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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가요를 성악가에게 듣는 느낌...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19-11-2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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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클린 코드

설혜원 저
지금이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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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이다. 마치 영미권 기업 스릴러 제목 같은 이 책은 설혜원 작가의 데뷔작으로, 일곱 개의 단편이 실린 미스터리 작품집이다. 책을 다 읽어보니 크게 두 가지 특성이 눈에 띈다. 그런데 그게 그리 긍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첫째, 이 책의 1,3,5,7번째 단편은 어느 정도 대중적이지만 2,4,6번 단편들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다. 문장도 어렵고 내용도 어렵다. 소재와 흐름이 추상적, 관념적으로 흘러서 내용 파악에 애를 먹는다. 거기에 미스터리적 효과도 별로 없다. 읽는내내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그래서인지 재미를 찾기도 어려웠다. 반면에, 표제작 <클린 코드>부터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 <자동판매기 창고>, <월광> 이 네 편은 문장도 쉽고 내용도 재밌어서 만족스럽게 읽었다. 특히 <자동판매기 창고>와 <월광>은 제법 본격 추리와 스릴러의 재미까지 더해져 '베스트 투'로 꼽고 싶다.

둘째,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일부 단편에서만 그렇게 보였을 뿐 전체적으로 미스터리의 색채가 약하다. 추천인의 말대로 장르소설보다는 본격소설의 특성이 더 강하다. 즉, 미스터리 기조에 문장력을 입힌게 아니라 화려한 문장미학을 베이스로 한 본격 소설에 미스터리를 약간 가미한 느낌이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비평이론에도 능한 문학박사 출신의 재원이다. 그래서일까? 대중 소설을 쓰기에 너무 오랜 세월 정통 문학에 매진해 온게 아닐까? 책을 읽는내내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대중 가요를 부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중 가요는 대중 가수가 대중 가요 창법으로 불러야 제맛인데 성악 전공자가 클래식한 창법으로 부르면 그 맛은 떨어진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일본 인기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용도 재밌지만 일단 문장이 술술 읽힌다. 지극히 대중 친화적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좀 더 대중적인 친숙한 문체와 부담없이 편안한 내용으로 독자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기에 미스터리적 재미를 왕창 첨부시키면 더욱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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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로 속 남자"가 된 기분... | 서양 미스터리 2019-11-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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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로 속 남자

도나토 카리시 저/이승재 역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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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과연 뭐를 읽은 거지? 마지막 장의 반전과 충격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럼 앞의 이야기는? 여태까지의 줄거리는? 바로 첫 장으로 돌아와 박사와 사만타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도 도통 그 진위와 실체를 모르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동의 세계에 빠져 있는 내가 정말 <미로 속 남자>가 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범죄학자 출신 소설가인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은 네 번째이다. 타인의 잠재된 악의를 부추켜 살인을 선동하는 천재적 살인마가 등장하는 <속삭이는 자>, 과거에 실종된 사람들이 돌아와 연속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이름없는 자>, 폐쇄된 알프스 산악마을을 배경으로 실종된 소녀의 행방을 추적하는 <안개 속 소녀> 그리고 이 작품 <미로 속 남자>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이 속삭이는 자의 세 번째 시리즈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외전격으로 보는게 맞는 것 같다.

15년 전, 열세 살의 나이로 실종되었던 소녀가 살아 돌아오자 처음 사건을 수임했던 사립 탐정이 그녀를 납치, 감금한 범죄자 일명 '버니'를 추적하는 얘기이다. 그녀가 박사에게 들려주는 미로 속 이야기부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립 탐정이 아픈 몸을 이끌고 악전고투하며 사소한 단서로부터 조금씩 범인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일련의 수사 과정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렇게 범죄자 버니의 체포로 일단락될 것 같은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서 혼을 빼놓을 정도의 대반전이 일어난다. 마지막 장과 첫 장을 다시 읽어도 그 유기적인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머릿속 세상인지 그리고 게임과 실체의 경계가 어디인지...누구라도 붙잡고 이 책의 정확한 스포일러에 대해 묻고픈 심정이다. 어쨌든 독자를 놀래키는 재주가 있는 작가다. 마침 올해 10월경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니 나중에 기회되면 제대로 확인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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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트릭이 돋보이는 본격 미스터리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19-11-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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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저
시공사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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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작가는 예전 여름추리학교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 낀 얼굴, 그리고 조용히 강의를 경청하며 필기하는 진지한 모습... 이게 그녀를 기억하는 전부이다. 송 작가의 장편은 못 읽어봤지만 단편은 여러 편 읽었다. 그중 <아이의 뼈>, <누구의 돌>같은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수작이다. 주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사회성 짙은 미스터리물을 발표하는 여성 작가가 본격 추리물을 썼다니... 호기심이 동한다. 이 책을 집어든 가장 큰 이유이다.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의 외진 섬 호죽도... 서로 알지 못하는 초대받은 여덟 명의 손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주최자, 돔 형태의 특이한 구조물, 외부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폭풍우 몰아치는 험한 날씨 그리고 기다란 죽창에 꽂혀 공중에 전시된 기이한 사체... 그야말로 클로즈드 서클의 본격 추리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호죽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스토리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추리 과정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특히 살해 방법에 관한 다양한 가설을 물리적으로 검증하는 장면과 피리 소리로부터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거기에 사건의 단초가 되는 40년 전 살인사건의 숨겨진 진상까지 덧붙여져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밝혀지는 두 건의 대나무의 특성을 이용한 살해 트릭은 만화에서 나올법한, 그 실행 및 성공 여부에 현실감은 의심스럽지만 제법 참신하고 기발하다. 작가가 트릭의 완성도에 많은 공을 들인 느낌...범행의 동기나 규모 면에서 조금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어차피 본격 추리는 비현실성에 기초하니 넘어가기로 하고...그나저나 아이돌 댄스를 취미로 삼는 탐정역의 젊은 여성 물리학도가 꽤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감성적 문체나 곁가지 없이 본격 추리의 정석에 따라 힘있게 쓴 덕분에 몰입해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40년 전 살인사건의 진상이 정말 그렇다면 사건의 최초 발견자 오배춘이 현장에서 보인 반응과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렇게 전개되어야 하는 것은 알겠지만서도... 제법 재미와 완성도를 잡은 이 책에서 유일한 옥에 티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검증된 만큼 또 다른 본격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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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 란포의 명작을 되살려내다.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19-11-0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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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저/이연승 역
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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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에도가와 란포는 내가 최애하는 일본 추리작가 중 한 명이다.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우타노 쇼고도 마찬가지. 그래서 두 작가의 국내 번역작들은 대부분 읽고 소장중이다. 그런 두 작가가 만났다. 그야말로 환상의 만남이요, 꿈의 콜라보레이션이다.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우타노 쇼고가 1920~30년대 일본 추리소설의 정착과 부흥을 이끈 에도가와 란포의 주옥같은 단편 여덟 편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새롭게 변주한 단편집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예습 차원으로 - 물론 오래전에 모두 재밌게 읽은 작품들이지만 - 책장에 꽂혀있는 란포의 해당 작품을 다시 찾아 읽었다. 과연 우타노 쇼고는 어떠한 소재와 트릭, 스토리로 란포의 명작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냈을까.

