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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교토 게이분샤에서 발견한 소비와 유통의 미래 | 2018-03-3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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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호리베 아쓰시 저/정문주 역
민음사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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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일본 작은 책방 운동을 먼저 실험한 교토 게이분샤 이치조지점 점장(이었던) 저자가 거리에서 작은 가게들이 상생하며 서점이 살아남을 길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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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동네 도서관이 신설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시설은 좋은데 장서가 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슬프다. 이사 전 싹 반납하고 왔는데, 강의 듣느라 필요한 책이 있어 다시 안산에 가서 빌려오면서 마침 들어온 희망도서들과 위시리스트에 있던 책들을 잔뜩 빌려왔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마음이 두둑해졌다!!

 

학술서적과 논문들을 읽고 있는 일상이라 머리를 식힐 책이 필요하다. 지난 겨울에 작은 책방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책마다 이 책 저자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그가 이 책을 쓸 당시까지 근무했던 교토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은 규모는 작은 책방처럼 작지는 않은 모양이나, 일찌감치 일본 서점들과는 다른 독특한 길을 모색하고 꾸준히 새로운 기획을 시도해서 명성을 얻은 듯해보인다. 전반적으로 저자가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시대에 젊어서부터 서점을 기획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패기 자체도 그렇다. 또한 이 책 기획 의도에 드러나듯 지속 가능한 서점을 위해 마을 거리, 골목의 독특한 작은 가게들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춘 점이 그렇다.

 

저자는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에서 했던 실험을 연표로 제시하는 등 게이분샤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 서점이 자리한 거리에서 특별한 가치관을 지향하며 꾸준히 작은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는 분들 이야기와 가게 모습을 소개하며 작은 책방이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핵심은 작은 가게들이 상생해야 한다는 점에 있는 듯하다. 실제로 저자는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을 주축으로 다양한 협업과 행사를 기획, 운영해왔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난립하는 이 시대에도 작은 가게를 운영하려는 자영업자들이 공유할 만한 공감대가 있을 테다. 교토 특유 독특함도 이런 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데 한몫한다. 유적이 있는 이 지역은 제조업보다는 관광 산업과 자영업 위주이다. 특히 서점이 자리한 거리는 대학가로서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내내 소비자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질문한다. 

"... '기호품'을 다루는 개인 점포의 생존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개인 점포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체인점은 전 세계 모든 거리로 진출하고 있다. 또 방 안에 앉아서도 원하는 물건을 챙길 수 있는 온라인 숍은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세상은 대단히 편리해졌다. 소비자로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현상을 진화이자 필연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작은 가게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고객이 영리한 소비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거리가 글로벌 체인점으로 뒤덮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분위기도 상품의 일환이 아닌가? 사람들은 자꾸 쉬운 것을 찾고, 트위터처럼 140자도 안 되는 짧고 쉽고 단순한 이야기가 대접을 받는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 같은 정보조차 개인의 취향에 맞춰 취사선택할 수 있다. 별의 개수로 가게의 우열이 정해지고 점수가 낮은 가게는 점차 도태되다 보니 '실패'나 '손해'를 감수하는 곳이 확연히 줄었다. 점수를 매기는 소비자의 힘은 날로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류에 불만을 품고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이들 소수파는 거리의 변화에 한숨지으며 편리함만 추구하는 세상에 딴죽을 건다. 그러나 소비자 만능인 편리한 세상이 왜 나쁜지에 대해선 명쾌한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인정'이나 '인간미' 같은 모호한 단어, '예전이 좋았다.'라는 식의 투덜거림만 넘쳐난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그처럼 수치화할 수 없는 것에서는 가치를 뽑아낼 수 없다..." 6-7쪽.

 

일단 이 책에서 미셸 푸코나 하루키 이름을 만나다니 반가웠다!! 몇 년 만에 공부를 하러 대학에 돌아가 몸소 느끼고 있는 문제 의식을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어 공감했다. 책 전반에서 최근에 흥미롭게 본 영화 "소공녀"가 떠올랐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 외 잉여로운 '기호품'에 대해 당대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물품들을 다루는 가게들의 생사나 운영 방식이 결정될 테다. 현대는 기호품을 다루는 이들에게 별로 좋은 시대가 아닌 듯하다, 특히 작은 가게들에게는. 기호품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자세는 바로 모든 분야를 수치화, 계산하여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나오는 듯하다. 나는 국립 사범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최근 강의실 풍경이 불과 몇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경험하며 때마다 놀란다. 저자가 말하는 낭만적인 학문 분야인 '철학'을 공부하는 강의실에서조차 효율적인 임고 공부를 위해 '써머리'하는 발제와 논의 방식이 퍼져 있어서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요즘이다. 주도적인 분위기에 균열을 내며 영화 "소공녀" 주인공 미소처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당당하게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저자는 교토 대학가 거리에서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듯하다.  

