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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의 물리학, 현재의 물리학 | 책을 읽다 2021-10-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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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물리지 않는 물리학

이노키 마사후미 저/정미애 역/오스가 겐 역
필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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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발간되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책을 50년도 더 지나 복간한다. 이 자체로야 그렇게 드물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책이 물리학 책이다. 일단 궁금한 것은 1960년대에 어떻게 이 책이 단기간에 수십 쇄를 찍을 만큼 팔리고 읽혔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 책을 50년이 지나 다시 복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자문(自問)에 대한 답이다.

이 책은 양자역학,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 소립자이론 등등을 다룬다. 이렇게만 봐서는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그게 1960년대의 일이다. 그야말로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 전의 일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론들은 대중 속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물리학 연구자들에게도 첨단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는 일본이 패전 이후 물리적 피해와 함께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을 이루던 시기다. 경제 발전은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었을 것이고, 특히 당시 가장 급속도의 발전을 이루던 물리학에 일본 국민들은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그러한 요구 속에서 나왔다.

 

요구에 대한 충족만으로 이 책의 인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책을 보면 정말 저자의 고심이 느껴진다. 지금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소립자이론, 우주론 등을 수식 없이,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예를 통해 최대한 이해시키기 위해서 애를 쓴 흔적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수준은 낮추지 않았다. 당대의 독서 요구와 함께 바로 그런 열정과 고민이 그대로 배어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자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이런 과학 교양 서적이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발간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물론 대형 스테디셀러는 있다. 이를테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같은 경우). 그렇다면 이 책은 왜 복간이 되었을까? 우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렇게 구닥다리가 아니란 얘기다. 아직도 우리의 물리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일반인들은 그 이론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 전, 지금보다 더 최첨단 이론으로 대접받던 시절의 설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설명은 그것대로, 지금과 거의 비슷한 방식의 설명은 또 그것대로 흥미로우면서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재미는 그 사이 물리학의 발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복간하면서 본문에서 당시에도 틀렸던 내용은 유족의 양해를 얻어 수정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지금은 달라진 내용은 감수자인 오스가 겐이 주석을 달고 있다. 당시와는 다른 명칭들이 적지 않고, 또 알려지지 않았던 쿼크 같은 것들이 밝혀지면서 소립자 이론 자체가 바뀌었다. 이런 것들을 본문에는 그대로 두면서 주속을 통해서 바뀐 내용, 새로 알려진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어 물리학이 그 사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전공자가 아닌 이들에게 아직도 쉽지 않은 게 이 책의 물리학이다. 하지만 그래도 읽다보면 왜 물리학이 경이로운 과학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책추천, #물리지않는물리학 #물리학도서추천 #도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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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 서로가 서로에 반응하다 | 책을 읽다 2021-10-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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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혁신의 뿌리

이안 블래치포드,틸리 블라이스 공저/안현주 역
브론스테인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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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제목 혁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봤다. 무엇이 무엇에 대해 혁신의 뿌리인가? 과학과 예술의 소통을 다룬 이 책의 내용으로 보면 결국은 과학이 예술에서 혁신의 뿌리 역할을 하고, 또한 예술이 과학에서 혁신의 뿌리 역할을 한다는 얘기일 텐데, 과연 그 관계가 늘 그렇게 조화로웠을까? 이를테면 웃음가스(아산화질소)를 풍자한 길레이의 그림이라든가, 핵시대를 풍자한 <엣지 오브 다크니스>와 같은 것들은 과학과 예술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고 표현하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예술은 과학에 반응했고, 과학도 예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런데 모든 예술이 과학에 반응했고, 모든 과학이 예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얻고 있을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곤란하다. ‘모든이라는 이 절대적 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대부분으로 낮춰도 그렇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가 서로를 참조한 사례는 충분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사례는 더욱 충분하다.