한 남자의 망상과 광기, 변태적 사랑을 섬뜩하게 그려낸 란포의 대표작 <인간 의자>가 현대판으로 부활했다. 버림받은 한 남자가 잘나가는 예전 여자친구인 여류 작가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 그 선공은 역시 푹신한 대형 소파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교란 작전을 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상치 못한 비극이...

환상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에서는 몽환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단편에서는 오시에 액자 대신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자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혼자 여행을 하는 남자. 근데 모든 행동이 수상하다.  영상 속 여자 친구의 정체도 미심쩍고 이 남자 역시 예사롭지 않다. 원작이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뒷골이 서늘할만큼 섬뜩하다.

<D 언덕의 살인사건>은 란포가 창조한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가 최초로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우타노 쇼고는 원작을 현대 버전으로 완벽히 재현해 낸다. 의문의 사체와 명확한 동기 그리고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과연 표제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다. 분량상 제일 마지막으로 읽은 보람이 있다. '실로 무서운 것은'이라는 부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오세이 등장>에서 요부이자 악녀는 실수로 궤짝에 갇힌 남편을 못 나오게 힘으로 눌러 죽이는 냉정한 살의를 보여준다. 이 단편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우연히 실수로 궤짝에 갇힌 남편을 멀리 프랑스로 출장 와 있는 부인이 원격 살해한다. 그 방법은 둘의 유일한 연결 수단인 스마트폰. 현대판 악녀다운 수법과 발상이다. 궤짝에 갇혀 힘겹게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탈출에 안간힘을 쓰는 남자의 노력이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킬 정도로 웃기면서도 애처롭다.

자신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아흔아홉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그린 란포의 원작 <붉은 방>이 재연되는 연극 무대에서 실제로 총기 발사에 의한 사고가 발생한다. 경찰과 감식반이 출동하고 무대와 객석은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관객이 진짜로 자극을 받는 것은 따로 있다. 반전에 반전이 있는 블랙 코미디물.

엿보기 신공, 1인 2역 트릭 등 란포의 주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본격 추리의 걸작 <음울한 짐승>을 현대에 되살려 낸 이 단편은 시작부가 원작과 동일하게 "나는 당신을 24시간 훔쳐보고 있다"는 협박 메일로 시작된다. 훔쳐보는 기법과 범인의 의외성까지는 좋았으나 살인의 동기가 석연치 않다.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잘 이해가 안 된다.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서는 란포의 원작 두 편이 합쳐져 있다. 남편의 엽기적인 행각에 대한 복수가 비극으로 이어지는 <비인간적인 사랑>과 갈라진 2전짜리 동전에서 나온 암호로부터 은행 강도가 숨겨놓은 5만 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2전짜리 동전>이 그것이다. 이 단편에서는 AR(artificial reality)을 통해 연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현실에서는 살인죄로 감옥에 다녀와 노인에게 여생을 의지하는 한 여자의 기구한 삶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수십 년 전 숨겨진 보물(증권)을 찾아가는 암호 풀이가 이 단편의 백미이다. 가장 공을 들인 단편이 아닌가 싶다.

정말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아껴가며 읽었다. 그만큼 모든 단편들이 밀도와 짜임새가 좋다. 에도가와 란포와 우타노 쇼고. 내가 좋아하는 두 작가를 한 작품에서 만나니 재미도 두 배, 기쁨도 두 배다. 원작을 미리 읽고 비교해서 이 책을 읽으니 원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주하는 우타노 쇼고 작가의 의중과 노련한 테크닉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재밌게 읽은 것 같다.

작가는 거의 모든 단편에서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은 기본이고 홀로그램, VR(virtual reality), AR 등 최첨단 IT 기기와 기법을 서술과 트릭의 소재로 사용한다. 그것은 작가가 현대물에는 그 시대와 상황에 맞는 현대 문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거기에 원작과 현실을 조금씩 비트는  블랙 코미디 같은 전개와 결말이 때론 옅은 실소를 자아낸다.

작가는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란포와 연관된 책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걸까...이 작품을 통해 에도가와 란포의 명작들을 다시 한번 회상하고, 동시에 우타노 쇼고 작가의 재기발랄한 필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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