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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 이야기] ‘이혼 과정을 따라가며 생각해보는 결혼의 의미’ | 기본 카테고리 2019-12-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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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감독) 노아 바움벡 (Noah Baumbach)

(주연) 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 애덤 드라이버 (Adam Driver)




 이혼 과정을 따라가며 생각해보는 결혼의 의미


개인적으로 영화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배우 애덤 드라이버 때문에 선택한 영화였다. 그는 대작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편과 <프란시스 >, <인사이드 르윈>등의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눈길을 붙들었던 영화는 2016 개봉작 <패터슨>이었다. 뉴저지 출신의 의사이자 이미지즘 시인이었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의 고향이면서 동시에 시집의 이름이기도 했던 패터슨 제목으로 했던 영화였다. 영화에서 애덤은 무뚝뚝하지만 감성 충만한 시내버스 운전사이지만 그는 아마추어 시인으로 등장했다. 영화에서 주목한 그의 연기는 잔잔하지만 남자의 감성과 미묘한 심리를 드러냈던 연기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보게 <결혼 이야기> 역시 스칼렛 요한슨(니콜 ) 더불어 애덤 드라이버(찰리 ) 섬세하고 미묘한 부부의 심리연기는 전작들( 것은 아니지만)보다 마음에 들었다. 스칼렛 요한슨도 연기력이 있는 배우인데 <루시> 같은 영화에서 다소 어울리지 않았던 기억 때문인지 사실 이번 영화에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연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이번에 영화 <결혼 이야기> 이야기는 뉴욕에 거주하는 극단 감독과 연극배우 부부의 이혼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통속적이고 흔한 소재가 사랑과 결혼에 관한 것이다. 노아 바움벡 감독은 흔하디 흔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볼거리, 생각거리를 만들어내는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영화 커플은 이혼하기로 상의했지만 실제로 이혼절차에 들어가게 되자 각각 변호사를 통해 양육권 분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분쟁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양육권에 대한 사안이었다. 뉴욕에 기반을 두고 지난 10 살았던 찰리와 니콜 부부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애틋함과 존중의 마음이 자신의 강한 존재감 혹은 자의식과 충돌하고 있다. 사람이 각각 변호사를 선임하자 이혼 조정이 시작된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모든 일이 맡겨진 다음에 사건은 상대방 흠집내기와 인신공격성 난타전으로 전개되어 버린다. 사람은 상황에 대해 당혹감과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니콜 입장에서는 가족의 일원만이 아니라 명의 배우로서 가정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이혼이었다. 그러나 이혼 분쟁의 양상이 점점 격한 상대 공격으로 나아갔고, 부모는 사이에서 아이가 스트레스로 지쳐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LA에서 태어난 니콜에게는 이곳이 삶의 터전이었다. LA에서 TV프로그램 배역을 제안 받은 니콜은 LA 아들과 함께 와서 살기 시작한다. 찰리는 뉴욕의 극단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대륙의 반대쪽 끝에 있는 LA사이를 오가며 이혼문제와 아이 문제를 감당해야 했다. 이혼과정은 부부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버거운 일의 연속이었다. 영화는 상대방에 대한 가정폭력이나 불륜 등의 이유로 이혼하는 사례가 아닌 어쩌면 싱거워보이는 사유일 있다. 하지만 자아 시대에 자신의 삶과 의미 되찾고 싶어하는 니콜의 욕구는 그동안 가정에서 남편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맞춰주는 방식과 양립할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서로에게 익숙해져버린 삶의 패턴을 니콜과 찰리가 깨닫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도 사람이 이따금씩 만나 이야기하며 바라보던 눈길과 니콜이 찰리의 머리를 깎아주는 장면이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면서도 언어로 투명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니콜에게는 남편에 대한 애틋함과 자신의 길을 가고싶어하는 욕구가 충돌하고 있었지만, 남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가위로 머리카락을 깎아주는 행위를 통해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장면은 톨스토이(1828-1910)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 마지막 부분에서 안나와 버금가는 주인공 레빈과 키티가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서 레빈과 안나는 톨스토이의 다른 자아에 대응한다. 그만큼 레빈은 소설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 축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소설 내에서 만나는 장면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다른 자아를 꺼내어 인생의 면모,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보려 것은 아니었을까. 한편 이런 중심인물 레빈과 키티의 가정은 행복해보인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과 찰리 부부의 이혼 과정에서 보여주는 가족의 현실적인 모습은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레빈이 아내와 키티와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레빈은 소설 마지막에서 (톨스토이의 분신과도 같이) 인생의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를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말해주고 싶어한다. 참고로 소설에서 레빈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이란 무엇이고, ‘나와 (하나님) 양립이 가능할까?’ 같은 종교의 문제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란 무엇일까 등등을 고민했던 것이다. 레빈이 얻은 삶의 교훈, 자신이 가치있다고 믿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와 나누고자 하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언급하는 감정 모방 굳이 꺼내지 않아도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진행이다. 