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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과 냄새에 관하여 | 책을 읽다 2022-07-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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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땀의 과학

사라 에버츠 저/김성훈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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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아무런 장비(?) 없이 길거리라도 나서서 몇 발자국을 걷더라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시기에 땀의 과학이라... 이보다 더 시의적절한 책이 있을까 싶다. 땀에 대해서 책 한 권을 오롯이 채울 만한 일이 있을가 의심하지 말자. 무엇이든 깊게 파고들면 책 한 권은 충분히 나온다. 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명 유지에 중요한 기능들은 많다. 그중에는 체온의 상승을 막는 것도 포함된다. 더운 여름날이라든가, 특수한 상황에서 체온이 어느 정도 오른다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렇게 체온 상승을 막기 위해 인간에게 진화가 해준 일이 바로 탐 흘리기. 땀은 귀찮은 일 같고, 또 어떤 이는 더럽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몸을 식히기 위해 소변을 보고, 구토를 하고, 똥을 싸서 그것을 몸에 묻히는 다른 동물들의 행동을 보면 땀이야말로 가장 정교하면서도 깨끗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땀샘이 없이 태어난 사람의 경우 더운 날씨에 살아남는(!) 방법은 젖은 티셔쳐를 입고 몸에 계속 물을 뿌려대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니 땀의 효능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땀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것들도 있다. 그중 하나는 땀을 통해서 우리 몸의 노폐물이 제거된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바탕 땀을 흘리면 해독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그 많은 사람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을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여러 과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땀의 해독 효과는 땀을 흘리면 지방을 녹일 수 있다는 개념만큼이나 황당한 얘기라는 것이다. 다만 땀을 통해서 몸 속의 화학물질이 빠져나올 수 있는 만큼, 그 화학물질이 독소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 정도만 인정할 수 있다.

 

또한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이온 음료에 관한 것이다. 1960년대 플로리다대학교 미식축구팀의 게이터스(Gators)를 위해 신장병 전문의가 개발한 음료인 게토레이(Gatorade)를 시작으로 많은 이온 음료가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효과가 좋다고 선전하고, 또 많이들 믿는다. 하지만 그런 효과를 입증할 만한 연구 결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 더 놀랄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땀으로 손실된 전해질을 스포츠음료로 완전히 보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손실되는 만큼의 염분을 음료 자체로 보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갈증의 신호가 오면 무엇이든 마셔도 된다고 한다. 물은 물론이고, 주스도 좋고, 무알콜 맥주, 우유 등. 물론 스포츠 이온 음료도 포함해서.

 

이 책은 물론 땀에 관해서 얘기하지만, 땀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냄새에 관해서도 참 많이 다루고 있다. 냄새에 대해서 여러 에피소드와 문학 작품들, 체험들을 이야기하지만, ‘과학적으로가장 의미 있는 것은 아마도 겨드랑이의 불쾌한 냄새가 세균과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체취 역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의 영역이라는 얘기인데, 겨드랑이의 냄새가 강하고 불쾌할수록 코리네박테리움(Corynebacterium)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대신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의 비율이 높아지면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있을 수 있지만.

 

끝으로 희한한 질병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땀 전염병인데, 15세기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전염병은 땀이 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한 번 걸렸다고 하더라도 다시 걸릴 수가 있었고, 위험성도 줄어들지 않았다. 1485년 헨리 7세가 장미 전쟁에 승리하고 영국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많은 귀족들이 승리를 축하하러 모였다가 다음 날 땀병을 얻어 쓰려졌다고 한다. 이 전염병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호하다고 하는데(당시에야, 그리고 오랫동안 나쁜 공기, 혜성, 화산 폭발, 하느님의 분노 등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아마도 미생물이 원인이었을 거란 공감대는 있다. 그중에서도 한타바이러스(Hantavirus)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고 한다. 다한증과는 상관 없는 얘기다.

 

역시 땀에 관해서 한 권이 거뜬하다. 무슨 소재든 깊게 파고들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관련되어 있고,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을 땀에 대한 이 책 역시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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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의 제임스 러브록 별세 | 끄적이다 2022-07-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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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러브록이 돌아가셨네요. 

