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파란하루키의 블로그입니다
http://blog.yes24.com/odie42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파란하루키
이 블로그는 개인 공부, 단순 취미 독서 기록용 아카이브입니다.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7·9·10·11·12·13·14·15기 책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6월 스타지수 : 별5,974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리뷰
스크랩
작은책방
독립출판물
나의 리뷰
영화
-
태그
어쩌다산책 인메모리엄 femm 무늬책방 마을상점생활관 안산작은책방 한대앞역 대안적삶 책섬
2018 / 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여전히 작은책방투어.. 
좋은 리뷰 잘 보고 갑.. 
덕분에 무라카미 하루.. 
검색하다가 최우수 리.. 
축하합니다^^;; 
많이 본 글
오늘 320 | 전체 2195001
2007-01-19 개설

2018-10 의 전체보기
17세기 음악: 서양음악사 음악세계 3 | 2018-10-30 19:2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079638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서양음악사 3

이남재 저
음악세계 | 2006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통주저음의 시대, 바로크로 넘어왔다. 감정을 중시, 음악+춤+무대 종합예술 오페라 발달 등 시대 음악 특징을 나라별로 다루고 있다. 특히 기악 음악 발달 시작 반가움!!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서양음악사 시리즈를 선배 언니 음악샘과 함께 발제문 만들며 읽어나가고 있다. 음악과 정치, 음악과 경제, 음악과 종교, 음악과 학문 등의 관계를 엿보고 있으려니 서양음악'史'를 읽는 일이 즐겁다. TMI로 신나게 설명하는데 잘 들어주셔서 (수업 안 하는 요즘) 스터디 시간이 기다려지곤 한다. 이 세 번째 시리즈는 교원대 음악교육과 이남재 교수님께서 집필하셔서 더욱 반가웠다. 6시리즈 중 제일 얇은데 핵심을 간락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세세하고 두꺼웠던 시리즈보다 훨씬 이해하기 편했다. 전체적으로 앞 시리즈들에서 인상 깊었거나 궁금했던 이슈들에 관해 답을 듣는 기분이 드는 내용들이 있어서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생산한 발제문은 훨씬 긴데, 내게 인상 깊었던 이슈만 정리해보았다.

   

1. 새로운 세계관이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구교 신교에 관한 30년 전쟁 이후). 중세 대학 7 교양 과목에 따른 음악의 위상이 달라졌는데, 중세적으로 음악을 ‘수사학’에 포함되는 일종의 ‘언어’로 보는 경향에서 근대에(고전주의자 연구에 의해?) ‘수학’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바흐의 푸가의 기법 등 대위법 계산 작곡).

 

2. 철학자들이 미학적으로 음악에 대해 논의했던 기록을 볼 때마다 흥미롭다. 근대 태동 시기에 데카르트는 음악에 관한 책을 쓰고(“음악대요”), 감정을 6가지로 분류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정념론”).

 

3.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감정’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가사의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에 따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가 중요했다. 특히 오페라가 탄생하면서 인물 성격 묘사, ‘극적 대조’를 중시한다. 몬테베르디 등 당대 작곡가들은 ‘레치타티보’ 기법을 만들어 오페라 양식을 실험했다.

 

4. 무대에서 음악+극을 상연하던 장소가 궁정에서 공공 극장으로 옮겨갔다. 대중이 누구나(돈을 내면) 오페라 등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서 고마운 시기였다고 생각했다. 한편, 요즘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한 논쟁을 보고 있으려니 현대 클래식 연주자들이나 공연 자체가(마치 연주자를 시장에 내놓고 값을 매기는 분위기, 인기 많은 연주자 팬층을 겨냥한 마케팅 등) 날이 갈수록 상업화 되고, 연주자나 청중이 음악이라는 본질보다 지엽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분위기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5. 악보에 연주할 악기(특히 현악기)를 명시했다(주법 때문이었나?). 바이올린족 악기들을 개발하고, 악기 발전에 따라 레퍼토리와 연주 기법들이 생겨났다.

 

6. 절대 왕정기 프랑스에서 발레 유행 맥락을 보면, 음악과 정치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궁정에서의 막대한 발레 상연 비용을 세금 부과로 충당해 난(프롱드의 난)이 일어나는 역사적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부수적으로 루이 13세나 14세가 공연에 직접 참여해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흥미롭다(국왕들의 음악과 발레에 대한 사랑, 루이 14세 권력 강화용 퍼포먼스 ‘태양왕’ 신화적 영웅 이미지 선전+당대 작곡가나 극작가들의 정치적 야망= 갈등, ex) 륄리; 정치적 영향력 있는 음악가가 당대 음악 형태 주도, 기록 많이 남아 후대에도 유명/경쟁자 견제, 다양한 음악 발전 막지는 않았을까?)

 

7. 음악+시+무용 시도가 유행했고 향후 프랑스어로 만든 프랑스 오페라가 발전했다. 프랑스식 레치타티보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당대 나라마다 자국어, 일상언어로 노래를 만들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페라와 발레 발달로 기악 합주 음악 역할과 기능도 발전했다. 더불어 오페라에 비해 칸타타는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8. 바로크 시대 기악 음악에서 바소 콘티누오의 중요성을 보았다. 그리고 바이올린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악기 발전에 따라 바이올린이 가진 힘, 리듬, 밝은 음색을 이용한 곡과 연주가 늘어났다.

