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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블레즈 파스칼 저/김화영 역
선한청지기 | 2022년 06월

 

모집인원 : 20명
신청기간 : 7월 20일 까지
발표일자 :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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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관계성을 바라보기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 기본 카테고리 2022-07-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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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철 카슨 등저/스튜어트 케스텐바움 편/민승남 역
작가정신 | 2022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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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관계성을 바라보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2022)를 읽고

 

(원제: Visualizing Nature)

레이철 카슨 외 19명 지음 |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우리는 자연이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자연이 뭐야?’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는 여러 사상가, 지식인들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레이철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보고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레이철 카슨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정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25)라는 표현이었는데, 이제 행성 지구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자연은 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무언가로 다가온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지만 또한 어떤 대상을 명확히 지시하기 어려운 무엇. 영어 단어 nature가 품고 있는 여러 의미처럼, 존재물의 성질이나 본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닐봉지나 통조림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되고,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 호르몬이 알라스카의 이누이트 족이나 북극곰 체내에 가득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선뜻 레이철 카슨이 말하는 자연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는 DDT와 같은 살충제의 폐해를 경고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 GPGP와 같은 풍경이나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를 알기 전에 사망했을 터이므로 이 자연의 정의를 고수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반면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다시 뜯어보면 자연이란 실체와 인간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정확한 용어를 찾긴 어렵겠지만, 카슨의 자연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미개척지로서의 야생(wilderness)’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행성 지구 위의 장소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카슨의 자연과 달리 이제 우리는 자연의 다른 정의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처음 만난 글에서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내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물음을 갖고 나는 계속 여러 저자들의 에세이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은 시인이나 작가, 저널리스트, 조경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저자들이 자연을 주제로 쓴 짧은 에세이를 담고 있다. 숲이나 늪지에서, 바다 속에서, 나무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단상이 모여 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글이지만 이들에게서 결이 맞는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이들이 모두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말을 걸 때, 이들은 이에 귀를 기울이고 여기에 화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엮은이의 말에 따르면, 이 저자들은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담겨 있는 주제들을 숙고하고, 오늘날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당대에 마거릿 풀러,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소통하며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다. 따라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저자들은 한편으로 에머슨의 후배 사상가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레이철 카슨이 언급한 자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다른 저자들의 글을 읽어보니 자연이란 어쩌면 관계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연이란 관계성을 품은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아키코 부시는 기억이라는 지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인간)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을 파악하려는 활동으로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우리의 모습과 시간을 두고 기억에 새겨진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저자는 불과 한 인간의 일생이 지나는 시간 동안 변해버린 숲의 모습, 그리고 몇 개월 사이에 인간의 영향으로 변해버린 땅, 장소를 바라보고 성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자연의 장소는 바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가 아닌가. 만약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으로 변해버린 장소는 자연의 지위를 잃은 것일까. 인간이 행성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긴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해 변해버린 지구의 모습,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장소,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된 공간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관계성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면 어떤 환경이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행성 지구가 갖추게 된 모습은 결국 또 하나의 자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아마존 밀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명 속에서 살게 된 인간에게 도시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된 셈이 아닌가. 관계성을 염두에 둘 때, 콘크리트에 덮인 도시가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자연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인간과 도시의 새로운 공진화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 진 바우어의 글에도 주목해본다. 그는 여러 책의 저자이면서 먹거리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글의 서두에서 그는 거리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하나를 인용한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163) 바우어에 따르면, 이 말은 인간의 오만함,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을 암시하고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경고하면서, 특히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육식 보단 채식을 함으로써 건강과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을 존중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가 언급하는 인류세의 특징 중 인상적인 표현은 인간이 닭 뼈가 수북하게 박힌 지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시점에서 일흔일곱이 된 저자 월리스 코프먼의 에세이가 기억난다.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글에서 그는 딸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바람을 전한다.

 

일흔일곱 해를 산 지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소박한 관에 담겨 땅에 묻히고 내 위에서 검은 호두나 도토리가 아래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인데, 딸이 그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부활하여 세상의 영주자가 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174)

 

월리스 코프먼의 이 바람 역시 생명이 또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연 속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성찰이 아닌가. 나 역시 나의 마지막 모습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자연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과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저자들의 글들을 보면 각자 자신의 배경에 따라 자연과의 관계를 숙고하고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visualizing nature'. 글로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했던 시도가 아니었을까싶다. 각자가 경험한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독자에서 제시하는 활동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도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명의 저자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 모두 자연이란 실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에세이들은 현대인이 자연과의 대화가 중단되거나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은 모습을 일깨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자연을 보여주려는행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이면서 자연과의 우주적 합일을 바라는 주술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길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있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이 문장이 이 책의 정신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일이다.”(13)

  

 

 

[책 속으로]

[1]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다.”(13)

-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 7'정신'에서 재인용한 문장

 

[2] “이 책에는 2차림에서, 사막에서, 늪지에서, 산호초에서,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에서, 저지Jersey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에서 온 소식들이 담겨 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세상에 조화로움이 존재한다는 소식일 것이다.”(19)

 

[3]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관한 정의는, ‘자연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입니다.”(25)

- 레이철 카슨,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에서 재인용한 자연의 정의.

