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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뉴욕은 뉴욕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1-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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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뉴욕은 뉴욕이다

이여행 저
바른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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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으니 아마도 도시 숫자로 보자면 40~50개 도시는 다녔으리라.

뉴욕에 체류한 적은 없어도 미국 동부에 몇 달 머문 적이 있어 뉴욕은 자주 들렀었다. 방문한 많은 도시 중에서도 뉴욕의 이미지는 특별하게 남아있다. 도시 자체가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용광로 같았고,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활력이 넘쳤다. 브로드웨이에서 4대 뮤지컬이라는 작품들을 감상한 경험이 아마도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을 수도 있겠지만, 이해도 못 하면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뒷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Hearts of Darkness>(1991)를 보고, 큰 화면으로 포르노를 틀어주는 음습한 성인 극장을 호기심에 찾기도 하고, kg으로 파는 한인이 운영하는 간이 뷔페식 가게에서 허기를 다스리기도 했다.

필명으로 짐작되는 이여행이 쓴 <뉴욕은 뉴욕이다>는 뉴욕의 현재 모습을 일별할 수 있는 간략한 책이다.

좌측 페이지에는 사진이, 우측 페이지에는 사진에 소개된 핫스폿을 설명하는 기본 구성을 취한다.

오랜 세월 뉴욕을 상징했던 브로드웨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 월스트리트(의 황소), 매디슨 스퀘어 가든, 뉴욕타임스, 타임스퀘어, 할렘, 코니 아일랜드, JFK 공항, 리틀 이태리, 뉴욕 증권거래소, 브루클린 다리...

도시는 멈추지 않는다.

뉴욕 역시 9.11 테러의 아픈 기억을 딛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대체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롯해서 과거 열차노선으로 쓰였던 곳을 공중공원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도시 계획에도 귀감이 된 '하이라인', 허드슨 야드에 새로 들어선 거대한 조형물 '베슬'(Vessel), 월가의 명물 황소 앞에 생긴 동상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 9.11 테러 이후 평화를 기원하는 '그라운드 제로' 등이 늘 새로운 "New" York의 이미지를 만든다.

몇 년 전 LA는 다시 갈 일이 있었으나, 뉴욕은 안 간 지 오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눈으로나마 뉴욕에 대한 팬심을 되살려본다.

이민자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도착하던 관문이었던 뉴욕은 이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 되었다. 배트맨의 고담 시 모델은 뉴욕이었고, 뉴욕을 너무나도 사랑한 마틴 스코세이지나 우디 알렌은 경력 대부분의 작품을 뉴욕을 배경으로 찍었고, 폴 오스터는 뉴욕 3부작을 바쳤다. 뮤지컬의 본산 브로드웨이는 여전히 클래식과 신작이 각축전을 벌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꿈꾸며, 운동권의 구호였던 '양키 고 홈'의 양키를 팀 이름으로 한 '뉴욕 양키스'는 MLB 최강의 프로야구팀이다.

뉴욕은 여전히 24시간 지하철이 다니고, 기마경찰이 순찰을 도는 도시다.