 

9. 작곡가는 자신이 연주할 줄 아는 악기의 특징과 매력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또 자신의 연주용으로 그 악기에 관한 곡을 좀 더 잘 작곡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풀잎들 | 영화 2018-10-27 00:31
http://blog.yes24.com/document/1078832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영화]풀잎들

홍상수
한국 | 2018년 10월

영화     구매하기

홍상수 감독 영화 마니아 '퇴근길책한잔' 책방지기님 인스타에 "풀잎들" 관련 글이 올라왔기에 뭐지?? 했더니 역시나 홍상수 감독 개봉 신작이었다. "김재영과 친구들" 공연 보러 머나먼 노원까지 올라가는 김에 지난 여름 재미있게 읽은 "책방산책2"에서 소개한 "더숲 아트시네마"에 들르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마스터플랜처럼 딱 맞아떨어져 18시 영화를 보고(17:50 표기되어 있었으나 여기는 다양성 영화관 치고 특이하게 10분 늦게 상영 시작) 탈축제 현장을 뚫고 부랴부랴 KT노원지사 지하1층 노원어울림극장에 공연 시작 20분 전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표 받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더숲 아트시네마"는 상술했듯 1관짜리 영화관 뿐만 아니라 동네책방을 겸하고 있다. 안에 피아노도 있는 걸 보니 평소 공연이나 행사도 여는 모양인데다가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 유심히 보진 않았는데 갤러리 공간도 있었다. 책들을 비치용과 판매용(베스트셀러 신간 위주)으로 분야별로 구분해서 진열했다. 큐레이션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 입장 시간까지 좀 남아 잠시 구경을 했다.

*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니고 이 글은 개인적 해석과 감상이지만, 스포일러 비슷한 게 될 수도 있으니 향후 보실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관객은 나까지 네 명 정도?? 한적하게 집중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들뢰즈식 차이와 반복을 영화에서 구사하곤 했던 홍상수 감독이셔서 그런지, 요즘 그의 영화에서 자꾸만 김민희는 김민희 역을, 정진영은 홍상수 역(외모조차 비슷해 보이게 구도 잡기)을 연기하는 듯해보인다. 그래서 김민희가 남동생과 여친에게 '사랑? 결혼?'에 대해 분노하며 사자후를 발산할 때, 현실 세계에서 그 둘이 마음으로부터 분노를 표출하는 듯해보였다. 결혼할 만큼 서로 잘 아느냐고, 안 맞는데 견디며 사는 일은 서로에게 몹시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공감했다. 자신의 가족이 남들과 잘 섞이거나 견디는 성격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누나를 향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비아냥 거리는 남동생을 보면서 36세에 '결혼을 꼭 해야 하나?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라고 말하면 저런 반응이 돌아오겠구나 싶어졌다.    

 

원체 클래식 테마곡 하나 이상 씩 잘 쓰는 감독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클래식(교향곡 위주, 피아노 연주도 약간)을 곳곳에 발라놓았다. 대화 짝들 이야기 내용과 분위기에 맞추어 선택했을까. 안재홍들에게는 피아노 곡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같은 교향곡을.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등장인물들은 카페에서 사장님의 암묵적 허락 하에 가을 밤에 어울리는 깡소주를 까면서, 사장님이 카페에 항상 클래식을 켜놓으시고 참 기품 있다는 평가를 여러 차례 한다. 근작들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 대화 속에는 인간에 대한 평가가 난무한다. 교양 있게 포장해서 김민희에게 작업 거는 정진영은 김민희가 비범해보인다고 말한다. 투신자살한 교수를 두고는 비리 같은 걸로 죽을 사람이 아니라며 얼마나 고고한 분이셨냐고 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평가하면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묻는다.

 

마치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에서 결국 키리시마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듯, 등장인물들의 소재가 되는 자살한 지인들은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자살의 원인도 명확하지 않다. 남겨진 사람들은 괴로워하(는척하)며 그 죽음에 대해 좀 더 책임이 큰 사람을 찾아 나선다. "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한다. 자살해서 거론된 두 사람 모두 아마도 '사랑' 맥락에서 상대방이 무책임했거나 은연중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듯한 대화가 오간다. 안재홍들이 나눈 마지막 대화 장면은 실소하게 만들었다. 친구가 자살했다고 슬퍼하는 척하면서 죽음을 그렇게 소비하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행태 얼마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지. 어쨌든 김민희 마음 속 냉소적인 독백 대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와 같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존재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오늘을 산다. 마지막 장면에 사진처럼 정지된 화면으로 등장하는 빈자리는 우리가 조만간 모두 죽을 존재임을 일깨우는 듯했다. 뭘 그리 서로 평가하고 미워하며 아등바등 사냐고, 오늘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카페가 있을 듯하지 않은 동네에 자리한 카페는(게다가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술'도 마실 수 있게 허락해주는 인간적인 카페), 열려있지도 닫혀있지도 않은 공간이다. 인간은 귀가 열려 있으므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는 한은 주변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릴 테다. 김민희는 제3자로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화 내용을 엿듣고 그들을 관찰하면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글쓰기를 한다. 공교롭게 이날 카페에 모여 대화 나누는 사람들은 연극 배우였거나 현재 배우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배우로 설정한 의도가 있을까 싶다. 얼굴이 팔리는 상황이 당연할 만큼 항상 공중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 유명해서 어디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신경 쓸만한 사람들이다. 아마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할 만도 한데, 이 조그만 카페에서 그들은 큰 소리로 화내며 대화 나눈다. 김민희는 엿들으면서 당신들 왜 그렇게 부주의하냐고, '다 들려요...'라고 마음 속으로 혼잣말 한다. 들으며 이런 저런 추측을 한다. 그런 김민희에게 완전 감정이입하면서 보았다.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시종일관 가시 돋힌 듯 정색하며 반응하던 김민희는 결국 카페에서 벌어진 조촐한 술자리에 합류한다. 떨어져서 엿듣고 있지 말고 여기 와서 같이 술 한 잔 하며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결국에는 합류한다. 찌질해보이지만 철판 깔고 꾸준히 초대하는 그 말이 한 사람을 살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과도한 해석일까. 현대인은 관계를 귀찮아하는 척 하면서도 사실은 따뜻함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흑백처리도 그렇지만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떠올랐다. 서로 은연 중에 폭력을 행사하고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는 맥락에서. 전체적으로 가을 답게 쓸쓸한 마음이 드는 영화였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8        
한번 까불어보겠습니다: 어차피 나와 맞지 않는 세상, 그냥 나답게! | 2018-10-25 19:4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078548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한번 까불어보겠습니다

