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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042 | 2012-01-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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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홍기빈
책세상 | 200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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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주의적 경제학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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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인 숭고 개념을 다루시리라 기대했던 자유인문캠프 강의에서 의외로 마르크스,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새로우면서도 낯설기도 하다. 강의자께서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신 이 책을 읽었다. 역시나 "경제학을 리콜하라"가 많이 생각난다. 그 책 저자 역시 이 책을 읽었을 것만 같은, 아니면 그 책 저자도 폴라니의 생각을 좋아하거나. 아무튼 두 분 다 근현대 경제학의 한계를 말하고 싶어한다. 2001년에 나온 이 책의 주장이 전혀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2012년 현재 더욱 잘 들어맞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현대의 경제적 패러다임의 주관적 한계도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오로지 선택된 소수만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 패러다임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절제와 자립을 이상으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경제사상에 가장 반대되는 모델이 있다면, 바로 우리가 추구해온 '수출주도형 정치경제'일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수출과 고도 성장이라는 것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겨레의 통일이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은 파괴되고, 고도의 인간성 완성을 목표로 해야 할 교육제도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세워서 일 시킬 놈과 일할 놈을 나누는 모욕적인 제도가 되지 않았는가? 윤리적 가치와 인간 존중의 마음씨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그러한 가치를 밝히고 고민해야 할 학문과 문화는 돈벌이와 자랑의 수단으로 타락하지 않았는가? 누구나 즐겨 입에 담는 우리 사회의 천민성이라는 것은 한국형 수출 주도 정치경제의 귀결이 아닌가?"(163쪽) 

 

고대 그리스에서 이상적인 '경제' 활동이란 oikonomikos, 가정관리의 기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입장에서 좋은 경제 활동과 나쁜 경제 활동을 나눈다. 좋은 경제 활동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행위이고, 나쁜 경제 활동은 단지 돈벌이를 목적으로 돈을 획득하는 행위이다. 경제 활동은 폴리스라는 공동체를 기반한 상호호혜적인 행위여야 한다. 이러한 경제 활동에는 도덕, 윤리, 종교, 미학과 같은 다른 분야들과 밀접한 관계가 맺어져 있었다. 그때 상품이 갖는 가치는 쓸모에 대한 공동체의 상식에 기반한 객관성을 띤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빌려 왔으니 책에 보이는 저자의 주장이 자유주의에서 멀고 공동체주의에 가까워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이 쓸모chreia라는 단어는 "폴리스 성원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가치평가"라는 점이 분명하여, 현대 경제학의 개념인 '개인의 주관적 효용'과는 전혀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쓸모'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기 때문에 어떤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chreia가 단일한 기준이 되어준 덕분에 폴리스의 공동체적 연합이 결속되는 것이다. 이 명제는 폴리스가 행복한 삶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물건이 어떤 목적에 쓰여야 하는가에 대해 답을 주는 '집단적 좋음'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 평가인 이 '쓸모'를 기준으로 하여 어떤 물건이 다른 물건과 얼마만큼의 가치로 바뀌어야 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120쪽)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로빈슨 크루소 같은 개인이 경제 활동의 주체로 떠오르고, 경제학에서는 상품의 희소성과 개인의 '합리성'을 인간 경제 활동의 동기로 여기게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도 없었던 행위는 아니지만 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활동이 당연시 되게 되었다. 이는 상품의 가치가 안정적이었던 그리스와는 달리 근현대에는 상품의 가치가 불안정해지면서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화폐를 무한하게 소유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식으로 표현하면 옛날에는

c(상품)-c, 즉 상품끼리 물물교환 하거나,

c-m(화폐)-c', 화폐는 다른 상품을 얻기 위한 중간단계였다.

그러나 근현대에는

m-c-m', 최종적으로 돈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상품이 거래되거나

m-m', 상품이라는 중간단계 없이 돈만 거래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생겼다.

