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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 | 2018-11-2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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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정투쟁

악셀 호네트 저/문성훈,이현재 공역
사월의책 | 201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청년 헤겔이 이론적 체계로 제안하고, 미드가 발달심리학적이면서도 경험적으로 논증한 '인정투쟁' 이론을 호네트가 학자 답게 설득력 있게 체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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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교수님 책이나 다른 철학, 사회학 서적들에서 자주 거론하고 있는 그 유명한 ‘호네트’라 궁금했던 차에 이번 학기 대학원 강의 중 “민주주의이론연구”에서 이 책도 다룰 예정이라는 강의계획서를 보고 수강하기로 결심하고 책을 구매했다. 강의 시간에는 핵심적인 6, 8장만 다루었는데 아쉬워서 대학원 언니샘과 함께 발제 강독하는 스터디를 했다. 이번 학기에 있었던 일 중 손에 꼽을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기왕 앞에서부터 읽고 있었으므로 강의 시간에 6, 8장 발제를 맡았다. 논증이 이어지는 형식이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좀 어려워서 추석 연휴 내내 여러 번 읽으면서 이해하고 정리하느라 좀 고생하긴 했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다. 개조식 발제(정리)문은 아래에 첨부한다.

 

스터디, 발제, 논의하면서 의문이 생겼던 지점은 당위는 아니지만 사실로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정체성 정치’ 흐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레이코프가 미국 정치를 두고 인지언어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 진보-보수 스펙트럼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각 분야에 대한 가치관, 사용하는 언어나 선택하는 행동 등이 결정된다. 각 분야에 대해 가치관이나 정체성 차이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 논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주 합리성을 압도하는 강력한 부정적 '정서' 반응이 나타난다. 나는 그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http://blog.yes24.com/document/8133538 , “도덕, 정치를 말하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http://blog.yes24.com/document/3574515 등 레이코프 저작들을 읽으면서, 비슷한 정체성이나 가치관, 정치 성향을 가진 부류끼리는 특정 사안들에 대해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엿보이는 점이 신기했다. 이번 학기에 "인정투쟁"을 읽어나가는 동시에 이 강의를 수강하면서 가장 남았던 지점은, 강의 시간에 지역감정, 페미니즘과 같은 우리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이야기 속에서 정체성, 가치관, 정치 성향 등이 드러나곤 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이 강의 시간에 배움의 공동체나 서클처럼 동등한 지분을 가지고 돌아가며 이야기하는데, 위와 같은 주제를 다룰 때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을 이야기 형식에 담아 발언하고 있었다. 마지막 시간에 이 강의에서 배운 점을 나눌 때, 이런 경험이 수강자 여러분께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음이 드러났다.

 

나는 이 지점이 호네트 식으로 말하자면 2단계 ‘권리’ 영역 확보 이후 3단계 ‘가치, 연대’ 영역으로 나아갈 때, 2인 이상 어떤 공론장에서 말과 행위로 개인의 인격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인 갈등을 합리적이면서도 건강하게 해결하도록 돕기 위해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생존, 인권) 권리에 관한 부분은 그야말로 인간종이 평등하게 공유해야할 부분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물론 인권-> 동물권, 식물권-> 로봇권 등 앞으로도 권리에 대한 논의 범위가 확장되어야할 여지가 있음). 그런데 “인정투쟁”을 읽으면서 [2단계] 보편 인류가 공통적으로 공유한 영역을 넘어서서, [3단계]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생활양식+나아가 개인이 자기답게 타고나서 발달시키고 있는 개성 차원에 관해서는 (급박한?) 2단계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면 3단계를 충족할 필요가 생긴다고 보았다. 호네트의 논증에 따르면 소규모 공동체나 개인은 보편 법, 제도적 차원이 획일적이고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부분으로부터 자신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투쟁을 하게 된다. 레이코프가 미국 정치에서 읽고 있는 정체성 정치 현상이 바로 호네트가 언급한 인정투쟁 3단계에 해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 지역감정, 이념 갈등 자리를 ‘정체성’에 관한 다른 소재들이 차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호남 갈등은 수도권-지역 간 갈등으로, 통일 이후 남한출신-북한출신 갈등으로 대체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세대 갈등, 빈부격차로 인한 경제적 계급 갈등, 녹보(강의 시간에 한 샘께서 말씀하셔서 공감했는데 환경, 페미니즘) 갈등 등 새로운 정체성 정치 소재가 우리 사회에 이미 도래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호네트는 청년 헤겔이 아직 가정-시민사회-국가 도식과 인륜성, 절대정신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에 ‘인정투쟁’ 3단계인 [1단계: 사랑-친밀성], [2단계: 권리-존중], [3단계: 가치-연대]를 이론적으로 제안했음을 제시했다. 또한 헤겔이 구상한 이론적 인정투쟁 체계를 기반으로 미드가 역사적, 경험적 사례를 바탕으로 근거를 들어 이론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던 과정을 제시했다. 그리고 ‘인정투쟁’에 관한 단초를 직관적으로는 파악했으나 이론적으로 정립하지 못한 학자들 사례를 분석했다. 이 중 1단계는 사적, 친밀성 영역에 속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인 단계이고, 2, 3단계는 역사적 영향을 받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투쟁 사건을 고찰할 필요가 있는 단계이다. 일련의 논증 과정을 통해 호네트는 인정 욕구와 그 좌절로 인한 무시 경험을 연관 지어 인정에 대한 무시가 투쟁 동기임을 체계적으로 드러내 설득력 있게 이론화하고 있다. 특히 호네트는 2단계가 (보편) 법, 제도 영역을 다루고 있고 근대 학자들이 여기에 주목했던 반면, 3단계 (특수) 가치, (넓은 의미) 도덕에 관한 영역을 그들이 간과하고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논의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호네트가 이 책에서 '도덕', '가치'를 의지를 내어 강조하고 있다고 읽었다. 책 내용을 아래와 같이 표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학자답게 체계화했기에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인정 욕구 좌절 사례와 투쟁 양상에 적용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교사이기에 아동 청소년 발달 단계 상 교실 상황에서 자주 접했던 사례를 떠올리며 갈등 상황 원인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책을 완독하면서 모든 사람, 모든 분야에 대해 인정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누구나 의지를 내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책 전체를 간단히 정리하면서 강독했지만, 모든 발제문을 붙이기에는 분량이 많으므로 6, 8장 발제문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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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무시: 폭행, 권리의 부정, 가치의 부정

