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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오디세이3 | 2005-01-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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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학 오디세이 3

진중권 저
휴머니스트 | 200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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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오디세이 1, 2편에 이어 10년만에 이어진 미학오디세이 3편이다. 1, 2편에서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의 예술을 에셔, 마그리트와 함께 차근차근 밟아왔다면 3편은 탈근대, 즉 현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겠다'는 미명 아래 잡다한 에세이 수준의 글에 비하면 철학적 토대가 탄탄해보이는 미학에 관한 이 책은 매력적이다. 대중이 아무리 우매하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겉표지만 요란한 책에 놀아나는 것은 아니다.
3편에서는 피라네시의 그림들과 함께 한다. 그의 그림에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구조의 건축물들이 교묘히 숨겨져있다. 바로크시대의 작가가 탈근대의 상황을 예견했다는 것은 결국 예술도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진중권도 탈근대의 다양성을 풀어내는 모티프로 세상이 창조되고 나서 일어났던 바벨탑 사건에서 갈라진 언어에 숨어있는 신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시뮬라크르'이다. 플라톤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은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술은 세상을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예술은 시뮬라크르, 즉 복제의 복제에 불과하므로 쓸모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이제 확장되어 원본 없는 복제까지도 지칭하게 되었다. 복제가 원본을 능가하는 상황, 가상이 실재를 좌지우지하는 상황, 현대는 시뮬라크르가 난무한다. 현대인들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보여주며 현실을 조종하는 미디어와 가상적인 공간인 인터넷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책 전체를 흐르고 있는 철학적 토대는 현대 사상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해석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는 예술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학과 화장실 변기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물건과 예술의 경계를 없애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것을 분류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던 근대에 대한 반동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고하게 되는 것은 '예술의 종언'이다. 현대 예술은 너무 다양해서 차이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가치의 황홀경'에 빠져있다고 한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상사가 그랬고 역사가 그랬듯 예술도 반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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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 | 2005-01-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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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반박

아멜리 노통
열린책들 | 199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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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에서 노통이 건들고자 하는 문제는 라틴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예의와 도덕의 문제인듯 하다. 고등학교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며 그야말로 평탄한 인생을 살았던 주인공은 여생을 아내와 한적하게 보낼만한 곳을 찾아 이사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그곳에서 굉장히 성가신 이웃을 만난다. 4시부터 6시까지 반기든 반기지 않든 꼬박꼬박 찾아와서는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않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이웃집 남자. 주인공과 아내가 왜 그렇게까지 거절하거나 피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예의에 사로잡혀있고 착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매일 이웃집 남자를 관찰하면서 주인공은 그가 괴로워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또한 그에게 '짐승과 같은' 아내가 있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무엇이 정말로 이웃집 남자를 돕는 일인지 고민하게 된다. 다른 쪽에서 주인공의 아내는 집에 감금당해있다시피 한 이웃집 여자를 도우려고 노력한다. 한몸과 같았던 주인공과 아내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타자의 존재에서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적의 화장법"이 생각났다.
노통의 작품은 진화하는 것 같다. 생각하고 있다가 한번에 줄줄 쓴다지만 한작품을 완성하고 또 다른 작품을 완성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발전하는 것 같다. 요즘 작품을 읽고 초창기 작품을 읽으니 확실히 요즘 작품이 재미있다. 이 소설에서는 내용 자체보다도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웃집 남자 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 묘미였다. 오히려 이야기의 결말 같은 것은 꽤나 노통스러워서 짐작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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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 2005-01-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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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저/송지수 역
문학과지성사 | 200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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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의 책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읽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아서 좋다. 눈독들이고 있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전철안에서 틈틈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타쿠에 대한 일본 사회에서의 논의가 활발했던 것인지, 저자가 일본에 나와 있는 연구 결과물들을 읽고 쓴 것인지, 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도 내가 아는 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얼마전에 읽은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에서 동양적이고 일본적으로 부드럽게 다루었던 내용을 프랑스인인 저자는 인터뷰하고 숫자를 들먹이고 원인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사회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
오타쿠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그리 좋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지 않나보다. 세번에 걸친 미디어의 오타쿠 죽이기도 그 원인이 되겠고, 오타쿠는 보통 한번쯤 이지메 당한 경험이 있고 똑똑하긴 하지만 편안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좋은 직업을 버리고 어린 아이나 좋아할만한 것을 좋아하며 자기 세계에 빠져 지내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벌이거나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위험한 테러를 벌일수도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로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타쿠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skin to skin'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줄 뿐이다. 인형, 만화, 게라지키트, 아이돌은 자신이 언제나 통제하고 속속들이 알 수 있도록 순순히 24시간 그만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괴물을 좋아하는 오타쿠는 도시를 파괴할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에 자신을 동화시키며 예전에 자신을 괴롭혔던 그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타쿠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성(性)'이다. 오타쿠는 유명한 만화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을 등장시켜 동성연애물인 야오이를 그려 사고 팔거나, 아이돌들의 사진을 찍어서 모으다 못해 보일듯 말듯한 팬티까지 찍어대는 카메라 고조가 되기도 한다. 남들은 당연히 돈을 내고 쓰는 공중전화, 전철과 같은 것을 공짜로 쓰고 아낀 돈으로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찌르는 것은 꽉 짜여진듯해 보이는 일본 고도산업자본주의의 상업주의적 체계의 허점이다. 이렇게 오타쿠는 사회에 의해 억압된 것들에 대해 반항하고 투쟁한다.
