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파란하루키의 블로그입니다
http://blog.yes24.com/odie42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파란하루키
이 블로그는 개인 공부, 단순 취미 독서 기록용 아카이브입니다.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7·9·10·11·12·13·14·15기 책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6월 스타지수 : 별5,974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리뷰
스크랩
작은책방
독립출판물
나의 리뷰
영화
-
태그
어쩌다산책 인메모리엄 femm 무늬책방 마을상점생활관 안산작은책방 한대앞역 대안적삶 책섬
2005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월별보기
최근 댓글
여전히 작은책방투어.. 
좋은 리뷰 잘 보고 갑.. 
덕분에 무라카미 하루.. 
검색하다가 최우수 리.. 
축하합니다^^;; 
많이 본 글
오늘 276 | 전체 2194957
2007-01-19 개설

2005-02 의 전체보기
립스틱 | 2005-02-27 12:01
http://blog.yes24.com/document/32996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립스틱 Lipstick

제시카 폴링스턴 저/강미경 역
뿌리와이파리 | 2003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표지 때문이었다. 겉표지를 벗기면 겉표지에 있는 립스틱 색깔같은 화려한 속표지가 나온다. 사실 립스틱에 대한 미시사적 연구를 기대했는데 역사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구석이 있다. 내용이 여성 취향의 패션 잡지처럼 잡다하고 한장 한장을 그대로 잡지에 실어도 될 것같기까지 하다. 립스틱 매니아를 자청하는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다분히 무분별한 립스틱 예찬론같아 보인다. 저자가 립스틱에 대해 조금만 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면 립스틱과 관련된 계급의식이라든지 립스틱이 건강에 미칠 수도 있는 해악을 집중적으로 탐구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서양 중심의 립스틱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 다루어 놓은 한국의 립스틱 역사가 더 눈에 들어왔다. 립스틱으로 할 수 있는 50가지일을 유머러스하게 다룬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 것들 말고는 책의 내용이 내가 립스틱을 더 좋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부분은 없는 것같다. 심심풀이로 읽기 좋은 책이다. 립스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우천염천 | 2005-02-24 03:51
http://blog.yes24.com/document/32576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서영 역
명상 | 2003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雨天炎天" 뜻은 책 제목 그대로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말이 예측할 수 없는 그리스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88년도에 하루키가 그리스와 터키 지역을 여행하고 쓴 글이다.(왜 88년도였는지가 기억에 남느냐면 글 중에 몇 번 서울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루키 연보에는 86년부터 89년까지 그리스를 여행하고 90년에 발표한 책이 "먼북소리"와 "우천염천"이라고 나와있다. 과연 두 책은 느낌이 비슷하다. 글 중에서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저널리스트'라고 대답하는 하루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하루키 책 중에는 소설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처럼 여행기도 있고 재즈에 관한 글도 있고 생활속 사소한 일을 담은 수필집도 있고 잡지에 실었던 글을 모아 출판한 책도 있다. 쓰는 글마다 책으로 출판되면 책임감이 뒤따르긴 하겠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뿌듯할 것 같다. 글 중에서 하루키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가이드북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이 책도 여행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라면 가이드북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즐겨찾지 않는 험난한 여정에서 겪은 극히 개인적인 감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하루키 특유의 유머 감각도 살아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웃을 수 있었다.
