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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 얼마나 알고 있나 | 책을 읽다 2022-05-3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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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명의 경계

칼 짐머 저/김성훈 역
브론스테인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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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다윈식 진화가 가능한 자기지속적 화학계다(Life is a self-sustained chemical system capable of undergoing Darwinian evolution).”

 

1992년 나사(NASA)에 모인 과학자들은 공식적인 모임과 비공식적 모임을 통해 오랫동안 논의 끝에 생명을 위의 열한 개의 영단어로 정의했다. 우주에서 생명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 생명인지부터 정의를 해야겠기에 그런 모임이 조직되었었다. 생명에 관한 이 정의는 매우 깔끔하면서 기억하기 좋다. 그리고 생명의 많은 특성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과서에서는 생명을 정의하는 대신 생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물질 대사, 발생과 생장, 자극과 반응, 생식과 유전, 적응과 진화’.

 

이렇게 생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하며, 특성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사실 생명에 대한 정의는 매우 힘든 문제다. 위의 나사의 생명 정의만 해도 그렇다. ‘다윈식 진화라고 했는데, 명확히 다윈식의 진화라고 할 수 없는 진화 방식이 적용되는 생명체가 있다. 칼 짐머는 수백 가지의 생명의 정의가 쏟아져 나온 상태라고 한다(라두 포파는 2000년대 포반부터 생명의 정의를 수집해 왔다고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솔직하면서도 자포자기식, 혹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정의를 제시하기도 한다.

 

생명은 과학계의 주류가 (아마도 건강한 의견 충돌 후에) 생명으로 인정하게 될 존재다.”

 

이렇게 정의 내리기 힘들다면 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생명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하면서, 직업적으로 연구하지 않더라도 그에 관심을 가지면서 무엇을 연구하는지,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구하고 관심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자에 대한 정의도 없이 분자를 연구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은 철이 안 든 생물학자라고 해서 아이들도 직관적으로 생명이, 즉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건 그냥 안다는 것이지 그것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며, 또 그 앎이 명확한 것도 사실 아니다.

 


 

 

칼 짐머는 이 어려운 문제, 생명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의 명확한 생물학적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이 문제의 어려움과 함께 더 명확한 부분을 찾기 위해 그는 생명의 경계(Life’s edge)”를 탐색한다. 실패한 과학자도 있지만(존 버틀러 버크의 라디오브와 같이), 나름 생명의 경계에 대해 제대로 접근한 과학자와 존재들도 많았다. 레이우엔훅의 담륜충이 그랬고,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한 완보동물이 그랬다. 그런 존재들은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산소 호흡기를 이용한 연명 치료 역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논쟁을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고 있다(삶과 죽음 사이를 누구도 명확하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이 문제를 통해서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생명의 전형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다. 원형질이 등장하고, 효소(단백질)이 등장하고, DNA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으로 생명을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어왔지만 번번이 그 정의를 벗어나는 존재들이 버젓이 손을 들고 나오곤 했다. 바이러스가 그랬다.

바이러스를 살아 있다고도, 살아 있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마저 잊게 한 요 몇 년 간의 팬데믹은 이 논의를 의미 없게 만드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핵도 없는 적혈구도 그렇고, 모든 동물 세포, 식물 세포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도 생명의 정의를 곤란하게 한다. 미토콘드리아는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싶지만, 이제는 단독으로 살아갈 수 없다.

 

생명의 기원을 밝히고자 하는 천재적인 시도도 이어졌다. 유명한 밀러와 유리의 실험이 그렇고, 오파린과 홀데인의 가설도 그렇다. 리보자임의 발견은 “RNA world”를 펼쳐놓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지질이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해수열수공에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사람도 있고, 그냥 평범한 연못에서 생명이 탄생했을 수도 있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생명의 경계에 대한 연구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이 연구가 그저 중구난방인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생명의 기원을 찾아 나서고, 생명을 정의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성이 있다. 옆길로 새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과학자들의 연구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놀랍다. 아이디어도 놀랍고, 그것을 확인하는 실험 방법도 놀랍다. 여기의 수많은 연구와 일화를 읽으며 어쩌면 실용적이지 않은 과학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내며 황홀한 발견을 해내는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근거를 추적하면서 이 문제를 이렇게 깊이 탐색할 수 있는 이는 어쩌면 칼 짐머가 유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고,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궁금해하며 스스로 물어봤던 이들에게 선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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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생명의 경계 | 한줄평 2022-05-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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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진지하고도 기발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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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철이 안 든 생물학자, 생물학자는 웃자란 아이” | 책을 읽으며 2022-05-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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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철이 안 든 생물학자이고, 생물학자는 웃자란 아이인 셈이다.”

