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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우리 | 셀수없는별처럼 2010-08-31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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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서의 우리 (하)

교고쿠 나츠히코 저/김소연 역
손안의책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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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下권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렇게 늦지 않게 봐서 다행이다. 하지만 어떻게 쓰면 좋을까가 문제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마지막에 나온다. 중요하다기보다 알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中권을 볼 때까지도 누가, 왜 죽였나가 알고 싶었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다. 그리고 下권에서도 두사람이 살해당한다. 혹시 살해당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시체를 놓은 것은 공안과 관계가 있었다. 명혜사에 대한 것도 中권에서 다이젠 노사가 말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다이젠 노사한테는 그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명혜사는 그곳을 찾았던 스님과 맨 처음에 살해당한 고사카 료넨이 만들어낸 우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 다른 사람들도 갇히고 만 거였다.

후리소데를 입은 여자아이 스즈코와 스즈는 같은 사람이었다. 上권에서 추젠지가 자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같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下권에서는 스즈가 스즈코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도 넘어가고 말았다.(이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마츠미야 가에 불을 지른 것은 마츠미야 진뇨, 스즈코의 오빠가 한 거였다. 하지만 부모님을 죽인 것은 스즈코였다. 이것은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사람이 어느 한부분만 잊어버릴 수 있을까? 이쿠보 기요에는 스즈코가 준 편지를 읽고 그 다음의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야 그것을 생각해냈다. 이쿠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스즈코도 마츠미야 진뇨도 아닌 바로 그때의 기억이었다.

앞에서도 나온 말인데 여기에도 여러번 나왔다. 그것은 우리는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거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우리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이것은 누구나 그렇기도 하다. 선을 통해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스님을 살해한 까닭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런 순간을 맞이해본 적 없는 사람의 질투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순간에 죽는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은 한순간의 깨달음이 아닌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추젠지 아키히코가 조사하던 곳간은 본래 명혜사에 있던 것으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었다. 곳간을 알았던 사람은 명혜사를 찾은 스님과 고사카 료넨뿐이었다. 그리고 본래부터 그곳에 있던 사람도. 곳간에는 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쥐들이 그 안에 있던 책을 갉아먹어서 거의 종이쓰레기뿐이었다. 외래종 쥐로 뉴트리아였다. 이 쥐가 여관에 나타난 거였다. 정말 커다란 쥐가 있을까 했는데 있었다. 마치 원한을 가지고 죽은 스님이 쥐떼로 환생해서 경전을 갉아먹은 것과 같다. 누군가가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제대로 알고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썼다.



희선




☆-

“사람의 마음이나 의식이라는 것은 연속된 것이 아닙니다. 연속된 것처럼 착각할 뿐이고 아침과 저녁, 아까와 지금은 전혀 다르기도 하지요. 뇌라는 것은 그 이치를 맞추려고 합니다. 돈오니 대오니 하는 것은 그러니까 아주 잠깐의 일이지요. 그 이후 쭉 인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 뒤의 수행이 중요한 것입니다.” (4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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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와 니치 | 셀수없는별처럼 2010-08-2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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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일서]テガミバチ 10

淺田弘幸 저
集英社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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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る眼

지난 유월에 나온 10권을 팔월에야 읽었다. 지난 9권은 읽고는 엄청 길게 썼는데 이번에는 간단히 쓰도록 해야겠다. 써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실제로 책을 읽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쓰다보면 길어지고 만다. 그것은 왜 그럴까? 다른 책을 봤을 때는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기도 하는데, 이상한 일이다. 조금 쓸데없는 말로 채웠다. 10권에서는 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이 바라던 일이라고 해야 할까? 라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콜드레터(동결물건)에서 열심히 편지를 배달하는 라그와 니치, 스테이크. 어느새 50건이나 해냈다. 라그의 성격은 성실함이다. 너무 열심히 해서 감기에 걸리고 만다. 라그가 누워있는 곳에 나타난 갈라드(하치노스 관장)는 아리아한테 한주 뒤까지 배달 100건을 하라고 한다. 라그한테 말하고 아리아한테는 보고하라고 했다. 라그는 쉬어야 해서 아리아가 대신 배달하러 간다.(라그는 쉬기보다 배달하러 가려고 했다) 선더랜드 박사가 아리아는 딩고도 없고 운동신경은 아주 안 좋다고 라그한테 말한다. 라그는 니치한테 아리아를 도와주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간다. 아리아는 니치한테 돌아가라고 했다가 같이 가기로 한다. 처음에 간 곳에 편지받을 사람이 없었다. 이사간 곳을 알아내서 그곳에 간다.