그리스 편에서는 '아토스 반도'의 수도원을 기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자는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단다. 수도사들의 금욕적인 생활을 보면 아직도 그곳은 중세의 공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터키 편에서는 정말 개성이 강한 터키 사람들이 나온다. 극히 친절하지만 한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좀처럼 보내주지 않는다던 묘사에 그들을 본적도 없는 내가 다 질렸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역과 예의를 중시하는 일본 사람들이라면 그런 터키 사람들의 성향을 불편하게 여길만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터키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 가깝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태엽감는새"와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생각났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었는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던 유원지 관람차와 비슷한 분위기의 관람차가 터키 편에 등장하고 있었다. 새로운 발견을 한 것 같아서 반가웠다.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책이 아닌만큼 번역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반에는 읽으면서 하루키 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어쩌면 '문학사상사 번역답지 않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난주님의 간결하고 쾌활한 번역이 좋은데 아쉽다. 이 책의 번역은 뭔가 너무 전문적이라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주를 달려면 하루키가 이 상황에서 왜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 상세한 설명을 해주면 좋을텐데 자주 등장하기만 해서 도움은 안되고 오히려 읽는데 거슬렸던 것 같다. 역자 후기를 읽고서야 역자 역시 하루키 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의 벽을 조금은 허물 수 있었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감상적인 글을 쓰면서 번역할 때는 너무 딱딱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담이지만 오랜만에 도서관 책이 아닌 새 책을 읽어서 새 책 넘기는 기분이 좋긴 했는데 책 윗부분에 약간의 접착제가 묻어있어서 한장 한장 떼어가며 읽느라 조금 귀찮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앙겔루스노부스 | 2005-02-18 06:02
http://blog.yes24.com/document/29888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앙겔루스 노부스

진중권 저
아웃사이더 | 2003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미학오디세이3" 이후 "현대미학강의"를 읽으려고 손을 댔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책 읽고 싶은데 생각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집어든 다른 책이다. 월간 "우리교육"에 10회에 걸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저자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지만, 그리고 "우리교육"이라는 잡지가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잡지에 실리기엔 그리 쉽지도 가볍지도 않은 내용인듯 하다. 게다가 진중권의 글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적응하는데에도 힘이 좀 들 것 같아보인다. 아무튼 같은 사람이 쓴 책이니만큼 "미학오디세이3"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고 읽다만 "현대미학강의"와도 다루는 내용이 비슷해보인다. 중간중간 그림을 곁들여가며 10개의 장에 걸쳐서 탈근대의 시각을 가지고 고대, 중세, 근대를 차례차례 밟아온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들이 '숭고', '존재론적닮기', '미메시스'인 것 같다. "미학오디세이3"을 읽을 때에는 솔직히 '숭고'라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예술에 대한 시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이미 갈려 있었다. 플라톤은 예술을 두고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 세계의 모방이라고 하며 경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버리고 철학자가 되었던 플라톤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킬 수도 있는 예술의 신적 요소를 경계하는 모습에서 예술에 대한 '애증'적인 감정마저 엿보게 된다. 플라톤 뿐만 아니라 고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영감론'의 입장을 취했다. 예술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신적 요소를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볼 수 있듯 예술에 대한 '테크네'를 인정하는 '모방론'의 입장이었다. 예술이란 분석 가능한 것이고 현실을 모방하되 보편적인 것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르네상스 시대에 극도로 '테크네'를 따르라고 압박하는 비평가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합리적 사고에 입각한 '분류'에 의해 인간과 자연도 철저하게 나누어진다. "위대함은 설득시키지 않는다. 도취시킨다."며 롱기누스에 의해 전개된 '숭고론'은 예술에서 고대인들이 어떤 신적 영감을 추구했던 것을 되새긴다. 르네상스 시대에 그것이 왜곡되어 '고대모방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근대의 합리적 이성은 모든 것을 파악하고 분류했다. 덕분에 인간은 신에게서 벗어나 주체가 되고자 했고 자연과도 예술과도 분리되었다. 근대에 생겨난 학문답게 미학에서 칸트, 헤겔 등은 예술을 바라볼 때 역시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대에는 합리적 사고와 이성을 중시했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 자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연은 인간화되어야하는 대상이었다. 인간중심주의에 입각하여 가장 위대한 것은 인간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근대적 시각에 문제 제기를 한다. 자연재해를 그린 그림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그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인가, '내가 자연보다 위대하다'거나 '자연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보편적 원리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는 것'에 대한 자만심인가. 자연은 단순히 무서워할 대상도 아니고 알아가야할 대상도 아니다.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야하는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은 숭고할만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존재론적닮기'를 해야한다.
