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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읽은 책들 | 책읽기 정리 2021-06-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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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마지막 날이고, 이제 2021년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여전히 어지러운 시국이지만, 희망의 빛은 있다고 믿습니다.

 

6월 한 달 동안 모두 27권 읽었습니다.

많이 읽은 셈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설책을 좀더 읽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읽은 책 목록입니다.

제목

지은이

출판사

마지막 고래잡이

더그 복 클락

소소의책

두 발의 고독

토르비에른 에켈룬

싱긋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조지프 르 두

바다출판사

죽음의 청기사

로라 스피니

유유

원소의 이름

피터 워더스

윌북

결정의 원칙

로버트 딜렌슈나이더

인플루엔셜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강성호

미디어숲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안인희

웅진지식하우스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2

안인희

웅진지식하우스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3

안인희

웅진지식하우스

기억의 의자

이지은

모요사

오늘의 의자

이지은

모요사

바보의 세계

장프랑스아 마르미옹 엮음

윌북

25가지 질병으로 읽는 세계사

정승규

반니

총보다 강한 실

가시아 세인트 클레어

윌북

완전한 행복

정유정

은행나무

문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문명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유다

아모스 오즈

현대문학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문학동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

장지웅

미디어숲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스테판 바위스만

웅진지식하우스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홍춘욱

포르체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리처드 랭엄

을유문화사

 

6월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더그 복 클락의 마지막 고래잡이

로라 스피니의 죽음의 청기사

피터 워더스의 원소의 이름

안인희의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이지은의 기억의 의자오늘의 의자

가시아 세인트 클레어의 총보다 강한 실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

아모스 오즈의 유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홍춘욱의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리처드 랭엄의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이런 책들은 모두 권하고 싶은 책들입니다. 물론 다른 책들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그냥 느낌대로 6월에 읽은 책들에 대해 다시 평점을 매겨봅니다.

제목

지은이

평점

마지막 고래잡이

더그 복 클락

★★★★☆

두 발의 고독

토르비에른 에켈룬

★★★★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조지프 르 두

★★★★☆

죽음의 청기사

로라 스피니

★★★★☆

원소의 이름

피터 워더스

★★★★★

결정의 원칙

로버트 딜렌슈나이더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강성호

★★★★☆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안인희

★★★★☆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2

안인희

★★★★☆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3

안인희

★★★★☆

기억의 의자

이지은

★★★★★

오늘의 의자

이지은

★★★★★

바보의 세계

장프랑스아 마르미옹 엮음

★★★★☆

25가지 질병으로 읽는 세계사

정승규

★★★★

총보다 강한 실

가시아 세인트 클레어

★★★★☆

완전한 행복

정유정

★★★★☆

문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

문명 2

베르나르 베르베르

★★★★

유다

아모스 오즈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

장지웅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스테판 바위스만

★★★★☆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홍춘욱

★★★★☆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리처드 랭엄

★★★★☆

 

6월에 읽은 책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이지은의 기억의 의자오늘의 의자,

아모스 오즈의 유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지은의 완전한 팬이 된 것 같네요.

 

 

기억의 의자 × 오늘의 의자 세트

이지은 저
모요사 | 2021년 04월

 

