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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Kings Of Convenience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 3집 Declaration Of Dependence [LP]

Kings Of Convenience
Universal | 2010년 02월

음악     디자인/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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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쪽 음악들에 관심을 가지게 한 가장 큰 장본인들이었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Misread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우연히 본 이후 그들의 음악을 알게 되었고 그룹명 그대로 그들은 언제나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음악들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 누워서 기타를 치고, 잔디밭 위 어린이들과 함께 공을 차며 뛰어놀던 그들의 음악은 'Declaration Of Dependence ' 앨범에서 또 다른 편안함의 이미지들을 연상시키며 다가온다.

Mrs. Cold 는 방송프로그램이나 CF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Me and You와 Power of Not Knowing을 좋아한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음악들이 듣기에 편하다고 하지만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생각보다 뻔한 전개가 아닌 곡들이 많다. 기타 선율이 계속 반복되 짧은 곡을 듣는 동안 멜로디가 익숙해져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마냥 완전화음만을 사용해 안정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은 질리지 않는다. 뭐랄까..실뜨기에서 복잡한 패턴을 풀고 있는 느낌? 반복을 통해 푸는 패턴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기타 연주할 때 손가락이 기타 줄 한가닥, 한가닥 모두 건드리는 듯한 음악들이다. 그래서 어떨 땐 바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또한 기분 좋은 바쁨이라 할 수 있다.

 

LP가 왔을 때 이렇게 한동안 자켓을 바라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웠고, 그리웠고, 아련했고, 시원하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더운 여름 그들과 함께 저녁 야경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앨범 자켓에 걸터 앉은 그들이 앞에서 노래하고 기타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마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음악을 모르는 건 스트레스 해소 방법 하나를 놓치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아무튼 노을 지는 해변 이들의 음악이 나오는 식당이 있다면 무조건 들어갈 것.! 그런 사장님의 감성이라면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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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라면 더빙으로 보지말 것 | 기본 카테고리 2019-06-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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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알라딘

가이 리치
미국 | 2019년 05월

영화     구매하기

디즈니가 선보이는 애니메이션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OST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미녀와 야수를 보면서 'Bell'을 들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있나, 감동했던 기억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디서 그렇게 좋은 성우들을 구한 것인지 왠만한 가수보다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를 자랑하는 이들을 섭외해 개인적으론 그 어떤 커버곡을 들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아뿔사.

시간 맞춰서 예매하다보니 더빙판을 예매해버렸고 젊은 아줌마 두 명이 두고 간 6살 정도 되어보이는 꼬마 숙녀 둘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아이들은 뒤에서 매우 큰소리로 이야기하면서 극장 매너를 지키자는 캠페인을 향해 '너나 지켜 와하하' 웃기 시작했고,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쌓여 영화감상을 시작했다.

다행히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아이들은 조용해졌는데 그것은 팝콘을 먹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 이제 다 먹었어' 라는 목소리에 알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초등학생이면 주의를 주려고 했으나 돌아보았을 때 아이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 정말 내 허리에도 오지 않을 정도로 어렸고 조용히 하라는 주의를 주어도 5분이 채 가질 못했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휴대폰의 후레시를 켜서 스크린을 비추었고, 나는 어이없는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우리끼리 갈 수 있어,라고 일일히 자신들의 행동을 중계하면서 쿵쾅쿵쾅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상영관을 고맙게도 이탈해주었다.

물론 그 소동이 일어나는 중간중간 잘만들어진 거대한 무대위에 펼쳐진 화려한 중동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나 나는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제발 'A whole new world'가 나오길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른다. 이전의 ost들은 관악이나 합창 사운드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압도할만큼 울렸기 때문에 감상이 가능했으나 알라딘을 넘어 디즈니의 가장 유명한 주제곡 중 하나인 A whole new world를 제발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다.

