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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울트라 소셜』 서평단 모집 | 새소식 2017-06-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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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소셜

장대익 저
휴머니스트 | 2017년 06월


안녕하세요, 리벼C입니다.
『울트라 소셜』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신청 기간 : ~7월 5일(수) 24:00

모집 인원 : 10명 
발표 : 7월 6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


사피엔스의 가장 강력한 본성, 초사회성
초사회성의 렌즈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는다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며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협력과 배려, 따돌림과 불평등, 테러와 복종 등 인간 사회에는 따뜻함과 잔혹함이 공존한다. 인간 사회에는 왜 이토록 복잡다단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횡단하며 인간을 탐구해 온 장대익은 『울트라 소셜』에서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인간의 강력한 사회성을 ‘초사회성(ultra-sociality)’이라 부르고, 진화생물학, 동물행동학, 영장류학, 뇌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인공지능학 등 최근 30여 년간 수행된 다양한 연구를 망라하며 인간의 초사회성에 관한 증거를 제시한다. 

오직 인간만이 유일한 사회적 동물은 아니다. 사회성에 관해서는 개미와 벌, 침팬지와 보노보 같은 영장류에 관한 연구도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그들 사회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 책은 침팬지와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한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만의 ‘초사회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러한 초사회적 본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인간과 동물을 넘어 초사회성이 품을 수 있는 동심원이 기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미래를 그려 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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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삶을 살기위한 고민의 흔적 | 기본 카테고리 2017-06-2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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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강정인 저
책세상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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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91 5월투쟁과 김은국의 <순교자> 정치죽음진실

강정인 지음 | 책세상

 

[1]

        인생에 있어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의 실체/진실을 이룬다. 생명을 가진 개체에게 죽음은 삶의 종착점이자 완성이라 있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 실존적으로 배태되어 있으며 삶이란 끊임없는 그리고 점진적인 죽음에의 굴복과정이다.”(64)

 

      정치철학서 권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굳이 삶과 죽음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강정인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정치과정이 죽음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한 책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인간이라는 심연>, 성염 2), 인간이 나이가 들어 죽음에 더욱 다가갈수록, 인간의 삶에 진지함이 더해짐에는 누구나 공감할 있을것이다. 저자는 정치권력의 기원에 폭력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잠복해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정치와 죽음과의 밀접한 관계는 현재 대한민국사회라는 현장에서 예외일 없다.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의 대한민국 정치현장에서 진실 죽음관계 또한 헐거워진것으로 표현하는, 이것은 그동안 대한민국 정치 의식과 수준이 향상되어 죽음이미지가 약해졌다는 의미보다는 정치권력이 정치와 관련된 죽음 탈정치화꾀하고 있기때문으로 해석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현대의 정치적 거짓말들은 '원래 비밀이 아닌,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들'다룬다."(144)라고 언급하기도 것처럼, 오늘날 ‘(정치)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거짓말하기는 하나의 국가통치술이 되어가고있다’(145, 주석11)있다. 150수준으로 인간 최초의 정치집단을 상정하고, 이들이 강한 결속력을 가질 있게 한 매개체로서 신화, 이야기,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정치적공동체란 진리가 아니라 합의에의해 결속력이 유지된다’(166)언급한 셸던 월린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있다.  

 

      크게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책에서는 우선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1987 6월 항쟁에 비해 종종 망각된 1991 5월투쟁을 시작으로 정치와 죽음과의 관계를 고찰한다. 91 5월투쟁은  시위도중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군이 전경들의 구타에 숨지는 사건으로 촉발된다.  그리고 박승희를 비롯하여 이어지는 청년들의 분신으로 사태가 더욱 심각해져가는 상황에서 검찰의 주도하에 꾸며진 김기설 유서대필논쟁/사건김지하,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의 자살방조배후설’, 그리고 정원식총리 서리의 봉변사건등의 사태로 인하여 당시 운동권세력이 와해되어버린 투쟁이다.

