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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록이기도 | 셀수없는별처럼 2017-08-3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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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저
돌베개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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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잘도 흘러간다. 지구가 도는 것을 시간이 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세계 곳곳에서는 날마다 사람이 죽겠지. 그것뿐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기도 하겠다. 세상에 온 아이 모두 부모가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낳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낳은 아이도 있겠지.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해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게 꼭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닐지도. 그 아이를 따르고 좋아하는 동물도 괜찮겠다. 이상하게 난 무엇이든 다 가진 사람보다 무언가 모자란 사람을 더 생각한다. 내가 그 쪽이어서 그럴지도. 아니 부모가 있고 가진 게 많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겠지. 사람은 다 모자란 부분이 조금은 있을 거다. 살면서 그것을 채우려 하는 사람도 있고 끝내 채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꼭 채워야만 할까.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대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해도 나도 가끔 헛헛함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그게 사라질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거짓말이다》를 보고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온 민간 잠수사 이야기를 조금 알았다. 그것은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았다. 이것 또한 그렇다. 조금은 실제와 다르게 썼겠지만 친구한테 구명조끼를 벗어주거나 친구가 살게 도와준 이야기는 정말일 거다. 사람은 큰일이 일어나면 자기 몸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 자신만 살려고 하는 사람도 조금 있지만. 세월호에서는 선장이나 선원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 사람들은 배가 위험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다니. 그렇게 말하기보다 차례를 잘 지켜 나오라고 하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에 부모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때 아이한테서 문자를 받고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 못한 부모 마음이 어떨지. 배는 본래보다 두시간 반이나 늦게 떠났다고 한다. 제시간에 갔다면 그런 일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은 아닐지도(배가 늦게 떠났다는 건 실제와 다를까). 벌써 일어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어떻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난 이렇게 책을 볼 때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하겠지만, 그때 아이와 식구를 잃은 사람은 그때부터 아직도 생각하겠다.

 이 책을 보는 데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말하면 책을 보려다 주춤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래도 보기를 바란다. 영화 <타이타닉>은 엄청난 일을 사랑으로 포장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간이 흘렀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언젠가 세월호 참사를 그런 식으로 영화로 만들까. 그런 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면 80년에 일어난 일이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나 그밖에 예전에 일어난 일을 영화로 만들었구나. 그런 건 잘 만들어야겠다. 소설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남의 슬픔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할까 하는 마음과 그때 일을 많은 사람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마지막 소설 <소소한 기쁨>에 그런 작가가 나온다. 그 작가보다 편집자 소중과 소중이 맡은 다른 작가 이야기가 더 많지만. 소설에는 다른 이름으로 나오지만 세상을 떠난 작가는 신영복 님이 아닐까 싶다. 힘들다 해도 어떤 일은 써야겠지.

 그날 2014년 4월 16일에 배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주 없지 않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더 많다. 남은 사람 말이다. 살아 돌아온 아이, 배 안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온 잠수부, 죽은 아이 부모, 할머니……. 목숨을 잃은 304명 한사람 한사람을 다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2015년에 만난 시집 《엄마, 나야》를 보면서 꿈이 많았을 아이들이 죽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와 살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 심부름을 잘한 형수. 형수는 그림을 잘 그렸다. 할머니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형수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돈을 벌어 할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려 했다. 엄마하고만 살고 사진작가가 되려 한 재서, 어릴 때 헤어진 엄마를 수학여행 가기 전에 찾아가 만난 찬우. 정후 아버지는 여름방학에 정후와 여기저기 다니려고 했지만 정후와 함께 가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정후 아버지는 여권에 출국도장이 찍힌 걸 보면 아직도 정후가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슬프게 들린 말이지만, 보이지 않고 볼 수 없을 뿐이지 정후는 지금도 세계 곳곳을 다니고 있을 거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고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그 일만 그런 건 아니구나.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일을 하고, 의심도 하기를. 마음 아픈 사람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해도 조금은 헤어리면 좋겠다. 사건 사고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다.



