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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며 ‘환대’의 전통을 생각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2-2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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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섬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Jean Ziegler)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환대의 전통을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할퀴어버린 한 해가 저물어간다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감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중국의 전설적인 요순시대를 제외하고는 태평한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어느 시대건지구상의 어느 곳이건 사람에게든동식물에게든 태어나 살아가는 일은 지난한 과업인 것 같다우리 조상도 어려운 시절에 서로 돕고 상대방을 품어주던 풍습이 있었다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개인적으로 올해는 우연히 고대 철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처음 접했다.

 

그 중에서 특히 플라톤은 특이하게도 대화형식을 빌어 자신의 철학을 문학작품처럼 집대성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바로 플라톤의 대화편인데여기에는 종종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환대(xenia크세니아)’의 전통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어떠한 이유로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타인 혹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상대방(주인)은 도움을 요청한 이(손님)를 환대하는 전통이 있었다그리고 이 전통이 고대 그리스의 정의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환대의 전통은 시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인물들의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나아가 환대의 전통에 따른 당대의 정의관에 따르면주인의 도움을 받은 손님은 주인에 대한 빚을 적절하게 보답하는 것 또한 (기대되는올바른 응답이기도 했다.


국내의 여러 그리스 고전 연구자들이 쓴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고대그리스에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크세니아)는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고제우스는 크세니아를 보호하는 신이었다.”(41그러니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주요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정의관을 어겼기 때문에 발발한 사건이었다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왕국에서 환대를 받고서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떠났기 때문이다또 어떤 면에서는 헬레네가 트로이 전쟁 중에도 파리스와 트로이의 보호를 받은 것 역시 이러한 전통이 양쪽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지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조금 책장을 넘기고 있는 플라톤의 자연철학을 담은대화편인 티마이오스에서는 아예 자연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대화의 도입부에서 이 환대의 전통에 얽힌 상황이 등장한다.

 

티마이오스: “어제 당신에게서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은 마당에우리 남은 이들이 열의를 다해 당신께 보답하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온당치 않은 일일 테니까요.

(티마이오스, 17b, 김유석 옮김아카넷, 25)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 명백하게 존재했던 환대의 전통을 장황하게 꺼내들은 이유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장 지글러의 신간 인간 섬의 주요 배경이 바로 그리스의 여러 섬들이었기 때문이다이번 글에서는 인간 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고대 그리스의 환대의 전통을 떠올렸다이 책은 유럽 연합이 유럽으로 유입될 수 있는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전쟁과 고문국가의 파괴 등을 피해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12핫 스폿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이 핫 스폿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게 해에 있는특히 소아시아 지역에 가까운 다섯 곳의 그리스 섬들을 가리킨다.

 

유엔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하고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핫 스폿 중 특히 가장 큰 섬인 레스보스 섬의 난민 시설을 방문하고 기록한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룬다책에는 사진이 없어서 그 현장의 충격이 덜하겠지만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모든 것을 버리고 과밀한 보트를 탄 채 에게 해를 건넜을 수많은 사람들을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이 책에서 우리는 환대의 전통을 갖고 있던 그리스가공식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생존에 대한 요청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이 핫 스폿특히 이 책의 주요 무대인 레스보스 섬에서 이렇게 환대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현실에 그리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물론 이 책에는 유럽 연합의 자금을 받고 난민들을 몰아내는 그리스 경찰들도 나오지만난민 구조 및 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여러 시민 단체들의 활동도 언급되고 있다.

 

인간성의 극단을 시험하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이 화산섬 레스보스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이 섬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기원전 7-6세기에 유명했던 시인 사포의 고향이면서 레즈비언이란 용어의 기원이 된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아울러 이 섬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의 부름을 받고 펠라로 가서 어린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기 바로 전의 2년 간 머문 곳이기도 하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섬에서 물고기와 철새들을 연구하며 동물지라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플라톤의 형이상학적 탐구방법과 달리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증거에 기반 한 보다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방법에 관심을 보였다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는 서양생물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업을 했으며이 작업이 바로 이 섬에서 마련된 것이다. (참고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지음아르테, 92-104)

 

