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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내가 읽은 올해의 책 | 책읽기 정리 2021-12-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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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내가 읽은 책들 가운데 올해의 책을 선정해봤습니다.

올 한 해 모두 257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더 정성스레 읽은 책도 있고, 대충 읽은 책도 없지는 않습니다.

읽고 나서 금방 잊어버린 책도 있지만, 많은 책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더 기억에 많이 남는,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책을 골라봤습니다.

 

군지 메구의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와 재영 책수선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의 이야기입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책임감에 대한 공감이 컸습니다.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군지 메구 저/이재화 역/최형선 감수
더숲 | 2020년 11월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재영 책수선 저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노마 필드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일본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이 책은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내부적인 시선과 외부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책으로 일본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노마 필드 저/박이엽 역
창비 | 2014년 08월

 

 

박균호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선생의 책을 이 책으로부터 해서 거의 다 읽었습니다. 책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책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저
소명출판 | 2021년 01월

 

 

 

찰스 다윈(신현철 역주)종의 기원 톺아보기

오랜만에 종의 기원을 정독한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신현철 교수의 역주는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조금 방해가 되기도 했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저/신현철 역
소명출판 | 2019년 08월

 

 

 

이지은의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 액자, 기억의 의자, 오늘의 의자

이지은의 책들을 만난 것이야말로 책읽기와 관련해서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

이지은 저
모요사 | 2019년 06월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

이지은 저
모요사 | 2019년 06월

 

액자

이지은 저
모요사 | 2018년 05월

기억의 의자 × 오늘의 의자 세트

이지은 저
모요사 | 2021년 04월

 

 

아모스 오즈의 유다

처음으로 읽은 이스라엘 작가의 소설이다. 유명한 작가이지만 몰랐던 작가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이스라엘을 배신한 아브라바넬을 비교하며 배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유다

아모스 오즈 저/최창모 역
현대문학 | 2021년 03월

 

 

 

프랭크 스노든의 감염병과 사회, 무하마드 자만의 내성 전쟁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감염병, 바이러스, 세균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이 읽기도 했다. 비슷비슷하면서도 다른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책이 바로 이 두 권이다.

 

감염병과 사회

프랭크 M. 스노든 저/이미경,홍수연 역/노동욱 감수
문학사상 | 2021년 02월

내성 전쟁

무하마드 H. 자만 저/박유진 역
7분의언덕 | 2021년 08월

 

 

 

존 그리빈의 과학을 만든 사람들

과학사가 가슴을 뛰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방대하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과학사. 누구에게라도 권할 수 있다.

 

과학을 만든 사람들

존 그리빈 저/권루시안 역
진선북스 | 2021년 08월

 

 

 

김혼비와 박태하의 전국축제자랑

뭐랄까.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다. 교훈적이지도 않으면서, 심금을 울리지 않으면서도 잔잔하게 감동적이었다.

 

전국축제자랑

김혼비,박태하 공저
민음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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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읽은 책들 | 책읽기 정리 2021-12-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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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월에 읽은 책을 정리합니다.

정리해보니 모두 28권 읽었네요. 많이 읽었습니다. 10, 11월에 좀 적게 읽은 것을 보상하려는 심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책이라도 읽으며 다른 것은 잊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읽었습니다.

 

제목

지은이

출판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뿌리와이파리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로저 에커치

교유서가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주경철

김영사

한낮의 어둠

율리아 에브너

한겨레출판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부키

흙의 전쟁

도현신

이다

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죄의 궤적 1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죄의 궤적 2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피오르의 유령

이르사 시귀르다르도티르

문학동네

과학하는 마음

전주홍

바다출판사

퍼스트 셀

아즈라 라자

윌북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따뜻한 인간의 탄생

한스 이저맨

머스트리드북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엘리

가장 공적인 연애

오후

전국 축제 자랑

김혼비, 박태하

민음사

축제와 예감

온다 리쿠

현대문학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재영 책수선

위즈덤하우스

장소가 만들어낸 과학

David N. Livingstone

시그마프레스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로먼 마스, 커트 콜스테트

어크로스

그때, 맥주가 있었다

미카 리싸넨, 유하 타흐바나이덴

니케북스

예술가의 일

조성준

작가정신

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판미동

특별한 형제들

정종현

휴머니스트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문학동네

리센코의 망령

로렌 그레이엄

동아시아

,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김응빈

교보문고

 

소설도 많이 읽었고, 역사 관련한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두꺼운 책은 피했습니다. 심리적인 요인이 없었다고 할 수 없겠네요.