어쨌든 레빈이 아내 키티에게 전하고자 했던 자신의 깨달음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결심한 것은 키티가 레빈에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부탁을 하는 장면에서였다. 키티는 아이의 엄마로서 레빈에게 아들의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는지 알아봐달라 부탁했던 것이다. 아내는 현실적인, 바로 지금의 문제에 충실할 뿐이었다. 아내의 현실적인 문제는 레빈의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에 우선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문학평론가에게는 안나 카레니나 장면이 어떤 의미로 분석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점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인류의 결혼 제도 속에서 그나마 가느다란 행복의 실을 붙드는 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공상가인 남자들과 현실적인 여자들이 가정이라는 기만(서평가 로쟈 이현우의 언급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진리 앞에서 가정과 예술은 기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에서  평화롭게 있는 지점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남편과 아내는 각각 다른 세계에서 사는 개별 인간들이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에서 나아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아래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바로 모든 결혼은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시각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상대방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지켜주는 , 그리고 각자의 세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과 같은 방법들 말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알랭 보통이 결혼이란 주제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남겨 놓은 것처럼, 서로가 상대방에게 배려하는 행위를 하며 노력하는 것이 가느다란 행복의 찾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믿는 진실은 상대방의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할까. 물론 생각은 살다 보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일단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므로 결혼생활의 지속성은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사는 커플이 만날 있는 접점을 찾기 위해 함께 탐색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영화 <결혼 이야기> 돌아오면, 영화에서 묘사하는 이혼 과정의 모습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세상에는 영화나 소설보다 더욱 극적인 이혼 소송 사례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 상황 설정은 어떤 양극단의 사례보다 지극히 담백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히려 영화에서 이혼하는 커플의 마음 속에 떠오를만한 다양한 심리의 양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상황은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꺼지지 않았음에도 이혼해야하는 현실에서 이들에 대한 판단은 쉽게 내릴 없을 것이지만 결국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길고 지난한 삶과 이혼의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을 만한 삶의 장면들이 스냅사진처럼 스쳐간다. 영화는 안나 카레니나 문장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표현처럼 무한한 삶의 양태 중에서 단면을 담담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오래된 혹은 낡은 주제를 이렇게 다시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을 있는 것은 누구나 공유할 있는 삶의 모습들을 발견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백 수천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어온 무엇말이다. 어쩌면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삶의 진실은 톨스토이가 평생 강박적으로 천착했던 주제인 죽음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톨스토이에게 죽음이란 절대 진리앞에 모든 것은 기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류라는 가련한 존재들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 대한 인식(메멘토 모리) 통해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지켜주는 , 그리고 현실에 충실한 삶에 집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톨스토이나 영화는 반복되어온 삶의 진실을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속에서 끄집어 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혼 각자의 삶을 사는 찰리와 니콜이 다음 할로윈 시즌에 다시 만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비춰준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혼 조정에서 니콜의 변호사는 양육시간 비율을 니콜에게 유리한 55: 45 확정했다고 스스로 내세우지만 니콜에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니콜이 아이와 놀아주게 되어있는 다음 , 니콜은 찰리에게 아이와 놀아주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돌아서는 찰리의 운동화 끈이 풀어진 것을 니콜이 되돌아가 끈을 묶어주는 장면은 바로 지금 순간의 삶을 통해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혼을 이룬 가정이란 어쩌면 서로가 다른 세계에 속한 외계인들에게 각자의 세계에 이따금씩 머물 공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없어질 없는 투명한 벽을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회피하기 때문에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가정의 커플이 영화 니콜과 찰리의 마지막 모습처럼 서로가 교감하는 접점의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찰리라면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날 니콜이 머리카락을 깍아줄 느꼈던 손길과 온기, 니콜이 자세를 낮춰 운동화끈을 묶어줄 맡았던 향수가 떠오를 같다. 톨스토이가 만약 결혼 생활의 99% 불행하다고 단언했다고 상상해본다면, 내게는 그렇지 않은 1% 있었다라고 말할 있지 않을까.    




