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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은 나와 다르지 않다 | 2019-08-3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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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저
창비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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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리뷰 제목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이라고 규정짓는 것부터가 나와 그의 경계선을 긋는 것이니.

 

<대도시의 사랑법>은 2019 젊은작가상 대상작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포함하여 전부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집이다. 각 단편의 주인공은 '영'으로 88년생 게이인데, 털 많고 뚱뚱한 작가로 설정되어 있다. 박상영 작가의 실제 겉모습이나 나이가 저절로 떠오르는 설정이라서 그 능청스러움이 흥미롭다. 읽다보면 그것이 뻔뻔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투영시키면서 더 쉽게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임을 느끼지만 말이다. 연작의 '영'들은 다른 인물일 수도 있지만, 같은 인물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고 마치 나처럼 읽힌다.


연작소설이 실린 순서와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재희
2.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3. 대도시의 사랑법
4. 늦은 우기의 바캉스

'재희'
동성애자 남자와 이성애자 여자의 우정과 사랑을 다루었다. 무분별한 섹스와 동거, 임신, 낙태 등 소재가 자극적이고 파격적입니다. 재희를 읽다가 움찔했다면 뒤의 단편들은 훨씬 서정적이니 안심해도 된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끌려 온몸을 내던진 20대의 사랑, 그리고 엄마와의 갈등을 다루었다. 4편 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대도시의 사랑법'과 함께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 엄마를 향한 원망과 가족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연민까지,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를 받고 싶어하는 영이 많이 안쓰러웠다.

'대도시의 사랑법'
온몸을 던지는 사랑만 사랑이 아니다. 천천히 스며드는 30대의 사랑이 오히려 벗어던지기 더 힘든 법이다. 지루한 듯 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은 참 알콩달콩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영은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어른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규호를 잡아라! 바지 끄댕이에 매달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남자 또 없다. 엉엉
사랑 이야기에 HIV 바이러스를 이렇게 잘 버무릴 수 있을지 놀랐다. 그것도 예쁘고 애잔하게.


'늦은 우기의 바캉스'
이별 후의 땅 파는 이야기.
다시 한 번 외쳐본다. 규호 잡아라, 규호.


작가의 말에 이러한 글이 나온다.

지난 시절 나는 오롯이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내 자신이라는 사실이 몹시 견디기 힘들었다.
336


4편의 연작 소설을 모두 관통하는 주제가 그러하다. 퀴어, 게이로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자기가 자신이라서 괴로워한다. 자기연민과 정체성으로 인한 자괴감으로 우울한 감정이 깊게 깔려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도시의 사랑법]은 아주 잘 읽히는 소설이다. 표현이 거침없고 비유가 입에 착착 붙는다. 말투가 어찌나 앙큼하고 발랄한지 영이 털보 뚱보라고 해도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 광어죠. 아니 우럭인가? 제가 사실 생선을 잘 구별 못해요. 그냥 비싼 건 다 맛있더라고요.
(중략)
- 더 투명한 쪽이 광어입니다.
- 네?
- 둘 중에서 살점이 더 투명한 쪽이 광어다, 생각하면 구별하기 쉬울 거예요. 더 쫄깃한 쪽이 우럭.
-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술 취한 나는 인간도 아니다. 방금 무슨 말을 내뱉은 거야 정말 돌았군,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남자가 또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106~107


그리고 또 규호는 "부모님께서 형이 병원 차리면 거기에 들어가 일이나 도우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생 병풍처럼 살라는 거겠죠 뭐."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뭐야, 계곡물이야? 뭔데 이렇게 투명해.
215

 

 

곱씹을수록 마음 아픈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이렇게 경쾌하고 해맑게 그려내서 연신 키득키득 웃게 한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쭉쭉 잡아 끌어내리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 만난 남자와도 쉽게 입을 맞추고 몸을 섞는다면서 이런 순애보로 사람 울리기 있기, 없기?! 하고 외치고 싶다. 어찌나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엄마 이야기도 참 마음 아팠다.