 

0. 전제: 주체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 반응 요구

1) 개성화와 인정은 내적으로 맞물려 있음(헤겔, 미드)

2) 무시, 굴욕 등 심리적 훼손, 정서적 체험: 체계적 등급화 가능

3) 인정투쟁은 사회적 저항에 대한 동기를 부여

 

<사회적 인정관계의 구조>- 무시의 종류

인정 방식

[1. 사랑] 정서적 배려

[2. 권리] 인지적 존중

[3. 가치] 사회적 가치 부여, 정체성

개성의 차원

욕구 및 정서 본능

도덕적 판단 능력

능력, 속성

인정 형태

원초적 관계

(사랑, 우정)

권리관계(권리)

가치 공동체(연대)

진행 방향

-

일반화, 실질화

개성화, 평등화

실천적 자기 관계

자기 믿음

자기 존중

자기 가치 부여

무시의 형태

학대, 폭행

권리 부정, 제외시킴

존엄성 부정, 모욕

위협받는 개성 구성 요소

신체적 불가침성

사회적 불가침성

‘명예’, 존엄성

⇒ [1]은 역사, 문화와 무관, [2], [3]은 법적 관계 발전에 따라 변화함(역사적으로 가변적): 도덕적 훼손, 상호인정

 

1. [1. 사랑] 신체적 자유 박탈, 폭력, 학대 ex) 고문, 폭행 등: 현실 감각 상실, 타인 의지에 내맡겨짐→ 굴욕감, 자기 및 세계에 대한 믿음 상실, 신체적-정신적 행위 능력 통합 깨짐 ⇒ 자기 믿음 파괴

2. [2. 권리] 권리의 부정, 사회적 배제: 권리 소유에서 배제된 개인들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동등하게 도덕적 판단능력을 인정받지 못함

→ 자기 존중 상실: 모든 사회 구성원과 동등한 권리 갖는 상호작용 상대자인 자기 자신과 관계 맺지 못함, 도덕적 판단 능력에 대한 인지적 존중 제거

3. [3. 가치] 가치 평가적 무시: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부정 ex) 개인이나 집단의 생활방식에 대한 평가 절하

→ 개인의 고유한 능력, 자기실현 방식에 부여된 사회적 가치 부여에 있어서 개인적 자기가치 부여 상실, 박탈⇒ 집단적 연대, 격려 통해 자기실현 방식에 대한 사회적 동의 되찾고자 함

4. 세 부류 경험 결과에 대해 신체 붕괴 상태로 비유하는 경향

1) [1] 고문, 폭행 등: ‘심리적 죽음’/[2] 권리 부정, 사회적 배제: ‘사회적 죽음’/[3] 생활방식 평가 절하: ‘모욕’⇒ 신체 고통, 죽음(생명 위태)~심리, 정서, 정체성(훼손) 연결 지음

2) 증상으로 설명: 사회적 무시→ 사회적 수치감(감정)

3) 심리적 건강+인간 불가침성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납 추론 시도 필요함: 인정 관계의 사회적 보장, 주체 무시X= 질병 예방(9장에서 규범으로 도출 예정)

4) 인정투쟁의 정서적 동기 ex) 부정적인 감정 반응(경멸, 수치심, 분노 등): 사회적 인정에 대한 부당한 유보 알게 하는 심리적 증상들

5) 의존성: 성공적 자기관계는 상호주관적 인정에 의존함

6) 사회적 동의에 의해 개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심리적 균열 생김→ 수치, 분노

5. 두 가지 기대 유형

0) 듀이, 실용주의적 심리학: 인간의 감정에 관한 행위이론적 관념에 따라 감정과 행위를 관련 지으려고 시도함(행위 의도 성공/실패 여부에 따라 긍정적/부정적 감정 나타남)

1) 두 가지 기대 유형: 도구적 성공 기대(기술적 장애)/규범적 행위 기대(도덕적 갈등, 사회적 생활 세계)⇒ 좌절되었을 때 주체 자신에게 일어나면 죄책감과 열등감이, 상호작용 상대자에게 일어나면 도덕적인 격앙(가치감 결여, 억눌림)이 일어남

2) 무시는 수치심 유발: 자존심 붕괴, 자아이상들에 비추어자신을 낮게 평가⇒ 이상적 도덕 규범 훼손→ 인정투쟁 동기 자극(개인은 적극적 행위 가능성 다시 찾고자 함)

3) 주체는 자신이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깨달음: 도덕적 통찰→ 정치적 저항

4) 세 가지 무시 부류 감정중립적 반응 불가

5) 사회적 생활 세계, 상호 인정 가능성 가짐(규범적)→ 자기실현 기회 되찾고자 투쟁

6) 가능성일 뿐이므로 정치적 저항 행위 동기화하고 관련자들이 당한 불의에 대한 사회 운동 강화 수단이 필요함

 

 

8장 무시와 저항: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논리

 

0. 사회운동은 인정투쟁 때문임을 경험적으로 인지한 학자들

1) 마르크스: 존엄성이 운동의 포괄적 목적

2) 소렐: 명예는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요구가 가진 도덕적 내용

3) 사르트르: (파농 책) 헤겔 인정 이론을 반식민주의 투쟁과 연결

4) 기존 학자들 논의가 가진 문제: 사회적 투쟁은 상호인정의 내재적 규칙을 훼손함으로써 발생하지만, ‘다윈주의’와 ‘공리주의’는 생존 기회 둘러싼 경쟁 의미에만 고정시켰음

1. 투쟁 원인: 이해관계 침해or 인정 좌절 무시 경험?