희선




☆―

 “사람은 모두 한 그루 나무란다. 저마다 자리에서 저마다 방식으로 자라는 나무. 이 나무가 결코 저 나무가 될 수 없고, 저 나무가 또한 이 나무가 될 수 없지. 그 둘을 하나로 만드는 모든 일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었어.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우리 둘!”

 실망하는 학생들을 보고 이렇게 살짝 희망도 주셨지요.

 “저마다 자리를 지키며, 저마다의 가지를 뻗고 꽃과 열매를 맺지만, 땅속 깊은 곳에선 두 나무 뿌리가 만나 인사 나누고 엉켜 평생을 보내기도 한단다. 내게 ‘사랑’은 땅속 그 뿌리들과 같아.”  (<제주도에서 온 편지>,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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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나타내야 한다 | 셀수없는별처럼 2017-08-3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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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억술사 3

오리가미 교야 저/유가영 역
arte(아르테)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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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피할 정도로 말로 하는 편이 좋아. 친구 사이란 어려워서 말이야. 어른이 되면 더욱 어려워지지. 일이나 인간 관계 같은 여러 굴레가 늘어나면 단지 좋아해서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는 적어져. 그래서 솔직하게 친구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할 수 없게 돼.”  (38~39쪽)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아.”  (157쪽)



 책이 세권이면 마지막까지 다 보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한권씩 읽고 나서 이런 말을 하다니. 1권과 2, 3권 이런 식으로 보면 괜찮을 것 같아. 첫번째로 끝났다고 말하기 애매해서, 이야기를 더 쓴 건 아닐까 싶어. 난 첫번째 것 뒷이야기가 더 알고 싶기도 했는데. 다음에 나쓰키와 메이코라는 이름이 나와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했어. 그렇다고 기억술사까지 다르다니. 아니 기억을 지우는 힘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봤어. 3권 네번째에 나오는 <마지막 이야기 : 고백>을 보다가 어렴풋이 알았어. 확실하게 그렇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혹시 그렇지 않을까’ 했어. 확실하게 그 말이 나오고 그 생각이 맞았구나 했지. 첫번째도 그렇지만 두번째와 세번째도 기억술사를 찾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야.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찾기가 아주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아.

 이노세와 나쓰키는 요리사 마리야 슈 기억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어. 마리야 슈는 우연히 리나가 말하는 ‘기억술사’ 이야기를 듣고 조금 관심을 갖게 됐어. 마리야는 어렸을 때 요리 대회에 나가고 일등을 했는데, 거기에는 도가미 세이이치가 있었어. 마리야는 도가미가 한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여겼어. 그런데 누군가한테 밀려서 마리야는 도가미 음식을 엎어버렸어. 마리야가 그때 미안하다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열다섯해가 지나고 마리야는 어떤 파티장에서 도가미를 만나. 마리야는 거기에서 도가미한테 또 실수하는데 미안하다는 말보다 옷을 빨라면서 돈을 줘. 그냥 미안하다 말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도가미가 누구한테나 붙임성있게 말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어. 도가미는 뭐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마리야는 이런저런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 난 마리야만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생각 많이 해서 마리야 마음 알 것 같기도 해.

 두 사람을 보니까 무엇이든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생각났어. 마리야와 도가미는 둘 다 요리하는 사람이야. 마리야는 도가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고 도가미한테 인정받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었어. 마리야는 어렸을 때 자신이 도가미 음식이 수수하다고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마리야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맛있다는 거였는데. 나중에 만났을 때 마리야가 편하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마리야는 도가미한테 자기 마음을 말해. 마리야만 도가미한테 말하지 못한 건 아니기도 했어. 도가미는 마리야한테 옛날 일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마리야가 만든 요리 맛있다고 말해. 실력이 비슷한 사람도 서로 인정받고 싶어할까. 자신은 자신대로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가 인정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 마리야가 왜 기억술사를 찾았는지 말하지 않았군. 마리야는 자기 기억이 아니고 도가미 기억을 없애고 싶다고 했어. 남의 기억을 멋대로 지우는 건 안 되지. 첫번째 책에는 그런 것도 나왔지만.