103세라고 하네요. 오래 사시긴 했네요.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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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 추천 4        
편지로 읽는 세계사의 이면 | 책을 읽다 2022-07-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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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편함 속 세계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저/최안나 역
시공사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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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적인 편지도 있고, 공개를 목적으로 한 편지도 있지만, 편지는 기본적으로 둘 사이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한 수단이다. 순전히 한 개인의 마음을 쓰는 일기와는 달리, 편지는 상대를 의식하면서 쓸 수 밖에 없으며 감정과 상황을 공유한다. 그래서 상황과 관계에 대해 더 맥락적이다. 지금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거의 대체하고 있지만, 그대로 시간을 두고(물론 급하게 쓴 경우도 있지만) 종이에 써 내려간 편지는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가 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가 129통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것으로 세계사를 모두 설명하자는 게 아니다. 편지들로 역사를 연속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세계사의 한 장면의 이면을 담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찮은 게 아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의 그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있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의 전개에 그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본 역사의 이면은 즐겁기도 하고, 역겹기도 하고, 혹은 씁쓸하기도 하다.

 

편지만으로는 앞뒤 맥락을 몰라 그저 글자로만 보일 수 있는 것을,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가 그 편지에 얽힌 상황을 간단하면서도 잘 전해주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편지가 오래 남을 것을 알았겠지만, 많은 이가 이렇게 자신의 편지가 남아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드러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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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의 생태학: 일상의 모든 것들이 자연이다 | 책을 읽다 2022-07-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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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토록 일상적인 것들의 생태학

마크 에버라드 저/김은주 역
착한책가게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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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이면서 놀라운 내용부터.

오늘날 야생 포유류가 전 세계 포유류의 단지 4%만 차지하고, 인간이 36%, 그리고 가축이 60%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전 세계 조류 가운데 70% 가까이를 가축으로 키우는 가금류(, 오리, 거위 등)가 차지한다.” (182)

 

그러니까 모든 포유류의 96%가 사람 아니면 가축이라는 얘기이고, 우리가 새라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길러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저자는 생태학자다. 그래서 이 책은 생태학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생태학이라면 먼저 숲으로 가거나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가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놀랍게도 티셔츠다. 티셔츠, (), , 밥 한 그릇, 목욕, 소리 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집 안에서 느끼는 생태학이라는 이름으로. 제목대로 저자는 일상의 생태학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냥 일상의 것들에 대해 전후좌우를 살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그런 일상의 것들에서 자연을 찾아낸다. 티셔츠의 재료가 되는 면이 지구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자연을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책 역시 마찬가지며, 내 밥상에 올라온 쌀 역시 자연의 산물이다. 심지어 현대 공학의 산물인 컴퓨터도 마찬가지 자연이다. 트랜지스터, 유리, 전선, 플라스틱 모두 그 구성요소가 자연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가 일상의 생태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란 얘기다. 보통 생태학이라고 하면 이야기하는 것들이 아닌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한 이유는 바로 자연이라는 게 아주 드물게 탈출하여 찾아가는 저기 멀리동떨어져 있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인식은 이어지는 이야기들, 즉 자연의 생태학과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가 현대의 문명을 얻기 위해서 잃어가야 했던 것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 햇빛, , , 물고기를 잃어가고 있으며, 민달팽이, 말벌, 쥐며느리, 기생충, 지렁이, 쐐기풀의 소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곤충에 대해서 한 면만 보면서 그것들이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는 진실을 잊고 살아간다. 흙이 어떻게 생기는 건지, 얼마나 오랜 세월 바위와 바람, , 그리고 생물의 작용이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쉽게 깎아내 버린다.

 

이렇게 쓰고 있고, 저자의 생각을 다 이해하고, 또 옳다고 여기지만, 나 역시 자신이 없다. 일상의 생태학을 이해한 만큼 생태학적 삶을 살아가는지 말이다. 지구를 지킨다는 커다란 명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그래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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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에 의해 이어진 생명의 역사 | 옛 리뷰 2022-07-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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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패자의 생명사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박유미 역/장수철 감수
더숲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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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면 생명의 역사는 어떨까. 생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결국 진화를 이룬 자는 쫓겨나 박해받은 약자들이었다. 새로운 시대는 항상 패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108)

 

캄브리아기에 생물종의 폭발적인 증가가 일어난 시기에 단단한 껍질과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생물에 비해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어 도망 다닐 수 밖에 없던 생물이 빨리 도망가기 위해 몸속에 척삭을 발달시켰고, 결국은 이 생물들이 어류의 조상이 됨으로써 살아남았다.