김종현 저
달 | 2018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사회생활 10년 남짓을 보냈기 마련인 30대 중반 우리 나이 청년이 공감할 만한 고민에 대해, 삶을 걸고 모험을 즐기고 있는 작은 책방 '퇴근길 책한잔' 책방지기 책방과 삶 이야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다음과 같은 서평단 신청글을 써서 예스이십사 리뷰어클럽에서 신간을 받아보았다. 아래에도 써 있지만 집필 당시부터 인스타에서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차다. 요즘 해야할 작업과 읽어야 할 문건이 너무 많아, 정작 하고 싶은 읽고 쓰기를 못하고 있는 나날이라(요 며칠 유의미한 포스팅이 없는 이유다) 내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지 못하고 있는 듯 불행하다. 이런 시기에 시간을 쪼개어 읽는 이 책, 독서가 꿀맛이었다.

http://blog.yes24.com/document/9801624  http://blog.yes24.com/document/10208438 이대 근처 머나먼 염리동에 들를 일이 있을 때 초원서점을 두 번 방문하는 동안 퇴근길책한잔은 항상 닫혀 있었다. 초원서점 사장님께 아쉬움을 토로했더니 그 사장님 평소에도 문을 잘 닫으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책방 앞에 세워둔 술병들을 구경하며 입맛만 다시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여전히 마음 속의 위시리스트 퇴근길책한잔. sns 활동은 활발하셔서 인스타에서 참신한 행사 기획을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다. 특히 홍상수 영화를 사랑하시어 상영회를 즐겨 열고 계시는 듯.
작은 책방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있는 요즘 고맙게도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은 책방 역시 이제야 업계에 진입하기에는 다소 늦었나 싶을 정도로 지역마다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 작은 책방 운동 초창기에 작고 투박한 책방에서 한국형 ‘책맥’ 신세계를 열었던 ‘퇴근길책한잔’이라 책방을 소개하는 책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그 책방지기가 자신의 손으로 쓴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 역시 인스타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기에(담당자와 막바지 작업 연락을 주고 받던 글을 본 게 지난 봄이었던 듯) 출간하면 당연히 찾아 읽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브로드컬리 시리즈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http://blog.yes24.com/document/10530466 에서 접한 퇴근길책한잔 책방지기 말투는 시니컬하고도 시니컬했다고 인상에 남아 있다. 직접 쓰신 책에서는 어떤 문체를 구사하고 계실지 몹시 궁금하다. 브로드컬리 인터뷰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그가 퇴사하고 책방을 열게 된 일련의 과정이었다. ‘다르게 사는 삶’이라는 문제의식 하에 그 맥락이 이후북스 책방지기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이후북스 책방일기”: http://blog.yes24.com/document/10515061 나,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책방지기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http://blog.yes24.com/document/10515149, 북바이북 책방지기 “술 먹는 책방: 동네서점 북바이북 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10669072 등과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신청해본다.

 

평소 책맥을 즐기고 있기에, 책방 컨셉 자체에 핵공감하고 있으나, 두 번 퇴짜 맞고 멀어서 언제 또 갈지 알 수 없는 '퇴근길 책한잔' 전경. 술병들이 손님을 맞는다.

 

'퇴근길책한잔'을 다룬 다른 책들에서 접한 책방지기 이미지는, 대기업에서도 일하고 사업도 했다고 하기에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세상에 83년생 친구다. 우리가 이런 나이를 보내고 있구나, 다시 말해 사회생활 10년 남짓 30대 중반이 '나 다운 삶,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시기인가 싶어졌고 책 읽는 내내 저자가 드러낸 생각들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빠른 83이라 7살에 입학했지만 중학생 때 중국에서 1년 사느라 83친구들과 함께 '이해찬 1세대'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저 주변만 떠올려봐도 82년생과 83년생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많이 다르다는 경험치가 있다. (마치 '나이주의'에 찌든 사람으로 보일까봐 걱정스러운데) 출생년도 이야기를 장황하게 밑밥으로 까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독특한 '이해찬1세대' 83년생 특성을 이 책방지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교육공무원 교사직이라는 떡을 손에서 놓지는 않고 소심하게 연수휴직 걸어놓고 실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저자가 이런 시대에 의지를 내어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자신은 비혼주의임을 외치고 자기 책에 이런 저런 진보적인 사고 방식을 당당히 주장하는 자세와 그 기저에 깔린 문제 의식에 공감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산다고 자부하는 이 시대 사축들이 보기에는 '자발적거지'를 표방하는 책방지기 삶의 방식이 낭만적인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세계와 저 세계에 양다리 걸치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자체가 부럽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의 직장생활 후, 4년 정도 사업을 했었다. 그렇게 사업을 한창 하던 시기에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증으로 인해 잘하고 있던 사업마저 정리하고 훌쩍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더랬다. 그곳에서 딱히 계획도 없이 온몸으로 무기력증을 받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무기력증은 꽤 오랜 시간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무기력증은 몸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이토록 오랜 시간 들어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잠을 자고, 어떤 날은 집밖에 나가지도 않고, 대낮에 혼자 필름포럼 같은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이런저런 모임에도 기웃댔다. 음악도 슬렁슬렁 배우고 글도 대충 끄적였다. 뭐든 열심히 하지 않았다. 몇 해 전 유행하던 말로 제대로 '미생'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발적 미생이랄까?" 17쪽.