편지를 받을 사람은 ‘깜박임의 날’ 인공태양 조사선에 타고 있던 사람이었다. 아리아는 정말 운동신경이 안 좋았다. 툭하면 넘어졌다. 그런데 개충까지 나타난 거다. 아리아는 니치한테 전속력으로 도망치자고 한다. 니치는 개충을 쓰러뜨려야 한다며 공격해서 빈틈을 찾아냈다. 아리아는 오랜만에 심탄을 쏘는 것이어서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하니 바로 개충을 쓰러뜨렸다. 거기에 니치는 조금 감탄했다. 심탄을 쏜 것 때문에 아리아의 기억을 니치가 볼 수 있었다. 아리아의 딩고 볼트에 대한 것과 고슈에 대한 것이 나왔다. 볼트는 개로 나이가 들어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은퇴했다. 아리아도 비를 은퇴하고 하치노스를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관장(로이드)이 말렸다. 그래서 사무처리 일을 하게 되었다.

굿바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호다이 프랭클린을 찾아갔다. 이 사람은 비가 왔다고 하니까 정부의 앞잡이라면서 돌아가라고 했다. 정부 때문에 깜박임의 날 자신은 눈과 친구를 잃었다고, 이 말에 아리아는 자신의 친구(고슈)도 그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진정했다. 그리고 깜박임의 날 비행선에서 무엇을 봤는지 말해주었다. 프랭클린이 본 것은 인공태양 안에 있던 눈이었다. 그것이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이나 몸의 한부분을 빼앗아가서 세계를 비추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공태양은 살아있는 것인가, 개충과 다르지 않은데 과연 어떨까?(문지기인 시그널과 시그널리스는 본래 비였고, 세쌍둥이였다)

니치를 보낸 라그는 선더랜드 박사와 이야기를 한다. 깜박임의 날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라그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마음, 아니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밖으로 나왔다. 심탄을 쏜 것 같은……. 자꾸 그게 이어지면 라그 또한 모든 마음을 잃을 것이었다. 그곳에 실베트가 나타났는데 다행스럽게도 진정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옆에 누워있던 고슈가 깨어났다. 고슈가 깨어난 것은 좋은 일인데 라그한테 일어난 일은 대체 뭐였을까? 아마 그것 때문에 고슈가 깨어난 것일 거다. 예전의 기억도 다 찾은 듯 보였다. 가장 먼저 실베트를 불렀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그도.

짧게 쓴다고 했는데 조금 길어진 것도 같다. 마지막은 개충 카베르네 탐색에 나간 저지가 정령이 되지 못한 자인 늑대 사람과 싸운다. 이 사람은 리버스에서 일하는 약탈자 질이었다. 저지가 질한테 심탄을 쏜 것 때문에 카베르네는 질을 잡아갔다. 그리고 다음편(11권)에서 하치노스 관장이었던 로이드가 카베르네한테서 질을 구하고 리버스에 간다고 한다. 뭔가 알아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관장이었으까 다른 사람이 알아볼 텐데 괜찮을까?) 아리아가 하치노스에 돌아와서 깨어난 고슈를 보면 무척 기뻐하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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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셀수없는별처럼 2010-08-29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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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면견

오츠이치 저/김수현 역
황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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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지난달이었을지도…), 전에 도서관 컴퓨터로 찾을 때는 이 책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책이 꽂혀있을 곳에 가서 봤더니 책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다른 곳에 꽂혀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고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얼마전 우연히 이 책을 봤다. 물론 엉뚱한 곳에 꽂혀있었다. 그날 운이 좋아서 이 책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는 것을 찾아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빌려온 날 바로 읽지는 않았다. 그냥 천천히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단편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길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여기에는 네 편의 이야기가 있다.

<이시노메>에서 이시노메(石ノ目)는 돌의 눈, 혹은 돌의 여자라는 뜻이다. 이시노메와 눈이 마주치면 돌이 된다고 했다.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는 이야기는 신화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전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여기 나오는 이시노메는 본인이 아니었다. 사진 속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힘이 나타나다니 신기하기도 하다. ‘나’인 S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았다. 중학교 교사인 ‘나’는 여름방학 때 어머니가 올라갔던 산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 산에는 이시노메가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N선생과 함께 갔는데 조난당하고 만다. ‘나’는 다친 N선생을 끌고 산을 내려가지 못했다. 두사람이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방이었다. 누군가가 구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주인은 자신의 얼굴을 절대로 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시노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뒷받침하 듯 돌이 된 사람들이 정원에 있었다.