유다

아모스 오즈 저/최창모 역
현대문학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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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 추천 5        
인간, 천사 같기도, 악마 같기도 | 책을 읽다 2021-06-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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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리처드 랭엄 저/이유 역
을유문화사 | 202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루소의 세계와 홉스의 세계. 혹은 보노보의 세계와 침팬지의 세계. 한쪽엔 더없이 관대한 품성의 인간이 있고, 다른 한쪽엔 한없이 사악한 존재가 있다. 루소주의자들은 도덕적이고, 선한 인간이 점점 타락해왔다고 하고, 홉스주의자는 본성이 악한 존재가 교육 등을 통해 다듬어져 왔다고 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어느 쪽이나 증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일 텐데 너무나 다른 인간,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선한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과 악한 인간이 나아졌다는 것은 결국 한 지점으로 수렴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똑같은 인간을 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버드의 인간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랭엄은 이 두 개의 세계가 비록 역설적이지만 모순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인간은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진화했다고 보지 않는다. 관대한 품성이나 사악함이나 모두 호모 사피엔스로서 진화시켜 온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두 가지를 모두 진화시킬 수 있었는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랭엄은 인간, 내지는 동물의 공격성, 혹은 폭력성을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 ‘주도적 공격(냉기, 공격적, 사전에 계획한)’반응적 공격(온기, 방어적, 충동적인)’이 그것이다. 괄호에 넣었듯이 반응적 공격은 누가 나를 자극했을 때 욱하면서 나오는 공격성이고, 주도적 공격은 계획적인 살인과 같은 것이다. 랭엄은 다른 동물에서도 주도적 공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야말로 거의 유일하게 주도적 반응적 공격성보다 주도적 공격성이 우세한 종()이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 선함과 악함의 역설을 풀 수 있는 해답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자기 길들이기(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폭력적 성향을 누그러뜨려 왔다. 길들이기의 결과는 대표적으로 개의 가축화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실험한(지금도 진행 중인) 은빛 여우의 길들이기에서도 길들이기가 가져오는 여러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두뇌 등을 비롯하여 많은 외형적 특징은 인간이 자기 길들이기(개는 인간이 길들인 것인지만, 인간은 길들이는 주체가 스스로라는 의미에서 자기 길들이기이다)를 통해 유형 성숙한 것이고, 또한 품성 역시 길들이기의 효과로 반응적 공격성이 약화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인간의 폭력성이 감소한 데 대해 랭엄은 (아주 놀랍게도) ‘사형 가설을 내세운다. 찰스 다윈도 이런 얘기를 했다는데, 사회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는 알파 남성을 제거하는 데 사형이라는 수단이 행해졌고, 이를 통해서 인간은 협력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또 유순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어쩌면 가장 논쟁적인 부분일 수도 있는데, 가장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 가장 비폭력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의 한 논리로서 이용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랭엄도 이 부분이 가장 걱정이 되었는지 에필로그에 따로 이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사형 반대론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형이 한 일에 대해 감사할 수는 있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지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에게서 반응적 공격성이 감소하면서 주도적 공격성은 강화되었는데, 여기에는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당연한 생각인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서로 작당해서 우세한 적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길들이기반응적 공격성의 약화, 그리고 그와 더불어 주도적, 협력적 공격성은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 언어를 기반으로 한 음모가 핵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천사 같은그리고 악마 같은경향은 언어에 의해 가능해진 셈이다.

 

인간은 모순된 존재다. 본성을 인식하고, 혹은 부정할 수 있는 (아마도 현재까지는) 유일한 존재다. 우리가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즉시 오늘 밤의 살인 사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는 없다. 또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계획적 폭력 살인(이른바 전쟁 등)을 당장 없앨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어떤 길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성찰할 수 있다. 그렇게 성찰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래도 좀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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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을 읽자! | 책을 읽다 2021-06-2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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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스리커버]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홍춘욱 저
포르체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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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정말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내 이름으로는 주식 투자도 하지 않고, 기타 다른 투자도 하지 않는 셈이지만, 그래도 다른 가족의 투자에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을 수도 없다. 게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제가 돌아가는 데 무관심할 수도 없다. 내 입장에서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그나마 조금 알기 위해서 경제 공부를 할 필요를 느낀다.

