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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서평'이란 이런 것 | 기본 카테고리 2019-11-3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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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독서

전성원 저
뜨란 | 2018년 01월



위의 독서

전성원 지음 |  [뜨란]

 


그렇게 나는 만들어졌다

 

가끔 내가 갖고 있는 책갈피 중에 올리버 색스가 표현을 들여다보곤 한다.

 

도서관에서 서가와 선반 사이를 오가며,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뭐든 골랐고, 그렇게 나를 만들어갔다.

 


나는 삶이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을 ,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경험보다 훨씬 늦게 도서관을 발견했다. 헌책방과 도서관은 분명히 삶에 위로를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나한테만 그럴까. 내가 늦게 장소를 발견했을 뿐이다. 이런 장소에서 무심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어느 부분에서 가벼운 충격이나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때가 있다. 시인 장석주 선생이 고등학생일 정독 도서관에서 니체를 발견한 순간의 전율이나 충격은 아닐지 모르겠다. 나의 삶이 역시 불안하고 막막하다고 느낀 어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펼처본 적이 있다. 콜필드가 맨해튼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을 읽었을 , 안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던 순간이 기억난다. 책이 예전에는 분명히 나를 위로해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을 통해 무언지모를 위로를 받았다. 가끔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며 책을 꺼내 살펴보기도 하는데, 이번엔 우연히 전성원이란 작가의 위의 독서라는 서평집을 발견했다. 저자가 읽고 중에는 내가 읽은 책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 후쿠시마에 관한 도서들을 읽어보았기에 저자가후쿠시마 이후의 이란 책을 읽고 서평부분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저자의 서평은 약간 분량을 지닌 서평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나가자 곧바로 마음에 들었다. 시중에 나온 가벼운 서평들과는 다른 점이 나의 시선을 붙들었다. 비교적 짧게 느껴지긴 했지만 저자는 후쿠시마에 관하여 꽤나 디테일한 사실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저자는 후쿠시마 이후의 읽으며 시인 파울 첼란을 떠올렸다고 했다. 저자에게 대상(후쿠시마와 파울 첼란) 어떤 이유로 이어졌을까. 저자는 파울 첼란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 역시 파울 첼란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해 홀로코스트와 원전을 작동시키는 힘이 다르지 않다라고 같다. 특히 101세로 사망한 일본의 수상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비롯한 일본 보수 세력이 1954 3 1일에 있었던 수소폭탄 실험(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이 피폭되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예산을 승인한 사례를 언급한다.  희생의 시스템이란 개념을 주장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핵발전소 관련한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시스템으로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결국 홀로코스트가 작동되는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같다.

 

 


뜨거운 서평이란 이런

 

저자는 파울 첼란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핵발전소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한홍구 교수가 후쿠시마와 용산 참사를 연결시키는 장면에 주목한다. 결국 사건 역시 본질적으로 같은 논리와 시스템에서 나왔다는 한홍구 교수의 지적을 다시 곱씹고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후쿠시마 이후의 저자들의 문제의식이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보였다. 나는 이번에 처음 저자의 글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뜨거운 서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이면을 뜨겁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느껴지는 묵직한 글이었다. 쉽게 읽히고 가벼운 글들을 찾곤 했던 나를 반성하게 해주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직접 목격하며 삶의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같다. 초등학생이던 저자가 담임 선생님의 병문안에 갔을 병원에서 마주친 군인들(1980 5월이었다) 보고 두려움과 의문을 품게 경험 역시 오늘의 그를 있게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의 이력을 보고서야 나는 그가 이토록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뜨거운 글을 있다는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런 글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와 같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에 도달하기에 자신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인문학자 김경집 선생이 서평 쓰기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읽어본 적이 있다. 김경집 선생은 따뜻한 시선과 냉정한 평가 겸비한 서평을 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저자 전성원의 서평은 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책에 언급된 현실을 본인이 직접 냉정하게직시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김경집 선생의 표현대로 시도하다가 평가를 위한 평가 어설프게 하는 보다는 전성원 선생의 뜨거운 서평 또한 좋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에게는 위에서 만난 모든 삶의 마주침이 세상이라는 책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비딕 작가 허먼 멜빌이 화자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일이 나에겐 예일이자 하바드였다 말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위에서 만났던 세상의 다른 책들도 만나보고 싶다.  