 

그렇다면 예술과 과학이 서로가 서로를 참조한 사례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훌륭한 성과를 냈을까? ‘훌륭하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며, 예술이나 과학에서 그런 비교가 과연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늘 그렇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망설여진다. 컨스터블이나 터너가 당대 과학의 성과를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그런 그림들이 높게 평가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퍼킨의 모브가 새로운 색감을 인류에게 선사한 것은 분명 과학에서 비롯된 일이고, 마이브리지가 말과 사람의 움직임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사진술이라는 과학의 성과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것들이 과학에 기댔기 때문에, 혹은 과학의 성과를 반영했기에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예술 작품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훌륭한 영감을 표현했다는 것이고, 그 방식으로 과학의 성과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근대 이후의 모든 예술은 과학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가장 간단한 예로는 짜서 쓸 수 있는 튜브 물감으로 인해 인상파 화가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술가들이 어떤 매체를 이용하든 그것은 하는 수 없이 당대 과학의 성과에 힘 입은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예술이 과학의 하위 조건으로 규정지어진다고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여기서 과학은 조건이라고 해야 옳을 지도 모른다. 당대의 과학은 현실 속에서 스며들어 있으며, 그것을 반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민감한 영혼을 지닌 예술가들의 숙명이자 의무일 수 있다.

 

이 책은 주로 영국의 사례에 집중하고 있지만, 영국이 이 시기에 가지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보편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현대로 올수록 그 보편성의 무게는 조금씩 떨어지지만). 근대 이후 낭만의 시대, 열정의 시대를 거쳐 모호함의 시대(저자들은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까지 과학과 예술은 서로 호응하기도 하고, 서로 비판하면서 왔다. 서로를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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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혁신의 뿌리 | 한줄평 2021-10-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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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이 손잡고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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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서 진실 찾기 | 책을 읽다 2021-10-1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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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바츨라프 스밀 저/강주헌 역
김영사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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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대한 답을 해보자.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데, 정말 그럴까? 왜 그럴까?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진짜일까? 어느 정도일까? 그런 추세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람들의 행복도는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그 측정값은 정말 행복과 관련이 있는 걸까?

제조업의 몰락을 얘기하는데, 이제 제조업의 시대는 저문 것인가?

현대 세계는 어디서부터인가?

핵발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기 자동차가 도로를 뒤덮을 수 있을까?

항공 여행은 정말 위험한가?

인류세라는 명칭은 과연 유효한가?

탄소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

 

, 어떻게든 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어림짐작이나 어디서 주워들은 단편적인 지식에 기초한 뇌피셜이 아닌 정말 근거 있는 답변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바츨라프 스밀의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는 바로 그, ‘근거 있는 답변에 관한 방법과 예시를 보여준다.

우리가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숫자, 즉 통계를 들여다보면 다른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츨라프 스밀은 통계 수치를 통해 세상을 훨씬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다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거의 비슷한 생각은 한스 로슬링 등의 팩트풀니스에서도 볼 수 있는데, 로슬링의 작업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냥 추측하는 것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데 조금 방점이 찍힌다면, 스밀의 작업은 세계에 대한 우려가 조금 우세하다. 그는 실업률 수치만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며, 메가시티의 등장이 가져오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우려한다. 미국이 왜 예외적인 국가가 아닌지를 지적하고 있으며, 브렉시트의 멍청한 결정을 비판한다. 일본, 중국, 인도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왜 핵발전이 정체 상태에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른바 풍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주된 에너지원이 될 수 없는지, 또 그것 자체가 화력연료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 밖에도 에너지에 관해서 여러 꼭지의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에너지, 환경분야의 사상가라는 타이틀과 밀접히 관련이 된 부분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비판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육류 소비의 증가가 환경과 식량 문제에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을 통계 자료를 통해 밝히면서, 육류의 종류(이를테면 닭)를 바꾸면 얼마만한 이득이 오는지를 소개한다(소고기야말로 가장 가성비가 낮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육류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삼중창이 왜 가장 투명하며 간단한 해결책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가정 난방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제시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수치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애매한 것을 싫어한다면서 사실은 정말 까마득하게 애매모호한 세계에 살고 있다. 추측에 근거에서 판단하며, 근거 없는 자료를 맹신하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에서는 그 이유를 진화적인, 경제적인 이유를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바츨라프 스밀은 그걸 훈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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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라틴어 수업, 믿는다는 것에 대해 | 책을 읽다 2021-10-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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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믿는 인간에 대하여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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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라틴어를 매개로 사회에서의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 적지 않은 깨달음을 주었다. 가톨릭교회의 사제였지만 오히려 신앙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고, 그래서 그의 목소리가 더욱 울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4년 후 가톨릭교회의 사제직을 내려놓으며 낸 새 책은 오히려 신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이 책이 그 고민의 소산일 수도, 그 고민의 과정이 이 책에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믿음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믿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생각 모두를 다시 정리하는 것은 의미 없을 듯하고, 인상 깊었던 구절 몇 가지만 다시 읽어본다.