 

최근 들어, 특히 주식 투자 기초와 실전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나왔고, 경제에 관한 책들도 나왔는데, 국내 최고의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이라는 홍춘욱의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지나치게 실전에 집중하는 책들은 내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흐름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돈 공부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냥 무작정 뛰어들지 말고,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지식이라든가 투자 방법 등에 대한 공부를 하고 훈련을 통해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돈의 흐름을 읽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돈 공부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데, 이자율의 높고 낮음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경기의 순환 구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폭락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단순하게 이것들만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것도 모르면서 경제를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또 투자에 뛰어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한국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홍춘욱은 한국 경제에 대해서 비관적이지 않다.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라기보다는 꽤 괜찮게 버티어왔고, 또 앞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이다. 물론 근거도 있다(블룸버그에서 한국을 세계 혁신국가 1위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관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요소인 수출 위주의 경제 체제가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고, 중국이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얘기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는 무조건 잘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분야를 유지하고, 어떤 분야를 보완하느냐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투자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 경제 위기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즉 경제 위기의 신호가 왔을 때 신뢰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를 하고, 경기 상승 국면을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부의 축적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홍춘욱은 만장일치의 위험과 과잉 대출 붐, 장기, 단기 금리의 역전 현성 등을 주시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기업의 주식에 투자해야 하느냐도 자신의 원칙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이를테면 대주주가 매수에 나서는 경우, 배당금을 올리는 경우 등인데, 사실은 이치상으로 당연한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 공부를 하지 않아서, 혹은 게을러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 셈이다.

 

단순한 투자 실전보다는 원리적으로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보면서 감각을 익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투자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무척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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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꽤 쓸모가 있다 | 책을 읽다 2021-06-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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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스테판 바위스만 저/강희진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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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책 제목은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이지만, 수학은 절대 만만하지 않고, 또 이 책도 수학을 만만하기 보지 않는다. 수학을 사용하지 않는 부족은 분명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부족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지도 못했다. 수학은 말하자면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를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며, 또 현대 문명으로 이를수록 더욱더 필요해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수학을 처음부터 어려운 과목으로만 인식하고 자꾸만 밀어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의 효용성을 이해하고, 또 원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노력 없이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스테판 바위스만은 수학철학자다. 수학철학자가 과연 어떤 것을 연구하는 것인지 언뜻 잡히지는 않지만, 이 책 내용에서 몇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다. 한 가지는 플라톤과 셜록 홈즈와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인데, 수학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수학을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 보듯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추상적인 세계로 이해할 수도 있고, 셜록 홈즈의 이야기에서처럼 원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수학철학은 수학이라는 것을 어떤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학문일 수 있겠다 싶다. 또 하나는 아기가 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실험을 소개한 데서도 수학철학이 어떤 데 관심을 갖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기가 덧셈과 뺄셈의 기본적인 인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는 흥미롭기도 하고, 인간에게 내재된 수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인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수학철학자인 스테판 바위스만이 이 책에서 정말 관심을 갖는 것은 수학이 실재적인 것인지, 허상의 것인지, 혹은 아기가 수를 인식할 수 있는지, 아닌지 등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수학의 유용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수학이 어떤 데 응용되는 것이니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라는 식의 설득이 아니란 점이 독특하다. 구글 맵스에서 최단 거리를 찾아가는 방법, 넷플릭스에서 선호하는 영화를 추천하는 방법에서 시작하면서 수학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수학의 구체적 방법을 설명하는 대신 거기에 담긴 논리를 통해서 수학의 유용성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물론 구글 맵스나 넷플릭스는 눈에 쉽게 띠는 예이다. 정말 수학이 현대 문명에서 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적분과 확률, 데이터과학 같은 것들이다. 바위스만은 차량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 현수교를 건설하는 데서 미적분의 유용성을, 암 판정에 대한 태도, 전염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 교묘한 숫자놀음을 파악하는 데서 확률의 유용성을, 구글이 검색하는 방식, 항암치료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서, 페이스북이 친구를 추천하고, 또 세일즈에 이용하는 방식에서 데이터 과학, 알고리즘의 유용성을 찾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수학이 반드시 옳다는 관점이 아니다. 또 거기에 내재된 수학에 모두가 통달해야 한다는 관점도 갖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 수학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세상을 훨씬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본다.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좀더 분명하게 살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바로 수학이라는 얘기다.