잔잔히 흐르는 반주에 남녀 주인공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하모니. 정말 기가 막히게 아이들은 노래가 시작할 때를 맞추어 후레쉬를 비추며 다시 상영관으로 들어왔고 노래가 시작함과 동시에 다음에 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라는 매우 순수한 대화들을 일말의 조심함도 없이 나누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국더빙 성우분들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실제 배우들의 모습과의 이질감에서 비롯한 왠지모를 어색함이나 허전함도 살짝 아쉬웠다.

 

그 이후로도 자파의 흑화가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뒤에서 무서워, 이거 그냥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아 재미없어, 나가고 싶은데, 등의 대화가 계속되었고, 나는 더이상 주의주는 것도 포기한 채 오히려 아이들의 대화를 흥미로워 하며 앉아있게 되었다. 사실 5살이나 6살이 엄마도 없이 영화관 안에서 얼마나 장시간 가만히 앉아 버틸 수 있겠는가. 단지 아이들을 두고 나간 엄마들의 이기심에 분노가 일었을 뿐이었다.

 

영화가 끝나기도 전 나는 지니의 행복만 확인한채 서둘러 상영관을 나왔다. 엄마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얻는 휴식시간을 낯선사람과 언쟁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럴 기운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번에 개봉한 알라딘이 재밌다고 그러던데 나는 주중, 한낮에 그것도 더빙판을 선택한 죄로 너무나 실망스러운 관람을 하고야 말았다. 뭐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극장이란 곳을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 덕분에 처음 갔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참 일찍부터 극장을 접하는 구나,와 같이 아재같은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내가 나이들어감을 확인했고, 젊은 엄마들이 오죽하면 어두컴컴한 극장안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었을까, 그리고 이 아이들은 얼마나 나중에 극장 에티켓을 지키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무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디즈니 영화는 저녁, 무조건 더빙이 아닌 버전으로 감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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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인블랙은 더이상 맨인블랙이 아닌걸까. | 기본 카테고리 2019-06-1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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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F. 게리 그레이
미국 | 2019년 06월

영화     구매하기

* 약스포 포함

 

개인 취향이니 그래, 누군가는 이 영화를 재밌게 봤을수도 있다.

그러나 불이 꺼진 영화관, 극의 초반부터 20년 전과 최근을 오가는 상황과 함께 불필요한 장면, 불친절한 편집은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아, 재미없을수도 있겠다.

 

나는 맨인블랙 시리즈를 매우 좋아했다.

1편을 보았을 때 그 충격은 여러 차례 시리즈에서 배신을 당하면서도 무언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게 해 아직도 맨인블랙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극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3편을 보면서 극장에서 꾸벅꾸벅 정도가 아니라 약 20분 가량 푹 자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매우 지루했다. 신기한 외계인을 보는 것은 여전히 즐거웠으나 마치 미술관에서 조용히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스토리는 잔잔해 전혀 기억나질 않으며 화려한 볼거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 속에 지워진지 오래된 영화로 남았다.

 

그리고 올해 다시 맨인블랙이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무려 '인터내셔널'이라는 부제를 달고 개봉했다. 마블의 엄청난 팬인 나는 토르와 발키리가 다시 콤비를 이루어 새로운 상대와 싸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분되고 기대되었다. 그런 점에서 아마 감독은 나와 같은 팬들을 염두에 두고 그 두 배우를 캐스팅했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캐스팅은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전부였고, 인터내셔널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활동무대는 런던과 뉴욕, 파리 등을 오고가지만 그 배경이 주는 독특성은 스토리와 별개로 따로 놀며 전혀 매력있게 느껴지질 않았다. 뭐, 가장 인상 깊은 것을 꼽으라고 하면 번쩍,하고 나타는 외계인 2명이 클럽에서 춤추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토르로써 주인공 H역할을 맡은 크리스는 망치를 잡아들고 익숙한 그립감이라는 대사를 날려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블팬으로써 매우 반가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피식,하는 웃음이 나올 뿐, 어디서 본듯 뻔한 스토리 라인과 상대할 수 없을만큼 강한 적도 결국엔 '정'이 해결하는 결말은 차라리 테사 톰슨이 백마를 타고 무언가를 해결했더라면 더 환호성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이번엔 절대 졸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사막씬에서는 또 한 번 졸기도 했다.