1) 사회적 투쟁

- 뒤르켐, 퇴니에스: 사회적 투쟁 현상에 체계적 역할 부여하지 않음

- 막스 베버: 생존 기회 높이기 위해 경쟁적 생활 방식을 둘러싼 여러 집단의 투쟁 일어남, 도덕적 동기부여에 대해 설명하지 않음

- 지멜: 정체성~인정을 상호주관적 전제 조건으로 보지 않음, 무시를 사회적 투쟁 동기로 파악하지 않음

2) (실용주의) 시카고학파(파크, 버제스): ‘인정을 위한 투쟁’ 언급, 그러나 도덕적 논리 설명하지 않음

3) 투쟁의 원인을 생존 경쟁, 이해관계에만 둠으로써 ‘사회적 운동~무시’ 간 도덕적 경험 연관 관계가 이론적으로 단절됨, 도덕성이 아닌 이해(물질적 생존 기회 불평등 분배)에 집중하게 만듦

⇒ 홉스적 사고 모델 우세/헤겔+미드 대안적 패러다임: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도덕적 부정의가 사회적 투쟁 동기임

2. 도덕적 무시~사회적 투쟁 간 연관 증명(세 인정 영역 중심, 역사적 분석 시도)

1) 보편화, 투쟁 필연적, 사회적 성격: 개인적 의도 넘어 집단적 운동 토대([1. 사랑]: 보편화 불가, 공적 관심사 될 수 없음, 친밀 관계/[2. 권리], [3. 가치]는 보편화 가능)

2) ‘인정’은 사회적 투쟁을 위한 도덕적 틀 만드는 원인

3) 개인적 무시 경험은 다른 주체들에게도 잠재적으로 관련 있음⇒ 사회적 일반화된 척도 도출 가능 ex) [2. 권리] 관계: 도덕적 판단 능력 원칙/[3. 가치] 사회적 가치관 형성 규범(가치 공동체)

4) 사회적 투쟁이 성립하는 이유는 개인적 무시 경험은 집단 전체의 전형적인 핵심 체험이 되기 때문

5) 인정X, 무시는 도덕적 경험: 집단적 의미론, 집단적 정체성 형성→ 사회적 저항, 봉기 동기 됨, 개인 정체성 차원에서 ‘자율적, 개성화’ 된 존재로 존중 받기 위함

6) ‘정치적 행위’→ 긍정적 자기 관계 높아짐(↔수치감; 자기존중심 약화), 도덕적 감정

⇒ 자신 도덕적, 사회적 가치 높아짐, 의사소통 공동체에서 인정받으리라는 예견 가능

⇒ 강화된 인정 경험은 서로에게 가치 부여하며 연대 형성하게 함

7) 공리주의적 사고 영향으로 사회적 투쟁의 도덕적 형식에 관한 역사적 연구 은폐되어 왔음, 물론 이 논의에서 집단 이해 요구라는 동기를 배제할 수 없음, 논의 범위 확대 필요 때문에 이해 주도적 투쟁 범위 넓히기 위해 문화적, 상징적 재화 재생산 기회도 포함 시키는 추세였음

8) 무시감(도덕적 경험임): 인정 기대 깨지는 전형적 감정 경험→ 집단적 행위로 연결되므로 의사소통적 인정모델은 공리주의 모델을 보완, 수정하는 역할을 해야 함

3. 사회인류학적+문화사회학적 연구방법 통한 역사 서술 방식(하위 계층 문화 규범적 전제들)

1) [도덕경제] 톰슨: 저항동기(도덕관) 연구, 영국 하층민, 정체성

- 견디기 어려운 경제적 분배 상태(합의 규범적 훼손)

- 사회적 인정 박탈, 자존심 모욕 과정(역사적 증명 필요)

2) [암묵적 사회계약] 베링턴 무어: 합의-상호인정관계 확립(암묵적으로 동의한 규범적 규칙으로서 의미 있음) ex) 노동자: 자기이해 위협 느낄수록 참여 더욱 적극적, 전투적

- 집단적 자기존중 가능성 위기(암묵적 동의 훼손)⇒ 정치적 저항, 사회적 반란 일으킴

3) [정체성 이론 요소] 안드레아스 그리싱어: 도덕적 기대 정치적 좌절~전통적 인정 관계 동요 연관 있음, 정치적 봉기→ 집단 고유 명예관 훼손됨

4) 그러나 위 연구들은 특수 생활 세계의 역사는 파악했으나, 인정 관계 구조 특징을 지적하지 않음⇒ 부정 감정이 사회적 투쟁 동기 되는 과정 설명 시 보편적 논리 체계 필요(인정 관계 확장 논리 자체가 역사적 서술 틀 되어야+도덕적 자기형성 과정에 대한 해석 틀 필요= 투쟁 동기+도덕적 역할 밝혀야 함)

∴ 인정투쟁 모델: 도덕적 진보의 역사적 과정 재구성 이론이 되어야 함

5) 세 가지 인정 형식([1. 사랑]-자기 믿음/[2. 권리]-자기 존중/[3. 가치]-자기가치 부여)

- 개인: 자기를 ‘자율적’, ‘개성화된 존재’로 이해

- 혼재되어 있던 상태에서 [2. 권리]와 [3. 가치]를 구분해냄: 독특한 구조 부각시키기

- [2. 권리] 침해를 사회적 투쟁 동기로 환원(권리 분리): 보편화, 구체화, 규범적 구조

- [3. 가치] 인정으로 개별화, 평등화 향상

- 역사는 인정 관계가 단계적 확장으로 나아가는 투쟁적 발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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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시작했습니다: 신간 서점 Title 개업 기록 | 2018-11-2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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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점, 시작했습니다

쓰지야마 요시오 저/송태욱 역
한뼘책방 | 2018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리브로 근무 경력 있는 서점인으로서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책방 운영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운영하고 있는 기록을 담은, 일본 작은 책방 "Title" 책방지기가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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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신청글을 올려 예스이십사 리뷰어클럽에서 신간을 받아보았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http://blog.yes24.com/document/10523694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http://blog.yes24.com/document/10530466

“책의 역습": http://blog.yes24.com/document/10102778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http://blog.yes24.com/document/10265532 “황야의 헌책방”: http://blog.yes24.com/document/10830222

책 좋아하는 이들 특유 민감한 촉을 발동시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분들 의도와 생각을 알고 싶어 작년부터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고 있어요. 읽은 책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고, 링크한 책 중 위 두 권은 이 책처럼 작은 책방 운영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한국 사정에 맞추어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아래 세 권은 일본 작은 책방 운영 실태를 잘 보여주는 책인데,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이 책 인터뷰에 참여한 호리베 야쓰시가 쓴 책이라서 더욱 반가워요. “황야의 헌책방”은 이 책과 같은 한뼘책방에서 출간한 걸 보니 출판사가 작은 책방 시리즈를 기획한 모양이에요.

일본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이력을 살펴보면 이 책 저자처럼 대형서점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은 책방만의 철학과 컨셉을 세워 우직하게 꿋꿋이 운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온라인 서점이 여러 강점을 가진 현실 속에서도 작은 책방들은 전반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책이나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을 지향하며, 마을공동체를 세우고 지역 거점이 되기를 추구하며 작은 책방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잘 수행하고 있어요. 작은 책방 관련 서적을 관심 가지고 읽고 있는 요즘이라 놓칠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에 신청합니다.