이 책의 제목 "앙겔루스노부스"는 파울클레의 그림 이름이다. 신천사(新天使)로 번역이 되어 있다. 파울클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유치원생 그림 같은 그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합리적 이성과 인간중심주의로 똘똘 뭉친 근대미학으로만 읽혀왔던 예술을 탈근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읽으려고 한다. 예술과 인간이 서로 '존재론적닮기'를 했으면 한다. 그리고 파울클레의 그 그림 속에 있는 천사를 닮고 싶어 한다. 이긴 자들에 의해 쓰여진 역사 속에서 잊혀지며 두번 죽임을 당해야했던 그들을 모으고 싶어하는 천사, 하지만 파라다이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천사는 날개를 접지 않고 저항하며 그들을, 과거를 끝까지 바라보고자 한다. 저항해도 미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과거에서 번쩍번쩍 생성하고 소멸하는 희망을 보며 저항한다. 그런 천사의 모습을 닮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 그런 희망을 보며 얼마전에 읽었던 "R통신"에서 저자가 젊은벗에게서 희망을 보던 것이 생각났다. 사실 나는 그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단순히 '앙겔루스노부스'가 '역사의 천사'라면 원시인들이 그린 천사의 그림이 저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울클레의 그림도 꼭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았고 뭔가 고대 벽화 같은 이미지가 풍겼기 때문이다. 천사하면 떠올리게 마련인 머리에 불빛이 있고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새하얀 옷에 깃털 같은 날개를 달고 있는 극히 중세적인 천사의 모습이 아니라 이 그림 속 천사는 우리나라 조상들이 그린 도깨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의 천사'라는 말은 역사 속에 살아있는 왜곡되지 않은 천사의 모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었을까하고. 이 책의 공식대로 하면 고대인과 '존재론적닮기'를 하는 것이다. 뭔가 친근하고 가까운 느낌의 천사.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역사의 천사'라는 것은 벤야민이 붙인 별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 가운데에 있는 천사 말이다. 위에 쓴 것이 그의 해석이고 저자는 그 해석에서 이 그림을 접했다고 했다. 어쨌든 미술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만, 파울클레의 그림도 처음 접해보았지만 내 나름대로 그림을 보며 느낀 것은 그런 것이었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던 파울클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벤야민처럼 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단지 내 나름대로 가지는 시각이 마치 천사라고 하면 틀에 박힌 그 모습만 떠올리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고 가려진 시각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R통신 | 2005-02-11 18:23
http://blog.yes24.com/document/28993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R통신

손석춘 저
한겨레신문사 | 2002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현실에 뛰어들어- Rush 저항하고- Resistance 마침내 혁명- Revolution 을 이루겠다는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40대 언론인의 러브레터"

지난 학기말 분주함을 무릅쓰고 학교 신문사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종강호에 우리대학 신문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돌아보는 기사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읽은 당시에는 회의적이었다. 특히 '중도좌파'라는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한동안 글 올렸던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 게시판에 들어가게 되었고 신문사 편집국장님께서 남겨주신 답글을 읽으며 글 올릴 때와는 조금 더 달라진 내 생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떠밀려 돈을 사랑하고 정치에는 무관심해서 취업 준비생들로 방학에도 도서관이 미여터진단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사는 것이 요즘 20대의 모습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조차 어렴풋하게 지식권력, 언론권력의 횡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뿐이다. 사실 더 많이 알고 무엇인가 해보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몰랐던 부분을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답은 나와있는 것 아닐까요?"라는 글귀가 막연해서 한편으론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기도 한다. 적어도 사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사실을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는 것, 언론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싸워서라도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자극을 받은 것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은데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저자는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고 철저히 진보 편에 서서 글을 쓰고 있다. 보수가 아닌 수구세력을 비판하고 '부자신문'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언론운동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가 '세뇌적 분위기'라는 평가는 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젊은 벗'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책 내내 젊은 벗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 이 책에는 2000년 5월부터 2002년 8월까지의 편지들이 실려있다. '산소' 학번인 나는 책을 읽으며 그때의 월드컵 열기, 반미시위와 촛불집회 같은 것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진작에 이런 책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그때 좀 더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친일언론, 족벌신문과의 투쟁이 꽤 활발했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비교적 조용한듯 하다. 그 투쟁이 완성되었다는데 대한 반증은 절대 아닐 것이다. '언론개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2004년 6월 이후로 언론개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뚝 끊긴듯해 보인다. 논의의 주제가 신행정수도 이전문제와 국가보안법으로 넘어갔기 때문인가? 아니면 2002년 당시 저자가 우려했듯 '노사모'의 열정이 일시적인 팬클럽의 감정 그 이상은 아니었거나 노무현대통령의 정치도 실패해버려 '노사모'들마저 좌절시킨 것인가? 하지만 아직도 노사모가 조, 동 신문 절독 운동을 하는 뉴스가 검색엔진에서 보이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내 눈은 항상 수구언론을 향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언론개혁운동은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해본다.