이런 배경들을 고려해볼 때오늘날 환대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리스의 전통이 서양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자본에 의해 무력화되고인간성의 위기를 겪는 모습을 인간 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환대의 정의관에 따르면그리스는 공식적으로 야만의 길에 서기로 결정한 셈이다환대의 전통이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는 한 고전 연구자의 글에서 오늘날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레스보스 지역을 비롯한 그리스-터기 지역은 지진이 특히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것 같다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난 10월에도 강도 7.2의 강진이 그리스-터키 지역에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이 책을 읽으면서핫 스폿에서 난민 대기자들이 코로나 팬데믹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경험했을 지진을 상상해보려 했다우리도 전쟁과 공포배고픔을 극복하고자 터전을 떠난 조상의 역사가 있었음을 떠올려본다면이 난민 대기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일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우리가 당장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해도최소한 우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이 느낄법한 감정들을 이해해보도록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고대 그리스인들이 환대를 응당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보다도움을 요청하는 손님과 주인과의 관계가 인간사에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인간 섬을 읽고저물어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올해를 마무리하는 생각으로 환대의 에토스를 떠올려보았다내년에도 우리는 한동안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모두가 어렵지만 내년에는 나부터도 내 주변을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언급한 책들]


원전번역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세트

호메로스 저/천병희 역
숲 | 2007년 01월

 

역사

헤로도토스 저/김봉철 역
길 | 2016년 12월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

강대진,강성훈,김유석,김주일,이강서,이기백,정준영,한경자 공저
아카넷 | 2020년 10월

 

티마이오스

플라톤 저/김유석 역
아카넷 | 2019년 08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저/유영미 역
갈라파고스 | 2016년 03월

 

인간 섬

장 지글러 저/양영란 역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저
arte(아르테)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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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탐독가들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 새소식 2020-12-2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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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

탐독가들

박수밀 저
카모마일북스 | 2020년 12월


신청 기간 : 1228일 까지

모집 인원 : 5

발표 : 1229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신청 전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위드 코로나 시대,

지금이야말로 탐독가가 되어야 할 때!


세종, 정조, 다산, 연암, 허균…

세상을 이끌고 나간 탐독가들은 어떤 독서를 했나?


『탐독가들』은 제대로 된 독서 행위를 통해 지식과 삶을 일치시키면서 가혹한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간 고전 탐독가(耽讀家)들을 조명했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과의 만남이 뜸해지고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위드코로나 시대야말로 우리는 탐독가가 되어야 할 때이다.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고전의 탐독가들의 사례를 통하여 그들의 독서법과 세상을 이끌고 간 독서리더십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고전의 지식인들은 대개가 독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독서를 하면 선비(士)라고 하여 선비의 정체성을 책 읽기에 두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독서를 한 선비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맹목적으로 빠져 읽거나, 오로지 출세를 위해 읽거나, 읽기를 위한 읽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떤 지식인들은 독서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갔다. 그리하여 좋은 독서를 한 지식인들이 나와 세계를 어떻게 바꾸고 현실에 맞서 갔는지를 들려주고자 했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고전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전 지식인의 독서 행위가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는지 살펴보고, 진정한 리더, 좋은 리더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2부에서는 고전 시대의 다양한 독서론을 크게 실학자, 국왕, 성리학자 셋으로 구별하여 접근해 보았다. 실학자를 대표하는 연암 박지원, 국왕을 대표하는 정조, 성리학자를 대표하는 백수 양응수의 독서론을 통해 각자가 속한 신분 조건과 세계관에 따라 서로 대비되는 독서 스타일과 독서 태도를 보여준다.


* 서평단 여러분께

* 리뷰를 쓰신 뒤 함께 쓰는 블로그 ‘리뷰 썼어요!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세요.  