나 같은 경우 휴직 들어와 아무도 압박하지 않는 동안에도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이런 저런 일을 만들고 아침 9시에는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하는 전형적인 현대인, 자유가 주어져도 누리기 어려워하는 인간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책방지기처럼 저렇게 지내는 삶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 읽는 초반에 이미 저자를 대단하게 보기 시작했고. 부수적으로 그러한 그를 압박하지 않을 수 있었던(물론 우리 부모님도 비슷하심, 이런 양육 방식이 오히려 자녀를 엇나가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교사로서 임상 경험치로 믿고 있음) 저자의 부모님도 인상 깊었다. 아침에 TV보고 있다가, 아들 애인이라며 씻고 나오는 사람을 급 마주쳤을 때 얼마나 놀라셨을지.

 

"이렇듯 실존을 자꾸 떠올리다보면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삶이 가벼워진 만큼 자유로워진 만큼 불안도 느끼게 된다. 어쩌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불안한 존재인 것을. 인간이 불안한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자유를 제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자유롭기에 불안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아요?"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 맞다. 불안하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자유로우니까 불안한 거죠. 원래 누구나 한줌의 불안을 가슴 위에 얹고 사는 것 아닌가요. 억지로 그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47-48쪽.

그런데 아마 그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보았기 때문에 실존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불안과 그런 마음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방식까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막 살자'가 아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삶의 방식을 만들게 했다. 요즘 푸코 공부하느라 헬레니즘 로마인 저서를 읽는 중이라 세네카를 읽고 있는지라 그런 삶의 방식이 좀 스토아 에피쿠로스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는 싫은 사람을 견디느라 고통 받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지금 만나 밥한끼 하자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혼주의자인 그가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는 자세에 괜히 공감했다. 그나저나 책방에 손님이 꽤나 없었나보다, 저자가 다독하며 자유로운 삶에 대해 실존적으로 설명하는 이런 탄탄한 이론을 구축하셨나 싶다.  

 

"몇 해 전 유럽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로마에서 현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파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모여 서로 인사 나누고 춤추는 파티였는데 그곳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이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나는 뮤지션이야."

"오, 그럼 음반도 내고 공연도 하는 거야?"

"아니. 생계를 위해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 그런데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야."

'이건 뭐지?'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선생님이라고 할 것이지 대뜸 뮤지션이라고 하다니...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돈을 버는 사람인가로만 한정해왔다. 어떻게 돈을 버는가, 얼마나 버는가가 곧 나의 정체성이 되어 나라는 존재의 가장 앞단에서 나를 수식한다. 어디를 가도 그 존재가 아닌, 직업으로 불리는 사회. 나는 이를 '먹고사니즘'이 잠식한 사회라고 부른다. 먹고살아야하는 생존의 방식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음악가도, 시인도 별로 없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먹고사니즘 때문에." 157-158쪽.

요즘 대학원에서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서 근대 이후 경제가 다른 모든 분야를 잠식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이런 현실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노동, 작업, 행위 조건을 구축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렌트는 그 책에서 근대 노동자들은 자신을 직업으로 소개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 외 나다운 삶을 위한 다른 다양한 분야들에 대해 생각할 수 없게 되었으니 슬픈 시대이다. 먹고 살기 위해 교사를 하고 있고 꿈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 듯하고, 나는 교사로서의 소명도 있고 연구나 개인적인 읽고 쓰기, 취미 생활 모두에서 나답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평생 직업 없이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넘나들며 해야 하는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으면 더욱 좋겠고 말이다. 저성장시대에 좋은 처우를 보장하는 직종 자체도 별로 남지 않을 테고, 결국은 싫은 일을 견디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리라고 추측하며 진로 교육을 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한국 작은 책방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으면서 그런 삶을 좀 더 일찍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위와 같은 문제 의식에 대한 근거를 모으고 있다. 그러므로 부디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들의 이 실험이 즐겁기를 응원하고 싶다.  

 

저자는 자신을 모험을 즐기는 외향인처럼 소개하고 있다. 인생을 걸고 이렇게 지를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순응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공무원 세계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이다(이런 맥락에서 나는 학교에서 '지혜롭게' 처신하자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통을 말해서 공론화하지 않고 어떻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올해 읽은 이후북스 책방일기처럼 책맥과 참신한 컨셉 행사를 운영하는 '퇴근길책한잔' 책방 이야기로 꽉 차있을 줄 알았는데, 반은 책방지기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주장들을 읽은 기분이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캐릭터이므로 '까부는'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고, 공감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 매력 있는 동네엔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옵니다. | 2018-10-25 19:00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078534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

후지나미 다쿠미 지음/김범수 역
황소자리 | 2017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지역이 청년 세대 이주, 정착을 도와 지속 가능하게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좋은 일자리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함을 근거를 들어 납득시키는 책.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올 봄 전주국제영화제 갔다가 영화의거리에 위치한 "두권책방"과 그 저자의 행보가 너무 인상 깊어 지역 소도시에서 유행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운동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두권책방 대표는 우깨 대표이기도 한데, 전주 출신으로 전주 지역을 살리고 청년을 모으기 위한 참신한 기획들을 실천하고 있다. "노는 게 아니라 기획하는 겁니다: 청년 기획자의 지방 생존기": http://blog.yes24.com/document/10370709 영화제 당시 전주 간 김에 역시 작은 책방인 "조지오웰의 혜안"에 찾아갔다가 그런 궁금증과 맞닿은 책이 있어서 구입해왔다. 출간 이후 예스블로그 친구들 몇 분이 읽고 리뷰 남기셨던 걸 기억하고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 교육혁신 운동 맥락에서 마을공동체운동 하시는 분들처럼 진보적인 인사가 실제 사례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서 쓰신 책이리라 기대했는데, 이 책은 생각보다 팩트인 자료 중심으로 딱딱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 서적 특유 한 챕터 한 챕터가 몹시 짤막해서 읽기 어렵지는 않았다. "19th jiff 전주국제영화제(05.09-05.11.)+ 두권책방, 조지오웰의 혜안":

http://blog.yes24.com/document/10374349

 