 

척삭을 발달시킨 어류 중에서도 어떤 어류는 셌다. 약한 어류는 기수역으로 쫓겨났다. 기수역이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역으로 어류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곳이다. 더 약한 물고기들을 강의 상류까지 쫓겨났는데, 그렇게 쫓겨난 어류가 작은 강과 웅덩이에서 뭍으로 나오면서 양서류의 조상이 되었다.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공룡의 시대에 작은 포유류들은 공룡을 피하기 위해 작아졌고, 작은 공룡으로부터도 피하기 위해 밤이 되어서야 활동하는 야행성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룡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청각과 후각 등의 감각 기관을 발달시켜야 했고, 그런 감각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서 뇌를 발달시켰다.

 

약한 포유류들은 다른 포유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나무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무로 달아난 포유류가 원숭이의 조상이 되었고, 그중에서 또 약했던 원숭이 종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두 발로 서야만 했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도구를 쓰게 되었고, 불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패자의 생명사는 굳이 패자들의 역사, 혹은 성공사라고 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공생을 통한 진핵생물의 탄생에서부터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식물 세포의 전략, 산소가 대기에 뿜어져 나왔을 때의 세균의 대응, 자손을 남기기 위해 죽음과 성을 발명한 것 등등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생명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반드시 그들이 패자라고 할 수 없는 게, 결국은 성공한 자들이 살아남았거나, 혹은 살아남아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급변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은 것은 이전의 환경에서 도망다녀야만 했던 생물들인데, 사실은 그중에서도 일부만 성공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패자가 성공했다기보다는, 패자 중에서 성공한 생물이 나왔다라고 해야 옳은 말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의 성공이 너무도 적절해서 지금까지도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는 사실은(이를테면 상어라든가, 바퀴벌레, 흰개미, 투구게, 앵무조개 같은 것들) ‘패자의 궁극적인 승리라는 일반화를 머쓱하게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렇게 쓴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생명의 역사를 탐구할 때 늘 성공적인 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다음 시대에 새로운 모습의, 새로운 기능의 생물로 진화한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매우 불확실한 것이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바로 내가, 우리가 있는 것이다. 생명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에 대해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 이유다.

 

저자가 식물학이 전공이었던 만큼, 식물의 진화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다루고 있고, 내가 식물학을 잘 모르는 만큼 다른 부분보다 배운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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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서 태평양 전쟁까지 격동의 동아시아사 | 책을 읽다 2022-07-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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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올컬러 특별판)

김시덕 저
메디치미디어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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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임진왜란에서부터 20세기 태평양전쟁까지 500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국가의 각축과 조선의 대응을 한, , 일이라는 3국의 관점에서 시야를 넓혀 대륙과 해양 세력이 맞붙은 역사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을 종종 유라시아 동해안으로 지칭하고 있는 게 눈에 띤다. 근대 이후 세계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동아시아를 의미하는 듯도 하고, 세계사적 차원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분명하게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처음 접하는 개념이라 눈에 띠었다.

 

