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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단편 미스터리의 정수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21-03-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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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저/윤성원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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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1985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문예지에 발표한 미스터리 단편들을 모아서 펴낸 초기 소설집이다. 2009년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으니 이번이 세 번째로, 재개정판인 셈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포함, 짧지만 강렬한 일곱 개의 미스터리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한 고등학생의 석연치 않은 옥상 추락사의 이면에 감춰진 은밀한 악의를 파헤치는 <작은 고의>

생후 3개월 된 영아 살해 사건의 충격적인 배경과 비밀을 막장 드라마 형식으로 그려낸 <어둠 속의 두 사람>

중학생 남자아이의 선의의 행동이 엉뚱한 연쇄 작용을 일으켜 리듬 체조를 사랑한 소녀에게 비극을 초래하는 <춤추는 아이>

한 도시를 마주하는 시각차가 극명히 엇갈린 부부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끝없는 밤>

흡연의 폐해를 한 사이코패스의 광기 어린 연쇄살인으로 섬뜩하게 그려낸 <하얀 흉기>

여자 양궁 선수의 자살 미스터리와 거듭되는 반전이 인상적인 <굿바이, 코치>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충격적인 반전 드라마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짧지만 강렬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수록된 모든 단편들이 처지는 작품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고른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기발한 트릭에 반전을 거듭하는 <굿바이, 코치>와 다시 한번 읽을 수밖에 없는, 휘몰아치는 반전에 정신이 얼얼한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 이 단편집의 백미이다. 30년도 넘게 쓰인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나 숨겨진 악의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살인을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허를 찌르는 결말로 실감 나게 그려냈다.

 

 

책을 펼치자마자 단숨에 다 읽었다. 그만큼 몰입감, 가독성이 뛰어나다. 오늘날같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읽기 쉽고 분량도 단편이라 짧아서 이야기에 쉽게 빠져드는, 그러면서 강렬한 여운과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 주는 작품이 어디 있을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깔끔, 담백한 수작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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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1 봄호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21-03-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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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계간 미스터리 (계간) : 봄호 [2021]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저
나비클럽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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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계간 미스터리> 그것도 따끈따끈한 <2021 봄호>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도 바뀌고, 표지 디자인도 확 달라졌다. 속을 들여다보니 레이아웃도 정갈하니 깔끔하고 글자도 시원시원하다.

<추리소설가 20인에게 듣는다>는 기획도 참신하고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덕분에 추리소설가의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법원 양형조사관으로 재직하는 홍성호 작가가 "자신의 직업이 글 소재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다소 의외였고, 홍선주 작가의 "독자가 작의를 다르게 이해할 때 씁쓸하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한국 추리소설이 외국 추리소설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독자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달라."라는 주문에는 다소간의 반론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동일선상에서의 비교는 힘들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 "왜 방화는 외화보다 재미가 없을까요?"라고 리포터가 물으니, 유명 촬영감독이 "외화는 해외에서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선별해 수입하는 것이고, 방화는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극장에 걸리는 것이고...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라고 답했다, 지극히 옳은 논리이고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는 일본과 서양 미스터리를 작가의 인지도 및 흥행 성공과 권위있는 상 수상 여부 등 재미와 완성도에서 검증된 작품을 선별해서 국내에 들여온다. 반면, 한국 미스터리 책은 그런 과정 없이 일단 출간한다. 흥행 여부는 차후의 문제이다. 선별된 외국 작품과 국내 소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류삼 작가의 <추리소설가의 하루>는 특별한 내용도 없는데 은근히 빨려 들어간다. 일상 에세이의 담백한 위력인가. 그러면서 마지막에 혹시나 반전을 기대하는 요상한 심리... 누가 미스터리 팬이 아니랄까봐...ㅎㅎ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 <작가의 방>도 흥미롭게 읽었다. 예술가, 작가, 창업자의 용도로 쓰이는 세 개의 책상들... 나 같으면 두 개는 처분, 하나로 통일하고 남는 공간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다.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라면,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미스터리 잡지의 꽃이다. 다른 기획 기사들보다 소설이 재밌어야 한다. 읽어보니, 앞의 네 편은 보통, 뒤의 두 편은 괜찮았다. 대부분 작품들이 꼼꼼한 자료 조사나 전문적 지식 없이 머릿속 구상만으로 가볍게 쓸 수 있는, 소설로서의 깊이가 부족한 느낌이다.

연쇄살묘범을 추적하는 소년탐정단의 활약을 그린 <코난을 찾아라>는 경쾌하게 흘러가다 뜬금없는 반전으로 마무리되고, 제법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푸른 수염의 방>은 결말을 위해서는 중간에 복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소녀의 진상을 추적하는 <엄마와 딸>은 본격과 사회파 이도 저도 아닌 진부한 느낌이고, 치매 걸린 노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그린 <긴 하루>는 미스터리물로서의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읽지 못하겠다.

역사 추리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목마장 주인 김만일의 기지와 추리가 빛나는 <목호 마조단>은 재미와 짜임새가 좋다. 특별초청작인 서미애 작가의 <숟가락 두 개>는 살인사건의 진위를 놓고 벌이는 딸과 수양아버지의 공방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잔잔한 여운의 사회파 추리물이다.