 

저자는 위와 같은 비정상적인 자본주의적 가치 전도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들으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5장을 읽어보아야 한다. 근현대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자본주의적 경제 활동 외에도 다른 삶의 방식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생존을 위해 '오늘의 양식'을 얻기 위한 돈과, 무한에 가깝게 돈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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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NOT FOR PROFIT | 2012-01-2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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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마사 누스바움 저/우석영 역
궁리출판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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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당연한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도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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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블로그 친구분께서 극찬하신 리뷰를 읽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목만 봐도 매력적이고, 목차를 보니 예술 교육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서 기대가 컸다. 마침 스터디를 할 기회가 생겨 이 책을 추천해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식상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추상적, 이론적, 이상주의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시장이 아니며 공교육에서 인문교양예술교육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도덕 교사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 이 책에서 식상한 느낌을 받는 것이 우리만 그런 것인지, 교육이 아닌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도덕이 아닌 다른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는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누스바움의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납득하는 것처럼, 반대편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 

 

아무튼 어떤 책을 읽든 필요한 부분, 납득이 되는 부분을 취하면 좋을 것이므로, 이 책에서 얻은 것들은 학생이 '세계시민'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 같은 인문교양 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색' 능력을, 예술 교육을 통해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도덕윤리 교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 파편처럼 퍼져 있던 대답들이 핵심적인 두 줄기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인문교양과 예술 교육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주장은 지금에 와서는 새롭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많고, 교육 구조를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관이 그러한 주장을 납득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저자가 계속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이나, (모든 면에서 미국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한국이나 인문교양 예술 교육의 반대 급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제 기술 본위의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이 득세하고 있다. 둘 다 삶에 '필요'한 교육이지만 둘 중 하나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흐름은 후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 누스바움의 표현을 읽다보면 종종 이 분이 낭만주의를 좋아하나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논증하는 성향 역시 직관적이고 추상적이고 숲을 보는 느낌이어서, 과연 구체적인 데이터로 효과를 입증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제'적인 교육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자가 뼛 속 깊이 '미국은 인도에 비해 인문교양 교육이 잘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온실 속 화초처럼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을 하버드 교수의 한계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런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주장이나 표현을 읽을 때마다 논문 생각이 나곤 했다.

"올컷은 이렇게 쓰고 있다. "교육이란 생각이 영혼으로부터 열려 나오며, 바깥의 사물들과 결합하고, 또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이자, 그럼으로써 그 사물들의 현실과 형태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교육이란 자기 실현self-realization이다." 이는 플라톤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헤겔의 목소리이지만, 교육법의 측면에서 그 핵심은 다분히 소크라테스적이다."(115쪽)

'헤겔의 목소리'에 대한 (역자 주)

cf. 역자는 빌둥을 Buildung으로 표기하고 있다. 독일어에서는 Bildung으로 표기하던데, Buildung은 빌둥의 영어식 표현인가??

 

낭만주의의 핵심어 중 하나가 '자유'인 만큼, 스터디를 위해 정리하며 책을 읽는 동안 지난 학교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함께 스터디를 한 선생님들은 나보다 훨씬 느슨한 학급경영을 하셨던 것 같다, 그만큼 내가 권위적이고 통제를 좋아하는 교사였음을 느끼고 반성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생각한 것을 현장에서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 또 부딪칠 구조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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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모아 로맨스 | 영화 2012-01-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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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티끌모아 로맨스

김정환
한국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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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타임용 영화라 불러본다.

 

무한경쟁사회에 내몰린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는 척 하지만

너무 돈돈돈 거려서 사실은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론은 믿음직해보이는 사람도 은행(증권??)도 완전히는 믿지 마라 정도??