그렇다고 그저 평범한 책들만 읽었단 얘기는 아닙니다.

정말 좋은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세계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줬고,

연달아 읽은 오후의 가장 공적인 연애, 김혼비, 박태하의 전국축제자랑, 재영 책수선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습니다.

 

12월에 읽은 책들에 대해 지금 기억대로 새로 평점을 매겨봅니다.

제목

지은이

평점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로저 에커치

★★★★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주경철

★★★★

한낮의 어둠

율리아 에브너

★★★★☆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

흙의 전쟁

도현신

★★★★

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

죄의 궤적 1

오쿠다 히데오

★★★★☆

죄의 궤적 2

오쿠다 히데오

★★★★☆

피오르의 유령

이르사 시귀르다르도티르

★★★★

과학하는 마음

전주홍

★★★★☆

퍼스트 셀

아즈라 라자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

따뜻한 인간의 탄생

한스 이저맨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

가장 공적인 연애

오후

★★★★★

전국 축제 자랑

김혼비, 박태하

★★★★★

축제와 예감

온다 리쿠

★★★★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재영 책수선

★★★★★

장소가 만들어낸 과학

David N. Livingstone

★★★★☆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로먼 마스, 커트 콜스테트

★★★★☆

그때, 맥주가 있었다

미카 리싸넨, 유하 타흐바나이덴

★★★★☆

예술가의 일

조성준

★★★★☆

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

특별한 형제들

정종현

★★★★☆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

리센코의 망령

로렌 그레이엄

★★★★☆

,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김응빈

★★★★☆

 

이제 2021년의 독서를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저/류한원 역
뿌리와이파리 | 2011년 08월

가장 공적인 연애사

오후 저
날 | 2021년 10월

전국축제자랑

김혼비,박태하 공저
민음사 | 2021년 02월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재영 책수선 저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저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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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과 술, 질병, 전쟁 | 책을 읽다 2021-12-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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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술, 질병, 전쟁

김응빈 저
교보문고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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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생물을 질병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가 훨씬 많지만, 미생물이 없으면 사람은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한다. 원래 이 지구가 미생물이 만들어놓은 터전이었고, 그 터전 위에서 동물, 식물 들이 출현하고,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레이우엔훅이 미생물을 관찰해서 영국왕립학회에 보고한 것이 17세기 후반이었고,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세균이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게 분명해진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스노는 우물의 손잡이를 빼는 퍼포먼스를 통해 콜레라를 제어했고, 제멜바이스 같은 이는 수술하기 전에 손씻기를 주장했지만(그러다 미친 놈 소리를 듣고, 결국에 정신병원에서 죽었지만), 미생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미생물이 그렇게 병을 일으키는 못된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실은 그런 경우가 매우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더욱 최근의 일이다. 지금은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연구가 유행을 탈 정도라, 미생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생물은 우리에게 병을 일으키는 존재라 더욱 많이 각인되어 있다.

 

김응빈 교수의 ,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는 미생물이 가지는 다양한 관점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미생물에 관해 어떤 데 관심을 갖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 효모가 만들어낸 술도 있고, 항생제를 만들어내는 곰팡이도 있고,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늄과 같은 약품(?)으로 쓰이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미생물도 있지만, 대체로는 미생물을 질병과 연관시키고 있다(시국이 시국인 만큼).

 

콜레라균, 탄저균, 매독균, 발진티푸스균, 독감바이러스, 결핵균, 한타바이러스, 장티푸스균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페스트와 같이 다른 데서도 많이 다룬 미생물에 대해서는 제외했다고 했는데, 사실 여기에서 다룬 미생물들도 다른 데서 상당히 많이 다루는 것들이다. 그런데 신선하다. 여기서처럼 미생물을 역사의 전환과 연관시키는 것은 이 분야의 책들이 전매특허와 같은 것인데도 그렇다. 그 이유는 아마도 현장 연구자가 쓴 것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다소는 투박하다.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고, 또 어떤 부분은 매우 성글다. 잘 아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런데도 자세한 부분은 자세한 대로, 그렇지 못한 데는 그런 대로 이해가 되고, 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도 적지 않게 포함시킨 게 신선함에 기여한다.

