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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멀 멜빌의 탄생 203주년을 지나며 - 《모든 것은 빛난다》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2-08-0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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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공저/김동규 역
사월의책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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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멀 멜빌의 탄생 203주년을 지나며

- 모든 것은 빛난다를 읽고

 

올해도 어김없이 한여름이 지나고 있다. 8월이 되면 어김없이 한 작가를 좀 더 떠올리곤 한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관심도가 높아진 모비 딕의 작가인데, 바로 허먼 멜빌이다. 1년 전 오늘도 멜빌에 대해 글을 올렸는데, 오늘은 그가 태어난 지 203년째 되는 날이다. 어제(731) 공교롭게도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 되었다는 글을 올린 바 있으니, 레비와 멜빌은 태어난 지 딱 100년 하고 하루 차이가 난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멜빌의 생일을 기억하며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그동안 멜빌의 작품을 더 읽지는 못했고, 대신 두 철학자가 모비 딕을 읽고 쓴 책에 대해 조금 언급해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철학자의 문학읽기쯤 되겠다.

 

멜빌의 작품을 다룬 책이면 어느 책이든 모비 딕1851년에 출간되었다는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나오기 전에 글이 쓰였을 텐데, 내게는 멜빌의 1850년 여름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때는 멜빌이 이미 자신의 초고를 거의 완성해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시기의 모비 딕은 지금 우리가 보는 작품과는 매우 다를 뿐이었다. 이 작품이 영문학의 3대 비극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하지만, 이 때는 비극의 형태를 지닌 소설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읽고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 관점에서 1850년 여름은 허먼 멜빌에게, 그리고 세계문학사에 중요한 일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멜빌이 셰익스피어를 재발견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너새니얼 호손과 친해지고 교류하게 된 일이다. 멜빌이 셰익스피어를 재발견하지 않았다면, 작품 전체를 규정하는 비극의 요소가 과연 소설에 적용될 수 있었을까? 영문학 연구자는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겠지만 나는 몇 가지 사례에 한정하여 단서를 찾아보는 것으로 오늘은 마무리하려고 한다. 멜빌이 호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셰익스피어와 호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멜빌은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자신이 거의 완성해가고 있던 작품의 방향에 큰 변화를 주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멜빌이 셰익스피어와 호손의 영향으로 작품을 수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밋밋하게 고래와 싸운 인간의 모험 이야기정도에서 끝나는 이야기와 만나지 않았을까싶다.

 

멜빌에게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의 관점에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된 것은, 두 철학자(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가 고전문학을 읽고 쓴 책 모든 것은 빛난다 All Things Shining이라는 책을 만나서부터다. 물론 이 책은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지만, 나는 이미 셰익스피어와 호손이 멜빌에게 준 영향에 대한 관심에서 저자들이 모비 딕을 읽고 쓴 부분을 읽어 보았다. 이전에 올린 글에서 멜빌의 문장에 셰익스피어가 썼던 형식의 표현 일부를 사용하기도 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표현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내용 혹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너새니얼 호손의 영향은 호손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한 부분과 연결지어 생각해보았다.

 

 

셰익스피어의 영향

 

우선 모비 딕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게 되는 정황은 그가 셰익스피어 전집을 구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호손에게 보낸 상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점이 1850년 상반기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할 일지만 멜빌은 흥분하며 셰익스피어 작품을 탐독했다. 모든 것은 빛난다에 따르면 일부 문학 연구자들은 멜빌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모비 딕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면밀하게 연구했다. 멜빌은 자신의 작품을 탈고하면서 너새니얼 호손에게 보낸 편지(1851629일자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신께 맛보기 견본으로 고래 지느러미 하나를 보내드릴까요? 꼬리는 아직 요리되지 않았습니다. 책 전체를 구워내는 지옥불이 터무니없이 꼬리까지 모두 요리해버리지는 않았으니까요. 'Ego non baptiso te in nomine...,' 이것이 이 채의 모토(비밀스런 모토)입니다. 나머지 문구는 알아서 완성하시기를.”(259)

