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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한 킹의 또 하나의 사랑스런 걸작 | 기본 카테고리 2019-11-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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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도에서

스티븐 킹 저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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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하 '킹')의 신작 <고도에서>는 <나는 전설이다>로 잘 알려진 SF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또 다른 대표작 <줄어드는 남자>(1956)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매드슨은 2013년도에 타개했는데, '킹'은 이 소설의 첫 장을 "리처드 매드슨을 추모하며"로 시작한다.

경장편이라 분량은 202페이지인데, '분량 대마왕' 킹에게 이 정도는 4편의 중편으로 구성된 그 유명한 <사계>나 <자정 4분 뒤>의 한 편 격인 1/4 정도에 불과하다.

하도 많이 들어서, 심지어는 영화사 로고 'CASTLE ROCK ENTERTAINMENT'로도 익숙한 캐슬록은 실제 지도에는 없는 '스티븐 킹 월드'가 펼쳐지는 그가 창조해 낸 소우주다. <고도에서>는 곳곳에 그간 그의 작품들에 등장한 인물이나 지명 등을 점점이 박아 놓아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고, 때론 키득거리면서 책을 읽었다. 얄미운 '킹' 같으니라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지속적으로 몸무게가 줄어드는 주인공과 그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는 뜻하지 않은 이웃과의 우정을 따뜻하게 그린 <고도에서>를 읽으면서 내가 스티븐 킹의 어떤 면모를 좋아하는지 새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우선 사실적이지 않은 '기묘한' 설정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휴머니즘이 첨가되면 그 결과가 치명적인 감동으로 배합돼 나오는 원칙이다. 확실히 그렇지 않은 '킹'의 작품보다는 나는 이런 감동 코드에 약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

분량도 많지 않아서인지 주요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몸무게가 줄어드는' 남자의 상대역으로는 '결혼한'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한다.

그들은 멋진 레스토랑을 개업하고 훌륭한 음식 솜씨를 지녔으나 단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동네 사람들의 배척을 당해 파리만 날리다 조만간 가게를 접어야 할 위기에 처해져 있는데...

본인의 몸무게 변화는 곧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의미한다. 그는 정해진 운명을 소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에 가장 멋진 선물을 남겨 놓고 폭죽을 터트리며 하늘을 난다!

 

사실 아무리 스티븐 킹의 필력이라도 활자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건 영상으로 만들면 훨씬 그럴듯할 텐데... 요즘은 CG가 발전해서 못 만드는 영상이 없다는데.

<고도에서>는 영상화하기에 '지나치게' 적합해 보인다. 관객들이 좋아할 요소가 '매우' 많다는 의미다.

감동 코드가 잔잔하게 깔린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돌로레스 클레이븐>같은 명작으로 탄생할 재료는 분명 이 소설 안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나 TV 제작자들은 '킹'의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읽고 판권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나 보다. 할리우드 창작자들의 마르지 않는 수원지, '스티븐 킹 월드!'

오랜 세월 스티븐 킹의 소설 혹은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을 보며 위안을 받고 즐거움을 얻었다.

마치 숨 쉬는 공기처럼.

의식하든 그러지 않든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그의 영향력 밖에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스티븐 킹이라는 거대한 추억 앨범에, 이토록 멋진 소설 <고도에서>를 다시 한 장 추가한다.

걸작은 분량이나 어려운 문장, 단어, 구조 등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걸 고수는 간단히 입증해낸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스티븐 킹은 그야말로 킹(KING)이다!

"이번 생(生)을 킹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네, 제군들!"

지은 죄가 많아 지옥으로 간다 하더라도 거기서 '킹'의 소설들을 만난다면 거긴 천국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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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 문학의 어떤 한 경향 | 기본 카테고리 2019-11-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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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저/하윤숙 역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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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독일 화가 Vivien Greven의 작품 <)(Ⅳ, 2018>을 사용한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확 끈다.

하지만 원작은 책 표지와 같은 남녀 평형이 아니고 여성이 위에 있는 포즈였다고 한다.

☞ 캣퍼슨(CAT PERSON) =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책을 읽기 전 사전 정보로 짐작해 보기로는 젊은 현대 여성의 사랑, 연애, 섹스를 다룬 단편으로 예상했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크리스틴 루페니언(Kristine Roupenian)은 '스티븐 킹을 읽으며 자란 아이'였다고 본인이 밝혔고, 그 결과 호러와 서스펜스에 특히 천착했다고 한다.