N선생은 호기심에 주인 여자가 소중하게 여긴다는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다. 호기심이 화를 불러와 N선생은 돌이 되었다. ‘나’는 N선생이 없는데 그곳에 있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산을 내려가는 길을 주인 여자한테 가르쳐달라고 했다. 하지만 주인 여자는 어머니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냐면서, 더 찾아보라고 한다. 주인 여자는 ‘나’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주인 여자가 이시노메가 아닌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가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볼 수 있을거라는 말을 해서, 지금의 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아들한테 욕심을 갖고 말았다. 어쩌면 혼자서 살아가는 게 쓸쓸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평면견>은 진짜 개가 아니고 스즈키의 왼쪽 팔에 새긴 파란 개다. 친구인 야마다의 집에 놀러간 날 중국인이 문신해준 것이다. 스즈키가 새겨달라고 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스즈키는 파란 개를 포키라고 이름 지었다. 얼마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가까운 곳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고, 포키가 사라지기도 했다. 스즈키가 볼 때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잠깐 눈을 떼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것은 그렇고 스즈키네 집 식구들이 모두 암에 걸리고 말았다. 이제 여섯 달 뒤면 자신은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포키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아버지, 엄마와 동생 모두가 암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사이가 좋아져 보였다. 자신만 따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스즈키는 왜 자신만 남겨두고 가느냐고 했다.

스즈키는 포키에 대한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나중에 혼자 남아야 하는데 개를 돌보고 책임지는 게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포키를 피부째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생각을 했다. 그런 스즈키의 마음을 알았는지 포키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오지 않았다. 포키 때문에 돈 많은 사람을 구해준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스즈키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는 찾아간다. 돈이 많으니 부탁해서 식구들이 수술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찾아갔더니 자신을 구해준 일은 고맙지만, 문신한 것에 대해서는 안 좋다고 했다. 스즈키는 포기는 그저 문신이 아니고 자신한테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그때 아버지, 엄마 그리고 동생의 마음을 안 듯했다. 포키는 스즈키한테 행운을 가져다준 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메>는 ‘나(칸 코헤이)’와 키조노 아츠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들어낸 상상의 여자아이이다. 지어낸 것이었는데 하지메가 실체를 가지고 ‘나’와 키조노 앞에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하지메가 했다고 떠넘겼는데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하지메의 환각은 8년이나 나타났다. 그리고 버스사고로 죽는 것으로 사라진다. 환각이니까 짧은동안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지메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나’ 코헤이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 재미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하지메한테는 하지메만의 세계가 있었다. 그곳에서만 살았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나’와 키조노가 있는 세계에 온 것이다. 다른 사람한테는 가짜일지 몰라도 ‘나’와 키조노한테는 하지메가 진짜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있는 <블루>도 괜찮았다. 가장 볼품없이 생긴 인형인 블루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죽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움직이는 인형이라서 무서운 이야기인가 했는데, 예상을 깨고 따듯하면서도 조금 슬픈 이야기였다. 그리고 테드 한사람뿐이었지만 블루를 좋아해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만들어진 왕자, 왕녀, 백마는 블루가 테드한테 사랑받는 것을 질투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 것은 짧게 쓰고 말았다. 갈수록 힘이 빠져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모습 같다. 아니, 모든 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오츠이치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블루>에 나온 테드는 오츠이치가 자주 쓰는 인물의 성격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테드처럼 난폭함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과 관계맺는 것을 잘 못하는 것을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오츠이치가 자주 쓰는 특징은 사람들과 관계맺는 것이 서투른 것이다.



희선




☆마음에 남다

블루는 갑자기 숨이 멎는 것 같이 괴로워졌다. 인형이므로 본래부터 숨은 쉬지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가슴속 괴로움이 슬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까지도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 것은 종류가 달랐다.

<블루>에서,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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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붙일 데 없는 아이 | 셀수없는별처럼 2010-08-27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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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발이 닿지 않는 아이

권하은 저
문학동네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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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고 생각난 것은 ‘마음 붙일 데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다니 좀 재미없는 일이다. 뭔가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것도 생각났다. 그것은 자신을 ‘발없는 새’ 라고 한 장국영이다. 발이 닿지 않는 것이나, 발이 없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발이 닿지 않을 때는 과감히 내려오면 된다. 아마도 발이 땅에 닿았을 때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봐 두려운 것일 거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토끼, 김군이라고 하는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이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학교에서 그런 것이다. ‘나’는 ‘군중1, 군중2……’ 이런 식으로 번호를 붙였다. 그런데 이게 더 외우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하게 앞번호는 외워도 그게 꽤 늘어나면 몇 번인지 모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번호가 앞이라는 것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같이 어울린 것이 아닐까. 이것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나’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은 것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누군가가 자신한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 듯하다. 이렇게 멋대로 생각한다고 불만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훔치는 사람은 애정결핍일 가능성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해 마이너스의 일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군중1이 그러기를 바란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한테 동정받고 싶지 않다면서 ‘나’ 또한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만다.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동정이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뭐라고 쓸 것인가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떠올린 것과 쓴 것이 전혀 같지 않다. 쓰려고 했던 것은 거의 쓰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귀찮아서다. 그러고 보면 ‘나’도 무엇이든 귀찮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느리게 해도 괜찮았던 곳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트에서였다. 사람들이 왜 웃고 넘어갔는냐 하면, ‘나’는 그곳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슬프기도 한 것인데,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거 보면서 실제로 그런 곳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참 게을르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게으르기는 해도 실제로 일을 하면 그것만 한다. 그런 내 성격이 싫다.

