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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진통 끝에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내다 | 책을 읽다 2022-02-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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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국인 이야기 3

로버트 미들코프 저/이종인 역
사회평론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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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는 미국 독립 전쟁 이전 1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었고, 2권에서는 주로 독립 선언과 함께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다루었다. 3권에서는 8년에 걸친 독립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으며, 독립 전쟁이 아메리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다루며 이어진 헌법 제정에 얽힌 복잡한 상황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륙군이 가끔 승리하면서 자주 패배하는 전투에서도 전력을 보존해가며 영국군의 진을 뺐다는 것은 2권에서 아주 잘 다룬 바가 있다. 그런 도망치는 전쟁을 통해서 자신감을 갖게된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과 프랑스 연합군은 1781년 요크타운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파리에서 협상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2권에서 전투의 진행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로버트 미들코프는 3권에서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이 전쟁의 이면과 외부를 살펴보고 있다. 대륙군과 영국군이 어떤 전투 기술을 가지고 전쟁에 임했는지, 대륙군이 처했던 수많은 어려움들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무기에서 군복, 식량, 의료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많은 부분이 부족했던 대륙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등이 전쟁의 이면에서 다루고 있다면, 전쟁의 외부에서는 전쟁을 직접 치르는 군대가 아닌 민간 사회가 어떠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물리적인 파괴, 남겨진 가족들, 특히 여성들의 다양한 반응, 그리고 민간인에 대한 약탈(주로는 영국군에 의한 것이었지만 대륙군도 전혀 해당 사항이 없진 않았다)에 대해 쓰고 있다. 전쟁은 북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의 삶과 생각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3권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헌법 제정 과정이다. 전쟁에 승리한 후 바로 헌법 제정에 돌입하지 않은 것부터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미 라고 하는 단위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대륙회의가 존재해서 느슨한 통합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대륙회의는 번번이 주 정부에게 밀렸고(‘연합규약이라는 것을 이미 제정했지만 중앙정부에 권한을 부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는 독립의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헌법제정회의는 1987년에 필라델피아에서 열린다. 5월에 시작된 회의는 917일에 가서야 간신히 대표들의 서명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종 논의가 오간다. 서로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이다. 연방정부에 권한을 얼마나 줄 것인가에서부터 의회는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노예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행정부의 수장은 어떻게 몇 명이나 뽑을 것인지 등등 모든 것을 새로이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큰 주와 작은 주의 대립, 북부 주와 남부 주의 대립, 농장주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대립, 대표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대립 등 어느 사안 하나를 동의하는 데에도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이해 관계가 첨예하여 정말 회의가 깨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대립을 거치면서도 결국은 헌법 제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들은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서 쟁취해낸 대의를 버릴 수 없었고, 양보를 통해서도 연방을 이루어야만 하는 절실한 필요, 내지는 신념이 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논란의 씨앗을 남기기도 했다. 노예제에 대한 언급을 하면 즉시 끝장 내버리겠다는, 주로 남부의 농장주를 대표하는 대표들의 위협에 자유를 위해 싸웠고, 천부인권을 제1의 가치로 내세웠으면서도 노예제에 대해서는 20년 후에야 논의를 하자는 식의 봉합이 이루어졌다(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비아냥이 나올 만 하다). 큰 주와 작은 주의 대표성의 문제에서도 하원은 인구 비례로, 상원은 주별로 동일한 인원으로 뽑는 식의 타협이 이뤄졌다(이 타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접 대표를 뽑을 것인지, 아니면 자산가를 대표로 뽑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였는지도 알 수 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이 더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인민을 믿자는 호소는 독립 전쟁에 기여한 없는 사람들을 고려한 것이면서 이후 민주주의의 전진에 이바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그들은 최초로 근대적인 의미의 공화국을 만들어냈다. 어디에 이미 존재하던 가치와 제도를 가져와서 흉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진 질서와 사상을 토대로, 비록 많은 숙제 거리와 모순을 안고 있었지만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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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의와 미국의 독립 전쟁 | 책을 읽다 2022-02-2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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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국인 이야기 2