 

후쿠시마 이후의 삶

한홍구,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공저/이령경 등역
반비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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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장 읽기l | 기본 카테고리 2019-11-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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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장회익 지음 |  [추수밭]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장회익 선생님의 60여년에 이르는 공부 결실이 책으로 나왔다. 바로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이란 이름으로 출간이 되었다.  저자의 존재를 알게 것은 거의 사반세기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녹색 평론이란 잡지의 짧은 한편을 읽어 주셨는데,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중국을 여행한 사람이 여행기 성격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나는 잡지를 이따금 사서 부분적으로 읽곤 했는데, 어느 호에서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온생명이란 단어가 보이고, 현직 물리학자가 물리학 이야기가 아닌 생명과 철학 이야기를 것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막연하게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철학자나 평론가가 기고하는 성격의 잡지에 물리학자도 이런 글을 있구나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내가 군복무시절 갖고 있던 하나가 바로 저자의 삶과 온생명(솔출판사, 1998)였다. 내가 특히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던 이유는 거의 유일하게 학부 배운 지식이 책을 읽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학부 1학년 생물학 수업을 들으면서 물리학자 슈뢰딩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읽어보고 '약간'의 놀라움( 역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했다. 이유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넘어선 공공의 발언 탐구가 전문가 집단에서는 일종의 오지랖으로 지탄받기 일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같다. 지금 책을 다시 펼쳐보면 장부터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따온 문구로 시작하는데, 이제는 슈뢰딩어가 생명 현상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관점과 태도를 조금 이해할 있을 같다. 아인슈타인이 유일하게 기대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의 다시 말해 자연혹은 자연 법칙으로 있겠다. 슈뢰딩어는 물질에 관한 보편 법칙으로서 물리학의 눈으로 법칙()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할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피노자의 내재론적 입장 탐구의 방법으로 이용하겠다는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슈뢰딩어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1장을 시작하며 데카르트의 명제(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시하고 있는데, 1장에서 생명에 대한 고전물리학자의 접근방식 내지는 태도를 마디에 담으려 것으로도 이해된다.


 

이번에 읽기 시작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이들 학자들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의 이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양의 학문이 들어와 유학자들에게 전파되고 수용되기 이전에 우주와 사물의 이치에 대한 물음과 방법론을 제시했던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여헌 선생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우주설 여기에 실린 <답동문> 지었다. <답동문> 가상의 아이(동자) 등장시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화법처럼 동자의 천진스런 물음에 여헌 선생이 답변하는 형식을 취한 글이다. 여기서 동자가 질문에 앞서 하는 선언이   인상깊다.


 

이치를 캔다는 것은 모르는 데가 하나도 없게 후에야 비로소 캤다고 있습니다. (…) 천지 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고금의 사람들이 함께  들을 있는 것이고, 역시 있을 것입니다.”(50)

 


저자 장회익 선생은 대목에서 가지 근대학문의 정신을 언급한다. 하나는 점의 의혹 없이 철저히 지적 탐구를 수행하겠다 선언이며, 다른 하나는 탐구 활동에 성역이란 없고, 지식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물을 있으며, 내용은 누구나 있어야 한다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이 근대 과학, 근대 철학의 인식론과 궤를 같이 하고, 근대 서구 과학의 관심사와 상통한다고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사물을 꿰뚫어 본다 의미의 격물(格物) 대한 여헌 선생의 재해석에 주목한다. 먼저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보다 보편적인 원리와 연결 지을 소재를 찾아내야 한다 것을 주문하고, 이를 위해 자연 세계에서 접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귀로 파악해야함을 언급했다. 달리 표현하면 구체적인 현상에 바탕을 두지 않은 앎은 무용하다 입장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라야 이런 이치를 활용하여 오늘의 상황을 관찰하여 과거의 상황과 미래의 상황을 알아낼 있다 것이다. 바로 지점이 고대의 사고와 근대의 사고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답동문> 쓰인 해가 1631년이다. 유럽의 물리 천문학자 라플라스가 고전 역학을 통해 현재 상태만을 관찰하여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을 산출할 있다 언급한 때보다 거의 2세기 이전이라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여헌 선생은 우주설 <답동문>에서 이치를 추궁한다는 방법론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물음도 제기하고 있어 흥미롭다. <답동문>에서 똑똑한 동자는 땅이 공중에서 하늘의 () 의해 둘러싸여 유지되며 떨어지지 않으며 이는 대기를 보호하는 보호벽으로서 구각 있어야함을 말하며, 다시 구각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장회익 선생은 무거운 물체는 떨어져야 한다 인식의 틀에 주목하여 2차원의 평면에다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수직축(2D + 1D)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대한 인식과 어느 방향으로도 대등한’( 중력을 분리하여 어느 축방향으로나 물리법칙이 동일한) 3차원 공간(3D) 인식차이를 비교한다. (2D + 1D) 공간 인식 틀에서는 대지가 떨어지지 않는가 묻게 되며, (3D) 인식 아래서는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가하는 반대의 물음을 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데카르트와 뉴턴은 고전적인  (2D + 1D) 공간 인식을 벗어나 (3D) 공간 인식으로 나아가며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물에 대한 인식의 틀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도 새삼 이해하게 된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충돌하고 과학자 공동체 속에서 논쟁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 극복되는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행되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있었듯이 말이다. 그만큼 인식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번에 손에 들게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장에서 가지 인상에 남는 부분은 여헌 선생이 18 우주요괄첩이라는 작은 책자를 만들어 이치를 추궁하려는 대상의 제목을 적어 두고 평생을 지니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참고했다는 점이다. 책자는 결국 커다란 학문을 하겠다는 소년의 당돌한 의지이자 학문적인 출사표이기도 것이다. 여헌 선생이 우주요괄첩 품에 넣고 다닌지(38 임진왜란을 만난 것도 포함하여)  60여년이 지나 평생 탐구해온 주제들을 엮은 것이 바로 우주설 <답동문>이라고 한다. 학문에 대한 이러한 발심 평생 놓지 않고 뜻을 세운 사실은 내가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여헌 선생 발심을 더욱 눈여겨 보았 같다. 2장에 나오지만 데카르트 역시 23세의 나이에 군인으로 복무하며 놀라운 학문 기반을 발견하고 진정한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점도 여헌 선생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있다. 평생 공부꾼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와 고민의 결과 역시 물리학이란 학문에 뜻을 둔지 60여년이 지난 올해 권의 책으로 나온 것도 여헌 선생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볼 , 평생동안 전념할 주제와 뜻을 세우는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사족이긴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부모 카드를 통해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보다 평생 지켜갈 만한 가치와 목표를 찾는 ,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간에 스스로 올바른 뜻을 세우는 일을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장회익 저
추수밭 | 2019년 09월