 

실패의 시간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태도와 정서“ (65)

  • 유다는 모두 예수를 배신했다. 하지만 후대의 평가는 정반대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신을 안고 살아갔고’, 유다는 배신의 책임을 죽음으로 회피했다’. 실한동일은 실패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어려운 얘기라는 걸 그도 안다.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 (121)

  • 인간의 종교적 욕구와 생리적 욕구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아마 종교인들이 그리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종교라는 것을 하나의 형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한동일은 종교의 자유종교 행사의 자유를 구분하고 있으며, 종교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우리의 헌법과 미국의 헌법에 찾고, 또한 종교 자체에서도 찾는다. -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혹은 종교적 가르침을 전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행동이 신에게 기쁨을 주는 종교적 실천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자 오만입니다.“ (136)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인간사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는 그 괴로움을 줄이고자 삶의 대소사부터 존재론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두고 기도로 청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부족해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저는 그런 신은 믿고 싶지 않습니다.“ (241)

  • 종교가 없다(물론 여름 성경학교에 다닌 것이나 아내를 따라 간 절에서 불상 앞에서 합장하는 것을 인정해준다면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고 불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신을 불러낸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든, 심리적인 것으로 설명하든, 혹은 역사적인 것으로 설명하든 인간은 신을 내 마음 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었고, 또 그것을 공식화할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족쇄가 된다면... (잘은 모르지만) 어떻게 신을 믿을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신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이들에게 달린 것이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한동일은 믿는 인간에 대해서 썼다. 믿는 인간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그게 반드시 특정 종교와 관련된 얘기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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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한 50년 | 책을 읽다 2021-10-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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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틴 켐프 저/이상미 역
지에이북스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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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켐프는 자타공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생물학을 전공하던 중 예술사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운명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났고 평생을 그의 예술을 연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와 함께 한 50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권위자로서 그의 삶과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그런 책으로는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대신 자신이 다빈치를 연구하면서 그를 만난 여러 지점들과 논쟁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른바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업(Leonardo Da Vinci Industry)’라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연구하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예술품 중개인, 미술관, 큐레이터, 수집가들, 출판 관계자,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 관계자, 아마추어 숭배자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있는 복잡한 세계다. 저자는 이 산업이 번창해가는 모습과 함께 그 안에 벌어지는 논란과 협잡 등을 수십 년 간 지켜봤다.

 

마틴 켐프는 우선 <최후의 만찬>의 복원을 둘러싼 여러 논쟁과 소동을 2개 챕터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은 프레스코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안료가 떨어져 나가고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겨우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아 대중에게 보여진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원형을 찾기 위한 복원을 결정한다. 1977년부터 1999년 무려 2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복원 작업은 여러 논란을 가져왔다. 원형을 파괴했다는 공격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대중들이 분노하기까지 했다. 마틴 켐프는 그 과정을 이야기하며 예술품 복원이라는 걸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원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그 원형에 대한 복원 시도가 옳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두고 사라지는 편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정답은 없다.