"싸기만 하면 좋다는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주체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의 힘이 아닐까?... 점주가 특별히 아끼는 술을 묻고 배우거나 단골들 사이에 섞여 갖가지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의 의식이야말로 사쿄 구 주변에 개인 점포가 존속할 수 있는 힘이다... 학창 시절부터 서점에 몸담은 지 14년. 수많은 학생을 만나고 관찰해 왔다. 최근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미셸 푸코의 책을 사러 오는 학생들은 많이 줄었다. 그들도 분명 책의 내용에 빠져 있었다기보다는 일종의 급격한 성장을 겪었던 것이리라. 그 방향이 엉뚱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의기에는 박수를 보낼 만했다. 그에 비해 요즘 대학생에게는 성장을 위한 지식이나 미의식보다 친구들과 공감하기 위한 도구나 소비의 우선순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예시를 제시하며- 정리자 주) 역시 교토는 가난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도시인 것이다. 탤런트 뺨치는 화려한 외모의 객원 교수나 비즈니스스쿨 같은 실용 학문이 판을 치는 요즘, 대학 주변에서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 (또는 그렇게 보이는) 문화, 예술 분야의 학문에 아직도 뜻을 둔 학생을 보면 낭만마저 느껴진다. 나 자신이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와서인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선 '부자가 되는 것만이 성공하는 길은 아니야!', '쓸데없을 것 같지? 그래도 난 한다!'라는 오기와도 같은 자부심이 보인다." 112-113쪽.

 

또 이 책을 읽으며 반가웠던 이름은 일본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였다. 작은 책방 생존 의미에 대해 '맵 러버와 맵 헤이터' 비유를 끌어와 설득력 있게 논하고 있어서 공감했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교토에 살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께 용돈을 받으면 책방 '산가쓰쇼보'로 달려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책등만 자주 접해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1인으로서 저자가 서점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한 줌밖에 안 되는 지식이 그렇게 '연결된' 데서 느낀 감격은 앞으로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18쪽. 라고 증언하는 지점이 의미 있게 여겨졌다. 서점 기획자인 저자는 그러한 좋은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싶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산가쓰쇼보'는 3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산가쓰쇼보를 운영하는 시시도 교이치의 인터뷰 발언을 보아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공감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책이 좋아요. 책이라는 건 생활의 양식이자 살아 있는 존재니까요. 한 권만 덜렁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연관시켜야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되지요."

매출이 신통치 않은 책이라도 진열하는 방식에 따라 책은 자기 자신과 옆의 다른 책까지도 빛나게 한다. 그러니 서가를 잘 편집해 두면 손님들은 서가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서 흥미와 지식의 폭을 자연스레 넓힐 수 있다." 112쪽.

 

일본 서점들이 따라왔던 관행처럼 총판이 팔릴만한 책 목록을 뽑아 서점에 일방적으로 입고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일찌감치 좋은 책을 골라 잘 배치해온 산가쓰쇼보나 게이분샤 이치조지점과 같은 색깔을 지향하는 작은 책방들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 말처럼 필요하거나 읽고자 하는 책이 확실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해서 사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고 편리하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고 있을 때 오프라인 서점에서 우연히 다른 책을 만나 다음 독서로 연결시키는 경험을 통해 '매끄러운' 방식이 아니라 다소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우며 거친 방식으로, 생각지 못한 계기로 깊이 배울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배움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신념처럼 배울 때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독서에 적용하자면 우연히 만난 책들을 통해 생각지 못하게 배움을 연결해 나갈 수 있다. 나는 체계적인 방식을 편하게 여기는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선천적 지리중추 결핍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맵 헤이터'처럼 살고 있다. 여행에서는 그렇게 해서 우연히 밟는 장소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렀을 때는 그렇게 해서 좋은 책을 만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도서관이나 서점이라는 장소가 참 좋다.   

"(후쿠오카 신이치,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한 부분을 다루며)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지도를 정말 좋아한다..." 이런 유형이 '맵 러버(map lover)'다. 맵 러버의 관점에서 서점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헤매지 않고 최단 거리로 접근할 수 있는 인덱스형 레이아웃을 좋아할 것이다. 따라서 최단 시간 내에 찾는 물건에 도달할 수 있는 합리성 그리고 선택의 폭과 직결되는 방대한 상품 구비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사기 위해 꼭 서점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맵 헤이터(map hater)'라 불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렇다.

"가고 싶은 곳을 갈 때 지도나 안내판에 전혀 의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도 같은 건 귀찮아한다..."

신체의 그 어떤 세포로도 발전할 수 있는 ES세포(만능 세포)에도 맵 헤이터와 비슷한 성질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 목적이나 조직의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포와의 관계성에 의해 자신을 규정하기 때문에 피부에서 간에 이르기까지 무엇으로든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맵 헤이터'는 ES세포처럼 자신을 바꿔 주는 정보를 찾아 책이라는 숲속에서 방황하기를 바랄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22-124쪽.