로버트 미들코프 저/이종인 역
사회평론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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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의 전야를 다룬 1권에 이어 2권은 보스턴 차 사건에서 1, 2차 대륙회의, 독립 선언, 그리고 영국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가장 긴박하면서도 결정적인 시기인 셈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보스턴 차 사건과 독립 선언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물론 가장 결정적인 사건임은 분명하다), 2권에서 가장 공들여서 쓰고 있는 부분은 대륙군(아메리카군)과 영국군과의 밀고 밀리는 전투 장면들이다. 지리명도 낯설면서 상세한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는 다소 지리할 정도인데 로버트 미들코프는 아주 끈질기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는 미국의 독립에서 보스턴 차 사건과 같은 극적이고도 일회적인 사건이나 어쩌면 선언적인 독립 선언이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고 시종 밀리면서도 결국은 영국군을 굴복시켜낸 자유와 독립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저자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독립의 과정에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냥 독립 선언만으로 미국이 독립에 이르지 못했을 텐데 과연 당대 최강국이었던 영국의 군대를 제대로 훈련도 안된 민병대로 이겨냈을까 하는 점이다. 조지 워싱턴이 총지휘관으로 활약을 했고, 그 공으로 초대 대통령까지 지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랬다면 워싱턴은 어떤 놀랄만한 활약으로 영국군을 패퇴시켰을까 하는 게 굉장히 궁금한 점이었다.

 

그런데 2권에서 서술된 독립의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독립 선언에서부터 통일된 의견 없이 대립하기도 했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기 전에 영국의 왕에게 보내는 탄원서부터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의 강경한 태도는 식민지의 강경파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나타났고, 결국은 독립 선언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영국군과 대륙군을 보더라도 매우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약점도 분명했다. 대륙군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가까웠고, 물자 조달도 형편 없었다. 그것 때문에 워싱턴도 매우 고민이 많았고, 좌절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그런데 영국군도 고민이 많았다. 영국군에게는 대서양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보급과 병력 지원이 더디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고, 그래서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워싱턴을 비롯한 대륙군은 이를 이용해서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전력을 최대한 보전하는 장기전으로 영국군을 괴롭혔다. 그래서 영국군의 지휘관들은 전투에서 훨씬 많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는 자꾸만 불리해지는 것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직 2권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전쟁의 결과는 역사가 기록하고, 모두가 아는 바대로 되었다. 대륙군은 독립과 자유의 대의를 내세웠고, 그게 전쟁의 승리에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로버트 미들코프가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 전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Glorious Cause”. “위대한 대의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2권에 등장한다. 바로 조지 워싱턴이 쓴 말이다. 젊은 시절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고 미숙했던 그는(저자는 실망한 장교, 야심 많은 남자, 명예와 명성을 질투하는 자, 자기 연민에 잘 빠지고 모욕에 민감하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 한마디로 요약하면 덜 성숙한 사람이었다고 쓰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원숙해지고, 관대해지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게 되었다. 대륙군의 지휘가 맡겨지면서 오랫동안 갈고 닦은 내적 강인함과 현명함으로 8년간의 전쟁을 이끌면서 그것을 바로 위대한 대의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신의 섭리 내지는 운명, 소명으로 여겼으며, 미국의 독립(아직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았음에도)에 대해 애정을 가졌다는 얘기다. 그 과정을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미국인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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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창업가들의 자서전에 담긴 삶의 지혜 | 책을 읽다 2022-02-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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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공을 부르는 창업 노트

박균호 저
북바이북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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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어디선가라도 이 책을 만나 책 제목만 봤다면 아마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래 성공 노하우 같은 것을 제목에 단 처세법에 관한 책은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아직 창업은 생각지도 않고 있으니 이런 제목의 책에 관심이 갈 리가 없다. 게다가 성공한 창업자들의 자서전을 다루었다니, 또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 류의 책은 (적어도 지금 기억으로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어쨌든 제목만으로는 내 생리에 맞지 않는 책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저자가 박균호 선생이다. 처음 드는 생각은, “왜 이런 생뚱맞은 책을?”이었다. 시골중학교의 영어 선생님이자, 책에 대한 책을 쓰시는 양반이 창업 성공 노트라니? 하지만 금방 이해가 갔다. 이번에는 읽고 쓴 으로 성공한 창업자들의 자서전을 고른 것이다. 큰 기업(물론 아직 북카페의 주인도 포함하고 있지만)을 세우고 키워낸 이들이 쓴 자서전이니 그들의 글에서, 그리고 삶에서 무언가 알아내고 깨달을 만한 것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사람들은 그래서 그들의 자서전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책장을 열게 되었다.