 

그 다음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 <모나리자>에 대한 얘기다. 오랜 논쟁인 <모나리자>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것과 <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작품이 정말 ‘모나리자’인지에 대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고 대가 중 한 명인 마틴 켐프도 <모나리자>를 직접 본 것은(방탄유리 너머로가 아니라) 두 차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접하기 힘든 작품이다. 마틴 켐프는 <모나리자>의 모델이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Francesco del Giocondo)라는 것을 적극 옹호하면서도 실제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상적 여성의 표상으로서 ‘리자’를 그린 것이라는 얘기다. 모나리자 뒤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른바 제2의 모나리자라 불리며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에 대해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른바 다빈치의 경우에는 ‘펜티멘토’라고 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수정한 특유의 흔적이 남는데, 그런 것들이 없을뿐더러 느낌 자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성모와 실패>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두 개의 작품이 모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즉 원작이라고 판단한다. 스코틀랜드의 드럼랜드 성에서 버클루 공작이 소유하던 작품에 대해서 영국의 국립미술관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그 작품이 모작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이후 2003년 그 작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4년 만에 경찰이 회수한 작품에 대해 그것이 원래의 작품인지, 진짜 레오나르도의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이가 마틴 켐프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틴 켐프의 입장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작품은 아마도 그가 직접 작품의 제목을 붙이 <아름다운 왕녀>라는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수도 없이 나오지만 실제로 진품으로 밝혀지는 경우는 드물다(<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던 한 작품을 감정하고는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 작품이 바르샤바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스포르자다(Sforziada)>라는 책에서 뜯겨진 것이라는 증거를 찾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진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뜨겁다. 여전히 마틴 켐프는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며,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그 작품이 다음에 소개하고 있는 <살바도르 문디>와 달리 논쟁에 휘말리게 된 이유(발표 시점까지 비밀이 지켜지지 못한 점, 발표가 상업적인 장소에서 이뤄진 점 등)에 대해서 아쉬워 한다.

 

<아름다운 왕녀>와는 달리 <살바도르 문디>는 이제 거의 다빈치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겨우 45파운드에 팔렸고, 미국에서는 1만 달러에 거래되던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이름이 붙자 2017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3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마틴 켐프는 이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이 감정하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다빈치의 작품이 확실한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마틴 켐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과 맺은 몇몇 중요한 인연들에 대한 예술적 얘기였다면 그 다음은 예술적인 내용은 조금 빠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시회를 준비했던 경험에 대한 얘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러니까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전시회로 불러내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서 암호를 찾으려는 시도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댄 브라운 작품에 기대면서 그의 설명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데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것은 그냥 소설일 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가설들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이름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냥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분명 실체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한 50년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 어떤 순서를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매우 특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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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 책을 읽다 2021-10-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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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로스 킹 저/신영화 역
도토리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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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다비드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던 조각가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맡는다. 프레스코 기법에 익숙치 않았던 조각가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여겨 피렌체로 도망갔지만 거의 협박에 가까운 회유에 응한다. 4년 넘는 동안 작업 끝에 드러난 작품은 당대부터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받았지만, 온갖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것이었다. 그 조각가이자 화가는 미켈란젤로였다.

 