읽다보면 동성애자도 결국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 그들의 사랑도 똑같다는 것, 그들의 이별도 비슷하다는 것, 그들의 고민도 같다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 하나, 가족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괴로움이 더해진다는 점이 그토록 쓸쓸하고 애잔할 수가 없다.

88년생 작가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책을 읽으며 찾아본 자료 정리

https://blog.naver.com/hihappymay/22163465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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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 2019-08-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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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저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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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게 슬프고 착한 동구, 격동적인 사회 속에서 상처투성이 가족 속에서 모두를 이해하려, 사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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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잡자마자 한 번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개정판으로 오누이가 찍힌 다른 표지의 책으로 읽었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 사진이라고 한다. 오빠와 작가. 하지만 할머니는 좋은 분이셨다는 작가의 말이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그만큼 이 책 속의 할머니는 지긋지긋하다. 마지막에 그러한 할머니조차 감싸안는 동구와 작가님에게 감탄하면서, 나 역시 조금은 그녀가 이해가 될 듯 안쓰럽기도 했다.

 

작가는 서른 살 즈음에 이런 책을 냈다는데, 내가 서른일 때와 비교해서 그 감성이 놀랍다. 어쩌면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그렸을까. 연도로 나누어져 있는 각 장에 하필 1980년이 끼워져있었기에 광주 출신 박영은 선생님의 앞날이 보이는 듯 했고, 처음부터 영주가 너무도 반짝거리는 아이라서 영특한 동생 한영주의 미래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며 읽었다. 운수 좋은 날처럼 영주가 지닌 뛰어난 면모를 보일 때마다 어쩐지 동구만큼 훌쩍 자란 소녀의 모습이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고 마음 속 한 구석이 점차 더 불안했다. 이미 염두에 두고 있던 영주지만, 그렇게 동구가 직접 겪을 줄이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소리도 못 내고 벌어진 내 입을 겨우 꾹 다물며, 비명을 삼켰다.

 

마지막에는 동구가 엄마를 위해 할머니를 죽이는 거 아니야? 하며 혼자 어두운 상상으로 조마조마 하며 읽기도 했다. 그러나 동구는 그냥 착한 아이가 아니라 아주아주아주 착하고 어진 아이였다. 박영은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해 안되는 사람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많이 느끼고 배웠다. 희망을 준다니, 생각도 못했다. 영주처럼 아빠를 막아보지는 못했던 동구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실천한 그 행동은, 그러나 이제 고작 5학년 아이에게는 가혹하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다면 좋을텐데, 곱씹을수록 더 아프다.

 

잘못된 것에는 영주처럼 떼찌야!를 외칠 줄 알고, 박영은 선생님처럼 자신의 생각을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며 신념을 행동으로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정원에 다시 찾아온 작은 곤줄박이. 유일하게 정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았던 동구가 가슴팍이 고운 곤줄박이처럼 다시 돌아와 정원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By Photo by Laitche,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246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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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구원 - 임경선 | 2019-08-24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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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정한 구원

임경선 저
미디어창비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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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위로, 그리고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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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리스본에서 산 적이 있다고 한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하늘로 떠나시자, 작가는 10살난 딸 윤서와 함께 리스본으로 여행을 간다. <다정한 구원>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부모의 발자취를 쫓으며 추억하고,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며, 미래인 딸을 사랑하는 감정이 담긴 여행일기이다.

 

 

우리는 트램 위에 올라타고, 자리에 앉아 창밖 세상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저마다 자신의 때가 되면 트램에서 내린다. 누구는 더 먼저 내리고 누군가는 더 나중에 내린다. 다만 모두가 언젠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려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를테면 약속 같은 것이다.