저자는 오타쿠를 대량으로 양산해낸 것은 일본 교육이라고 결론짓는듯 하다. 이 점에서 일본과 비슷한 교육열과 교육 체계를 가진 우리나라도 왕따 문제에서 필연적으로 벗어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게된다. '일본 교육 문제-> 이지메-> 오타쿠 대량 양산'이라는 도식이 신빙성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찌감치 자신만의 놀이는 포기한 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지식을 암기식, 주입식으로 머리에 쑤셔넣고 방과후에 학원에 다니며 철저히 문제 빨리 푸는 기계가 된다. 일본 교육 체제 상 점수와 관련된 경쟁은 피할 수 없고, 친구들 사이에서 월등하게 좋은 성적을 받으면 이지메의 대상으로 낙점되기도 쉽다. 이지메에 대한 상처를 가득 안은채 좋은 대학교에 가고도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고민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다가 오타쿠가 된다. 자신이 공부했던 방법대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철저히 외우고 암기하고 분류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아버린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에만 몰두하고 그것을 사랑한다. 우리나라 교육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러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오타쿠가 되어 쏟을 열정을 어디에 쏟고 있을까?
결국 이 책을 읽고 나면 오타쿠에 대한 좋았던 이미지가 사라져버린다. 서양적 사고방식에 철저히 난도질 당해 드러난 오타쿠의 실체를 알고 나면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 vs 오타쿠의 대결 구도를 보았을 때 역시 손을 들어주고 싶은 쪽은 오타쿠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들 개개인의 정신병리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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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박 | 2005-01-1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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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 저/김남주 역
열린책들 | 200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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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같지 않은 중국 이야기

아멜리노통의 두번째 소설이다. 이 책보다 후에 나오게 된 "두려움과 떨림"이 일본 사회의 모순을 지적했다고 한다면, 이 책은 중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성격이 다른 나라이기에 그 특성에 맞추어 작가는 자신이 중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묘히 숨기고 있는듯 하다.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다른 소설들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많은 나라 중 하나인 중국에서 겪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이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7살짜리가 원래 이렇게 똑똑하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궁금해질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자꾸 그녀의 요즘 작품들과 비교하게 되는 것을 보니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아무래도 작가의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았던 현란한 수사법 때문인 것 같다. 배경은 중국, 외인지구 안에 살던 어린아이들끼리의 전쟁과 주인공이 엘레나라는 여자아이를 사랑한 것이 주된 사건을 이룬다.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행동적인 전쟁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인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2차대전 이후 아직도 냉전체제가 유지되었던 그때 주인공을 포함한 아이들은 독일 아이들을 적으로 삼았다. 주인공은 어른들이 사랑을 하듯 엘레나라는 아이를 사랑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엘레나를 속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주인공의 삶은 어른들의 삶의 축소판이었다. 아이들이 적을 바꾸어가면서도 그렇게 전쟁을 하는 것과, 주인공이 자신을 파괴하고자 욕망할 정도로 엘레나를 사랑했던 것은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느낌이 왔을 때 줄줄 써내려간다는 노통의 글쓰기 방식을 생각해볼 때, 주제를 뚜렷하게 잡고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나름대로 주제를 규정하기 전까지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독자는 주인공이 그들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엘레나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배경에서 나타나는 문화혁명기의 중국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그 시대 그 사회로 들어가야 하는 것의 두려움은 그렇게도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침울해하던 주인공 아버지의 표정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은 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선풍기에 비유하는가?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가 돌아가는 가난한 나라, 그뿐이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종종 묘사되었던 중국의 뭔가 본질적인 지저분함, 개인주의적이고 무질서함이 공감되는 것을 보면 이 책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가보다. 서구 사람으로서 '중국'에 대해 막연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던 사람이 그때도 많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동양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었던 것인가, 게다가 모든 것을 공개하지는 않는 땅덩이 넓은 사회주의 국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을만도 하다.