뉴욕은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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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흑인 여성들의 한풀이 굿 | 기본 카테고리 2020-11-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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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저/하윤숙 역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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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2019년 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버나딘 에버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부커상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소설은 영국에 정착한 흑인 여성들의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를 12명의 삶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12명의 간략한 인생사가 한 챕터씩을 이루며, 이를 따라가다 보면 영국 흑인 여성들의 거대한 벽화를 완성하게끔 구성되었다. 저자와 가장 닮은 꼴인 앰마를 비롯해서 아마도 주변인들과 그들의 증언을 통해 소환된 많은 인물들이 결합되어 12명의 이름이 명명되었으리라. 대략 150여 년의 시간을 살아내는 12명의 여성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몇 단계를 연결하면 누구와도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여기서 그런 관점이 아니라 각자 개별 서사인 밑그림을 연결해 결국 모두가 주인공인 '우리', 흑인 여성들의 큰 그림을 바라보게끔 하는 의도로 소설을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제1장을 여는 첫 번째 주자 앰마는 야즈의 엄마요, 도미니크의 절친이자 셜리의 친구이기도 하다. 셜리의 가장 성공한 제자가 캐럴이며, 캐럴의 엄마가 버미요 라티샤는 캐럴의 친구다... 이런 식으로 계보를 만들어낼 수 있게끔 이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애당초 원주민은 아니었다. 이들의 선조는 나이지리아,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 바베이도스 등 다양한 지역에서 흘러들어왔고 세대가 바뀌면서 다양한 혼혈이 되었으나 영국 사회에서 언제나 비주류의 입장에서 차별당하고 멸시 속에서 생활을 이어왔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에다, 아직까지 굳건한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야 하고, 게다가 일부는 레즈비언의 성적 취향까지 지녔으니 이들의 인생은 고난과 수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운명의 파트너 은징가를 만나 미국까지 갔지만 결국 그녀의 경악스러운 참모습을 보게 된 도미니크, 10대의 나이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 캐럴, 각기 아빠가 다른 3명의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 라티샤, 생모가 누군지 모르는 퍼넬러피, 세상에 남/녀로만 구분되는 성(性, SEX)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그네'의 삶을 살기로 한 메건/모건...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인생사가 없다. 하지만 이들 12명은 사회의 편견과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생부터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삶을 포기하거나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에 반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본인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당당히 세상에 맞서서 투쟁하고 인생의 열매를 얻어낸다. 소설의 감동은 여기서 온다.

이 소설은 운문 형태를 띠는 산문으로, 문장 부호 사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퓨전 픽션 fusion fiction'이라고 일컫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으로 설명하자면 일종의 산문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흐르는 문장이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이렇게 자유롭게 흘러가는 문체 덕분에 작가는 인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과거와 현재를 쉽게 넘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 옮긴이의 말, P 631

책 읽기에 곤란한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소설의 서사와는 다르기에 익숙하진 않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음식을 비롯한 문화적인 코드도 대부분 생소해서 체감되는 느낌은 덜 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도 과격함에 있어서 정도가 많이 다르고, 기껏해야 성적 소수자란 LGBT 정도 아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분류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작가가 12명의 인물을 창조했다기 보다, 12명의 인물이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글을 통해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흔하지 않은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이 책은 영국에 사는 흑인 여성들의 한풀이 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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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본 밥상 해부 | 기본 카테고리 2020-11-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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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양식의 양식

송원섭,JTBC[양식의 양식] 제작팀 공저
중앙북스(books)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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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광받은 TV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가 방영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예는 적지 않다. 서로 장단점을 보완한다고나 할까. <양식의 양식>은 jtbc에서 8부작으로 방영된 다큐를 책으로 엮었고 담당 CP 송원섭이 대표 저자로 참여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을 말한다"라는 굳건한 명제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먹는 음식은 곧 한국인을 말할 것이다. <양식의 양식>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울푸드 8가지를 통해 '한식에서 건진 미식 인문학'을 표방한다. 우리가 늘 먹고 또 먹는 한식을 통해 그 음식의 유래와 변천사는 물론 해외의 비슷한 음식까지 탐구하는 인문학의 여정을 떠난다. 이런 걸 모른다고 식욕이 감퇴할 리는 없지만, 아는 만큼 더 맛있게 먹을 수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해당 음식을 볼 수도 있으리라.

여기 참가한 대표 선수는 '삼겹살 / 냉면 / 치킨 / 백반 / 국밥 / 불+고기 / 짜장면 / 삭힌 맛' 8종이다. 이중 뭘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는 있을 수 있지만 하루 한 끼라도 이 메뉴들을 피하기란 한국인이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 행복한 여정에는 5명의 패널이 동참하는데 각자 분야가 달라 시너지 효과가 크다.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백종원을 필두로 정재찬(한양대 교수, 문학), 유현준(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채사장(작가), 최강창민(동방신기)이 일용할 양식을 찾아 국내외를 넘나든다.