근거는 현란하지만 메시지는 간단하다. 지역에 젊은이가 와서 살 수 있게 하려면 그들이 생존하고 세금도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양질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현재 일본은 '지방 마을 소멸론'을 들이밀며 위기감을 조성하여 오히려 지자체들이 옆 동네와 인구수 늘리기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그에 따라 지자체들은 청년이 지역에 와서 정착하도록 돕기 위해 현찰 박치기로 지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마을은 자신의 마을이 소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폐쇄적인 마음을 버리고 외부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에게 농어업 등 기술을 전수하고 실제로 정착해 생업으로 삼아 종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지자체는 관료주의와 부서 칸막이를 버리고 민간(제3부문)이나 기업과 잘 협조해 실제로 수익이나 효과가 날 수 있는 각종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지역에 맞는 분야를 발전시키되 멀리보고 구조를 꾸준히 잘 구축해야 한다.

 

"지자체가 출생률 올리기에 나서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그 목표 달성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재원이라도 충분하다면 육아 세대에 현금 지원을 늘리거나 보육원 시설 정비를 추진하는 등 여러 정책을 펼 수 있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을 봐도 그런 대책이 반드시 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지금 상태에서 출생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외부에서 젊은층을 흡수한다는 목표 역시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지역 출신 젊은이조차 잡아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주해 온 젊은이를 정착시킨다는 게 어디 간단한 일이겠는가. 간혹 이주자 대책에 성공한 지역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지역은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이주자의 생활을 돕기 위한 기반을 만들어왔거나 도시 주민에게 매력적인 자원이 풍부한 경우이다.

지금 나오는 지방 재생전략대로라면, 행정의 일정 수준의 인구 달성을 목표로 잡은 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보조금에 의지하는 무리한 정책을 펴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56-57쪽. 

"가미카쓰정의 성공에는 마케팅과 사업계획 구축을 통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주식회사 이로도리라는 제3섹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 회사는 연수를 실시하거나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등 나뭇잎 사업의 핵심이 되는 일을 맡아서 진행한다. 이로도리의 지원 아래 나뭇잎 사업에 참가하는 세대는 과거 쌀이나 채소, 버섯, 꽃나무 등을 재배했지만 지금은 나뭇잎 사업으로 주업을 바꾸었다. 소유한 산림이나 밭에 시장성 높은 나뭇잎이 달리는 목본식물을 심고 필요할 경우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등 매우 전략적으로 재배를 하고 있다. 이를 테면 나뭇잎을 수확물로 하는 첨단농업이다. 그런데 가미카쓰정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식용 나뭇잎 판매 분야에서 가미카쓰정의 일본 내 시장 점유율은 70퍼센트에 이르러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가미카쓰정으로 이주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다만 이 나뭇잎 사업의 기회가 젊은 이주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미카쓰정에 기대를 갖는 젊은이는 매우 많다. 끊이지 않고 젊은 이주자와 인턴들이 마을을 찾아온다. 나뭇잎 사업과 병행해 마을이 추진하는 제로 웨이스트(재활용 사업) 파급 효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기 떄문이다..." 135쪽.

 

특히 나는 교사이다보니 청년들이 지역에 이주해서 아이를 낳고 오래 살기 위해서는 '그 마을에 좋은 학교가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조건 중 하나임을 절감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강원 등지에서 마을에 아이가 없어 학교를 통폐합, 폐교하는 일이 민감한 이슈이다. 그러나 마을에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학교는 존재해야 한다. 마을에 아이가 없다면 그 마을은 조만간 소멸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지금도 많은 작은학교가 없어질 위기여서, 혁신교육과 맞물려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이 필요한 상황이다. 비슷한 문제로 교통이나 상업 시설 같은 인프라 문제가 있다. 일본 중산간지역 소멸 위기 마을에는 고령자가 대다수라고 한다. 그러나 교통수단 이용자 자체가 적어지다 보니 버스 노선 등이 없어지고, 이에 따라 고령자는 교통약자가 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이미 마을에 있는 기업과 인프라를 활용해서 해결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인구 유출이 급격한 아키타현 같은 곳을 봐도 현 경계에 걸친 인구이동은 고등학교 졸업 때인 18세부터 진학, 취업, 전근 그리고 유턴 등이 마무리되는 30세 정도까지 집중되고, 그 이후에는 변동 폭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30세를 넘어선 인구의 이동만 본다면 대체로 전출과 전입 제로인 지역이 많은 상황이다. 당연히 도쿄권으로 전입초과도 18~30세 연령이 중심이다." 25쪽.

일본이 지역 재생 논의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자료들을 분석해보면 지역에서 도쿄로 유입하는 세대는 18~30세, 즉 진학과 취업 때문에 유입하리라 예측 가능한 세대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요즘 즐겁게 읽고 있는 "복학왕의 사회학"을 보면 저자는 대구에서 나고 자라 지역 대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 중에 취업을 위해 서울이나 수도권에 올라가서 정착하거나 대구로 되돌아오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교육과 일자리 등에서 지역 인프라 부족, 도시 생활에 대한 동경 같은 이유가 섞여 있는 듯해보였다. 실제로 지난 봄 대전에 갔다가 작은 책방에서 옥천에서 만드는 잡지 "옥이네"를 구입해 읽어보니, 거기 사는 청소년, 청년들은 마을에 영화관 하나도 제대로 없는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을 빠져나갈 계기가 있으면 지역 청소년, 청년들이 서울이나 수도권, 근처 대도시로 유출되는 이유다. 그러나 지역에 젊은 세대가 남지 않으면 그 지역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생긴다.  