 

여기에서 멜빌이 끝맺지 않은 원래의 라틴어 문장을 번역하면 나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베푸는 게 아니요, 오히려 악마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노라.”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은 멜빌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받은 영향을 연구했으나, 후대 연구자들의 결론은 이 문장이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마법에 관해 쓴 프랜시스 팔그레이브라는 사람의 에세이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렇든 문학 연구자들은 이런 미묘하고 상세한 문제들을 계속 연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두 철학자 저자가 멜빌에게 준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언급한 대목을 찾을 수 있다. 모비 딕에서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를 따르는 배화교도 페달라가 한 예언과 관련이 있다. 페달라는 117장에서 에이해브가 죽기 전에 바다에서 두 개의 관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중 하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예언했다. 여기에서 역자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관이 바로 모비 딕이 부순 보트 널판이라고 보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다르게 보았는데, 인간이 만들지 않은 관은 바로 모비 딕자신이라는 견해다. 그 이유는 모비 딕을 추격하던 둘째 날에 모비 딕에 밧줄이 감겨 죽어 있는 페달라가 에이해브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들지 않은 관은 바로 모비 딕자신이라고 나는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페달라의 예언에 대해 모든 것은 빛난다의 저자들은 이를 맥베스적인 예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이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마녀로부터 여자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는 결코 당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맥베스는 결국 제왕절개로 태어난 사람에게 죽음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페달라가 예언한 두 번째 관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에이해브가 죽기 전에 모비 딕이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피쿼드호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이 과정에서 화자 이슈메일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수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철학자가 피쿼드호의 침몰을 서양 역사 전체의 침몰을 상징할 수 있다’(322)고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이 부분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혹은 문학 연구자들이 더 알려주겠지만), 비극의 구조 속에 에이해브의 광기와 고뇌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라고 정리해두기로 한다.

 

 

멜빌이 호손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란?

 

한편 지금 시점에서 보다 궁금해지는 것은 멜빌이 호손과 교류하게 되면서 이 두 사람의 상호작용이 모비 딕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에 관해서다. 멜빌과 호손 사이에 오간 편지나 호손 부인이 남긴 기록 일부를 참조하여 상상해보면 호손은 과묵하고 사람으로 번잡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인 것 같다. 호손 부인은 멜빌의 속을 알 길이 업어 보이는 깊이 꿰뚤어 보는 듯한 눈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멜빌은 목소리가 크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호손 부인이 묘사한 기록에 보면 말이다. 어쩌면 호손이 15살 연상이었음에도 에너지 넘치고 큰 목소리를 가진 멜빌을 다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호손의 작품 경향(예를 들면 주홍글씨와 같은 작품)을 참고해보면 호손이 멜빌에게 주었던 영향가운데 큰 부분은 무엇보다 기독교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든 것은 빛난다의 저자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이 소설(모비 딕) 역시 해양모험소설로 분류할 수 있기는 하지만, 어둠을 더 깊이 꿰뚫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악한 것이었다.”(258)고 평한다. 이 부분이 호손과의 교류를 통해 작품에 미친 영향은 아닐까. 소설의 시작 부분에 이슈메일이 출항 전에 머무는 물보라 여인숙에서 발견한 그림에는 작품 전체의 방향을 암시하는 듯한 그림이 등장한다. 바로 그림 속에 있는 삼중돛대에 대한 두 철학자들의 해석 때문인데, 세 개의 돛대는 삼위일체설에 근거한 기독교적인 일신론을, 그리고 침몰하는 배는 여기에 의존하는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독교 문화에 기반한 서구 문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상징적으로 배치해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시각은 이교도 퀴퀘그에 대한 비교에서 두드러진다. 바로 멜빌이 이웃의 기독교도보다 이교도 식인종 동료가 더 낫다는 암시를 작품에서 드러내기 때문이다. 두 철학자 저자들은 멜빌이 자신의 책이 지닌 사악함의 요소가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모비 딕에서 가장 치명적인 요소가 바로 에이해브의 광기, 다시 말하면 모비 딕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한 가지에 미쳐 있는 일신주의의 사악한 성격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대립되는, 혹은 대안으로서 제시된 것이 바로 모비 딕이 가진 다신주의적인 성격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이 점을 모비 딕의 규정하기 힘든 흰 색얼굴이 없음에서 찾고 있다. 얼굴이 없는 존재는 우리의 이해 능력을 벗어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대신 우주에는 숨겨진 진리가 없고, 표면적인 사건들 자체가 의미의 전부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저자들은 이런 생각이 유대적 전통에서 왔음을 말한다.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신에서 말이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느니라. 그러나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이것은 나를 보고 살아남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3:18-20)