* 리뷰에 아래 문구를 꼭 넣어주세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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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뒤로 들고 나아간 어둠 속의 여행자’를 만나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2-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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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

리영희재단 기획/백영서,최영묵 공편
창비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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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뒤로 들고 나아간 어둠 속의 여행자를 만나다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2020)를 읽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미 선진국이 됐을 거야.” 몇 년 전 회사업무로 어느 중소기업을 처음 방문했을 때한 임원이 내게 했던 말이다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던 그 임원의 역사 인식에 충격을 받았다이 당혹스러운 주장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나는 대꾸할 한 마디도 떠올릴 수 없었다오히려 내 빈약한 논리와 무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던 사건이었다대한민국의 시민이자 생각하는 인간으로 지니고 있을 법한 기본적인 인식도나만의 논리나 언어마저 결여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사건들예를 들면 소녀상 건립 문제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관련한 기사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리영희의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는 이런 자각의 연장에서 만나게 되었다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그의 대표적인 글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았다이제 리영희의 10주기가 되는 시점에서 3-40년 전 저자가 남긴 글이 나와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그가 남기고간 유산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책을 읽으며 줄곧 염두에 두었던 물음이었다.

 

우선 리영희 선생이 밟아 온 삶이 궁금했다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에 출생하여 해방을 맞았고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입대전방에서 만 7년을 복무했다전장에서 성직자가 하는 기도에 대해 회의했던 사례는 향후 그가 어떤 삶을 취할지 짐작하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었다리영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했던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군복무 이후에는 언론인 혹은 학자로서의 소명을 발견한 것 같다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며대한민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었다또 노신을 사상적 스승으로 삼고그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했다이후 자신이 관찰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본질을 파고들어주체적인 앎을 평생 추구했다이런 모습은 리영희의 자기 성찰적 사유와 정신이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남게 된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리영희가 사유했던 주제들을 두 가지 큰 틀에서 이해해볼 수 있겠다하나는 일제의 식민주의와 그 영향이며다른 하나는 반공주의(냉전체제)가 미친 영향이다물론 현대사의 여러 국면에서 이 두 가지가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예를 들면 정치 검찰’, ‘체제 언론’,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이 식민주의의 잔재와 반공주의가 구축한 질서 모두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식민주의와 그 영향이 뚜렷한 주제에 관해서는 앞서 언급한 임원의 발언을 떠올리며우선 저자의 사유와 지혜를 발견하고자 했다.

 

식민주의와 관련한 주제는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저자의 논평을 참고할 수 있겠다저자는 문제의 시작이 한국전쟁 직후일본 정부에 대한 미군정의 재군비 명령에 있다고 보았다한 나라의 교과서는 해당 사회 내지 국가의 이데올로기의 집약이기에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 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개정하는 일은 과거를 왜곡하고 국민을 세뇌하기에 문제가 된다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를 끊임없이 왜곡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작년에 일본 기업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다이후 나타난 일본 상품 불매’ 움직임은 이미 1984년에도 있었다이제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극일을 외치며 또다시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준엄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는 공감과 동시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우리 사회가 진실로 해방되지 못했다고 우려했을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한편 저자는 해방 이후 30년간이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한 가치관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주의다”(40), 라고 글에서 밝혔다이 문제는 그의 글이 반공법에 위반되어 체포된 후 수감상태에서 작성한 상고이유서와 되풀이해서 불거지는 핵무기·미사일 위기의 원인이 된 셈이다무엇보다 미국의 단독 군사 패권주의의 행보로 군산복합체가 짜놓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 한반도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알게 되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특히 한반도가 미국 군사력의 실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정황적 인식은 충격적이었다곧 평화를 두려워하는 미국 주전 세력의 분열증에 전 세계의 평화가 달려 있었다북한에 대한 지나친 경제 제재와 편파적 태도-미 팀스프리트 훈련을 통해 본 미국은 언제든 북한에 대한 공격구실을 마련할 수 있는 국가였다리영희였다면 우리가 진실에 토대한 인식능력이 있는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한일관계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북한을 비롯하여 미국중국일본러시아베트남과의 국제 문제는 무엇보다 식민주의의 잔재와 냉전체제특히 광신적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다그리고 이것은 미국일본의 통치 방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국민을 통제하는데 앞장서서 활용했던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남긴 유산과도 관련이 있었다이들이 지금 내 삶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리영희는 개별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현상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치열하게 파헤치고깨달은 인식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식민주의반공주의에 뿌리 내린 세계 질서에 더하여국경을 초월하여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산다이에 대해 리영희는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399)할 때라고 답하지 않을까싶다지금 내 삶을 좌우하는 사회의 관습과 수많은 당연함에 대해 그것이 왜 그래야 하는가를 따져 묻고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무엇보다 리영희의 선집을 읽은 시간은그의 문제의식과 사유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고고마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낀 시간이었다.