아르바이트 할 곳도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을 수 없겠지만 ‘나’는 희망을 주웠다. 고물을 줍던 할머니 돌아가신 거 동사무소 같은 데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 대한 정보를 너무 조금 썼다. 순서가 바뀌기는 했지만, 엄마는 다른 사람과 떠나고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는 시설에 들어가기도 하고 고모네 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바랄만 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찍부터 체념한 듯하다. 그래서 발이 닿지 않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나’는 할머니의 손자를 데리고 나왔다.(위에 쓰기도 했다) 조금은 발이 땅에 닿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한테는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느리다면 느린대로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가 그랬으면 좋겠다.



희선




☆마음에 남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얼마나 복잡한 건지 잘 알고 있으면서, 나는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버린다. 그건 상처를 많이 받아본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방어본능인 거 같다. 너무 상처를 받다보니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어떤 희망이나 믿음도 걸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군중1은 날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줬으며, 날 전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친구처럼 군다. 사람은 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군중1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그 녀석의 단순하고 순진하며 강한 면이 결국 이 세상을 더욱 끔찍하게 만든다 해도, 내게는 분명 따스하고 고마울 것이다. (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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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어려운 선(禪) | 셀수없는별처럼 2010-08-2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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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서의 우리 (중)

교고쿠 나츠히코 저/김소연 역
손안의책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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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권도 재미있게 읽고 싶다는 말을 썼는데,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았다. 앞에서는 다이젠 노사의 말, 뒤에서는 추젠지 아키히코의 선(禪)에 대한 말이다. 그런데 또 이런 말도 있었다. 선(禪)이라는 것은 말로 나타낼 수 없다는. 말로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꼭 불교인 종교인만이 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려나? 누가 어떤 생각으로 살인을 한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알고 싶다.

명혜사에 대한 것이 나온다. 여기 있는 스님들은 여러 종파에서 명혜사를 조사하기 위해서 왔던 것인데, 조사는 흐지부지되고 명혜사라는 우리에 갇히고 말았다. 종파 때문에 살인을 한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것과는 관계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뇌파측정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대립인가 라는 것도 나왔다. 이것 또한 아닌 듯하다. 그러면 대체 무엇일까? 명혜사에서 두번째 살인이 일어났다. 용의자는 절에 있는 모두가 되었다. 시체를 놔둔 것이 꽤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살해당한 사람이 사라지고, 살해당하기 전에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살해당한 사람을 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사람은 거짓말을 한 것 같고, 한사람은 목소리만 들은 것이니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가 죽였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읽는 것 같다. 그것도 있지만 여러가지 일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나에도 관심이 있다. 마츠미야 가에 일어난 화재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때 살해당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라진 마츠미야 스즈코와 후리소데를 입은 스즈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세키구치가 들은 자라지 않는 미아에서 오래전에 나온 사람은 마츠미야 스즈코였고 다시 나타난 것은 스즈가 아닌가 싶다. 스즈코와 스즈에 대해 알아보려고 이쿠보 기요에가 절 근처에 살고 있는 진슈를 찾아갔지만 별다른 것은 알지 못했다. 마츠미야 스즈코한테는 오빠가 있었다. 오빠인 마츠미야 히토시는 집에 불이 난 뒤에 출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명혜사에 온 듯도 하다. 마지막에는 이 사람을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온다.

철서라는 것은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만들어진 듯하다. 길게 말했는데 내가 알아들은 것은 이것밖에 없다니, 어쩌면 이것도 제대로 안 것은 아닐지도 모르겟다. 명혜사의 폐쇄성을 깨고 싶어한 사람과 그것을 반대한 사람의 다툼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과연 어떨지……. 이것은 뇌파측정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대립과 같은가? 中권에서 풀린 수수께끼는 거의 없다.(명혜사에 대한 것은 조금 풀렸다고 해야겠다) 下권을 보면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선




☆-

“사는 것이 곧 수행이고, 살아 있는 것이 깨달음일세. 그저 족한 것을 아는, 그거면 되는 거야.”
.
.
.

“그렇지. 깨닫는 것도 필요해. 자신에게 본래 불성이 갖추어져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서야, 불성을 갖고 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러니 불성에 눈을 돌린다, 불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즉 《십우도》의 전반 부분은 역시 중요한 거야. 하지만 그 결과 대오하더라도 결코 그게 끝은 아니지. 그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뿐이고, 그 뒤에는 계속 살아가거든──계속 수행하지 않으면 거짓이다, 잘못이다, 《십우도》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 깨달은 뒤의 수행이 중요한 거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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