 


 

 

역시는 역시다. 어쩌면 천편일률적인 것 같은 창업자들의 책에서 우리가 새겨들을 만한 얘기들을 끌어내는 솜씨는 다른 류의 책에서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창업가에선 불굴의 의지를, 어떤 창업가에선 유연한 사고를 읽어낸다. 또 어떤 창업가에선 철두철미함을, 또 어떤 창업가에선 단순함을 찾아내고, 그것의 가치를 음미하고 있다. 먼저 인사를 건네라(월마트), 깊이 생각하되 빨리 결정하라(유튜브)는 삶에서의 행동 지침이 될 만한 가르침을 담은 자서전도 있고,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를테면 파타고니아)이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성공한 기업(다이슨)도 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가르침을 주고 있고, 또 박균호 선생은 그것을 다른 책에서와 같이 친근한 유머 감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읽다 보면 성공 비결이라고 제시한 것들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도 들고, 때론 정반대의 비결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성공이라는 것이, 어쩌면 매우 개별적인 것이며, 공식화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그게 정답일 것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박균호 선생은 책을 참 재미나게 쓴 자서전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딱딱한 경영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진솔하게 담고 있으며, 매우 읽을 만하게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글솜씨는 독서에서 온다. 그리고 독서는 그들의 경영에도 접목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읽는 책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고전은 멀리하면서 경영 이론을 다룬 책을 엄청 읽었고, 또 어떤 이는 고전에서 답을 찾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책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삶의 방향을 정했으며, 또 통찰력과 창의력을 고양했다는 것만큼은 공통점이다. 이 즈음에서야 왜 박균호 선생이 성공한 창업가들의 자서전을 택해 읽고, 그것에 대해 썼는지를 알 수 있겠다.

 

독서를 강조하긴 했어도 사실 그것만이 이 책을 읽고서 얻게 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멀리 해왔던 이런 류의 책들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무언가 남다른 것이 있을 것이고, 그 남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중 어떤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다면 내 삶 역시 조금은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군 기업이 어떤 가치를 내세운 창업가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아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의미를 오해해서 미안했다. 물론 그런 거창한 의미와 목적이 아니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재미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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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는 축복인가? | 책을 읽다 2022-02-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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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년법 세트

야마다 무네키 저/최고은 역
애플북스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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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얼마나 될까? 내 친구들 중에도 금방 몇을 꼽을 수 있을 정도니 상당한 수의 과학자가 노화를 연구하고 있을 터이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의 노화를 늦추고, 나아가 영원한 삶을 사는 것? 궁극적인 목표가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지만, 그래도 좀 더 오래, 좀 더 건강하게, 좀 더 젊게 사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데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만큼 불로장생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자, 아주 근본적인 욕망이다. 소설을 읽으며 과학, 그것도 동료 과학자를 생각하기는 참 드문 일이다.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은 그 인류의 오랜 소망과 근본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소망과 욕망이 실현된 사회는 어떻게 될까? 영원한 삶, 영원한 젊음을 얻은 사람들은 행복할까? 죽지 않는, 늙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영원히 번성할까? 야마다 무네키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분명 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 상당히 놀랍다. 여행비둘기 중 돌연변이체로부터 불로화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이를 인간에게 감염시켰다는 것이 그렇다. 이걸 놀랍다고 한 건, 이게 지금까지의 노화 연구의 맥락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노화 연구는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걸 한꺼번에 뛰어넘어 조류의 바이러스가 어떤 메커니즘인지는 모르지만 바로 노화를 멈추게 하고 영원한 삶을 준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수많은 노화과학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현재의 과학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은 건 작가의 상상력이다.

