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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생극장

노명우 저
사계절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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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이 끝나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관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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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흐르는 강 아래 잠긴 작은 조약돌 두 개를 건져낸다. 

손 위에 두 돌은 오랜 세월 강에 잠겨있었는지 강비린내가 나기도 하고,

흘러간 세월만큼 마모되어 둥글둥글 깍여져 있다. 

돌을 움직여보면 빛에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다.

사회학자는 그 돌을 이리저리 살피고 다시 강 바닥 아래에 돌이 있던 그 자리에 놓아둔다.

손에 남은 축축한 느낌은 돌이 남기고 간 강의 흔적인지, 사회학자의 눈물인지 알수는 없다.

누구도 건져내 살펴보지 않은 그 두 개의 조약돌들은 사회학자를 통해 어떤 의미가 되었고,

또 다시 흘러갈 알 수 없는 물길에 몸을 맡긴다.

나는 교수님의 책을 읽는 내내 어느 고요한 강 한 가운데 서서 조심스레 돌들을 손에 쥐고 살피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가끔 가슴이 서려지는 한기를 느낄 때도 있었고, 어느순간에는 소금에 서서히 절여지는 배추처럼 숨막힘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부모가 언젠가 걸어갈 길을, 내가 그들을 기억해야할 시간들을 절절히 느낀 까닭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노 교수님은 아마 그보다 더한 심정으로 이 책을 썼으리라.

 감히 짐작 하기 조차 두렵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을 쓸 당시 야만에 몸을 맡긴 독일인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든 '계몽'그 자체를 되새겨봄으로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생각이 다른, 세대가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에 대한 비난이 아닌 그들의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마음 여린 사회학자의 사랑을 느꼈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이 되려나.

 

사회학은 사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때로 어려운 이론이나 용어로 그것을 푸는 것보다 우리의 생활과 그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투망들과의 관계를 그저 드러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반성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노명우 교수님의 인생극장은 세대와 문명의 발전과 흐름 속에 잠긴 채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 그저그런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바깥으로 꺼내 잠시나마 공기를 쐬어 주는 책이었다.

 

SNS에서 우리는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다고 자위하지만 그것은 왜인지 더욱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런 이야기가 좋다.

평범한 나의, 너의, 우리의 삶을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지금 서 있는 곳을 생각하고, 나아갈 곳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그런 이야기.

진짜 나를 표현하고 그것을 역사로 스스로 기록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아마 이 책이 그저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영화처럼 되돌아보고 남기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문화흐름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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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가장 먼저 어떤 것을 느끼시나요? | 기본 카테고리 2020-01-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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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 저/문희경 역
더퀘스트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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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대한 자가 점검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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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정신없는 수험생 생활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그나마 가장 아무런 감정없이 맞이했던 아침이었음으 부정하지 않겠다.  그 땐 눈을 뜨면 해야만 하는 것들이 떠올라 슬플 겨를이 없었고, 기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시험이 끝난 뒤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조금은 우울한,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키워가며 하루하루를 맞이해야 했었다.  시험을 잘친 것 같다가도, 그 때 왜 답을 고쳤을까, 왜 기억이 안났을까 후회와 안도와 때론 공포까지...그야말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 
작년 임용고시에서 떨어지고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라는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얻었던터라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이 도착하기 전에 1차 합격 결과가 나왔고 합격이라는 기쁨과 함께 2차 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때 책이 집으로 도착했다. 지난해에는 너무 우울해서 책이 왔을 때 읽지 못했고, 이번에는 시험 준비를 하느라 빠르게 속도를 내 읽을 수 없었다. 인생은 정말 한치앞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2차 시험을 끝내고 책을 읽어보니 수험생활을 하기 이전, 어쩌면 더 그전이될지도 모를 내 과거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은 정신건강, 심리 최우수 도서로 선정된 적이 있고, 개인 성장부문에서도 상을 탄 이력이 있다. 그러한 수상경력은 이 책이 읽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인증마크처럼 당당히 찍혀있다. 


책은 총 7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챕터 안에는 작은 소제목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 빨리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짧게 짧게 책을 끊어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의도는 이름도 생소한 ‘가속경험적 역동치료’를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가속경험적 역동치료라는 말, 그 자체는 어렵지만 작가가 설명하는 ‘변화의 삼각형’을 따라, 매뉴얼에 적힌대로 자신의 경우를 함께 적어 나가다보면 작가의 표현대로 직관적으로 그 치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어떤면에서 이 책은 독자가 적을 공간 한 켠을 내어줌으로써, 독자와 함께 적어서 완성시켜나가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치료법을 접하게 된 과정,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과정을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을 통해 이어나간다. 이후의 챕터에는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의 케이스가 일종의 치료 사례처럼 함께 엮여 있어 마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책을 읽을 때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었다. 새로운 치료를 소개할 때 가장 좋은 홍보는 그것을 경험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니까. 