- 칼 짐머, 생명의 경계(109)

 

생명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본질을 논의하면서 칼 짐머는 아이들이 생명을 어떻게 알아차리게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내가 아닌 다른 생물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아이들도 동물이 살아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린다. 식물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직관적으로 생명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런 직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잃지 않는다. 칼 짐머는 그 직관을 말 속에 숨기는 능력을 발달시킨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애초부터 생물학자이지만, 생물학자가 되면 아이의 직관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경계

칼 짐머 저/김성훈 역
브론스테인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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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질 수 밖에 없던 전쟁 | 책을 읽다 2022-05-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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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병자호란

임용한,조현영 저
레드리버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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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란을 두 번이나 겪고, 수십 년간 전쟁준비를 한 나라인가? 훈련도감, 어영청, 수어청 같은 군영 설치, 직업군인 양성, 화기와 화약 개발, 남한산성 축조, 속오군, 영장제... 단어만 나열하면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군사제도는 획기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막상 열어보니 속 빈 강정이었다.” (196)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겨우 30여 년 후 전란에 휩싸인다. 정묘호란, 병자호란이라 불리는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의 호된 경험은 아무런 소용도 없이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누르하치의 발흥과 후금()과 명의 세력 관계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허약하고 허술한 방어 능력으로 그들을 맞았을까?

전쟁사 전문의 역사학자 임용한은 어떻게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시점 시점마다 청(후금)의 상황과 조선의 대응을 점검하며, 병자호란을 질 수 밖에 없었던 전쟁으로 결론짓고 있다.

 


 

 

사실 병자호란에 관해서 주로 알고 있는 부분은 청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진격하자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이후, 그 혼란스럽고 안타까운 처지와 이후 삼전도의 치욕이라 불리는 항복에 이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전쟁의 결과이다. 결과가 그렇게 된 데에는 거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임용한의 병자호란: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깊이 다루고 있다.

 

몇 가지 상황이 병자호란의 패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건진여진족의 추장에 불과했던 누르하치의 야망과 발흥에서 시작한다. 여진족의 성장은 임진왜란의 혼란스런 상황과 명의 약화와 관련되어 있었다. 누르하치는 때로는 자신의 야망을 숨기고, 때로는 과감한 작전을 통해 세력을 넓히고 후금이라는 국가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조선은 어떠했나? 누르하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중구난방이었었다. 말은 많았으나, 아니 말만 많았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누르하치라는 인물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명의 실력에 대한 믿음도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산성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고, 제대로 된 군대도 양성하지 못했다. 지휘 체계도 단일화되지 못했다. 모문룡이라는 사기꾼에게 휘둘리며 국력은 소모되었다.

 

병자호란 전에 정묘호란이 있었다. 연전연패라고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겨우 화친을 맺고 한숨을 돌렸다. 후금은 아직 조선보다는 명과의 대결이 더 급했고, 조선이 후방을 치지 않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쉬이 화친을 맺고 간 것이었지만 조선은 상황을 오판한다. 정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를 해야 했음에도 역시 말만 많았고 대응은 형식에 그치지 않았다.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조선을 침략한다. 병자호란이었다. 조선은 그들이 침략한 의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병력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끝까지 그랬다), 그들의 실력도 과소평가했다. 정묘호란 이후 가까스로 구축해놓은 방어를 위한 성이 있었으나 청은 그 성들을 우회하고 직접 한양으로 진격했다. 당황한 조정은 일부만 강화도로 피난했으나 금새 강화로 가는 길을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남한산성에 웅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의 상황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각지의 군사들이 그래도 임금을 구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몰려들지만 체계적인 작전도 없었다. 그래서 각개 격파되었고, 안심하고 있던 강화도마저 함락되어 인조는 항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의 임금 인조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인조는 자신이 직접 반정을 이끌었을 만큼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신하들을 다루는 데 능수능란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조였지만, 그런 능수능란함은 전쟁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인조는 자신이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명확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화와 척화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곤란한 상황이 오면 신하들 보고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보고하라고 한다. 이미 둘로 쪼개져 대립하고 있는 신하들이, 게다가 대부분 탁상공론에만 머물러 있던 신하들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임용한은 이 상황을 누구도 책임지지 싫고, 왕은 누구에게도 권한을 주고 싶지 않고, 강력한 명분론에 단어 하나마다 시비가 걸리니라고 쓰고 있다.