 

수학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도무지 정복할 수 없는 산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학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쓸모가 있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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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 대한 경배(敬拜) | 책을 읽다 2021-06-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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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저/김현주 역/이중원 감수
쌤앤파커스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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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아름답다! 이 말을 물리학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물리학자가 아닌 이들은 거의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할지 모른다. 그런데 물리학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카를로 로벨리는 바로 그렇게 물리학을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이 책이 물리학 교양서라는 걸 순간 잊게 한다.

 

이 입자들은 마치 우주 문자처럼 다양한 조합을 이루며 수많은 은하와 별, 우주광선, 태양빛, , , 들판, 심지어는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미소와 별이 총총이 박힌 어두운 밤하늘의 거대한 역사까지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68)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라고 하듯 여전히 그에게 아름다운 것은 물리학이다. 그에게 물리학은 여전히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대표적으로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모순된다) 세계를 설명하는, 아주 감동스런 이론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카를로 로벨 리가 이야기하는 물리학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정작은 이 세계가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7개의 짧은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이론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물리학에 담긴 의의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그 이론들로 이 세계를 얼마나 더 설명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중심인 셈이다. 다음은 우주의 구조와 입자, 공간 입자들에 대해서 강의한다. 여기서는 자신의 전공인 루프양자중력이론을 포함하여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포괄하는 이론에 대한 시도들을 설명한다.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시도이고, 또 그런 이론이지만 로벨리가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는 시간에 관한 강의다. 열의 이동이 없다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는 열역학의 함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강의는 인간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는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에 대한 굳은 믿음을 보여준다. 아직 우리는 많은 것들 모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세계의 신비에 더 감동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과학이 있어 그렇다.

 

물리학 자체보다 물리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책이고, 물리학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의 물리학에 대한 경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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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 어렵지 않아요 | 책을 읽다 2021-06-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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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

장지웅 저/김지혜 감수
미디어숲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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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니던 무렵 나는 한두 번 미적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핏대를 올리며 설명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어이없어 했다. 이미 미술 전공으로 굳혀서 수학은 접어버렸던 작은 아이는 물론이고 수학을 꽤 잘 하던 큰 애도 그랬다. 수학은, 그리고 미적분은 그저 자신들을 괴롭히기 위한 도구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우리의 문명이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하기사 그저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기는 하다. 그렇게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미적분을 비롯한 고등수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적분의 대단함, 아름다움(아마 로그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을 침 튀겨 가며 얘기할 때 콧방귀를 뀌던 작은 아이가(지금은 영상 전공한다) 지난 겨울 카톡으로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래픽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것 등을 구현하는 데 거기에 수학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학을 잘 하면 원리적으로 잘 구현해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냥 흉내 내면서 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것 봐라! 아들아!

 

수학은 그런 것이다. 우리 삶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고, 언젠가는 그 필요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미분, 적분도 그렇다. 그것을 통해서 수학능력시험의 수학 29, 30번 문제(가장 어렵다는 문제가 그 번호에 배친된다고 한다)를 풀 수는 없을 지언정 그 원리를 안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정말로 큰 차이가 있다. 그 용어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것과 그래도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쯤은 이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의자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인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아는 게 우리가 그 의자를 만들지는 않지만, 그 의자에 앉을 때, 움직일 때, 혹은 어떤 충격을 받을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금방 생각난 비유인데,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정지웅이 미분 개미를 등장시켜 미분과, 나아가 로그함수, 적분에 대해서 설명한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은 바로 그 수준, 적어도 미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게 왜 신기하면서도 현대 문명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프에서 접선의 기울기가 바로 미분값이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극한의 개념을 통해서 그것을 계산하는 방법. 그것을 일반화시켜 표현하는 방법. 지수함수와 로그함수의 관계와 그것의 미분함수(고등학교 수학에서는 여기서부터 어려워진다)가 왜 그런 모양으로 생기는지, 합성함수, 역함수의 미분까지. 그리고 끝에는 적분의 의미까지 간략히 설명한다(미분을 얘기했는데 적분을 얘기하지 않으면 화장실 가서 중간에 나온 기분일 수 밖에 없다).