 나쓰키가 기억술사를 찾는 이노세를 도운 건 친구 메이코가 기억술사가 아니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였는데, 나쓰키는 이노세를 그만 돕기로 해. 메이코가 기억술사라 해도 받아들이겠다면서. 이건 이노세한테 한 말은 아니군. 나쓰키와 친한 친구라 해도 메이코가 자주 나오지 않은 까닭을 깨달아야 했는데. 메이코가 기억술사가 아니다는 건 알았어. 나쓰키는 메이코한테 이노세하고 한 일을 말하고 메이코한테 기억술사인지 아닌지 물어봐. 그 사람 모르는 데서 알아보기보다 그 사람한테 바로 물어보면 되는데, 이렇게 말해도 그게 어렵다는 거 나도 알아. 그런 말 하면 상대가 싫어할지도 몰라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는 거겠지. 마리야도 자기 멋대로 생각했어. 1권에서 기억술사였던 사람은 그 뒤로 그만뒀어. 2권에 이름이 같은 사람이 나와서 헷갈렸는데, 한자는 다를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 기억을 지우는 힘이 있다 해도 그 힘을 쓰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봐.

 기억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은 걸까.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희미해지는데. 기억이 아주 조금이라도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해. 기억이 사라졌다는 걸 모르면 별 문제없을까. 그건 기억이 사라진 사람보다 둘레 사람이 알아채더군요. 기억이 없으면 둘레 사람이 조금 슬퍼하겠어. 2, 3권에는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지만 1권에는 그런 것도 나와. 슬프고 힘들고 부끄러운 기억도 자신이다 생각하면 괜찮겠지.



희선




☆―

 “기억을 지운다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에요. 그 기억이 당신 것이든 남의 것이든.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한부분을 지움으로 그 사람은 영원히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고요.”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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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난 기억술사 | 셀수없는별처럼 2017-08-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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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억술사 2

오리가미 교야 저/민지희 역
arte(아르테)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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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2016) 일월엔가 우연히 이 책을 알고 샀는데, 책을 좀 늦게 받았다. 내가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인터넷 책방에서 그렇게 여긴 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잘못할 수 있겠지. 한해 넘게 지난 일인데 그걸 아직도 기억한다니(뒤끝 있구나).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생각 안 좋을 테지만, 기분 안 좋은 일은 쉽게 잊지 못한다. 사람은 그런 면이 있다. 살다보면 좋은 일뿐 아니라 안 좋은 일도 일어나는데, 좋은 일은 그때가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것을 잊지 않으려면 적어두고 가끔 펴보라던데. 적어서 잘 기억할 수도 있지만 적어두었다고 마음 놓으면 적어둔 일을 잊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펴보라는 거구나. 올해부터는 그렇게 해볼까 하고 쓰기는 하는데 좋은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기쁘게 여기면 괜찮을지도. 그러면 날씨가 좋은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되고, 잠깐이라도 걸은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되겠지.

 이 책은 모두 세권이다. 첫번째는 좀 다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2권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지난해에 내가 두번째를 읽지 않은 건 첫번째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두번째는 첫번째에서 시간이 흐른 뒤다. 그렇다 해도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기억술사가 바뀐 건 아니겠지. 1권 마지막에는 기억술사가 누군지 나온다. 그것을 아는 건 책을 보는 사람뿐이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모른다. 아니 잊는다고 해야겠다. 마지막은 정말 피해자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알게 된 걸 잊고 싶지 않았을 거다. 기억을 지우는 일도 그만두게 하고 싶어했는데. 1권에서 기억술사를 찾으려 하고 찾아내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여기 나오는 이노세 깃페이가 아는 것 같다. 1권에도 이노세가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잠깐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이노세는 자신이 알던 사람이 기억술사를 찾으려 한 일을 잊어버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기억술사를 조사했나보다. 열해나. 네해 전에 중학생 여자아이 넷과 중학교에 가까운 곳에 있는 빵집에서 일하는 남자 기억이 이상해진 걸 알고 이노세가 그 일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네해가 지난 다음에야 그때 중학교 보건 선생님과 중학생이었던 오사키 나쓰키를 만났다. 그건 기억술사가 다시 움직여서다. 나쓰키는 한달쯤 전에도 이노세를 만났는데 그것을 잊어버렸다. 나쓰키가 기억술사를 만난 걸까.