 

여담인데 민음사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 만든 책에서 이런 오류를 발견했다. 좋아하는 일본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 이름을 '가미오카 신이치'라고 번역했다. 누군가 한자를 잘못 써서 발생한 문제인 듯. 이 책에 써 있는 책은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http://blog.yes24.com/document/3880032  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한국에서 번역 출간했다. 고유명사인 유명 생물학자 이름을 틀렸으니 혹시 개정하게 되면 꼭 고쳐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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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평화론: 하나의 철학적 기획 | 2018-03-3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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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구 평화론

임마누엘 칸트 저/이한구 역
서광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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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말년에 자신의 인간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해본 이론적 실험으로, 인간처럼 국가도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시각이 흥미롭다. UN 모체인 세계 연맹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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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과 학생들에게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이나 "도덕형이상학 정초"(제목은 익숙하나, 너무 어렵게 느껴져 완독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생각)가 익숙하다. 칸트는 어렵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대학원 평화교육연구에서 이 길지 않은 책 한 권을 함께 읽은 후 '칸트 치고는 비교적 읽을 만하다'며 기뻐했다. 칸트 말년에 쓴 이 이상주의적이면서도 '칸트 치고는' 현실적인 면이 있는 이 책은 잘 알려진 것처럼 현대 UN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연맹에 관한 기획을 담고 있다.

 

칸트는 자신의 인간학을 현실 정치 측면에서 국가론에 대입하는 사고 실험을 하고자 했다. 그가 인간을 이성을 가진 합리적 존재로 보기에 공화주의적으로 성숙한 국가 역시 그러리라고 믿는다. 서언에서는 자신이 왜 이런 철학적 기획을 제안하게 되었는지 밝히고, 제1장에서는 세계 영구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선결 금지 조건인 예비 조항 6개를, 제2장에서는 확정 조항 3개를 제안한다. 이후 추가조항들과 부록까지 덧붙이며 자신의 논의를 보완하고 있다.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진지하고도 진지했던 3 비판서와 달리 이 책에서 칸트 특유 농담 코드를 종종 발견하며 빵 터졌다. 칸트가 정말 '영구 평화가 달성되리라'고 믿었는지,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으로 비꼬며 쓴 글인지 강의 시간에 갑론을박 했을 정도로 이 책은 실천적 정치인들이 읽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이상주의에 가까운 논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칸트가 '영구 평화' 달성 가능성을 믿으며, 정말 달성하게 만들기 위해 그 답지 않게 현실적으로 다소 타협을 해가면서까지 진정성을 가지고 이 글을 썼으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남겨진 문제는 칸트가 '권리'를 기반으로 이 논의를 펼치고 있다보니 확정조항 3에서 '세계 시민법'과 관련하여 '이방인'에 관해 적으로 간주하지 말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요청하며 보편적 우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최소한 단기적, 법적 우호에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세계 시민 논의에 대해서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보인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지점은 칸트를 계승했다는 롤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소속한 단체 정책위에서 교육정책에 대해 논의하다보면 결국 어떤 정책을 결정하려면 마지막에는 좋은 가치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에서 타자나 이웃을 (레비나스 의미에서) '환대'하고자 선의를 가져도, 결국은 '법'적으로 명확한 경계를 그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만난다. 강제적 의무인 법적 권리는 도덕, 윤리적 선의보다 범위가 작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강의 때 서언과 제1장을 짤막하게 발제했는데 여기에 덧붙여둔다. 이 부분을 잘 읽으면 칸트가 어떤 의도로 이 기획을 제안했고, 어떤 맥락으로 논의를 풀어갈지 예상할 수 있다.

 

1. 서언: 영구 평화를 위하여

칸트는 “영구평화론”에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부제를 붙이며 서언에서 이 작업이 정치 이론가로서의 이론적 제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실천적 정치인들에게 ‘악의에 찬 비난’과 ‘철학자의 탁상공론이라는 멸시’를 금하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어떤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도 국가에 해를 끼치지 않을 이론적 사고 실험을 벌이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검토한 세 이론가와의 차이점은 그가 극단적 폭력이 아닌 합의, 협상을 통해 평화를 달성할 방법을 제안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이러한 기획을 통해 숙의 민주주의(성숙한 공화주의) 가능성, 세계 국가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세계 연맹을 맺을 가능성을 확보했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개인 주체를 발견했던 근대에 칸트는 개인뿐만 아니라 도덕적 책임을 가진 인격과 같은 성숙한 국가가 영구평화를 위해 서로 납득할 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합의를 통한 법 계약이 가능하며, 국가 이성들이 스스로 합의한 법을 지키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2. 제1장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

칸트는 본격적으로 확정 조항을 제안하기 전에 그 조항들이 잘 작동하도록 하는 최소한 금지 조항인 6개조 예비 조항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조항 1, 5, 6은 즉각적으로 엄격하게 시행해야 할 금지 조항이다. 나머지 조항 2, 3, 4는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시행 연기를 허용할 수 있는 금지 조항이다.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결코 평화 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평화 조약 체결 시에는 전쟁 원인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원인을 남기고 조약을 체결한다면 그 상황은 일시적인 휴전일 뿐 영구적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권력이나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천적 정치인은 이 조약에 동의할 수 없을 수 있다.

