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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 니코 워커 저 | 문학 2020-08-21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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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체리

니코 워커 저/정윤희 역
도서출판 잔 | 2020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전쟁을 겪어낸 개인의 진실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망설임 있더라도 무시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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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는 성장소설의 맞은편에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은 없다.

그저 하염없이 떨어진다.




2013년 5월.

온라인 뉴스 플랫폼 버즈피드Buzzfeed에 니콜라스 워커라는 남성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한때 이라크에서 250번의 작전을 수행한 참전용사가 연쇄은행강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밀도 있는 글이었다. 기사를 읽은 출판사 관계자가 워커에게 연락을 했고, 수차례의 설득 끝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전적 소설 《체리》가 감옥에서 완성되었다. 



《체리》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스무 살. 충동적으로 입대해 이라크 전쟁에 의료 특기병으로 참전한 주인공 ‘나’는 1년 후 PTSD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라크 파병 전에 이미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확산에 노출되어 있었다. 귀국 후 적절한 정신과 진단도, 치료도 받지 못한 ‘나’는 헤로인에 손을 대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 마약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 은행을 털며 마약중독자로 생을 이어간다.



※오피오이드 확산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는 미국에서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합법적 마약이다. 과다 복용하면 사망할 수 있지만 처방 당시에 소비자에게 위험성 통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헤로인 중독자의 80%는 오피오이드를 통해 마약과 처음 접촉했다. 1999~2017년 사이에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7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got cherry popped'는 동정을 잃었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스무 살 ‘나‘가 이라크에서 보고, 듣고, 한 일들 전부가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헤로인 중독과 트라우마를 얻었다. 어떻게든 평범한 대학생의 삶의 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 절제된 문장 곳곳에 드러난다. 소설 속 ‘나’/니코 워커가 겪어낸 것 중에 내가 진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감정은 그 무력감이었다. 그 외의 것들에 대해 나는 희미하게 느낄 수 있을 뿐, 철저하게 외부인이다. 이 책을 선택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도로로 돌아가자 뒤집힌 차량의 불길이 어느 정도 진압된 상태였다. 견인차가 도로에 난 구멍에 박힌 차량을 빼내려 했고, 여러 사람이 트럭 안에 있는 시신을 보기 위해 여전히 길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상사 하나가 견인차를 안내하면서 소리쳤다. "모두 길에서 비키지 못해.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줄 알아?"


설리번과 나도 길 위에 있었다. 헤이워드의 트럭으로 걸어가는데 설리번이 말했다. "시체 봤어? 허옇게 뼈가 다 보이더라."


작전 기지로 돌아오자 모두가 수송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죽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슈에게 가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슈는 내가 예민하게 군다며 비웃었다. 그는 내가 방금 첫 경험을 한 거라고 말했다.

본문 144쪽.



이미 일어난 일, 터진 일, 당한 일, 했던 일을 ‘과거’라고 부른다.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일 테다.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니코 워커 같은 이들에게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인 진실'이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작가는 국가나 단체가 아닌 개인의 경험을 내세운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나’는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독자에 따라 이 책이 다루는 주제와 꾸밈없고 가차없는 문장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걸 넘어선다면 단숨에 읽히는 몰입도 높은 작품이다. 내 경우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읽어내려갔고, 작가의 감사의 말을 읽고 나서야 몰입에서 깨어났다. 폭력, 죽음, 금단증상, 섹스, 술, 마약을 말할 때 쓴 언어와 태도가 내겐 생소하거나 모욕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내겐 '익숙해진' 것들이다. 《체리》 속 문장을 좀처럼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니코 워커가 작품 활동을 계속할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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