 

다소 부정확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예를 들어 Mycobacterium 속에서 몇몇 종을 제외하고는 인체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내용이라든지, 씨디프(C. diff)의 속명이 Clostroides로 바뀐 지가 꽤 되었는데, 여전히 Clostridium이라고 쓴다든지), 그것을 비판하기에는 이쪽의 전문가라고 할 지라도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더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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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코는 여전히 틀렸다! | 책을 읽다 2021-12-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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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센코의 망령

로렌 그레이엄 저/이종식 역
동아시아 | 2021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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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르크는 진화론의 선구자 역할을 했음에도 약간은 조롱받는다.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걸 바탕으로 진화를 설명했다는 이유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데서 그의 설명은 터무니없다는 투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사실은 다윈도 유전의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을 옹호했다(물론 그것으로 다윈의 업적이 폄훼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획득형질의 유전에 대한 비판, 내지는 조롱은 21세기 들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이른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등장 때문이다. 후성유전학은 DNA의 서열뿐만 아니라 후천적으로 변화된 특성(분자생물학적으로는 메틸기의 첨가, 혹은 상실 때문에 일어난다)이 적어도 몇 세대는 유전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라마르크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사실은 라마르크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독창적으로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의 저서에서 강조한 것도 아니었지만, 라마르크와 획득형질의 유전을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공식화되어버렸다. 이를 로렌 그레이엄은 용례(usage)가 정확성(accuracy)를 압도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예를 이 책에서는 여러 차례 들고 있다).

 

후성유전학의 등장과 발전은 라마르크를 복권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부이지만) 리센코까지도 무덤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트로핌 리센코. 그는 누구인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유전학계, 아니 생물학계, 아니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멘델과 그 이후 서구에서 발달한 유전학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수많은 학자들을 숙청하는 데 일조함으로써(물론 자신은 부정했지만) 소련의 생물학을 퇴보시켰다. 그런데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획득형질의 유전에 기초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고, 획득형질의 유전을 부분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후성유전학의 등장은 리센코가 옳았다!”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련 과학사의 대가 로렌 그레이엄은 과연 리센코를 복권시켜도 되는지 여부에 대해 러시아 내지는 소련 유전학의 역사, 현대 유전학의 역사, 그리고 현대 후성유전학의 의미 등을 종합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선 리센코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했다는 것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다. 당시 획득형질의 유전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개념이었다. 러시아 혹은 소련의 유전학자들은 더욱더 그랬다. 물론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개념은 점점 쇠퇴해가는 실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리센코의 주장은 동시대 생물학자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획득형질의 유전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독창적인 것은 있었다. 한 종을 다른 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그랬다. 세균 등에서 인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일을 리센코가 식물에서 만들어낸 적은 없다. 그래서 로렌 그레이엄은 그가 옳았던 부분에 있어서 그는 독창적이지 않았다. 그가 독창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는 옳지 않았다(Where he was right, he was not original; where he was original, he was not right.)”라고 표현하고 있다.

 

후성유전학과 리센코를 연결시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후성유전학은 멘델에서 시작한 고전 유전학의 전통에서 발달했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후성유전학이 나올 수 있었지만, 리센코는 분자생물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한 후성유전학의 많은 연구 업적과 문헌들이 리센코를 언급하는 일도 없다. 다만 리센코를 복권시키고자 애를 쓰는 측에서(주로 러시아의 일부 과학자 내지는 종교인) 후성유전학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부적절하게.

 

리센코가 소련 유전학자를 비롯한 생물학자들의 숙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는 리센코 자신의 주장도 로렌 그레이엄은 한 마디로 비판하고 있다. 그가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스스로 그들을 사형장으로, 유형장으로 끌고 간 것은 아니지만, 그의 고발은 언제나 권력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으며, 늘 실제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그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과학을 정치에 귀속시켰다.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로렌 그레이엄은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리센코는 여전히 틀렸으며, 리센코주의의 복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결론 맺는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는 과학을 위협하는 것이 정치일 수도, 종교일 수도, 문화일 수도,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과학 자체가 과학을 위협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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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의 헌법 에세이 | 책을 읽다 2021-12-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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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저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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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법관 문유석(이제는 법관직을 그만뒀지만)은 법이란 최소한의 선의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을 조금 바꾼 말이다. 법이란 도덕에 기초한 것이지만,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에서, 문유석은 조금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다(적어도 선의도덕보다 따스하다. 그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거나 쉽지는 않지만).