 

위와 같은 주장들에는 (다소 보수적으로 보이면서도 현실적이어서) 십분 공감했다. 그런데 책 후반부에서 '콤팩트시티'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처음에는 '인구밀도를 왜 높여야 하지??'라며 의문이 생겼다. 도시를 구축하는데 대해 문외한이라, 한국의 서울 인구밀도가 높아 나타나는 문제만 떠올리고는, 서로 편안하게 살기 위해 인구밀도는 낮추고 인구를 옆지역으로 분산시키는 편이 오히려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 소재 마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공공 인프라들을 이용하려면 사람들이 그 가까이에 모여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마을 인구가 줄면서 교통, 학교, 일자리, 모일 공간 등 생존과 복지를 위한 인프라가 사라져가고, 그래서 또 인구가 외부로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 IT 기술이나 물류 분야 등에서의 발전을 잘 활용한다면 꼭 콤팩트시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더라도 지역에 떨어져 살고 있는 주민들이 편리한 생활을 하도록 도울 방법이 많을 듯하다는데 공감했다.

"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도시 지역을 적절하게 통제해 인구 밀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하는 게 필요하다. 도시가 지닌 다양한 기능을 집약해 시민의 접근성을 높인다면 도시의 지속성을 유지하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도시 전체를 작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콤팩트시티라는 개념을 내세워 시민들이 도시 기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접근성)은 매우 중요하다.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위해 다수의 도시 시설(행정 기능이나 상업시설 등)을 분산시켜 설치하는 것은 한마디로 낭비다. 높은 행정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시설을 나누어 분산한다고 해도 자가용 이동을 전제로 시설을 배치해서는 결국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접근이 어려운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209-210쪽.

 

아래는 청년이 읽기에 워낙 '핵공감 사이다' 발언이라 다소 길지만 옮겨둔다. 어느 다큐에서 본 어른이 본인은 요트들을 소유하고 풍족하게 살면서, '우리 시대는 더 어려웠다, 요즘 청년들은 너무 노오력을 안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기성세대가 그렇게 말할 때가 아니며, 지역에 청년이 이주, 정착해 살도록 하려면 그러한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영향력을 가진 기성세대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 거의 분노하며 제언하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기본소득' 취지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식으로 퍼주고, 현찰박치기 매력으로 끌어들여 이주시킨 후에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아래와 같은 냉철한 비판과 주장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과 앞 세대가 만든 부채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젊은 세대는 그런 상황이 터무니없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사회에 대한 불공평한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내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행정, 산업계, 교육기관 그리고 그 조직들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윗세대의 의무이다.

'잃어버린 세대'는 거품경제 붕괴이후 사회에 나왔지만 바로 쥐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인구가 저소득을 감내하며 산다. 그들을 만들어낸 것은 명백히 그 윗세대의 책임이다. 윗세대에게는 아랫세대가 더 풍족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와 산업을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 그것이 사회의 발전이며 경제성장이다.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나빠 어쩔 도리가 없다며 잃어버린 세대를 비정규직으로만 이용하는 기업 경영자나 그런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는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셈이다.

각 지역이 내세우는 지방 재생전략 역시 윗세대의 무책임한 돈 뿌리기라고 느낄 때가 결코 적지 않다. 지금 당장은 보조금 등에 의존하더라도 그 이후 저소득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세대가 많은 줄 뻔히 알면서, 마음의 풍요나 생활비 안정을 선전문구로 내세워 젊은 세대의 지방 이주를 부추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를 배신하는 행위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나이 든 사람으로서 가져야 마땅한 책임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그들의 생활만이 아니라 자녀 세대를 양육해 질 높은 교육을 시킬 만한 소득이 필요하다. 지금, 지방 재생전략으로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미래상까지 그려내는 이가 얼마나 될까." 251-252쪽.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강의에서 발제를 준비하면서 "노동의 종말": http://blog.yes24.com/document/10751964을 읽었고, "노동의 종말에 반하다"를 읽고 있다. 헬조선이 워낙 피로사회라 그렇지, 실상은 생존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위해서라도 노동을 아예 안하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극소수이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노동 구조가 노동자를 너무 착취하는 동시에 실업률도 높으며 분배를 정의롭게 하지 않아 소득 격차를 비정상적으로 키우고 있는 이 상황에 있다. 결국 노동에 관한 구조를 착하게 구축하는 문제가 남았다. 지난 여름 맑시즘에 참석했을 때, 한 연사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간다운 노동자 처우에 대해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몹시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일을 평생 감내하며 성실히 하느라 고통받거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가만히 앉아 받아들이는 자세보다는 이 상황 속에서 모두 함께 공존하기 위한 타개책을 찾고 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세부적으로 어때야 하는지, 특히 내가 몸 담고 있는 교육 분야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2학기를 보내고 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뉴욕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내한공연 with 선우예권 | - 2018-10-19 12:52
http://blog.yes24.com/document/1077169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공연]뉴욕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내한공연 with 선우예권

