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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전해보는 파스칼의 호교론 - 《팡세 - 분류된 단장》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2-08-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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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팡세

블레즈 파스칼 저/김화영 역
선한청지기 | 2022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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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전해보는 파스칼의 호교론

- 팡세 - 분류된 단장를 읽고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지음 | 김화영 옮김

[선한청지기] (2022)

 

 

몇 년 전에 파스칼의 팡세를 읽어보려고 책을 펼쳤지만, 오래가지 않아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고전이라는 이유도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시도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기대치는 높은 반면 분절된 단상 형식의 글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책을 무작정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단번에 이해해보고자 했던 것이 중단의 이유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이 고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번역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번역자이자 파스칼 연구자인 김화영 교수가 이전에 참여했던 번역 작업에서 남겨놓았던 글들이 기억났다. 그의 글은 서문이나 에필로그 혹은 역자의 말 형태로 만났던 것인데, 언제든 작품에 대한 역자의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독자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팡세를 읽다보면 역자의 주석에 몽테뉴의 에세에서 가져온 문장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된다. 출생으로만 따지면 90년 늦게 태어난 파스칼이 몽테뉴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몽테뉴의 글을 읽어본 기억을 떠올려보면 인간에 대한 그의 정밀한 관찰과 이해가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곤 했다. 39세의 생애로 삶을 마감했던 파스칼 역시 인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팡세에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거의 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다. 인간에 대한 적나라하고 놀라운 통찰이 담긴 파스칼의 문장과 만날 때마다 밑줄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번역자의 상세한 해설에 따르면, 파스칼은 진보적인 수학자이자 과학자로 이른 나이에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31세가 되던 1654년의 어느 날, 그는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고 회심을 하게 된다. 이 일생일대의 경험은 파스칼의 글이 몽테뉴의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 된다. 몽테뉴의 글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집필되었지만, 파스칼은 유신론자의 확신으로 써나갔다. 두 사람의 글이 갖는 공통점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겠다. 몽테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대상을 진실로 이해하고자 면밀히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 주목했다. 따라서 에세의 근간을 이루는 관심사를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몽테뉴의 질문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이렇듯 몽테뉴의 관심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점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이런 맥락에서 몽테뉴의 글이 회귀적이고 성찰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파스칼의 글이 몽테뉴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관심은 결국 신을 향해 나아간다. 역자의 표현을 사용하면, 기독교적 신앙을 옹호하고 이를 되찾기를 바라는 호교론적인 성격을 갖는다. 몽테뉴의 관심이 자신을 향하는 회귀적인 글이라면, 파스칼의 글은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며 독자를 설득하여 기독교 신앙으로 안내하는, 점진적이고 직선적인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신앙을 설파하는 글로는 상당히 인식론적이고 지적인 방식을 취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파스칼은 일반적인 수학자 혹은 과학자들처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혹은 이성이 지니는 우월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을 경계한다. 파스칼이 파스칼의 정리같은 수학적 업적이나 진공의 존재에 대한 실험을 통해 과학적 사실을 증명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당대의 누구보다도 이성의 힘과 그 한계를 잘 인식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회심의 경험 이후, 인간의 이성만능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신 앞에 보다 겸허한 자세를 취했던 것 같다.

 

 

팡세에는 파스칼이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 인간이 위치한 지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서 그는 이중적인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바로 비참하고 비열한 존재로서의 인간과 위대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이다. 상반되고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은 바로 이성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와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시된 인간의 조건이다. 이 점에 대해 파스칼이 인간이란 얼마나 괴이한 존재인지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인간이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얼마나 진기하고 괴기스러우며, 혼돈하고 또 얼마나 모순투성이이며, 얼마나 경이로운가? 만물의 심판자이면서 쓸모없는 벌레, 진리의 수탁자이면서 불확실한 오류의 시궁창, 우주의 영광이면서 우주의 폐기물 같은 존재다.”(114)

 

 

파스칼은 이처럼 인간에 대한 촌철살인의 통찰을 가끔씩 꺼내 독자에게 보여준다.