 

헌법에서 시작하고 있다. 헌법과 법이 현재의 모습을 취하게 된 역사적 과정, 그것들이 목적하는 바, 그리고 적용되는 현실을 통해 헌법의 근본적 가치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헌법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헌법이 하위로 두고 있는 법의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헌법과 법이 지키고자 하는 인간사회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관과 사회에 대해 법을 고리 삼아 짚어본 제안이다.

 

법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문유석 전 판사이자 작가가 가장 강조하는 얘기는 헌법, 법이란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이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도 않았다. 주로는 유럽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이만큼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피가 뿌려졌다. 솔직히 그가 인용한 우리 헌법 1~2장을 읽으며 그처럼 나도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이 몇 문장을 얻기 위해 뿌려진 피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은 완전하지 않다(그래서 선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법이란 최소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문유석은 그럼에도 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경우의 혼란을 생각해서도 그렇지만, 법의 정신을 생각해서도 그렇단다. 물론 이 부분은 법은 전공하고 오랫동안 법을 다루었던 이에게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법치주의란 법만을 들이대는 태도가 아니라, 그와 가장 관련 깊은 태도가 바로 자유주의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를 위한 조건으로서의 법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자유에 대해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를 언급하는 데서 그가 생각하는 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보장이 법의 정신이라면 그 다음 닿아야 하는 지점은 공존이다. 문유석은 에필로그의 제목을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로 했을 만큼, 이 공존이야말로 법이 다다라야 할 목표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법 조문으로 때려 박는 차원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기대는 것은 사고방식이다. 법이야말로 타협의 기술인데(사실 많이 잊히고 있지만), 극단적인 대결만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법이 그 대결을 부추기는 상황을 안타까워 한다(그래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강조한다).

 

사실 최근에 법, 혹은 재판과 관련해서 조금 깊게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진로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 내지는 재판이 판결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진로에 관한 것은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조언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범위와 관련된 것은 판사가 재판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 혹은 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해당 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없는 판사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겠지만, 그 의견도 서로 상충되는 상황에서 (법이 아니라, 법 조문을 적시하지도 않았으니까) 자신의 상식에 맞추어 판결하는 것이, 과연 전문가 집단의 토론에 맡기는 것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아무튼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스스로 판단을 유보하고 법에 맡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도 깨달았고, 또 우려스러웠다.

 

잘 모르겠다. 일반인들은 법을 몰라야, 법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지 않아야 편안한 사회라고 하는 글도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그렇지 않다. 세세한 법 조항이 우리 삶을 옥좨기도 하고, 혹은 숨통을 틔우기도 한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손해만 가져올 것이 뻔하다. 그래서 법조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냥 잘 모르는 일이라고 손을 놔서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 이게 중요하다고 개인주의자를 선언한 전 판사이자 현 작가 문유석은 강조하고 있다. 상당히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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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사를 특별하게 살다간 형제들의 삶 | 책을 읽다 2021-12-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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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특별한 형제들

정종현 저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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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기 평양의 개화파 유지인 정재명에게는 정두현과 정광현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재였다. 장남인 정두현은 각기 다른 대학에서 농학, 생물학, 의학을 전공하였고, 셋째 정광현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최고 엘리트 형제였다.

 