장르 : 클래식/무용/국악       지역 : 서울
기간 : 2018년 10월 15일 ~ 2018년 10월 15일
장소 : 롯데콘서트홀

공연     구매하기

격주 월요일에 소속한 작은 단체 정책위원회가 있어서 이 공연은 아예 예매할 생각도 없다가 모임 날짜가 꼬이면서 시간이 생겼고, 전날 KBS음악실 이주의 공연 뽐뿌질 덕분에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예스이십사에는 상대적으로 클래식 공연이 덜 올라온다는 평소 경험치 때문에 고민할 것 없이 인터*크에서 예매를 하고 나중에 보니 예스이십사에도 올라와 있었네. 검색 한 번 해보고 예매할 걸 몹시 후회했다. 자금 압박 때문에 가장 저렴한 합창석 시야방해석 할인 받아 예매했는데 이 좌석 가성비가 참 좋았다. 시야가 아래 사진과 같은 각도였는데 난간 피해 같은 4열 한 좌석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봐도 좋았겠다. 난간이 오히려 상대편에 있는 청중들 얼굴을 가려줘서 나는 편했다. 개인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비교적 덜 즐기는 편이고 선우예권 팬도 아니긴 하지만 지난 여름 스타즈온스테이지 때보다 피아노 주자 연주 모습을 훨씬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점 자체가 좋았다. 피아노 연주자를 보기 위해 공연 관람한다면 표정과 손 모두 너무 잘 보이는 좌석이다. 심지어 드보르작 퀸텟 2번 1악장 끝나고 잠시 쉬는 동안 선우예권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행거칩을 꺼내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보였다(요즘 특정 피아니스트들의 팬들끼리 싸우시는 모습을 보면 무서워질 때가 있는데, 어쨌든 선우예권 좋아하시는 누나 팬들이 아이돌 동생 보듯 귀염 터져하는 포인트가 이런 지점인가 했다). 넘돌이가 악보 넘겨야 할 때 넘기지 못해 실수한 장면도 너무 잘 보였다. 합창석 소리에 대한 의문이 있을 텐데 울리는 홀이라 소리가 앞으로 뻗어갔다가 객석에 튕겨서 반대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음향 문외한임). 그래서 현재 연주하는 소리와 2, 3초 정도 후 돌아오는 소리가 좀 산만하게 들리도록 섞이는 느낌이 있었다. 

공연 전반부는 뉴욕필하모닉 수석 주자들로 구성한 현악사중주단끼리 연주를 했다. 공연 내내 '오케스트라에 속한 현악사중주팀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르게 소규모로 내밀하고 치밀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결성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수석, 부수석들이시니 연주 역량이 매우 원숙하고 노련하게 좋은 듯 들렸다. 어느 곡이라도 기복 없이 무난하게 잘 연주하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바 소리나 표현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후기도 보긴 했는데, 합창석에서는 2바 매력이 엿보였다. 사실상 1바 주자보다 나이 있으실 이 여성 연주자는 다른 주자들 사이를 어른스럽게 중재하며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듯해보였다. 첫곡 하이든 현사 76-2, '5도'는 하이든 말년에 꽤나 다이나믹한 기법을 실험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읽었다. 하이든 현사 특유 전반적으로 우아한 분위기와 이 주자들의 부드럽고 둥근 음색이 조화를 잘 이룬 듯하다. 좀 더 날카롭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기도 하는 한편, 현악사중주의 아버지 하이든의 현사는 언제든 듣기 마음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브람스를 재발견하고 있다. 요즘 가을이라 클래식FM에서도 브람스 음악이 굉장히 자주 나온다. '이 곡도 브람스였어??' 싶을 만큼 매일 매일 좋은 곡들을 재발견한다. 그런데 브람스 현사를 미리 듣거나 이날 공연에서 실제로 실연을 보고 들으면서, 브람스 스스로도 현악사중주를 20곡 쯤 실험했다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듯 유독 현사에서 맥을 추기 어려워했나(이 점도 베토벤을 너무 의식해서였을까) 싶었다. 그래서 결국 더이상 현악사중주 쓰기를 포기하고, 실내악곡들은 다른 악기 껴서 다중주 곡 만들기를 선호했는지 궁금해졌다. 브람스 피아노나 클라리넷 5중주, 6중주들 다 너무 아름다운데 왜 현악사중주는? 싶어 묘하다. 성실하고 치밀한 브람스 답지 않게 이 곡은 유독 의식의 흐름에 따라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중이나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당시 중기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중이었을까, 너무 오래 붙들고(10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던 것일까, 고전+낭만 강점을 다 가진 브람스 음악이 가진 매력으로 여겼던 확연히 드러나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이 곡에서 찾기 어려웠다. 1, 2악장을 그렇게 멘탈 놓고 들은 후, 그나마 3, 4악장은 좋게 들었다. 다시금 합창석 가성비에 만족했던 지점은 첼로 소리가 몹시 잘 들렸다는 점(반대로 객석에서는 첼로 소리가 작게 들렸다는 후기가 있음)이다. 아, 이들 좌석 배치는 비올-첼로-2바-1바.

가성비 좋은 좌석은 숨어 있는 클래식 애호가 혹은 특정 주자 팬들이 가장 잘 알아본다더니, 선우예권이 입장하자 주변에서 이 시간만 기다렸다는 듯 설레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연주 보러 가는 동안 그가 반클라이번 국제 콩쿨 때 연주했던 실황 영상을 보았다. 듣다 보니 너무나 익숙해서 생각해보니 예스블로그 친구 고독한선택님께서 클래식 CD 대방출하실 때 줄 서서 받았던 앨범 중에 보로딘 콰르텟+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연주한 드보르작 퀸텟 1, 2번이 있었다!! 명연주 골라 들으시는 고독한선택님, 정말 소중한 앨범을 선물해주셨던 것,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우예권 콩쿨 연주에 비해 이 앨범 연주는 훨씬 열정적이고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 기다리는 동안 그 앨범을 계속 듣다가, 이 날 실연을 보려니 뉴욕필 현악사중주단이 1악장을 몹시 천천히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은 선우예권 고유 레퍼토리로 삼아도 되겠다 싶을 만큼 그는 곡 전체를 여유롭게 가지고 놀고 있었고, 4악장으로 향할 수록 신나게 연주하면서 빨라지는 게 느껴졌는데, 무난한 연주를 지향하는 듯한 뉴욕필 현악사중주단은 템포를 따라가기 다소 버거워하지 않았냐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봤다. 선우예권 손은 특유 맑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피아노 건반 위를 날렵하게 움직였다. 선우예권 팬은 아닌데, 이날 연주가 좋아서 마음 속으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나마 아시아인(비교적 기교로 승부할 수 있는?)인 1바 주자가 피아노 주자의 템포를 잘 따라간 듯했다. 잘은 모르지만 신나게 달려가는 연주는 뉴욕필 현악사중주단의 평소 연주 스타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템포는 오히려 비슷한 세대인 노부스와 잘 어울릴 듯, 서로 너무 신나 시너지가 나서 너무 미친듯이 달리려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아무튼 5명이 같이 연주한다면 몹시 신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에 EBS에서 만든 음악 다큐 "음악기행" 시리즈를 보고 있는데, 거기 드보르작 생가가 나온다. 아버지가 시골 마을에서 술집(여관과 정육점 안 식당?)을 운영하셨단다. 거기 피아노가 있고, 아마도 드보르작이 어렸을 때 손님들이 모여 보헤미안 특유 정서로 흥겹게 민속 음악을 연주하며 놀았으리라는 상상을 해봤다. 그런 정서를 물려받은 드보르작이 퀸텟 2번을 쓸 때는 숭고함 보다는 흥겨움과 신남을 지향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이 곡은 천천히, 여유롭게 보다는 현사 "아메리카"처럼 신나게 연주하는 쪽이 더 적절하겠다 싶다. 하이든 시절부터 실내악은 모임의 여흥을 위해 즐기면서 듣는 장르였을 듯도 하다(궁정 음악이 대세일 때 지금처럼 고요하고 엄숙하게 보진 않았으리라는 추측).  

