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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이온 킹

존 파브로
미국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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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을 실사화한다고 했을 때 엄청난 동물조련사들이 필요했겠군,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강아지가 연기하는 오래전 미국드라마와 영화들도 떠올랐다.

래쉬나 베토벤 등 나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오래된 옛날 그 추억의 스토리들..ㅎ

그러나 개봉이후 확인한 라이온킹의 실사화는 동물조련사 대신 매우 소름끼칠정도로 정교한 cg작업을 할 수 있는 기술자들이 필요한 영화였다.

 

넓은 스크린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연의 풍경에 경이로운 감정도 들고,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대전 엑스포에서 체험했던 우주 체험을 떠올려지기도 한다. 동물의 털 한올 한올도 실제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을 보다보면 내가 지금 무슨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익숙한 멜로디를 부르는 비욘세와 같은 명품 보이스의 더빙 또한 영화를 즐기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지난번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를 볼 때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이기에 예측이 되어 지루하단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은 몇 해가 지나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지만 이번엔 영화관을 나오며 한 번 보는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미화되고 추억으로 남은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로 포장된 편견일지도 모르나, 내게 자연과 CG기술의 점철은 어딘가 차갑고, 이질적 느낌을 들게 했다.

 

만약 진짜 훌륭한 동물조련사들이 사자와 원숭이, 멧돼지, 미어캣 등을 훈련시켜서 연출했더라면 어땠을까. 아, 동물학대로 고소당할 수도 있으려나. 제작비는 어느 쪽이 더 들어갈런지 알순 없다.

그나저나 디즈니는 정말 어떻게 하면 감성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그 누구보다 정확히 꿰고 있는 기업임엔 틀림없다. 당분간 그리고 그 자리를 내줄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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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광기 사이 | 기본 카테고리 2019-07-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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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위플래쉬

데이미언 셔젤
미국 | 201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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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표현을 하는데 서툴렀고, 감정을 억누르는게 습관이 된 아이였다.

가정사는 일일히 말할 수 없지만 어디 하나 기댈 곳도 없었다.

우울과 외로움, 억압된 감정의 모호함이 곧 그 아이가 되었다.

그런 아이가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무엇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적 없고, 재미를 느낀다는 것조차 어색했던 탓에 초반에는 학원을 곧잘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드럼을 배우기 시작하며 어쨌든 달라지는 점들이 보였다. 

매주 한 번씩 만나기로 한 시간 약속에 늦는법이 없었고,  때론 먼저 나와 날 기다리기도 했다. 

사탕주세요, 귀찮아서요, ~가 좋아요, ~가 해보고 싶어요, ~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그런 표현들은 나를 기쁘게 했다. 마치 말을 못하던 어린 아기가 말을 배워 옹알이를 할 때의 기쁨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었고 나는 위플래시를 보라고 추천했다. 나도 본적이 없으면서 드럼 이야기가 나온다기에 멀리 떨어져있어도 함께 본 것처럼 방학 때 볼 것을 권했다.

 

위플래시의 주인공은 때론 어리숙해보이기도 하고,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럼에 대한 열정만은 분명했고, 말그대로 미친듯이 드럼을 치면서 어딘가 고장나있었던 본인의 마음을 분출해낸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과 외로움과 고독, 인정받고 싶단 욕망은 한데 어우러져 더 빨리, 더 정확히 드럼을 치려는 행위로 모아져 드러난다. 한 사람이 경험하는 감정이 말이 아닌 리듬과 음악과 그림과 같은 예술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경이롭다. '그것'과 '그것'은 전혀 다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담고, 어떤 의미를 담을 때 동일한 것이 된다.

 

위플래시를 보며 그 아이가 생각났다.

 

너도 영화를 보았을까.

너도 드럼을 치면서 너를 괴롭혀왔던 답답함들을 리듬 한 박자 한박자에 실어 음파로 공기중에 날려보냈을까. 그런 행동들이 너의 입을 열게 한 것일까.