 나쓰키는 이노세가 예전에 자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쓰키 자신이 만든지도 몰랐던 가게 포인트 카드와 휴대전화기에서 기억술사를 알아본 흔적을 보고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나쓰키는 기억술사를 찾으려는 이노세를 돕기로 한다. 말은 확실하게 하지 않았지만 이노세가 나쓰키 친구 메이코가 기억술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나쓰키는 진짜 기억술사를 찾으려 했다. 나쓰키와 메이코는 친한 친구기는 한데 두사람이 나오는 건 적다. 중학생 때 이야기에 나오는구나. 나쓰키와 메이코가 중학생일 때 다른 한 친구가 안 좋은 일을 당하고 그걸 잊고 싶어했다. 그 아이는 우연히 기억술사를 알고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 자기 기억뿐 아니라 친구 기억까지. 중학생 때는 그런 일 더 힘들겠지. 어른한테 말하고 해결하는 게 좋았을 텐데. 어쩌면 창피한 마음이 커서 차라리 기억을 지우는 게 낫다 생각한 건지도. 나도 잠깐 그런 생각해봤다. 내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 있었던 일을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를 대하는 걸. 그걸 상상만 해도 내가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다. 안 좋은 일을 잊어버리면 그때는 편할지 몰라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두려움이나 기분 나쁜 게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옅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독자 모델인 리나는 자신이 기억술사를 만나고 어떤 사람을 만난 기억을 지웠는데, 그게 어떤 건지 알려고 한다. 기억술사를 만나고 기억을 잊어버린 사람은 기억술사를 만났다는 일조차 잊고 살기도 하는데 리나는 별났다. 같은 일이 되풀이 될 뻔했지만 리나는 두번째에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리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만, 그 사람을 만나고 기쁜 일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이노세와 나쓰키는 기억술사를 만났다는 리나를 만나고 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한가지를 알게 된다. 그건 기억술사가 젊은 여자라는 거다. 기억술사가 누군지 중요하겠지만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아주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은 그것을 잊고 사는 게 낫기도 하겠지. 잊지 못해 아예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구나.

 자기 뜻과 다르게 기억이 사라지면 싫을 것 같기도 하다. 잊어버리면 자신이 무엇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약하면서도 단단하기도 하다. 시련을 겪고 조금 자란다. 이건 사람뿐 아니라 우주 모든 것이 그렇다. 이 말 알지만 나도 안 좋은 일 별로 겪고 싶지 않다. 가끔 어떤 일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한다. 그래도 그것을 잊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게 바로 달라지기를 바라고 애쓰지 않는다(애쓴 적도 있던가). 그냥 내버려둔다. 이것은 잊어버리는 것과 같을까. 아니 아주 잊는 것과는 다를 거다. 시간이 가면 아주 조금은 바뀌겠지. 마지막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조금 괜찮았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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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채운 이야기 | 셀수없는별처럼 2017-08-2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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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묻힌 도시의 연인

한지수 저
네오픽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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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폼페이를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터지고 도시 하나가 화산재에 묻혔다는 이야기.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일은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는데. 한국 역사도 잘 모르는데 다른 나라 역사를 알까. 아니 어쩌면 학교 다닐 때 한번쯤 들어봤을지도. 좀더 잘 들어뒀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나.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볼 수도 있을 테지만 게을러서. 79년 8월 24일에 베우비우스 화산이 터지리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까. 어딘가에는 그걸 알 수 있었다는 말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화산이 터지는 건 자연재해다. 그런 재해는 사람이 막을 수 없으니 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어떤 조짐이 보이면 잘 보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빨리 피해야 한다. 79년에는 좀 어려웠을까.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때 과학이 있었을 테니까. 그때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조금은 알다니 신기하다.