간략하게 8종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개인적인 소회를 언급하자면,

삼겹살 > 전 세계에서 삼겹살을 그토록 애정하는 민족은 한민족뿐이다. 과거 회식의 영원한 No.1 메뉴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었으나, 요즘은 꼰대 세대의 흘러간 18번이다. 도시락 업계의 스테디셀러는 '제육' 도시락이다.

냉면 > 언제부터인가 미식의 기준은 '평양냉면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느냐'가 되었다. 고기 구워 먹고 후식 냉면 먹는 건 여전히 최고의 호사다. 장안의 유명 냉면집 가격은 1만 원을 훌쩍 넘은지 오래다. 남북정상회담에도 북에서 공수한 냉면이 등장하는 걸 보면 역시 우리 민족은 냉면으로 대동단결!

치킨 > 대한민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한때 은퇴자들이 직장 그만두면 '치킨집이나 해볼까?'하는 섣부른 창업으로 400개가 넘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이 시간에도 피 튀기게 닭을 튀긴다. 우리 선조들은 백숙, 찜닭, 삼계탕 등의 영양식으로 닭을 요리했지만, 다양하게 변형되어 끊임없이 개발되는 치킨의 맛은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고 '치맥 문화'를 탄생시켰다.

백반 > 저렴하면 (가정식) 백반이요 비싸면 한정식이다. 국이나 찌개가 하나 나오고 무한 리필 반찬으로 구성되는 백반은 '상다리가 휘어진다'라는 로망을 탄생시켰고, 한식 부페라는 변종을 낳기도 했다. 밥 한 그릇 먹을 때 도저히 모두 다 젓가락이 가지 않을 만큼의 반찬 수가 분명 자원 낭비인 측면도 있으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남도 한상차림을 먹는 꿈을 꾼다.

국밥 > 이름부터 국밥이 들어가는 소머리 국밥, 장터 국밥, 순대국(밥), 콩나물 국밥, 돼지 국밥, 해장국은 물론 온갖 종류의 탕이 뒤를 받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식으로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 문화는 흔치 않다. 신속하게 '밥 한술' 뜨려는 속전속결의 빨리빨리 유전자와 찰떡궁합이다. 오죽하면 일이 잘 안되었을 때조차 '말아 먹었다'라는 표현을 쓸까!

불+고기 > 춥고 배고팠던 시절, 어른들은 '고기 먹어라'는 말을 온 애정을 담아서 했다. 그만큼 소고기는 귀했다.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지갑이 두둑하고 먹고 살만하다는 의미였다. 현대에도 큰 변화는 없다. 과거에는 양념을 해서 고기를 먹었다면 현재는 양념이 첨가되지 않은 고기 본연의 맛에 더욱 집중하는 쪽으로 트렌드는 바뀌었고, 서구식 스테이크도 당당히 한자리를 꿰찼고 '드라이 에이징'이란 생소한 단어가 자꾸 들린다.

짜장면 > '라떼는 말이야' 짜장면은 졸업식 때나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외식이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중국집은 여전히 어느 4거리에나 건재하다. 고급 중국집도 많이 생겼고, 중식 셰프도 큰 인기를 끌고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짬뽕에 열광한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가사 한마디에 그 노래는 국민가요가 되었다. 정작 중국에서는 '정통 짜장면'을 맛보기 어렵다는, 한국 짜장면은 군대 가서나 해외에 있을 때 '가장'까지는 아니어도 사무치게 그리운 맛이다.

삭힌 맛 > 아직까지 홍어 맛을 잘 모르겠다. 가자미식해도 그렇고.