 

    

예스블로그 친구들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시듯 나는 요즘 기회 닿는 대로 작은 책방에 관한 책을 몰아 읽고 있다. 소매 업종으로서는 기존 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던 움직임 속에서, 일본 역시 작은 책방 유행이 일어나고 있었고, 일본 작은 책방을 소개하는 책자마다 언급되는 책방 이름이 있다. 이 책 주인공 ‘Title‘ 역시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 고서점들에 비하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은,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이다. 어떤 종류를 취급하는지와 그 이유에 관해서는 아래에 언급하겠지만 이 책방이 신간을 취급하는 이유는 책방지기 강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로 요즘 작은 책방을 열고 운영하는 책방지기 중에는 출판이나 서점 업계에 종사했던 분들이 꽤 많다. 아무래도 취급해본 상품이라 잘 알고 취급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실험적으로 작은 책방을 운영해 보고자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일 테다. ’Title‘ 책방지기는 대형 서점 리브로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자이다. 리브로 여러 지점을 돌며 근무하는 동안 서점인으로서 책 관리, 판매, 책 이벤트 기획에 관해 노하우를 쌓은 능력자로 보였다. 저자가 책방 운영을 준비하는 이들 참고용으로 이 책 부록에 ’Title‘ 운영기획안을 실었는데 책방 운영을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굉장히 치밀하게 고민하고 준비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 경험도 있고 해서 책에 관한 일이라면 출판사의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판업계를 다룬 책을 문득 손에 들고 읽었습니다. ‘출판 유통의 현장에서’라는 제목으로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서점은 그 시대를 자유롭게 편집하고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 일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 끌렸습니다. 그때까지 서점을 그런 눈으로 본 적이 없었고 서점원을 나의 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경험담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나는 책 자체보다는 책이 있는 공간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서점을 취직자리로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19쪽.

나는 종종 여기 온라인 블로그에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기록을 나열하면서도 여기도 하나의 실험적인 편집 독립서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블로그를 한 번 정리하면서 애드온을 떼기는 했는데, 여기 방문하시는 분들이 내 리뷰와 내가 걸어둔 문화 상품을 일종의 제안으로 여기고 내 블로그를 통해 그 상품을 구입하면 나에게 이윤이 떨어지는 방식을 예스이십사 쪽에서 운영하고 있다. 꼭 애드온이 아니더라도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올리는 책에 관심이 생기는 독자는 그 책을 선택해 읽는다. 어떤 사람이 읽은 책이나 소장한 책 목록을 보면 그 사람을 조금은 더 알 수 있다고 믿는 1인으로서 여기 올리는 독서 기록들은 읽고 쓸 당시 내 머릿속과 세계를 얼마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이 어떤 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도록 편집,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위 문장이 몹시 와 닿았다. 멋지다.

    

“제가 상상한 서점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손님 등 좀 더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관계하는 가게, 책이 가게의 중심이면서도 단지 책을 파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가게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집에서도 책을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일부러 먼 곳에 있는 서점까지 가서 책을 사려는 사람이 있는 것은, 상품을 사고 싶거나 갖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서점에 가는 체험을 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가게 안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면 더 즐거울 것입니다. 카페나 갤러리 등 다양한 유인 요인을 만듦으로써 가게로 찾아올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68쪽.

 

 

 

오프라인 작은 책방 관련 도서를 읽을 때마다 더욱 확신이 생기고 있는 지점이다. 책이 안 팔린다는 시대에 작은 책방 의미와 효용성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는 요즘 tvN “알쓸신잡 시즌3”에서 출연자들이 그 지역 서점을 한 번씩 꼭 들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하는 코멘트들도 맥락이 비슷하다.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과는 달리 독자가 자신의 발로 굳이 물리적인 서점을 찾아가 책의 물성을 감각한 후 선택해 구입할 수 있으며, 서점인이나 다른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다. ‘작은(독립)’ 책방은 ‘대형’ 서점과는 달리 책방지기 1-2인 정도가 독립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자기 서점에 채울 책을 큐레이션 해 독자에게 제안할 수 있다. 책방지기의 언행과 책방을 채운 책을 통해 그 책방만의 철학과 컨셉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므로 애초에 그 책방을 만든 책방지기 의도가 어떠했든 책방지기가 어떤 책을 선호하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운영하는가는 그 책방 이미지를 결정하고 특정 독자가 거기를 찾아오게 만드는데 핵심적인 요소다. 카페 운영, 굿즈 판매, 이벤트 운영을 병행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 부분은 그야말로 책방지기 철학과 책방 컨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Title” 책방지기는 아내에게 카페를 운영하도록 했고, 역시 독립적으로 베이킹을 하는 분 도움을 받아 디저트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삼았다. 그는 카페 운영이 역에서 다소 떨어진 동네 책방 접근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갤러리 운영 등 이벤트를 병행하는 이유는 워낙 리브로 근무 당시 작가와의 만남 같은 특별한 이벤트들이 독자로 하여금 좋은 책을 만나고 책에 관한 즐거운 경험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경험이 많았기에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테다.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품의 균형을 위해 저의 기호에 의지한 핵심적인 것을 40퍼센트 정도,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책 중에서 고른 것을 60퍼센트 정도로 할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개점해보니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는 복잡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점하고 일주일쯤 지나자 상정했던 것보다는 실용적인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 앞의 큰 서점이 아니라 일부러 Title로 찾아오는 손님은 역시 다른 데에 없는 것을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이렇게 뭔가에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게에는 어차피 자신이 늘 사는 책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아예 가게로 들어오지 않거나 쓰윽 둘러보고 금방 나가버리는 손님도 많았습니다.” 132-133쪽.

그러면 “Title” 책방지기는 공간이나 재정이 한정된 상태에서 어떤 책을 선별해서 책방을 채우고 있을까. 일단 표로 정리해 비율 별로 장단점을 분석한 부록을 보면서 놀랐다. 책방의 입지와 예상 방문자들의 성격을 고려해 위와 같은 비율을 잡는 자세를 보며 천상 서점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나라면 장사가 좀 덜 되더라도 베스트셀러나 실용서보다는 한국의 어떤 인문서점처럼 몇 몇 분야에 특화한 책들로 큐레이션을 해서 컨셉과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거나 독립출판물도 취급할 듯한데(이렇게 했을 때 나타날 여러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책들에서 읽었으므로 왜 책방지기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선뜻 그러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만함), 여기 책방지기는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다른 작은 책방들에 비해 동네 주민들이 선호할 만한 실용서와 잡지 판매 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였다. 대형 서점에 근무했던 서점인 특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마인드가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쨌든 동네 주민들이 책방에 자주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게 들어왔으면 하는 의도도 있었으므로 잡지를 유리창 바깥에서 보이도록 비치하는 방식 등을 통해 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성공하고 있어 보였다. 