책 내내 흐르는 감상적인 분위기가 기자 출신 답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젊은 벗들이 올바른 시각을 갖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그 안타까운 마음만은 제대로 전해져왔다. 20년동안 수구언론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 '운동권(이 말 자체에도 군부독재가 부여한 특정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에 대해 거부감부터 갖기 쉬웠고 학생운동을 남의 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분열된 학생운동연합체의 모습을 보며 얼마전 뉴스에서 비치던 민주노총 내부 싸움이 떠올랐다(물론 그 뉴스에서 보여준 화면이나 들려준 이야기에도 어떤 의도성이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좋은 사회 만들어보자고 하는 일들인데 자기들의 정체성을 갖는 것도 좋지만 분열되지 말아야할 영역은 분명히 해야하지 않나하고 잘 모르지만 주제넘게 생각해본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 2005-02-11 05:58
http://blog.yes24.com/document/581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연애의 시대

권보드래 저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 2003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리뷰를 쓰는데 참고하려고 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출판계, 인문학계를 볼 때 요즘은 한국 근대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때 소개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연애의 시대"이다. 또 한권은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라는 책인데 이것도 시간 내서 꼭 읽어보고 싶다. 왜 지금 근대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까?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했다고 했다. 세계가 근대화를 겪고 있을 때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자발적 근대화가 아니라 타의적으로 끌려가고 흉내내는 겉모습만 갖춘 근대화를 이루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다시 정신 없이 6.25를 겪은 후에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눈 가려지고 억압된 삶 속에서 민주화를 위해 숱한 피를 뿌리며 근대화를 진행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근대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근대화는 정치적, 경제적, 민중 의식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군부독재 시절까지도 경제는 성장했고 민주화에의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으되 정치적으로는 뭔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강의 시간에 들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에 와서 근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지금이야말로 근대화를 완성하고 근대를 뛰어넘어야할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거시사에서 벗어나 철도, 연애, 만화처럼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역사학하는 방법이 널리 퍼진 것도 한몫했을 듯 싶다.
저자는 1920년대 초반을 '연애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연애'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나아가 동양 고유의 개념은 아니라고 한다. 이를테면 'love'라는 단어를 번역하려고 했을 때 옛날부터 있어왔던 개념인 '사랑'을 이미 기독교에서 신에 대한 감정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남녀간의 감정을 말할 때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던지 '연(戀)'과 '애(愛)'의 합성어인 '연애'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었다. 이로써 '연애'라는 말과 함께 '남녀간의 love'는 물을 건너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되었던 것이다.
'연애'라는 화두의 중심에는 신여성, 신남성이 있었다. 그들 주위로 기생, 구여성(신여성과 반대되는 개념)들이 포진해 있었다. 신여성, 신남성은 1919년 3.1 운동과 함께 개량개조론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면서 탄생한다. 3.1 운동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을 받는 여성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여성들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데다가 1920년대 문화통치가 시작되고 남성들 뿐만 아니라 '보통학교'에 다니는 '여성'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신여성, 기생들과 구여성들의 복장 대비를 통해 그들 각자의 특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아무튼 근대 서양의 합리적 사고방식과 자유, 개성 등에 대해 알게 되고 전근대적인 것을 '개조'하자는 생각을 갖는 것이 교육 받은 신여성, 신남성들의 특징이 된듯 하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것이 '사랑 없이 부모가 맺어주어서 한 조혼'이었다. 신남성은 신여성을 만나 '연애'하게 되고, 고향에서 남편 밖에 모르는 구여성인 아내에게 가서 이혼하자고 말한다. 신남성이 기생과 연애하게 되면 그의 부모는 당연히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그러면 그들은 비극의 끝으로 치닫곤 했다. 신남성과 신여성이 스위트홈을 꿈꾸며 결혼에 성공한다해도 생활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서 끝내는 파탄을 맞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대량으로 탄생한 신여성, 신남성들에 힘입어 '연애'는 192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답게 저자는 그 시절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끌어와 연애의 시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이광수의 "무정"에 나타나는 신남성, 신여성, 기생의 대립구도는 1920년대 초반에 나타날 연애의 시대를 예언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념처럼 간간히 등장하는 그 당시 신문에 실렸던 만화나 책의 삽화들은 책 읽기의 재미를 더해주고 1920년대를 살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빈번했던 연애자살, 정사(情死)관련 기사를 다루면서 신문이 현실을 만들고 현실이 다시 신문에 실리던 순환 과정도 꼬집어냈다. 근대 서양 사상과 함께 묻어온 새로운 지식 권력의 태동을 엿보게 된다. 그때부터 이미 언론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보여주며 사회를 조종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연애가 유행하면서 "사랑의 불꽃" 같은 연애서간집도 덩달아 많이 팔리게 되었고 염상섭, 김동인처럼 지식인의 한편에서는 자유연애론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보론에서는 '님'이란 연인뿐만이 아니라 철학도 될 수 있고 국가도 될 수 있고 종교도 될 수 있다고 소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주장하던 한용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연애와 독서, 육체와 사랑, 연애와 죽음 등의 주제를 통해 저자는 '개조'의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1920년대 초반 연애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학기에 "무정"을 읽은 덕분에 책을 읽기가 편했다. 책에 제시된 다른 텍스트들에도 관심이 갔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의 사회상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서 제시된 1920년대 초반의 사회상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지금도 '연애'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위 '자유연애'를 통해 결혼했다 하더라도 쉽게 이혼하곤 한다. 문화가 '연애'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돌아가곤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연애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과포화 상태인 것 아닐까? 이 책에 대한 현대에의 적용은 연애의 부활인가, 탈연애인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