젊은 학자답게 도발적인 질문으로 글의 포문을 열고 있다. 한반도가 과연 전략적 요충지인가? 라는 질문이다. 모든 교과서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강조해온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한반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얘기로 들린다. 한반도가 전략적 요충지라면 그건 시대에 따라 변함이 없는, 고정된 진실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를 면밀히 보자는 얘기다. 저자는 16세기 이전까지는 한반도 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본다(그래서 한민족의 중국도, 몽골도 직접 지배 대신 간접적 지배, 혹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택했다고 본다). 그러다 일본이라는 플레이어’(이런 표현도 역사책에서 처음 본다)가 등장하면서 대륙과 해양이 맞붙는 지역이 되었고, 비로소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등장했다는 것은 바로 임진왜란을 의미하는데, 임진왜란은 일본이 대륙을 향한 세 번째 시도로서 그제서야 한반도는 대륙을 향하는 길목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 이후로 한반도는 20세기까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완충 지대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다른 책이라면 이 시기에서 19세기로 몇 가지 지점만 짚고 바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은 그 사이의 동아시아의 역사를 요모조모 다 짚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일본에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임진왜란이 불러온 연쇄 효과로서 누르하치의 부상과 청 제국의 건설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누르하치와 청 제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임용한의 병자호란: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에서 자세히 읽은 바가 있지만). 청에 의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한반도 문제가 일단 종결되었다는 시각 역시 상당히 도전적이다. 말하자면 그 동안 격동의 역사였던 데 비해 청에 대한 조선의 굴복으로 동아시아가 상당한 기간 동안 안정적인 형국을 띠게 되었다는 얘기인데, 이건 결과론적인 얘기가 아닌가 싶다.

 

한 가지 인상 깊은 부분을 지목하지면, 조선과 일본에서의 가톨릭에 대한 내용이다. 2개의 장에 걸쳐서 쓰고 있는데, 읽으면서는 저자가 분명히 가톨릭 신자라고 여길 정도였다(스스로 밝히길 어떤 종교의 신자도 아니라고 한다). 새로운 질서로서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조선과 일본에서 받아들여졌는데, 둘 다 탄압을 받았지만(가톨릭 신앙은 종교로서 인식된 게 아니라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정권 측에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정착한 것은 한반도였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신자가 생겨난 한반도 말이다.

 

제국주의가 유라시아 동해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조선이 멸망하는 과정을 다루는 부분의 역사 내용 자체는 크게 특이하지 않다(역사는 그렇게 있었던 것이니). 하지만 세력의 충돌이라는 면에서 더 강조를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각국이 가졌던 아이러니한 면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별로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기도 하다) 조선의 독립 유지를 가장 원했던 국가가 바로 러시아였다는 점이다. 물론 러시아가 선()한 의도를 가져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 그 편이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한반도는 일본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도 역시 아이러니한 면이 있는데,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인도나, 베트남 등의 입장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가 유럽 국가를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찌 생각해야 할지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생각은 결국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논리로 이어지기도 했으니 결코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일본의 어떤 학자의 탄식처럼 서양도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는데, 평화롭게 있을 때는 야만인 취급하더니,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나니 오히려 문명국 대우를 하더라는 아이러니도 있다.

 

저자는 동아시아 500년사가 바로 삼국지가 아니라 열국지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현대에도 한, , . 혹은 한, , 일 등 몇 국가만을 우리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가로 상정하고 그에 대해서만 신경 쓰는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또한 자뻑과 자해 모두 경계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만 역사를 해석하고, 다른 나라를 바라보려는 자세를 질타하고 있다. 반발심이 튀어나오다가도 그게 틀린 얘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욱여넣고는 했다. 역사는 이미 결판이 난 바둑을 복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이 역사는 처절하게 진 게임이다.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편치 못한 일이지만, 그래도 복기는 필요하다. 똑같은 게임이 벌어지지 않지만, 제대로 한 복기는 다음 게임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터이니.

 

저자가 분명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책은 가끔씩 다른 데를 갔다 오고 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자랑하는 느낌도 좀 들고.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저자가 많은 것을 깊게 연구해왔다는 걸 알 수 있고,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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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4. 콜레라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인가? | 세균에 사람 있다 2022-07-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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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인가?

 