어쨌든 프로이트와 다른 점은 작가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것이었고, 그 점이 이 책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주장할 때 그것이 하늘에서 계시처럼 내려주어 무슨 예언서를 써내려가는 것같은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학자들의 삶이, 그들의 일상에서 겪은 사소하고, 크고 작은 경험들이 그들로 하여금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의 이론적 주장들을 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을 접할 때 아는 것은 그들의 이름과 이론의 지루한 명칭과 설명 뿐이다.  그래서인지 직업을 여러번 바꾸고, 이혼이라는 아픔도 덤덤하게 고백해내는 작가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론과 맞닥뜨렸고, 그것에 대한 체험 이후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그 여정 자체가 더 깊고, 이론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작가의 삶이 나같은 일반인은 괴리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존재함을 부정할 순 없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기로 했다’ 이후 의대에 진학한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그만두기로 했다에서 그만두기로, 치과의사가 되기로 했다에서 치대에 진학했다는 단순한 문장사이의 과정들이 매우 쉽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의대에 진학하고 싶지만 의대에 못가고 좌절하는 이들이 많으며, 의대에 진학했다면 그만두기도 쉽지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물론 이 책은 결심과 결심이 좌절되는 그 과정에서 읽으면 된다.  ^^



이 책에서 설명하는 변화의 삼각형은 핵심감정-억제감정-방어의 꼭지점으로 이루어져있다. 감정은 신체적 현상이며 인지과정을 앞선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사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감정과 정서, 감각과 인지의 순서를 뚜렷이 구분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 따라 감정과 감각을 구분해서 적는 부분에 멈칫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또한 작가의 말대로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느끼는 것인지 모호하고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느끼고 있는 핵심감정과 그것을 억누르는 방어또한 스스로 구분해내는데 사람에 따라 오랜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에서 치료의 시작은 문제를 명료화하는데 있다고 본다. 원인을 정확히 밝혀야 그것에 따른 방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나 통하는 이치이지만 그것이 나의 감정, 정서적 문제에 적용되면 모두가 띵-하는 순간을 겪기 마련이니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한숨고르는데 이르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나의 경우엔... 변화의 삼각형을 굳이 그리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난 후 괜히 볼펜으로 메모를 했다는 후회가 들긴 했다.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작가가  핵심감정을 모두 경험한 후 진정한 자기를 찾은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는데 나름대로 별별 일들을 겪으며 언제부터인가 나 스스로 진정한 자기를 찾은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은 자신의 감정을 평소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적으며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너무 많은 감정을 느껴 혼란스러운 사람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 2020년을 맞이해 무언가 새롭게 다짐하고 싶은 사람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단 생각이 들며 추천하고자 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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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 기본 카테고리 2019-09-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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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저/김태환 역/알랭 바디우 서문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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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 너는 어디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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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작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김홍중 교수님과 더불어 이 분들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와 말들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풀어놓고 있는지 좌절감이 들게 한다. 그리고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안쓰던 뇌의 부분에 실질적인 자극으로 느낄수 있을 정도다. 

무튼 요즘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고, 한병철 선생님께서도 마침 에로스의 종말이란 제목의 책을 쓰셨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되었다. 


책의 서문에 “..진정한 사랑은 타자가 도래하기 위해 정신이 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 이외의 것, 나의 피부 바깥의 모든 것들은 내가 아닌 것들이다. 공기도 사물도 자연도 사람도 나 아닌 모든 것들은 그렇기에 철저한 부정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러한 완전한 부정성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긍정성을 줄여야 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을 초반에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슬맺힌 풀잎 끝에도 ‘너’가 있다는 표현의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한창 고민이 많던 시기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온종일 그에 대한 생각만 하느라 모든 고민이나 번뇌가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뇌 안에 그가 대신 들어와 앉아 그가 나의 번뇌를 모두 짊어지고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완전히 타인을 받아들였던 경험이 아닌가 싶다.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진정한 사랑이 도대체 가능한 이야기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왜냐하면 부정과 긍정이라는 나와 타자의 구분의 전제 조차 무색해 질 정도로 모두가 ‘동일자로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p.18)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허상과도 같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애초에 맨 바닥에 감정을 계속해서 쏟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갈증을 느낀다. 

채워지지 않는 충만한 마음의 갈증. 

이 책에 따르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저자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라는 영화 작품을 통해 그러한 사랑과 우울에 대한 관련성을 말한다. 