 1594년에 수도관 공사를 하다 폼페이 고대 신전과 가게에서 죽은 사람 뼈를 찾아냈다. 어디선가 보니 화석이 되려면 용암에 묻혀야 한다고 했다. 폼페이 흔적이 남은 건 그 때문이다. 79년이 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많은 사람이 그 일을 알았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서 묻혔구나. 기록은 있었겠지. 그건 폼페이만 그런 건 아니다. 폼페이보다 더 오래전에 사라진 공룡뼈도 묻혔다. 자연재해는 지구가 인류한테 보내는 경고 같은 걸까. 그런 게 아주 없는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다. 지구 자체가 본래 그런 거다 생각해야 한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전에는 날씨가 안정되지 않았을 거다. 지금도 지구가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겠지. 움직인다 해도 엄청난 재해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좋겠다. 난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구나.

 오래전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알기는 어렵다. 그때 기록이나 남아있는 자료로 생각해야 한다. 1594년 폼페이 흔적을 찾아낸 사람들은 ‘이런 게 묻혀 있다니’ 하고 기뻐했을지 놀라워했을지. 연구는 그때부터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알아보는 사람 있을까. 폼페이가 있었던 곳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 그곳 이야기를 쓰다니. 몸 파는 여자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데, 거기에 마음을 두기는 어렵다. 여러 사람이 나와서. 한사람 한사람을 잘 만나면 조금 정리가 되기는 한다. 지금 폼페이에서는 집정관 선거가 있었다. 오줌통을 나르는 베루스, 베루스 엄마 그라티아, 둘의 주인마님 에우마키아와 에우마키아 아들과 딸. 에우마키아는 실제 있었던 사람인가보다. 오래전에는 정말 오줌으로 빨래를 했을까. 그걸 보니 한국에서는 거름으로 쓰던 게 생각났다. 제목에 나오는 사람은 누굴까 했다. 그건 베루스와 플로시아다. 베루스는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노래하는 플로시아를 보고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플로시아는 세탁소 주인 아내였다. 그걸 알고도 베루스는 편지를 써서 플로시아한테 보내지만 플로시아는 그걸 나중에 본다.

 그때는 남의 아내를 좋아해도 괜찮았을까. 플로시아가 남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누군가를 좋아하면 다른 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베루스는 플로시아가 검투사 이야기하는 걸 듣고 검투사가 되기로 한다. 검투사가 되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었다. 플로시아 남편이 일을 꾸며서 베루스는 검투 경기에 나간다. 그날은 8월 22일이었다. 베루스는 검투 경기에서 지고 크게 다쳤다. 에우마키아와 엄마 그라티아가 베루스를 살리려고 하지만 어려웠다. 시간을 흐르고 79년 8월 24일이 다가왔다. 베루스는 플로시아와 마지막을 함께 보낸다. 그렇게라도 해서 두 사람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좀더 일찍 플로시아가 베루스한테 자기 마음을 말했다면 좋았겠지만. 아니 끝은 벌써 정해져 있었다. 다 아는 건 아니었지만 책을 보면서 여기 나오는 사람은 거의 죽겠구나 했다. 벌써 일어난 일을 아는 건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는 그때 문화가 나오기도 한다. 문란한 성, 무덤 시체를 훼손하고 죽은 여자 초상화를 사고 팔기도 했다. 가끔은 산 사람 초상화도 끼여 있었다. 정말 사람 뼈로 물감을 만들었을까. 그것도 자료를 보고 쓴 것이겠구나. 여러 가지 일은 작가가 상상했겠다. 그런 일 재미있었을 것 같다.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산다 해도 사람이 살아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도 하다. 무언가를 바라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거. 죽음이 다가올 때도 다르지 않은 사람도 있다니. 괴롭게 죽는 것보다 한순간에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살았을 때 서로 잘하는 게 낫지 않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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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유치하지만 | 종이비행기 2017-08-2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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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를 생각하다 예전에 제가 쓴 것을 읽어보니 유치하면서 재미있는 게 있더군요. 그걸 썼다는 건 기억하지만 자세한 건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이 쓴 것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립니다. 그때는 거의 기억했는데. 술술 잘 읽힙니다. 제가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끝이 어떨지 다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그런 것도 썼어요. 지금이라고 아주 새롭고 다른 걸 쓰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거의 못 쓰는군요. 유치해도 쓰기라도 하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쓴 거여서 그런지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신이 쓴 거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네요. 좀 유치해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보다보면 벌써 끝일지도.