 

선집의 글을 따라가다 헤매던 순간시인 단테가 쓴 신곡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당신은 등불을 뒤로 들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현명하게 만드는,

어둠 속의 외로운 여행자셨지요.

단테,신곡연옥편, 22박상진 옮김

 

시인 스타티우스가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말하는 대목이었다리영희 역시 스타티우스가 묘사한 베르길리우스처럼뒤따르는 이들의 발길을 밝혀주기 위해 등불을 뒤로 들고 앞장서며 어둠 속을 나아간 여행자처럼 보였다.

 

 

 

"해방 이후 30년간, 이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한 가치관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주의다"

- (40면)

"독서를 통해 자신의 단단한 지적 몽매가 한구석씩 깨어지는 순간의 감격은 거의 종교적 희열과 가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 (399면)

- 자유인이 되기 위한 독서를 당부하는 선생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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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론자 데이비드 흄에 드디어 다가가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2-1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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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이비드 흄

줄리언 바지니 저/오수원 역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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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 지음 | 오수원 옮김 | [아르테]

 





경험론자 데이비드 흄에 드디어 다가가다

 

철학자들이 미학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쓴 사례는 꽤 여럿 된다. 하지만 데이비드 흄이 취미의 기준에 대해 쓴 책을 언젠가 발견했을 때 호기심이 일었지만, 감히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더랬다. 또 스피노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신학-정치론에서 기적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데이비드 흄의 기적에 관하여라는 소책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감히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만 하고,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데이비드 흄이라는 인물이 주창한 철학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런 인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흄은 많은 철학도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철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나는 이 철학자의 철학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결국 그의 책을 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데이비드 흄(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아르테)을 통해 내가 그동안 이 철학자의 철학에 대해 했던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철학자이자 철학 잡지의 발행인, 편집자인 줄리언 바지니가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그의 사상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하고자 시도한 결과물이다. 이번 리뷰는 책의 절반까지의 내용을 정리한 나름의 독후 기록이다.

 

대체로 나는 어떤 저자의 사상,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 저자의 저작물을 곧바로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는 편이지만, 철학의 경우는 항상 망설여지곤 한다. 내가 꽤 오랫동안 데이비드 흄의 저서를 지니고 있었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철학 연구자가 대상이 되는 철학자의 철학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 생애사적 측면, 그리고 해당 철학자의 철학이 형성된 배경, 그리고 그 철학자의 문제의식에 관한 전문가의 견해라면 주목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 데이비드 흄의 경우가 그랬다.

 