 

저자의 첫 번째 소설집인 캣퍼슨(YOU KNOW YOU WANT THIS : Cat Person and Other Stories)은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한 작가의 작품집이라고 하기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81년생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다년간에 걸친 다양한 습작, 스티븐 킹의 영향 등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로 규정짓기엔 애매모호한 이종교배의 작품이 탄생한 듯하다.

조회수 450만을 넘기면서 <뉴요커>가 온라인으로 발표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그녀의 출세작이 된 현대인의 건조한 연애담 <캣퍼슨>, 찰스 맨슨(맨슨 패밀리의 리더)의 곡에서 제목을 따 온 '팝 음악' 단편 <룩 앳 유어 게임, 걸>, 성인을 위한 동화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 도미넌트 & 서브미시브 <나쁜 아이>, 여성 작가가 본 '좋은 남자'의 의미 <좋은 남자>, 레즈비언들의 처녀파티에 등장한 왕년의 미소년 배우 <풀장의 소년>, 초현실적인 또 하나의 '기생충' 이야기 <성냥갑 증후군>, 맞아야 섹스하는 여자 <죽고 싶어하는 여자>,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무는 여자>...

딱히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굳이 찾자면 일반적인 성 취향을 넘어서는 BDSM까지 폭넓게 다룬다는 점일 텐데 그만큼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들은 정상적인 섹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남자'란 그 남자에 비해 자신이 너무 좋은 여자라고 마음속으로 은밀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남자다." - P 271 <좋은 남자>

"차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그가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 강간한 뒤 살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중략)

"괜찮아요, 원하면 죽여도 돼요." 그녀가 말했고, " - P 24 <캣퍼슨>

 

"내가 당신을 강간하고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알지만 당신은?" - P 374 <죽고 싶어하는 여자>

 

21세기의 '원 나이트 스탠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가? 저자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런 묘사들은 '선'을 넘는 느낌이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에 저자의 소설들은 발표되고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적어도 <캣퍼슨>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많은 독자들이 소설에 묘사된 관계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겠다.

때론 무미건조하고, 때론 4차원인 크리스틴 루페니언의 <캣퍼슨>은 현대 문학의 '어떤 한 경향'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게 그럴듯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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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젊은 50대를 꿈꾸며 | 기본 카테고리 2019-11-2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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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

사이토 다카시 저/황혜숙 역
센시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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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기대 수명이 훨씬 짧았던 '공자왈' 시대에는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 했다. 아마도 이젠 대략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나이란 의미일 것이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50세라는 나이는 공자 시대와는 달리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느낌이다.

수명은 연장되고 건강 관리는 잘 되어 아직 한참 활동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주위 상황은 그렇지 않고 어느덧 '반'강제 은퇴 상황에 몰리다 보니 거기서 비극은 발생되고, '어쩌다 50대'가 된 그들을 위해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는 나왔다.

제목부터 특정 연령대를 겨냥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 아예 제목부터 '30대', '40대'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면 해당 연령층은 아무래도 유심히 관심을 가지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본인들이 속하지 않은 연령층 대상 책들은 당연히 손이 가지 않는다.

유심히 살펴보면 출판계에서 가장 많은 도서가 타깃으로 삼는 연령대는 30대로 보인다. 그다음으로 40대고, 50대가 가뭄에 콩 나듯 약간 보일 뿐 이후 연령대를 다룬 책은 거의 없다.

어쩌면 50대 이후는 인생의 연륜에서 이미 많은 걸 터득했기에, 이런 자기 계발서, 처세술을 다룬 책의 효용 가치가 젊은 연령층보다 높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일본 문학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가 쓴 이 책은 50대를 인생의 변곡점으로 삼고, 실질적인 조언을 전한다.

본인들은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서럽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50대가 처한 현실은 이렇다.

대부분 사회생활에서 퇴직을 준비하거나, 이미 은퇴 상태다. 쉽게 표현하면 사회적 계급장이 떨어졌거나 녹슨 상태로 '왕년의 영광' 운운했다가는 꼰대가 되기 쉽다.

건강은 뭐 아직까지는 큰 문제는 없으나 혈압이든 당뇨든 뭔가 조금씩 관리 모드가 필요한 부분이 생기고,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성으로서 성적인 매력은 아무에게도 어필하기 힘들다.

가정에선 그간 열심히 벌어다 준 노고는 이미 '과거형'이고, 얇아진 소득으로 와이프 눈칫밥 먹기 급급하다.

그나마 쥐꼬리만한 소득이라도 벌이가 있으면 다행인데 그나마 끊기면 매우 곤란하다.