 

      저자 강정인 교수는 현상적으로 실패한’ 91 5월투쟁이 안목에서 실패한 투쟁이 아니라  87 6월항쟁 이후에도 지속된 반민중적반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행위였음을 주지하고 있다. 특히 책에언급된 91 5월투쟁의 소멸에 사회지도층(검찰, 김지하, 박홍 신부)   보수언론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있었는지를 있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사례로 있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저술한 <사법부>에서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민낯을 공개하고 있는데, 책의  말미에보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함과 동시에 김기설 유서대필사건대한 간략한 평가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한홍구 교수는 사건을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규정하며, ‘과거에는 정권핵심이나 안기부가 기획한 사건을 검찰이 법률적으로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면 이제는 검찰이 전면에 나서서 정권의 위기를 돌파했다라고 사건의 본질을 전하고 있다. 사건은  검찰이 권력의 하인/머슴 역할을 자처사례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김기설 유서대필사건한국판 드레퓌스사건으로 규정되는 것도 수긍할만한 해석이라 있다.


[2] 

     5월투쟁이 넓은 의미의 정치적 개념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사 창조에 개입, 참여함으로써 공동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활동과정에서 본질적으로잠복해 있는 죽음 진실관계를 풀어나갔다면, 번째 부분에서는 정치와 종교적 진실사이의 관계로 관심을 제한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미교포작가 김은국이 1964출간한 소설  <순교자 The Martyred>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소설은 ‘6.25전쟁으로 많이 통용되는 한국전쟁배경으로하여,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희생된 12명의 목사에 관한 진실을 중심으로 다루고있다. 번째 장은 개인적으로 이번 독서에서 상당히 흥미를 갖게된 부분인데, 작가의 소설 이전에 작가 김은국에 관한 관심 때문이다.

 

      김은국 작가는 대학에 입학한지 달만에 한국전쟁’(1950)발발하여, 자원 군입대한  55년까지 복무하다가 도미하여 역사학과 정치학을 공부한다. 학사를 졸업하고 작가워크숍등록, 글쓰기 훈련을 보다 본격적으로하며, 자신의 번째 소설이자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순교자>발표하면서, 영문학과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대학생시절 인상깊게 읽고 좋아했던 인류학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번역한 장본인이 바로 김은국 작가였다는 사실, 나아가 이범선의 <오발탄>영역했다는 사실도 작가를 다시 보게한 계기가 되었다.

 

     <순교자>에서 재확인 할 있는 점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구분한 가지 진실-합리적진리사실적진실-중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쉽게 왜곡이 가능한 사실적진실취약성이었다. 점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정치공학적 전략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기도하다. 이러한 실례는 앞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규정했던 김기설 유서대필사건’에서 다시 떠올려볼 있다강정인 교수는 <순교자>에서 드러나는 사실적 진실왜곡 문제와 1장에서 언급한 김기설 유서대필사건연결지으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거짓말하기는 전쟁때나 혁명기 뿐만아니라 정권의 정당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집권세력이 이른바 국면전환위해 흔히 사용하는 국가통치술이 되어가고 있다.”(145)

      우리가 좀더 실감할 있는 예로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등장할 있었던 ,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있었던 것을 상기해볼 있다. 이러한 실례들은 집단으로서의 정치적 공동체가 분명한 진리보다는 합의에 의해 결속력이 유지된다월린의 지적을 돌이켜볼 수긍할 있는 사례이다. 집단,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결속이 허구로서의 신화에 의존한다는 통찰은 강정인 교수의 <순교자> 분석을 통해 보다 주의깊게 들여다볼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3]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는 내용은 미국 반전(反戰)영화관한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미국의 반전영화가 과연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서구의 동일자중심의세계관과 이를 착실히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의 서구중심주의지적하고있다. 장에서 다루고 있는 미국의 반전영화 <디어헌터>, <플래툰>, <지옥의묵시록>, <7 4일생> 등은 내가 학창시절에 인상깊게 보았던 영화인데, 저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서구중심주의시각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주로 베트남전과 관련하여 등장한 반전영화들이 사실은 미국인(주로 백인)인명피해에만 주로 관심을 갖고 있을 , 베트남인들은 미국의 아들 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미개인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보다 정제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미국 반전영화의 베트남인들은 미국인 영화관람자의 지배적 의식속에서 비인간화(타자화) 되어버린다.”(190)

      미국 반전영화에서 드러나는 시각은 과거에 제작된 카우보이영화시각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미국역사의 주체는 백인 이민자들로서  규정되고 있으며, 저자가 아메리카인디언으로 부르는 미국 원주민들은 미국사의 객체나 배경으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반전영화도 람보시리즈와 다름없이 서부활극다름아니다.