 

[4] “브리슬콘소나무는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산다. 그 뒤틀린 나무들은 경게에 선 보초들이다.”(63)

 

브리슬콘소나무는 긴 시간을 산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이 나무들은 긴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산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66)

- 데이비스 해스컬,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스론소나무를 찾아서에서 인용.

 

[5] “나는 솔방울이나 벌보다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와 운명 사이의 문제다. 나를 필요로 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환영해주는 세계에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완벽한 본보기다.”(73)

- 후안 마이클 포터 2, 자연의 무심함 속에 사는 영광에서 인용.

 

[6]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 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 아키코 부시, 기억이라는 지리에서 인용.

 

[7]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란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131)

 

나는 단편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이 림보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암초상어가 부럽다.”(133)

- 폴 베넷,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에서 인용.

 

[8]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치 있는 말은 우리 종의 오만이 다른 동물들과 자연,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쳐왔는지를 강조한다.”(163)

 

이제 과학자들은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질시대는 인간의 지배, 멸종, 플라스틱과 닭 뼈가 박힌 화석 기록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164)

- 진 바우어, 우리는 본래 농업 인류였다에서 인용.

 

[9] “나의 묘비명:

여기 잠든 남자/ 그의 삶은 길었고/ 의지는 약했고/ 모은 튼튼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은/ 생각을 키우고 말()을 수확하며/

세상의 경이를 키우는 것./ 이제 그는 위에 있는 나무를 키운다.”(174)

- 월리스 코프먼,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에서 언급한 자신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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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희망이란 씨앗을 틔우고 돌보는 일의 위대함 | 기본 카테고리 2022-07-1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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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퀀텀 라이프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저/지웅배 역
까치(까치글방)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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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희망이란 씨앗을 틔우고 돌보는 일의 위대함

 

 

 

1970년대 당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마치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짐승과 같았다.”(14)

 

나는 거의 엄마의 매버릭 안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23)

 

여기에서 엄마의 매버릭이란 7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회사 포드(Ford)에서 출시했던 소형 승용차를 말한다. 위의 인용문은 퀀텀 라이프의 저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안전한 집 없이 빈민가를 전전하던 어머니와 저자의 어린 시절에 흑인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내린 것 같이 여겨졌다. 분명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이다. 학교 친구들과 작별 인사는커녕 엄마의 낡아빠진 매버릭을 타고 매년 다른 학교를 다녀야 했던 생활을 단지 상상해 볼 뿐이다.

 

흑인 저자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곤 하는 사실은 이들이 성장하며 각자의 세계가 커짐에 따라 어느 시기에 반드시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가 어린 시절에 전전하던 지역은 뉴올리언스 주나 미시시피 주의 시골이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느리게 변하는 세계였다. 빈민가의 흑인 학생들은 폭력과 마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운명에 어떤 변화와 개선의 가능성 보다는, 무언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10대 학생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이런 상황이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다. 퀀텀 라이프에는 저자가 편견과 차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가 거대한 벽과 마주하여 어떻게 이를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어떻게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향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미국에서 빈민가의 흑인 소년이라는 조건은 마치 정해진 도식과도 같은 삶의 굴레를 예고하는 듯했다. 많은 10대의 흑인 학생들은 마약에 빠지고 학교를 중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후에도 끝없이 나락으로만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빈민의 경계 안에서 맴돌게 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영에 가깝다. 자주 쓰는 표현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니었던 것. 10대 시절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한 인물의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된 사례는 이 과정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반증한다. 하지만 그의 삶을 단순히 아주 드문 가능성에서 벗어나 기적처럼 발생한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암울한 환경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책과 사람 - 희망이란 씨앗

 

책을 읽으며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의 높은 지능이나 높은 성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점이었다. 단지 많이읽은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책마다 닥치는 대로읽었던 것이다. 책이 귀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교 시절 그가 알렉스 해일리의 뿌리 Roots를 발견하고 독파했던 이야기가 인상 깊다. 내가 뿌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느꼈던 전율을 저자도 틀림없이 느꼈을 테다. 그의 엄마는 자유로웠던 크리올 출신(흑백 혼혈)이었지만, 아빠는 뿌리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쿤타 킨테처럼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와 노예가 되었던 가문의 후예였다.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이름마저 바꾸도록 강요받았던 쿤타 킨테의 삶이 책을 통해 저자와 연결되었다. 빈민가의 한 어린이에게 책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으며, 이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저자는 우연히 백과사전까지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마주쳤던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은 분명히 그의 삶을 크게 흔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제 내가 괴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암호를 주고받는 어떤 비밀단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87)