안나 카레니나 세트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문학동네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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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하나의 숨‘ -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 사는 ‘작은 삶들’의 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19-12-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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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창작과 비평 (계간) : 186호 (2019년 겨울)

창작과비평사편집부 편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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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조해진 지음 | [창작과 비평 겨울호(186)]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 사는 작은 삶들 이야기

 


소설의 화자는 특성화고에서 기간제 영어 교사로 일하는 최씨 성을 가진 여선생이다. 소설은 화자가 계약갱신 2개월을 남겨놓고 직장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후부터 시작한다. 기간제교사로서 매년 재계약을 해야만했던 화자는 이번에 해고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을 기대하고 있는 기현이란 이름의 남자 친구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공장에 취직한 은하나라는 이름의 여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하나는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어두컴컴하고 외로운 시골길을 걸어가며 전화기를 통해 다짜고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담임 선생인 화자는 하나에게 남의 받는 원래 쉽지 않아. 그건 남들도 똑같아라며 인내하고 견디라는 말만을 해줄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하고 기억해낼 있지만, 사실 이런 대답은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현대인의 선언이기도 하다. ‘너의 삶은 나와 무관하다는 ’,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순간을 손쉽게 기억해낼 있을 것이다.  현대 문명이 고안해낸 발명품 중에는 바로 타인의 삶에 공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개인이 있다는 생각마저 해본 적이 있다.

 

소설의 화자는 남자 친구의 어머니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저녁을 함께하는데, 공장에서 다친 하나에 대해 자신이 하나에게 했던 말과 닮은 말을 예비 시어머니로부터 듣게된다. 예비 시어머니는 10 시절 성수동의 편직물 공장에서 여공(일명 시다)으로 하루 15시간 고되게 일했던 경험이 있다. 예비 시어머니는 70 대에 많았던 여공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오야지라고 불리는 공장의 권력(주로 남자 상사)으로부터 욕설과 폭언, 폭력을 당하면서도 안오는 약을 먹으며 일해야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법정기준 근무시간의 거의 배에 달하는 강도로 일하던 시대의 희생자들이었다. 여성들의 고단한 삶은 형태를 달리해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젊은 세대인 하나의 추락 사건에 대해 요새 젊은이들은 상황이 과거에 비해 좋아졌는데도 공장에서 일하기 싫어한다 평을 내리고 있다. 화자는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 안의 모든 것이 출렁이는느낌과 함께 묘한 기시감 느끼게 된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희생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 이들 각자의 고통은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화되고 고립되어 있다. 하나의 사고에 대해 담임 선생인 화자와 예비 시어머니 모두 일종의 방관자가 수밖에 없는 무력한 현대인들이다.