로날트 D.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는 콜레라균과 관련하여 “1883, 콜레라의 정체가 당대 최고 세균학자의 현미경을 통해 드디어 밝혀졌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당대 최고 세균학자는 다름 아닌 로베르트 코흐이다. 그밖에도 아노 카렌의 전염병의 문화사나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등에서도 콜레라균의 발견자는 코흐로 기술되어 있다. 이미 코흐는 1876년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의 정체를 밝혀내고 1882년에는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해서 명성이 하늘을 찌르던 과학자였다. 코흐는 이집트에서 콜레라가 발병했을 때 독일과 프랑스가 모처럼 힘을 합쳐 파견한 연구팀의 책임자였다. 연구팀이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콜레라가 잠잠해진 후라 콜레라를 찾아 인도로 갔다(이집트에서 콜레라균을 찾아냈다고 기술한 책들도 꽤 있다. 아노 카렌의 전염병의 문화사나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등과 같은 권위 있는 책들도 그렇다). 코흐는 인도 캘커타에서 콜레라로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부검하여 끝부분이 쉼표처럼 약간 구부러진 균, 콤마균(comma bacteria)’을 발견했다. 콜레라균의 발견이었다. 그렇게 콜레라균의 발견은 코흐의 업적 중 하나로 기술되고 있고, 그렇게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어떤 기록들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바로 이탈리아의 해부학자인 필리포 파치니(Filippo Pacini, 1812-1883)이다. 파치니의 삶은 스노의 삶과 매우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 둘 다 의사였고, 의사로서 남긴 업적도 있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둘 다 콜레라와 연관되어 있다.

 

파치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도시인 피스토이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신부가 되길 원했으나 결국은 의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삼십 대 중반이 이미 피렌체 대학 해부학과장이 되었고 그의 경력 내내 그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그의 특기는 현미경 관찰이었다.

 

그의 초기 업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그의 이름을 딴 파치니소체(Pacinian corpuscles) 발견이다. 지각 신경의 말단 장치에서 피부 깊숙이 존재하면서 강한 압력과 빠른 진동을 감지하는 구조인데, 특히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많이 존재한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가 익숙하게 사용했던 현미경으로 찾아내고 기술했다. 1835년에 이미 이를 발표했는데, 토스카나 대공은 파치니가 사용할 수 있도록 피렌치 대학에 더 훌륭한 현미경을 기증하기도 했다.

 

1864년 피렌체에 콜레라가 유행했다. 1846년부터 1863년에 이르는 세 번째 콜레라 팬데믹의 영향이었다. 파치니는 의사로서 콜레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콜레라로 사망 환자의 시신을 부검하고 자신의 특기인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는 특히 장 점막을 면밀하게 조사했는데, 바로 그곳에서 쉼표 모양의 세균 찾아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세균에 Vibrio라고 명명했다. ‘Vibrate’, 즉 흔들린다는 뜻으로 운동성이 많은 세균이라 이런 이름을 붙였다. 1854년에 자신이 발견한 세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과학자 집단에서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 존 스노도 자신이 죽기 4년 전에 발표된 이 논문을 몰랐던 것으로 보이고, 30년 후의 코흐 역시 이 논문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파치니는 이후에도 콜레라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한다. 그는 세균에 의해서 장 점막이 파괴되어 유체 전해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면서 치명적인 상태가 된다고 하여 아콜레라라는 질병에 대해 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환자들에게 소금물을 많이 마실 것을 권고했다. 현재의 처방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는 파스퇴르와 코흐 이전부터 세균병인론의 굳건한 옹호자였고, 그래서 콜레라가 전염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아즈마(miasma) 이론을 옹호하는 이탈리아 의사들과 대립했고, 그래서 더더욱 그의 콜레라 발견은 잊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존 스노와 유사한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둘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지낸 것도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치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픈 여동생들을 치료하는 데와 함께 과학 연구에 쓰고 거의 무일푼의 상태로 1883년 사망했다.

 

죽을 때까지 파치니가 콜레라균을 발견했다는 업적은 인정받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해에 코흐가 콜레라균을 ()발견했고, 콜레라균 발견의 업적과 명성은 오롯이 코흐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1965년 국제명명위원회는 콜레라균의 정확한 이명법 명칭을 Vibrio cholerae Pacini 1854”로 확인하면서 파치니의 업적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고메즈-길 등이 그의 이름을 기려 Vibrio pacinii라는 세균 이름을 만들었다. 위대한 업적은 언젠가 인정받는다.