 

녹색평론 (격월간) : 11-12월 [2019]

녹색평론 편집부
녹색평론사 | 2019년 11월

 

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

에르빈 슈뢰딩거 저/전대호 역
궁리출판 | 2007년 07월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저/김명자,홍성욱 공역
까치(까치글방) | 2013년 09월

 

에티카

스피노자 저/황태연 역
비홍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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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 거인의 출현을 알아보다 | 기본 카테고리 2019-11-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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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고병권 저
천년의상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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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강연 독서 후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7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마르크스 - 거인의 출현을 알아보다

 


19세기 자연주의 소설의 효시가 작가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에서 유럽 모더니티의 도시 파리에 거주하는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있는 인구 이동의 양상은 농촌 지역의 인력이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시골에서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연인 랑티에와 파리로 상경한 여인이다. 랑티에는 바람을 피우고 제르베즈를 버린다. 아이들과 남게 제르베즈는 세탁부가 되어 열심히 일하며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지만, 도시는 홀로된 젊은 여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함석공 쿠포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을 하게된 제르베즈는 이웃집 청년 구제의 짝사랑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여기서 그만 얘기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현실이 흥미롭다. 에밀 졸라가 소설에서 묘사한 시대는 공장의 기계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정황을 담았다. 공장에는 거대한 기계 도입되어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기도 하며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공장의 생산 과정에 기계가 도입되어 발생하는 노동자의 소외 현상을 소설에서 발견할 있다. 기계의 도입에 따른 노동자의 대량 해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이 기계의 출현에 위협을 느끼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펴볼 있는 것다. 소설의 어느 장면에서는 숙련공 구제가 기계와 경쟁을 벌여 승리하는 대목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승리 아니라 근소한 차이였다는 점이다. 잠깐 동안의 대결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있을지 모르지만, 피곤을 모르는 기계 앞에 언제나 월등한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이 승리한 경쟁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승리였던 것이다.

 


상품 생산과정의 분업화로 달인 이들 숙련공들은 기계의 도입으로 해고당하면 무용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번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저자 고병권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가지 일에 익숙해진 숙련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나면 존재적 변형 경험하게 된다. 무기력하고 소외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편 소설 목로주점에서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우울증에 다름없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제르베르를 비롯한 주인공들은 돈을 버는 대로 모두 맛있는 음식과 술로 배를 채우며 삶을 소진하고 그렇게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진다. 사회의 부품과도 같은 존재로서 살아가는 도시 하층민의 삶은 자본가가 지배하는 삶의 양식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러한 도시 하층민의 일상과 이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세심하게 소설에 담아냈. 바로 시대상이 아마도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주목하고 있는 현실과 부합할 같다.

 


 

자본가의 갈망과 절대적/상대적 잉여 가치에 대해

 

이번 일곱 도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노동일 관련되어 있다. 노동일은 지난 6권을 떠올려보면, ‘하루 노동시간 의미하며, ‘필요노동시간’ + ‘잉여노동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노동일을 연장하여 많은 잉여수익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 노동자에겐 물리적, 생물학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이상 일할 없으며,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휴식과 수면, 영양 섭취, 화장실 이용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활동으로 실제 노동일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가의 욕망 추구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자본가가 노동일(혹은 잉여노동)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얻으려는 노력은 곧바로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제약 조건 속에서 자본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잉여노동을 늘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있는 방법은 필요노동 시간을 줄여 잉여노동시간 분을 많이 확보하는 길이 있다. 여기서 필요노동시간을 줄인다는 말은 노동력의 가치 줄인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가능한 경우는 여러 산업 부분에서 생산성 혁신 통해 동일한 노동시간에도 많은 상품들을 만들어 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면 노동시간을 강제로 늘려 얻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대신,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려 실질적인 필요노동 시간의 여분을 줄임으로써 추가적인 잉여분을 자본가가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잉여분의 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마르크스는 언급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생산력이 크게 증가해야한다는 전제다. 그래야 생활수단의 가치(: 노동자들의 생활 필수품 가격) 떨어지게 되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질 있다는 점이다.