(2) “어떠한 독립 국가도 (크고 작고에 관계없이) 상속, 교환, 매매 혹은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의 소유로 전락될 수 없다.”

칸트가 상정하고 있는 ‘독립 국가’는 마치 이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개인 인격 주체와 유사하다. 주권을 가진 이 국가 이성은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과 존엄을 가진 ‘도덕적 인격체’이다. 중세 봉건국가, 근세 전제군주국가는 국가를 세습, 상속, 국가 간 결혼을 시키거나 다른 국가를 식민지로 삼고 교류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가를 주고받았다. 이는 국가 간 ‘합병’을 일종의 산업으로 보는 관행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 그러한 거래는 영토나 세력 확장, 재산 증식 수단으로 여겨졌다. 국가는 인격과 유사하므로 이는 ‘인격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 자신의 주장에 위배된다. 그는 군대 파병(차출, 빌려주기) 같은 경우를 예로 들며 그 군인들이 자신의 적이 아닌 국가에 대해 싸워야 하므로 ‘잘못된 원리’에 따른 행위라고 보았다.

(3) “상비군(miles perpetuus)은 조만간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점차 상비군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비군을 운영함으로써 항상 전쟁을 준비한다는 신호를 다른 나라들에게 보내는 행위는 그들을 위협할 수 있고, 서로 군비에 관한 무한 경쟁에 빠지게 한다. 결국 상비군은 무한 경쟁을 중단하기 위한 단기 전쟁, 공격적 전쟁을 유발한다. 둘째, 군인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죽기 위해 고용 되고 훈련 받는 존재이다. 상비군 운영은 군인을 단순한 기계나 도구로 간주하며 인격을 수단으로 여기는 행위이다. 그는 시민들이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기적,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는 행위는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칸트는 전쟁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사력, 동맹력, 재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재력이 가장 힘이 세다. 그러므로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들이 전쟁을 위한 재화 축적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재화 축적은 다른 나라를 위협하여 전쟁을 유발하거나 선제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4) “국가 간의 대외적 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국채도 발행되어서는 안 된다.”

‘빚’은 근대 상업 사회에 유행한 특징이다. 특히 전쟁을 위한 국채 발행이란 조세 등을 통해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재화를 전쟁에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국채 발행이 늘어난다면 지배자의 호전적 본성(‘인간 천성’)과 편리함 때문에 국가 파산 위험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를 통해 피해를 유발하거나 월권하는 국가에 대해 나머지 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대항할 수 있다.

(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폭력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월권 행위는 독립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그 자체가 공격이다. 또한 모든 국가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6)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에 장래의 평화 시기에 상호 신뢰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적대 행위, 예컨대 암살자(percussores)나 독살자(venefici)의 고용, 항복 조약의 파기, 적국에서의 반역(perduellio) 선동 등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행위는 비열한 전략이다. 그 자체로 비열하며, 모든 분야에 계속 쓰게 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더욱 나쁘다. 법이 아닌 힘으로 해결하려는 비정직하고 폭력적인 전략은 적의 성품에 대한 신뢰를 해침으로써 초토화하는 섬멸전을 초래하므로 즉각 엄하게 금지해야 한다.

 

3. 결론, 의문점

칸트는 그의 학문 체계에서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어 보인다. “영구평화론”에서는 그의 인간학을 국가(들)에 적용 시켜보는 사고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국가를 개인 주체와 같은 국가 이성으로 보며, 성숙한 국가 이성이라면 합리성을 바탕으로 ‘법’적으로 계약한 후 스스로 합의한 법을 지키리라고 믿는다.

(1) 국가 간 경계가 사라져가는 현 추세에서도 ‘국가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그의 주장은 유효한가? 그 국가들은 과연 이성적으로 성숙해서 신뢰할 만한가?

(2) 칸트가 주장한 세계 연맹이 UN의 모체라고 하지만,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불러도 적절할 만큼 UN에서 미국 입김이 세다. 현 상황에서 미국이 국제 경찰을 자청하며 여러 나라에 행사하고 있는 여러 지원 혹은 간섭을 생각해볼 때 UN은 원 취지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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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산책 관악: 책상은책상이다, 북션 | 작은책방 2018-03-3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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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월요일 정책위 참석하러 좋은교사사무실(@서울대입구역 인근) 들어가는데, 주말에 엔진오일 누유가 있어서 월요일에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나니 집으로 돌아오기도 애매해지고 해서 바로 서울 올라가 시간을 탕진하기로 한다. 마침 봄답게 날씨도 부쩍 따뜻해지고 해서. 가방엔 항상 조만간 가고 싶은 책방에 들르기 위해 책방산책 지도를 들고 다니던 차였다.