 

그렇게 얻은 젊음, 영생은 어떠한가? 모두가 그렇게 되면 사회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면 계속 같은 사람들만 살아가게 된다. 아마 자식을 낳는 것도 매우 줄어들 것이다. 사회의 유동성은 점차 감소할 것이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말 것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생명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고 세대의 교체를 유도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이 조치는, 또 당연하게 인간의 욕망을 거스른다. 시간이 되어(아무리 100년이 지났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로화 시술을 받고자 한 욕망과 완전히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사회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법을 어기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런 조치를 없앨 수 있을까? 아니 불로화 자체를 폐기시켜버릴 수 있을까? 이미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로화의 혜택(?)을 기다리고 있던 어린 사람들(소설에서는 20세가 되면 받을 수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은 어떻게 되는가?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 곤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지점이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사회가 그대로 파멸되는 것을 그릴 수도 있다(어차피 소설이니 그렇게 경고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놀라운 기술이 개발되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너무 만화 같은가?). 그러나 작가는 문제의 해결책을 문제 자체에 숨겨놓고 있었다. 바로 불로화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도록 말이다. 사실 애당초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접종하여 유전체에 삽입되도록 했을 때 어떤 문제점이 없는지를 아주 정밀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지금의 과학과 의학의 윤리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젊음과 영생에 대한 기대에 들떠 그것들을 대충 무시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필연적인 불치의 암이었다(암이라는 설정 자체가 신선하지 않아 실망했고, 그래도 여러 장기에 한꺼번에 발생하는 암이라는 점에서는 그래도 신경썼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회는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불로장생은 여전히 일장춘몽 같은 것이었던 셈이다. 15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이라 치부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영원한 젊음, 영원한 삶이 결코 모든 사람이 누려서는 안되는 욕망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 수많은 과학자들이 덤벼들고 있는 노화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정말 과학자들이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고, 나아가 노화를 정지시키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정말 바이러스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문득 몇 년 전 중국의 한 과학자가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를 이용하여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켰다는 뉴스가 기억난다. 그 과학자는 결국 퇴출되었다. 현재의 기술로 가능한 모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그 이야기를 150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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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사람들 | 책을 읽다 2022-02-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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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년법 1

야마다 무네키 저/최고은 역
애플북스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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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이 아닌) 여섯 발의 원자폭탄으로 패전한 일본은 미국에서 개발한 불로화(不老化) 기술 HAVI를 도입한다. HAVI는 여행비둘기 중 바이러스에 의해 늙지 않는 개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개발한 기술이다. 사람이 바이러스를 접종 받으면 늙지 않는다. 20세 이후에 접종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누구나 젊게 오래 살게 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생존제한법, 이른바 백년법(百年法)을 제정한다.

 

일본에서 HAVI가 도입된 지 100년을 앞둔 시점, 2048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접종받은 지 100년이 되는 사람들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누구나 오래 사는 사회가 되면서 국가의 활력이 떨어지고, 많은 문제가 생겨났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어 100년 동안 젊음을 유지하고도 예고된 죽음을 앞두자 동요하기 시작한다.

 


 

몇 명의 독립적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는 백년법 시행을 준비하는 내부성의 생존제한법 특별준비실의 실장 유사의 그룹이고, 또 하나는 이제 백년법 적용을 20여 년 앞둔 란코와 그녀의 어릴 적 친구의 딸 유키미이다(란코의 친구는 HAVI를 시술받지 않고 자연사했다). 그리고 백년법 적용을 바로 앞둔 형사 도게와 1980년대 폭동을 일으켰다 50년 동안 감옥에 있다 나온 기바 미치오가 있다. 이들은 백년법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유사는 백년법 시행이야말로 일본이 활력을 찾을 기회라고 보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독재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란코는 백년법에 대해서 큰 생각이 없으나, 형사 도게는 어떻게든 죽음을 면하고 싶어 한다.

 