 


개념의 구체적 사례로 마르크스는 특별잉여가치(혹은 추가잉여가치) 제시한다.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특별잉여가치는 특정 기업의 노동생산력이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을 경우 해당 자본가가 추가로 얻는 잉여가치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가정하고 있는 자본가는 사업을 통해 사회에 이익이 되는 활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공익의 목적이란 없거나 2차적인 목적일 뿐이다. 자본가에겐 우선 이윤이 생겨야 계속 사업을 이어갈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란 전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자본가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합법적으로사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 하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에서 피터 싱어는 우리의 먹거리의 윤리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더하여 기업의 윤리를 짧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월마트의 사례를 들고 있다. 2003 현재, 월마트의 CEO 리스콧의 연봉은 기본급 보너스, 스톡 옵션을 포함하여 1740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10년이 지났지만, 현재 환율로 계산해보면 200억이 넘는 연봉을 받은 것이다. 당시 월마트에서 일하는 풀타임 정규직 조합원의 연봉이 1 8천달러 수준이었다고 하니, 연봉 격차는 960배를 넘고 있다. 책의 1부와 2 끝에서 각각 언급하는 월마트의 사례를 통해 싱어는 월마트의 저렴한 상품 가격이 다른 누군가에게 비용을 전가한 결과일 있다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모습을 찾아 있다. 대기업에 부품 혹은 물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공급업자들은 대기업의 비용절감 전략의 대상이 된다. 월마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말하는 갑의 횡포는 월마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월마트는 노조를 배제했었고, 4 가족의 조합원이 연봉으로는 빈곤선 이하의 기준이었다. 2005 기록에서 월마트 종업원 자녀의 거의 절반이 건강보험에도 들어있지 않거나 국가 의료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이를 버지니아 유뱅크스의 저작 자동화된 불평등 소개된 현실을 떠올려보자면, 국가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 수혜 대상자에겐 사생활의 노출과 엄격한 규정의 준수를 강요 받는 상황으로 이들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피터 싱어는 자신의 저서에서 월마트에서 음식을 먹는 일도 상당한 윤리적 문제 내포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강화된 노동과 착취의 진보, 그리고 거인 노동자의 탄생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 노동자의 노동일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특히 노동법이 제정되기 전의 19세기에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15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 출간한 1800년대 후반에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시간 정도 언급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는 8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좀더 줄은 셈이다. 이처럼 생물학적 존재로서 노동자들은 노동일을 연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대신 자본가들은 노동의 강도를 높여 노동 생산력을 높이고자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나온다. 채플린은 연장을 들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나사를 조이며 작업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는 다른 생각을 틈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컨베이어 벨트의 속력이 빨라진다. 노동의 강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영화에선 개인 노동자로서 노동강도가 증가하여 노동 생산력을 증가하는 상황을 보여주었지만, 여러 노동자들이 함께일함으로써 추가 생산력을 발휘할 있다. 하나의 완성된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많은 사람들을 투입하면 노동의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개별 노동자가 모여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데 거대한 노동자 되어 상품 생산에 추가적인 효율을 발휘하게 된다. 추가 생산력을 통해 추가적인 잉여를 만들어내지만, 추가 잉여가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책에서 여겨 보아야할 지점은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바로 이런 지점들이 아닐까. 이번 책의 제목인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표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개별 노동자가 거대한  전체 노동자 일부로서 부품화되는 것이다. 업무의 세분화에 있어서 끝판왕은 소련식 테크노크라시의 사례일 같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렌 그레이엄은 자신의 저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에서 스탈린의 집권 이후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교양 교육이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한다. 그레이엄 교수가 만난 소련 엔지니어 중에는 제지 공장용 베어링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같은(특정) 기계의 동력 파트나 다른 부품에는 세분화된 다른 학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기록에는 이런 내용도 보인다.

 

경공업 위원회는 기계 종류별로 압축기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전공을 만들었다. 중공업 위원회는 유성 페인트와 비유성 페인트를 다루는 엔지니어를 위한 별도 과정이 필요하다고 고집했다. 농업 위원회는 개별 농작물을 담당하는 농학자, 개별 동물을 다루는 수의사를 키워냈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24

 

다른 기록도 보인다.