 

흠, 맨인블랙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이기 때문에 시리즈로 개봉을 하면 분명 나는 또 극장에 갈 것이다. 그리고 또 졸다가 나오려나. 무튼, 흥미로운 캐스팅은 감독의 꼼수였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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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감정의 역동으로부터 피어난 이성의 꽃 비판에 대하여 | 기본 카테고리 2019-06-0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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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

스튜어트 제프리스 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19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영원히 남아 살아숨쉬는 생각, 생각, 생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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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게 그 사람이 가진 직업이 가진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어느정도 유의미한 판단일수도 있다. 가령 의사를 떠올려보자. 의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수련을 견뎌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의사의 직업을 가진 사람의 지능이나 인내심과 같은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가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사람 전부를 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우리는 그들에 대한 환상적 존경심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미친듯이 힘쓰고 노력하거나,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 반, 얼떨결에, 혹은 운이 좋아, 출발선상이 달라 획득하는 사람 반일지도 모른다. 저명한 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자들이란 대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게 그들이 가진 전형적 이미지다. 그러나 학자들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성적이지만은 않고,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무지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인간이기에.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비판이론으로 유명한 학파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모두까기의 선수들이다.

마르크스부터 프로이트까지 현대사회를 바꿔놓은 대학자들의 사상을 까고, 권위주의적 성격이라는 특징을 짚어냄으로써 어쩌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반사람들도 깐다. 처음 비판이론을 접했을 때 나는 비판의 선이 어느정도까지 유효한 것인가 궁금했었다. 무언가를 비판하면, 비판하는 그 자체를 비판하고, 또 비판을 비판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러다보면 성격이 이상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한 학자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였다. 그들도 앞서 이야기 했듯 살아있는 인간이었고, 흠이 있는 인간이었으며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비판이론은 어느날 짠,하고 나타난 이성적 사고의 정수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학자들의 이론은 결국 그들이 삶을 살면서 느낀 감정들이 다양한 색깔의 물감이 되어 표현된 명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으면서 정치성향의 선택의 밑바탕엔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성과 감정은 대립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밀고 당기는 요소들인 것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2차대전과 망명의 여정을 거치며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세계의 분위기 속에서 차갑고 냉정하며 객관적 입장을 고수하며 사태를 바라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직접 가슴 두근거리는 도피생활을 경험했고, 친한 동료들과 주변인들이 겪는 고통을 담담히 볼 사람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없기 때문이다. 비판은 그러한 슬픔과 비통한 감정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바라는 이상향의 실패와 무너지는 인간성, 믿었던 계몽(이성)의 몰락은 인간이라는 자체만으로 그들에게 절망을 느끼게 했고 비판이론은 그곳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을수 밖에 없었다.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그렇기에 나치즘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나치즘만을 비판하는 것은 또 다른 동일성 원리에 의해 증오와 혐오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좀 더 큰 비판의 대상을 찾는다. 아도르노에게 그것은 계몽이었고, 프롬이나 마르쿠제에게는 권위주의 성격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인간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누군가를 학살하는 직접적 대상이 비판의 대상도 아니었고,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의지한 사회진화주의와 같은 논리도 진정한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논리 그자체, 인간성 그 자체를 비판하므로 인간이 언제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경고하고자 했다. 그들의 비판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을 자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두 자신을 늘 비판하는 반성적 사유를 해야만 한다. 비판은 곧 반성이며 그러한 반성적 사유를 방해하는 대표적인 문화산업은 또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 받아들고 예상보다 두꺼워서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잘 읽힌다. 글씨 크기가 큰 것인지, 문장력이 좋은 것인지 알수는 없으나 책을 읽는데 개인적으로는 시원시원하게 잘 넘어갔다. 그리고 학파 내의 학자별로 그 생애가 각자 챕터로 분류된 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니라 연도별로 학파 자체가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주로 아도르노가 중심이 되긴 했으나) 느껴지도록 서술되어 있었다. 예전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본 책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유명한 저서들의 근본이 되는 핵심 사유를 정리해놓았기 때문에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 책만 읽었을 때는 이성적인 학자들의 이미지로 인해 비판이론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스튜어트 제프리스의 책을 읽고 다시 그 이론들을 떠올리니 좀 더 인간적인 이론, 누군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내려놓은 삶의 교훈처럼 한편으론 짠하기도 한 마음이 느껴졌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론은 때론 불편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살아도 모자랄 판에 비판이라는 어감이 주는 신경질적인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게 만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고 지나가자,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라는 말들로 인해 묻혀진 사회의 수많은 병폐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왜 그들이 비판이론을 탄생시켰고, 왜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유의미한가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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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일기 같은 단편소설들 | 감상 2019-06-0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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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멧도요새 이야기