전 세계 어디나 발효음식의 삭힌 맛은 존재한다는데 아직까지 '삭힌 맛'의 진가를 모르는 난 미식의 하수다.

"양식의 양식" 8부작은 2019년 12월 1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방송되었다. 실제 제작은 훨씬 이전이었을 거고, 해서 코로나를 피해 해외 촬영을 많이 했다. 한식의 뿌리를 찾아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면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 해외를 탐방하면서 많은 제작비를 들인 티가 역력하다. 돼지 바비큐의 성지 미국 멤피스 축제에 참가하고, 스페인에 가서 하몽을 맛보고, 타르타르 스테이크의 정수를 찾기 위해 파리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을 찾는 식이다. 해외여행이 원활하지 않은 요즘, 방송을 보면서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한국인의 밥상'을 일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양식의 양식>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유쾌 상쾌 통쾌하게 읽을 수 있는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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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참맛은 삽질이여! | 기본 카테고리 2020-11-1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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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웰컴 투 삽질여행

서지선 저/안소정 그림
푸른향기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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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로만 책 한 권 분량이 나온다고?"

"응. 나오더라."

"와, 너 이 정도면 파괴왕 아니냐?" - 에필로그, P 260


이제 20대의 끝자락에 들었다는 서지선 작가는 지리와 지도를 좋아하는 여행가로 전공도 여행 맞춤으로 일본학과 문화관광학을 전공했고, 지금까지 24개국 100여 개 이상의 도시를 여행했다.

저자의 두 번째 저서인 <웰컴 투 삽질여행>은 본인이 '삽질'이라고 표현한 여행 에피소드의 연대기다. 아무리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여행, 특히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이라면 계획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출발하기 전 계획과 100% 맞아떨어진다면 '오! 역시 나는 신적인 존재야'라는 만족보다 오히려 '어,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진실한 여행의 재미는 역시 저자의 표현대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삽질에 있다.

여행의 경력만큼이나 삽질의 종류도 다양하고, 경험은 축적된다.

세상의 다양한 화장실을 경험하면서 한국 화장실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재고하고, 몰타의 셰어하우스에서 금이야 옥이야 짱박았던 깍두기가 없어지기도 하고, 개념 없는 가이드를 만나 어이 상실하기도 하고, 비키니 차림으로 스파 바깥에 갇히기도 하고, 와이파이 없는 21세기 여행에서 길치가 돼버리고, 저렴한 숙소에서 베드버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별거 아닌 일로 동행한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삽질은 책 한 권 내내 끝없이 이어진다.

더군다나 동양의 젊은 여성이기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대놓고 인종차별적인 희롱을 하는 개념 없는 인간들도 있고, 실제로 독일에서 백인 노인 남성은 '나쁜 손'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고, 아무래도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의도치 않게 걷게 된 상황에서는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행이 온통 이런 삽질로만 도배된다면 그건 아무리 '멘탈 갑'이라도 힘들 수밖에 없지만, 다니다 보면 의외로 '좋은 삽질'도 만난다. 저자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이탈리안을 오스트리아에서 만나 좋은 숙소와 근사한 식사를 대접받아 인생 최고의 횡재를 하기도 한다. 이 맛에 여행을 하고, 사람들은 귀국해서 짐을 풀자마자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나' 계획을 세우는 중독 단계에 돌입한다.

구글 맵을 찬양하는 서지선은 옛날 배낭족들은 이런 테크놀로지의 도움 없이 어떻게 여행을 했을까 의아해한다. 그 시절에도 넘치는 투지로 가이드북 하나 가지고 유레일패스 끊고 잘 다녔다. :-)

과거 두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역시 가장 선명히 남은 기억은 온전히 내 발로 걸어 다니고 자유여행으로 동선 짜고 다녔던 그 여행이다. 책에 묘사된 많은 삽질들이 중첩되는 것들도 많고... 나 역시 처음엔 동행이 있었으나 대판 싸우기도 했고 결국 사건이 생겨 그는 먼저 귀국길에 오르고 나머지 한 달은 혼자 다녔고 이후의 삽질, 사건 · 사고는 대단했다. 유럽을 돌고 일본을 들러 귀국한다는 원래 계획은 결국 사고가 생겨 일본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삽질이다.

