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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처럼. | 기본 카테고리 2006-05-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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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저
민음사 | 199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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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한가운데 이 책은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지금의 나는 정처없이 방황할 것이오

목적도 없이 기계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것이오.

점차 생에 대해 무감각해질 것이고, 마비는 차츰차츰 골수까지 뻗쳐

내 몸음 금방 빳빳해지겠지요...」



니나에게선 배울 점과 배워선 안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니나의 모든것이 좋다.

그녀처럼 살고 싶은게 나의 소망이다.



그녀가 사랑을 놓치고 후회했지만 그것마저 나는 부럽게 보인다.



놓쳐도 상관없다.

사랑보다 그 사랑을 놓치고 남는 그 아련함이 더 길테니까..

어쩌면 그런 아련함들이 남아 생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을

막아줄지도 모를일이다.



잠깐의 행복보다 영원한 슬픔이

생의 한가운데에서 마비를 막아줄 수 있을것 같다..







우리는 사실 영웅이 아니다.

다만 때론 그런척 해볼 뿐이다.

모두가 비겁하며 조금씩은 타산적이고
이기적이며 위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선량한 동시에 사악하고, 영웅이면서 비겁하며
인색하면서도 관대하다는 것을,
모든 것이 상반된 듯하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어울려 있어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


그래 모두 다른 것 같지만 어쩌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들 슬픔을 느끼고 행복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것을 챙기고, 남을 도와주며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 다들 모습이 조금 틀릴뿐이다.

내가 우울하다고 해서 지금 이순간 지구에서 나만 우울한 것이겠는가.. 어딘가 아주 멀리 어딘가에도 분명 나와 함께 우울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모두의 심장이 지금 함께 뛰고 있는 것 처럼..

[인상깊은구절]
우울의 마비 된 사람은 결국 당신과 함께 일어서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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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란 결론으로 치닫는 인생.. | 기본 카테고리 2006-05-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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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민음사 | 200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의 10대 생활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시절들을 돌이켜 보면 나는 남들보다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지만 나에게 있어 나의 사춘기 시절은 혼자만의 고립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거나 남들보다 뒤쳐져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상태는 밤하늘에 떠있는 하나의 별 같았다. 많은 별들이 함께 어울려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몇 광년씩 떨어져 외롭게 존재한다는 사실처럼 언제나 아이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얘기하지만 나의 정신은 그들과 몇 광년씩 떨어진 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세계, 즉 양면성에 대한 질문을 해왔고, 나는 미래에 어떤 인간유형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대중 매체를 통해 듣게 되는 성매매를 한 목사나, 자살하는 기독교인, 속세에 물든 스님, 그리고 평범한 사람의 우발적인 살인,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폭력성 등은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나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었고, 스스로조차 알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어느 곳에 나를 맞춰서 살아야하는가는 해답을 내리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꿈을 찾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도 확신이 서지 않아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해 하고 있었다. 결국 혼자서 답을 내리기 힘들다는 결정을 내리고 나는 주위 사람들을 찾아갔다. 처음으로 삶의 연륜이 많은 어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왜 사람은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 본능에 의한 것이라면 왜 그것을 억누르기가 힘든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어른들은 하나같이 지금 네 나이에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들 말했다. 어른들에게서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친구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또래들 역시 성적과 이성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아무 곳에서도 답을 내릴 수 없던 나는 점점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게만 되었는데 고2겨울 무렵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그를 만나게 되었다. 데미안, 나는 그 이름만큼 목이 매여 불러본 이름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실망한 나는 책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날도 도서관 책장 사이를 이리저리 헤메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 중 유독 삐죽이 튀어나온 데미안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면 데미안은 고민에 빠져있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 같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에밀싱클레어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 바로 나였다. 그 역시 나처럼 두 세계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인간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새로운 세계로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결국 데미안은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데미안과의 대화는 정말 즐거웠다.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을 따라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너의 허용된 세계는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넌 알았어. 그리고 두 번째 절반을 감추려고 했지. 넌 그걸 감추지 못할 거야! 누구도 안 돼. 한 번 생각하기를 시작하고 나면 말이야.”

나는 내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랬다. 처음 두 세계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 덮어두고 무시한 채 살아가려했지만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된 것 같다. 데미안은 나에게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동시에 지닌 “아랍삭스”라는 신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그리고 양면성에 대한 스스로에 답을 찾게 되었다. 내 안의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어느 한곳에 나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두 세계 역시 나라는 하나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편에 서서 실천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알에서 깨어나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데미안을 갈망하게 되었다. 현실에서도 어딘가에 나의 데미안이 존재할 것 만 같았다. 그리고 나의 주위 사람들과 데미안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왜 현실에 사람들은 생각의 층이 얇기만 한 것인지……. 어른들도, 공부를 잘하거나 마음이 착한 친구들도 모두 데미안을 찾고 있는 나의 눈에 가소롭게만 느껴졌고, 어느 곳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시간 운동장을 거꾸로 걷다가, 무심코 서쪽하늘에 해가 지는 것을 올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뒤로 걸을수록 해는 서쪽에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보지 않고서 그 기적을 결코 맛볼 수 없다.] 어쨌든 내가 본 것은 분명 서쪽에서 뜨는 태양이었다. 아! 생각의 전환.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었다. 데미안은 바로 내 자신이라는 사실. 아직 방황하는 싱클레어에 머물러 있어서 데미안을 그토록 찾았던 것이다., 싱클레어가 훗날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찾게 된 것처럼 나도 나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해답이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 가슴에서 말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의 방황하던 시간을 나는 결코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지 않아도 학교 책상 위, 등하교길 가방 안에 항상 데미안을 넣어 다닌다. 나처럼 방황하는 이를 만나면 언제든지 그를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했다. 지금 나는 헤세의 데미안이 아닌 나의 데미안을 만들기 위해 늘 사고를 멈추지 않고, 지식습득[나는 공부를 지식습득이라고 한다.]에 힘쓰고 있다. 데미안은 이제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씩 데미안을 함부로 지울 수 없는 첫사랑의 이름처럼 조용히 불러본다.



데.미.안.

[인상깊은구절]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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