로스 킹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완성하기까지와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로스 킹의 시선은 미켈란젤로와 그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폭군이라 불렸던, 교황이라기보다 전제군주와 같았던 교황 율리우스 2, 당시 새파랗게 젊은 나이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라파엘로(그는 미켈란젤로와 용모에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다. 로스 킹은 라파엘로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가진 듯하며 미켈란젤로에 대비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서술하고 있다), 조각을 천시하며 미켈란젤로와 대립하면서도 서로 존중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종교의 광기로 피렌체를 지배했다 화형을 당한 수도사 사보나롤라(그는 미켈란젤로의 종교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주역 에라스무스, 거기에 마키아벨로, 루이 12, 체사레 보르자 등 당대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대립과 논쟁, 화해를 세심한 눈길로 조망하고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가족에 대한 얘기들은 예술가가 현실의 세계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그게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까지도 잘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의 고민은 어떻게 율리우스 2세로부터 제대로 돈을 받아낼 수 있을지, 골칫거리인 아버지와 동생들을 어떻게 다독일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예술에 대한 고민? 물론 예술에 대한 고민도 있었겠지만, 더 실제적인 고민은 그와 같은 것들이었다는 걸 보며 미켈란젤로가 조금은 친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졌다. 프레스코(Fresco) 기법이란, 벽에다 마른 회반죽에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그림이 벽의 일부가 된다. 미켈란제로는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우기는 했지만 이 기법에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 <노아의 홍수> 부분을 제작할 때는 미숙한 면이 없지 않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개발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원숙한 솜씨를 드러냈다고 한다. (다 빈치도 그랬듯이) 시체 해부까지 하면서 이해한 인체 구조를 그림에 그대로 적용했고, 역동적인 인물들, 비탄에 젖은 인물 등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들어낸다. 성서 속 이야기라는 경건한 주제임에도 천지창조 옆 그림에는 악동들이 손가락으로 욕하는 장면 같은 것을 그려 넣어 나름의 세상에 대한 조롱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제작하는 과정은 몇 가지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 준다. 일단 그가 프레스코에 통달한 화가로서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부터, 홀로 이루어진 고독한 작업이 아니라 조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비계에 등을 대고 누워 정말 힘들게 작업한 것이 아니란 것(물론 고개를 젖혀, 팔을 쳐들고 작업하는 게 편안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그 작품이 르네상스라는 화려한 시대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어지러운 정세를 뚫고 제작된 것이라 것 등등 우리가 그 작품을 우러러보며 감탄을 하면서도 생각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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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장화를 어떻게 그렸나 | 책을 읽으며 2021-10-0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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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흔히 <천지창조>라 일컬어지는)는 그 장엄함에 대해서 놀라움을 주지만, 20미터 높이의 천장에 어떻게 그려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에 대한 얘기로 비계를 올리고 미켈란젤로는 등을 대고 누워 그렸다고 전하는 글이 많다. 정말 고된 작업이었고, 그 고된 작업을 미켈란젤로가 혼자서 해냈다고.

 

그런데 로스 킹의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이에 관해서 신화라고 하고 있다.

비계 위에는 항상 5~6명이 올라가 작업했는데 그중 두 명은 안료를 섞고, 나머지 일부는 밑그림을 펴는 작업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붓을 손에 쥔 채 언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세로 대기했다. ... 천장 전면에 걸쳐 천장에서 2미터 가량 아래로 떨어져 있어 직립한 채로 작업할 수 있었다. 인토나코를 바르거나 물감을 칠할 때는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히고 팔을 위로 뻗기만 하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결코 비계에 등을 대고 누운 채로 천장을 프레스코하지 않았다.“ (122)

 

로스 킹은 이 신화를 뉴턴의 사과에 빗대고 있다. 사실은 아니지만 대중의 뇌리 속에 깊게 박히고, 또 그런 신화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을 주는.

 

그렇다면 이런 신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로스 킹은 파올로 조비오라는 노체라 주교였던 이가 쓴 미켈란젤로 짧은 전기의 한 구절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조비오는 비계 위의 미켈란젤로를 묘사하며서 레스피누스(resupinus)’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단어는 뒤로 구부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종종 등을 대고라고 번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화는 그렇게 탄생한 것인 셈인데, 만약 그게 그럴 듯하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로스 킹 저/신영화 역
도토리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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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들을 기억하라 | 책을 읽다 2021-10-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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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패배자들

유필화 저
흐름출판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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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자들이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히 그 기록은 매우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승리자들이 뛰어났기에 그런 위치를 다다를 수 있었겠지만, 패배자들이라고 승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스스로 당당한 패배자의 길을 걸은 이들이 있고, 살아서 승리자였다 죽은 후 패배자로 기록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역사에서 승리자와 패배자의 구분은 인위적이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유필화 교수가 꼽고 있는 위대한 패배자들은 그런 인위적이고 주관적인 승리자-패배자의 구분을 상기시킨다.