기 드 모파상 저/백선희 역
새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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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투루 타인의 이야기를 흘러 듣지 않고 기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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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을 한 편이라도 읽는 날은 이상하게 죄책감이 덜 느껴졌던 것 같다.

한 때 책을 읽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노느라 책을 못 읽는 날은 '아 도무지 나란 인간은 왜 이리 게으른 것일까.' 라고 생각하며 괴로웠었다.

그래서 안톤체홉이라던가 에드가 앨런 포 등의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을 하나라도 읽고 자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과 죄책감은 오히려 활자에 대한 피로감을 더욱 느끼게 했고 그 때 읽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의무감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책을 여유있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생기기를 바라는 쪽이 되었다.

책을 읽을 시간들이 많았을 땐 놀다가 못 읽고, 이제는 읽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 읽는 것이다.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를 산 것은 일전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이 아닌, 아무리 짧은 이야기라도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가 마치 내가 24시간 중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책이 온 이후로 자기 전 하나씩, 하나씩 짧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읽으면서 모파상은 참 재밌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의 머릿 속 상상이든, 주변인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창작했든 말이다. 마치 토크쇼에 끊임없이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연예인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어떤 이야기는 이것이 과연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그냥 관찰 일기 아닌가 할 정도로 짧은 동시에 너무나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같은 느낌도 주었다. 돈 때문에 개를 내다버렸다가 죄책감을 느껴도 돈 때문에 데려오지 않는 지나치도록 현실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 미쳐버린 여인을 내다버린 후 그녀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주인공 등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들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일상적 표현과 묘사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운데 그 중 가장 인상에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욕구와 행동 사이에는 존중을 위한 자리가 있지요."

저 돼지같은 모랭,에서 여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여인을 덮치려 한 모랭을 변호하고자 찾아간 주인공에게 여인이 한 말이다. 욕구를 느끼고 행동으로 바로 이어지기 전 존중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기막힌 표현은 돼지같은 모랭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시대에도 매우 유의미하게 적용할 수 있다. 좋은 글이란, 좋은 이야기란 어느 세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같다.

 

모파상은 사람에 대한 관찰과 어쩌면 가장 많이 들여다보며 고민했을 자기 내면의 양면성 등을 기반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짧은 이야기지만 결코 짧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는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다. 가장 유명한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은 가짜 목걸이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주인공이 '오 그것은 가짜였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매우 짧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안에는 인간의 허영심, 물질 만능주의가 가지는 허무함 등에 감정이 담겨 있다. 길고 두꺼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핵심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주체적 사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멧도요새 이야기를 읽기 전 책의 활자나 편집이 시원시원하게 느껴져 금방 읽겠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겪어보니 한줄 한줄 상상과 더불어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며 반문하고, 대답하고, 나의 추억을 떠올리며 읽다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완독하게 되었다.

 

만일 생각하고 싶지만, 습관이 되어있지 않을 때, 책을 읽으며 사고하고 싶으나 인문학이나 두꺼운 책은 머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멧도요새 이야기, 모파상의 단편집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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