 

소련 엔지니어링 교육에서 전공 분야가 급증했던 것은 전통 엔지니어링 분야를 끊임없이 세분했기 때문이었다. 기계공학은 관련 전공 수십 개로 나뉘게 되어, 심지어 농기계, 공작기계, 주조 설비, 자동차, 트랙터, 비행기 엔진 세부 전공이 생겨났다. 금속공학에서는 구리와 합금을 다루는 전문가를 따로 양성했고, (…) 엔지니어링 파편화는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24

 


서양의 과학사가들이 평가하듯 소련의 지나치게 세분화한 전공 엔지니어 양성은 전체의 일부로서만 기능하는 인력을 양성했다. 중앙 정부에서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구성원들은 아무런 의문이나 개선의 여지 없이 자신이 맡은 업무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은 과도한 전체주의 혹은 독재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북클럽 자본7권의 중심 화두는 노동자들이 모여 협업을 하면서 도출되는 전체 노동자혹은 거인 노동자 존재가 것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모인 거인 노동자 단순히 개별 노동자들의 수가 더해진 산술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무언가 놀라운 일들을 더하여 해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적인 인간은 사회적 인간’, 다시 말하면 인격이 축소된 평균적인 노동자로서 파악되는 인간으로 특정된다. 책의 후반에서는 매뉴팩처의 분업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채플린의 영화처럼 개별 노동자는 전체 공정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앞의 일만을 전체 공정의 리듬에 맞춰 처리해내야 한다. 따라서 평생 가지 기능을 해내는 숙련노동자 탄생하게 되는 것이 매뉴팩처 분업 시기부터라고 한다. 이런 여건에 우리 몸이 맞추어져 신체의 변형이 일어나고 직업병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시기부터라고 있다. 개별 노동자는 거인 노동자의 일부로서 주어진 기능만을 담당할 , 여기에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가질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결국 상황은 노동자들의 존재, 노동자들의 몸이 자본가의 부속물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말하고 싶었던 같다.

 


특히 마르크스는 이런 양상이 노동생산력의 혁신으로 자본가는 추가 잉여를 얻게 된다는 점과 맞물려 있음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바로 지점에 주목하고, 현상을 파악하는 모습이 바로 마르크스가 많은 후대사람들에게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주는 이유가 것이다. 자본 썼던 마르크스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았는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알게 되고, 동시에 놀라움도 더해간다. 사회 현상에 대한 명민한 관찰이 군데 저서에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만, 전반을 통해 자신이 파악한 현상 이면의 양상,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책을 통해 이렇게 유기적이고 치밀하게 담아 놓을 있었을까 놀라게 된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파악해보지 않고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이가 있다면, 사람은 단순히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만하다. 오늘날 자본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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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마라톤) [모비딕] 9장 천천히 읽기 | 기본 카테고리 2019-11-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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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9] 설교 (The Serman)


 

[9장의 기본 줄거리]


고래잡이 예배당 들어온 매플 목사가 배의 선두 모양을 설교단위로 올라간 이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자리정리를 하고 기도를 목사는 요나의 이야기를 담은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시작한다.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요나가 구원받은 이야기 통해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기쁨을 얻을 것을 주문한다.

 




이번 9장의 배경은 고래잡이 예배당이며, 매플 목사는 구약 성서의 요나서 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찬송가를 부르며 설교를 시작한다. 설교의 소재는 역시 요나서 나온 이야기이다. 목사는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려던 요나의 구원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 통해 교훈을 주고자 한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요나에게 어서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쳐라 주문한다. 요나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하늘의 명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도망치려 했다. ‘인간이 만든 타고 머나먼 카디스(오늘날의 스페인에 위치) 떠나고자 했던 것이다. 요나가 하느님을 피해 배를 타고 도망치려던 부두는 요파(Joppa)’라고 되어 있다. 매플 목사는 요파가 현대의 자파(Jaffa)’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파라고 하면 가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자파에 얽힌 이야기


자파(Jaffa) 현재의 지도상으로 지중해의 동쪽 해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도시로 북쪽의 대도시 하이파(Haifa) 남쪽 이집트 경계 근처의 가자(Gaza) 지구 사이의 중앙에 위치한 해변 도시다. 아래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의 지중해 해안에 자파(Jaffa) 확인할 있으며, 지중해의 서쪽 반대편에 스페인이 있음을 있다. 상당한 거리다. 요나는 이렇게 곳이라면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래 사진들은 내가 올해 출장업무로 잠시 들렀던 이스라엘의 자파 지역 해변가 모습이다. 해변의 남쪽은 자파의 지역(해안 절벽이 있는 부분) 위치하고, 해변의 북쪽은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과 호텔이 모여 있는 현대적인 관광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방문한 시기는 2월이었으므로 북반구의 겨울이었지만, 이곳에는 커다란 야자나무가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은 이곳이 겨울에 풍요롭다고 했다. 들판은 푸르렀다. 대신 여름에는 메마르고 황량하다고 했다. 방문한 자파지역은 날씨가 맑았지만 비가 왔다가 해가 비치기를 반복했다. 이곳의 기후는 으레 그렇다고 한다. 변덕스러운 기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법하다