 

한대앞역처럼 서울대입구역 앞에도 서울대가 바로 있지 않다는 사실!! 1정 연수 받을 때 안산에서 매일 다니기 힘들어 녹두거리 일반 가정에서 하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 그 길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았다. 작년 가을에 노부스 콰르텟 공연 본다고 성남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 헬게이트를 차로 지나갔던 기억도 난다!! ㅠ_ㅠ

 

 

걸어서 움직이는 길이 아니라는 양 이 넓은 대로에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미세 먼지 때문에 더욱 그런 걸까?? 한참을 걷다 보니 고시촌이 나왔다. 사실 가장 가고 싶었던 '그날이오면'은 주소지 주변에서 입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포기. 인터넷에서 보이는 그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헌책방'이라는 큰 글씨 간판이 인상적인 '책상은책상이다'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협소하다. 백팩조차 거추장스러워 내려놓고 한바퀴 둘러보았다. 대학생들이 교재로 썼다가 학기 끝나면 팔았을 듯한 다양한 분야 전공 서적들이 쌓여 있다. 아무래도 그나마 팔리는 책은 입구에 꽂아두신 소설책들일 듯. 필요한 책이 있으면 사장님께 꼭 여쭤봐야할 듯한 구조였다.

 

예전 북션을 가보지 못했는데, 최근에 이전 및 리뉴얼 했나보다. 지하로 내려가니 책을 정리중이니 양해 부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고시 학원들의 원색적인 홍보 문구 사이에 위치한 이 책방이 생경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작은 책방이라기에는 규모가 꽤 있는 책방 공간을 반 나누어 오른쪽 편에는 실용서적들도 비치하고 있지만 왼쪽 편에는 오래 머물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은 '읽고 싶은 책'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동선 상 내려가자마자 왼쪽 앞으로 쭉 들어가면 보이는 공간은 아름답게도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해둔 공간이다!! 새 책인 듯해보이는데 시간 있으면 여기 앉아 다 읽고 싶을 만큼 매력 있는 책으로 가득하다. 더 왼쪽 서가로 이동하면 각종 인문, 사회, 문학 서적들이 보인다. 마침 함께 근무했던 샘이 뭐 부탁하려고 전화를 했기에 통화하면서 눈으로 책 등을 훑고 나왔지, 집중해서 구경했더라면 책 몇 권 업어 왔을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내 취향인 책들로 가득했다!!!! 다음에 또 들르고 싶지만 또 걸어가기엔 빡세고, 운전해가기엔 도로 사정이 헬게이트고, 버스를 갈아타고 가기엔 번거롭고...

 

 

서울대입구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지도앱이 도로변 길로 알려주었는데 무시하고 골목으로 올라갔다. 무슨 고개를 넘는 듯 오르막이 빡셌다. 주민들 걸어서 다니기 힘드시겠다. 서울대입구역-> 서울대, 두 번은 못 걷겠다... ㅎㅎ 깨알 홍보, 2018년은 기독교사단체 연합체인 좋은교사운동에서 격년으로 개최하는 기독교사대회가 있는 해이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1차 등록 기간이다. 경험상 분주했던 학기를 마무리하고 가졌던 이 시간이 항상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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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읽기 어려운 책에 대한 어려운 리뷰]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 스크랩 2018-03-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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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 chY 10월호 안전 영토 인구 표지 이미지.jpg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은 『역사유물론의 궤적 (1983)』이란 짧은 저작에서 “오늘 날 파리는 반동의 도시가 되었다”라고 일갈하며 프랑스에서 기원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맹공격했다. 그러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테리 이글턴은 이 책에 대한 서평 ?마르크스주의ㆍ구조주의ㆍ탈구조주의 (1984)? (국역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수록)에서 이들 프렌치이데올로기에 대한 앤더슨의 비판이 상당부분 근거가 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싸잡아서 비판하고 있는 바람에 그들이 제기한 정당한 문제의식들까지 묵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푸코와 데리다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이론들을 맹목적으로 깎아내리고 마르크스주의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앤더슨의 태도가 여성운동 같은 현실 운동을 부당하게 폄하하는 한계를 드러낸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푸코 앞에 푸코 없고 푸코 뒤에 푸코 없다

 

미셸 푸코는 쟈크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데리다가 구조 내부에서 구조의 내적 불안정성을 폭로하면서 구조의 해체를 시도했다면, 푸코는 초역사적으로 보이는 담론 구조의 역사성을 드러내고, 그것을 형성시키는 힘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현재의 삶 속에서 인간을 얽어매고 있는 것들을 폭로하려 했다.