자녀들은 아직 재학 중이거나, 기껏해야 사회 초년생 정도로 결혼 전까지는 지속적인 소득이 필요하다.

이 책은 50대라도 여성보다는 남성 독자들을 위한 책인데, 이 상황은 한국의 50대 가장들에게도 별다르지 않다.

정확한 현재 내 상황인지라 적고 보니 매우 갑갑하다!

사이토 교수의 혜안을 정리해 본다.

「1장 - 이러한 변화된 상황 인식, 50대의 의미

2장 - 쓸데없는 신경, 걱정을 버리고 생각을 간소화하기

3장 - 과거의 나, 나름 영광스러웠던 왕년의 내가 가진 자존심 버리기

4장 - 현 상황에서 내게 맞는 즐거움 찾기, 지루함 견디기

5장 -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에 대처하는 법, 죽음 준비하기」

 

"위대한 책은 한결같이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생애에는 하나같이 지루한 기간이 있다.

위인들의 인생도 두세 번의 위대한 순간을 제외하면, 늘 흥분으로 가득한 인생은 아니었다."

- P 124 <러셀의 행복론>중 '지루함과 흥분'

 

삼성그룹의 임원 정도 되면 모를까 이 책에서 조언하는 내용을 귀담아듣지 않을 50대는 많지 않을 듯싶다.

저자에 따르면, "50세는 이미 성공이나 실패가 어느 정도 결정되어 버린 시기다."(P 31)

책 표지에는 도서 내용을 간략히 한 줄로 요약해 놓았다.

"이제 자존심, 꿈, 사람은 버리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어떤 의미인지는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알 수 있겠지만, 수긍하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다.

노년을 준비하는 많은 책에서 보면 그래도 가끔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중요하다는 내용들이 많은데, 저자는 아무래도 기존 사회적 네트워크의 단절을 염두에 둔 논지로 읽힌다.

서재에 꽃혀 있는 장석주의 <마흔의 서재>를 읽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5학년에 진입한 지 벌써 몇 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생물학적인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 책 내용대로 많이 비우고 내려놓고 간소하게 건강 잘 챙기면서 생각이 젊은 50대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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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 | 기본 카테고리 2019-11-1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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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현영 저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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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한국 페미니즘 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던 권김현영 교수는 그간 다수의 공저를 냈었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2003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저자의 첫 단독 저서다. 주로 '한겨레' 언론 계열인 <씨네 21>, <한겨레 21>, <한겨레> 지면을 통해 발표한 글들로 매체의 특성상 1~2페이지 분량이었을 테고, 책으로는 대부분 3~5페이지 정도로 1~4장까지 내용을 이룬다. 언론사에 발표된 짧은 글들 외에 다소 심도 있는 내용들은 5장에 모아져 있다.

'늘 지금-여기'를 이야기한다는 저자의 지난 칼럼은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똥녀, <82년생 김지영>, 장자연,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탁현민, 안희정, 양진호, 버닝썬과 YG, 정준영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페미니즘 이슈를 총망라하는 귀한 책이다.

문과생이 이과 전공서적을 읽는 듯 생소한 용어도 있고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씨네 21>에 기고한 글들은 영화를 통해 페미니즘을 다루어 재미있게 읽었다.

연대기 순으로 내용이 전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인 이질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굳건한 남성 '룸 살롱' 연대의 틀과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세상 모든 일에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진보와 보수도 이런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서는 같은 남성의 입장에서 한목소리를 낸다는 게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안희정은 갔어도 발언이나 저서의 내용으로 물의를 빚었던 홍준표, 탁현민,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아직 건재하다.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 대부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왈가왈부할 지식이 없다고 봐야겠다.

그다지 관심 있는 주제도, 관계가 있는 주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이슈들을 남성들이 점령한 언론 매체가 아닌 여성들의 눈,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보니 같은 사안인데도 매우 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어 정말 뜻깊은 독서가 되었다.

- 된장녀, 맘충 등 여성에 대한 멸칭은 여성을 통제하는 효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멸칭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둔 결과 그것이 여성혐오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P 6)

- '위안부'들이 수십 년간 입을 다물어온 이유는 한국의 가부장제가 이들에게 암묵적이고 때로는 명시적으로 침묵을 강요했기 때문이다.(P 54)

- 여자의 전쟁은 언제나 내전이었다. 친밀한 사이인 가족과 애인이, 여전히 충성심이 남아 있는 공동체 안에서 신뢰하는 동료가 바로 자신의 가해자다.(P 71)

- 여자에게 허용되지 않은 삶을 선택한 여자 주인공들은 도전 자체가 실수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실패해도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냉소만이 돌아올 뿐이다.(P 80)