여주인공이 꼭 돈 드는 일인 '종교, 병, 연애'는 자기 인생에 없게 한다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찌질한 캐릭터를 연기하기에는 배우들이 너무 세련된 이미지라,

좀 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송중기님 드라마와 달리 너무 망가지신 거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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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 2012-01-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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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저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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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의 달달한 위로의 차원을 넘어서자, 나와 우리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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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페이퍼"에 실린 저자의 트윗글들 때문에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알고보니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쓰셨고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분이시다. 사회적 갈등을 세대의 틀로만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어쩔 수 없이 '얼마나 젊은 교수님'이기에 이렇게 자유롭고 진보적인 강의를 하셨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1971년 생이시란다.

 

이 책 리뷰를 쓰고 싶다고 신청하면서 기대했던 바는 예전에 고미숙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이 주는 달달한 위로가 아니라 좀 더 참신하고 정직한 시각으로 자신과 세계를 보는 눈을 이 책이 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책은 88만원세대 청춘들에게 여전히 어떤 위로를 하고 있다는 면에서 위의 기대와는 어긋나나 싶기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역시 그런 '달달한 위로'와는 차원이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받는 위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네가 가진 상처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하자고 이야기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상처를 사회적인 것으로 보고 그 사회 속 인간이 삶에서 만나는 파국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못되고 어그러진 부분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방향을 바로 잡자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위로가 집단적인 참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전히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자기계발서나 '위로'서들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게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문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네 문제이니 네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이다. 그래서 위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절망과 불안을 집단적인 참여가 아니라 개인적인 위로를 소비하는 형태로 해결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불안뿐이다. 가난과 탈락의 불안이 영혼을 지배한다. 필사적으로 노력하더라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 스펙이나 쌓으면서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 격려하고 위로해주면서 잘 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그 길이 아니다"가 아니라 "조급해하지 말라"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말이 이 불안을 잠시나마 안정시킬 수 있는 진정제다."(244쪽)

 

저자는 특정한 개념들을 재정의하면서 그 단어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바꾸고자 시도한다. 금방 해결되지 않으면 화내고 실망하는 '기대'가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고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희망'을 갖자.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힘'이 아니라 나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숨는 것이 아니라 악의에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실어줄 수 있는 '용기'를 갖자. 다양한 행위들을 수박 겉핥기처럼 소비해버리는 '체험'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깊이 있게 '경험'하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꼭지가 도는 '격노'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합당한 일에 '분노'하자. 얕은 감정이입으로 '공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타인과 내가 같은 운명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이 있게 '동감'하자. 

 

안 그래도 요즘 책들을 읽어치우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열심히 '감상'하고, 어딘가를 과시하듯 다니는 일에 대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경험'이 아닌 '체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깊이 있게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표현대로 소비하듯이 흘러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모든 일이 내 계획과 통제 안에 들어와 있어야 덜 불안해지는 성향의 소유자라, 우연이나 새로운 경험을 싫어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시간과 동선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그것이 틀어지면 초조해하는 성격은 내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의 반경을 협소하게 만든다.

 

저자 자신도 교육을 하고 있고, 교육공동체 '벗'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해서인지 책에는 요즘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위의 내용은 교사라서 그런지 너무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음으로까지 내몰곤 하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서열화 추구는 교육 주체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질주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는 '나라도 살아 남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꼰대'가 아니라 진정한 '어른' 같은 선생님이 되는 일에 내 생애 동안 접근할 수는 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으로선 결코 낯설지 않은 아래와 같은 상황을 곱씹어보면서 아직도 아이 같은 나는 다시금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지 생각한다.  