'야파' 혹은 '자파'라는 지명을 듣고 지명이 등장하는 문헌이 생각났다. 독일 작가 W.G. 제발트의 이민자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174-180) 보면 지명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화자 할아버지의 비망록에 나온 행적을 따라가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터키를 지나 레바논 지역을 지나는 대목이었다. 기억으로는 서쪽 항구도시 자파 지역에서 동쪽의 예루살렘까지 차로 2시간 정도면 있었는데, 아델바르트는 말을 빌려 12시간을 달렸다고 나온다. 아마 제대로 길이 없고, 언덕과 계곡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랬을 법하다. 이들이 쓰레기로 즐비하며 똥을 밟으며 걸어갈 밖에 없다라고 묘사하는 예루살렘의 거리는 자파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낮은 언덕들이 많았다. 소설의 화자는 언덕 사이의 협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오늘날 협곡들은 대부분 천년의 역사가 남겨놓은 폐기물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오물들이 흘러 든다. 그래서 수많은 우물의 물은 이제 마실 없게 되어버렸다. 한때 실로암의 못으로 불렸던 샘물은 이제 썩은 웅덩이나 오물 구덩이에 지나지 않으며, 수렁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온다. 매년 여름 도시를 덮치는 전염병의 원인이 바로 독기일 것이다. 코즈모는 도시가 너무 역겹다고 거듭 말한다.” 


자파든 예루살렘이든 황량하고 불결한 여름에 특히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을 거역하고 예수를 죽이는데 일조했다고 비난받았던 유대인들에게 불결한 삶의 조건과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징벌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일까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의 원형이라는 영감을 제공했던 이탈리아의 문인이자 정치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평전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글항아리](815)에서도 자파 나폴레옹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폴레옹은 1798 이집트 원정을 떠나 인근 지방을 공략했는데, 바로 자파에서 페스트가 돌아 프랑스 병사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1799 3 11 전염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병원을 방문, 희생자들을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평전의 저자 루시 휴스핼릿은 나폴레옹이 실제로 희생자들을 만지거나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퇴각하여 희생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한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나폴레옹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이야기로 자주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나폴레옹의 측근 혹은 숭배자들, 후대인들이 만들어낸 신화임을 우리는 알지만, 서구인들에게는 유명한 이야기이고, 여러 문헌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동양의 고사성어에 배경이 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후대의 단눈치오가 사례를 지도자가 자신을 광고하는데 기가막히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홍보의 달인단눈치오가 이야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해진다.  평전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에서 부분을 인용해본다.

 

(단눈치오) 페스트가 피우메에 창궐했을 태연히 병원을 방문함으로써 일찍이 자파에서 나폴레옹이 그랬듯이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서 명성을 날린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814)

 


이탈리아 정부와 대항하여 북부의 피우메 지역에서 자신만의 도시를 세우고 일종의 괴뢰정부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단눈치오. 이탈리아 역사상, 아니 세계사적으로도 특이하고 독특한 인물의 행보에도 나폴레옹 얽힌 이야기를 자신에게 활용하는 천재성을 지녔다. 그리고 배경에 바로 자파 관련한 이야기가 있었다



 

자파라는 지역에서 있었던 나폴레옹과 페스트의 이야기는 롤랑 바르트의 저서에도 등장한다.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기록인 밝은방에서 스쳐가듯 나폴레옹의 자파 이야기 언급한다.

 

예컨대 보나파르트가 방금 자파의 페스트 환자들을 만졌다. 그가 손을 떼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진은 순간적인 작용을 이용하여 빠른 장면을 결정적인 순간 속에 부동화한다.”(49)

 


밝은방현장에서 포착하기 제목의 14장에서 바르트는 사진을 감상자에게 상처를 주는 요소인 푼크툼과는 다른 충격 주는 요소를 이야기한다. 사진이 전해주는 놀라움 충격이라는 범주를 다섯가지로 정리했다. 중에서 시야의 일부에만 초점을 있는 인간의 주시성과 다른 사진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자파와 나폴레옹의 이야기 언급한 것이다. 사진을 보면 사진가가 주목한 대상, 예컨대 나폴레옹이 페스트 환자를 만지고 손을 떼는 장면 외에 인화를 시야의 구석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회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알려진 이라고 바르트는 이야기하지만 회화와 사진의 기본적인 차이는 시간성의 전개가 개입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것이다. 화가는 바르트가 누멘(영력)이라고 표현한 능력으로 순간의 동작을 표현하지만, 과정에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어 있다. 반면 사진에는 순간에 모든 것이 고착화되어 인화물에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지 않는다. 다만 회화나 사진에서는 사람의 눈이 주시할 있는 영역을 벗어난 부분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이질감과 같은 놀라움의 충격 주는 것인데, 바르트는 사진의 이러한 특성을 고찰하면서 자파와 나폴레옹의 유명한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이다.