 

화자는 사회가 부과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결혼이라는 굴레 때문이다.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된 같지는 않아 보인다. 화자가 남자 친구 예비 시어머니와 저녁을 함께한 자리에서 예비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결혼 준비 이야기를 듣게된다. 결혼 당사자인 화자와 남자 친구는 결혼식의 들러리처럼 배제되어 있다. 그런데 화자는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결정해야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IMF 여파를 겪어낸 대한민국호는 대다수의 탑승자 들의 삶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전통적인 관례상 남성들이 벌어오는 수입만으로 가정과 자녀를 키우기 힘들어진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여성들의 수익창출활동이 당연시 되고 있다. 화자는 비혼주의자도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기를 바라는 독립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직장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상태다. 그대신 수원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의 영어 교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정교사가 되려면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암시를 실감한다. 일종의 관행으로서 이년치 연봉을 내야한다는 사회의 부조리와 마주하는 것이다. 화자는 사회가 강제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며 선택을 요구받는다.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나마 머뭇거릴 여유마저 빼앗아버린 듯하다. 결국 화자의 인간적인 관계맺기 역시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 역시 흔히 보아온 결별의 모습과는 다르다. 마치 컴퓨터에 저장해둔 오래된 사진 파일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서히 서로의 존재를 잊으며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헤어짐을 슬퍼하고 때로는 애도하는 것마저 이들에게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단편 소설 하나의 에는 다양한 인물들(여성들) 겪어야만 하는 현실이 위에 새겨진 십계명처럼 공고히 드러난다. 하나가 마주한 현실은 어떤가. 하나는 공장에서 추락하기 전날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하나가 속한 부서의 팀장이 보여준 반응은 사회적 약자가 감내해야만 하는 다른 현실을 드러내준다. 팀장은 고등학생일 뿐인 하나에게 공장에서 일할 거면 미리 운동해서 길러놓지 않고 뭐했는냐, 살이 근육이면 내가 일을 안주겠냐, 가방끈 짧은 애들이 자기 관리도 못한다 으름짱을 놓고, 모욕감을 주고 있다. 이런 반응은 내가 경험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으며 이를 매우 실감나게 묘사한다. 팀장의 말은 특히 경제적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비인간화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우선 인격이 거세된 불모의 구성원들이다. 하나의 팀장이 보인 반응은 경찰이나 군인들을 뽑는 과정에서 남녀 모두 동일한 체력기준을 강요해야한다는 인터뷰를 실은 뉴스를 떠올리게 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인간으로서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성숙도가 아직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추락은 어쩌면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인식이 추락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등이라는 명분 이전에 우리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한편 하나가 사고를 당한 이후, 하나의 어머니는 공장을 방문하는 하나의 담임 선생인 화자에게 동행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나의 어머니는 대한민국 사회라는 굴레가 낳은 명의 사생아이다. 미혼모로 하나를 낳고 홀로 키워온 그녀는 사회의 하층부에 자리잡고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다. 하나의 어머니는 하나가 다치고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을 , 딸을 간호하기 위해 일하던 마트를 관두고 병원 근처 모텔 방에 장기 투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져볼 기회마저 차단된 한가운데에 있다. 그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잊혀지는 작은 삶들을 대변한다. 이런 처지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분노란 이미 철지난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체념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의 선언과 같이 느껴진다. 하나의 어머니는 하나의 추락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못나서 하나가 저렇게 된거예요. 고등학교 중퇴에 미혼모에, 못난 맞잖아요.사회의 부조리하고 메마른 구조 속에서 이들은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다. 나아가 이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고통은 등장 인물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각자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로 변형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 어머니의 말은 사회로부터 배제된 개별 존재로서 우울증세에 가까운 무기력증을 반영한다. 이들 각자는 부조리한 삶의 무게를 감내해야하는 현대 사회의 시시포스들이다.            