    

“특히 최근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SNS에 올리기 위해 서점에 오는 사람입니다. 몇 명이 함께 와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며 대충 가게 안을 둘러보고 카페의 메뉴도 보기만 할 뿐이며 갤러리도 올라갔다 싶으면 금방 내려옵니다. 재미없었나보다고 생각하면, 가게 밖으로 나가서 즐거운 듯이 기념촬영을 합니다. 뭘 하러 왔나 싶지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도 정보의 소비욕은 그것으로 완료되겠지요. 그런 사람을 보면 정말이지 슬퍼집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입구의 평평한 진열대에 달라붙어 있다가 그 후에는 가만히 책장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한동안 가게 안에 있다가 조용히 책 몇 권을 들고 계산대로 옵니다. 책을 산다는 것은 개인이 책장과 마주하며 수많은 책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 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애초에 누군가와 함께 보며 다니는 시점에 이미 책과 만나는 일은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생각건대 서점에 와서 재미있는 책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놓여 있는 책을 만져봐야 합니다...“ 172쪽.

 

작은 책방 관련 서적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내용인데다가, SNS에서 작은 책방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책방지기들이 때마다 실망하며 올리는 글들을 접하곤 한다. 작은 책방 들를 때 모습을 되돌아보면 내 모습은 단연 후자다. 일단 어느 지역에 갈 일이 있을 때 책방들을 몰아서 투어하므로 누구와 함께 작은 책방에 가는 일이 드물다. 책과 책방을 보러 가는데 누군가와 함께 가면 책 구경하기 집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저 고요하게 책등을 눈으로 훑으며 ‘오, 이런 책도 있네!!’, ‘아, 이 책 재미있게 읽었는데!!’라고 홀로 생각하며 몹시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한다. 책방에 들르면 꼭 한 권 이상 구입해 나오자는 원칙이 있어서 구미가 당기는 책은 손으로 만지며 펼쳐보기도 하면서 뭘 살지 선택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 고요한 곳에서 사진 찍거나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책방 방문자로서 방해가 되고, 관심 가는 책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가 다른 곳에서 구매하는 행동은 내가 책방지기여도 너무 싫겠다 싶을 정도로 불편하기에 위 내용에 격하게 공감했다. 하루종일 책방을 지키는 분들은 다양한 방문자를 경험할 텐데 그분들께 나는 책이 좋아서 굳이 찾아온 방문자, 꼭 좋은 책으로 구입해 갈 듯한 방문자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을 출간한 한뼘책방은 작은 책방 운영과 독립출판을 병행하는 듯하다. 본인 관심사와 가치관에 따라 책을 선택했겠는데 책 내용 자체도 좋고, 게다가 책 만듦새가 군더더기 없어 몹시 마음에 든다. 전에 출간한 “황야의 헌책방” 번역이 내게 좋아 편안하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번역자 송태욱님이 번역하셨다. 그리고 “황야의 헌책방”에서는 미처 확인을 못했는데 표지 디자인 작업을 무려 땡스북스 이기섭님이 하셨다. “황야의 헌책방”과 느낌이 꽤나 비슷한데 어떨지, 개인적으로 이런 작은 크기 단행본 좋아한다. 부수적으로 신간 선물 받을 때 힐링할 만한 숲 그림엽서에 예쁜 글씨로 편지를 써 주셔서, 사소한 부분에서도 정성을 다하는 자세가 느껴져 감동 받았다. 서평용 도서라 책에 찍어주신 한뼘책방 스탬프 글씨체도 귀요미!!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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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JTBC 고전적하루 갈라콘서트: 멋진 신세계(노부스 김재영 등) | 스크랩 2018-11-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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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준비+날카로운 문제의식 가지고 글쓰기 작업 과제 압박 받으면서 요 며칠 예민, 까칠했다. 오늘도 너무 피로해 취소할 수 있으면 예매 취소하고 못갈 뻔했다. 수도권러라 공연 한 편 보려면 다녀오는 시간까지 6-7시간 정도 잡는다. 확실히 요즘 공연 관람에 들이는 여력이 종교 생활 수준이었던 듯해 마음에 걸렸는데, 너무 몰두했던 마음에서 좀 빠져나올 수 있게 된 저녁이었다. 못 갔더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 듯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어서인지 오늘 저녁 내 마음에도 디스토피아가 생긴 듯한 기분이다. 안 그래도 요즘 연구보고서 쓰기나 최근 책 리뷰 댓글에 관한 경험 등 쓰는 일에 보람과 기쁨이 따르지 않아 지쳐 있었다. 역시 소통은 어려운 일인지라 길게 쓸수록 한 줄만 삐끗해도 오류, 오해, 불편, 불쾌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 듯 걱정되어, 열심히 기획하고 준비한 오늘 공연을 내내 공감하며 좋게 듣고 보았지만 자세한 기록은 갠소해야겠다.

    

 

오늘도 내내 김재영 주자 보며 연주를 들었다. 의외로 객석2층 D구역에 바이올린 소리가 잘 올라와서 다행이었고, 롯콘은 과연 오케스트라 소리가 좋게 들리는 듯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요즘 “서양음악사” 스터디 하면서 교회, 궁정, 귀족, 중산층들이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을 내내 확인하고 있어서인지 아우디 귀족님 은혜로 비록 주자들 면봉 만하게 보이는 먼 자리였지만(TV 방영 때는 표정이 잘 보이겠지, 기대됨) 좋은 연주자들 연주 듣고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연주 들으며 위로 받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 너무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구경꾼처럼 쉽게 욕하는 관객이 아닌 적극적으로 듣고자 하는 청중‘들’을 위해 연주자들이 앞으로도 오래 좋은 음악 들려주면 좋겠다.