 237쪽

 

 

초중반은 단순한 리스본 여행기에 가까울 정도로 리스본 관광 정보(호텔, 해변, 음식점, 트램 등)가 많다. 제목은 일반 산문의 형태인터라 리스본 여행 자체 이야기가 많은 것이 의외였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그 여행을 기록한 글 사이사이에 지난 시절 엄마와의 갈등이나 부모를 잃은 상실감, 어린 시절의 웃음과 독립적이어야했던 사정 등 자신의 이야기를 노련하게 끼워넣는다. 글은 후반부로 갈수록 여행보다는 작가의 삶을 더 많이 드러낸다. 소설 구성 단계처럼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터트리고 이를 정리하는 모습이 산문이지만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정한 구원]는 사사로운 이야기이다. 내가 왜 이 사람의 속사정을 알아야 하고, 자기 위로로 가득한 일기를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지만, 애초에 이 책은 그런 산문이다. 꼬인 마음으로 보자면 스스로의 감정을 다독이기 위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고 판매할 수 있다니 부러운 것이고, 풀린 마음으로 보자면 나 역시 겪었던 일들과 그때의 감정들이 떠올라 공감하는 면이 있다.

 

상실을 겪고 일차적 충격이 지나면 서서히 여러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러한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 보고 헝클어진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 비로소 상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모는 떠나보냈지만, 조건없이 사랑해도 모자랄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 역시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끝이 있지만,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삶은 끊어지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인 Day12의 제목이 '출발'인 이유는 비단 한국으로 출발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 아빠는 그 시절 행복했었구나.

서투르게나마 나는 사랑받았었구나

 

그리고, 나도 앞으로 내 아이를 힘껏 사랑해주어야겠다.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미 이것으로 너무나 충분한 것을.

 

그러니까 윤서야.

이제는 너의 시대야.

인생의 모든 눈부신것들을 다 너에게 넘길게.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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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되었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 2019-08-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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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시지

조이스 캐럴 오츠 저/공경희 역
문학동네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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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로 시작해서 눈물겨운 인간애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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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의 <카시지>는 656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막상 읽기 시작하면 마구 '달리게' 하는 소설이다. 유복한 집안의 19살 소녀가 사라진다.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한 이라크 참전 군인과 옥신각신 하는 장면. 그들이 함께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에는 혈흔이 남아있다. 상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총 3부로 구성된 글은 소녀, 소녀의 아버지, 어머니, 언니, 상병 등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상황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인 것처럼 보였던 소녀의 실종은 여러 사람의 시선을 거칠수록 복잡한 사정과 심리를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왜 그랬을까?

 

 

1부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의 특성을 보이면서도 등장인물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동시에 불러일으켜서 푹 빠져들었다.

 

 

 


M. C. 에스허르 (에셔)의 '상승과 하강'

104

 

 

등장인물들은 에스허르의 그림처럼 열심히 올라가지만 알고 보면 내려가고 있고 열심히 내려가지만 다시 올라가고 있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잘 해보려는 노력은 끝이 없고, 그 결과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흡인력에 2부까지 쭉쭉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탁, 맥이 풀렸다. 드디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2부 초반만 해도 소녀의 사정에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 같아서 무척 긴장감이 고조되었는데,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알고 보면 별 것 아니었다. 사랑. 사랑때문이었다.

 

 

사람은 존재하려면 어느 한 사람에게 절절한 사랑을 받아야 한다.

454

 

자존감이 낮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나, 싶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계속 읽어야하나 잠시 위기에 빠졌다. 도대체 몇 명 인생을 망친거야?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는가? 인용문구처럼 사랑은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 사랑은 뒤를 보며 눈물 짓게도 하지만, 옆을 보며 웃게도 하고, 결국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게도 한다. 내가 있을 곳을 알려주는 것이 사랑이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 이미 밝혔지 않나.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사라진 이유였다. 열아홉 살. 내 인생을 주사위처럼 던진 것이다!

11

 

 