미국의 반전영화는 전쟁동기의 타당성이 아닌 수행방식의 타당성에 의거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있다. 또한 전쟁방식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상대방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피해만을 고려한 결과로, 집단 이기주의를 드러낼 뿐이다.”(192)

 

점에서 미국의 반전운동은 일관성있는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원칙론적 반전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중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있는 최대공약수로서의 우리의 피해방지호소하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였다. 결국 이러한 반전운동이 대중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어떤 면에서는 성공보다도 중요한 반전의 윤리적, 원칙적 의미는 퇴색하게 되었고, 집단이기주의의 형태인 공리주의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196)     

      이러한 시각은 최근 유럽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테러사건들에서도 확인할 있다. 다시말해 서방국가의 무고한 시민들이 겪은 희생에는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비서방국가들의 시민들이 겪는 희생에 우리는 동일한 애도를 보였는지 자문해볼 있다. 과연 그런가? 미국의  2001 9·11사건이후, 미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 대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수년 드러나 언론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서로 융합되는(melting pot)아니라 여전히 백인들만의 왕국이었음은 저자가 언급한 반전영화의 사례로 다시금 확인할 있다.

 

      책의 군데에서 저자가 본인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단정적인 표현들은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갖게하는 표현들이 간혹 나온다. 이런 부분은 자신감의 발로일 수는 있지만, 동일한 대상에 대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바라보고 결론을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들은 미미하지만 지적해볼 수 있겠다. 이런 가지 점들을 제외하면 미국의 반전영화를 중심으로 우리 안의 서구중심적 가치관지적하고 있는 3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 걸프전으로 불리는 미국-이라크전당시 학생으로서 나는 부끄럽지만 미국의 첨단무기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는상당히 열중했던 일을 상기해 본다. 이번 독서는 어린 나에게 이미 내면화되어있던 강자의 세계관안으로부터 꺼내어 살펴보게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저자가 베트남전쟁과 걸프전에 대해 미국내 반응이 정반대였던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을 던지는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분명히 뚜렷한 명분을 갖지 못하고, 밀림에서 보이지 않는적을 제거해야 했베트남전과는 달리 걸프전에서는 버튼 하나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첨단무기의 실험장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모호한 주적을 대상으로베트남전과는 달리 걸프전에는 후세인이라는 분명한 미국의()상정되어 있던 점도 무시할 없다고 본다. 말하자면 걸프전의 경우는 보다 컴퓨터게임적인 요소가 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후세인은 게임에서 물리쳐 제거해야하는 난이도 높은 으로서 드러나고, 전쟁을 질질끌면서 미국의 아들딸들의 희생을 증가시키는 보다는 백악관에서 버튼 하나로 미군의 희생을 최소로하면서 단기간에 전쟁을 끌어나갈있었던 것도 반전(反戰)여론의 반전(反轉)현상에 영향을 것으로 이해할 있다. 걸프전은 게임적요소로서 화면을 통해 재구성되는진실은 베트남전과는 달리 피해자(희생자)들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희생자들의 고통에 더욱 둔감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세력은 베트남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인다. 베트남전쟁을통해 배운 교훈을 다양한 각도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에게 비춰지는 미국의 모습은 걸프전 이후 미국내 전쟁에 대한 여론이 진실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가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미국의 정치세력이 주력하는 바는 구성원들의 비판적 기능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으로 진리/진실’ – ‘정치’ – ‘죽음상호관계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책을 읽으며 메모해둔 것들, 책을 덮고 옆길로 새며 끄적거렸던 나의 생각들을 모아보았다. 저자의 여러 학술논문을 다듬고 정리한 책은 정치철학서로서 이해할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찰하지 않는 삶은 무가치하다라고까지 언급했던 플라톤의 통찰처럼 책은 참다운살기 위한 통찰을 주고. 삶의 대척점을 이루는 죽음은 책의 전체를 통해 언급되고 있으며, 죽음우리에게 삶을 제대로 살도록 절실하게 요구한다. ‘참다운대한 기준은 매우 개별적일 것이다. ‘죽음각자에게 매우 개별적인 현상인 것처럼 말이다. 중세 판화가이자 화가였던 알프레드 뒤러의 그림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지도(화가 홀데인의 그림 버전)숨어있는 두개골(죽음)이미지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죽음문제는 인류생존의 문제와 떨어질 없는 본질적인 인간의 조건이기도하. 나는 책을 저자의 참다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흔적이라고 하겠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정치세계에서 진리/진실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듯하다.’(8)라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초래되는 죽음왜곡된 진실앞에서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진실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동인은 죽음염두해둔 참다운대한 욕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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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 기본 카테고리 2017-06-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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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타자와 욕망