 

사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가 심지어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하는게 대부분이다.

우리는 일상의 패턴을 벗어나고 습관처럼 굳어진 감정과 생각의 지도를 바꾸는 것을 인식조차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자신안에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광기를 발휘할만큼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폭군과도 같은 플래쳐 교수가 한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도발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의 깊은 의미를 안다하더라도 꼭 굳이 그런 방법으로 해야만 하는걸까 의문을 품을수 밖에 없다.

 

위플래시는 그러므로 철저히 영화에서나 가능한 스토리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아는 한에서 억압되고 외롭고 우울한 영혼은 예술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이르기조차 버겁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다그치고 끊임없이 푸시하는 것은 더욱 좌절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무튼 영화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원스 등과 같은 음악관련 영화처럼 음악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드럼 연주는 고통스럽다. 익숙한 음악과 화려한 관현악기들의 연주가 분명히 들리지만 즐길 수 없이 괴롭기만 하다. 그것은 주인공의 연주가 열정과 즐김을 넘어선 오로지 광기로만 채워진 연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아인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편으론 조금 더 커서 영화를 보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이미 자신의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답답할테고, 거기서 더 나아간 광기는 과도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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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역시 퇴마록 | 기본 카테고리 2019-07-2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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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퇴마록 국내편 1

이우혁 저
엘릭시르 | 201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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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은 박신부, 승희, 현암, 준후라는 가끔 속터질정도로 정의로운 캐릭터 4인방이 각자가 지닌 뛰어난 능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과 싸우는 이야기다. 국내, 해외라는 공간적 구분과, 혼세와 말세라는 시간적 구분의 큰 틀 안에 네 가지 파트로 나눠져 19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었다. 나름의 세계관이 존재하며 각자 다른 능력을 지닌 중심인물 외에도 심연의 눈을 지닌 연희, 높은 권력을 가진 백호 등 부수적 캐릭터들의 활약도 더해져 읽는 재미가 쏠쏠한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눈에 보이는 인간과의 전쟁으로 이어져 나름의 교훈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영과 기의 싸움이라는 기본 환타지적 요소는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

 

영국에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미국에 마블이 있다면 한국에는 퇴마록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환타지 시리즈물이 영화로 나올 때마다 '아, 퇴마록도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밌을텐데' 언제나 혼자 궁시렁 거려본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영화제작 소문이 돌았는데 무산이 되었는지 조용하다. ㅠㅠ

무튼 개인적으론 초,중딩 시절 동화책을 벗어나 두꺼운 책을 읽도록 많은 활자와 가깝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중학교 졸업이후 퇴마록을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가고 여름방학 고향에 내려왔다가 필요한 자료를 찾으러 들린 지역 도서관에서 옛기억을 더듬다 퇴마록을 다시 손에 잡게 되었다(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던 덕분). 그때 다시 한 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무려 스무권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일주일안에 여전히 재밌어,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보이지 않던 억지스러운 문체나 때론 오글거리는 문장력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를 배가 시키는데 한 몫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접어두고 어릴 때 미쳐 깨닫지 못했던 작가의 엄청난 지식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이런 것들까지 어떻게 조사한 걸까 싶을만큼 방대한 자료수집의 토대 위에 쌓아올린 가상 세계는 장르를 뛰어넘어 인정받아 마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여름 방학 집에 내려올 때마다 퇴마록을 읽었다. 그동안 논문이나 복잡한 글들에 치어있었던 터라 말랑말랑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철저한 재미위주의 글을 읽는 시간이 개인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해본다. (재밌으니까 읽지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영화로 보기엔 귀신 이야기는 막상 개인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세계 각국 종교와 미신, 설화들을 배경으로 귀신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읽으면 무섭지 않은 납량특집 이미지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거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장마철 에어컨을 틀어놓고 생라면을 하나 뿌셔놓고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퇴마록을 읽다보면 더위는 어느새 잊혀진다. 