완리창청을 완리창쳉으로, 시앙샨을 시앙찬으로 밍스싼링을 밍시산링으로 번역한 것을 보니 번역하신 분이 중국어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이 성음부호만 가지고 번역을 하셨나보다. 중국어 아는 사람에게 조금만 물어보면 알 수 있는데, 한자로 쓰는 것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사소한 것인데도 괜히 마음에 걸렸다. 99년 초판에 나온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고쳐졌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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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 2005-01-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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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저/고은진 역
문학사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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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생각이 농축된 좋은 책을 읽었다. 왜 이제 번역이 되었는지 아쉽기만 하다. 하루키는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 받는 사람이고 하야오는 일본에서 심리학자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는 1996년에 나왔으니까 시기적으로 일본에 옴 진리교 사건, 한신대지진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후였고, 하루키는 "태엽감는새"를 출간한 직후였다. 책 표지에 나와있듯 과연 둘의 대화에서 일본이 처한 상황과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하는 고민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알아야할 단어가 있다.
1. 커미트먼트 commitment
(~에의) 참가, 연좌; (주의, 운동 등에의) 몰념, 헌신(to)
; (작가 등의) 현실 참여.
2. 디태치먼트 detachment
분리, 이탈; 분견. (세속, 이해 따위로부터) 초연함, 초월; 공평.
중간 중간에 어떤 의미인지 설명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별로 익숙한 단어가 아니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하루키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발전을 세단계로 나누어서 디태치먼트의 단계에서 스토리텔링의 단계로, 다시 커미트단계로 넘어왔음을 이야기했다. 하루키 초기 작품에서 굉장히 시니컬하고 쿨하며 고독한 모습을 한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의 친구 한두명이 등장할 뿐 가족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한 특징이 디태치먼트적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스토리텔링 단계, 펜 가는대로 썼기 때문에 자신도 쓰기 전에는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른단다. 그래서 작품에 대해 하는 이야기도 작가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세번째 단계는 커미트먼트의 단계이다. 일종의 작가의 사회참여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랫동안 '개인'의 개념이 명확한 외국에 나가 살면서 공동체적인 일본에서의 개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개인과 개인이 '커미트먼트'하는 것이 대해 생각한듯 하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고민하면서 일본 사회를 들여다 보았을 때 옴 진리교 사건, 한신대지진 등을 통해 일본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를 읽게 되었다. 작가로서 자신은 일본 사회에 어떻게 '커미트먼트'해야할지 고민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 사건을 취재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일 것이다. 그때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하루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하루키와 하야오는 이틀간 편안한 형식의 대화를 통해 일본 사회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커미트먼트'를 다룬 부분에서는 한국, 중국 독자들이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와 같은 하루키의 초기 소설을 특히 좋아하는 것은 유교주의 때문에 극히 공동체적인 문화에 살면서 디태치먼트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인상깊었다. '소설'을 다룬 부분에서는 하루키가 작가라는 점과 하야오가 모래놀이치료요법을 연구하고 신화, 민담과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공통분모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모래놀이치료요법은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모래상자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치료를 하는 것이다. 환자 자신이 딱히 언어화하지 않고도 이미지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환자 자신에게도 치료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루키도 소설을 쓰는 것은 자기 치료 효과가 크다고 말하는데 그 말에 크게 공감한다. '결혼'에 대해 다룬 부분에서 하야오는 '괴로워하기 위한 결혼'이라는 표현을 쓴다. 결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많은 모습에서 결혼이 행복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수십년을 따로 살았던 남이 하루 아침에 함께 산다는 일은 꼭 부부로서가 아니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태엽감는새"에서 주인공이 아내를 구하려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우물을 가리키는 일본어 '이도'는 '이드(id)'와 비슷한 발음이다. 이 소설 말고도 하루키 소설에서는 우물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이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아내의 '이드' 심층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연상시킨다. 결혼이란 그렇게 서로에 대해 깊이 아는 과정이기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재미있는 것이라고 하야오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폭력을 다룬 부분에서는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로 일본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분석한다. 피해자 입장인 우리로서야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본 사람들은 패전 이후 계속 사과만 하면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전쟁 때 분출했던 폭력을 다시는 분출하지 않기 위해서 내면에 꾹꾹 눌러왔기 때문에 심리적인 상처가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6, 7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서 그러한 폭력의 심리를 분출하려고 했고, 지금은 옴 진리교나 불특정다수를 노린 범죄, 이지메 등을 통해서라도 폭력을 비정상적으로 분출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태엽감는새"에서 주인공은 폭력에 대항하여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폭력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듯 하다. 동화처럼 평화롭게만 진행되는 스토리는 개연성이 없다. "peace~!"만 외친다고 폭력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야오도 폭력을 마음에만 꾹꾹 눌러담아둘 수만은 없다, 긍정적으로 분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듯 하다.

읽으면서 가장 절실히 들었던 생각은 "태엽감는새"를 다시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벌써 여러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아시아에 위치하여 많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일본의 문제라면 분명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점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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