 

이와 유사하게 멜빌은 모비 딕 79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향유고래의 경우에는 이마에 본래 갖추어진 고귀하고 위대한 신 같은 위엄이 너무 크게 확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자연계의 어떤 생물을 볼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신성과 그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향유고래의 이마에서 어느 한 점도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목구비가 하나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 , , 입도 없고 얼굴도 없다. 향유고래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얼굴이 없다. 주름투성이 이마가 넓은 하늘처럼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멜빌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졌다고 해서 신을 거부했던 것일까? 철학자가 소설에서 주목한 점은 간접적이지만 이슈메일의 입장에서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슈메일은 다분히 기독교 신앙에 대해 반대 혹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가진 고유성을 다시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그 근거로 고래를 해체하며 경뇌유를 짜는 선원들의 공동작업 장면을 꼽는다. 향유고래(sperm whale)라는 이름은 머리에서 채취되는 경뇌유(spermaceti)에서 유래했는데, 예전에는 이를 정액(sperm)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장면에서의 성적인 암시를 언급하지만, 나는 이 공동작업 의식에서 두 철학자들이 읽어내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두 저자는 이 장면에서 보이는 풍부하고 애정이 넘치며 친근하고 다정한 감정을 근거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아가페적 사랑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은 곧 타인에 대한 기독교적 사랑의 핵심이다. 정리해보면 멜빌이 호손에게서 받았음직한 영향이 있다면 그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식과 기독교 신앙의 회복(혹은 신앙의 자정작용에 대한 필요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작품에서 이교도와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적 시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 유형의 광기, 흥미로운 짝패

 

사실 철학자가 읽은 모비 딕이 쉽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멜빌의 작품에서 두 가지 유형을 구분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선 뚜렷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광기는 선장 에이해브의 광기다. 철학자들이 지적하는 에이해브의 광기는 완고한 일신주의를 대변한다.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이로서, 궁극적인 진리를 증명하느라 미쳐버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유형의 광기는 모비 딕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의외의 인물에서 나온다. 바로 흑인 소년 핍이다. 핍은 선원들이 고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바다에 두 번 빠지는데, 망망대해에 빠져 홀로 남게 된 핍은 완전한 단절의 공포를 경험하고 미쳐버리는 것이다. 멜빌은 소설에서 핍의 육체는 물 위에 떴으나 영혼은 익사해버렸다고 묘사해놓았다. 그 결과 핍이 보인 광기는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왔는데,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에이해브의 경우와 반대로 핍의 사례는 궁극적인 진리란 없음을 보여주고, 이 때문에 미쳐버린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모비 딕을 읽을 때 핍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었는데, 철학자들은 핍과 에이해브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짝패로 보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핍이 겪은 정체성의 상실은 오히려 이슈메일의 태도에서 보이는 다신교적인 존재에 대한 관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정체성을 갖지 않게 되었기에 에이해브의 일신주의와 달리 다양한 해석에 대해 열린 모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하긴 했지만 다시 정리하면, 멜빌이 호손으로부터 기독교 비판적인 시각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는 무엇보다 변질되어버린 기독교의 전체주의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의식일 것이다. 따라서 멜빌이 자신의 작품을 사악한 책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가 단순히 기독교 모독적인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오히려 멜빌은 타락하고 변질되어버린 종교에 대해 비판하고, 예수의 본래적 가르침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음을 작품 전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멜빌이 말하는 모비 딕의 사악함은 기독교 고유의 신앙 회복을 말하는 과정에서 충격요법을 쓴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부 변질되어버린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멜빌이 태어난 지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의 소설이 유효한 이유, 모비 딕읽기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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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탄생 103주년을 지나며 - 《주기율표》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2-08-0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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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저/이현경 역
돌베개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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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탄생 103주년을 지나며

