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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감상 2010-07-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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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저/박경민 역
한겨레 | 1992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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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를 드디어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데 걸린 날은 사실상 일주일정도 밖에 되질 않지만, 오래 전부터 읽으려고 마음에 두었던 책이어서 그런지 몇 년이 걸려서 읽은 기분이다. 읽고 난 후 이렇게 가벼우면서 따스한 책을 왜 이렇게 뜸을 들여 읽었는지 그것은 순전히 '게으름' 때문이었단 자책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스카웃의 관점에서 바라본 메이컴마을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회상은 독자로 하여금 '나'의 어릴 적은 어떠했는지 깊게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종종 읽었지만 이번만큼 지난 날들을 세세하게 떠올려보긴 처음인 것 같다.

삼촌의 신혼집에서 발견했던 오르골의 멜로디, 과수원에서 사촌동생과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던 기억, 잡아온 개구리를 차 안에서 놓쳐 계속 시트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던 저녁, 원두막에 누워서 보았던 잠자리들의 날개 너머의 하늘

,... 왜 그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 뿐인지.

그 때의 풍경들은 무지無知란 마음 상태가 빚어낸 환상은 아닐런지 혹은 단지 지난 날들이기에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편으론 힘들어도 지금 역시 다시 못 올 시간들이기에 최대한 즐길 수 있어야한다는 위기감? 또한 느끼게된다.


어떤 이는 아이들이 이성이 배제된 욕구에만 충실한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러한 의견에 사실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린이들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은 욕구에만 충실하기에 가장 기본적인 선함과 악함ㅡ사람은 모두 공평하다는 사실 같은 것 등ㅡ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톰 로빈슨의 무죄를 모두가 묵인默認하면서도 유죄! 유죄! 유죄! 를 선고하는 어른들의 비열함은 자라면서 나름대로 많이 알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식에서 비롯된다. 무죄를 알면서도 흑인이라는 이유하나로 유죄의 판결을 내리는 어리석음이 성장이란 과정 속 앎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생각케 한다. 그러한 이유들로 톰을 범인이라 단정 짓고 몰아 부치는 검사를 보며 어린 딜이 흘린 눈물이 더욱 깨끗한 이슬처럼 비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예전에 고등학교 때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야자를 시작하기 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술래잡기' 등 놀이를 하며 뛰어놀았다. 체육복 바지를 입고 겉에는 교복 치마를 입은 채로 말이다. 그 때 ‘평생 이런 놀이들을 하고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커서도 이러고 놀자며 웃었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어제 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며 언젠가 나도 친구랑 드라이브를 하고, 맛있는 오징어 회를 사먹으러 가고 싶단 대화를 나누었다. 그 순간 여고시절이 떠오르며 우리가 원하는 놀이가 이제는 어른들의 것으로 대치되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누가 나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묻는다면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응하겠지만(사실 이것도 의문이다) 예전만큼의 흥미를 이젠 느낄 수 없다.

 

나는 자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왔다.


스카웃이 자라서 어릴 적 부 래들리를 집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한 행동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듯이 예전에 내가 왜 그런 것들에 흥미를 느꼈는지 본인도 알 지 못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분명 그 때의 나는 어디로 도망가지 않았는데, 심지어 내가 주체가 되어 주도했던 그 모든 것들 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이 동심을 잃어가는 과정일까? 아이들이 아기는 어디서 오는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코를 찡긋하며 혼자 미소짓게 되는 까닭도 이제 나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일종의 부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마냥 슬퍼할 것이 아니라, 또 동심을 잃어간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것만은 아니다.

애티커스 핀치, 젬과 스카웃의 아버지를 보면서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어른은 동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마음 깊이 소중하게 품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판단력을 유지하되 그것을 세상에 관철시킬 수 있도록 포장하는 능력을 키우고, 품어두었던 동심을 어렸을 적엔 알지 못했던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사실 나는 동심을 잃어버렸단 점에 주목해 슬퍼하기에 급급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성장의 과정을 겸허하게 받아드리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속에선 동심이 존재하며 이제껏 단지 망각되었을 뿐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감정이 살아있는 존재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는 것은 일종의 권력남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앞으로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내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아이를 기꺼이 무릎에 앉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길 소망해보았다.


오래된 책표지 위, 입에 손을 가져간 채 동그란 두 눈을 뜨고 있는 여자아이를 한동안 바라보며 앵무새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앵무새는 우리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해를 가하지 않는 오래된 이웃이다. 그런 새를 쏘아 죽이는 것은 죄다. 망각된 동심과 함께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앵무새를 쏘아 죽였는가. 또 쏘아 죽이려고 하는가.

현대 사회에 소외되고 지쳐있는 이웃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도움보다 스카웃이 부의 팔짱을 낀 것처럼 가슴으로 다가갈 수 있는 편견없는 사회적 지지가 아닐까.  


끝으로, 2010년 올해의 친구 상을 수여하자면 이 사랑이 많은 두 어린이 젬과 스카웃에게 단연 트로피를 안겨주겠다.  고마워요!  핀치 가족들 , 그리고 소박한 메이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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