 

 

 

 

 

 

 

행복은 가까이에

 

 

 

 

 방값을 올려주지 않으면 그만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다. 이곳에 산 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좋은 방은 아니지만 방값이 싸서 오래 살았는데 옮겨야 할 때가 찾아왔다.

 

 정보신문을 뒤져보아도 좋은 곳은 없었다. 좋은 곳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돈에 맞는 곳이 없었다. 방을 빼야 할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이 세상에 내 한몸 누일 곳이 없다니 무척 슬펐다. 정보신문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 아주 싼 방이 보였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주인한테 전화를 하고 찾아가 보았다. 싼 방이어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는 달리 부자들만 사는 곳이고 이층집이었다. 겉만 멋지고 지하에 있는 방은 아닐까 했는데, 아주 좋은 방이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방, 정말 여기에 쓰여 있는대로 받으실 거예요?”

 

 “네, 그럴 거예요.”

 

 주인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이층집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다른 식구는 남자한테 집을 물려주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벌써 집이 있다니 부러웠다.

 

 “저기…… 내일, 아니 오늘 바로 들어와도 괜찮을까요?”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꼭 지키세요. 밤 12시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말고, 다른 방 문도 열지 마세요. 그리고 저한테 할 말이 있으면 계단 옆에 있는 인터폰으로 하세요. 혹시, 밤늦게 들어오지는 않겠죠?”

 

 “날마다 이층에 계세요?”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네, 알았습니다. 다른 방에도 누군가 살아요?”

 

 “아, 네.”

 

 “그런데 12시 넘어서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12시 넘어서는 괜찮아요. 정각 12시만 아니면 됩니다. 이제 그만 물어보시죠. 자꾸 물어보시면…….”

 

 “아, 네 미안합니다.”

 

 짐은 조금밖에 없었다. 한곳에 오래 살았는데도 늘어난 것이 별로 없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밥은 거의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노트북 컴퓨터를 썼으니 짐이 없을만 했다. 이제는 뭔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주인 남자가 방을 빼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방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짐이 이것밖에 없어요?”

 

 “네, 하하.”

 

 “여기 열쇠 받으세요.”

 

 “제 집은 아니지만 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쉬세요.”

 

 “네, 아저씨도.”

 

 “아저씨라뇨? 제 이름은 김유진이에요. 이름으로 말하면 좋겠네요.”

 

 “그러죠.”

 

 “아가씨는 이름이 뭐죠?”

 

 “저는 민수영입니다.”

 

 “제가 말한 거 잊지 않았죠? 꼭 지키세요.”

 

 “네.”

 

 새로운 곳에서 사는 건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나는 늘 설렜던 것 같다. 전보다는 나아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곳도 좋은 곳이어서 그런지 무척 설렌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하지 마라 하면 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기도 한다.

 

 갑자기 배가 아파 달려간 화장실에서 나온 시간은 정확하게 12시였다. 어디선가 ‘댕~ 댕~’ 소리라도 들릴 것 같았지만, 조용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방에서 누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무척 놀라 화장실 문을 조금 연 채 밖을 내다보았다. 방에서 나온 사람은 할머니였다.