- 주기율표를 읽고

 

언젠가 나탈리아 긴츠부르크의 가족어 사전을 읽다가 긴츠부르크의 친정이 레비(Levi) 가문이라는 대목을 보게 되었다. 그럼 혹시 긴츠부르크 가문이 프리모 레비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히 긴츠부르크와 프리모 레비의 가문이 이탈리아 북부(각각 밀라노와 토리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럴듯해 보였다. 한동안 이 궁금증을 잊고 있었는데,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라는 책에서 우연히도 답을 얻었다. 책 뒤에 실린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프리모 레비는 긴츠부르크와 친하고 교류가 있었긴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긴츠부르크의 친정은 아니라고 답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사소해보이는 문제에 대해 나 말고도 궁금해 하거나 물어본 이들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긴츠부르크 가문이든 프리모 레비의 가문이든 이들은 20세기 전반기의 엄혹한 시대를 겪어 냈다. 특히 주기율표는 아직 레비의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음에도, 읽기 시작하자마자 반해버린 작품이다. 비가 내리는 7월의 마지막 날에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다시 떠올린 것은, 오늘(731)이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폭력성에 대항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레비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중 누군가의 밀고로 19431213일에 파시스트공화국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포로가 되었다. 명망 있는 토리노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화학자가 된 그가 주기율표의 원소를 제목삼아, 에세이 같은 단편 소설을 핍진성 있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주기율표.

 

원소 을 제목으로 한 글에서 레비는 자신의 경험과 모습을 글로 묘사했다. 당시에 포로가 되어 감방에 있던 화자(혹은 레비)가 생리적인 활동 외에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바로 독서였다.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197) 그러면서 이 일을 겪을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매우 용기 있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일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을 하고 싶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201) 또 화자는 수용소에서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죽음에 대한 공포 보다 더 가까이 있던 것은 바로 굶주림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경계에서 위태로운 삶을 경험했던 프리모 레비를 상상해본다. 그는 실력 있는 화학자였기에 구술시험을 거쳐 수용소 내의 화학실험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화자는 수용소에서 살기위해, 빵과 바꿀 수 있는 라이터 부싯돌을 이리들처럼 도둑질했다라고 고백하는데, 아마 실제 레비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싶다.

 

프리모 레비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렇듯 서경식 교수의 저작을 통해서였다. 그 중에서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박광현 옮김, 창비, 2006)는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서경식은 이 책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인물로서, 나치 독일의 야만적 행적을 증언하며, 이 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인상적인 소설 작품을 남겼던 인물이 왜 자살로 생을 마쳤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책에서 그를 따라가며 그가 품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레비가 했던 여러 생각들 가운데 한 가지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이 주기율표크롬이라는 제목의 글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인간들이 아우슈비츠를 지었고 아우슈비츠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내 많은 친구들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집어삼켜버렸기 때문이다.”(222)

 