 


필리포 파치니

 


파치니가 제작하여 콜레라균을 관찰한 현미경 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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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3. 존 스노와 감염 지도 | 세균에 사람 있다 2022-07-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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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노와 감염 지도

 

1854년 영국은 세 번째 콜레라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었다. 영국은 이미 1831년부터 콜레라라 상륙한 지역이었다. 세 번째 팬데믹 와중에도 사람들은 콜레라의 원인을 잘 몰랐다. 전파되는 양상을 보았을 때 전염성이 있다는 게 명백해 보였지만 확실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몸속에 탄소가 과다하게 축적되어 생긴다고 생각하여 침실 문을 열어놓고 자거나, 담배나 대마초를 피우고, 야채, 샐러드, 피클 등을 피하거나 하는 치료법들이 제안되기도 했다. 그런데 1854년에 영국의 의사 존 스노(John Snow, 1813?1858)가 콜레라에 관한 혁신적인 견해를 내놓고, 또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존 스노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를 이용해 빅토리아 여왕의 출산을 돕는 등 당시에 의학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의사였다. 그는 세 번째 콜레라 팬데믹이 영국을 덮쳤을 때 런던 남부의 발병 양상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런던은 두 군데의 상수도 회사로부터 탬스 강의 물을 공급받고 있었지만, 1848년의 콜레라 발생 이후에 한 회사는 다른 지역의 물을 끌어와서 공급하고 있었다. 스노가 조사한 결과 1848년과는 달리 식수원을 바꾼 회사의 물을 마신 이들이 사망률이 8~9배 가량이나 낮았다. 그는 콜레라가 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스노가 그 다음으로 주목한 지역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런던의 웨스트엔드였다. 브로드 가()에 위치한 지역에서 사망자가 700명이 나오고 있었다. 스노는 목사인 헨리 화이트헤드의 도움을 받으며 브로드 가와 인근 지역의 현관문을 일일을 두드렸다. 각 집마다 사망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고, 어디에서 오는 물을 마셨는지를 조사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도에다 꼼꼼히 표시했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브로드 가 중심에 식수를 공급하는 펌프를 이용하고 있었다. 브로드 가에서 멀리 떨어진 집에서도 사망 사례가 나왔는데, 조사해 봤더니 평판이 좋은 그 펌프에서 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던 집이었다. 그리고 450명이나 수용된 구빈원은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다른 지역보다 굉장히 적었는데 그곳은 자체적으로 이용하는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한 양조장 역시 콜레라로 죽은 이가 없었는데, 이곳의 직원들은 밖에서 퍼온 물을 마시는 대신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마셨던 것이다. 존 스노는 확신을 갖고 당국에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하고 사용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런던 지역의 콜레라는 잦아들었다. 이후 존 스노의 펌프 손잡이는 뉴턴의 사과나 와트의 물주전자와 마찬가지로 과학사에서 전설이 되었다. (참고로 존 스노의 이름을 딴 세균도 있다. Snowella litoralis라는 세균인데, 1988년에 명명되었다.)

 

이후에도 아시아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유럽에까지 전파되는 팬데믹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 콜레라에 의해 희생된 유명인들도 많다. 철학자 헤겔, 군사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미국 11대 대통령 제임스 녹스 포크,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등이 그런 희생자들이다.

 

하수 시설과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등 위생 시설이 정비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콜레라의 유행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위생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자연 재해나 전쟁 등으로 위생 상태가 악화된 경우 콜레라는 언제든지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1961년 엘 토르(El Tor) 형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종 콜레라가 인도네시아에서 비롯되어 방글라데시, 인도, 중동, 북아프리카를 거쳐 1973년에는 이탈리아까지 전파되었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 수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한 2010년에는 지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에 콜레라가 발병하여 70만 명이 넘는 환자가 생기고 9,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이 초래되기도 했다. 아직도 콜레라는 우리 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존 스노

 


존 스노가 제작한 브로드 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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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2. 콜레라, 혹은 호열자 | 세균에 사람 있다 2022-07-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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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혹은 호열자

 

콜레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괴질(怪疾)로 불렸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민간에서는 쥐통이라 불렀다. 이 질병은 발뒤꿈치 근육의 경련을 수반하는 증상을 보였는데, 사람들은 쥐에게 물려서 이런 병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쥐통이라 부른 것이다.