 

미분을 누가 발명했는지를 두고 영국과 독일이 국가적 자존심을 걸로 과학자들이 다퉜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만큼 중요한 발견, 발명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에서 당연히 가르쳐야 하는 분야다. 그러나 또 많은 학생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그 시절을 거쳐온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는다. 수능 수학에서 고득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럴 수 없다하더라도 미분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의미를 찾기 전에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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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지만 여전히 눈이 먼 건지도 모른다 | 책을 읽다 2021-06-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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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역
해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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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눈먼 자들의 도시의 후속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눈이 멀었던 이들이 눈을 뜨는 장면에서 끝난 눈먼 자들의 도시에 이어 눈뜬 자들의 도시는 그렇게 눈이 뜨여진 이들의 이야기다. 아니 좀 더 분명하게 하자면 눈을 떴지만 애써 눈을 감는 자들의 이야기다.

 

그 사건 이후 4년 후의 어느 날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방 선거 투표일. 수도에서는 70퍼센트가 넘는 백지 투표가 나온다. 일주일 후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는 백지 투표가 이전보다 더 많아진 80퍼센트에 이른다(왜 시민들이 백지 투표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정부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라는 일반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단서도, 소설에서는 하나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그렇게 투표를 했다는 것이고, 그게 어쩌면 눈뜬 자들의 행동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색 실명의 사태에서 무능하기 그지없던(사실 무능이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함과 무책임이 더 문제였다고 생각하지만) 정부는 일제히 몰래 수도를 빠져나가고 도시를 봉쇄한다. 그들은 정부의 기능이 사라진 도시가 혼란에 빠지고, 백지 투표라는 전염병에 감염된 시민들이 항복을 선언하고 제발 좀 돌아와 달라고 애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평화로웠다. 시민들을 두고 내뺀 정부가 오히려 혼란에 빠진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소설의 절반에 이르기까지 4년 전의 백색 실명 사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던 소설은, 이 소설이 그 이야기의 연속이라는 것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협정 같은 건 없었고, 하물며 국가적 협정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사 년 전에도 성인이었는데, 우리 모두 몇 주 동안 눈이 멀었다는 사실에 관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양피지에 국민이 서명을 했다는 기억은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무시무시한 시련은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끔찍한 악몽으로 치부하는 게 좋다고 우리 모두 생각했소. 현실이라기보다는 꿈에서 보았던 일이라고 생각하자는 거지.”

 

그 치욕스런 기억은 그냥 잊혀질 수 있는 게 아니었음에도 모두가, 특히 그 사태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졌어야 하는 이들은 절대 언급하지 않는 금기였던 것이다. 마치 잠시도 눈이 멀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하지만

 

내가 한 말은 우리가 사 년 전에 눈이 멀었다는 것이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지금도 눈이 먼 것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들은 희생양을 찾아야 했다. 그들에게 날아온 편지 한 통. 거기에는 사 년 전에 눈이 멀지 않았던 여인이 있었음을 밝힌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한 무리를 이끌었던 바로 그 안과의사의 아내였고, 맨 처음 눈이 먼 자가 쓴 편지였다. 그 사실과 백지 투표가 관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눈을 감은 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조금이라도 이상한 자가 있다면 그가 용의자이고, 범인인 것이다.

 

몰래 잠입한 경찰 세 명. 그러나 그들도 그 여인에게서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한다. 오히려 감화되고 만다. 그렇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고, 안과의사 아내를 포함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그녀와 함께 살아남은 이들의 사진이 공개되고, 도시를 혼란에 빠뜨린 주동자로 지목된다. 도시는 하나도 혼란스럽지 않음에도. 혼란스러운 것은 혼란스럽지 않은 도시, 이성적인 시민들에 당황한 장관들 밖에 없었음에도.

