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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을 연애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랑하라’ | 기본 카테고리 2021-11-2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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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저/정창 역
열린책들 | 200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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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 지음 |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4)

 

 

삶의 터전을 연애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랑하라

 

 

 

사랑에 관한 책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는 이야기였네.

 

백인들의 문명이 세계의 자원과 금을 탐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아마존의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인지 모른다. 문명은 아마존의 깊은 밀림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가는 수아르 족과 같은 원주민을 미개인으로 규정하고, 숲을 밀어버렸으며, 동물과 사람들에게 총질을 해대며 재앙을 몰고 왔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뒷담화와 무례한 오지랖으로 상처를 받았던 노인은 아내와 함께 문명이 개발하기 시작한 작은 마을 엘 오딜리오로 나와 정착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문명과 함께 혹은 그 이전에 오지에서 문명이 들어오도록 길을 만들곤 했던 선교사들이 아마존의 오지 마을 엘 이딜리오에도 도착한다. 마을을 떠나는 선교사 신부가 배를 기다리며 졸다가 떨어뜨린 책을 주워든 노인. 그는 더듬더듬 책을 읽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문자 없이, 때로는 글을 필요로 하지 않은 수아르 족과 밀림 속에서 살았던 노인은 글자를 읽으며 자신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앞에서 인용한 대목은 아직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지 못한 노인이 선교사 신부에게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 묻고 나서 연애 소설에 대해 신부가 해준 답변이었다. 신부는 자신도 지금껏 연애소설은 두 권밖에 읽지 않았다면서. 신부의 대답은 신의 사랑을 제외하고 인간들의 사랑, 연애의 감정이 무엇인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법한 답변이었다.

 

연애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신부가 내린 정의를 읽다보니 학창 시절 거의 유일하게읽어보았던 책들인 무협소설이 떠올랐다. 무협소설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남녀 주인공들이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사랑을 키워가던 그런 소설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칠레 작가 세풀베다의 대표작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이렇게 아마존 지역의 어느 오지 마을에 사는 노인을 서서히 장면 속에 등장시킨다. 작가는 아마존과 그 곳에 거주하는 원주민, 동식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백인 문명과 책읽기를 이 소설에서 대비시킨다. 노인은 선교사의 책 소개를 듣고 어느 때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노인의 책읽기는 우리가 어릴 때 책을 처음 접하고 글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하며 느꼈던 기쁨, 몰입의 행복감을 환기시켜준다. 음식을 음미하듯 한 음절 한 음절 따라 읽고, 낭독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또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 식으로 단어가 문장이 되자 노인은 이를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다. 독서와 관련한 인간의 인지기능을 연구하는 어느 연구자[1)]는 책 읽기가 인류에게 익숙하지 않은, 애초에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던가. 문자를 발명하고도 한 참 후에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접근이 가능했던 책은 인간에게 문자를 읽고 이야기를 음미하는 순수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불길한 예언과 함께 말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라는 긴 이름의 이 노인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굶어죽을 정도로 힘들게 살다가 수아르 족으로부터 돌봄과 가르침을 얻는다. 밀림에서 자연과 더불어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 이즈음 아마존을 개발하려는 문명에서 온 이들, 금을 캐어 일확천금을 노린 노다지꾼들이 밀림에 출몰하면서 서서히 비극은 시작한다. 노인은 원주민 친구를 죽인 백인에 대한 복수를 총으로대신했다. 하지만 수아르 족에게는 이들만의 계율이 있었으니, 복수를 하더라도 이들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노인은 백인의 총으로 복수를 했기에, 부족의 계율을 어긴 셈이 되었고, 부족을 떠나야 했다. 다시 엘 이딜리오라는 작은 마을로 돌아오게 된 노인은 이 곳에서 책을 알게 되고, 글을 읽는 기쁨을, 책을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발견한다. 다만 이렇게 순수한 기쁨도 어느 날 떠내려온 금발의 백인 시체로 오래가지 않았다.

