <나는 개다>는 개인적인 감정을 듬뿍 담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서평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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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작가님이 신작을 내셨다. 제목은 <나는 개다>이다.


나는 몹시 흥분하고 말았다. 두 가지 이유때문인데, 첫 번째는 내가 참 좋아하는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에 나오는 노견, 구슬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알사탕>에서 소년 동동이의 단짝 구슬이는 나이가 많아서 거동이 쉽지 않다. 나는 <알사탕>을 읽을 때 구슬이와 안녕하게 될까봐 무척 조마조마하여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나는 개다>는 <알사탕> 전의 이야기, 구슬이가 처음 동동이네 집에 왔을 때를 다룬다.

내가 <나는 개다>의 출간 소식을 듣고 흥분했던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몇 년 전 오랫동안 키우던 개를 하늘로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우리집에 와서, 직장 생활 10년을 할 때까지 나와 함께 했던 개다. 주변에서는 그 정도면 엄청 장수했다며 위로했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은 안다. 그들의 시간이 우리보다 짧은 것은 납득하기도, 극복하기도 어려운 비극이다.

안타깝게도 내게 남은, 우리집 개의 가장 최근의 기억은 나이들어 앞도 못 보고, 귀도 안 들리던 노견의 모습이다. 그런데 <알사탕>에서 나이 많던 구슬이의 어릴 적 모습을 담은 <나는 개다>가 출간되었다니 두 손 들어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개다>의 내용은 단순하다. 구슬이가 어떻게 동동이네 집에 오게 되었는지, 구슬이는 어릴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준다. 백희나 작가가 그동안 <알사탕>이나 <장수탕 선녀님>, <이상한 손님>에서 보여주던 기승전결이 확실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가 단편적으로 그려진다. 외출한 가족들을 기다리는 구슬이, 산책 나가려고 기대하는 구슬이, 과자 먹고 신난 구슬이, 사고 치고 아빠한테 혼나는 구슬이까지 구슬이의 여러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짤막한 이야기들을 연이어 붙여놓은 터라 얼핏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구조다. 나는 그 와중에 반전도 있고, 마지막에는 특유의 감동마저 느끼게 하는 백희나 작가의 힘에 감탄했다. 

큰 위로가 되었다.

구슬이가 하염없이 가족들을 기다리는 장면이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아니 반갑게 꼬리치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도 눈물이 났다. 이불에 실례하는 구슬이도 참 익숙하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났다..

그래, 우리집 개도 그런 때가 있었다. '아이고, 정신없어.'하고 외칠 정도로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소리 내고, 사고를 치고, 내게 안겼다. 떠나기 전 몇 년을 너무도 조용히, 천천히 움직이며, 마지막에는 그저 방석깔고 누워있기만 했지만, 우리집 개도 어리고 기운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얼굴만 봐도 너도 웃고 있구나를 알 수 있던 그 입꼬리. 쫑긋 선 귀.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꼬리는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붕붕 흔들고 있겠지.

 

 

 

동동이가 과자 먹는 날은 구슬이도 파티하는 날이다. 내가 과일 먹을 때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앞발로 나를 툭툭 건드리던 우리집 개가 보고 싶다.

 

나는 <나는 개다>가 노견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표지를 다시 한 번 본다. 책 안의 내용은 온통 구슬이의 어린 시절을 다루었지만, 책 표지는 구슬이가 나이 든 <알사탕> 때의 모습이다. 개 키워 본 사람은 앉은 자세만 보고도 안다. 다리가 불편한 노견은 똑바로 앉지 못하고 저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앉는다. 

고맙다. 그리운 시절이 다시 떠오른다.

노견을 키우는 사람에게, 혹은 노견을 키웠던 사람에게 말하는 듯 하다.

'당신의 개도 이런 때가 있었어요.'

'이제 기억나요?'


'그러니 웃어요. 당신의 개도 미소지을 거예요.'



 

덧1.

혹은 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너도 이랬어. 발랄했어. 기운이 넘쳤어. 그러나 그때도 나중에도 너는 언제나 사랑스러웠어. 내게 와줘서 고마워. 계속 기억할게. 사랑해.'

덧2.

<알사탕> 속에 <나는 개다> 표지와 똑같은 구슬이 얼굴이 나오는데, 같은 인형을 사용한 것인지 궁금하다.

덧3.

백희나 작가님은 보통 책 앞이나 뒤에 아이들에게 바치는 문구를 남기는데, 이번에는 반려견들에게 남겼다. 이렇게 사랑하는 존재를 아름답게 추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참 축복받은 일이다.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덧4.

'강아지' 대신에 '개'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좋다. 요즘 '개'는 욕설이나 값싼 강조의 의미로만 사용되는 듯 해서 아쉽다.

덧5.

출판사에서 예쁜 카드를 함께 보내주셨다. 고맙습니다.


그림도 문구도 내게는 의미있게 다가와서 또 뭉클했다. 미소도 지었다.

조금 쌀쌀했던 계절, 우리 아빠가 코트 주머니에 넣어서 데려왔던 우리집 개.

그렇게 가족이 되었더랬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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