아마도 이 말은 레비가 했던 고뇌의 일부, 거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라 생각한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죄의식수치심’, ‘염치라고 간단히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표현 역시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서경식이 토리노의 레비 자택을 찾아가보고자 했던 당시, 서경식의 삶 역시 휘청거리고 너덜너덜했던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가족은 정치적인 상황으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고, 고난을 겪던 두 아들의 구명을 위해 애쓰셨던 모친이 아들의 귀환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상황. 당장 본인은 직장 없이 불안한 앞날을 끌어안고 있던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 배경은 서경식을 읽고 영향을 받거나 그와 교유해온 여러 문인들, 지인들의 글을 모아 출간한 서경식 다시 읽기(연립서가, 2022)에도 그 정황이 어느 정도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난 후에도 프리모 레비가 왜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인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 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금 단계에서 레비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단정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서경식이 쓴 작품해설에서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로 인해 유대인이 되었다는 대목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주기율표에는 흥미로운 단편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바나듐 편이 인상 깊었다. 이 글은 화자 ’(혹은 레비 자신)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화학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던 독일 장교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의 어디 까지가 소설적인 부분이고 어디 까지가 사실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화자는 단지 함께 일했던 독일 장교에 대한 적의나 보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의 태도는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특히 수용소 시절에 상관이었던 독일인을 이해하고자 했다. 나아가 당시 독일 장교의 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감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화자는 이 전직 장교에게, 그리고 독일인들에게 자신들이 같은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가라고 묻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시라. 묘한 여운을 주는 단편이다.

 

또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인데, 전업 작가가 아니었던 레비의 직업에 대한 양가적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특히 생계를 위해 화학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는 밥벌이의 지겨움과 작가로서 글쓰기 활동의 양립이 안 되는 상황을 말하는 대목에 공감이 간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전쟁과 수용소가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기술자로 만족해야 했습니다.”(350) 시대와 현실 속에서 휘청거리는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반면 생계를 책임진 생활인이자, 직업을 가진 작가로서 자신을 비추어보기도 한다.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공장을 감독하느라 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 밀리탄차 덕택에,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해야 했던 그 강제적이거나 명예로운 일들 덕택에 저는 진짜 현실적인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358)

 

어쩌면 레비의 글이 그토록 힘을 갖게 된 이유도 단지 그가 겪은 극적인 경험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의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균형 감각이 레비의 경험들을 분명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따라서 현실적이고 성숙한 레비의 인식을 마주할 때면, 그가 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므로, 이 이유 역시 내 맘대로 재단하고 단정하기 않기로 한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결을 내면에 지니고 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지 후두둑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생각해본다.

 

 

 

[책 속으로]

[1] "내게 화학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담은, 무한한 형태의 구름이었다. 이 구름은 내 미래를 번쩍이는 불꽃에 찢기는 검은 소용돌이로 에워쌌는데, 마치 시나이 산을 어둡게 둘러싼 구름과 비슷했다."(35)
 

[2]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한 편의 시이며,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소화해온 그 어떤 시보다도 고귀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주기율표는 압운까지도 들어맞는다."(64)
 

[3]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89)
 

[4]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197)
-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방에 있던 화자가 했던 행동.

 

[5]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인간들이 아우슈비츠를 지었고 아우슈비츠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내 많은 친구들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집어삼켜버렸기 때문이다."(222)
 

[6] "이방인을 사랑하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282)
- 구약 성경 <신명기> 10장 19절의 글귀 재인용. 유대인이었던 레비에게 이 문장은 누구보다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7] "내 목소리는 약하고 심지어 약간은 세속적이기까지 합니다."(325)
- 볼테르가 자신의 시 <오를레앙의 처녀>(1762)에서 잔다르크를 찬양하며 쓴 글귀.

 

[8] "지금 이 순간 미궁처럼 복잡한 줄거리를 벗어나 내 손으로 하여금 종이 위의 어떤 여정을 따라 달려가며 기호들의 소용돌이를 그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세포다. 위로 아래로, 두 차원의 에너지 사이로 이중 도약을 한 이 세포는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337)
- 마지막 문장.

 

[9] "생각하고 관찰한다는 것이 제 생존의 요인이기도 했어요. (...) 비록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특이할 정도로 정신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것 같아요. (...) 사실 저는 제 주위의 세계와 인간들에 대한 기록을 멈춰본 적이 없습니다. (...) 어떤 사람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호기심이었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 속으로 옮겨진 자연주의자의 호기심이었습니다."(348)
-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10]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공장을 감독하느라 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 밀리탄차 덕택에,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해야 했던 그 강제적이거나 명예로운 일들 덕택에 저는 진짜 현실적인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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