 

결과는 비극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이 비극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구조였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그 희망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비극으로 끝나는 구조다. 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쓰면서 눈뜬 자들의 도시의 이야기까지 구상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세계와 눈뜬 자들의 도시의 세계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4년 동안 그의 세계관이 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은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 다음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럴 수 밖에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소설은 많은 사람이 원치 않았을 방식으로 끝난다. 세상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 특이한 점은, 눈먼 자들의 도시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단 한 사람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 직업이나 특징으로만 불려진다. 주인공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건 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의사 아내의 눈물을 핥아주던 개. 이름은 콘스탄테. 스페인어로 항구적인’, ‘불변의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작가지만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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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이토록 허약하고 이기적인가 | 책을 읽다 2021-06-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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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역
해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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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어울리지 않게 의 진화에 관한 논쟁이 떠올랐다. 이른바 창조론자, 내지는 창조과학에서는 눈이라는 기관의 복잡성을 얘기하면서 이러한 기관이 점진적인 변이가 쌓여서 만들어졌을 거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1%의 눈이 무슨 소용이라며.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등 많은 생물학자들이 논파하듯이 1%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보다, 10%의 눈은 1%의 눈보다 살아가는 데 어마어마하게 유리하다. 더군다나 우리의 눈은 생각보다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눈이라는 기관을 하느님이 공을 들여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만들지 않았을 거다.

 

전혀 과학과는 관련이 없는 소설이지만(그래서 주제 사라마구는 백색 실명의 원인에 대해서 밝힐 필요도 없다), 눈의 진화에 대해 생각한 것은 난데없는 일은 아니다.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 인간의 눈이 진화의 결과물, 아니 과정에 있는 거라는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진화적 성과가 한 순간에, 이유도 없이 무너져 내렸을 때, 그건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인간이라는 굵은 글씨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말해야 하는 인간이 가지는 많은 숭고한 가치들은 겨우 하나의 기관, 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나마 한 집단이 치욕을 견뎌가며 인간이라는 조건에 가까스로 걸맞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본다는 것이란... 대단한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당연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쓰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은 허약한 것이고, 이기적인 것이다. 문명과 야만 사이는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그걸 읽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총을 든 자들이 식량을 독식하고 굴종을 강요하고, 파렴치한 요구를 했을 때, 어찌 할 것인가?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총을 지니고 있다면 과연 자애로운 판단을 하여 나눌 수 있을까?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도 의미가 없다. 인간이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걸 주제 사라마구는 냉철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

 

어슐러 K. 르 귄(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에게서 이미 들었듯이 주제 사라마구의 글은 형식적으로 그리 친절하지 않다. 한 문단이 몇 페이지에 이르거나, 대화와 지문이 줄로 나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이 소설이 쉽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그냥 글을 쫓아가면 다다를 수 있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계속 생각하게 하고, 계속 찾아야만 하게 한다. 그게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면서, 또한 성취를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을 때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여인은 볼 수 없게 된다. 그녀가 볼 수 있던 동안 망가진 세상을 계속 보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처참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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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지점을 응시하는 섬세한 문장들 | 책을 읽다 2021-06-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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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저/김이선 역
문학동네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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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전문 과학서의 제목을 한 소설집. 그러나 이 소설집에 담긴 10편의 소설들은 모두 아련하다. 어쩌면 물리학의 입자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인 안개상자를 보는 듯한 느낌.

 

열 편의 소설은 모두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장편소설이라면 삶의 종단(縱斷)하였겠지만, 단편소설은 삶의 어느 한 시점을 잘라서 보여준다. 그 시점이야말로 삶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삶과는 다른 결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가정은 그 시점을 주목하게 한다.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상처를 가진 이들이다. 그 상처는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넓혀 보면 그게 상처가 되는 것은 또한 사회적 성격을 띤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차례 등장하는 동성애(또는 양성애)가 그런 것이고(<아술>, <머킨>, <코네티컷>), 교수와 학생의 사랑(<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그런 것이다.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경험이 누군들 없으랴. 삶의 어느 한 귀퉁이에 놓고 온 그 기억은 불쑥불쑥 기억 밖으로 나온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괴롭거나 혹은 아련하다.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괴롭기도 하고, 그래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또 돌이켜보면 그런 삶이었기에 나의 현재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또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든 나는 과거의 삶에서 이어진 것이다.