 

 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부엌을 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해서 할머니가 나온 방문을 열려고 했는데 잠겨 있었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본 건 도대체 뭐였을까? 살아 있는 사람이었을까 귀신이었을까? 할머니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밤에 한번 더 보기로 했다.

 

 낮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밤이 오기만 을 기다렸다. 11시 59분에 내 방을 나가서 12시에 부엌에 갔다. 정신만 차리면 괜찮다 생각하고 방문을 노려보았다. 12시가 되자 천천히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나왔다. 그렇게 무서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있는 부엌으로 왔다. 나를 보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웃어 보였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사라졌다. 할머니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를 만난 뒤부터 낮에도 할머니가 보였다.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주인 남자한테 말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쩌면 주인 남자는 알고 있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게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귀신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알고 싶었다.

 

 밤 12시에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깜짝 놀라는 듯 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왔다. 금세 사라지지도 않았다.

 

 “아가씨, 나 안 무서워?”

 

 “하하,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 말할 수 있네요. 그동안 왜 한마디도 안 했어요?”

 

 “아가씨가 나한테 말을 안 해서 그랬지.”

 

 “아, 예.”

 

 할머니는 부엌 식탁에 앉기도 하고 차도 마셨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 이럴까?

 

 “할머니, 귀신 맞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왜 여기에 계세요? 다른 세계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 내가 이곳에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때까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늘 집에만 있으니 찾을 수가 없구랴.”

 

 할머니한테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오랫동안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행복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새로 태어나면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자는 약속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할머니가 다시 태어났을 때 알아보지 못할까 싶어서…….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럼.”

 

 “왜 지금까지 찾으러 나가지 않았어요?”

 

 “내가 귀신이기는 해도 사람이 도와줘야 해. 누가 나하고 같이 가야 하거든.”

 

 “주인 남자분한테 부탁하지 그러셨어요.”

 

 “나도 여러 번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

 

 “그런데 할머니는 누구한테나 보이세요?”

 

 “그렇지는 않아.”

 

 남자는 할머니 증손자였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는데 남자한테는 보였다.

 

 다른 사람이 할머니를 볼 수 없었지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은 퍼졌다.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만 남겨두고 모두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남자는 자신이 남겠다고 했다.

 

 

 

 밤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자서 아침에 늦잠을 잘 때가 많았다.

 

 그런 어느 날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은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자다 점심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문을 여니 뭔가 떨어졌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이었다. 그것을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층에는 한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올라갔다. 방문이 여러 개 있었다. 어느 방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렸다.

 

 “여긴 무슨 일이죠?”

 

 “깜짝 놀랐잖아요.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저한테 할 말 있으면 인터폰으로 하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해요?”

 

 “네?”

 

 “이거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들어 보였다. 남자는 별거 아니다 했다.

 

 “저 혼자 여기 가라는 말씀이세요? 솔직히 말하면 저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같이 가면 안 돼요?”

 “…….”

 

 남자는 망설이다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한분 더 같이 가요. 유진 씨도 아는 사람인데…….”

 

 남자는 놀란 얼굴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저는 할머니 소원 들어드리고 싶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다잖아요. 그리고 놀이공원이라면 할아버지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할아버지는 아이일 거 아니예요.”

 

 

 

 “할머니, 기쁘죠?”

 

 “그래. 아가씨 고마워.”

 

 “할머니 일 때문이지만 저도 기뻐요. 소풍가는 것 같아서.”

 

 놀이공원에 간다는 기쁨에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일층에서 나는 소리에 남자가 깨었는지 부엌으로 들어왔다.

 

 “뭐하세요?”

 

 “김밥 싸요. 조금만 하면 다 돼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런 거 뭐하러 싸요. 가서 사 먹으면 되는데.”

 

 나는 그냥 웃었다.