 

임용한의 화살은 주로 주전론을 주장한 척화파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대책도 없이 명에 대한 사대에 몰입했고,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내세웠고, 주화파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여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항복에 이르게 된 것을 비록 질 지언정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책임은 최명길을 비롯한 주화파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전쟁 중에 화살 하나도 쏘지 않았고, 돌 한 덩이도 청의 군대를 향해 던지지 않았다(양반이라고 말도 없이 움직일 수 없고, 말이 있어도 말잡이 없이 말을 탈 수 없고, 배낭도 멜 수 없어 성 밖으로 나가 상황을 전할 수 없다는 말에는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그들은 애국자, 영웅이 되었다. 역사에서 원칙론자, 근본주의자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개 그렇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병자호란의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상황과 시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상황에서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 혹은 내려지지 않은 결정은 모두 현실이 되었고, 한 궤에 꿰어 있는 것이었다. 전쟁은 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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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 책을 읽다 2022-05-2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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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앤서니 스토 저/김영선 역
글항아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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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이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다. 그가 위대해진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가 그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는 명예와 업적에 대한 놀라운 투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앤서니 스토는 그것이 유전적 소인과 함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우울증을 억누를 수 있었다. 처칠은 스스로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라고 불렀다. 검은 개란 표현은 우울증의 끈질기면서 음울한 느낌을 너무나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카프카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가지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늘 불편해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 맺는 것을 불편해 했을 뿐만 아니라 위협적인 것으로 여겼기에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글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을 때야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핵으로 일찍 죽었다. 그리고 신화가 되었다. 그런 카프카 역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보이며 쥐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카프카의 쥐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는 위협을 의미했으며, 그건 그의 조현병과도 연관이 있다.

 

이렇게 정신분석의 앤서니 스토는 처칠과 카프카를 예로 들며 그들의 삶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어떻게 방해받고, 또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거나, 혹은 이용하며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지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다. 제목이 처칠의 검은 개카프카의 쥐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두 편의 글은 앤서니 스토가 쓰는 글의 진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밖에도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스노, 최고의 물리학자 뉴턴, 정신의학의 태두 프로이트와 융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그들의 어쩌면 약점이 될 수 있었던 성격, 혹은 질병이 그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며, 또 업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분석은 보다 보편적인 분석으로 나아간다. 이를테면 창의성에 대한 것이라든가, 정신분석이 과학인지의 여부, 천재가 보통의 성격을 갖는 인물인지,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인지에 대한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정신분석이 과학이 아니라는 고백과 같은 글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과학자를 지망했던 과거 때문인지 정신분석을 과학의 반열에 올리려 했고, 그의 제자들도 따랐다. 하지만 과학이 대상과 과학자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는 데 반해 정신분석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스키너의 실험심리학은 바로 그 간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면서 과학이고자 했지만, 과학도 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정신분석도 이루지 못했다고 본다.

 

천재가 광기에 사로잡힌 이가 아니라는 글 역시 인상 깊다. 두 가지 견해의 근거를 세심하고 제시하고 있지만, 그는 분명하게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특별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일 뿐 광기가 천재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천재들이 광기에 사로잡히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는 오히려 정상적인 활동 때보다 더 나은 업적을 내지 못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라는 인식은 서로 다른 시기의 사람을 하나로 파악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 보는 것이다.