백년법 시행과 관련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온 총리는 국민투표를 감행하고 결국은 시행이 중단되고 만다. 이야기는 다시 20여 년이 흐른다. 일본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었을까? 백년법 국민투표 5년 만에 그 법은 다시 시행되게 된다. 거기에는 유사의 계략이 있었다. 20년 동안 유사는 총리가 되고 그가 보좌한 정치인 우시지마는 대통령이 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란코와 유키미는 함께 살고 있고, 란코는 기바 미치오와 짧은 사랑을 통해 낳은 아들이 있고, 이제 HAVI 시술 백년을 바로 앞두고 있다. 사회는 극도의 혼란을 겪은 후, 백년법 시행 이후 다시 조금씩 활력을 찾게 되었지만, 부와 권력의 집중이 더욱 심해지면서(대통령이 개인적인 백년법 적용 유예의 힘을 가졌으니) 다시 침체의 기로에 서 있다. 백년법 시행을 거부하고 도망다니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그들에 의한 폭탄 테러도 줄 잇고 있다. 그렇게 1권의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읽으면서도 노화’, ‘영생’, ‘불로’, ‘죽음과 같은 묵직묵직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20대의 모습으로 100, 아니 더 오랜 시간을 산다? 그게 과연 축복일까? 죽지 않는 삶이라는 게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그런 사회는 유토피아인가? 1권의 내용만 보더라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없다면 삶은 의미가 없어진다. 신체의 나이는 그대로이지만 정신의 나이는 계속 증가하면서 혁신적 생각과 도전적 행위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회는 정체되어 있고, 인재들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과연 이 디스토피아와 같은 상황을 작가는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파국일까? 그래도 해피엔딩일까?

 


 

  

* 다소 의외스러운 것은,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앞서가는 나라로 설정된 점이다. HAVI를 도입했음에도 생존제한을 훨씬 당겼고, 또 그래서 기술 혁신을 꾸준히 이루고 있는 나라로 일본이 따라가야 하는 나라로 설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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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남에게 권하지 말 것! | 책을 읽다 2022-02-2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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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정진호 저
푸른숲 | 201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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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국면에서도, 그 이전에도 질병과 약 관련해서 전문가의 위치는 매우 위태하다. 어떤 때는 전문가의 견해라고 떠받들다가도 그게 자신의 이해관계와 어긋나면 무시하기 일쑤다. 거의 약장수 수준의 이를 전문가로 모셔놓고 해설을 듣는 경우도 많이 본다. 또 그 사이비 전문가의 말을 옮기며 그걸 근거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도 한다. 전문가의 책임이기도 하고, 사회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대중과 소통 지점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다. 대중과의 소통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문제를 쉽게 해설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며(그러다 왜곡이 일어나는 경우를 흔하게 봐왔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용어를 쓰면서 거의 논문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니 전문가가 더욱 힘써야 한다는 말이 나와야 하지만, 누가 어려운 일을 맡을 것인가의 문제가 또 나온다. 언론에 나와 대중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을 좋아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묵묵히 연구에 힘쓰는 전문가도 있고, 또 그런 전문가가 더 필요하기도 하다. 사실 둘 다 잘하는 전문가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에 관련해서는 정진호 교수는 전문가다(재작년에 정년퇴임했지만). 자신의 분야이니 알고 있는 바도 많겠지만 오랫동안 고민해 온 바가 있었을 듯하다. 전문가의 말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이상한 약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도 들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약을 오남용하는 사례도 흔하게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역할은 그저 연구나 열심히... 이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할 얘기가 있었고, 그래서 썼다.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는 그런 책이다.

 

우선 약에 관한 흔한 오해 몇 가지를 불러오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서, 비타민의 효과에 대해서, 우울증 약의 위험성에 대해서, 술 깨는 약에 대해서. 이중 몇 가지에 대해 간단히 결론을 얘기하자면, 우선 비타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대체로는 고른 식사로 다 충족될 수 있으며, 오히려 많이 먹으면 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술 깨는 약은 없다.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거나 숙취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분명한 성과는 없다.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적게 마시는 것이다.

 

다음은 약과 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약도 많이 쓰면 독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대로 독도 적절히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많이 얘기한다(이 말은 잘못된 말이다. 독은 대체로 독일 뿐이다). 여기서는 현대 역사에서 비극적인 사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탈리도마이드라는 입덧 치료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어린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그리도 앞의 약에 관한 오해에서 다뤄도 될 만한 내용도 있는데 디톡스 제품과 관련한 것이다. 역시 간단히 얘기하자면 디톡스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며(무엇이 독소인지도 정의되어 있지 않고), 독소를 제대로 제거되는지도 증명된 바가 없다. 말하자면 광고에 속지 말 것!