 

사망한 백인은 밀림 속에서 살쾡이 새끼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먹이를 구하러 집을 비웠을 암살쾡이는 이제 인간을 상대로 복수에 나섰던 것이다. 이 금발의 양키는 밀림의 첫 번째 복수였던 셈이다. 노인의 말대로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153) 숱한 역사에서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을의 읍장은 사람을 공격하는짐승을 제거하기 위해 수색대를 꾸린다. 읍장은 밀림에 경험이 많은 노인에게 강요하듯 수색대에 포함시켜 밀림 속으로 길을 떠난다. 밀림 속에서 읍장이 보여주는 행동은 자연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맨발로 가라는 제안을 거부하고 장화를 신고 가다가 전갈이 바글바글한 진흙탕에 빠져 결국 장화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한 밤중에 전등을 키고 밀림을 깨워 일행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밀림의 법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자연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밀림은 동물이 배설물을 배출하면 곧이어 밀림의 개미를 비롯한 동물들이 달려드는 곳이다.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밀림 속에서 생명을 잃으면, 개미들과 새들을 비롯한 숲 속의 동물들은 반나절도 안 되어 사체의 백골만을 남겨놓는다. 노인이 죽음에 대해 갖게 된 시각 역시 깊은 밀림 속에 살며 밀림의 규칙을 익힌 수아르 족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153)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밀림에 사는 유일한 조건이라면 밀림 세계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이렇게 바라보게 된 노인은 지나치게 대담한 행동을 하던 암살쾡이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새끼들이 사람의 손에 죽었고, 상처를 입고 비쩍 말라버린 수컷 살쾡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던 상황을 떠올려본다. 아마도 암컷 살쾡이는 수컷의 고통이 긑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마지막 선택, 죽음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난 후 노인은 암살쾡이의 입장에서 이 짐승이 원하던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노인이 보기에 살쾡이는 속임수를 쓰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보다는 대담한 맞대결의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노인은 이 대결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소설은 이제 인간과 동물, 문명과 밀림 간에 벌어지는 최후의 대결로 이어진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유랑을 하게 된 작가였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권위주의적 강압 정책을 내세운 피노체트 정권의 위협으로부터 오로지 살기 위해모국을 떠나야 했던 인물이었다. 소설 속 노인 역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신을 압박하며 숨 막히게 만드는 삶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었다. 세풀베다도 유랑하는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작가의 눈길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백인 문명의 위력과 폐해, 그리고 희생자들에게도 머물렀다. 한 때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그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인간이 자연과 맺는 파괴적인 관계를 비판하고 회복을 촉구하는 소설을 쓰게 된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개발 문명 세력의 사주로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설 속에서 노인은 사람을 공격하는 밀림의 짐승을 죽이려는 수색대에 마지못해 합류하게 되지만, 살쾡이와 벌인 최후의 대결 후 그는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린다. 자연 속에서 공존의 지혜를 잃어버린 인간은 자연의 복수에 또 다시 자연을 파괴하는 악의 순환 고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이러한 대결은 노인에게 결코 명예롭지 못한 싸움이었다. 인간이 자연과 벌이는 이런 무모한 대결과 갈등은 노인이 좋아하는 연애 소설 속의 사랑에 빠진인물 사이의 관계와 대비된다. 연인 사이의 행복을 가로막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연인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결국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노인은 부끄러움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강물에 엽총을 던져 버리고, 다시 연애 소설이 있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으로 가는 길일 테다. 어쩌면 연애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통속적 구도와 교훈이야말로 자연을 파괴하며 자멸할 위기 앞에 놓인 인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은 아닐까.

 

 

[참고]  1)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의 저자.

 

 

 

[책 속으로]

[1]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45)

 

[2]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 (130)

-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

 

[3]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면 끝까지 헤매는 곳이 밀림이라고요.” (138)

 

[4] “그들(수아르 족)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153)

- 노인의 죽음에 대한 시각

 

[5]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153)

 

[6] “친구, 미안하군. 그 빌어먹을 양키놈이 우리 모두의 삶을 망쳐 놓고 만 거야.” (171)

- 죽어가는 수컷 살쾡이를 총으로 죽여 고통을 끝내준 노인의 독백

 

[7]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179)

 

[8]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이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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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 제1차 대전 종전일 | 기본 카테고리 2021-11-1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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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 1차 대전 종전일

  

[1]

어제 다른 날보다 늦게 퇴근하는 아내와 따듯한 국수 한 그릇 먹고 들어오려고 지하철에 마중을 나갔다. 개찰구 옆에서 기다리는 동안 몇몇 젊은 남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다음날(1111)이 일명 *로 데이라서 그랬나 싶었다. 학창시절에 이 날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족히 25년은 더 되었을 테다. 정체불명(?)의 명절처럼 되어버린 할로윈을 포함해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되었구나 싶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세대가 주인공이지 싶다.