책의 절반정도까지 정리한 바에 따르면, 무엇보다 데이비드 흄에게 큰 영향을 준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으리란 점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바로 이 두 종류의 정보가 인간 데이비드 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711년에 흄이 태어난 에든버러는 북쪽의 아테네라고 불리던 것처럼 지적으로 파리에 필적하는 곳이었다. 당시에 에든버러의 십자가란 건물 앞에 몇 분만 서있어도 50명 가량의 천재, 박식한 이들과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처럼, 이 곳은 개방적인 지적호기심을 지닌 지식인들이 북적이던 도시였다고 한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 역시 에든버러가 배출한 근대 지식인으로, 흄과 교류했다. 나아가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와 벤자민 프랭클린과 교류했으며, 장 자크 루소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흄은 역사서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동시대인이었으며, 서로 지적으로 교류했다. 흄이 성장했던 환경이 이러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우며, 지성사적으로도 매우 호기심이 가는 주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흄은 선이 분명한 경험론자. 곧 홉스와 로크의 계승자란 점에서 흄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흄은 영국 경험론자의 원조격인 로크를 청년 시절에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것들이 철학자 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경험론의 약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흄이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을 자신의 저서에서 드러냈을 때, 그는 경험론의 약점을 몸소 그대로 보여준 셈이 되었다. 왜냐하면 본인의 부족한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 인종적인 관점에서 편견과 오류에 빠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흄의 행보가 보여준 특징은 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적 측면, 도덕 철학적 측면, 그리고 정치적 견해에 대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앎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 그는 경험론자답게, 구체적 증거와 경험을 중시했다. 플라톤과 다르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연구 방법에 있어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에 주목하고 이를 실천한 철학자이다. 한편 흄의 도덕 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중용의 덕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덕목이었다. 물론 흄은 이 중용 역시 지나치면 안된다고 경계하고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정체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았던 점도 흄과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의 유사한 측면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문필가로서의 흄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흥미롭다. 당대에 흄은 철학적 저술로서 야심차게 준비한 인성론을 발표했으나, 좋은 반응을 받지 못했다. 반면 그는 평론이나 역사서인 영국사를 통해 문필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줄리언 바지니는 흄의 글을 통해 평론이나 역사 서술이 흄의 철학 연구나 철학 사상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흄의 인성론은 실패작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소한 19세기, 20세기에 큰 발견을 낳았던 과학자 찰스 다윈과 아인슈타인은 흄의 인성론을 열심히 읽었던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흄이 살아있었다면, 최소한 대과학자 두 명이 자신이 쓴 인성론을 탐독했다는 사실에 흡족해할 것이다. 물론 역사서 영국사로마제국 쇠망사로 유명한 에드워드 기번과 볼테르의 호평을 받았다는 점으로도 흄의 글쓰기는 당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셈이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흄이 쓴 모든 서적이 카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독후 기록에서는 흄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 후였지만, 또 다시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 파리로 가는 대목까지만 정리를 해보았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언급대로 철학자와 그의 철학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시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잠깐 언급되었지만, 경험을 중시하는 흄의 태도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의 방법론으로 귀결이 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철학자로서 흄이 품고 있던 문제의식은 어떤 것이고, 그의 사유가 어떤 시·공간적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서 철학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한편인성론에서 피력한 흄의 회의론은 이성을 무시했다는 당대 및 후대 지식인들의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이성만이전부가 아님을 이성을 통해 주장한 셈이었다. 나아가 그는 오히려 이성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론도 중용의 가치에 따라 어떤 대상이나 견해의 지나침을 경계했던 흄의 사유를 생각할 때 이해할만한 것이 되었다. 인간은 시대와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흄의 철학에 가까이 가고자 할 때, 이 책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시작하여 철학자의 사유 방식과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그의 저작에 접근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췌문]

"개인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면 배울 점이 있는 모든 것에서 가르침을 얻으라."(30) - 흄의 금언


"흄의 사유가 지향하는 바는 언제나 인간 본성이었다."(38) 

- 저자 줄리언 바지니의 첨언.


"흄은 이성 자체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이성이 모든 사실을 밝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했을 따름이다. 즉 이성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다시 검토해보자는 것이었다."(81)

"이성의 작용에 관한 회의론으로 얻는 결실은 중용과 겸허함이다."(102)

- 흄의 온건한 회의주의/학구적인 철학


"중용 또한 중용으로 다스려야 한다. 즉 중용 또한 지나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122)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클래식클라우드 #데이비드흄 #줄리언바지니 #에든버러 #오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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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2-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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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픽노블 모비 딕

크리스토프 샤부테 저/이현희 역
문학동네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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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 일러스트 모비 딕(2019), 그래픽 노블 모비 딕(2019), 

야만인을 기다리며(2019)을 읽고

 

경계를 넘다

 

문학사에서 간결하고 매력적인 첫 문장을 지닌 소설을 꼽으라면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이 소설은 출간 이후 신성 모독적이고 불경한소설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비주의적이고 이교도적인 분위기와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설 여기저기에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멜빌이 일종의 경계 넘기를 시도한 소설로 읽었다.