흔히 푸코의 작업은 60년대의 고고학 시기와 70년대의 계보학 시기로 구분한다. 『광기의 역사 (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 (1963)』, 『말과 사물 (1966)』 등에서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초기 근대 담론의 역사성을 탐구하던 푸코는 68년 혁명 이후 담론을 넘어 그것을 생산하는 권력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니체에게 빌려온 “계보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한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칸트 이래 인식적ㆍ윤리적ㆍ미학적으로 자율적 주체로 인식되어 온 근대적 주체가 사실은 형벌과 감옥 같은 제도적 장치에 의해 규율을 내면화하며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성의 역사』 1권에서는 성과 욕망을 단지 억압된 것으로 보는 프로이트ㆍ라캉 류의 정신분석학을 암묵적으로 비판하며 근대적인 성적 주체가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작업을 통해 푸코는 권력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의해 소유되고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신체에 작용하는 미시적이고 생산적인 힘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푸코의 고고학은 이른바 “근대”를 새로운 눈으로 이해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우리가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무수한 관념과 상식들이 실제로 불과 2, 3세기 전에 형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만들었다. 근대 ○○의 탄생, 또는 기원이라는 제목이 붙은 많은 저작들은 거의 모두 푸코의 고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푸코의 권력이론이 끼친 영향은 더욱 컸다. 그것은 일상의 관계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찰하게 만들었으며 은폐된 권력관계를 노출시키고 저항을 조직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글턴의 지적대로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구조주의를 무시할 경우, 70년대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등장한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등 저항 운동들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여 온 여성주의와의 대화 불가능성은 이들이 아예 일상에서 권력관계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푸코의 아포리

 

하지만 푸코의 작업은 이미 당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자유의 가능성도 부인하는 허무주의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근대 사회 자체가 원형감옥 같다면 누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푸코는 1978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하버마스처럼 계몽이냐 아니냐 식으로 재단하는 태도는 이제 별 의미 없으며, 현실의 제약 조건들을 역사-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통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점에서 자신이 오히려 계몽의 비판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푸코는 자신의 고고학과 계보학을 어디까지나 또 다른 형이상학을 가능케 하지 않는 비판의 구도와 방법으로서 정의한다.

 

푸코의 말처럼 그의 작업이 “우리가 속한 역사적 시대에 대해 끝없이 비판하려는 철학적 에토스를 영원히 재활성화”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집단적 투쟁을 통해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저항운동이 가능한 것인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푸코는 자신이 결코 허무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확신하는 절대적 낙관주의자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저항을 개인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또한 근대적인 주체가 감옥, 군대, 학교, 공장과 같은 근대의 제도적 장치 속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주체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낡은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 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라고 말했는데, 이는 아마도 계급이 폐절된 공산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강제나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해방된 인류를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푸코의 눈에는 이 “사회적 인류”란 것 또한 새로운 규율 주체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보장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권력관계라는 원형감옥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이 시지프스의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존재란 말인가? 아니, 해방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푸코의 작업에 대해 이러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70년대 중반까지 이에 대한 답은 불분명했다. 국가나 정치와 같은 거시적인 영역은 푸코가 다루는 대상에서 조심스럽게 회피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 영토, 인구』와 통치성


1976년 『성의 역사』 첫 번째 권이 출간된 이후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수행한 일련의 강의는 이런 비판들에 대한 푸코의 대응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1977~78년에 행해진 푸코의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는 개인의 신체에 가해지는 미시권력 분석에 치중해 온 푸코의 변화가 명확히 드러난 책이다.

 

푸코는 통치성이라는 특수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근대국가를 통치성의 효과로 분석한다. 그는 “통치”라는 말의 기원을 기독교가 유럽에 도입되면서 나타난 흔히 목자와 양떼로 비유되는 사목 권력으로 끌고 올라간다. 푸코에 따르면 목자는 양떼들을 “전체와 각자를 동시에” “전체적인 동시에 개별적으로” 주시해야 한다. 사목 권력의 통치개념으로부터 비롯하여 근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통치성이 발휘하고 있는 권력기술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사목 권력과 마찬가지로 전체와 개인을 동시에, 전체 속에서 개인을 예속화시키는 기술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푸코의 작업이 학교, 병원, 군대, 감옥, 가족 등 근대 권력 장치들을 통해 규율이 어떻게 개인의 신체에 아로새겨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 통치성과 생명관리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어떻게 국가가 인구라는 전체를 보호하고 조절하는지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푸코의 강조점은 신체에서 인구로, 권력에서 통치성으로, 규율에서 생명관리정치로 이동한다. 근대국가의 역사는 통치성의 변화를 통해서 설명된다. 예컨대 푸코는 중상주의 시대에는 내치(행정관리)를 중심으로 통치성이 형성되었지만, 중농주의 이후 경제라는 자율적 영역이 등장하면서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통치성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70년대 후반 푸코의 작업은 미시권력과 근대국가의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작업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전, 영토, 인구』의 말미에서 푸코는 “미시권력의 수준과 거대 권력의 수준 사이에는 절단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 … 미시권력에 관한 분석은 통치나 국가 같은 문제에 대한 분석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만나게”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시권력에 대한 저항과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연결은 여전히 불완전하게 남은 듯하다. 푸코는 후에 “통치되는 자들의 권리”, “봉기에 의한 주체성의 도입” 같은 개념들을 고민했지만, 이들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성의 역사』 2, 3권과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를 통해 푸코는 이를 주체화의 문제로 해결하려는 듯 보인다. 이 저작들을 통해 푸코는 고대 그리스 문헌들을 통해 기독교 유입 이전의 주체화 방식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배려”나 “자기 통치”를 통한 독립된 주체의 가능성을 개진한다.