사랑은 타자의 침입이자 자신의 부정이다. 에로스는 그렇기에 나르시즘적 자아 우울을 끊어내는 힘이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꽤 많은 아이들이 자해를 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고 예방을 위한 관련 연수에도 참여했지만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아직도 부재한다는 사실을 느꼈었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은 ‘청소년 자해’가 예방하고 상담하는 것이 물론 대처방안으로 필요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접근 방식과 이해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다뤄야 할 만큼 막을 수 없는 ‘사회적 사실’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에로스의 종말’을 읽으며 아직은 뚜렷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단서를 조금은 얻을 수 있었다. 


자해는 얼핏 보기에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거나,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것만큼 뚜렷한 자기 부정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해러’, ‘자해계’라는 용어가 만들어질만큼 아이들은 자신이 자해한 모습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전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부정이 아닌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나르시즘적’ 행위이며 과도한 자기 긍정의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상처의 형태로만 나타날 뿐이지 자해한 상처는 오히려 이들에게 자기 착취를 통해 얻은 성과이며, 이러한 실체없는 성과를 통해 결국 심리적 파산상태에 이르고 만다. 


우울한 나르시즘적인 주체는 어떤 결론도 맺지 못한다. 하지만 결론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흘러가고 떠내려가버릴 것이다. 우울증의 주체가 안정된 자아상을 갖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유부단함, 결단력의 결핍이 우울증의 전형적 증상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은 과도한 개방과 탈경계의 와중에서 끝맺음을 하고 완결지을 수 있는 능력이 실종되어버린 이 시대의 특징적 현상이다. 사람들은 삶을 완결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죽는 법도 잊어버렸다. 성과 주체 역시 결론을 맺지 못하고, 완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는 더 많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바스러진다.”(p58)


그러한 아이들의 심리상태의 근원지를 따라가다 보면 채워지지 못한 사랑의 갈증을 만나게 된다. 애초에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비뚫어진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을 받아 또 비뚫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 안에서도 자해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해하는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며 점차 그런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사회에 앞으로 진정 에로스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란 추측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은 공식을 내어주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라는 잘못된 문제에 불과하단 생각이 든다. 

나또한 책임감없이 아이들에게 네 인생을 사랑해라, 말했던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후회했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자해하는 아이들에게 그저 생각없이 좋은 말이라고 여겨 단순히 따라서 말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닌가 처절한 자기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 또한 나를 비우지 못한 채 아이들을 사랑한다, 착각하며 오히려 나를 나르시스트와 같이 사랑한게 아닐까. 

과거에 누구도 사랑한적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여러 모로 읽고 난 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무엇이든 완전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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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지만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 | 기본 카테고리 2019-09-02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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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자

김주환
한국 | 2019년 07월

영화     구매하기

퇴마록 영화를 정말 최악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안성기 배우가 박신부 역할에 잘어울렸었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한 번 신부 역할로 구마의식을 하는 배역을 연기한다고 해 옳다구나, 한국식 영웅 영화가 드디어 나오는 것인가 하는 설렘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어릴적 다정했던 아버지를 잃고 신앙을 등진 격투기 선수가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시달리다가 신부를 만나 악귀를 쫓아내는 일에 동행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용후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꿈에서 나타나 한 손을 잡아주며 착하게 살 것을 당부하는데 신실한 천주교신자였던 아버지의 기운이 서려있었던 덕분인지 용후의 손만 닿으면 악귀들이 타들어간다.

 

영화의 줄거리와 전개는 신선하다. 검은 사제들이 나오기 전에 사자가 나왔더라면 검은 사제들이 신선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만큼 두 영화는 닮은 듯 다르다. 나중에 강동원 신부와 용후가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지만 그럴 일은 없을테고..아마 쿠키영상에서 나왔듯이 또 다른 구마영화가 나올 것 같으니 무언가 새로운 시리즈물이 이어질 예정인듯 하다. 그런데 손익분기점을 못넘었는데 과연 우리나라 제작사들이 그러한 제작 과정을 두고볼런지 의문이다.

 

자, 칭찬은 여기까지(그리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지만)하고 이제 영화의 불만사항을 적어볼 차례.

 

일단 사운드의 불균형이 너무나 심각하게 느껴졌다. 안성기씨의 연기가 문제는 아닐지라도 왜그렇게 그가 말만 하면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명쾌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ㅠㅠ 귀신들의 말도 잘 들리지 않고 속삭임이라고 하지만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 재미가 반감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를 급하게 찍은걸까 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용후가 갑자기 불꽃 주먹을 날리게 된 것이나, 구마의식에 동행하면서 너무 태연하게 행동하는 등의 장면들이 좀 더 탄탄하게 쌓아질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계단에 올라가야할 것을 펄쩍펄쩍 뛰어넘어 올라간 기분이었다. 정신을 잃었을 때 다시 아버지와 만난 장면은 분명 클리셰였다. 어디선가 본듯한 어디서 들은 듯한 장면이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해서 후속편이 못나오면 어떡하지 걱정이 드는 걸 보면 분명 매력이 없진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이 박서준의 매력인지, 이번 영화에서도 인자하면서도 고뇌에 찬 신부 역할을 잘 소화해낸 안성기씨의 매력인지, 결국 아버지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부의 길을 선택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기우(최우식)의 다음 행보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영화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것 같다.