 

이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작가의 시대부터 시작해야한다. 멜빌이 이 소설을 썼던 1850년 즈음, 미국사회는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온갖 모순이 뒤섞인 혼돈 상태였을 것이다. 이때는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고, 기차가 건설되어 대륙 양안이 연결되었고, 때마침 캘리포니아 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골드러시가 시작된 시기였다. 여기에 문명화된자본주의 사회는 고질적 병폐인 공황의 후유증을 앓으며, 노예제도라는 야만을 기반으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모비 딕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소설을 복수심에 불타는 포경선 선장이 카샬로 블랑슈(흰 향유고래)를 스토킹하다 파멸하는 이야기로만 읽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한 층위가 존재한다. 이슈미얼은 배를 타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뛰어 들었다. 화자의 공간적 경계 넘기는 인종에 대한 편견을 넘는 인식의 경계 넘기로 이어진다. 작가는 1장에서부터 이 세상에서 노예 아닌 자 그 누구란 말인가?”(39)라고 당시에 민감했던 문제를 건드린다. 하지만 멜빌은 백인 사회의 모순이 초래한 긴장을 한 에피소드에서 위트 있게 해소한다. 이슈미얼은 배를 타기 전 머물게 된 여인숙에서 머리를 팔러 다니던식인종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이슈미얼은 편견과 무지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편집증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관찰한 화자는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에는 담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가 된다. 이슈미얼이 저 남자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내가 그를 무서워하는 것만큼 그도 내가 무서울 것이다. 술 취한 기독교인이랑 자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게 낫지”(67), 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가 사회의 관습과 편견이 만든 경계를 넘은 사건으로 읽었다. 멜빌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 에피소드에서 솜씨 있게 드러냈다. 백인 문명이 피부색으로 규정했던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포경선 안에서처럼, 한 이불 아래에서도 그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이번엔 조금 다른 경계 넘기로 그래픽 노블 모비 딕을 읽어본다. 일러스트 판에서 판화가 록웰 켄트는 간결한 선으로 인물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냈다. 반면 크리스토프 샤부테가 각색하고 그린 그래픽 노블에서는 소설의 주요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담겨있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차이점 하나는 모비 딕이 물어뜯은 에이해브의 다리가 서로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러스트 판에서 에이해브가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댄 곳이 왼쪽 다리인 반면, 그래픽 노블에서는 오른쪽 다리에 나무로 만든 의족을 대고 있다.

 

원작에서는 모비 딕이 선장의 어느 쪽 다리를 물어갔는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의 여러 대중 매체에서 묘사되는 에이해브를 살펴보니 모두 일러스트 판처럼 왼쪽 다리에 의족을 대고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이 현상이 내겐 꽤나 흥미롭고, 결코 사소하게 보이지 않았다. 대서양을 경계로 두 작가는 에이해브가 의족을 댄 다리를 다르게 선택한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프랑스의 작가 샤부테가 한쪽 사회에서 통용되던 관습의 경계를 넘고, 보다 자유로운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읽었다.

 

그림1  (왼쪽일러스트 모비 딕록웰 켄트가 그린 에이해브

(오른쪽그래픽노블 모비 딕크리스토프 샤부테가 그린 에이해브



마찬가지로 경계 넘기의 관점에서 J.M.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어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작가 쿳시는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법률로 공식화된 1948년보다 조금 이른 1940년에 태어났다. 이 소설은 야만적인 인종차별 정책이 한창이던 1980년에 출간되었다. 외견상 소설의 시간 및 공간적 배경은 배제되어 있지만, ‘작가의 시·공간을 염두에 두고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은 제도의 경계 밖에 있는 존재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정복했던 문명의 제국주의적 맥락에 닿아 있다. ‘백인작가 쿳시는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문명과 야만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고, 화자의 입으로 문명의 야만성을 고발한다.

 

소설의 화자는 제3제국의 변방에서 30년을 보낸 치안판사다. 이 변방은 제국의 식민지에 요새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곳이기도 하다. 치안판사는 변방에서 아무 일 없이’, 권태롭지만 조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취미로 유목민들의 폐허를 발굴하고, 이따금 유곽을 들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제3제국 경찰 졸 대령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뀐다. 졸 대령의 임무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몰아내어 야만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문명세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사실 졸 대령이 유목민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고 잡아들였던 이유는 무지로 인한 공포와 증오가 더 컸다.