 

 

한편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통찰에서 놀라움과 감탄을 느끼면서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파스칼이 적어내려 갔던 생각들에 모두 동의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파스칼이 거역할 수 없는 기독교 권위 위에 수립된 신앙의 진리 두 가지를 언급한 대목이 그렇다.

 

 

하나는 인간은 창조의 상태에서든, 은총을 입은 상태에서든 모든 자연 만물보다 높은 위치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신성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죄와 타락의 상태에서 인간은 처음 상태에서 추락하여 짐승과 같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명제 모두 견고하며 확실한 것이다.”(118)

 

 

우리는 인권과 더불어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맥락에서 독자가 파스칼의 생각과 만나면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여럿 나올 것이다.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성찰에 감탄하는 부분이 훨씬 많이 나오지만, 이런 대목은 시대적인 변화와 역사적·문화적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본성은 400년 만에 변할 리는 없다.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깊은 이해를 여전히 참고하고 배울 수 있는 이유다. 반면 독자가 신앙을 회복하도록 의도한 파스칼의 접근 방식은 지금과 달리 당대에는 어떠했는지 이해하는 차원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파스칼이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다른 종에 대한 인간의 우월적 시각은, 파스칼이 비판하는 데카르트의 세계관과 더불어 현재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파스칼의 글이 단상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일관된 사고의 흐름 속에서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했던 주제가 뒤의 단장에서 다시 변주되면서 반복되곤 한다. 따라서 팡세는 오히려 책의 첫 장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접근이 가능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읽어나가면 주석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제1부에서 권태라는 소제목으로 묶인 단장을 읽고 나서 이번에는 오락/기분전환이라는 소제목 아래의 단장들을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치워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으며 이해를 더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책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번역자의 서문과 세심한 해설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평생 프랑스 문학, 특히 파스칼을 연구해왔던 역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적극적으로 가미된 번역본이 다른 번역본과 다르게 느껴졌다. 한 번 도전 했다가 덮었던 파스칼의 책이 이번 기회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면 무엇보다 역자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역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대한 번역 표현을 위해 서양의 코에 대한 미학적·관상학적 측면까지 고민하고, 파스칼의 육체적 질병에 대한 사항까지 염두에 두고 번역을 했다. 고전 번역은 일반 독자로서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나아가 역자의 꼼꼼한 해설은 파스칼의 시대와 팡세가 집필된 이유와 맥락을 파악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수학과 과학에 큰 기여를 하며 영민함과 오만함이 흘러 넘쳤을 청년 시절뿐만 아니라, 회심 후 인간에 대해 이해하여 인간의 비참함과 위대함을 설파하며 신에게 다가가고자 했을 30대의 파스칼까지. 이번 독서를 통해 파스칼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무리하면서 책의 구성에 대한 생각을 추가해본다. 우선 주석이 본문과 분리되어 책읽기가 편하지 않았다. 독자마다 책 읽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주석을 읽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주석이 너무 많다고 평점을 낮게 주는 독자도 보았는데, 나는 책을 천천히 읽더라도 주석을 대체로 다 읽는 편이다. 그러므로 팡세와 같은 책을 읽을 때는 본문 내에 주석이 괄호 안에 삽입된 형식이나 책 뒤에 주석이 들어가는 형식은 문장을 놓치게 되거나 피로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앞에서 끊어진 문장 뒤에 이어지는 지점을 찾거나, 책장을 계속 앞뒤로 들추어야 해서 읽는 흐름을 놓치고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역자의 주석이라면 나는 각주 형태를 선호한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궁금한 점을 곧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석이 편집되어 있는 형태 중에 가장 피곤한 구성은 주석이 분리되어 각 장 뒤에 달린 형태인데, 아쉽게도 팡세-분류된 단장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폰트 크기가 작아서 읽기도 쉽지 않다. 주석의 폰트를 좀 더 크게 하고 각주 형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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