 

이것이야말로 열대야에 어울리는 힐링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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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때 보이는 것들 | 기본 카테고리 2019-07-2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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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팝콘 먹는 페미니즘

윤정선 저
들녘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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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제 처음 들었던가에 대한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지금.

페미니즘이라는 명명을 알지도 못했을 때부터 나는 할머니와 페미니즘 논쟁을 해왔던 듯 하다.

우리집안은 딸이 귀한 집안이라고들 했는데 그 말 속에는 아들은 한 집에 반드시 한명 이상은 꼭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그 중 유일하게 우리 어머니는 며느리들 사이에서 아들 없는 며느리였고,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구박아닌 구박을 하셨다. 그러던 중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 아들 못낳는다고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마요."

다행히 할머니는 그런 어린 손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으셨고 어머니에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하시며 금반지를 선물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지금도 가끔씩 회자되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페미니스트로 태어난 것인가. 페미니스트로 만들어진 것인가.

 

'팝콘먹는 페미니즘'은 영화 속 줄거리 소개와 함께 페미니즘 시각에서 영화를 설명해주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여자이자 영화광인 나로썬 이 책에 강한 끌림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그 느낌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책은 술술 잘도 읽혔다. .

 

 

작가는 글로 미루어봤을 때 비혼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며 이원론적 기독교의 태도에 환멸을 느꼈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마 보수라고 지칭하는 이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작가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부류이며 세상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존재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가는 영화 또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독자들에게도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길 권유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일종의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한 자기검열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말았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행여 누군가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수근거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쓰고 이런 책을 읽는  행위가 왜 자유롭지 못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불편해 하게 되었는가.

 

이 책에서 작가는 여성의 불평등을 고발하는 단순한 논리를 고집하고자 함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들이 이기적인 권리만을 주장한다고 생각해 폄하하고, 과격한 표현방식을 채택한 이들을 페미니즘의 대표이자 일반적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책에서 작가는 영화 속 인물들과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적 성차별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남성은 울어선 안된다, 남성이 아닌 여성은 운다.' 라는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일반화된 행위들에 담긴 차별들을 모두 비판하는 것이다. 남성또한 울수 있고, 여성 또한 눈물이 없을 수 있다. '남성이기에 어떠어떠해야 하는데, 남성이 아니기에 그러므로 여성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모두 자유로워져야 함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의 정체성,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 중 하나인 [내일을 위한 시간]이나 [모아나] 등을 통해 작가는 다시 한 번 그러한 주장을 확인한다.

 

 

 

 

인간은 물론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점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인간을 구분하는 차이점이 생식기 뿐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모두의 생김새를 보라. 우리는 단순한 남성과 여성으로 모두를 구별짓고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집단을 혐오하기에 앞서 모두 다른 특징을 지닌 개별적 존재다. 그것이 때로는 미쳐버릴 것 같은 고독함으로 밀어넣기도 하지만 그런 고독마저 개별적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남자가 아닌 여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또다른 이원론적 폭력에서 벗어나 어쩌면 인구의 수만큼 존재할지 모르는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자세와 모두 지구인이라는 세계시민의 포용성을 지녀야 할 때는 아닐까. 물론 그 길이 매우 멀고 험난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예술가들이 존재한다고 책에선 말한다. 원제[모드Maudie]이자 [내사랑]으로 개봉한 영화는 실존인물인 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몸은 비록 불편했지만 모드는 자연 개별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그것을 화폭에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였다. 그녀의 아픈 과거와 상처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치유되었다. '세상의 모든 예술은 치유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의 말을 인용하자면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울음을 누군가는 대신 울어줘야 함을, 그 일을 하는 존재들이 바로 예술가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전에 여성의 화장행위에 대한 정체성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래전이라 기억은 정확치 않지만 그 글의 결론 또한 이와 비슷했었다. 수많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에 맞는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여성은 화장을 해왔고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가부장제에서 강요되어온 여성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에  집중하기보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화장하는 건 어떨까하는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리뷰의 끝맺음으로 책을 요약하고자 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부정당해온 이들을 찾아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며, 이원론적 구분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자신(타인)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봄으로써 가능해진다. 작가는 여러 영화 캐릭터들을 통해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에겐 대신해서 우리에게 생각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기를 주문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페미니즘을 알고 싶은 사람, 자신의 성 정체성에 강요된 억압들로부터 위로가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 덤으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도 소개하고 있으니 영화와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감성과 이성을 함께 충족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거 같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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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하루키의 본질일수도 있는 일부분을 읽으며 | 기본 카테고리 2019-07-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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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저/안자이 미즈마루 그림/홍은주 역
문학동네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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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집은 호흡이 짧아서 빨리 읽게 되는 책들 중 하나다.