    

 

무료로 나눠주신 프로그램북 기대했던 대로 고퀄이었다. ‘갈라콘서트’ 형식 자체에 반신반의했는데 프로그램북에 취지를 잘 설명해주셨다. 김호정 기자님은 어쩌면 그렇게 글도 설득력 있게 잘 쓰시고 질문도 딱 궁금했던 질문으로 잘 해주시는지!! ‘개인적으로 여력이 된다면 공연장에 직접 와서 감상하는 편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이라는 손열음 주자 멘트를 비롯, 오늘 공연 통해 접한 글이며 멘트며 공감 가는 지점이 많았다. 작곡가들 일러스트 넘나 귀여웠고 곡에 얽힌 이야기(특히 카라얀 일화 ㅎ...)들 재미있었고 또다른 추천곡들 덕분에 풍성한 음악 감상 생활 누리겠다. 요즘 푸코의 실존의 미학 파면서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라, 일기 같은 주자들 개개인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역시 자기를 자유롭고 완전한 예술작품처럼 만드는 삶 최전선에는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가기를 지향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이 힘들지만 기쁘고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평소에도 좋아했고 오늘도 좋게 들은 모차르트, “불협화음” 4악장, 노부스 버전으로 링크해본다. https://youtu.be/oCNSmgnZc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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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공포: 노동의 소멸과 잉여 존재 | 2018-11-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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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동문선 | 1997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신자유주의체제는 임금 노동 필요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경제적 공포'를 활용해 개인을 파편화시켜 연대와 투쟁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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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http://blog.yes24.com/document/10751964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 http://blog.yes24.com/document/10840221

 

대학원 강의 시간에 아렌트, “인간의 조건” 후속 작업으로 현대 사회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위 책 두 권과 함께 읽고 있다. 심정적으로 공감 가는 논지와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문학적이고 감정적이며 구구절절한 에세이 문체 때문에 멘탈 놓고 두세 줄씩 한꺼번에 읽어서 다 읽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저자는 기술혁명과 생산성 향상, 필요한 노동력 감소로 사실상 노동이 종말해 실업이 넘쳐나는 시대에 정부와 기업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만하며 달래고 있다고 보면서 시종일관 분노하고 있다.

 

실업이 선택이 아니라 거기에 내몰리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중요 조건 중 하나인 ‘노동’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간 존엄은 무너지고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인간들이 생존의 위협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수치심을 경험하고 있다는 저자의 문제 제기에 납득할 만하다. 그들은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며 비참해할 뿐만 아니라 최소 생존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얻지 못하며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기다운 삶의 의미와 행복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는데다가 경제적 위기에 대한 공포심이 만연하다보니 자기계발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가 되어 부 축적에 성공하는 인간되기, 사축으로서 노동력을 피로하게 착취당하지만 안정적으로 임금 받고 세금을 낼 수 있는 정규직 되기가 모두의 삶의 목적이자 미덕인 현대이다. 이런 류 논쟁에서 내가 정작 궁금한 지점은 일자리 분배와 관련하여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적당한 노동량을 누가 정하는가?,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결과물 분배가 과연 정의롭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개인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무엇을 교육할지에 대한 문제)?와 같은 문제들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다”: http://blog.yes24.com/document/8695219 를 보면, 21세기 자본주의에서는 생산하는 물리적 노동에서 소득과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일련의 문제에서 근본 원인이 전통적 생산(노동)과 소득-소비와 이윤 체제에 있는가?

    

 

 “자주 들먹거려지는 <부의 창조>를 위해 쓸 것을 다 쓰고 나서, 그 남은 부스러기를 가지고 이럭저럭 꾸려가는 것은 차후에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렇기에 <부의 창조>가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이 없으면 지금의 그 부스러기조차 점점 줄어들어 그나마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일자리, 돈을 벌 수 있는 근거조차 아예, 혹은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들 이야기하는 것이다.” 34쪽.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세계적으로 노동자에게 경제적 위기에 관해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어 연대, 혁명이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사경제는 이같은 대변혁 이전에도 권위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사경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은, 자율권에 있어서 전에 없는 풍부함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이제까지는 필수적인 존재들이었던 수많은 노동자·대중들은, 그동안 사경제에 압력을 가할 수 있었기에 그 권력을 약화시키고, 맞서 싸우기 위해서 단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에 와서는 점점 더 불필요한 존재들이 되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80쪽.

구체적으로 왜 신자유주의 시대에 혁명은 불가능한가? 아무도 정부와 기업에 효과적인 압력을 가할 수 없는 시대에 그들의 착취는 폭주한다.

 

“다소 느리고 노골적으로, 또한 다소 비극적으로 막다른 골목을 향해 가고 있는 제도들은, 말라르메의 시를 읽는 눈에 띄지 않는 독자들이 많을수록 더욱 위협을 느낄 것이고, 그들의 지배력도 그만큼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권력층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 문제에 관한 한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어디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체재가 강요된다면, 그들이 우선 본능적으로 찾아내서 추방하건 제거하는 대상은 바로 말라르메의 독자들일 것이다. 이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말이다...

 

말라르메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능력의 습득을 전제로 한다 .그 능력이란 어떤 숙달된 기술을 갖게 하여, 이를 통해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모든 반론을 제거하고 축소하는 제도에 <아니다!>라고 맞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우리를 옭아매어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만들어낸 말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고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대중들을 모으고 더욱 복종시키기 위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고하는 데 필요한 힘들고 위험한 연습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의식 구조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고 대중들을 더욱 손쉽게 다루기 위해서 문제의 정확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연구하지도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사고를 위한 훈련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만이 자신의 권력을 지켜 나갈 것이다.“ 132-133쪽.

세밀한 통치 기술을 활용해 개인을 호모에코노미쿠스로 조련하고자 하는 정부와 기업에게, 생존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본주의에 기반해 비판과 저항하는 예측 어려운 낭만적 인간은 두려운 존재이다. 이 지점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서 준비시켜야할지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의 교육은, 이 새로운 세대들에게 직업 없이도 지낼 수 있는 삶의 양식을 준비시키기보다는, 그들을 거부하는 꽉 막힌 장소로 들어가도록 떠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을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부터 추방된 자들로 만들어내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결국 이 아이들은 이렇게 해서 불행한 자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젊은이들을 기업체에 넣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시키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기업체들이 이 젊은이들을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기업체에 맞도록 그들을 <교육>시키려고 안달이다. 좀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우리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탓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에 충분히 집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기까지 한다. 그 목표란, 한시라도 빨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샐러리맨의 세계 속에 학생들을 등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목과 교육과정 중에서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전문대생, 대학생 들을 직장으로 데려다 줄 것 같지 않는 쓸데없는 부분들을 조금씩 가지쳐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오로지 <직장에 끼워넣기>만을 점점 더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150-151쪽.