정두현은 3.1운동에 참여하여 몇 개월 동안 구금되었다 나왔고, 정광현은 3.1운동의 감격을 잊지 못하여 이듬해 일본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비슷한 행로를 걸을 것 같던 형제는 해방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북한에 남았던 정두현은 김일성제국대학 설립을 주도하며 권력 가까이에 다가갔고, 일제 때 윤치호의 사위가 되었던 정광현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관리를 지냈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 남아 미군정 관리를 거쳐 서울대 법대 교수로 활약한다. 정두현은 당국에 제출한 자서전에 서울에 있는 동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대한민국학술원 회원까지 된 정광현 역시 북한에서 고위직에 오른 형을 언급하거나 그리워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형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행로가 완전히 갈린 형제의 예는 미군정 시기 검찰총장이고, 이승만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인과 남로당원이던 그의 동생 이철에게도 찾을 수 있다. 이인은 변호사였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다. 이철은 역사 앞에서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 김성칠의 친구였다. 친구였지만 그는 학문으로 침잠하기를 거부한 행동파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해방 공간에서 좌익을 때려 잡는 기관의 총수가 된 이인에게 이철은 혹, 아니 암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저 시대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비극적인 관계였다. 한국 전쟁 당시 부대에서 낙오해 서울에 남을 수 밖에 없었고, 이후 공산당 부역자로 처형당한 안직조와 그의 동생, 애국가의 작곡가로 유명한, 그리고 지금은 나치 옹호자 내지는 일제 협력자로 의심받고 있는 안익태의 경우도 우리의 역사가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런 운명을 겪지 않았을 형제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형제들도 있지만, 비슷한 길을 걸어간 특별한형제들도 있다. 서유견문의 저자이자 최초의 일본, 미국 유학생이던 유길준의 아들인 유만겸과 유억겸은 개화의 논리를 앞세워 (어찌 되었건) 친일의 길을 함께 걸었고, 호남 거부의 아들인 김성수와 김연수는 함께 기업과 언론사를 일구고, 학교를 세웠다. 정종현은 이들 형제를 당시의 인플루언서로 칭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일관되지 않은데, 그들에게 물려진 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군 다양한 활동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태곤과 민태윤 형제의 삶 역시 특별하다. 그들은 일제 시대 귀족이었다. 일제 시대의 귀족이라면 당연히 친일에 앞장섰던 이들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나, 그들은 그 편한 길을 가지 않았다. 민태곤은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수형 생활 끝에 풀려났지만 해방 1년 전 폐결핵으로 죽었다. 민태윤은 갑자생으로 항일비밀결사 활동을 했다. 일본군에 징집되었었고, 인민의용군에 징집되었다가 도망쳤고, 서울 수복후에는국민방위군에 징집될 뻔하기도 했다. 결국 살아남기는 했지만, 기구한 삶이었다.

 

형제보다 더한 동지로서 세상을 살다간 형제도 있다. 국내 사회주의운동의 개척자였던 김사국, 김사민 형제가 그랬고, 김형선, 김명시, 김형윤 남매도 그랬다. 오기만, 오기영, 오기옥 형제가 그랬다.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를 반대하고 망명한 소련 유학생 여덟 명은 혈연을 넘어선 형제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연고에 굉장히 집착하기 때문에 어떤 두 사람이 형제라고 하면, 그들을 개별적으로 보던 시선이 옅어져 버리고 만다. 서로 같은 길을 걷더라도, 정반대의 길을 걷더라도 형제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고 그 전제 하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정두현, 정광현 형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시선에서 도저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없는 사람처럼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제에 대한 보편적인 상황에 더해 우리의 역사는 비극적인 형제들의 운명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독립 운동을 함께 했든, 사회주의 운동의 동지가 되었던, 함께 친일파로 부귀영화를 누렸든 그 길을 함께 한 것이나,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이나 그들이 살다간 시대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그저 다른 생각을 가졌던 형제, 혹은 같은 배에서 나왔으니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형제로 넘어갔을 그들이 비극의 시대를 거치면서 ‘'특별한형제가 되어 버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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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저녁 비행(Vesper Flights) | 책을 읽다 2021-12-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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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저/주민아 역
판미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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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새가 이렇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을 두고 vesper(s) flights, 저녁 비행이라고 부른다. 베스퍼는 라틴어로 땅거미 지는 저녁을 뜻한다. 거기에서 유래한 배스퍼스는 경건한 저녁기도이기도 하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에 드리는 가장 장엄한 기도! 그래서 나는 항상 저녁 비행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빠져들어 그만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 매직 아워, 그 찰나의 푸른빛이라고 생각한다.” (263)

 

어린 시절부터 곤충과 양서류를 집에서 키우며 자연과 해왔던 저자는 칼새의 비행에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책 제목으로 썼다. 그녀에게는 자연이 종교다. 전혀 종교에 관심이 없던(친구 집에서 식사 전에 사는 기도가 어색할 정도로) 그녀는 자연과 함께 하며 자연이 보여주는 순간순간에 매료되며 그것이 종교가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 자연 세상은 창조주 단 한 사람의 계시로 번득이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내 안에서 신성한 느낌을 일으키는 자연 속 그런 순간들을 내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덧없는 뭔가에 붙잡혀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들이다.” (461)

 