 

 

[2]

오늘이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탄생 200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는 18211111일에 태어나 188129일 사망했다. 여러 출판사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작가의 탄생 200주년 기념판으로 제작해서 내놓았다. 학창 시절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에 중년의 나이가 되어 처음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죄와 벌이다. 아니면 내가 예전에 백치를 읽었던 작품인지 가물가물하다. 죄와 벌은 작년에 읽었는데, 한 번에 다 수긍이 가는 작품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좀 더 조사와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그의 삶 자체가 마치 소설과도 같이 극적인데다 다채로운 사건들이 많아, 그의 삶에서 있었던 전환점들을 다시 살펴보고 이해해야하지 싶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세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저/홍대화,김근식,박혜경,이대우 공역
열린책들 | 2021년 11월

죄와 벌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저/이문영 역
문학동네 | 2020년 05월

백치 (상)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저/김근식 역
열린책들 | 2009년 11월

 

최근에는 그의 작품 악령을 구입했는데, 아직 시작하진 못했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 따르면 이 작품은 좀 더 어렵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악령을 읽은 다음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세계에 다가가면 좋지 않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일단 읽을 계획() 세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경우, 작년에 코너스톤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 기념판이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악령 1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저/김연경 역
민음사 | 2021년 06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저/이대우 역
열린책들 | 2009년 12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 세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저/이가영 역
코너스톤(도서) | 2020년 08월

 

 

[3]

‘1111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오늘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이 선언된 지 103년 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은 1914728일 시작하여 19181111일에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현재 우리에게는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처럼 되어 기대와 흥분을 가져다주는 날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누군가에게는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을 떠올리고 그리워했던 날이리라. 그들은 전쟁 속에서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던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 혹은 딸, 아내, 어머니였을 것이다.

 

이 날을 배경삼아 나온 소설이 생각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이 소설은 2013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소개글에 따르면 문학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문학상에 대중 문학 작가가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인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을 피하고자 간단한 정보만 언급하자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했지만 부상을 입고 귀환한 이들을 국가는 나몰라라 했다. 오히려 이들은 국가에 짐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참전 용사인 주인공은 종전 기념일인 1111일을 기념하는 기념탑 건립사업에 참여하여 국가를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글/크리스티앙 드 메테르 그림
미메시스 | 2018년 02월

 

 

[4]

프랑스 작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니 프랑스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요새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듯이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대표작 뿌리(Roots)를 읽고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던 게 생각난다. 그저 일하시느라 바빠서 책 읽으시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내가 어느 날 중고 서점에서 Roots를 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난주에 부모님 집에 들러 책을 넣어둔 박스를 뒤져 20년 넘게 읽지도 않은 상태로 먼지 쌓인 이 책을 다시 찾아 보았다.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꽤나 긴 소설인데다, 가지고 있는 번역본은 행간이 너무 작아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리는 셈치고(?) 천천히 읽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쿤타 킨테라는 흑인이다. 쿤타 킨테는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7대 조상으로 알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의 서부 끝에 있는, 현재 세네갈 지역의 숲에 있던 푸아레 부족 출신이었다. 17세가 된 어느 날 자신의 북을 만들려고 나무를 구하러 숲에 들어간 사이, 백인 노예 사냥꾼들에게 납치되어 미국 남부로 끌려왔다. 네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백인들에게 결국 붙잡혔다. 그들은 쿤타의 한쪽 다리를 도끼로 잘랐다. 이렇게 이어지는 작가 집안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와 노예제의 면모를 고발하며 보편성을 얻는 역사가 되었다.