 

처칠이나, 카프카, 뉴턴 등에 대해서 정신분석의 측면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여타의 전기, 평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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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네토박터 1. 순한 양에서 무서운 호랑이로 | 세균에 사람 있다 2022-05-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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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는 대장균, 폐렴구균, 녹농균, 고초균, 이질균과 같이 널리 불리는 우리말 이름이 없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이 세균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세균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연구하는 이도 드물었다. 병원에서 이 세균이 분리되더라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다 1990년대, 2000년대 들면서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이 세균에 감염된 환자가 나오고 사망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9.11 테러 이후 벌어진 이라크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때 이라크에 파병되었다 부상당하고 돌아온 병사들에서 의문의 감염 환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라는 세균에 감염된 환자들이었다. 당시 위싱턴 DC에 있는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한 병사 환자 중 거의 10퍼센트가 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이런 이유로 이 세균의 별명이 “Iraqibacter”가 되었다). 주로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가 후송되는 과정에서 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평소 흙이나 물에 존재하는 세균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으며, 또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잘 살아남기 때문에 병원으로 들어와서는 병원 환경에 잘 적응하였다. 특히나 군인들을 잘 대우한다고 알려진 미국에서 병사들이 감염되자 이제 이 세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구글 엔그램의 데이터를 보더라도 1990년대 들어서 이 세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 관심이 수그러들 즈음 2000년대 갑자기 증가하는 상황을 알 수 있다.

 

 

이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의 의사들은 항생제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항생제 사용에 따라 이 세균은 놀라운 속도로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였다. 그래서 이른바 다제내성(multidrug resistance)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급증하였고 이제는 병원에서 가장 곤란한 세균이 되었다. 2010년 미국감염학회(IDSA)에서 시급히 대처가 필요한 병원균으로 정한, 이른바 ESKAPE 병원균(Enterococcus faecium, Staphylococcus aureus, Klebsiella pneumoniae, Acinetobacter baumannii, Pseudomona aeruginosa, and Enterobacter cloacae)에도 포함되었고,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항생제 개발이 가장 필요한 병원균 순위 목록에 첫 번째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순한 양으로 여겨졌던 세균이 21세기 들면서 호랑이 같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 세균이 세간의 주목받은 사례는 또 있었다. 20108월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 도쿄의 한 대학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일제히 보도했다. 병원에 입원한 수십 명 환자가 세균에 감염되어 그중 일부가 사망하였다는 것이었다. TV 화면과 신문 사진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하는 병원 관계자를 보여줬다. 원인이 된 세균이 바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였다. 이어지는 보도에서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사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전에 그 정도로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이 세균에 의한 병원내 감염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항생제 내성률은 이미 굉장히 높은 상황이었으며, 이로 인한 사망도 아마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지만. 이러한 상황은 당시 유럽에서 시작된 NDM-1 생성 폐렴간균 감염의 확산과 더불어 당시 한 종만 지정되어 있던 항생제 내성균 관련 법정 전염병을 6종까지 늘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이 있을까? Acinetobacter라는 속명은 akineto, 움직이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에서 왔다(그래서 앞에서는 이 세균에 대해 우리말 이름이 없다고 했지만, 간혹 부동간균’, 움직이지 않는 막대 모양의 세균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그런데 종종 운동성이 있는 아시네토박터균이 발견된다). 종명인 baumannii가 바로 폴 보우먼(Paul Baumann)이라는 미국의 세균학자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폴 보우먼은 여기에 소개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현재 살아 있는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UC Davis)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지냈던(현재는 명예교수) 그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아내인 린다 보우먼(Linda Baumann)과 함께 DNA 염기서열 결정과 같은 유전학적 기술을 미생물에 적용한 첫 미생물학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 별 볼 일 없었던 세균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 것은 1968년에 발표한 논문 때문이었다. 그는 토양과 물에서 아시네토박터균을 분리하여 배양하는 방법을 밝힌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세균이 주로 생태학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의 주 연구 주제는 아시네토박터균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세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주요 연구 주제는 세균과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는 곤충 사이의 공생 관계였고, 해양 세균인 VibrioPhotobacterium, Alteromonas, Pseudomonas 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UC Berkeley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 1966년이었으니 아마도 아시네토박터균에 대한 연구는 박사 학위 중에 수행한 연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네토박터를 다룬 논문의 소속도 UC Berkeley.

 

보우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세균은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만이 아니다. Oceanimonas baumannii라고 하는 해양 세균이 있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폴 보우먼만을 따라 지어진 이름이라면 이 세균에서 baumannii라는 종소명은 아내 린다까지 포함한 이름인데, 1983년 그들이 찾아내고 명명했던 Pseudomonas duodoroffii에 대해 2001년 연구자들이 Pseudomonas 속과는 다른 특징을 알아내 Oceanimonas라는 새로운 속을 만들고 그 속에 속하는 하나의 종에 폴과 린다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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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한 우리의 친척, 네안데르탈인 | 책을 읽다 2022-05-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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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안데르탈

리베카 랙 사익스 저/양병찬 역
생각의힘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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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그들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런 상상을 해봤다.