2부 중반부터는 스릴러라기보다는 심리소설이다. 아니 어쩌면 철학을 다룬다. 죄를 지은 인간이 속죄할 수 있는가,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가,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해야 하는가,인간의 운명은 정해져있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 등 등. 잠시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이내 다시 제 속도를 찾았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내 머리 속도 복잡하게 엉켜갔다. 소녀 크레시다는 책에서 내내 '똑똑한 아이'라고 표현되지만 내게는 그저 '어리석은 아이'로 보였다. 이 아이 하나때문에 이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 화가 나고 다른 인물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감정들이 휘몰아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마지막 줄리엣(소녀의 언니)의 글이 그런 감정들을 다독여주었다. 그녀의 증오와 용서에 대한 심정이 내 마음과 비슷해서 마치 작가가 '그래, 너도 이런 느낌이지? 나도 알고 있단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격앙된 감정을 살짝 떼어내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더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크레시다의 이유가 실망스럽고 해결 과정이 성에 차지 않아서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2부 중반까지 달리게 했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흡인력이 아까웠다. 그러나 두 번째 읽으니, 비로소 이게 맞다고 느꼈다. 이런 결말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괴로움에 빠져 그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가듯이 우리의 시간도 마음도 움직인다.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갈등 속에서도 끝내 용서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 용납되는 이유는, 차마 진정한 용서를 바랄 수 없다는 걸 아는 깊은 참회가 전제하기 때문이다.

 

<카시지>는 전반적으로 기독교적인 사상이 깔려있는 책이다. 원죄를 말하고, 용서와 구원을 말한다. 비극 속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가득해지지만, 결국에는 용서와 치유의 가능성을 넌지시 비춘다.

 

 

 

1. 숨

 

<카시지>에는 유독 '숨'에 대한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각다위가 속눈썹에 달라붙거나 눈이나 입에 들어가면 특히 끔찍했다. 각다귀떼 속에서 숨을 쉬는 것은 더없이 끔찍했다.

그러나 숨을 멈출 수는 없다. 멈추려 해도 폐가 알아서 호흡한다. 멈추려 해도.

12

 

다행이야. 이제 우린 다시 숨쉴 수 있게 됐어.

93

 

"(...) 그는 눈을 꾹 감고 숨을 참으려고 입도 꾹 다물었죠. 일부러 숨을 안 쉬려고, 질식하려고, 숨을 끊으려고 애썼던 겁니다. 하지만 불가능했죠. 숨을 쉬려는 본능이 너무 강하니까요. (...)"

386

 

기적이 나를 구한 거야.

숨이 막히고 목이 조여 뇌 속 산소가 소진되려던 순간, 지푸라기 하나가 입이나 콧구멍에 쑥 들어와 숨을 쉬게 된 사람에게 그 사실 - 숨을 쉰다는 것 - 보다 놀라운 기적은 없다.

424

 

 

 조이스 캐럴 오츠는 스스로 질식하려 해도 사람은 저절로 숨을 쉬게 된다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인간의 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아무리 밑바닥까지 내려와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저절로 숨을 마시고 뱉는 행동조차 수치스러워 한층 더 괴롭더라도, 인간은 끝내 숨을 쉬게 된다. 살아있다면, 어쩔 수 없는 본능. 살려고 한다. 그래서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게 아닐까.

 

 

2. 속죄와 용서

 

<카시지>에는 '수치', '죄책감'이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인물인 소녀 크레시다와 상병 브렛은 끊임없이 수치스럽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크레시다는 못생기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수치스럽다. 자신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브렛은 소녀를 구하지 못한 것이 수치스럽고 죄책감을 느낌다. 기독교에서 원죄를 말하며 인간에게 수치스러움과 죄책감을 말하듯이 맹자도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말한 것이 떠올랐다. 너무도 죄스럽기에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두 사람. 그들은 절절하게 참회한다.

 

저를 도우소서,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둑어둑한 선한 도둑의 교회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무릎을 꿇고 영혼을 구제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한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다.

556

 

나는 그들의 사랑을 죽였고, 진정한 용서를 바랄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진정한 용서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654

 

사실 나는 브렛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우연히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고, 오히려 구하고자 노력했을 뿐인데 왜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큰 벌을 받고, 용서를 빌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정작 잔학한 짓을 벌인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세상일은 때때로 이렇게 흘러간다.

 

우리는 언제나 신이 나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실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예수님은 안 그러실 거야. 나는 선량한 사람이니까, 해를 입지 않을 거야.