 

뿌리 (상)

알렉스 헤일리 저/안정효 역
열린책들 | 2009년 11월

Alex Haley's Roots: An Author's Odyssey

Henig, Adam
Createspace Independent Pub | 2014년 08월

 

이 작품에서 프랑스와 관련한 사항은 아이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시 아이티는 3만 명 미만의 프랑스인이 지배하던 식민지였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 흑인 50만 명 이상을 아이티로 데려와 사탕수수, 옥수수 등의 농장에서 가혹하게 일을 시키고 착취했다. 인간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혹독한 노동환경과 현실에 불만을 품은 투생이라는 흑인이 아이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쿤타는 백인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흑인 반란군 지도자 투생을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응원했다. 이 반란은 비극으로 끝이 난다. 나폴레옹이 협상을 구실로 투생을 끌어내어 붙잡은 다음 프랑스의 어느 토굴 감옥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투생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올해 언제인가 큰 지진이 났다는 아이티 생각이 났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후예들로 유지되던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된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다.

 

눈 상태도 좋지 않고 책의 행간이 너무 좁아 뿌리(Roots)를 다 읽으려면 11월 한 달 내내 조금씩 읽어야할 것 같다. 작가 알렉스 헤일리 연보를 보니, 1921811일 생이다. 올해는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그는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맬컴 X에 관한 전기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A Life of Passion and Struggle를 쓰기도 했다. 맬컴 X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그와의 대담 및 인터뷰를 통해 구술한 사항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맬컴 X에 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뿌리(Roots)의 주인공 쿤타 킨테처럼 무슬림이면서, 무장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기억한다.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Malcolm X
Penguin Books | 2013년 07월

 

이 부분은 또 다른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The Fire Next Time)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 볼드윈이 맬컴 X와 만나 이야기하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성경에 나온 하느님의 말씀 다음번엔 불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의 죄를 벌하는 심판으로 말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입장에는 동의했지만, 흑인 인권 운동을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맬컴 X와 상반된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 제임스 볼드윈은 오히려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에 가까운 방식을 지지했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는 알렉스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보다 읽기 쉽게 행간을 넓힌 기념판을 내주었으면 한다. 뿌리(Roots)는 나머지를 다 읽고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제임스 볼드윈 저/박다솜 역
열린책들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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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케이크와 맥주

서머싯 몸 저/황소연 역
민음사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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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

: Cakes and Ale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지음 | 황소연 옮김 | [민음사]

 

 

인생의 원숙기에 접어든 작가가 말하는 위선과 진실한 삶

 

케이크와 맥주는 서머싯 몸의 대표작 인간의 굴레와 짝을 이루는 인간 탐구시리즈로 보면 되겠다. 물론 모든 소설은 작가가 탐구한 인간의 삶을 다룬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각자가 다른 색으로 보여줄 뿐이다. 결국 모든 작가의 작업은 인간이라는 주제로 수렴한다. 서머싯 몸은 무엇보다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진실과 부조리함, 자유와 예속의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토대를 이루는 기본 전제는 사랑과 죽음이다. 이렇게 시작하고 보니 다소 맥 빠지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내가 서머싯 몸의 글을 학창시절에 읽었다면 당시에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케이크와 맥주를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이 슬며시 드러나는 부분마다 꽤나 공감을 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이런 통찰을 얻으려면 적어도 작가가 40-50대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작가 연보를 살펴보았다. 1874년에 출생한 서머싯 몸은 외교관 역할을 겸하며 첩보활동을 하던 시기인 1915(41)인간의 굴레를 출판했다. 첩보 활동으로 건강을 해치고 활동을 접은 직후인 1919(45)에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삼은 달과 6펜스를 펴냈다. 오늘 다루게 될 케이크와 맥주는 보다 원숙기에 접어든 1930(56)에 출판했다. 아마도 40-50대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삶의 고민들이 작가가 소설에서 그려내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달과 6펜스에서는 고갱이라는 화가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고, 작품 전반에서 진지함으로 일관하는 듯했다. 반면 케이크와 맥주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롭고 풍자적인 시선과 위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작가가 긴장 속에서 치열하게 인간을 탐구하던 40(그리고 첩보활동을 병행하던 시기)보다는 여유로움을 찾은 50대의 모습이 소설에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에 읽은 인간의 굴레는 사실상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저 유명하다고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서머싯 몸의 소설에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했던 셈이다.