소설에는 마치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서 살고 있는 듯한 4명의 여성들을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너무나 투명하게 노출되어 취약하다. 한편 이들의 삶은 사회가 강제하는 굴레에 둘러싸여 있다. 사회의 굴레를 벗어나 없는 것이다. 소설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들을 치밀하게 엮어두고 있다. 특히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녹녹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문제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문제와 이들의 산업재해 문제, 여공의 역사가 보여주는 노동 인권의 문제, 결혼 문제(결혼의 굴레), 미성년자 문제 우리가 보아온 묵직한 주제들이 날줄과 씨줄처럼 엮여 있다. 독자로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계층이 부쩍 증가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화자와 하나 어머니가 평택의 공장을 방문했을 입구에서부터 제지당한 것처럼, 등장 인물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이다. 이들은 각자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이라는 속박에 허우적대면서도 생존에 취약한 계층을 대변한다고 있다. 그러므로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이 여성이 주가 되지만 사회의 굴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포함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모두가 거대한 대기 속에서 사는 존재들이란 자각이다. 내가 들이 마신 공기 분자는 억년 공룡이 들이 마신 적이 있었던 공기 분자이기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가 내쉰 숨은 대기로 퍼져 우리 모두 일부를 들이마시게 것이다. 등장 인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사회에서 보다 취약한 여성들을 대표로 부각시키고 있지만, 남녀노소 모두 우리는 대기를 통해서도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처럼 취약 계층을 묘사하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모순적인 방식을 각자에게 강요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아가 소설은 인물들이 느끼는 고통 기원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답을 명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이 사는 곳은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피해자들은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사회의 부조리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소설은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는 현대인의 삶의 양태를 밀도있게 보여준다.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일까? 소설을 읽은 후에는 내게 커다란 물음이 남았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서 살아가며 하나의 숨을 쉬는 작은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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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 2019 겨울호 - 윤재철 시인의 ‘방배6구역’을 읽으며 | 기본 카테고리 2019-12-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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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6구역 읽으며

윤재철 지음 | [창비]

 

 

「주인 떠난 빈집

   대문에는 출입금지 노란 테이프 두르고

   철거 예정 딱지 붙은

   이미 갇혀버린 좁은 마당 한켠에

   70년대생 늙은 감나무

 

   아직도 푸른 잎사귀 사이로

   주황색 가득 매단

   골목길 내다보고 있다

   벌써 무릎만큼 자란 풀들은

   길바닥으로 내려서고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이

   이별은 발밑에 있는데

   70년대80년대90년대2000년대2010년대

   아무 의심 없이 내려섰던

   지층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감나무는 이별을 모른다

   단지 겨울 지나며

   도시 어딘가 숨어 사는 텃새들

   마지막 사랑처럼 날아와 맞출

   주황색 가득 매단          

 

 (계간지 《창작과비평》 2019 겨울호, 109-110)

 

 


 