문성원 저
현암사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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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욕망>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읽기와 쓰기

문성원 지음 | 현암사

 

 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어려울 것일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해본 없는 사고의 근육 써야하기에 서투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동시에 삶의 경험치가 늘어나면서 과거에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수긍할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늘어난다. 철학도 마찬가지 것이다. 우리의 삶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나의 보잘것 없음을 느낌과 동시에 내게 익숙하지 않은 철학서를 만나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 덤덤함이 생기는 것은 분명 나에게만 해당하는 점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읽게 <타자와 욕망> 다르지 않은 것같다. 책이 다루는 책은 나에게도 생소한 에마뉘엘 레비나스라는 철학자의 1961 출간 서적이며 그의 번째 주저라고 불리는 <전체성과 무한>이다.  그리고 저자인 문성원 교수 또한 레비나스의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레비나스의 원전을 읽고 저자의 관점에서 이해한 레비나스 것이므로 <타자의 욕망> 또한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을 있겠다. 너무 기대와 조바심은 잠시 제쳐두고 레비나스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선 궁금해진다. 인간이란 무릇 어느 특정 장소와 시기에 살았던 배경이라는 맥락을 제외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선 레비나스의 삶을 간단히 따라가본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1906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집안(책방 운영)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10 후반인 1923년에 가족을 떠나 프랑스에서 철학공부(프랑스 철학, 후설의 현상학 ) 시작하게 되는데, 20세가 되는 1926 평생의 친구가 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모리스 블랑쇼를 만나게 된다. 70년에 가까운 지기를, 그것도 친구가 모두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거목을 오랜 친구로 지낸다는 것만 해도 크나큰 자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레비나스는 1928 독일로 가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강의를 직접 듣게 된다. 철학의 거장은 레비나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라고 하며, 특히 하이데거는 레비나스에게 있어 거대한 존재이자 넘어야할 산이었다. 그만큼 평생을 하이데거의 영향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유학시절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레비나스는 1933 프랑스 군인으로 2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한다. 포로가 되어 수용소 생활을 하게 레비나스는 이후 전쟁을 통해 살아남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투아니아에 있던 남동생을 비롯한 가족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만다. 레비나스에게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고 지녀야만 했을 깊은 상처였을 것이다.

 

나의 삶에 대한 기록은 나치 공포에 대한 예감과 그에 대한 기억이 지배한다.”(29)

레비나스의 말을 살펴보더라도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충격과 두려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리는 타자에 응답해야 한다. 응답해야 함이 우리의 책임을 이룬다.”(28)

라는 그의 말은 어쩌면 우리에게, 나아가 인류에게 절실히 요청하는 레비나스의 강렬한 호소이자 부름이 아니었을까?

     레비나스의 저서에 대한 문성원 교수의 책만을 통독하고 레비나스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 위험한 일인 것을 안다. 하지만 레비나스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그의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은 또한 얼마나 다양한 오독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신중하면서도 결국 스스로 나아가야하기에 대상을 제한하여 시도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타자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28)

     나는 문장이 레비나스 철학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전제가 되지 않을까 감히생각해본다.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인정과 인식은 평범한 인간에게 하나의 크나큰 사건일 있을 것이다. 결국 서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에서도 결국 이웃’, 타자 나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레비나스는 그러한 서양 사상의 맥락에서 나와 타자의 접점(만남) 매개로 우리의 삶이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일게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자 응답해야 한다. 응답해야 함이 우리의 책임을 이룬다.”(28)라는 레비나스의 언급은 어쩌면 우리에게, 나아가 인류에게 절실히 요청하는 레비나스의 호소이자 부름일 것이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타자 나와 동일한 차원에 있지 않은 오히려 연약하고 헐벗은 ’(32)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성원 교수는 연약하고 헐벗은 원형으로서 예수를 언급하기도 한다. 바로 서양 사상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레비나스의 경우, 그는 20세기 초에 태어나 20세기 말에 사망하여, 20세기의 수많은 비극을 몸소 겪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에게 20세기 전반의 시기가 갖는 의미는 지대하다. 나치의 시대를 관통한 잔혹의 시기를 목도하고 경험한 레비나스가 타자 동일자 대해 우위와 우선성을 강조한 이유는 충분히 수긍할 있을 같다.