 

이 소설에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작품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하나는 작가 혹은 예술가의 성공과 위선, 자유 및 예속과 관련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진실에 관한 부분이다. 우선 전자에 대해 언급해본다. 작가가 태어난 영국은 오랜 세월동안 귀족이 세상을 지배했고,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진 세계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노동자 출신의 자녀들은 세상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장애가 많았다. 세상은 이미 기득권인 귀족 중심으로 규칙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노동자출신의 작가가 더 올라가도록 도와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는 이들이 감히세상의 중심에서 활약하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의 화자 어셴든은 성직자 가문의 도련님이다. 부모가 전하는 교양과 관점에 영향을 받은 어린 화자는 노동자 출신 가정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한다. 하지만 남들이 자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싫어하고, 우연한 기회에 노동자 출신의 작가(에드워드 드리필드)와 부인(로지)을 만나 격의 없는 교제를 하게 되면서 또 다른, 말하자면 관습에서 보다 자유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 소설은 오랫동안 계급의식이 지배하던 영국에서 지식인으로 성공과 출세를 거머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세히 보여준다. 문단 내에서 작가와 비평가와의 유착 관계, 기득권 계층 내의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 스타 작가의 허상을 드러낸다. 서민 출신의 작가 드리필드는 사회의 도덕을 조롱하듯 규범을 벗어난 일탈행동을 보인다. 아울러 노년에 그의 성공과정을 통해 계급사회의 두터운 규범과 체면으로 위선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군상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풍자 정신과 위트가 드러나는 순간은 이렇다.

 

예로부터 노인들은 그들의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 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또한 정치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별다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결과만 봐도 파단이 가능하다.)” (143)

 

책을 다 읽고 남는 인상은 다소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이랄까. 특히 작가가 표현하는 사랑관에 주목하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현재 사랑하는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계급이 인간 공동체에 등장하면서부터 따라온 체면과 위선이 강요하는 일종의 불문율일 테다. 작가 드리필드와 결혼한 로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선택하는 모든 행동은 체면치레에 급급한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부도덕한 여성이었다. 사회가 강요하는 위선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루살이처럼 내일을 고민하지 않고 현재의 감정에만 진실하고자 했다. 결국 로지는 자신의 삶에 진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은 여성이었다. 물론 그녀는 개의치 않았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그녀를 비난한 모든 이들은 결국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세상의 규범을 벗어난 로지를 비난할 때, 로지와 좋은 추억을 간직했던 어센든은 그녀를 옹호하며,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그녀는 아주 단순한 여자였어요. 건강하고 천진한 본능을 가진 여자 말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죠. 사랑을 사랑했어요. (...) 그럼 그냥 사랑의 행위라고 해 두죠. 천성이 정이 많은 여자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두 번 생각하는 법이 없었죠. 그건 악덕도 아니고 음탕한 것도 아닙니다. 천성일 뿐이죠.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어 준 거예요. 그녀 자신에게 기쁜 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바르고 순박한 여자였어요.” (274-275)

 

아마도 50대 후반에 이른 서머싯 몸이 생각하던 사랑의 원형을 어센든의 말 속에 이렇게 담아두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면에서 로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학창시절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주제다. 로지를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비난했을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사랑의 모습을 조금은 다르게 고민해보게 된다. 인생에서 단 한 명의 파트너와만 사랑해야한다고 요구하는 자는 누구인가. 인류 역사에서 계급이란 것이 생겨나기 전 인류의 초기 공동체를 떠올려본다. 이런 집단에서 이루어졌던 사랑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대에게 끌리는 감정이 들면 다가가 서로를 탐색하다가 자연스럽게 사랑의 행위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덧씌운 문명의 관습과 규범을 벗어나 서로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의 모습을 추구한 작가가 또 한 명의 영국 작가 D. L. 로렌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낸 유일한 자유인이었다.  

 