 

그러나 통치성에 대해 스스로를 지속가능한 작품으로서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또 다시 저항의 개인화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뿐만 아니라 결국 기독교 담론 분석에서 근대의 문제들을 도출하는 푸코의 방식은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1984년 푸코는 자신이 던진 문제들을 완전히 풀지 못한 채 58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푸코 잊기는 가능한가?


시뮬라시옹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77년 『푸코 잊기』라는 책을 썼다. 그에 따르면 푸코의 권력이론은 미디어의 무한복제 시대에 이미 낡은 것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푸코를 잊어버릴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푸코는 잊혀 지지 않았다. 오히려 푸코가 드러낸 일상사회에서의 권력관계는 이제 부정하지 못할 현실이 되었다. 그것을 부정할 때 지난 수십 년 동안 푸코의 영향을 받은 여성주의나 다른 소수자 운동이 이뤄온 실천적 성과들을 부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의 작업 역시 앤더슨이 바라듯이 오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배척할 수만은 없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강력한 도전을 제기하고 그럼으로써 시드니에서 샌디에이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젊은 세대 급진주의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푸코이기 때문”이라는 테리 이글턴의 제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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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영토, 인구 미셸 푸코 저/심세광,전혜리,조성은 공역 | 난장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는 사후 30여 년이 지난 푸코가 왜 이처럼 여전히 '동시대의 사상가'일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화제작이다. 푸코가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가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더불어 보편적 문제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푸코의 동시대성과 꾸준한 영향력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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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 영화 2018-03-2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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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공녀

전고운
한국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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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데 새집으로 이사한 후 엄마가 집을 애지중지 한다. 항상 '괜찮다'고 말하던 엄마에게 잔소리 들을 일이 생기고 있다. 내가 조심해야 하는데 미안... 독립도 결혼도 하지 않고 얹혀사는 30대라 '부모님께서 나가라고 하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요즘이다. '적금 깨며 살면 된다'고 농담처럼 말하며 2년이나 무급 청원휴직을 썼지만 3/17 당장 월급이 안 들어오기 시작하니 학교 내려가 식권 한 장 사기도 손이 떨린다. ㄷㄷㄷ 이 영화 너무 보고 싶어서 내리기 전에 얼른 보자고 무려 주말 낮에 차 몰고 안산CGV까지 다녀왔다. 영화비도 ㅎㄷㄷ... ㅠ_ㅠ 이 주인공 삶을 생각하면 내 삶엔 사치가 참 많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소공녀"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불온한 영화다. 주인공은 '빚 지지 않는 게 목표'인 사람이다. 딱히 꿈은 없고, 적성을 살려 비정규직 중에서도 최고봉, 일하고 그때 그때 현찰박치기로 돈을 받는 가사도우미 일을 한다(요즘 일본 만화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이북으로 보고 있는데 생각 나는 대목이었음). 나처럼 빌붙을 부모님이 없고, 아마 계셔도 타협하지 않았을 테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가치라고 부르는 의식주보다 자신의 '소확행'인 술, 담배를 선택한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에서 '철든 어른'은 여러 이유로 일찌감치 버리고 있는 잉여 가치들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좋은 바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이 장면들 너무 아름답다!!!! 특히 결말 장면에서 위스키 마시며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기 압권!!!!), 담배값이 한번에 2천원이나 올라 눈물을 머금고 에쎄에서 디스로 갈아타면서도 금연하지 않는다.

 

월세가 올랐는데 다른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집을 나온 주인공은 대학교 때 밴드를 함께 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재워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거기서 길게 묵지 못하고 나올 이유들이 생기는데 또 너무 아름다운 지점인 게 주인공은 친구 집에 묵으러 갈 때 계란 한 판을 사들고 간다. 그리고 밴드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남기고 집을 나온다. 밴드 시절 놀면서 찍었던 사진 뒷장에 쓴 편지는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어른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이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도록 돕는다.