 

 

저자가 삶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그 내용은 쉽게 읽어치울 수 없는 무거운 것들이다. 군데군데 굉장히 공감되는 문장들도 많았다. 이 책 내용이 더욱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책이 대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글들, 생각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책을 읽는 대학생들이 고립되고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지고 동료를 찾고 참여,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는 이들에게 위로와 대안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강의를 할 때마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겠다고 못 박곤 한다고 말했지만, 두더지가 되자는 그의 주장 자체가 굉장히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다가왔다. 트위터, 팟캐스트를 통해 의외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두더지들처럼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던 사건 중 하나가 나꼼수 무료공연 때였다고 생각한다. 파국을 맞은 같은 운명공동체로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동료로서 힘을 합쳐,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급격히 전환된 국면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시도를 나는 거기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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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언어로 보는 문화 | 2012-01-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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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기 도이처 저/윤영삼 역
21세기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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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언어학을 넘어서서 인지와 언어, 언어습관과 사고방식의 관계를 규명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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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과 타자중심의 끊임없는 경계 고침을 '언어학'에 적용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저자는 객관성과 주관성, 보편성과 상대성 사이의 싸움 속에서 언어의 역사가 밟아온 과정을 보여준다. 언어의 습득을 '자연, 본성, 결정, 생득'과 '문화, 교육, (자유)의지, 후천)' 중 한 가지로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언어 습득과 사용을 '제약 속의 자유'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생득적인 자연을 넘어 서서 인간 언어가 문화의 영향도 받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달리 말하면 저자는 한동안 언어학계의 주류였던 구조주의, 즉 인간은 언어 능력의 구조를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그들의 주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뒷표지에는 '촘스키의 이론을 뒤집는 경이로운 연구!'라는 어마어마한 문구가 적혀 있다.

 

사실 이 책은 그렇게까지 무겁고 어마어마한 느낌은 아니다. 장황하고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다양한 사례를 늘어놓다가 어느새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주장으로 돌아와 독자를 설득하는 모습에서 인문학자의 면모를 느꼈다(사실 문과 남자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편견 어린 표현인 것 같아서 그래도 될지). 왜 굳이 '인문학자'냐면 지금까지 언어학자에 대해 객관적일 것 같은 실험 결과와 구강구조 그림들을 제시하며 딱딱한 설명을 늘어놓는 사람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어학개론이나 국어음운론 수업을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 학문은 원래 그런 이미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참신하고 흥미로우면서도 우리 삶에 가까운 사례들을 가져와 설명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야기들이 꽉 차 있는 책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크게 제1부 '거울로서의 언어', 제2부 '렌즈로서의 언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앞부분에서는 인지와 문화의 관계를 다루기 위해 색채 언어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뒷부분에서는 언어와 문화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자세히 말하면 저자는 언어가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문화가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기존의 입장들을 제시하고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원제는 "Through the Language Glass"인데 번역 출간되면서 길고 생뚱맞아 보이는 "... 빨갛다"라는 제목으로 변한 이유는 저자가 책 내내 색깔 스펙트럼에서 한 색과 다른 색을 경계짓고 색깔 이름을 명명하는 행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색깔 스펙트럼은 이미 익숙했는데 그 이유는 근대에 세밀하게 구분짓고 경계짓기를 좋아하게 된 면을 꼬집었던 후쿠오카 신이치의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과학자들은 왜 세상을 잘못 보는 것일까" http://blog.yes24.com/document/3880032 에서 똑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의 역사 속에서 파란색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파란색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어떻게 '발굴'되고 널리 사용되게 되었는지의 역사는 "블루, 색의 역사: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 http://blog.yes24.com/document/309176 에서 읽었기에 역시 익숙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우리가 지금 파란색이나 보라색으로 명명하는 대상의 색깔을 빨갛다고 묘사한 것은 그때에는 그러한 색깔을 언어로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학사적으로 원주민들의 색채 언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파란색이나 보라색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결론은 호메로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색채를 인지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문화적으로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색깔을 얼마나 더 세밀하게 '부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근현대인들이 구분과 경계짓는 문화적 관습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자면 색깔 스펙트럼 속의 색깔 이름은 앞으로도 무한하게 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책의 뒷부분에 있다. '문화는 언어 습관을 통해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생물학계에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잘못된 주장으로 여겨져 폐기되었지만, 문화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색깔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앞으로 그 색깔을 삶 속에서 더 잘 인지하게 되고, 잘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은 자손에게 물려진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문화와 교육은 진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읽었다. 선천적인 자연 본성이나 몸의 구조라는 제약 속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 테다.