로렌스를 생각할 때 반드시 고려할만한 대상은 영국 사회가 고질적으로 지녔던 계급성이다. 로렌스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 귀향에 실린 글에서도 이 문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의 글에는 작가로 상승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면서도 동시에 광부의 아들, 곧 노동자 가정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두터운 장막과도 같은 계급 구조를 극복할 수 없었던 좌절감이 깊게 배어있다. 능력을 갖추고 열심히 노력만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영국 사회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판에 참여하기에 적절하다고 인정한 이들만이 게임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사회였다. 그들은 언제나 이 게임이 공정하다고 말해왔던 것이다. 작가 서머싯 몸은 이 지점에 주목하여 노동자 출신의 작가가 성공하는 이야기를 한 줄기로 끌고 가며 세상을 풍자했다. 내가 서머싯 몸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지점을 놓치지 않는 그의 작가 정신이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공에는 어느 정도의 운과 그만한 대가(노력과 희생)가 으레 요구된다. 물론 성공의 정도와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수긍할 것이다. 소설 속의 노 작가 드리필드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그저 애쓰면서 남들보다 오래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147)라면서 겸손한 듯 다소 냉소적으로 표현하지만, 그 역시 귀족 계층 후원자의 집중적인 관리를 받아 비로소 문단 시스템에 안착했다. 문명을 갖춘 어느 인간 사회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머싯 몸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사람을 탐구하면서 이렇게 부조리한 세계의 이면을 이야기로 솜씨 좋게 드러냈다. 서머싯 몸은 드리필드의 평전을 쓰고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하는 로이 앨로이처럼 성공에 목마른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위선적인 삶을 보여준 반면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가치 역시 인정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어셴든의 입을 통해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294)라고 언급하면서도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295)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50대 후반에 이른 서머싯 몸이 작가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하나의 위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내게 묻는다. 당신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소설의 제목 중에서 케이크는 귀족 계급이 사교 모임에서 차를 곁들이며 먹는 음식 혹은 값비싼 향신료가 들어간 기름진 저녁 식사 후 먹는 후식으로 여겨진다. 귀족들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계급성을 대표하는 음식인 셈이다. 반면 맥주(원문에서는 에일 Ale)는 계급성을 벗은 음료로서, 서민들의 삶과 함께 했던 음료였다. 노년의 드리필드가 술집에 들러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리며 한 잔씩 마셨던 음료였으니까. 몸의 대표작 달과 6펜스가 정신과 물질적 세계, 혹은 자유와 예속의 세계와 같이 대조되는 세계의 삶을 보여주듯, ‘케이크와 맥주역시 위선과 진실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케이크를 먹기 위해 오늘 체면치례 없이 진실한 사람들과의 맥주 한잔을 마다할 것인가. 아니면 내일에 대한 불안과 고민 없이 오늘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는가. 내게는 이런 문제로도 다가왔다. 계급사회 이전의 인간 공동체에서 과연 내일이란 개념은 존재했었을까. ‘내일을 대비하고자 염려하느라 오늘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일이란 문명의 필요로 만들어진 정교한 발명품이거나 문명이 만들어낸 고질병은 아닐까.

  

 

 

[책 속으로]

[1] "위선만큼 성취하기 어렵고 진이 빠지는 악덕도 없다. 위선은 한시도 늦추지 않는 경계심과 영혼을 초월하는 극기가 필요하다." (27)

 

[2] "돌이켜 보면 당시 사람들은 가식이 가득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들은 체면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 (100)

 

[3]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게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144)

 

[4]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안 돼?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줘." (224)

 

[5] "진지한 감정이란 본디 부조리를 내포하는 게 분명하다. (...) 다만 영원불멸한 지성이 보기에는 하찮은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처지에 온갖 고통에 시달리며 아등바등하는 인간이 그저 농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276)

 

[6] "청혼하는 남자가 없어서는 아니고 지금 이대로 행복하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늙은이하고 결혼하기는 싫고, 이 나이에 젊은 남자랑 결혼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니까. 한세상 신나게 살았으니 여기서 그만 마무리해도 괜찮아." (295)

- 노년의 로지가 재회한 어셴든에게 한 말

 

[7]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296)

"그이는 언제나 완벽한 신사였거든."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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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 | 새소식 2021-11-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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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

다케다 슌타로 저/전종훈 역/김재완 감수
플루토 | 2021년 11월

 

신청 기간 : 11월 8일 까지

모집 인원 : 5명

발표 : 11월 9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신청 전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젊은 양자컴퓨터 개발자 중에서 가장 빛나는 연구자가 쓴 획기적인 책.
양자컴퓨터의 본질을 보여준다!”