 

한 독자가 책읽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이와 연결되는 경험을 말한다. 그 중에서 저자가 백과사전에 나온 상대성이론 부분을 읽고 거리의 갱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장면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 흥분과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집 밖의 거리는 안전한 적이 없었고, 남들에게는 나쁜 놈처럼 행동해야 했지만 이미 희망의 씨앗이 그의 안에 심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씨앗을 심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싹이 트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실내에서 식물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규칙적으로 물만 잘 준다고 성장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초보 재배가들은 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식물이 썩게 만들기도 한다. 식물에는 햇빛뿐만 아니라 통풍도 매우 중요한 것처럼, 하나의 씨앗이 온전한 식물로 성장하려면 여러 조건이 적절히 잘 갖추어져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빈민가 흑인 아이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폭력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고 갱스터 흉내를 내야 했지만,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지해주었던 학교 선생님들이 있었다. 저자에게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교장 선생과 크로스 선생님, 과학전람회에 나갈 수 있게 값비싼 컴퓨터마저 집으로 가져가게 허락했던 과학교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뿐인가. 핵엔지니어를 제안 받아 입대했던 해군에서는 자신을 열정적으로 격려해주고 지지해주었던 게이지 상사도 있었다. 대학원시절에는 양자역학을 11로 지도해주었던 틸 박사나 박사학위 자격시험을 준비할 때 도와주었던 다비드 같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저자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은 대학원 시절의 지도교수 아서였다. 아서 역시 흑인이었다. 그는 유색인들의 능력이 뛰어나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적 능력에 의심을 제기하는 백인들의 편견 및 인종차별적인 유산과 평생 싸웠던 사람이었다. 저자에게 아서는 격려와 질책으로 큰 스승이 되어주었고 나아가 학교 밖의 더 큰 세계와 연결해주었던 스승이었다.

 

유색인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길을 찾게 되기까지 마약중독과 유색인들에 대한 편견, 제도적인 인종차별이라는 벽과 씨름해야했다. 비록 암울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결국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곁에서 그가 자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었다. 재능이 있는 한 사람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데에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주목해볼만하다. 물론 저자의 삶은 희망이라는 씨앗이 있다면 아주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려 준다. 그건 바로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돌봄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양자역학의 한 현상과 비교했다. 하나의 입자가 아주 드문 가능성의 벽이라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터널링 현상에 빗댄 것이다.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5)라고 말한다. 여기에 양자역학의 원리처럼 우리의 운명이 결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책의 제목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로 자신이 그 증거라고 말이다. 저자의 삶은 영화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책과 사람들)이 있었음에 다시 주목해본다. 이 책에는 한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방벽을 극복한 성공스토리가 담겨있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라는 이름을 하킴 올루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자기 결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성공스토리는 한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준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함께 이루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1]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5)

 

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삶은 이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15)

 

[2] 집 안의 가전제품들은 마치 누군가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면서 두고 간 쿠키 점시와도 같았다. 나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너무나 알고 싶었다.”(36)

 

[3] 뿌리를 다 읽자마자 당장 다른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실제로 다 읽은 사람을 주변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86)

 

[4] 그렇게 힘든 나날 동안, 학교 선생님들만이 나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131)

 

[5] (해군의 게이지 상사)는 마치 황금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대했다. 또 그는 나의 고결한 인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칭찬했다.”(194)

 

[6]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중요한 시기를 너무 많이 흘려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마냥 중독자가 되거나 살해될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와 거래하던 마약 중독자의 눈동자에서, 그들과 똑같아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252)

 

[7] 나는 난생처음으로 앞으로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했다.”(270)

 

나는 안전하다고, 그리고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꼈다.”(271)

 

[8] 나는 나의 의지와 자기 결정의 의미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406)

 

유년기를 극복하기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에게도 위협을 가하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 그때부터 나는 미래가 나의 손에 달린 삶을 살게 되었다.”(406)

 

[9] 그들(아빠와 지도교수 아서)은 내가 그들의 길을 따르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만의 여정을 마쳐야 했다. (...) 이제 미래로 향하는 길을 나 스스로 구축할 때가 되었다.”(414)

 

[10] 나는 과학분야에서 나만의 능력을 발견하고자 했고, 사회가 나에게 계속 투영했던 부정적인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고 나서야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415)

 

[11] 아이들이 꿈을 구는 한 한계는 없다. 수천억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매우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418)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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