 

 하늘은 맑고 소풍가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웃음 가득한 얼굴인데 남자는 어두운 얼굴이었다.

 

 “유진 씨, 좀 웃어요.”

 

 “…….”

 

 놀이공원은 사람으로 붐볐다. 할머니가 걱정스러웠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할머니도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에 나와서 그런지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할머니, 혼자 다니지 말고 저희하고 함께 다녀야 해요. 세상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어요.”

 

 “유진 씨, 여기 놀러온 거지만, 할아버지 찾으러 온 거기도 하잖아요. 할머니 혼자 다니고 싶으실지도 몰라요. 그렇죠, 할머니?”

 

 “맞아, 나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남자는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돕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있었을 거다. 혼자 그 커다란 집에 남은 것을 보면 말이다.

 

 “할머니, 돌아다니다 12시 30분에 여기에서 만나요. 유진 씨는 저하고 놀이 기구 타러가요.”

 

 할머니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남자와 나는 걸었다. 식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갑자기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 놀이공원에 처음 와봐요. 유진 씨하고 할머니한테 무척 고맙네요. 유진 씨도 할머니 걱정 많이 했지요?”

 

 “…….”

 

 “제 느낌인데, 오늘 여기에 할아버지 오셨을 것 같아요.”

 

 우리 앞에 회전목마가 나타났다.

 

 “유진 씨, 우리 이거 타요. 별로 무섭지 않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괜찮으니 수영 씨 혼자 타세요.”

 

 “그런 게 어딨어요?”

 

 나는 남자를 끌고서 함께 회전목마를 탔다. 내 손을 뿌리치지 않을까 했는데 함께 타서 고마웠다. 놀이기구는 회전목마만 탔다. 사람들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남자도 나와 비슷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할머니를 걱정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과 놀이기구 타는 사람을 보는데 할머니가 보였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할아버지 환영도 보였다.

 

 “유진 씨, 저기 할머니 좀 보세요.”

 

 남자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할머니에게 가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려봐요. 유진 씨도 할아버지 환영 보여요? 할머니 얼굴 좀 보세요. 무척 행복해 보여요. 할머니에게 시간을 드려야죠.”

 

 얼마 뒤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섯 살 남자아이를 찾는 거였다. 남자는 더 기다릴 수 없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할머니와 남자아이가 먼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할머니!”

 

 할머니는 밝게 웃었다. 남자아이 엄마 아빠를 찾아주라는 말을 하고는 조금씩 희미해졌다.

 

 “할머니…….”

 

 

 

 할머니가 떠나고 두 해가 흘렀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더니 유진과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곧 아이를 낳을 거다.

 

 “유진 씨, 일층 보러 오늘 온다고 했어요?”

 

 “아마 그럴 거예요.”

 

 “좋은 사람이 오면 좋겠네요.”

 

 초인종이 울렸다. 유진이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을 보고 우리 둘은 무척 놀랐다. 지난해 놀이공원에서 만난 남자아이 엄마와 아빠였다. 한 해 만에 만난 것이었는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만난 사람 같았다.

 

 “유진 씨, 아기가 나오려나봐요.”

 

 “그래요? 저기, 집 좀 부탁드릴게요.”

 

 병원에 갔지만 아기는 빨리 나오지 않았다. 아기를 낳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 웃고 배를 쓰다듬었다. 할머니를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힘내. 곧 예쁜 딸을 만날 거야.”

 

 할머니 말처럼 딸이었고 아주 건강했다.

 

 “유진 씨, 아기 예뻐요?”

 

 “그럼요. 누구 딸인데.”

 

 “있죠, 저 할머니 만났어요. 어쩌면 할머니가 우리 딸로 다시 태어난 걸지도 몰라요.”

 “정말 그럴까요?”

 

 “네.”

 유진과 나는 할머니가 우리 딸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남자아이 식구는 일층으로 이사오고, 남자아이는 딸아이를 보자마자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남자아이와 딸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보였다. 우리는 놀랐지만 곧 웃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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