 

위대한약에서도 다룬다. 마취제라든가, 백신, 소독제, 항생제, 아스피린, 말라리아 치료제, 비아그라와 같은 것들이다. 이 부분은 사실 그동안 나온 많은 책들과 겹친다. 그리고 약에 관한 욕망에 관해서는 만병통치약이라든가, 슈퍼푸드, 인간의 평균 수명, 인공지능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당연히 만병통치약, 그런 것은 없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이고, 슈퍼푸드와 관련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강렬하게 받은 메시지는 따로 있다. 약을 남에게 권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약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해서 남에게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전문가도 아닌 입장에서 약을 권하는 행위 자체가 이 분야, 즉 사람의 건강과 목숨을 달려 있는 분야에서 위험성을 자초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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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관계, 친밀함과 질투의 경계 | 책을 읽다 2022-02-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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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계의 미술사

서배스천 스미 저/김강희,박성혜 역
앵글북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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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드가, 마티스와 피카소, 폴록과 드쿠닝, 프로이트와 베이컨

미술사에서 특별관 관계를 맺었던 화가들의 조합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천재성을 발휘했고,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펼쳐나갔다.

 


 

그런데 서배스천 스미가 포착하고 있는 네 조합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가 아니라는 데 의미가 있고, 매혹적이다. 우리말로 관계라 했고, 원제는 라이벌(rivalry)’라고 했지만, 각각의 조합은 친밀함만 보이는 관계도 아니었고, 단순한 라이벌의 관계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 들어가기도 했지만 상대의 성공에 질투하기도 했으며,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네는 자신과 아내 수잔을 그린 드가의 그림을 난도질해버렸으며, 마티스는 피카소의 성공에 당혹감을 느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상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상대에게서 영향이든 질투를 받거나 느끼지 못했다면 그들의 예술 세계는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어쩌면 그들의 예술 세계는 자신의 감성에서 비롯된 세계에 대한 해석이므로 온전히 자신의 것이고, 그래서 상대의 영향이라는 것 역시 그저 영향일 뿐 작가의 위대함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의 발전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상대가 존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할 대로 충만한 화가가 또 다른 특출난 화가를 만나고 그의 예술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데 크나큰 자극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마티스와 피카소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 미술과 조각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그저 우연일 뿐일까? 마티스가 주장했듯 피카소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져갔다는 게 사실이든 아니든 둘은 새로운 미술 사조를 여는 데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각자의 방식으로성공했다.

 

나는 물론 여기의 여덟 화가 모두의 삶에 대해서 정통하지 않지만, 특히 드쿠닝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윌렘 드쿠닝은 폴록과 현대 미국 미술 최고 화가(‘최고 화가라는 표현이 합당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를 두고 경쟁했던 화가였다고 한다. 잭슨 폴록보다 먼저 주목받았지만, 금방 최고의 자리를 폴록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화가였고, 그 때문에 괴로워했다. 폴록의 사후 신비화된 폴록 때문에 최고의 자리를 넘겨받지 못했던 드쿠닝은 폴록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동경심, 경쟁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폴록으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던 드쿠닝을 보면, 폴록의 사후 오히려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드쿠닝을 보면 예술가의 관계가 복잡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와 베이컨의 경우도 사실은 낯설다(루치안 프로이트는 우리가 잘 아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고, 프랜시스 베이컨도 우리가 잘 아는 그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이다). 이들이 현대 미술에서 상당히 유명한 화가라는 것은 지나가다 엿들은 바가 있지만, 그들이 어떤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전혀 몰랐다. 당연히 둘의 관계는 더더욱. 책을 쓴 서배스천 스미는 프로이트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고, 또 그에 관해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쓴 바가 있어서 그런지, 이 관계를 다루지 않았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프로이트가 베이컨이 아닌 다른 누구와, 베이컨이 프로이트가 아닌 다른 누구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둘의 관게를 보면 역시 파괴적이면서도 서로를 동경하는 예술가의 관계에 대해서 의아스러우면서도 공감갈 수 밖에 없다. 전시회 도중 감쪽같이 사라진 프로이트의 베이컨 초상화 자체와 사연은 둘의 관계를 더욱 신비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하긴 어떤 관계든 그런 신비화가 없으면 심심해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폴록과 드쿠닝이 그리니치빌리지의 술집 시다 태번에서 나눴다고 하는 대화, 마티스와 피카소 사이의 그림 교환에 얽힌 사연, 마네가 드가의 그림을 난도질해버린 사건 등이 그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관심 갖게 만드는 셈이다.