187-188

 

황야를 헤매다가 이제야 벌어진 상처가, 파괴되고 파헤쳐진 땅이,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드러난 뿌리들이 보였다. 다른 각도에서 보고 나서야 재앙이 어느 한 개인 - 한 '희생자'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463

 

<카시지>의 주요인물 중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크레시다가 잘못했지만(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하지만, 나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크레시다조차도 그런 결과를 바라고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고, 어떻게든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며,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용서받고 싶어한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줄리엣의 '용서할 수 없는 마음'에 더 공감했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줄리엣의 '용서할 수 밖에 없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줄리엣과 브렛이었는데, 줄리엣의 마음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왜 그녀가 크레시다에게 용서할 게 없다고 했는지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아마 눈을 감는 날까지 줄리엣은 두 가지 마음을 다 가지고 있겠지만.

 

예쁜 아이 - 스위치 켜짐, 꺼짐

635

 

 

3. 희망

 

용서받을 가능성이라고 해야 맞는 걸까. 명확하게 용서받거나 용서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이라고 적어본다.

 

<카시지>에는 '저주'라는 말도 여러 번 나온다. 이름으로 정해진 운명에 대해 암시를 하거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하면서 거꾸로 신이 정한 운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마음을 쓰지도 않았어요. 그게 크레시다의 운명이었다고요."

"오, 얘야. 진정해라. 1996년 미합중국에 사는 우리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 않는단다. 지금이 중세도 아니고."

60

 

그는 신이 있지만, 어쩌면 예수그리스도가 있지만, 그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애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은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으니까.

신이 왜 어떤 사람은 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구해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256

 

"'사형'을 당하지 않으려면 죄를 짓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걸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믿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동물도 아니고 기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370

 

힘든 일이 벌어지고, 점점 빠져들어가는 늪에 발을 집어넣은 것처럼 가라앉아가면 인간은 신의 존재를 부르짖으며, 동시에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제발 도와주세요. 신이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야.

 

신이 진정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카시지>에서 선을 말하는 플라톤, 유기동물이나 사람을 조건없이 돕는 여인 헤일리, 죄가 너무 깊어서 차마 예수님을 부르지 못하고 선한 도둑, 성 디스마스에게 기도하는 범죄자들을 통해 다른 답변을 보여준다. 우리는 약한 인간이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이 우리에게 준 힘은 충분히 강하지 않을지라도 사랑하기에 손 잡고 나아갈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해 알면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지만, 가끔은 그 힘이 충분하지 않으니 이상하지. 신이 언제나 우리를 충분히 강하게 해주시진 않으니까.

남에게 베풀어라. 이웃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마라.

264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이었지만, 발끝으로 서서 더 높은 곳에 닿으려 했던 인간이었다. 우리도 아주 조금은 그럴 수 있다.

443

 

선善을 알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진다.

선을 모르면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465

 

그러기에 '희망'을 말해본다.

 

처음 브렛의 편지를 읽었을 때는 이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는 젊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264

 

전쟁에 참전하여 삶과 죽음을 목격하고 겪어내는 사람의 이야기라서 서글펐다. 나 역시 더 이상 젊지 않고 마음이 늙은 것 같아서 아팠다.

 

그러나, 편지를 다시 읽을 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 문장이다.

 

왜냐하면 줄리엣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니까. 이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야.

264

 

유일한 진실은 사랑하는 것.

사랑하기, 사랑받기

결국 사랑이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우리가 서로를.

크레시다가 그런 짓을 벌인 이유가 사랑이라면, 해결방법 역시 사랑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폭풍같은 삶에서 의도하지 않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상처를 주고 받더라도, 진심으로 속죄하고 함께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 안타까워하는,절절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살아갈만 하지 않을까.

 

 

너는 망가졌었지. 하지만 이제 낫고 있어. 우리도 너와 함께 낫겠지. 우리는 너를 사랑해.

650

 

하지만 마지막 태피스트리에서 유니콘은 작은 우리에 든 가축처럼 갇혔지만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575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다시 부활했듯이,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한 유니콘이 다시 소생했듯이, 주저앉은 인간에게는 끝내 다시 일어날 힘이 있다. 너무도 큰 죄의 크기에 차마 용서를 바랄 수 없는 지경이라도, 결국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그 미미한 힘이 어떻게든 살아가게 할 것이다. 숨을 막으려 해도 저절로 숨이 쉬어지는 것처럼.