     동일자를 우선시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경향이 동일자적 내부에서는 가혹한 경쟁을, 동일자 외부에 대해서는 동일화에 따른 복속 아니면 배제와 제거라는 폭압을 낳았다는 것이다.”(34)    

     우수한 아리안들만의 국가 건설하려했던 나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집단의 전체주의적 특성과 타자 유대인에 대한 학살도 설명해줄 있는 진술이다. 레비나스에겐 아마도 남동생을 포함한 자신의 가족이 나치에게 할살당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절실히 묻고 대답을 구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인 문성원 교수는 이에 레비나르스를 읽을 놓쳐서는 안될 초점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타인을 살해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가했던 20세기의 비극적 상황, 거기에 대해 하이데거의 철학을 위시한 당시까지의 철학이 무력하고 무책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레비나스는 이유가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인간의 얼굴 대한 외면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53)

     레비나스는 인간의 얼굴을하고 호소하는 타자에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당면과제이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윤리 존재 우선하는 1원리로 삼는다고 이해해볼 있다. 달리말하면 문성원 교수의 표현대로 레비나스의 철학은 자아중심적 한계성(동일자의 확장 욕구) 벗어나 타자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이해할 있겠다. 좀더 순화하여 표현해보면 우리는 어떻게 남과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윤리 레비나스는 중심 화두로 삼고 있다. 레비나스에게 윤리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며, 타자와의 관계는 모든 이해(理解) 해석에 우선하는원리가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레비나스에게 윤리 시대적 명령이자 호소였을 것이다. ‘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비롯되고 의미를 가질 터인데, 이는 저자가 레비나스 철학의 고유한 특색으로 낯섦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 언급하는 근거가 된다고 있다. 이는 이성에 기반한 인식 이전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감성(감수성) 우위에 두는 인식이 먼저가 아니라 반응이 먼저다.”(28)라고 하는 표현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영화 샤인 Shine’에서 보이는 타자’, ‘환대’, 그리고 동일자의 확장

     며칠 국내에 개봉한 20년이 영화 샤인 어느 극장에서 다시 보면서 레비나스 철학의 기본 개념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영화는 오스트리아의 어느 구역에 살았던 유대인 가족(헬프갓 가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다음에 일은 우승하는 일이다.라는 신념에 가까운 고집으로 아들 데이비드의 피아노를 가르치는 아버지 피터는 레비나스가 사용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동일자의 확장 꾀하는 존재이다. 피터의 이러한 고집은 영화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유럽에 사는 20세기 초의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그림자와 이로부터 생존한 정황을 암시하고 있다. 고집스러운 아버지의 신념과 절박한 생존본능 그리고 음악을 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오랜 결핍으로 인한 욕망을 아들에게 폭력적으로 투사하면서 문제는 생겨난다. 자신의 욕망을 아들에게 투사하며 유지되는 아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는 동일자를 우선시하는 역학관계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인공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아들에게 결국 동일화에 대한 복속을 강요하며, 이에 따르지 않고 런던의 영국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가버린 아들에 대한 배제와 제거의 기작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다. 틈날 때마다 자신만큼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없음을 주지시키는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명목상 안정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안전지대 놓이지 못한 아들(타자)’에게 동일자의 폭력은 아들에게 있어 죄책감과 수치심을 평생토록 유발하며 트라우마를 남긴다. 우리 사회의 인간 관계, 특히 안락하게 보이는 가족이라는 제도와 테두리 속에서 유지되는 건강하지 못한 인간관계가 있는 파괴적인 결과의 모습을 찾아볼 있을것이다.

안정과 안락을 위해 쳐진 테두리들이 배타적인 것으로 공고해질 동일자의 폭력은 일반적인 것이 된다.”(36)     

   책의 저자인 문성원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 또는 예방할 있는 윤리로서 환대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환대에 대해 칸트가 사용한 조건적, 계산적 환대 비해 레비나스의 환대 무조건적 환대임을 구분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나는 타자가 이방인이고 헐벗은 자이기에 호소에 응답하여 타자를 환대할 따름이다.’(37)라는 것이다. 20세기의 가운데서 인간성의 극적인 스펙트럼을 목격한 철학자로서 레비나스의 생애를 책을 통해 이해하고나니, 이런 무조건적인 환대의 호소를 조금은 수긍하게 된다.