양자컴퓨터.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엄청난 기능을 갖고 상상초월의 능력을 펼칠 법한 기계 같다. 아무리 들어도 알쏭달쏭한 ‘양자’라는 이름까지 달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는 영화나 SF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미래의 만능 비밀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현존하는 기계다.
IBM은 2019년 1월부터 양자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누구나 IBM 웹페이지에서 양자컴퓨터를 무료로 이용해볼 수 있다. 또 구글에서는 2019년 10월 “최첨단 슈퍼컴퓨터로도 푸는 데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우리 회사의 양자컴퓨터가 200초 만에 풀었다”라고 발표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 엄청난 기계가 진짜로 있었구나! 이제부터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생각도 맞지는 않다. 아직은 말이다. 현존하는 양자컴퓨터는 (언젠가 나올) 진짜 양자컴퓨터의 미니어처 버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거대한 가능성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은 국가 방침까지 정해서 양자컴퓨터 개발에 상당한 힘을 쏟고 있고, 구글을 비롯해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IT 대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양자컴퓨터에 큰 기대감을 걸고 있으며, 언론 매체에서는 양자컴퓨터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사실상 양자컴퓨터의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피상적이거나 잘못된 정보가 넘치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컴퓨터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양자컴퓨터는 ‘어떤 문제든 처리한다, 무조건 계산이 빠르다, 조만간 실현될 것이다’라는 식의 생각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 알 수 있다.
도쿄대학교의 젊은 양자컴퓨터 개발자 다케다 슌타로 교수는 《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과연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왜 빠른지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양자컴퓨터에 얽힌 오해와 그 진짜 가능성을 밝히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의 양자컴퓨터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감을 ‘근거 있는’ 기대감으로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양자컴퓨터 개발 현장을 소개하면서 실제 양자컴퓨터 장치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사실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 언론 매체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부정적인 정보도 함께 소개한다. 독자들은 저자의 이런 설명들을 통해 양자컴퓨터의 본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평단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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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읽기와 쓰기 | 기본 카테고리 2021-11-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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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쓰기의 말들

은유 저
유유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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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은유 지음 | [유유]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읽기와 쓰기

 

이번에 쓰기의 말들을 통해 은유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글 자체가 내게 불쾌감을 주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들춰놓고, 내 안의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경험을 주기 때문이었다. 항상 결핍에만 주목하던 내가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지니고 누려온 사람임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글 쓰는 노동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삶의 현장에서 글을 쓰며 사유의 근력을 키워온 작가였다. 어쩌면 무의미한 반복에 가까워 보이는 글쓰기 노동자로 일하며 유의미한 사유를 캐냈던 사람이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49)이라고 언급하며 각자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삶을 끌어와 한 줄씩 써보라고 조언한다.

 

쓰기의 말들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구조에 따라 쓰인 글쓰기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삶에서 길어낸 깨달음을 차곡차곡 모아둔 글쓰기 도움말 상자 같다. 혹은 작가의 영업 비밀과도 같은 말들을 모아 펼쳐 놓은 책에 가깝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엇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것이 부끄러워 항상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대개는 솔직함에 한계가 보이는 글들을 쓰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 대상이나 주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만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삶과 다소간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자 의도했던 모양이다. 그럼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울분을 과감 없이 다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 아님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해본다. 대신 저자는 줄곧 자기 삶의 맥락을 만드는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에게 읽기와 쓰기는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공부였다.

 

따라서 작가가 글쓰기를 할 때면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이 과정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자하는 시도로 나아간다. 이 때 저자는 자신의 지각과 감성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나 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게 된다’(221)고 일러주었다.

 

작가의 글이 그의 몸에서 나와 내게 스며든 느낌이다. 쓰기의 말들은 얇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삶에서 끌어 올려 팔딱팔딱 뛰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머리 아프게 고민하기를 피해왔던 문제들을 저자는 독자의 사유를 갱신하는 글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어느덧 현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지식을 많이 습득해서가 아니라 나와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는 쓰는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책 속으로]

 

[1]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49)

 

 

[2]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75)

 

 

[3]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필의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말” (90)

- 정약용이 언급한 표현

 

 

[4]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가며 다진 의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109)

 

 

[5]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167)

 

 

[6] “하고 싶은 일이면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문제를 핑계 삼아 그만둘 명분을 만든다.” (181)

 

 

[7] “묵독이 아닌 낭독은 어조, 억양, 공명, 논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내가 나를 벗 삼는 것, 글이 느는 지름길이다.”(187)

 

 

[8] “굳어버린 지각과 감성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과 울분이 사유를 갱신하는 글을 낳는다.”(211)

 

 

[9]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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