그가 다루는 여덟 명은 대체로 살아서 성공의 길을 걷다 최후에 좌절당하고 패배자로 기록된 인물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 남송의 장군 악비, 러시아 혁명의 풍운아 트로츠키, 2차 세계대전의 영우 롬멜, 소련 개혁과 붕괴의 주역 고르바초프가 그런 인물들이다. 반면에 리지웨이 같은 경우에는 기억되어야 할 만큼의 공()을 세웠지만 잊혀졌다는 의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고, ()을 세운 주원장과 한()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한 무제는 죽을 때까지 승리자로서 기록되었지만, 죽어서 평가가 달라진, 혹은 평가가 분분한 인물들이다. 그러고 보면 뒤의 셋은 앞의 다섯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봐야 할 인물들이다.

 

앞의 다섯이 패배자로서 기록되게 된 과정은 서로 다르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영우에는 페리클레스에 가려져 있는 인물이지만,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은 살라미스 해전 승리로 아테네, 나아가 그리스를 구한 영웅이었다(그마저도 대중적으로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에 가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 이후 권력 투쟁에서 패해 결국은 적극 페르시아에 투항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명예와 지독한 불명예의 삶을 동시에 살고 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악비의 경우엔 출중한 장군이었으나 오히려 그 출중함 때문에 모함을 받고 죽임을 당했는데, 나아감과 물러섬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이 옳음만을 강하게 믿었던 탓도 있었다고 평가된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에서 오히려 레닌보다 더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엘리트 리더의 한계를 보이면서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고 암살을 당한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며 연합국의 장군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던 롬멜은 히틀러 암살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을 강요받고 죽게 되는데, 영웅으로서의 면모와 기회주의자로의 면모 사이에서 명확하지 못했던 처신이 그러한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고르바초프는 거의 당대의 인물이랄 수 있는데, 의도야 어쨌든 소련의 개혁을 주도했지만 결국은 그의 우유부단함과 판단 착오가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되게 된다. 그러나 소련 몰락의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는 그가 패배자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 퇴임 후의 처진, 즉 서방 세계에서 영리 목적으로 강연을 하고, 기념물 제막식에 베일을 벗기는 인물로, 축하 행사의 얼굴 마담으로 등등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니면서 자신의 가치를 모조리 없애버렸다고 할 수 있다.

 

리지웨이는 정말로 잊혀진 인물이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맥아더는 알지만 리지웨이는 모를 것이다. 유필화 교수에 따르면 리지웨이야말로 한국 전쟁을 온건하게 맺을 수 있게 한 대한민국의 진정한 은인이다. 맥아더의 모험적인 성격과는 달리 이성적인 판단과 현장주의가 어우러져 전쟁을 관리해냈다. 잊혀졌다는 의미에서 패배자의 대열에 합류시켰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패배자라는 데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주원장이나 한 무제도 패배자라고 보는 데는 큰 무리가 따르지 않나 싶다. 거지 승려에서 명이라는 제국을 일군 주원장이고, 한 무제도 한나라를 가장 큰 영역을 지닌 제국으로 만든 인물이며, 죽을 때까지 영화를 누렸다. 다만 주원장은 결단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열등감의 발로인지 분서갱유(焚書坑儒) 못지 않은 문자의 옥()’과 같은 사건을 통해 수만 명의 공신들을 전멸시킴으로써 후대의 평판을 떨어뜨렸고, 한 무제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왕위에 오른 탓인지 늙을수록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유필화 교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역사의 평가에서 패배자인 셈인데, 사실은 명이라는 나라도, 한이라는 나라도 주원장, 한 무제 이후 꽤 오랫동안 유지되고 번성했다는 사실을 볼 때 그들의 과오는 패배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 싶다.