     영화 샤인에서 아버지라는 울타리로부터 배제된 주인공 데이비드는 정신병원에서 일정기간 보낸 병원에 방문한 과거 데이비드의 팬의 도움으로 병원을 나오게 된다. 어느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다가 들어간 레스토랑으로부터 받은 환대 데이비드에게 새로운 삶을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데이비드를 옆에서 돌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데이비드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간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은 어떤 점에서 보면 무조건적인 환대 행위를 실천한 사람들이 아닌가. 데이비드가 중년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되고, 다시 재기하여 연주무대에 서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동을 주는 같다. 있을 법하지 않은 실화에 바탕을 타자에게 마음이 따뜻한 이들이 제공한 무조건적인 환대 새로운 사람의 삶을 꽃피게 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돌아볼 , 있을 법하지 않은 환대행위가 가능했다는 데에 더욱 감명을 받게 되었다. 

 

책을 덮으며

    문성원 교수의 <타자와 욕망> 읽으며 처음으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에 조금 가까워진 같다. 책을 읽으며 순간 순간 들었던 느낌과 불안정한 나의 이해를 다시 돌이켜보면, 레비나스의 철학은 자아중심적 한계성(동일자의 확장 욕구)’ 벗어나 타자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이해할 있다. 달리 표현해보면 레비나스의 철학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남과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윤리 고찰하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도덕이라고 하는 것과 구분지어 타자와의 관계에서 고려되는 윤리 전통적인 철학에서 중요시되는 존재론 앞선다는 것이다.

윤리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인데, 타자와의 관계는 모든 이해(理解) 해석에 우선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레비나스에게 있어 윤리 시대적 명령이자 호소였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피할 없는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달리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 우리에게 호소한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라는 존재가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비롯되고, 여기에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다시 분명히 일깨워주는 철학이다. 내가 이해한 바가 틀리지 않다면 문성원 교수도 책에서 레비나스 철학의 고유한 특색으로서 낯섦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 언급하는 대목이 바로 점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책을 다시 덮으며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지나쳐버린 페이지의 문구를 다시 음미하면서 마무리하겠다. 우리의 삶이 신자유주의적인 맥락에서 더욱 공고히 파편화, 원자화되어가는 지금, 각자의 가슴에 심어볼 만한 씨앗으로서 레비나스의 호소를 기억해둘만하지 않을까.

  

우리가 알고 가진 것이

바깥의 무한과 닿아 있음을 깨닫고

타자성과 외재성에 귀를 기울이는 욕망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욕망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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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음에 대한 새로운 발견 [1부] | 기본 카테고리 2017-06-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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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정낙림 저
책세상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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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 호모 루덴스를 위한 철학사

정낙림 지음 | 책세상

 

 

우리 인간에게 놀이 본질적인 특성일까? 나는 놀이하는 인간 의미를 담고 있는 호모 루덴스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책을 집어들며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지난 신문을 보니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독일 연구소의 연구팀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보다 무려 10만년이나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의 뼈를 모로코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직립인으로 이해되는 호모 사피엔스는 발로 무게 중심을 잡고 걸어다니며 손의 자유를 얻었으며, 엄지의 독특한 구조로 도구를 단단히 잡고, 섬세한 가공을 있는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다시말하면 지난 주에 발표된 연구결과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놀이 그토록 오래된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따라온다. 이번에 만나게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읽으며 책에 또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놀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였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 정낙림 박사는 놀이라는 의외의 주제에 관심을 두게 것이 학위 지도교수의 영향이라 밝히고 있다. 오랜시간 놀이라는 주제에 대해 천착해왔고, 니체의 저서 제목과 유사한 지도교수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통해 니체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 하나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언급하며,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과의 인연을 밝히고 있다. 책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놀이 대한 태도 내지는 관점에 대한 치밀한 논의를 시작으로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의 긍정적인(것으로 해석되는) ‘놀이 대한 입장과 달리 놀이 대해 다소 부정적, 제한적인 견해를 갖고 있음을 소개한다. 나아가 근대 사유에 영향을 사람들인 칸트와 실러가 놀이 수단적인 가치로 보는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니체와 하이데거가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