자연이 주는 신비함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까지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구조물까지도 살아가는 터전으로 삼는 동물들을 보며 자연의 끈질김에 경외심을 가지며, 동시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는다. 자연과 동물에 인간의 마음을 투영해서는 그것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어쩌면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은, 동물은 그 자체로 보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마흔 한 편의 에세이를 통해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를 성찰하고 있다. 마흔 한 편의 에세이 중에는 자연과 동물, 우주를 연구하는 이들과의 동행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는 자신과 동료들, 그리고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동물과 맺어온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상 깊은 것은 그녀가 말하는 자연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철새의 이동을 실감나게 관찰할 수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도,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도, 폐 발전소도, 내 집 앞마당도 모두 자연의 한 형태다. 그런 현대의 자연 속에서도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저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또 사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연과의 만남은 늘 목적을 갖는 게 아니란 점도 중요하다. 그 만남은 우연적인 경우가 많다. 운전을 하다, 산책을 하다 우연히 맞닥뜨린 새의 울음소리와 비행, 혹은 죽음까지도 경이로운 것이다.

 

이런 만남들을 통해 저자는 지구상의 여섯 번째 멸종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본다. 그건 몇 종의 동물, 식물이 아니라 바로 그들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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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대한 본능 | 책을 읽으며 2021-12-2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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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는 것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존재하는 이유의 큰 부분이기도 하다. 가령 두루미는 얕은 물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데, 이는 땅 위에서 잠을 청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찌르레기가 말 그대로 화려하고 풍성하게 날개를 퍼덕거리는 행위도 포식자가 찌르레기 떼 안에서 눈에 띄는 어느 한 개체에게 초점을 맞추기 힘들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맥도널드, 저녁의 비행》 (89쪽)

 

공포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란 얘기다.

 

 

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저/주민아 역
판미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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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세상에 어떤 자국을 남기나 | 책을 읽다 2021-12-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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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가의 일

조성준 저
작가정신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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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어떤 사람일까? 물론 사전적으로야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겠지만, 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다시 막힌다. 예술을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것처럼 예술가란 정의 내릴 수 없다. 조성준의 예술가의 일은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조성준의 예술가의 일33인의 예술가(모두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이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우선 그가 예술가라고 지목한 이들이 활동한 분야 자체가 다양하다. 일단 미술 쪽이 가장 많다. 조지아 오키프, 마르크 샤갈, 프리다 칼로, 천경자, 장미셸 바스키아, 나혜석, 주잔 발라동, 에드워드 호퍼, 에드바르 뭉크, 르네 마그리트와 같은 회화 분야가 많긴 하지만,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같은 조각가도 있고,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같은 우키요에 화가, 다니구치 지로와 같은 만화가도 포함한다. 음악도 대중음악 쪽이 많지만, 데이비드 보위, 어리사 프랭클린, 빌 에번스, 존 레넌, 글렌 굴드, 커트 코베인, 이런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 그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클래식 쪽도 배제하지 않았다(구스타프 말러).

 

오즈 야스지로나, 박남옥, 조지 로메로와 같은 영화 감독, 장국영, 버스터 키튼과 같은 영화 배우도 당연히 예술가로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다이앤 아버스와 비비안 마이어와 같은 사진가(비비안 마이어는 죽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그 이름이 사진가로 불려지지 않았지만)의 삶도 예술가의 삶이며, 바츨라프 니진시키, 피나 바우슈와 같은 무용가도 있다. 안토니 가우디, 자하 하디드, 이타미 준과 같은 건축가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이며, 페기 구겐하임과 같이 어떤 작품도 스스로 만들지 않은 이도 조성준은 예술가의 삶으로 대접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술가란 우리 삶과 세계에 무언가의 영감을 불어넣는 이들 모두를 일컫는지도 모른다. 특히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예술가란 특히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의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을 고상한 무언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든, 혹은 출세하기 위해서든 자신들이 해내야 하는 이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자신들의 일에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들이 바로 예술가였던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예술가들이 많다는 것이다(우리나라의 예술가로 다루는 인물은 모두 여성뿐이다. 이타미 준을 제외하면. 그는 재일 한국인이다). ‘여성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화가라고 하면, 혹은 작곡가라고 하면 여성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던 게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의 일이다. 이만큼의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책도 드물고, ‘여성으로서이룬 일에 더 큰 방점을 두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룬 예술 자체에 방점을 두는 책도 많지 않다(물론 나혜석이나 박남옥 등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여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만).