- 독박육아부터 명절 노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기혼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유교적 가부장제'로 설명될 만큼 과거의 시간성 속에서 경험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 지독한 성차별적 현실을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정당화했다. 그 결과 사라진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P 101~102)

- 인터넷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여성혐오 현상은 성차별주의라는 신념을 일관되게 실천하는 주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역차별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 주로 생산됐기 때문이다.(P 226)

저자는 말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불법이 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여혐민국'에서 페미니스트는 답이 없는 두 선택지에서 억지로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거나 질문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는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페미니즘의 고전이자 입문용으로 리베카 솔닛의 저작들이 인기를 끄는 걸로 아는데, 이 책이 저자의 첫 단독 저서인 걸로 보아 아직까지 국내 출판물은 양적으로 그다지 많지 않은 듯싶다. 국내에도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페미니즘 담론이 많이 형성되고 질적, 양적으로 활발한 저작 활동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명제를 신봉하는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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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쓴 시 | 기본 카테고리 2019-11-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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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별과 이별할 때

서석화 저/이영철 그림
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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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시인이 있다.

무남독녀인 그의 어머니는 16년이라는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했고, 결국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어르신들한테 본인 어머니가 받은 이곳 사람들의 정성을 베풀고 싶었고,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인 여기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분들의 남은 시간을 목격하고 그 과정을 글로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내 어머니가 받고 싶은 간호, 내 어머니에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고 보호자로서 생각해왔던 것을, 내가 하리라. 내가 해드리리라.'(P 62)

주위 지인들의 미쳤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50대의 나이에 정해진 과정을 수료하고 2016년 간호조무사로 요양병원에 취직하여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근무했고 48개의 에피소드로 생의 마지막 풍경을 담은 다큐 에세이 <이별과 이별할 때>는 그 결과물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요양병원. 거동을 못 하는 분들이 태반이고, 치매에다 대소변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안 되고, 고집불통에다 높은 스트레스 유발지수, 노인 특유의 냄새에다...

죽음을 준비하며 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 자식들을 끝까지 효자 효녀로 두둔하고, 돈 있다고 1인실에서 거들먹거리기도, 너희들은 돈 받고 하는 일 아니냐며 근무자들을 막무가내로 하대하기도, 피붙이보다 더한 사랑으로 임종 순간까지 함께 하는 애인도, 대소변 시중을 끝끝내 마다하며 최후의 존엄성을 지키기도,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곡기를 끊기도, 아들보다 나은 사위도, 매일매일 편지를 새로 쓰기도 하고 그들은 버텨 낸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러면 안 되는지 잘 알지만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가족에게 나도 모르게 독화살이 되어 날아가는 경우가 많듯이, 병원에 계신 분들도 어쩌다 들르는 가족보다 늘 보는 근무자들에게 온갖 신경질을 부린다.

이들과 생활한다는 건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고통의 시간들이지만 제각각 사연이 다른 그들과 보내는 시간들을 통해 저자는 "사랑은 병들지 않아. 사람이 병들 뿐이야."라는 감동을 받고,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간접 체험해봄으로써 삶에 대한 경외감을 다시 깨우치며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된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감동'이란 걸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책이나 뉴스를 통해 느끼는 것이 아니고 직접 보고 듣는 것이어서 감동의 파장은 깊고도 넓다.'(P 100)

그들 각자의 삶은 '시청각 도서관'이요 인생 공부의 도량이었던 것!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어렸을 때 찼던 기저귀를 다시 차야 하고, 심성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고 이는 빠지지만 미소는 해맑아진다.

'Well-Ending'이니 'Well-Dying'이니 해서 인생의 마침표를 어떻게 잘 찍느냐 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중병으로 오랜 기간 병원에서 고생하지 않고, 고통받지 않는 편안한 임종과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죽음.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나의 존재를 그리워할 최소한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면 나쁘진 않겠다.

누구에게나 먹먹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이 책에는 주로 꽃과 나무를 소재로 한 이영철 화백의 그림이 함께 해서 더욱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 소장 가치를 높였다.

생로병사 중 '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인생의 후반전에 생길 확률이 높다.

즉 누구나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건 피할 수 없단 이야기다. 인생의 연장전이 두려워지는 요즘, 이 책은 중장년층 독자들이나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누군가를 보낸 이들에겐 눈이 아닌 가슴으로 읽힌다.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겐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지' 생각해보게 만들고.

서석화 시인이 쓴 <이별과 이별할 때>는 눈물로 쓴 시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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