 

앤드루 포터의 문체는 매우 신중하다. 전혀 거칠지 않고, 간결한 문장을 보면 고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여러 차례 문장을 다듬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결은 다르지만 이언 매큐언을 읽을 때의 느낌이다. 잊혀질 수 없는 삶의 한 지점을 바라본 눈길이 이렇게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는 건 바로 문장의 섬세함 때문이라는 걸 읽는 내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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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신자는 과연 배신자인가? | 책을 읽다 2021-06-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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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다

아모스 오즈 저/최창모 역
현대문학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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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실수와 욕망, 실패한 사랑과 답 없이 여기 남겨진 어떤 종교적 문제가 담겨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 인물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하나는 예수를 배신한 가룟 유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배신한 쉐알티엘 아브라바넬. 모두 배신자로 비난 받는 인물들이다. 이 소설은 배신에 관한 이야기다.

 

가룟 유다는 배신자로서 정말 유명하다. 은화 30전에 예수를 팔아넘긴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그를 배신자라 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지만 아모스 오즈는 과연 그가 예수를 정말 배신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단 한 순간도 유대교를 버리지 않았던 예수였지만,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종교(기독교)가 탄생한다(기독교는 사실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바울의 종교다). 바로 그 촉발점이 유다가 아니었나, 유다는 예수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권했던 인물이고, 예수가 죽은 이후 따라 죽은 유일한 제자였다. 아모스 오즈는 가룟 유다야말로 최초의 기독교인이자, 마지막 기독교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가룟 유다의 배신이야말로 기독교인에게는, 아니 모든 이에게 너무도 명확한 것이라 누구도 그의 이름을 다른 의미로 언급하기를 꺼린다. (와 그의 이름)에게서 비롯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또 하나의 인물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건국 당시 초대 총리가 된 벤구리온과 맞섰던 인물이다. 건국 전쟁에 반대했으며, 아랍인과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주장했지만, 그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물론 이 인물은 아모스 오즈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혹시 몰라 찾아봤다), 그 시대에 건국에 대한 열광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을 가졌던 인물이 없었을 리 없다는 상식에 비추면, 분명히 존재했을 인물이기도 하다.

 

두 배신자. 한 사람은 유대인으로 배신했고, 또 한 사람은 유대인을 배신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의 배신은 배신이었을까? 아모스 오즈는 당연히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논란을 넘어설 수도 있는) 두 인물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이야기한다.

 

이 배신, 배신자 이야기는 세 사람을 등장 인물을 통해 전개된다. 슈무엘 아쉬. 사랑에 실패하고,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이후 경제적으로 곤란해지고, 학위 논문까지 포기한 청년. 대학의 카페테리아에 붙은 구인 공고를 보고 어느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일흔 살의 장애인 게르숌 발드와 그의 며느리 아탈리야 아브라바넬이 있다. 슈무엘의 일은 발드와 매일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발드의 아들이나 아탈리야의 남편은 촉망받는 수학자였지만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이 반대했던 건국 전쟁에서 처참하게 전사하였다. 슈무엘과 발드 사이에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간극이 있고, 슈무엘과 아탈리야 사이에는 사랑인지 욕망인지 모를 관계가 형성된다. 이 세 사람 사이의 긴장이 앞의 두 인물의 배신(또는 배신이 아닌) 이야기와 얽힌다.

 

아모스 오즈라는 소설가는 낯이 설다. 히브리 작가 자체가 낯익지 않다. 하지만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많은 문학상(우리나라의 박경리문학상을 포함하여)을 받은 소설가다.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에 관해 전향적인 방안(‘두 국가 해결책’)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도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며, 그래서 유다를 떠올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과연 배신이란 무엇인가?

 

유다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구상했고, 문제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던 소설이다. 소설의 논쟁적인 주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역사와 종교, 그리고 민족 등 결코 그 하나하나를 봐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한 청춘의 좌절과 사랑, 그리고 토론을 통해서 풀어간다. 물론 답 없이 영원히 남겨질 문제이지만, 그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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