 

여행 에세이고, 지나간 여정에 찍은 사진도 많을 터인데 희한하게도 책에는 사진 하나 없이 온전히 글로만 빽빽이 채워져 있다. 그것도 일반적인 글자체보다는 작은 글씨체로. 이런 편집이 저자의 선택인지 아니면 출판사 푸른향기에서 내는 여행 에세이의 방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사진보다는 삽질, 에피소드, 해프닝으로만 책은 구성되어 있는데, 나이처럼 톡톡 튀는 필체로 책으로 여행을 대신하는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여행에선 '남는 게 사진'이라는 말들을 흔히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찍은 사진조차 잘 들춰보지 않는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유명 관광지, 인증샷 이런 게 아니라 우연한 만남, 작은 환대, 고생한 삽질이다. 이런 여행의 묘미를 일깨우는 발랄한 책이다.

얼마 전 코스트코에 갔다가 기내에서 나눠준 땅콩 브랜드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덜컥 사버렸다.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맘 편히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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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내밀한 하루키를 만나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1-0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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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가오 옌 그림/김난주 역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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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애묘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기겁할 제목의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다지 추억거리가 많지 않은 아버지를 회상하는 99쪽의

짧은 에세이다.

다양한 산문을 출간한 하루키지만 가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글을 모아 가오 옌의 추억 돋는 일러스트와 함께

포켓 사이즈의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아무래도 글의 성격이나 문장의 결이 다른 책과 함께

엮이기는 어려워 독립된 책으로 나왔다는 게 출판의 변이다.

'하루키'가 도서명에 포함된 모든 책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그의 팬들에게는

하루키의 가장 내밀한 속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된다.



사람의 행위에는 대부분 계기가 있고, 목적이 있다.

하루키의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고, 특히 아버지는 꽤 훌륭한 교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외아들인 하루키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다지 살갑지 않아

하루키가 전업작가가 된 이후에는 거의 절연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이십 년 이상 전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대화도 연락도 하지 않는 상태를 지속하다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에야 겨우 얼굴을 마주했다고 한다.

그랬던 하루키가 왜 아버지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암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해변으로 간

에피소드로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와의 추억 여행은 시작된다.

다행히 버려진 그 고양이는 어찌 된 일인지 무라카미 부자보다 빨리

집에 도착해서 부자의 안도감(!)을 이끌어냈다.

무라카미 지아키는 2차 대전 무렵 무려 3번이나 징집되었으나

용케 살아남았고 당시 보고 겪은 일들을 뜨문뜨문

아들 하루키에게 전했다.

그중 중국 병사가 처형된 모습을 목격한

기억은 가장 강렬하게 저장되어 있다.


하루키는 부친의 사망 이후 아버지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듣기도 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자신의 핏줄을 더듬는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치열한 전장으로 보내졌다면,

아니면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하루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지아키는 영화를 좋아해서 아들과도 극장 나들이를 자주 했고,

타이거스 팀이 지면 몹시 언짢아할 정도로 열렬한 한신 타이거스 팬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이쿠를 좋아해서 직접 자작도 많이 한 문학도였다.

어느덧 슬슬 부친이 사망한 나이에 점차 다가가는 하루키는

특유의 무덤덤한 쿨한 어조로 아버지를 추억한다.

어쨌거나 육신의 반은 지아키에게서 왔고,

이 책에서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어머니에 대한 언급도 살짝 보인다.

하루키의 문재(文才)와 야구 사랑은 그냥 뚝 떨어진 건 아닐 거다.

이유 있고 의미 있는 내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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