[서툰 감상]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겠다. 시나 소설은 내게 외계어나 마찬가지다. 소위 문과생들에게 수식이 가득 과학책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나는 시를 모르겠다고 말하기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해하지도 못할 시집을 사서 만다라처럼 책상 앞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문학계간지를 읽어보는 경험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호기심을 가지고 나의 심리적인 벽을 넘어보려 시도해본다. 일단 그냥 글자를 따라 읽어나간다. 사실 어떤 시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잡지에 실린 중에서 윤재철 시인의 방배6구역이란 시를 읽다가 어떤 기억을 떠올렸기에 나는 시를 읽으며 떠오른 단상을 글로 잡아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서울이란 대도시를 바라볼 때마다 떠오른 생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녀왔던 무언가를 망각하기로 결심한것이 아닐까하는 점이었다. 도시의 골목 골목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살던 사람은 장소를 떠나고 있다. 내가 어렸을 살던 집터는 이제 건물과 간격이 거의 없을 정도로 들어찬 오피스텔이 들어서있다. 사실 재개발 구역 뿐만 아니라 서울의 상가들은 점점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서울 시내에는 임대라는 글자를 걸어둔 상가가 많아지고 있다. 반면 어디에선가는 새롭고 번듯한 대형상가 혹은 백화점과 같은 몰이 등장한다. 언젠가 이태원 재개발 지구에 올라가본 적이 있다. 이태원 역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면 인적이 드물고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러쳐진 집들을 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집들과 앙상한 나무 혹은 인적이 없는 마당에 수북히 났던 잡초의 흔적들을 있다. 윤재철 시인이 방배6구역에서 묘사한 바로 풍경을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아직 푸른 나뭇잎이 달려 있지만, 시간이 지나 한겨울이되면 푸른 감나무잎마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는 주황색 감들만 매달리게 것이다. 이태원 재개발 구역을 다녀볼 , 여름 사람이 관리하지 않아 마당에 무덤마냥 수북하게 자라난 잡초와 내부의 곳곳에 둘러쳐진 거미줄을 기억한다. 아직 재래주택이 모여있는 골목길 담벼락에는 심심치않게 감나무가 서있는 것을 발견할 있다. 주인없는 감나무들은 언제 베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도 나뭇가지 가득 감을 내놓는 것이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감들을 보며 상상해본다. 감나무가 처음 감을 열기 시작했을 무렵, 시부모를 모시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어느 며느리가 한가득 매달린 감을 따는 모습을 말이다. 며느리는 작은 바구니에 가득 감을 담아 이웃과 나누어 먹었을 법하다. 어렸을 보았음직한 이런 풍경은 이제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주인이 떠나고 철거가 예정된 집들과 감나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윤재철 시인의 시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글자와 이별이 예정된 우리의 모습을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유치한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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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 기본 카테고리 2019-12-1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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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강양구 외 저
바틀비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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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황정아 외 9명 지음 | [바틀비]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틈틈이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여러 저자들이 서평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은 모두 물리학 혹은 생물학분야 전공자들이다. 이제는 어느 누가 이과 전공인 사람들보고 필력이 약하다고 있을까. 저자들은 모두 편견과 달리 인문적인 소양과 필력을 인정받은 필자들이다. 이제는 문과 전공인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도록 요구받는 세상이다. 이과 전공인 사람들 역시 인문적인 소양이 필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사람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결핍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변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혹은 과학을 싫어하니까 문과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피사유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과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있고, 문과 공부를 사람이 양자 역학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그만큼 다원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의 출판을 기획한 과학책방 갈다 이명현 대표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별을 좋아하던 덕후였지만 문예반에서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며, 문장을 다듬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저자들도 글쓰기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아는 이공대생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만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책의 필자 10명은 각각 씩의 책을 골라 서평을 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목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지만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책만 고른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과학사에 감춰져 있던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도서도 있다.

 


서평은  독후감과는 달리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객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라는 주어를 많이 쓰기 보다는 필자라고 한다던가 하여 스스로를 대상화, 객관화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한 객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거리두기라는 방식이 필자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떤 글이든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문제의식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책에 실린 20편의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서평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과 결부시킨 글들이다. 바로 저자 자신들의 어쩌면 부족했던, 혹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내게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표출하고 독자가 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있었다. 저자 각각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통해 사회현상과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이 내게는 피부로 다가왔다.