다음 편도 곧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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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을 견딘다는 것 | 기본 카테고리 2019-09-0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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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멸감

김찬호 저
문학과지성사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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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을 넘어선 그러나 죽음까지 도달하지 못한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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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이불 찬다는 표현을 간혹 쓰곤한다.

부끄러웠던 일이 떠올라 왜그랬을까, 후회의 몸부림을 치는 것을 그나마 귀엽게 표현한 것이라고 개인적으 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넘어선 모멸감은, 모멸감을 느꼈던 순간은, 자다가 이불 차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이불을 물어뜯는 것으로도 풀리지 않는 비통함, 분노, 슬픔, 수치심 등등의 복합적 감정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에 중요한 감정으로 모멸감을 지목했다.

우리는 현재 모멸감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작가는 감정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으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한국인 사회적 감정을 살펴보며 그것이 어떤 일상의 환경에서 개인에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두 번째 장은 본격적인 한국사회와 모멸의 구조를 다루며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감정을 다룬다. 세 번 째 장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감정으로서의 모멸감이 개인에게 어떠한 사회적 행동으로 나타나 그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는지를 보여준다. 네 번 째 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멸감을 겪는 이들이 건강하게 그것을 이겨내는지를 다루며 마지막 장에서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모멸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는 동시에 우리함께 좀 더 건설적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제언의 글들로 이어진다.

 

작가는 수치심이 내면화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갑작스레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인식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을 짐멜의 말을 빌어 설득하는데 짐멜은 '제3자가 자신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판결 내릴 때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인의 예리한 이목을 우리 자신 안에서 인식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원만한 사회 유지를 위해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감정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싫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치심을 느끼게되는 상황이 싫은 것인데, 그 상황은 나의 실수나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작게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지퍼를 올리지 않았거나, 극단적으로는 살인을 저지르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범죄자들까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간혹 수치심을 느껴야 할 상황임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죄를 짓고도 뻔뻔한 그런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물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나의 잘못으로 스스로 초래한 경우를 제외하고 타인이 약점을 물고 늘어져 창피한 존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유희와 희롱의 간격은 좁다."

외형적 특징을 꼬집어 끌어내려 비하하며 놀리는 건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당해보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머릿결이 좋지 못해 동네 아이들이 수세미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그 때 울면서 집에 돌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에와 수세미가 뭐 어때서, 머리가 그럴 수도 있지 역시 유치했다 웃으며 넘기지만 어린 마음엔 분명 상처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또 수세미라고 놀리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 채 등교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놀림의 문제는 더 심각하게 나아갈 수도 있다.

 

놀리는 것이 혀를 내밀고 이상한 멜로디를 붙이는 것만이 아니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취업장면에서, 근무 중에, 가정에서, 시댁에서, 처가에서, 동창회에서 등등 어느 현장에서나 약점있는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게임처럼 위치를 바꾸어가며 서로를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수치심과 수치심에 대한 보복과 분노의 굴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기의 내면과 일상(혹은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을 통해 사회의 거시적 차원과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게임과도 같은 수치심 돌리기는 현재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

 

"비인간화된 사회일수록 자존감을 뭉개고 존재를 부정하는 역기능적 파괴적 수치심이 자주 경험"된다고 한다. 나는 재수를 했을 때도 논문을 쓰는데 오래 걸렸을 때도, 일을 하지 않을 때도 괜히 사람들을 만나면 부끄러웠다. 도대체 언제 졸업할 수 있냐, 취업은 언제 하냐고 타인이 물으면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 순간은 죽었다가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정진한다는 점에서 수치심은 건강한 것일테지만, 그동안의 나의 삶에 대한 맥락은 무시된 채, 노력은 쌍그리 보여지지 않은 채, 그저 채근하는 듯한 목소리들은 희롱이었으며 나를 끌어내려 부끄럽게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내가 괜한 부끄러움을 느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물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치심은 ok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구성된 수치심에는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멸감 말고도 우리가 짚어야 할 감정은 많다. 작가가 현재 어떤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다른 감정으로도 이런 시선을 담은 책을 또 내주었으면 좋겠단 바람이 생겼다.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모멸감을 테마로 작곡한 곡들의 QR코드가 함께 실려있다. YOUTUBE로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데 길지 않은 곡들이다. 반복해서 재생하며 책을 읽는다면 더욱 더 책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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