 


 

 

서배스천 스미는 화가들의 비공식적관계가 가지는 의미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그건 그저 화가들의 숨은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예술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관계를 끄집어낸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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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와 입체파라는 명칭 | 책을 읽으며 2022-02-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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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전시실은 위험한 미치광이들의 전시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미치광이들 중 단연 선두에 선 사람은 마티스였다.” (서배스천 스미, 관계의 미술사, 145)

 

여기서 7번 전시실이란 1905년 살롱 도톤전이라는 전시회의 한 방을 의미한다. 여기서 야수파라는 미술사상 한 분파의 이름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인상파라는 명칭이 의도치는 않았으나 미술사의 흐름을 아주 잘 표현했듯이, 야수파라는 명칭도 비아냥에 가까웠으나, 그 분파의 경계 안에 들었던 화가들은 그 명칭을 아주 그럴듯하게 여겼을 듯하다.

 

“7번 전시실에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들은 바로 야수파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이 같은 전시관에 놓인 르네상스 스타일의 조각품을 두고 야수들(fauves) 한가운데 놓인 도나텔로(Donatello)’ 같다고 혹평한 데서 유래되었다.”

 

야수파는 입체파와 연결되는데(서배스천 스미는 야수파의 마티스와 입체파의 피카소의 관계에 대해서 쓰고 있다), 입체파(Cubism)라는 명칭이 마티스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고(물론 칭찬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야수파라는 말을 만든 루이 보셀이 이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더욱 묘한 일이다.

 

마티스는 1908년의 살롱 도톤전의 심사위원이 되어 있었다. 그는 살롱전에 출품한 브라크의 작품을 보고, 과거 자신의 제자였던 화가에게서 배신의 징후를 읽어냈다.

 

마티스는 브라크의 새로운 화법에서 기발하긴 하지만 독단적인 면을 발견했다. 마티스는 평론가 루이 보셀에게 브라크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작은 입방체로 구성된 그림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략)

브라크의 그림은 탈락했고, 마티스는 옳건 그르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미술 사조는 이제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바로 큐비증, 입체주의라는 이름을.” (213)

 
 
 
         
 
 
 

관계의 미술사

서배스천 스미 저/김강희,박성혜 역
앵글북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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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가 된다 | 책을 읽다 2022-02-1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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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가 되는 오늘

전우용 저
21세기북스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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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이 오늘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페이스북에 남긴 짧은 글들을 모았다. 지난해 낸 망월폐견을 잇고 있다. 다른 많은 단어들처럼 오늘이라는 말은 중의적이다. 중요하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날짜의 개념으로 바로 어제와 내일 사이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역사적 의미로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우용에게도 오늘은 이 둘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SNS라는 도구의 특성으로는 분명 짧은 기간으로서 오늘 하루의 의미일 수 있겠지만, 그가 기록하고 있는 오늘에 대한 의견은 또한 분명 역사가 될 오늘날을 남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우용의 기록은 작년에서 올해로 이어지는 나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격동의 기간이었고(돌이켜보면 그렇게 표현되지 않는 시기는 없지만), 대체로는 답답한 기억들이다. 그가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건들은 분명 역사적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전우용은 가차 없이 분명한 의견들을 내놓고 있고, 명확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의견들은 너무나 칼 같아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선명한 의견, 질문이 아니라면 역사가 될 오늘을 어떻게 명징하게 해석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그의 SNS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객관이나 중도를 표방하는 견해들의 정치성에 하도 많이 당해왔다. 그의 견해는 역사와 역사 해석에 기초하여 선명하다. 선명함이 오히려 판단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서 있는 지점이나 그가 어떤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노인은 자주 왕년에 했던 일을 생각하고, 청년은 종종 나중에할 일을 생각합니다. 살 날보다 산 날이 훨씬 긴 노인의 시선은 과거로 향하고, 그 반대인 청년의 시선은 미래로 향합니다. 과거를 더 많이 보는 시선이 보수의 세계관이고, 미래를 더 많이 보는 시선이 진보의 세계관입니다. 보수는 실수가 적으나 안일하며, 진보는 용감하나 서툽니다. 보수는 방어적이며, 진보는 공격적이다.