교육계에서도 대부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미래 사회를 위한 ‘역량’ 담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OECD의 DeSeCo 프로젝트에는 혁신적이고 좋은 말이 많지만 결국 친기업적인 교육 체제라는 비판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도래할 미래 사회 변화 양상에 관한 ‘사실적 예측’ 하에 팀프로젝트(=고용 유연화)를 기정사실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아직도 19세기 같은 근대 교육을 하는 공교육 체제는 사라져가는 임금 노동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경제적으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인문학 교과 교사로서 교육계에도 밀어닥치는 신자유주의 여파를 온 몸으로 맞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조합이 전혀 힘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즐거워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일자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바람에, 한 일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일에 필요한 기능을 제대로 익힐 수 없게 되고, 몸담고 있는 기업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직장에 불과하고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고립되어 생활하다 보면, 조합이라는 것이 아무런 효력도 가질 수 없게 됨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의견의 일치를 본다든지, 회의를 연다든지, 유대감 형성이라든가 집단적인 일치감, 위원회 같은 말은 이제 잊혀져 버린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223쪽.

올해 출간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http://blog.yes24.com/document/10432719 에서는 고용 유연화와 비정규직 급증으로 인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우버(공유경제)의 그림자를 사례로 들고 있다. 온갖 좋은 말로 포장해도 공유경제 체제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는 노동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넘쳐나는 학교에서 어떤 연대나 저항을 하기 어려워지는 조건을 생각하면 과연 그렇다.

일련의 책들을 읽으면서 문제 핵심은 분배 불평등에 있고, 여전히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들이 이윤을 다 가져가고 있기에 ‘낙수 효과’는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큰 문제는 세밀한 통치 기술이 연대를 통해 투쟁이나 혁명할 수 없도록 개인들을 파편화시킨다는 점이다. 생존 위기에 관해 공포심을 부추긴다. 또한 지금 소수가 희생하면 모두에게 곧 나은 상황이 돌아오리라고 기만한다. 그리고 ‘능력주의’를 통해 구조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 그러므로 ‘생존’이 너무 어려워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주장은 얼마간 무책임한 변명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를 꿰차고 있는 노동자 역시 생각하기 두려워 분주함으로 도망치고 있어 보인다. 선택한 실업이나 퇴사가 아니라 거기에 내몰릴 현실이 조만간 자신에게도 도래할 현실임을 알고도, 당장 잘리는 사람이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눈치 보며 순응하는 성실한 노동자로 사는 자세가 지혜로울까, 존엄한 인간 조건 중 하나인 노동권에 대해 요구하는 자세가 지혜로울까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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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러시안 나잇: 209회 정기연주회 | - 2018-11-2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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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러시안 나잇

장르 : 클래식/무용/국악       지역 : 서울
기간 : 2018년 11월 23일 ~ 2018년 11월 23일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구매하기

1. 2017 교향악축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임헌정/김다솔) http://blog.yes24.com/document/9412491

2.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차웅, 김범준: 넥스트 스테이지 무대 리허설 관람 http://blog.yes24.com/document/10485429

3. [공연] 2018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 시리즈 Ⅱ: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연주 http://blog.yes24.com/document/10523528

4. [공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안산 공연(정치용, 엄용원) http://blog.yes24.com/document/10567044

    

 

리뷰를 쓰려고 예전 리뷰 검색해보니 임헌정 지휘자 때 코심 연주를 본 적이 있구나. 코심 연주 그때와 지금이 꽤나 다른 분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오케든 지금 주자들과 지휘자가 잘 할 수 있는 방식과 레퍼토리로 합을 맞추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편이 좋지 않은가 싶다. 예당 싹딜로 예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린회원 할인 받아 그냥 예매했던 건가, 기억이 안나네. 아무튼 충동적으로 영화보다 싼 가격으로 3층 중앙 맨 위 좌석을 예매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협은 감이 멀고 잘 안 들렸고, 대편성 오케 연주는 소리와 시야 모두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게 느껴져 즐겁게 들었다. 다시금 콘서트홀 2, 3층 오케스트라 공연 즐기기 가성비 짱짱맨. 오케 연주 듣기 울림이 과하지 않아 산만하게 퍼지지 않으면서 소리가 잘 올라온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북 2천원에 판매하고 있어서 구매하지 않았다. 코심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이라고 들었는데, 내년 예산 편성 때는 프로그램북 무료 배부에 대해 고려해봐 주셨으면 싶다.

    

 

싹딜에 당켓까지 올라왔던 상황으로 알고 있다가 표 받으러 가니 ‘매진’이라 현장 판매 없음으로 보고 꽤나 놀랐다. 양인모의 힘인가, 중앙일보 등 빵빵한 기관들이 이 행사를 후원했던데 초대권을 많이 나눠주셨나?? 아무튼 그 여파인지 역대급 관크였다. 공연 관람 역사 상 난생 처음 필기 관크를 당했네. 학생 둘이 클래식 공연 처음 오는 듯한 대화 나누는 걸로 보아 전공은 아닌 듯하고 수능 끝난 학생 공연 관람 과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악장 사이도 아니고 주자들 연주하는 1, 2부 내내 샤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일기(본인들 표현)를 쓰고 있었다. 연주보다 글씨 쓰는 소리가 더 잘 들리다니, 필기하지 말라고 평소처럼 솔직하게 부탁하면 학생들이 너무 놀랄까봐 싫은 티만 좀 냈는데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 가끔 불빛 방해 되게 휴대폰도 꺼내 보던 학생. 다른 편에서는 악장 사이마다 대화를 나누며 ‘어렵다, 이해 못 하겠다’(하지만 인증샷은 찍으시던데 sns에 공연 좋았다고 해시태그 다시겠지...)며 허리 아파하고 힘들어하시던 분, 중간 중간 계속 드시던 물 빈 물병 바닥에 그냥 두고 가셔서 제가 버려드렸어요. 앞좌석엔 잠꼬대까지 하며 주무시는 분까지. 1부 보고 다른 좌석으로 옮기셨는지 가셨는지 2부엔 빈자리도 좀 생겼다. 공연 중 하지 말아야할 일을 나열해 방송 안내하자면 정말 끝이 없을 듯. 그래도 이 공연 큰 기대 없이 왔다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좋게 들었다는 평이 많다, 그 수많은 관크에도 불구하고 나도 참 좋게 들었다.