 

피로사회를 영화로 옮겼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이스를 했던 여사친은 너무 바빠 점심시간을 쪼개 주인공을 만나는데, 밥은 안 먹고 당이 떨어졌다며 스스로 포도당 수액을 맞으며 대화한다. 재워 달라고 하자 "예민해서 다른 사람과 못자!!"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 키보드 치던 여사친을 찾아가니 이 친구는 반가워하는데 하룻밤 묵기에도 남편과 시부모님께 너무 눈치가 보인다. 살림을 못해 고민이라는 친구 집에 계란 장조림을 비롯한 여러 밑반찬을 해주고 나온다. 신혼인 줄 알았던 드럼 치던 남자 동생은 8개월 만에 아내가 집을 나가서 우울해하고 있는 상태, 주인공은 함께 담배를 피우며 동생의 고통을 경청한다. 청소를 하고 계란말이를 비롯한 집밥을 해준다. 이혼할 거면 이사하지 그러냐는 주인공 말에 동생은 이혼하더라도 빚을 20년 갚아야 한다며 이 집은 감옥이라고 눈물 흘린다. 기타 치던 오빠 집에 가니 드디어 노총각 결혼 시킬 기회라며 부모님이 극진히 대접해주시는데, 돌아보니 빈 방에 일부러 고추를 널어 말리고 다음날 담배 사러 나가고 싶을까봐 담배를 한 보루 사다놓고 온갖 문은 다 잠궈 감금 시키다시피 한 상태라 도망 나온다. 스위트홈 노래를 가족이 함께 연주하는 장면이 공포 영화 같았고, 오빠의 엄마가 좋아하지도 않던 삶은 계란을 쌓아놓고 맛있게 먹는 장면도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보컬이던 잘사는 언니 집에 찾아간다. 놀던 과거를 세탁하고 육아에 전념하며 살고 있는 언니는 교양 있는 표정으로 얼마 동안 주인공을 재워주었다가 어느 날 밤 "염치가 없다!!"며 화를 낸다. 관객마다 그 지점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냥 거기서 당분간 살지, 집이 없는 것보단 낫잖아'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있었다. 시집이 취직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있던데 기타 오빠 부모님 소원도 들어드릴 겸 그 집에 들어가 살면 어땠을까. 자존심 버리고 가난한 친구 집이나 남동생 집이나 언니 집에 좀 더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면 어땠을까. 아무튼 주인공이 여러 사람 집에 찾아가 대화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그들이 잃어버린 낭만을 일깨워주는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주인공이 '시집으로의 취직'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주인공 말처럼 자신에게도 '취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인공에게 남친이 있었기 때문이다. 맛집 데이트는 커녕 피 뽑아서 영화표 받아 데이트할 정도로 둘 다 가난하다. 남친은 자신이 공장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너와 함께 살 수도 없고, 너가 집이 없어 외간 남자 집에서 자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다며 슬퍼한다. 영화 "족구왕" http://blog.yes24.com/document/7819408 복학생 선배 안재홍의 변절을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데(주인공으로서는 '배신'이라는 단어가 딱 적절했겠다!!), 공장에서 일하는 남친은 가난하면 너와 함께 있을 수 없어 슬프다며 결국 웹툰 작가 꿈을 포기하고 생명수당 붙어 월급 세 배 받을 수 있고 사막이라 돈 쓸 일 없어 돈 잘 모이는 사우디아라비아에 2년 간 일하러 간다. 그 와중에 묵을 곳도 일할 곳도 없는 주인공은 (자신을 백발 만들지 않기 위해 먹던) 약도, 휴대폰도 포기하지만 여전히 담배와 술은 포기하지 않고 유목민처럼 바깥에서 텐트를 치고 산다.

 

영화는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 지금 청년들의 어려움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보여준다. "범죄의 여왕" http://blog.yes24.com/document/8919243 주인공 박지영이 우정출연해서 부동산 사장님으로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집들을 주인공에게 보여준다. 사람이 살 수 있냐 싶은 집들인데도 돈이 없어서 구하지 못한다. 논쟁적인 지점인데 비슷한 나이대 등장인물 한 명은 성노동을 해서 꽤나 화려하게 산다(초반만 보았던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도 대학생인 척하면서 비슷한 일을 하는 여성이 나옴). 주인공은 몸을 움직여 정직하게 돈 버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왜 집 없이 그 많은 짐을 들고 떠돌면서 그 여성처럼 비교적 '쉽게 돈(그 등장인물 대사로 나오는 말인데, 결말에서 임신을 하자 그간 만났던 오빠들에게서 돈을 받아내 네일 샵을 차리겠다고 말함)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청년이 취직하기, 최소한 사람 다운 의식주 영위하기도 힘든 상황이 주인공 개인의 책임 뿐일까?? 그가 다른 '어른들'처럼 이런 저런 타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까지 감수해야만 하나?? 집보다 자신에게 더 큰 안정감을 주는 술과 담배, 사진으로 대변 되는 과거 추억, 자신의 적성에 맞는 노동으로 정직하게 돈 벌기처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신념을 버려야만 좀 더 편안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는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등장인물들은 그런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유니크하다'며 칭찬하기도 하고, '스탠다드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어른의 삶'은 진정 건강하고 인간다운가?? 대안적인 삶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있는 때라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나에게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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