"구구이미티르어의 일상적인 대화는 태고적 시간으로부터 지리적 방향성을 훈련하도록 하는 강한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든 기준좌표를 계산하고 기억하는 습관을 계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적 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면 머지않아 노력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아도 인식할 수 있는 두 번째 천성이 될 것이다."(271쪽)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는 '공간', '젠더', '색깔'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위와 같은 주장을 전개한다. 어떤 문화권이나 공동체가 가진 문화적 습관이나 분위기는 언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급기야 그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그 공동체의 삶의 터전이 가진 특정한 지리적 속성은 공간을 묘사하는 독특한 언어 습관을 갖게 한다. 부모 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언어 습관은 자녀 세대에 물려지면서 자녀 세대의 사고 방식 속에서 그러한 공간 체계를 더 잘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한다. 저자는 세계의 다양한 언어를 실제로 분석하면서 공간, 젠더, 색깔을 나누는 기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궁금해졌던 것은 위와 같은 특정한 지리적 속성이 가진 객관성이 거기 사는 사람들의 문법을 독특하게 만든다면, 그러한 객관성과 문화 상대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규명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공간 언어의 체계를 '자기중심적 체계'와 '지리적 좌표 체계'로 구분하고 전자는 현대처럼 도시화된 환경에서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불특정 다수를 만나야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체계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후자는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환경에서 가족이나 한정된 마을 사람들만 만나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쉬운 체계라고 주장한다.  

"(현대, 도시인에게) 자기중심적 체계가 훨씬 쉽고 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앞에, 뒤에, 왼쪽에, 오른쪽에' 무엇이 있는지 항상 알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 좌표체계는 우리 몸과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곧바로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지리적 좌표체계는 우리가 어떤 곳으로 몸을 돌리더라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외부적인 개념에 의존한다. 해나 별의 위치나 지리적 풍경을 바탕으로 계산해야 (또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지리적인 좌표는 대부분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자기중심적 좌표체계가 임무를 수행하는 데 충분하지 않거나 지리적 방향이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만 사용한다."(238쪽)

 

현대가 과학주의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보니 언어학 분석에 있어서도 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전에 뇌 관련 서적에서 뇌의 컬럼구조나 브로카 영역에 대해 접했었는데, 색깔을 인지하고 그것을 부를 때 우리가 가진 몸의 구조가 근본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쓰는 말이 다르면 눈에 보이는 색깔도 다르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가진 기억에 기반을 두고 인지 과정에서 마치 포토샵처럼 뇌가 알아서 표준화와 보정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고 비체계적으로 서술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언어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주장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인간의 눈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변화하지 않았다. 색깔어휘가 세분화되고 정제되면서 거기에 길들여진 마음의 습성으로 인해 훨씬 미세한 색깔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훨씬 보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지난 200년 동안, 민족 간에 인식의 차이가 생기는 원인이 해부학적 차이에서 문화의 차이로 바뀌었다. 19세기에는 인종마다 정신적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은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며 이러한 생물학적 불균형 때문에 발전속도가 차이난다고 누구나 생각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인식적 재능의 측면에서 모든 인류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관점을 불변의 원칙처럼 받들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유전자를 민족 간의 정신적 특성의 차이를 설명하는 주요원인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화적 관습, 특히 언어로 인해 사고방식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330쪽)

 

 책을 만들다보면 실수로 오타가 생길 수 있지만, 이런 언어학 관련 서적에서의 오타는 좀 조마조마하다. 게다가 290쪽에서처럼 밤의 반댓말을 '낮'이 아닌 '낯'으로 여러 번 표기하는 실수는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메커니즘'도 메커니즘으로 표기했다가 메카니즘으로 표기했다가 왔다갔다해서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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