 



자파와 관련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시 매플 목사의 설교로 돌아가본다. 자파 부두에서 배를 타고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려던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뱃삯을 내고 타르시시로 달아나려 했다. 타르시시는 오늘날 카디스라고 부르는 지브롤터 해협, 그러니까 요나는 지중해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인 스페인 남쪽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다(지도 참조). 아무런 짐도 없던 요나로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선원들은 요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멜빌은 매플 목사의 설교를 빌어 당시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황금만능주의라는 세상의 원리를 비판하고 있다. 매플 목사는 선장은 상대가 무일푼일 때만 사람의 범죄를 폭로하는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하며, ‘ 세상에는 죄인도 돈만 내면 여권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마침내 요나는 통상 운임의 배를 요구하는 선장에게 운임을 치르고 승선한다. 참고로 구약 성경의 요나서에는 이렇게 자세한 사항은 나오지 않는다. 설교자의 상상이 가미된 이야기로 보면 되겠다.


 

소설 속에 묘사된 요나는 비싼 운임을 냈지만, 선장은 문이 잠기지 않는 데다 홀수선보다 밑에 있는 구멍같은 좁은 방을 요나에게 배정한다. 홀수선은 배의 수위를 알아보는 표시로, 여기서 요나가 배정받은 홀수선 아래의 방은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방이라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창문도 없이 외부의 풍경도 없는 방이기도 하다. 이윽고 출항한 배는 무서운 폭풍우를 만나 요동치고, 깊은 잠에 빠졌던 요나를 선장이 깨운다. 배의 선원들은 이들이 처한 모든 위기가 도망자 혹은 죄인이라는 의혹이 있는 요나 때문임을 의심한다.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과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은 사실을 고백한다. 선원들은 요나를 동정하면서도  폭풍우가 가져온 난국이 요나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결국 요나는 선원들에 의해 바다에 내던져지게 된다. 매플 목사의 해석에 따르면 고래의 모습으로 변한 하느님이 요나를 삼키고 바다 한가운데 데려가는 것이다. 고래 뱃속에서 회개한 요나는 지옥의 있다가 고래가 다시 공기와 땅이 있는 곳으로 올라와 요나를 밷어버린다. 홀수선 아래(심연의 세계) 있던 요나는  폭풍우 속에서 바다로 내던져지고, 이어서 고래 속에 삼켜진 요나는 다시 바라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바다라는 심연 공간, 회개의 공간, 지옥의 공간에서 세속의 세계, 빛이 있는 육지, 구원의 공간으로 나오는 구조에 주목해볼 있다


 

이제 매플 목사의 설교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게 화가 있을 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동시에 오직 주님을 받드는 이에게 최고의 기쁨 함께 한다고 말하며 신에게 귀의하라는 교훈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이제 조만간 각자 목숨을 기나긴 고래잡이 생활을 시작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매플 목사가 신에게 모든 것을 믿고 신에게 귀의하라는 설교는 유일하게 기댈 있는 안식처가 것이다. 이들은 목사의 설교를 의심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의 구원과 기쁨을 통해 오히려 이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지 , 지난 8장에서 나는 매플 목사의 설교단 뒤에 걸려있던 폭풍우 그림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그림과 많이 닮았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폭풍우 그림은 이번 (9)에서 목사가 이야기하는 설교 (성경의 요나서’) 격랑의 바다에 던져진 요나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고 있으며, 다시 병들거나 죽은 흑인 노예들이 바다로 던져지는 장면이 담긴 터너의 그림을 연상케한다. 물론 이러한 모티프는 작품으로서 모비딕 결말과도 연결되며 일종의 복선으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짐작해볼 있겠다.

 


 



 

참고서적


[1]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루시 휴스핼릿 지음/장문석 옮김 [글항아리]

[3]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대한성서공회]  요나서

[4] 이민자들 W.G. 제발트 지음/이재영 옮김 [창비]

[5] 밝은방 롤랑 바르트 지음/김웅권 옮김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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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베를린] - 만남을 통한 신뢰 구축에 주목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19-11-2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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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베를린

이은정 지음 |  [창비]

 

 

[독서 일기]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와 만남을 통한 신뢰 구축에 주목한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아닌 주제에 대해 우리의 연구자와 저술가들이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펴낸 결과물은 언제나 반갑다.  다시 말해 번역을 거치지 않고, 우리나라 연구자가 소화하고 판단하여 나온 글과 연구물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은 우리 나름의 지식과 지혜로 이어지기에 점점 기대를 하게 된다. 우리 나름의 관점이란 프리즘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지적 성숙도를 높여줄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어려운 출판 시장과 독서 인구의 감소라는 우려에도 이번에 읽고 있는 베를린, 베를린 같은 도서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한편 베를린, 베를린 독일에서 오래 생활하며 연구를 해오고 있는 이은정 교수의 연구 결과물이지만, 학술서적이라기 보다는 대중교양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오늘까지 절반정도 읽었는데, 책이 대중서라고 해도 다소 아쉬운 점은 남아있다. 문학이나 소설이 아닌 이상 이런 성격의 도서에 참고문헌이나 주석, 그리고 용어 색인 정도의 구성을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국내 연구자들이 대중교양서를 저술할 이런 부분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출판사의 정책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선 책의 구성면에서 살펴볼 이런 부분이 눈에 보인다. 도서의 주제는 흥미로운데 구성상 미흡해 보이는 점이 있기에 많이 아쉽기 때문이다. 참고문헌이나 주석 등의 구조가 갖추어 져야 개인적으로 나중에 다시 참고를 하거나 찾아볼 내용이 있을 , 혹은 참고 문헌을 알고 싶을 추적하여 도움을 받을 여지가 있을 것이다