여담으로, 앞의 20인 인터뷰를 보니 추리 작가분들이 리뷰에 민감하고 나쁜 평가에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는데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돈과 시간, 정성을 들여 소설을 읽었는데 건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다면 그 허탈감과 실망감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생산자(작가)는 좋은 상품(소설)을 시장에 내놓을 의무가 있고, 소비자(독자)는 그중에서 맘에 드는 상품(소설)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한새마님이 소개한 <고바야시 월드로의 초대장>를 보니 꽤나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만큼 국내 독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증거. 하지만 나에게는 호불호가 존재하는 작가이다. 본격물인 <밀실, 살인>과 단편집 <커다란 숲의~> 그리고 SF 스릴러 <인외 서커스>는 합격점인 반면, 죽이기 시리즈와 <기억 파단자>는 한마디로... 유치했다. 특히 죽이기 시리즈는 고전 동화를 차용한 유아틱한 전개가 내 취향과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물 <밀실,살인>을 정말 문제작이다. 당시에 리뷰들을 찾아보니 많은 이들이 작가의 회심의 트릭을 눈치 못 챈 듯...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디저트 격인 황세연 작가의 <예지몽 살인>은 재밌다. 그런 생각지도 못한 정답이 숨어있다니... 역시 추리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짧은 단편이라도 어디에 어떤 트릭이 숨어있는지 모르니 문장 하나하나 초집중해서 읽게 된다. 그게 본격 추리물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이 외에, 대한민국 제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님과의 인터뷰, 작법의 기초이자 뼈대가 되는 플롯의 구성 방식과 패턴 등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기사도 유익하게 읽었다. 보통 미스터리 커뮤니티가 작가는 작가대로, 독자는 독자대로 따로 노는 경향이 있는데 네이버 밴드 '추사사'를 보니 작가와 독자 간의 양방향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모임이라 보기 좋았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와 존 르 카레 관련 기사는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볼 예정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계간 미스터리... 최근 몇 년 새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하는 신인 작가분이 많이 보여 반갑다. 늦었지만 축하드리고 부디 정진하셔서 재미난 추리소설을 많이 발표하셨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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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의 새로운 탐정 캐릭터의 탄생 | 서양 미스터리 2021-03-2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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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IQ

조 이데 저/박미영 역
황금가지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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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25세의 흑인 청년이 있다. 180이 조금 넘는 훤칠한 키에 마른 체형, 비상한 두뇌에 번뜩이는 추리... 각종 공구를 다루고, 차를 분해하는 등 다양한 손재주를 가진... 그가 바로 LA 뒷골목 소시민의 각종 사건을 저렴히 해결해 주는 '무허가 비밀 해결사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이다. 책 제목 <IQ>는 주인공 이름의 약자이다.

 

 

책은 아이제아가 방황하는 10대 청소년 시절과 탐정 일에 매진하는 20대 청년 시절로 교차 서술된다. 각종 경시대회의 상을 휩쓸며 명문 대학 진학을 앞둔 17세의 총명한 고등학생 아이제아는 유일한 보호자인 친형의 죽음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아이제아는 공황 상태에 빠지고... 설상가상으로 보금자리인 형의 아파트를 유지해야 하는 금전적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불량 동급생 도슨에게 방을 내어주고... 그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알바의 푼돈을 넘어 범죄를 부추기는 도슨의 꾐에 넘어간 아이제아는 조그만 상점을 털어 그 장물을 이베이를 통해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도둑으로 변신한다. 착실한(?) 아이제아에 비해 씀씀이가 헤픈 도슨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심해지고... 생활비가 떨어진 도슨은 결국 마약 거래상을 습격하고, 이것이 지역 갱단 간의 전쟁으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여기서 아이제아는 자신의 삶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정의의 길로 들어설 것을 맹세한다.

 

 

뒷골목 소시민의 사소한 사건을 해결해 주고 푼돈을 챙기는 25세 청년 아이제아에게 후원하는 아이에 대한 큰돈이 필요할 때 마침 악연의 도슨에게 연락이 오고... 결국 거액의 수임료를 보장받고 유명 래퍼 살인 미수 사건에 뛰어든다. 누군가 60킬로그램대의 무시무시한 맹견 핏불로 래퍼를 습격한 것. 아이제아는 세밀한 현장 분석과 날카로운 추리로 개의 주인,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그것을 사주한 배후의 인물을 추적한다.

 

 

출판사가 '21세기형 셜록 홈즈의 재림'이라고 소개하는데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범죄 액션 스릴러에 가깝다. 유일한 보호자인 형을 잃은 슬픔으로 한때 못된 친구의 꼬임에 빠져 범죄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자신으로 인해 평생 불구가 된 한 아이를 보고 대오 각성, 자신의 출중한 능력을 LA 뒷골목 소시민 약자에게 쓰기로 한 현대판 슈퍼히어로.