서로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 견제하기도 하며 호모 사피엔스의 독주가 저지되어 지금의 기후 위기 같은 것은 없었을까?

그러나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로 가장 가까운 종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 어쩌면 현대가 오기도 전에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멸종하려 총력을 다했을 거란 시나리오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비록 네안데르탈인이 멸종에 이른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끝까지 명백히 밝혀질 리는 없겠지만, 여러 원인 중에 호모 사피엔스가 떨궈져 갈 리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다. 만약 그들이 멸종되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면 상황에 따라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랬다면 어쩌면 사피엔스라는 종명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인류학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는다. 특히 오래된 표본으로부터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최대 4%나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4%라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1세대가 지날 때마다 1/2씩 동일성이 감소하는 원리를 따져볼 때 4%라는 숫자는 4, 5세대 전이라는 (어쩌면 끔찍한) 소식을 전한다. 물론 4, 5세대 전에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교배를 해서 후손을 남겼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들과 우리의 조상이 서로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었고, 그 유산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끈질긴 선입견이 있다. 털북숭이에, 약간 구부정한 어깨, 큰 머리통, 억세지만 둔해 보이는 몸 등등. 그렇게 그들을 그리고 인식하는 것의 요체는 그들이 별로 스마트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표현은 그들은 우리에 비해 몸은 더 건장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만큼 똑똑하지 않아서 멸종하고 만 것이다, 라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이런 생각은 네안데르탈인이 처음 발견된 이후부터 바로 생겨난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아주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그런 관념은 호모 사피엔스 내에서의 인종적 편견을 공고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인, 동아시아인을 보라. 어쩐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지 않은가?

 

네안데르탈인은 1856,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3년 전, 독일 네안데르 계곡의 펠트호퍼 동굴에서 처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봇물 터진 듯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그리고 어느 시기에는 매우 자주 네안데르탈인의 흔적들이 발굴되었다. 그렇게 발굴된 그들의 뼈, 도구, 흔적 들을 종합한 결과,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45~40만 년 전 하나의 종(, species)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유럽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유라시아 지역에 넓게 분포하여 영국의 웨이즈부터 중국 국경, 아라비아 사막 가장자리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수십 만 년 동안 살아가던 그들은 약 4만 년 전 사라져 버렸다. 멸종이었다. 그리고 지구를 누비는 호미닌은 호모 사피엔스만 남게 되었다.

 

리베카 랙 사익스는 그 40만 년 동안의 네안데르탈인의 자취를 더듬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인 발견되고 150년 동안의 연구 성과를 총정리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그들을 앞에서 보았던 뭔가 모자란 종족에서 우리의 일가친척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몸을 가지고 살았는지에서 시작하여(그들에게 양복을 입혀 지하철 역에 세워놓으면 누구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불을 사용해서 살아갔을 거란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먹고 살아갔는지, 어떤 데서 살았는지를 추론한다. 그들도 심미안을 가지고 있던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들이 같은 네안데르탈인의 사체를 훼손한 증거를 단순한 인육(人肉) 차원에서 보면 안된다고 간곡히 설득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증거들과 그것들에 대한 해석을 읽다보면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과연 무엇이 달랐나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왜 그들만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정말 의문이 들기도 한다(정말 호모 사피엔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을까?).

 


 

 