그래서 간만에 장거리로 어딜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버스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 미쳐 읽지 못한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손에 들고 버스에 올랐다.

덕분에 갈 때 절반, 올 때 절반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고 뿌듯한 여행길이 되었다.

 

 

 

장수고양이의 비밀은 하루키가 95년부터 약 1년 넘게 신문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하루키의 말랑말랑한 글들이 엮여져있다. 책 속에 하루키는 자신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거짓말하는 하루키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말인즉 그는 자신이 소설속에서 거짓말을 잘한다고 했기 때문에 독자로썬 하루키의 거짓말인 소설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는 뜻이다. 나또한 습작으로 소설이랍시고 이것저것 긁적여본 경험이 있어서 아무리 이야기를 지어낸다하더라도 그 안에 자신이 담길 수밖에 없음을 안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을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그의 일부가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의 말랑말랑한 에세이는 소설로 성공해 부족할 것없는 유명작가의 안락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것이 그의 '본질일지도 모를' 일부에 불과할 수 있다지만(책에서도 밝혔듯) 나는 왠지 상실에 대한 아픔과 기묘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쿨한 캐릭터들이 춤추는 또 다른 하루키의 일부가 더욱 정이 갔다. 이런 경험은 사실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멀리서 너무 선망하던 인물을 만났을 때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거나, 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못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하는 것과 마찬가지. 물론 하루키가 못난 인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우리가 간과하는 인간의 다양성을 또한 번 경험했다고나 할까. 누구나 내 기준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해선 안된다. 그것이 좋은 평가이든 나쁜 평가이든 그 사람은 분명히 내가 모르는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튼 에세이 속 하루키는 서양을 동경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특이한 러브호텔의 이름을 찾는 수집가,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 그 속에 확고한 주관을 가진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이 작가의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인간으로 보일까를 두려워하며 자체적으로 검열해서 쓰기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작가등리 가장 지녀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지만 중간중간 소설의 문구처럼 생각의 고리를 건드리는 문구들이 있다.  

 

"건강 자체가 반드시 선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정의하면 건강은 선의 시작을 알려주는 한 가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찔러 발밑이 우르르 무너지는 심정이 된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고달픈 나날이었다... 그러나 괜찮다.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렇게 처참할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게 된다."

 

"이런일도 생기는 법이다, 라고 그 때 문득 생각했다. 형체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요즘 연일 악화된 한일관계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나온다. 이럴 때마다 국경없는 예술가들은 범주화에서 벗어나 무엇이 평화를 위한 길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따지고 올라가다보면 진실과 정답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비치는 법이다. 그 때 예술가들은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비판받고 험담을 듣는 일이 즐겁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속는 건 아니기 때문(p286)"이다. 에세이집에는 하루키가 일본사회의 내재된 획일성을 강요하는 문화를 비판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현재 일본 극우 정치에 대한 획일성을 그 역시 오래전부터 우려하고 경계했던 것은 아닐까. 

무튼 하루키의 어떤 정체성도 인정하고 받아드릴 마음이 있는 팬이라면 읽어봐야할 책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좀 더 처절한 하루키가 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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