보수는 역사, 전통, 도덕, 윤리, 규범, 책임, 품격을 중시합니다. 진보는 미래, 변화, 혁신, 저항, 파격을 좋아합니다. 보수는 비록 현재가 불합리하게 보여도 과거에 최선을 다한 결과의 총체이기 때문에 바꾼다고 더 나아질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진보는 불합리한 현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며 인간 이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보수는 인간의 편견조차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이라고 믿으며, 진보는 합리적 근거 없는 편견은 깨버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이들은 어찌 읽을지 모르나, 나는 이런 부분에서 그가 보수나 진보에 어떤 편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현실의(그러나까 오늘의) 보수나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 중에는 보수나 진보의 진정한 성격을 담지하지 못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보수를 비판하는 것도, 진보를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런 근거에 기초한 것이다. 진짜 보수의 품격, 진짜 진보의 혁신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다.

 

오늘은 역사가 된다. 그 오늘을 성실하게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그것은 역사학자의 책무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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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의 시대를 살아간다면 알아야 할 것들 | 책을 읽다 2022-02-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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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래를 읽다 과학이슈 11 SEASON 12

신방실 등저
동아엠앤비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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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읽다 과학이슈 11시리즈가 벌써 시즌 12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과학잡지와는 달리 이 시리즈는 당시의 가장 핫한 과학 이슈를 다뤄왔다. 시즌 122021년을 관통하여 2022년에 이르는 시기에 일반 대중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또는 가질 필요가 있는 주제, 내지는 소재 11가지를 선정했다.

 

선정한 11가지의 주제는(마지막 꼭지의 과학 노벨상에 관한 내용은 특별한 주제라고 할 수 없지만)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말할 것도 없이 핫한 이슈인 코로나 19와 관련한 내용에서는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까지를 다룬다. 이제는 오미크론에 대세인 상황에서 델타 변이를 주로 다루고 있어 이와 관련해서 얼마나 급박하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아마 다음 시즌에는 오미크론을 뛰어넘어 코로나 19의 종식 내지는 일상 회복이 주 내용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와 가장 가까운 이슈는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다. 알파고로 유명해진 것이 인공지능이지만, 이미 알파고는 더 이상 개발을 멈춘 상태이다. 인공지능이 진짜로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거리를 찾으면서 잡은 것이 바로 단백질 구조의 예측이다. 이 단백질 구조의 예측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고, 이를 통해 많은 생명 현상을 설명해내고, 그것을 이용해서 약을 개발한다든가(당연히 전염병에 대한 약도 포함한다) 하는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과학 용어, 시사 용어를 넘어서 상식과 같이 되어버린 메타버스가 있다. 메타버스와 관련해서는 기본 개념에서부터 응용을 다룬 대중 서적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래서 여기의 기사는 오히려 너무 간략하다 여길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내용과 함께 독립적인 이슈로 다루는 NFT, 즉 대체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는 다소는 이해가 가지 않던 이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넓게 보아 기후와 관련한 내용이 많은 것이 이번 시즌의 특징이다. IPCC 6차 보고서와 관련한 기후 재앙에 관한 기사, 탄소 중립과 관련한 기사가 그렇고, 인류세에 관한 기사도 넓게 보아 하나의 큰 주제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기사들을 보면 이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그 심각성이 많은 수치와 함께 제시되면서 오히려 피부에 와닿지 않게 될 우려가 있는 듯도 하다. 물론 그 수치들이 있어야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학 기사는 과학이기도 하지만 기사이기도 한데, 너무 과학에 치우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누리호 발사와 화성 탐사도 하나의 큰 주제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누리호와 관련해서는 작년의 흥분, 기대, 희망과 함께, 작은 실망이 기억난다. 그러나 여전히 화상 탐사는 너무 먼 얘기 같이 들린다(일론 머스크 같은 이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기사는 요소수에 관련한 기사가 아닌가 싶다. 왜 요소수가 필요한지, 요소수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요소수를 만드는지 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요소에서 나아가 경제 안보와 관련한 내용까지 다루고 있다. 요소수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원자재 수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과학자만 과학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를 조금만 벗어나면 일반인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러 분야의 과학을 쫓아가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잘못된 뉴스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도 최신의 과학 이슈에 무감(無感)해져서는 곤란하다. 21세기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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