 

장티푸스를 장질부사라고 불렀던 것처럼 콜레라도 부르던 명칭이 있다. 바로 호열자(虎列刺)’인데,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뜻도 있지만 이 질병에 대한 명칭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변형된 사연이 있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1822년 콜레라가 처음으로 유행했는데, 이후 콜레라를 음역해서 고레라(コレラ)’라고 했다. 그러다 1867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이를 한자로 쓰면서 호열랄(虎列剌)’이 공식적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1879년 조선에 이 말이 들어왔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 호열랄이 호열자가 된 것이다. 신동원의 호환 마마 천연두에서 그 사정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에서는 한자 虎列剌을 조선어로 읽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을 거의 비슷한 글자인 ()’로 읽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신조어였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보다는 가 조선인에게는 훨씬 익숙한 글자였으며,”

 

이는 당시 신문의 인쇄 상태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 이후로 한반도에서 콜레라는 호열자라 불리게 되었다. 해방 이후의 신문에서도 호열자라는 명칭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사용된 셈이다.

 

대한제국 시기 정부와 의학교가 발행한 호열랄예방주의서’ - 이때까지는 ()’가 아니라 ()’로 적혀져 있다.

 

1946년 부산 일대 콜레라(호열자) 발생을 보도한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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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1. 세계화와 함께 정체를 드러내다 | 세균에 사람 있다 2022-07-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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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세계화와 함께 정체를 드러내다

 

Vibrio pacinii라는 이름을 가진 세균이 있다. 2003년 새우 유충, 농어, 대서양 연어 등 해양 생물에서 분리된 세균 균주들에 대해서 고메즈-(Bruno Gomez-Gil) 등이 연구해서 붙인 이름이다. Vibrio라는 잘 알려진 속명에 이은 종소명 pacinnii는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필리포 파치니(Filippo Pacini, 1812-1883)의 이름을 기린 것이었다. 필리포 파치니는 바로 1854년 콜레라의 원인균을 찾아내 Vibrio cholerae라는 이름을 붙인 과학자이다. 콜레라에 관해서는 코흐의 연구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30년 전에 이미 이를 연구하고 이름까지 붙인 과학자가 있었던 것이다.

 

라틴어에서 온 말로 지나친 설사를 뜻하는 콜레라(cholera)는 오랫동안 인도의 갠지스 강 하류 벵갈 지역에 국한된 풍토병이었다. 이 질병이 인도 밖으로 나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이른바 서양의 선박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무역과 함께 점령을 일삼던 대항해 시대라 불리는 시기의 부산물이었다. 부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1800년대 초 영국이 인도에 교역로를 개척하고 군대를 파견하면서 콜레라는 인도를 빠져나와 전 세계 교역로를 따라 전파되기 시작했다. 1817년 인도에서 발생하여 1824년까지 지속된 첫 번째 콜레라 팬데믹은 네팔,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오만, 태국, 미얀마, 중국, 일본, 아마도 우리나라까지 마수를 뻗쳤다. 당시 유럽은 신문 등을 통해 아시아의 비극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콜레라가 유럽에는 상륙하기가 쉽지 않았다. 콜레라는 배를 통해서 순식간에 유럽에 상륙한 페스트와는 양상이 달랐다. 콜레라는 잠복기가 길어야 사흘에 불과했기에 아시아에서 콜레라에 걸린 선원이나 승객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간다고 한다면 이미 배 안에서 그 중상이 나타났을 것이고, 당시 방역 체계로도 그 정도는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어선은 금방 무너졌다. 1826년 인도에서 시작된 두 번째 팬데믹은 세계 곳곳의 전장을 누비던 군인들에 의해 첫 번째 팬데믹보다 훨씬 빨리 확산되었다.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집어삼키고,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폴란드, 불가리아, 라트비아, 독일로 번져나갔다. 당시 독일 베를린의 인구가 24만 명 안팎이었는데, 그중 2,250명이 콜레라에 감염되고 1,41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2,200명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1831년에는 영국에까지 전파되었고, 이듬해에는 아일랜드까지 건너갔다. 그리고 아일랜드 이주민들은 이 전염병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갔다.

 

19세기 말까지 콜레라 팬데믹은 여섯 차례나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일곱 번째, 1993년 경 여덟 번째 팬데믹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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