 

내용에 관한 보다 자세한 감상은 나중에 리뷰에서 고민하겠지만, 특히나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2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들이 상당히 흥미롭다. 다만 서술방식면에서 우선 시간순으로 전개가 되고 있지만, 베를린이 겪어온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유기적인 이야기로 엮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반복 설명되는 부분은 내용을 되새김하기에 좋은 반면, 비교적 얇은 도서에서는 보다 간결하게 진행하면서 사건 간에 보다 유기적인 설명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읽을 있을 같다.

 


아직 책을 절반밖에 읽지 못했지만 베를린이란 공간의 특수성에 대해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2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의해 분할 통치된 독일의 동독 지역 가운데 베를린이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베를린이 다시 4개국(승전연합국) 의해 분할 점령된 내막에 대한 점은 사실 자세히 알진 못했다. 아마 내가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많이 졸아서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어쨌든 오늘 독서를 통해 저자가 전달하는 간결한 설명으로 배경이 되는 역사를 이해할 있게 되었다. 특히 베를린 주민들이 겪은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물론 베를린의 상황은 이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도 유형, 무형의 교류는 거의 항상 지속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같다. 저자는 특히 분단을 겪고있는 대한민국의 분단 상황과 베를린의 분단 상황을 비교하며 차이점을 부각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분단된 독일이 통일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민간 차원에서 교류가 끊이지 않았고, 협상을 시도했다는 점은 처음 알게 사실이다. 독일인들은 저자가 제시하는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원칙을 통해 동독과 서독 정부가 수용하고 노력을 했다고 전한다. 물론 동독의 경우, 서독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져갔지만 서독 측에서도 동독이 끝없이 요구하는 경제적 지원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 보다  인내심을 갖고 경제적인 지원을 지속하여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점은 분명히 우리가 고려하고 배울 만한 부분일 것이다.

 


물론 베를린의 상황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구체적으로 다른 점이 많다. 베를린은 동독 정부가 관할하는 영토의 가운데에 섬처럼 존재하는 특수성에, 도시가 분할되어 동서 베를린 양측이 상당기간 왕래를 하고 있던 상황도 무시할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과 조건에 맞는 합리적인 방법을 궁리하고 모색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여겨 볼만한 것은 만남 없이 신뢰를 쌓을 없는 법이다”(177)라는 원칙이다. 어렸을 적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뉴스에서 기억이 있다. 감격한 베를린 시민들이 장벽 위에 올라가 기쁨을 나누거나 무너뜨리는 장벽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 이전에 이미 오랫동안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람들은 제한적이나마 서로 만나 교류하고 교감했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아왔다는 점이 책의 전반을 읽는 동안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 이해된다.   

 


2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은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와 미국, 영국, 프랑스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특수한 공간이 되었다. 이런 기본적인 구도는 한국전쟁으로 대표되는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냉전 구도가 발현되었다는 점이 유사하다. 다만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전쟁이 발발하여 남과 북이 분단되었고, 엽서 왕래하기 어려웠던 시간을 오래 인내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베를린을 중심으로 하는 분단 상황과 우리의 상황 사이의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독일인들이 겪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이점에도 주목하고 화해와 공존의 실마리를 찾아야 것이다. 특히 베를린 주민들이 베를린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제한적이나마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리가 불가능한 사회적 인프라망 존재했다는 점이다. ‘공존을 통한 협력 대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기회라고 대목에서 나의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우리에겐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책의 절반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합의 과정) 다루어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베를린과 독일 현대사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기대가 남아있다. 우리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서독 정부의 경제 부흥은 분명 동서 대결 구도 속에서 서방세계의 물적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한국 전쟁 특수로 인한 경제 부흥에 힘입은 크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세계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더불어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진행된 냉전 구도의 영향이 전방위 적인 위력을 발휘했음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독일작가 W.G. 제발트는 작가 나름의 독특한 소설 양식을 통해 전후 독일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드러냈지만, 사회의 이면에는 나름의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노력들이 많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특히 정치인 브란트(서베를린 시장과 연합정부 수상을 역임한 인물) 원칙, 베를린 시민의 고통을 완화한다 원칙을 통해 이루어진 경험이 통일된 독일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은 우리가 여겨 볼만한 점이라고 본다.      

 



베를린, 베를린

이은정 저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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