 

제국경찰의 무자비한 만행을 지켜보는 화자의 시선은 인종간의 편견을 넘나드는 이슈미얼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모비 딕에서 퀘이커교도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포경선의 이름은 백인들의 정복활동으로 멸종한 인디언 부족 피쿼드에서 따온 것이다. ‘문명야만을 몰아내고자 스스로가 야만인이 되어버린 역설을 두 소설에서 발견한다. 쿳시가 소설에서 구체적인 시·공간을 제거한 것도 제3제국 하수인들의 만행이 특정 시기와 사회의 문제만이 아님을 환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곧 이 문제는 보편적인 문명사회가 지니는 편견과 억압적 관습에 관한 것이며, 작가는 이 문제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쿳시가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인식의 경계 넘기를 시도한 반면, 소설의 화자는 문명과 야만,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저항한다. 치안판사는 제국의 경계를 넘어가 졸 대령이 잡아들였던 유목민 여자를 유목민에게 넘겨주고 복귀한 후, ‘적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수감된다. 사회의 질서,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계를 지우고, 경계의 안쪽에 자리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화자는 졸 대령이야말로 문명에서 온 야만인이라고 비판하고, 경계의 어느 쪽에 서기를 거부한다. 그는 이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꿈꾸었기에 고초를 당해야 했다.

 

치안판사는 제3제국 경찰들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손이 부러지고, 코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노예처럼 끌려온 유목민들을 보고 우리는 위대한 생명의 기적이야! (...) 이 사람들을 봐라! (...) 사람들이다!”(177)라고 경찰을 향해 항변한다. “나와 졸 대령은 다르다고 주장해야 한다!”(76)라고 다짐할 때 그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 제국의 야만인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야만적인 문명에 의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가 훼손되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이에 저항하는 인간의 꿈틀거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일러스트모비 딕에서도 이슈미얼이 고래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아 경계에서 저항할 것을 외치는 대목이 나온다. “오오, 인간이여! 고래를 찬양하고 고래를 본받을 지어다! 그대도 얼음 사이에서 온기를 유지하라. 그대도 이 세상에 살되 그곳에 속하진 마라. 적도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극지에서도 계속 피가 흐르게 하라.”(483) 자신의 생명력을 위엄 있게 지키는 고래처럼 우리도 인간다움을 지켜나갈 것을 선언하는 멜빌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담겨 있다. 나는 이 대목을 가장 좋아해서, 모비 딕을 언급할 때마다 이슈미얼의 이 외침을 떠올린다.

 

일러스트모비 딕의 마지막 그림은 이슈미얼이 침몰하는 피쿼드호의 소용돌이를 뒤로하고 관-구명부표를 붙든 채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다. 반면 그래픽 노블 모비 딕은 이슈미얼이 관을 붙들고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그림 치고는 평범해 보이는데, 작가는 원작의 첫 문장을 마지막 장면에 배치해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원회귀를 떠올리게 하는 이교도적 특징을 강하게 부각한다. 관습의 경계에서 저항하고, 그 경계를 뛰어 넘는다.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리게 하는 경계의 무화라고 할 수 있을까. 오독일지라도 작가의 신선한 해석과 새로운 시도를 발견하는 일은 이 그래픽 노블을 읽는 묘미다.

 

지금까지 세 편의 작품을 경계의 관점에서 읽어보고자 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속의 세계가 대립하고 충돌하되, 어느 접점 곧, 정지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비 딕은 이야기가 끝나면 지면의 경계를 벗어나 또 다시 바다에서의 삶이 이어질 것만 같다. 이것은 경계에서 저항하기를 넘어 경계 무화하기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마지막에 이르러 요새에는 다시 평온이 찾아오고, 치안판사는 다시 야만인을 기다린다. 아마도 그 이유는 문명이 기록한 역사의 표면 아래 묻힌 유목민들의 진실한 삶을 다시금 기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계속되는 삶과 질서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이 이러한 삶과 질서를 한 번 더 믿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림2  리뷰한 책들

  일러스트 모비 딕그래픽노블 모비 딕야만인을 기다리며

표지그림초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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