 


서평의 기본 목적은 서평을 읽는 이가 해당 책을 읽게 하거나 혹은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울렸던 고른 만큼, 독자도 이와 같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는 이미 책에 소개된 권의 책을 읽고자 온라인 장바구니에 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과학자/과학저술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이들을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문이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나의 무관심과 무능에 대한 변명으로 제도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저자들이 부러웠던 점은 이들이 전문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부분보다는 필자가 감명을 받고 각자 영향을 받은 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책들을 읽은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것이다. 이들에게 영향을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 그래서 삶의 의미가 한층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다는 의미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말할 있을까? 많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책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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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관행에 균열을 내는 사람, 어느 편집장의 에세이 | 기본 카테고리 2019-12-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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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저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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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기존의 전통과 관행에 균열을 내는 사람

 


언론분야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분야다. 굿바이, 편집장 읽고나서 저자에 대한 인상을 마디로 이야기해보면 그는 기존의 전통과 관행에 균열을 내려고 노력해온 사람이라고 정리해볼 있을 같다. 무엇보다 언론인으로서 저자는 일을 만드는사람이다. 사회 조직이나 어떤 형태의 시스템이든 집단에 속해있다면 나서서 일을 만드는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것이다. ‘일을 만드는 스스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이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이 되고 안정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이 고착화된 관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조직에서 저자 같은 구성원은 일을 벌이고 튀는유형의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일을 만드는유형의 인간이 수는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도 일을 만드는사람이 지금 보다 많아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기자이자 편집자/편집장의 역할을 맡았던 저자가 일을 만들지 않았다면, 한겨레 토요판 모습은 분명히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고, 한겨레의 가지 굵직한 이슈들이 나오지 않았거나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결과했을 것이다.

 


예를 가지 들면 저자가 기획했던 동물 기사가 있다. 바로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훌라후프를 돌리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던 남방돌고래 제돌이삶에 관한 기사였다. 저자가 토요판을 책임지고 있을 진행되었던 취재와 보도의 결과, 제돌이가 다시 자유를 얻어 제주 앞바다로 나갈 있게된 일련의 과정들이다. 이야기는 개별 동물의 사례를 통해 동물권에 대한 관심과 주목을 요구하였고, 다시 이것이 인권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통찰을 주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저자가 일을 만들지 않았다면, 제돌이는 여전히 동물원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당시 대선을 앞둔 긴박한 시국에 토요판 1면을 돌고래 이슈로 채워넣으려 했던 저자의 시도는 내부에서도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고경태 대표는 당시에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돌이 문제, 보다 크게는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 중요성에을 감지했던 것이다. 저자는 사회에 묻혀있던 굵직한 이슈들의 징후를 예민하게 느끼고 감수하는 능력을 지닌 같다. 나는 이런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예민한 감수 능력을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술가적 감수성을 가지고 시대의 징후 예민하게 느꼈던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일을 만드는편집장에게는 이러한 예민한 예술가의 감수성 또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관점에서 책은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역사 100 중에서 저자가 언론에 몸담았던 지난 30 년간의 경험이 녹아있는 기록이라 있다. ‘엄숙, 근엄, 진지하기만 했던 언론 매체의 분위기를 김규항과 김어준의 쾌도난담코너를 통해 바꿨던 시도는 단지 가지 예에 불과하다. 한겨레신문의 토요판 기획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내외에서 비판과 마주했던 일들은 다른 인상적인 예이다. 진보 언론사의 성격임에도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이니만큼 견해 차이도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담았던 조직에서 특히 일을 만드는 책에서 기획을 의미한다. 기획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이미 여러 가지가 유치하게 다가올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남의 흉내를 내고 따라하는 이야말로 유치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획단계에서 튀는아이디어를 추진하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상황은 보수 언론사에서도 다를바 없을 것이다. 다만 데스크를 누가 지키느냐의 차이일 같다. 그런 점에서보면 저자가 편집의 책임을 맡은 자리를 지키며 씨끌벅적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관철해낸 일들을 따라가다보면 신기한 점이 두가지가 아니다. 본인은 뚝심이라고 판단할 지라도, 남들에게는 아집으로 보일 있었을 것이다. 역시 정답이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반듯한 결과를 얻더라도 기껏해야 칭찬도 진부할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저자가 들려주는 지난 날의 경험들은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공존하는 민주사회, 직장에서 책임을 사람의 자리지킴과 물러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의 물음을 추가로 내게 던져주었다.