 

 

개인적으로는 마치 이 곡 3악장이 다른 작곡가들이 4악장에 넣었을 듯한 분위기로 느껴져왔고, 설마 이날 중간 박수 관크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날 청중 분위기가 꽤 좋아서(물론 맞은편 맨 앞자리에서 주자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대놓고 숙면을 취하는 청중도 있었음, 초대권 청중이신가?? 듣지 않으시려면 연주에 방해되지 않게 퇴장하시는 편이 예의 바른 자세 아닐까라는 생각을 혼자 해봤음), 악장 사이 박수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2악장에서 앨범을 들을 때는 몰랐던 비올 매력을 확인했는데, 이 비올 주자는 비올을 큰 소리로, 끈적끈적하게, 매혹적으로 연주하는 스타일이었다. 2악장 노래하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전반적으로 현악기가 주선율을 연주하는 부분 마다 피아노 주자가 음량을 작게 조절해 잘 서포트해주었다고 생각했다. 피아노 주자가 뉴욕필 현악사중주단에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지만, 퀸텟은 아무래도 피아노가 주도하는 느낌이 있다보니 상술한 대로 4악장은 다소 빠르게, 신나게 달려가며 끝이 났다. 이런 이유로 5주자가 쨍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은 적었지 않았나 싶다. 커튼콜 하는데 1바 주자 얼굴이 빨개진 듯 느껴졌다. 여담인데, 선우예권과 두 번 협연을 하고 하루는 울주에서 본인들끼리 현악사중주만 연주하던데 그 레퍼토리가 훨씬 탐났다. 최근 "명연주명음반"에서 베토벤 현사 4번을 들려주셨는데 꽂혀서 다시듣기 무한반복 중이고, 드보르작 현사 "아메리카"나 멘델스존 현사 6번은 워낙 노부스가 자주 연주하던 레퍼토리라 세 곡 다 참 듣기 좋았을 듯하다. 너무 멀어서 갈까 말까 고민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 

 

이날 여유롭게 출발해 롯콘에 일찍 도착해 표를 받고 입장 시간을 기다렸다. 합창석인 P구역은 한 층 올라가서 저 구석까지 들어가서 입장해야 한다. 롯콘 스태프들의 친절함은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도 유명한 듯하다. 넘어지지 않게 계단 조심해서 내려가라는 멘트를 잊지 않으셨다. 공연이 끝나고 천천히 퇴장하려는데, 방송에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이용에 대한 안내를 세심하게 해주셨다. 올해 문득 업계의 조용한 주시가 느껴질 때가 있는데, 혹시 우연찮게 이런 누추한 곳까지 방문해주신 꼼꼼한 관계자께서 롯콘에 대한 후기를 보시고 반응을 해주고 계신가 싶었다(그렇다면 내가 컴플레인 잘 거는 블랙컨슈머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 걱정...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은데, 그러려면 온라인 공간에 리뷰 쓰는 일 자체를 그만 두어야 해서 딜레마임). 어쨌든 다들 불편해하는 지점이라면 롯콘에서 더 나은 방식으로 반응해주는 편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들어 오랜만에 음악회에 가서 시간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소리들을 향유했다. 정말 실연은 녹음해서 기록하지 않는 한은, 공연장 거기에서 그 시간에 구현된 연주 소리를 주자와 청중이 듣는 동시에 사라진다. 언제나 다시 꺼내 들을 수 있지 않고, 곧 사라지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향유하고자 의지를 낼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주 덕분에 롯콘 특유 몽글몽글하게 울리는 소리들 속에서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가을 저녁을 보냈다. 롯콘 음향에 대해 검색을 하다 보니 공연장도 악기처럼 시간과 함께 음향이 변해가고 만들어져 간다던 이야기가 있던데, 지금 개관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오히려 실내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라고 생각한다는 관계자 의견을 읽었다. 나는 몇 안 되는 공연 관람 기억 중 여전히 콘서트홀이라 교향곡이 가장 좋게 들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최근 KBS 실황중계에서 파비오 루이지 지휘, KBS교향악단(브루크너), 임동혁 협연 공연을 라디오로 들으면서 실제로 듣는 편보다 이렇게 듣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날 공연이 워낙 좋았기 때문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노부스도 롯콘에서 연주하기 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니, 11월 초 노부스 쇼스타코비치 현사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다시 유심히 들어봐야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9)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7        
1 2 3 4 5 6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