 

다 읽고도 여전히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지 한 문장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예술가의 일이 세상에 어떤 자국을 남기는지에 대해선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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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맥주가 있었다 | 책을 읽다 2021-12-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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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때, 맥주가 있었다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저/이상원,장혜경 역
니케북스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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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명과 거의 함께 시작된 게 맥주의 역사다. 경작한 보리가 발효하면서 요상한 맛과 효과를 내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고, 인류는 그것을 맥주로 빚어냈다. 이란 고원의 석기시대 토기에서 이미 발효곡물의 흔적이 나오고 있고, 수메르인이 기원전 4000년에 이미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맥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역사 속에서 맥주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혹은 맥주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미카 리싸넨과 유하 타흐바나이덴(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북유럽 출신 역사학자들이다. 서지 사항을 보면 아마도 핀란드)그때, 맥주가 있었다를 통해서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역사 속의 맥주의 흔적 찾기, 맥주를 통한 인류의 역사 더듬기이다. 맥주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은데, 그런 책들 가운데서도 맥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를 다루는 게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일화에 그치기보다는 보다 역사 쪽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저자가 역사학자들이니 당연한가?).

 

맥주는 어디에도 있었다(물론 유럽의 역사에 한한 것이긴 해도).

중세 수도원의 역사는 맥주와 함께 했고(특히 북유럽의 수도원은 더욱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도 맥주는 등장한다(맥주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결혼한 아내는 직접 맥주를 빚었다).

스웨덴의 30년 전쟁에서의 승리에 이면에는 전설 같은 맥주 이야기가 있고, 유럽화를 염원했던 러시아 차르 표트르 대제의 유럽 여러나라에서의 행보에도 맥주가 함께 했다.

스웨덴의 위대한 군인이었던 산델스는 병사들이 마시는 맥주를 마시며 동고동락하며 신임을 얻었고(그의 이름을 딴 맥주가 있다), 철도가 처음 유럽에 도입되었을 때, 뉘른베르크와 퓌르트 사이에 오간 기차의 첫 화물은 맥주 두 통이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독일을 이겨보겠다는 염원 하에 맥주를 연구했고(거기서 파스퇴르살균법이 나왔다. 이후 이 살균법은 우유에 더 널리 적용되어왔지만), 코펜하겐의 메디치 가문을 불리는 야콥센 부자는 파스퇴르의 연구를 이어받아 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냈으니 바로 칼스버그다.

북극점에 처음 도전했던(실패했지만) 난센을 후원한 것은 링그네스 양조장이었고, 1차 세계대전 때 전선에서 이뤄진 크리스마스의 기적 속에도 맥주가 있었다(비록 김빠진 맥주였을 가능성이 높고, 그 기적인 단 한 해에 그쳤지만).

히틀러는 뮌헨의 비어할레(말하자면 맥주집)에서 쿠데타를 시도했고(물론 그 어설픈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결국은 정권을 잡는다), 히틀러 이전 바이마르 정권을 이끌었던 외무부 장관 슈트레제만은 맥주 도매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맥주를 통해 노동을 하고, 인간 관계를 넓히는 방법을 익히고, 경제를 배웠다(그의 이른 죽음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파멸을 촉진했고,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투르 드 프랑스의 현장에도 맥주가 함께 했고, 옥스퍼드대학 근처 펍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루이스를 비롯한 문인, 학자, 역사학자, 의사 등이 맥주를 마시며 잡담도 하고, 자신의 작품도 다듬었다.

맥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제공되기 위해 전투기 날개 밑에 매달려 해협을 수도 없이 건넜고, 체코의 반체제 극작가였던 하벨은 핍박의 시기에 맥주 양조장에서 일꾼을 일했다(나중에 벨벳 혁명 이후 대통령이 된다).

1990년대 초 폴란드가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후 혼란의 시기에는 맥주 애호가 정당이 등장에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고, 세르비아의 사라예보 포위 시에는 시내의 사라예브스카 양조장의 우물의 사라예보 시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아일랜드의 비상과 추락을 함께 했던 카우언 총리는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어지러운 경제 숫자를 다루었고, 맥주 회사는 오래전부터 프로축구 팀과 함께 한다.

 

물론 맥주 얘기를 쏙 빼놓고도 유럽의 역사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위의 역하, 혹은 일화에서도 맥주가 반드시 등장해야만 하는 이야기는 몇 없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에 맥주가 있어 생동감 있는 역사가 된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맥주가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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