 


책을 읽으며 가지 인상적인 사건을 들자면,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과 작가 서해성 선생이 만들어나간 한홍구와 서해성의 직설코너에서 생긴 필화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하여 칼럼의 제목을 가감 없이 지은 것이 발단이었는데,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저자는 분마다 울리는 전화와 욕설, 협박에 한동안 시달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너의 글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글의 맥락을 차분히 따져보는 사람이라면 신문사에 욕하지는 않았을 같다. 기사 이후 8일간 260명의 독자라는 사람들이 절독선언을 했다고 한다.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다음날 신문 1면에 사과문을 게시한 사례는 다시봐도 아쉬운 사례이긴 하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고 화를 냈다고 해도 모든 사례에 대해 사과를 필요는 없을 터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정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실제로 쉽지는 않은 문제다. 사건은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저널리즘 분야의 종사자들 뿐만 일반 독자들에게도 생각해볼만한 꺼리를 준다고 본다. 나아가 강준만 교수의 언급에도 주목해보게 되는데, 일종의 팬심 가지고 특정인에게 충성하려는 행동을 하려면 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작 본질적인 이슈 갖고 싸우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특정인에 대한 팬심 갖고 있는 사람들의 미디어 컨트롤에 대한 경계를 경계하는 말이었다. 저널리즘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도 귀담아 듣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할 염두에둘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구성에 대한 부분을 가지 언급하자면, 저자가 챕터 뒤에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이 내게는 읽기에 아주 불편하다는 점이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으로 빠져들곤 하지만, 책의 구성만큼은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구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짧은 주석이라면 해당 페이지의 하단에 각주 처리하여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보다 주석이라면 책의 뒤에 미주 한꺼번에 모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 습관에 따라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경우는 주석도 살펴보면서 확인까지 해보며 읽기 때문이다. 매번 챕터의 주석이 있는 부분의 페이지를 찾아  확인하며 읽는 과정은 내게는 고역이다. 책을 읽는 흐름을 깨뜨림과 동시에 손이 분주해져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책의 구성에 정답은 없을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 독자의 읽는 방식에 따라 독서를 하기에 불편을 느낄만한 부분이 있다. 이따금씩 주석에 나온 2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처럼 주석의 내용이 많은 저자의 글쓰기 방식의 경우, 책의 뒷면에 주석을 한꺼번에 모아두는 것이 나을 같다.  

 


책을 읽으면서 편집자, 편집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일해온 저자의 개인사를 따라가보았고, 나아가 언론 역사의 단면을 있었다. 묻혀 있던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공론화하였고, ‘걱정 입에 달면서도 많은 일들을 해낼 있었던 저자의 기획 원칙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여러 사건 중에서 역사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항상 가져야 결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사람살이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같다. 저자는 이렇게 나온 유치한 생각’, ‘아이디어들에 꽂히면 즉각 실행해나갔던 것이다. 기획자로서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자기 계발서같은 뉘앙스를 같아 조심스럽지만, 일단 해보라 것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특정인이 관여된 경우라면 일단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걱정많은 사람들에겐 귀담아들을만한 조언이다. 사람이 모든 일에 전문가가 아닌 만큼 함께 만들어갈 사람을 찾고 섭외하는 일도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굿바이, 편집장 읽으며  30여년간 언론분야에서 숨가쁘게 지켜왔던 저자의 업에서, 편집장의 자리에서 길어올린 삶의 통찰을 살펴볼 있다.     

 


책의 어디엔가는 편집장으로서 저자의 궤적을 보여주는 시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이다. 시는 워낙 많은 맥락에서 인용되고 활용되어 식상할지로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며 느끼는 감정은 시가 그래도  일을 벌이는사람의 고단함에 대한 위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대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158, 재인용 부분)  

 


그러므로 저자가 지니고 실천해온 철학을 마디로 뭐라고 묻는다면, 나는 기존의 관행에 균열을 내기라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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