<카시지>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방황하는 인간들을 그리며, 이 미약한 존재들에게 느끼는 측은한 마음과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게 사랑과 희망을 건네며 나도 모르게 죄인이 된 이들을 위로한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강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자주 언급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번 <카시지>로 처음 만났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만드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그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내어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 책을 읽으며 궁금해서 찾아본 참고자료(지도, 음악, 그림 등)를 다음 글에 정리했다.

https://blog.naver.com/hihappymay/221619288261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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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달걀과 고기를 사고, 공원에서 산책나온 개를 본 적 있다면 | 2019-08-02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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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

박종무 저
리수 | 2016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도시에 살면서 마트에서 달걀과 고기를 사고, 공원에서 산책나온 개를 만나고, 길거리에서 고양이와 눈 마주쳐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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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2019년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책장에 꽂혀있던 책이다. 표지를 보니, 쇠창살 너머 고양이가 보인다. 눈이 마주쳤다. 눈빛에서 걱정과 두려움이 보인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너를 그곳에 넣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외면하고 지나가고는 했다. 표지만 봐도 무슨 내용일지 알 수 있었다. 유기동물 이야기이구나. (그게 책의 전부는 아니다.) 읽을까? 말까?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은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적당히 선량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기에 괜히 죄 지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직접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듣는, 그런 작은 용기는 내보고 싶었다.

 

 

아이와 대화하듯이

 

 

 

책을 넘겨보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나 정민의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처럼 자신의 아이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전문가가 아이에게 해당 분야를 풀어서 설명해주는 방식을 좋아한다. 문장의 길이가 짧은 편으로 이해하기 쉽고 글이 다정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도 수의사인 아빠가 중학생 딸 리수의 질문에 답해주다보니 용어가 어렵지 않고, 설명이 친절하다. 동물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알려줄 때도 사실 그대로를 알려주며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다. 이런 형식덕분에 책이 다루는 소재에 비해 내용이 무겁지 않고 편하게 다가온다. 저자 박종무는 20여년 간 동물병원에서 동물들을 치료하는 수의사로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봉사를 하고, 가축 및 반려동물(애완동물)의 동물권, 생명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유기동물, 2부는 길고양이를 포함한 도시동물, 3부는 우리가 먹는 고기와 관련된 축산 동물에 대해 말한다. 이 글에서는 2부 도시동물 대신에, 1~3부에서 여러 번 등장한 동물보호법에 대해 남긴다.

 

 

 

1. 유기동물

 

 

먼저 유기동물들의 '처리' 과정을 알려주며, 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동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의무와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당부한다. '안락사 安樂死'가 아니라 '살처분 殺處分'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늘어나는 유기동물의 수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들을 죽이는 것은 동물을 위한 안락사가 아니라 인간의 편의를 위한 살처분인데 미화한다는 것이다.

 

 

살처분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살처분한 당사자나 유기견보호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자가 심리적으로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은 마땅히 감수해야겠지. 어떻게 생명을 죽이면서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니? 생명을 죽이면서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이 더 문제겠지. 그 불편함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해. 지금의 불편함을 덮어버리고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방식이 유지되어서는 안 되겠지. (24쪽)

 

 

유기동물을 이야기하면서 반려동물 입양 과정이나 동물등록제, 동물 사료, 반려동물 교육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반려 동물을 키우려는 사람들은 입양 전에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다가 결혼하거나 임신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은 안타깝지만 흔한 사례이다. 또, 아이가 조른다고 강아지를 사줬다가 덩치나 배변, 산책 등을 감당하지 못해서 버리기도 한다. 가족 모두 개를 사랑하고 계속 키우고 싶어하지만, 개를 키우고 나서야 가족 중에 알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파양하는 경우도 있다.