 

 

이 책의 재미를 탄탄히 받히는 것은 탐정 아이제아와 조수역 도슨의 불편한 듯 합심하는 달짝지근한 캐미이다.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종자가 완전히 다른 두 동급생이 룸메이트란 운명하에 한배를 탄다. 또 하나는 바로 리얼리티,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감이다. LA에 거주하며 흑인 문화를 두루 접한 작가가 뒷골목에서 통용되는 그들만의 저속한 언어나 표현을 통해 갱단의 습성과 행동 방식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듯 착각할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책을 다 읽으니 번뜩이는 추리와 호쾌한 액션이 어우러진 갱스터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느낌이다. 가진 것 별로 없이 오로지 정의감 하나만 가지고 영민한 두뇌와 싱싱한 몸으로 때우는 20대 흑인 청년이라는 탐정 캐릭터가 무척이나 신선하다. 특히, 보호의 책임이 있는 아이 앞에서, 그리고 멀리 하늘나라로 간 친형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주인공이 자신의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법과 무질서, 갖은 음해와 폭력이 난무하는 대도시의 뒷골목 세계를 무대로 선한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는 주인공의 활약은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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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SF 첩보 스릴러 | 서양 미스터리 2021-03-0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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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웨어하우스

롭 하트 저/전행선 역
북로드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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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 무선전파의 유도에 의해 비행과 조종이 가능한 무인기 '드론'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드론은 애초에 군사용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고공 영상 사진 촬영과 배달, 기상정보 수집과 농약 살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물류 분야에서는 드론의 사용이 단순히 배송 확대가 아니라 기존 물류시장의 구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드론을 활용한 배송의 신속, 정확, 효율성은 기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더 나아가 대형 마트의 매출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클라우드'는 그런 드론 택배의 정점에 서있는 세계적인 슈퍼 기업이다. 백 개가 넘는 마더클라우드 지점은 전 세계에 방사선처럼 뻗어있고 고용된 종사자는 수천만 명이 넘는다. 클라우드는 높은 급여 외에도 직원 아파트,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완벽한 복지를 제공한다. 일과 휴식 공간 등 완벽한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는 꿈의 기업 클라우드.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 속에서 인간은 궁극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초울트라 슈퍼 기업 클라우드에서의 삶을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SF 첩보 스릴러이다.

 

 

책은 세 명의 시선으로 교차 서술된다. 먼저 클라우드 회사의 창시자이자 췌장암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CEO 깁슨 웰스가 블로그 형식으로 기업 클라우드에 대해 설명한다. 창업 배경과 급여 체계, 사회에 끼친 공헌도 등 인구 감소와 먹거리 부족으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되는 불안전한 외부 세계로부터 중추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클라우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경영 철학을 피력한다.

 

 

그러고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때는 잘나가는 회사 대표였지만 클라우드의 저가 공세에 밀려 파산한 전직 교도관 출신 팩스턴. 그는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린 클라우드에 입사해, 제2의 삶을 꿈꾼다. 그곳에서 전직 여교사 출신의 지니아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는 지니아의 교묘한 술책. 지니아는 노련한 기업 스파이이다. 그녀의 임무는 정부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감면받는 클라우드의 녹색 에너지 정책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그녀는 시설 출입이 자유로운 보안요원 팩스턴의 신분을 십분 이용한다.

 

 

빨간색 셔츠의 피커로 선택된 지니아의 하루 일과를 좇다 보면 '현대판' 조지 오웰의 <1984>가 따로 없다. 손목에 차는 클라우드 시계는 현대판 족쇄이자 감시용 cctv이다. 출입 코드와 크레딧은 기본이고 등급 상태 등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시계에 의해 명령되고 감시된다. 화장실 가는 시간 15분, 식사 시간 30분도 허투루 쓸 수 없다. 물품을 찾아 지정된 컨테이너에 올려놓는 시간이 조금만 지체돼도 클라우드 시계의 등급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며 경고등이 켜진다. 단 1초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지옥 같은 업무의 연속이다.

 

 

팩스턴은 전직 교도관 출신이라는 경력으로 인해 파란색 셔츠의 보안요원이 된다. 오블리비언이라는 금지 약물 밀반입에 대한 전담반으로 투입되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자 동료와 상사로부터 신임은 두터워지고... 깁슨에게 항의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최초 목표에서 조금씩 현실에 안주하는 타협점을 찾게 된다.

 

 

에너지 처리 시설로 잠입해 가는 지니아의 작전과 동선을 기준으로,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임무를 부여한 고객의 정체, 클라우드 기업의 사회적,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어두운 비밀들, 무한한 청정에너지 개발로 세계의 중심에 서려는 야심찬 계획, 깁슨을 암살하려는 음모와 금지 약물 밀반입 루트의 실체 등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보안요원으로서 승승장구하며 클라우드의 삶에 만족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팩스턴, 그런 팩스턴을 교묘히 이용하는 기업 스파이 지니아,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통제하는 클라우드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저항군, 그 중심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굳건히 존재감을 과시하는 창업자 깁슨 웰스. 과연 그가 창조한 클라우드는 미래의 장밋빛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암울한 디스토피아인가. 황무지에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것인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되는 공간에서의 통제된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에서의 팩스턴의 결의에 찬 행동은 묘한 울림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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