 

 

앵콜을 염두에 둔 듯 서곡 없이 첫곡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협주곡 1번. 유튜브 맨 위에 뜨는 무덤덤하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정확한 힐러리 한 연주를  https://youtu.be/SyFQwiAqDS4 배경음악처럼 여러 번 미리 들을 때는 듣기 너무 생소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는데(아이러니한 선율은 쇼스타코비치가 생각나기도). 다음 주 월요일 “고전적하루 갈라콘서트”에서 한 번 더 유심히 보아야겠지만, 양인모 주자는 팬덤도 형성되고 좋은 악기도 쓰고 있다고 하고 요즘 이름이 많이 보여 궁금했는데 이날 프로코피예프 바협 1번 연주만 보았을 때 기교는 좋고 예쁘게 연주하려고 하는 듯하나, 다소 힘이 없는 듯 느껴졌고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러시안 나잇인데... 내가 프로코피예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리고 자리가 3층이었던지라 멀어서였던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연주 끝나고 협연자 표정도 만족스러워보이지는 않았는데 기분 탓일지. 3층만 그랬나, 매진도 되었다고 하니(다들 초대권 관객이었나...) 팬들이 많이 달려왔으리라 생각했는데 박수 소리도 왠지 작게 느껴졌고. 앵콜은 최근 음반도 냈다고 하던데 파가니니를 능숙하게 연주해주었으나 이런 기교 요하는 곡 역시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니라서 그냥 들었다.

    

 

사실은 ‘러시안 나잇’이라는 주제도 마음에 들었거니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들으려고 급 예매했기도 하다. 2018 교향악축제 시즌이었던 4월에 KBS클래식FM 광고 때마다 줄창 흘렀던 1악장 유명한 부분은 이제 너무 익숙해서 최애하며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곡은 봄처럼 훈훈하게 낭만적인 느낌인데 계절이 어느새 스산한 겨울이다. 2악장은 타악기군 힘이 너무 좋으셔서 심벌즈 나올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다. 이 곡 전체적으로 코심의 관악파트가 부천필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화려하게 지르는 빵빵함이 느껴졌다. 코심이 요즘 이런 저런 반주를 자주 하면서 관 파트가 노래하는 듯한 선율을 자주 연주하곤 해서 그런지 주선율을 독주하다시피 연주하는 이 곡 역시 느낌을 잘 살리며 삑사리도 없이 자신 있게 잘 연주하셨다고 들었다.

3악장 그 유명한 노래하는 듯한 선율은 언제 들어도 달달하고 낭만적이다.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듯한 초심자 관객들도 손 지휘를 해가며(거슬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3악장 끝나고 꽤나 자신 있는 박수가 나와서 오늘이 초대권 파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4악장 트럼펫 등 관 파트가 시원하게 질러주셔서 곡을 상쾌하게 마무리했다.

라흐마니노프와 앵콜 모두 관 파트 중 악기 특성 때문인지 주자의 의도인지 클라리넷 템포가 매우 여유롭게 들렸는데, 지휘자께서 과하게 이끌지 않고 클라 독주에 인내심 있게 맞춰주시고 다른 주자들도 지휘에 맞춰 출렁거리지 않고 함께 여유롭게 연주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빨리 연주하려다가 서로 템포가 달라서 절뚝이는 연주보다는 다 같이 여유롭게 연주하는 편이 훨씬 평온해 듣기 좋았다. 클라의 풍부한 표현이 만족스러우셨는지 커튼콜 때 클라 주자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역시나 문외한 막귀이나 전체적으로 현파트가 엄청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듯 들리지는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기록해둔다.

 

앵콜은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를 관현악 버전으로 연주했다. 환호와 여러 번 커튼콜 후 주자들이 감격과 흥분 상태에 빠졌다고 보았는데, 이 슬픈 느낌 곡을 여유롭게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께서 손동작으로 주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연주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석이 3층이라 코심 지난 연주들에서 좋았던 이지수 바이올린 주자, 여수은 비올라 주자 너무 작게 보여서 아쉬웠다. ㅠ_ㅠ...

 

 

사방에서 카메라가 녹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KBS중계석에서 조만간 중계하리라는 썰이 있음). 반주 아닌 본인들 만의 정기연주회라서 그런지, 요즘 좋은 평을 덜 받아서 그런지, 기록에 남으리라는 생각 때문인지 초반에 주자들이 다소 눌리고 긴장되어 보였다. 게다가 협연 때는 소규모 편성으로도 바이올린 협연자 다소 작은 소리를 잡아먹지 않고 음량을 맞춰주며 연주해야 했으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는 선곡이 ‘사골’이라는 사전 평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 중점을 두어 준비 열심히 하신 듯 실연 보신 분들 후기들이 좋다. 종종 반주하는 코심 특유 ‘뽕끼’(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지... ㅠ_ㅠ) 특성을 좋은 쪽으로 살릴 수 있는 레퍼토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 후 커튼콜 때 협연 때와는 다른 엄청난 환호와 박수에 주자들 스스로 만족스럽고 벅차 보였다. 이 분들 요즘 인정과 칭찬, 자신감이 필요했던 시기였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다 뭉클했다.

 

올해 코심에 정치용 지휘자가 오셨는데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며 진화하는 모습을 보는 듯해 좋았다. 지휘자는 곡이 익숙하신 듯 전체를 암보하고 조망하면서 음악이 보이는 지휘를 보여주셨다. 브람스에 비해서는 움직임이 많아지셨는데 그 와중에도 산만하지 않은 평온함이 느껴졌다. 올해 안산 브람스 연주를 보면서 코심 일부 주자들 프로젝트 연주였던 브란덴부르크 때와 확연히 다르게 지휘에 통제되는 연주를 보며 잘은 모르지만 지휘자님 카리스마가 대단하신가보다 생각했는데, 그 후 한 인터뷰 기사를 하나 읽으면서 오해였음을 깨달았다(중앙일보 김호정 기자 작성 기사 “"자유로운 조직의 결과가 좋다" 지휘자 정치용의 리더십” https://news.joins.com/article/22994061 ). 그 기사를 염두에 두고 이번 공연을 보니 지휘자는 그야말로 연주자가 실력을 낼 수 있도록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이끄는 음악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오늘 관 파트 연주가 매우 만족스러우셨는지 커튼콜 때 관 파트를 여러 번 일으켜 세우시며 치하하셔서 인상 깊었다. 꾸중이 아니라 칭찬과 인정으로 주자의 좋은 능력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이시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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