 

유필화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이유에서 패배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을 조망하고 있다. 다양한 의미에서 패배자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또한 사회에 대해, 국가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무것도 안했다는 의미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회피하고, 도망감으로서 패배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패배자로 규정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그렇게 기억될 만 한 패배자가 된 것은 그들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패배에서 우리가 건질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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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들의 오류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 책을 읽다 2021-10-0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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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자의 흑역사

양젠예 저/강초아 역/이정모 감수
현대지성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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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는 그의 과학적 업적으로 존경받는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도 실수를 한다. 과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양젠예가 과학자의 흑역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과학자들의 실패, 내지는 실수 사례들이다. 과학자로서 위대한 발견 이전에 길을 잘못 들었던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는 과학적 업적을 이루고 인정받은 이후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실험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젠예는 과학자들의 오류, 실수들을 소개하고,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천문학자, 생물학자, 수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로 나누고 있지만, 그의 의도, 즉 과학자들의 오류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유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우선은 시대적 한계, 즉 과학 수준이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 해석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인생 최대 실수라고 하는 우주 상수나(양자 역학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이지만), 무엇이든 풀어냈던 오일러가 방진(squares)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 것, 상대성이론에 한 발을 담갔음에도 마저 한 발을 딛지 못했던 푸엥카레(나중에도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 침묵했다), 파울리가 패러티 보존법칙을 구해내지 못한 것들은 역사의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해부학으로 유명했던 퀴비에가 진화를 거부한 것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어쩌랴 싶고, 과학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오류사 중 가장 흔한 것은 질투심이라든가 허영심, 아집 등 개인적인 이유에서 새로운 발견과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이다. 플랙홀의 존재를 부정했던 에딩턴, 유전물질로서 DNA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델브뤼크, 염색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베이트슨(유전자라는 말을 만들어냈음에도), 상대성이론의 근거가 된 실험 결과로 유명해졌지만 끝내 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마이컬슨, 산소를 처음 발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으로도 기존 질서에 저항했지만, 플로지스톤 이론을 버리지 못했던 프리스틸리, 원자론을 비판했던 오스트발트, 패러데이를 과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을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의 업적을 깔아뭉개기에 앞장섰던 데이비. 비유클리드기하학에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며 다른 이의 업적으로 가로채려 한 가우스. 그런 사례는 사실상 여기에 적힌 것 외에도 무궁무진할 듯하다.

 

또 한 경우는 논쟁 속에서 자신의 견해에 갇힌 경우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오페론을 발견하여 분자생물학의 시대를 연 자콥이 프리고진의 필연성을 비판한 경우다. 또 물리학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수학자 힐베르트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질소고정법을 발견하여 인류에게 크나큰 혜택을 가져온 하버가 독가스 개발에 앞장선 것이나, N선 발견과 관련한 과학자들의 태도 같은 것들은 단순히 논쟁이라든가,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기에는 크다큰 피해를 가져오거나 과학적 혼란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흑역사라고 해야 하고, 또 심각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특이하게 한 가지 다른 데서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는 인물의 실수가 있다. 바로 갈릴레이인데, 양젠예는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를 파도바 대학을 떠나 피사 대학, 즉 피렌체로 옮긴 것을 들고 있다. 바로 그 선택 때문에 갈릴레이가 로마의 교황청과 대립하게 되고 그 치욕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급여는 적지만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의 파도바 대학, 혹은 베네치아에 머물렀다면 그런 일은 없었으리라면서(과연 그랬을까?).

 

사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과학자들의 실수에만 집중하며 과학자들을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란 점이다. 과학자들의 배경과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실수와 오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벌어졌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석하고 있다. 실수하는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만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과학자들의 실패를 세심하게 탐구하는 것은 연구라는 게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지, 실패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성공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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