우리는 정말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그렇지 않다면 그에 관한 논문이 <Nature>, <Science>와 같은 저널에 그토록 자주 실릴 리 없다). 그 관심의 이유를 리베카 랙 사익스는 우리 자신의 멸절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일 수도 있다고 쓰고 있다. 멸종이라는 공포감은 우리보다 먼저 사라져 간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은 또한 반대로 우리가 살아 남았다는 다행스러움, 내지는 우월감과도 연결된다. 우리 존재에 대한 공포와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 종합적인 보고서를 읽다 보면 그들의 멸종은 어쩌면 우연적인 것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모 사피엔스도 적어도 한 번 이상 멸종의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가까스로종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이렇게 기후 위기까지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온갖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며 그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은 우연히 멸종의 길에 들어섰을 수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가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네아데르탈인의 등장에서 멸종까지의 그리 길지 않은(지구 역사에 비하면 거의 순식간이다) 역사는 그저 우리의 친척이 그렇게 살다 갔다는 처연한 느낌만 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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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네안데르탈 | 한줄평 2022-05-2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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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의 명예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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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살다 가다 | 책을 읽다 2022-05-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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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강부원 저
믹스커피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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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순응해가며, 아니 적어도 순응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 불꽃처럼살다간 사람들을 경외한다. 경외하지만 세상의 질서를 만들고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이들을 역사에서 배제해야 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야 한다. 어쩌면 역사의 싸움은 그런 이들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얼마나 남기느냐, 혹은 지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부원은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싸우며 살아간 사람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거나, 달리 기억되던 이들을 소환해서 되살려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많은 삶이었다. 실패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물다섯 명의 인물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1부 자체가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이라고 하여 여성만 다루고 있다. 평양 을밀대에 올라 자신의 주장을 펼쳐, 최초의 고공투쟁 노장자가 된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기생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고 나중에는 열혈 독립운동가로 거듭난 정칠성, 영화 <암살>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남성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에 가려 있었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으로서 한계를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까지 추구한 인물이었다(고명자는 물론 나중에 변절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최초로 일본군의 전쟁 범죄 피해(위안부)를 증언한 김학순,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수십 년간 해고 무효 투쟁을 벌인 용접공 김진숙 역시 온 몸으로 한 시대를 대변한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간 여성들이었다.

 

1부를 넘어가더라도 여성들은 더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혹은 에스더 김, 에스더 박), 조선복재단기를 발명한 이소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여성 언론인으로 <한겨레> 창간에 앞장섰던 조성숙, 그리고 60년대 문학소녀의 대명사였던 전혜린이 그 인물들이다. 이들을 하나의 결로 묶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불꽃같은삶을 살아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으로서 제한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 결연히 반대하고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인물들이었다.

 

다른 이들, 즉 남성들도 대부분 그렇다. 안창남보다 10년이나 먼저 비행사가 되어 일제와 싸웠던 서왈보, ‘최악의 불량선인으로 불렸던 아나키스트 박열, ‘마을문고의 창시자 엄대섭, 한탄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진단법을 발명했으며, 백신까지 개발한 이호왕, 한국 영화의 개척자로 우뚝 섰지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만 나운규, 민족 화가 이쾌대, 4.19 이후의 한국 문학의 찬란한 별로 떠올랐고 지금도 전설로 남은 김승옥 등이 그렇다. 이들의 삶 역시 불꽃 같았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열정을 꺾고 굴종의 삶을 살아간 이들도 소개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결국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정연규, 쥘 베른의 SF소설을 최초로 번역한 인물로 밝혀진 신태악 같은 인물들이 그런 인물들이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평가받는 김수근에 대해서도 그의 야누스적인 면(‘공간대공분실을 모두 설계)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우리 근현대 역사의 주역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빠진 역사가 온전한 역사는 아니다. 위험한 사상을 가졌고, 세상의 질서에 반대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그들이 쌓아올린 유산이 더미다. 모든 이가 이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의 추구했던 가치를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그들이 남긴 유산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후대의 의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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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이란 이름이 붙은 사연 | 책을 읽으며 2022-05-2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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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의 사촌 네안데르탈인, 이 이름은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thal)'이 계곡이라는 뜻이다. 1856년 독일의 한 채석장에서 발견된 오래된 뼈가 헤르만 샤프하우젠에 의해 원시인류의 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이다.

 

이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리베카 랙 사익스의 네안데르탈은 이 명칭에 관한 재미있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네안데르 계곡이라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17세기에 살았던 교사 겸 작곡가 요아힘 네안데르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가 영감을 얻고 노래를 한 협곡은 19세기에 이르러 그의 이름을 따서 네안데르횔레라고 명명되었는데, 채석이 너무 많이 진행되면서 협곡이 아니라 계곡이 되면서 네안데르탈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작곡가 네안데르의 조상들이 쓰던 성은 노이만(Neumann)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고풍스런 유행을 좇아 성을 바꾸면서 네안데르가 되었던 것이다. 역자 양병찬은 노이만의 그리스어가 네안데르라는 점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노이만이라는 말의 뜻은 새로운 사람(new man)'이라는 점이다.

 

그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노이만탈인이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

리베카 랙 사익스 저/양병찬 역
생각의힘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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