 

 

 

2. 동물보호법

 

 

다음으로 동물보호법의 헛점을 지적하는데, 이 책이 나온 2016년 당시에는 동물보호법에 동물학대방지 조항은 있으나 처벌의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2018년에 개정되어서 현재는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며칠 전 동물학대 유튜버 사건만 봐도 여전히 동물보호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해당 유튜버는 몇 달 전 이미 동물학대로 고발받은 적이 있는 사람인데, 그때도 무혐의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번에도 법은 자기를 잡을 수 없다며 조롱하듯 방송했다가 크게 공론화되고 나서야 사과하고 반려견 소유권 포기 각서를 썼다고 한다. 앞으로 동물보호법이 강력하게 시행되기를 바란다. 나보다 약한 동물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자가 사람이라고 소중히 대할 리 없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17&aid=0000433890

(동물학대 유튜버 기사. 2019.07.31)

 

 

3. 축산동물 / 동물 복지

 

마지막 축산동물에 관한 글은 자세히 몰랐던 사실이라 충격적이다. 요즘 고기 값은 어렸을 때보다 훨씬 싸다보니 손쉽게 사먹을 수 있다. 떠올려보면 삼겹살 먹는 날, 치킨 먹는 날은 뭔가 기념할 날이거나 아빠 월급날(혹은 약주하신 날)처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요즘은 아기 이유식에도 소고기는 필수로 넣으라고 말할 정도로 흔하게 고기를 먹는다. 그동안 고기 가격이 낮아진 까닭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옛날보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어서, 혹은 외국산 고기를 많이 수입하니까 가격이 저렴해졌다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동물복지 달걀이나 닭고기를 봐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3부에서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양념치킨에 사용되는 닭들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우리 안에서 평생 햇빛 한 번 못 보고 한 달 조금 넘게 살다가 도축되는지는 몰랐다. 닭들이 서로 공격한다고 멀쩡한 부리도 자르는 줄 몰랐다. 엄청 싸다고 사 먹은 달걀들이 알을 더 많이 낳게 하려고 닭에게 물과 모이도 주지 않아 생존의 기로에 서있을 때 낳은 건 줄도 몰랐다. 살살 녹는 꽃등심이라는 게 자연의 소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인간의 욕망때문에 다른 생명을 경시한다는 윤리적 문제와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도 머리 속에 떠오른다. 고통 속에 얻은 알과 항생제로 뒤범벅된 고기가 과연 인간의 몸에 좋을까?

 

 

 

지금도 건강한 먹거리의 가격은 아빠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싸기 때문에 평범한 가정에서 쉽게 선택하기 어렵지. 경제 수준이 높아져서 고기를 풍부하게 먹게 된 것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으로 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해. 반생명적인 축산의 현실을 배제하고 단순히 먹거리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반생명적인 환경에서 키워진 육류, 면역력이 떨어져서 항생제가 첨가된 사료를 먹고 키워진 육류, 이런 먹거리를 단순히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단다. (170쪽)

 

 

동물복지 인증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책에는 동물복지 인증을 언급만 하고 상세히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책에 자세히 나온 공장식 축산의 반대이겠지만 궁금해서 더 찾아보았다. 국가에서 규정한 동물 복지 환경을 구축한 농장에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인증을 신청하면, 서류 심사와 현장 심사를 거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고,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받는다고 한다.

 

동물복지 축산 인증제란?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 · 돼지 · 닭 · 오리농장 등에 대해 국가에서 인증하고 인증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마크'를 표시하는 제도입니다. 7개 축종(산란계,육계,돼지,한·육우,젖소,염소,오리)에 대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쾌적한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 하는 등 농장동물의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면 동물이 건강해집니다. 건강한 동물로 생산되는 축산물은 안전합니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홈페이지)

http://www.animal.go.kr/portal_rnl/farm_ani/info.jsp 



 <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는 동물에 관련된 책이지만, 단순히 동물애호가나 애견(묘)인들만 읽는 책이 아니다. 책의 부제처럼 '함께' 살아가는 동물 이야기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만 살 수 없고, 동물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때 배운 먹이사슬, 먹이그물의 이치대로, 그들의 생명권을 존중해주는 것은 곧 우리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시에 살면서 마트에서 달걀과 고기를 사고, 공원에서 산책나온 개를 만나고, 길거리에서 고양이와 눈 마주쳐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이가 자꾸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조를 때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같이 읽거나 책 속 이야기를 들려주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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