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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를 외치는 시인들 | 연인들 사랑을 묻다 2020-09-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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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에로스를 외치는 시인들은 사랑을 나누는 스케일도 엄청 큽니다. 그들은 남산에 잠자리를 보아 옥산을 베고 눕는 상상을 합니다.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를 안고 누워 가슴을 맞추는 것으로 상사병을 고치자는 이들의 노랫소리를 그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상사병이란 사랑을 이루지 못해 생긴 병입니다. 사랑으로 생긴 병이니 사랑으로 풀어야 합니다. 가슴을 맞추며 평생 동안 해로하기를 소망하는 이 노래를 민중들은 곳곳에서 거침없이 불렀습니다. 조선 선비들이 어두운 곳에서 비밀스레 즐긴 의식을 민중들은 밝은 세상에서 소리 높여 즐겼습니다. 성리학과 같은 이념으로 어떻게 본능인 에로스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조선 민중들 또한 고려 민중들처럼 온몸으로 사랑을 즐기며 남녀상열지사를 불렀습니다.

 

누군가가 온몸으로 부른 노래를 누군가는 음탕한 노래라 하여 비도덕적인 노래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들은 「가시리」에 나오는 소극적인 여성을 연인의 전형으로 설정하여, 남자가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에로스는 사회를 무너뜨리는 저속한 풍속으로 단죄되었습니다. 밝은 세상에서 에로스를 쫓아낸 권력층은 어두운 세상에서 질탕한 에로스를 즐겼습니다. 굳이 과거를 들여다볼 것도 없습니다. 시시때때로 터지는 권력층의 성 접대 비리 사건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성을 판단하는 사람일수록 성에 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곳에서는 군자인 양 행동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변태 짓을 서슴없이 행합니다. 고려가요에 등장하는 연인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했고, 거침없이 에로스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해야 할 사랑을 까마득한 미래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의 노래를 지금 우리가 여전히 부르는 까닭은 무엇보다 이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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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빈집'을 읽다 | 연인들 사랑을 묻다 2020-09-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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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보론> 기형도의 「빈집」을 읽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나,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사랑을 잃은 사람이 글을 씁니다. 어떤 글일까요? 사랑을 잃었으니 연애편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자신을 떠난 사람을 원망하는 글을 그는 쓰고 있을까요? 이미 떠난 사람을 원망한들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럼,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글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럴 듯도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글로 표현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가 쓰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읽지 못할 테니까요. 그가 쓰는 글은 독자가 없는 글이라는 얘기입니다.

 

읽는 사람이 없는 글을 그는 왜 쓰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글을 씁니다. 사랑을 잃은 눈으로 그는 사물을 봅니다. 사랑을 잃은 눈으로 보는 사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던 시간을 그는 지금 혼자 보냅니다. 가슴이 저립니다. 혼자서 남아도는 이 시간을 보낸다는 게 참으로 끔찍합니다.

 

시인은 짧았던 밤들에 작별인사를 고합니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에도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그에게 밤은 왜 그리 짧았을까요? 그녀와 밤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밤만 되면 그를 찾아오는 삶의 고뇌 때문이었을까요? 시간에 작별을 고하는 걸 보면 그는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잃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로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이 없는 곳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인은 익숙한 것들과 작별을 고함으로써 익숙하지 않은 세상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을 씁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을 안타깝게 부르며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건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생각 없이 글을 쓸 수는 없으므로 글쓰기는 곧 자기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이 글쓰기로 자기가 산 흔적을 남기는 건 모순이 아닌가요? 시인은 자기를 숨기려는 욕망과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숨기려는 욕망과 표현하려는 욕망이 만나는 자리에 글쓰기가 있습니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에 암시된 대로, 시인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지독한 욕망에 휩싸여 있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시인은 왜 굳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가뜩이나 시인은 사랑을 잃은 상황이 아닌가요. 사랑을 잃은 슬픔을 안은 채 시인은 흰 종이가 내뿜는 공포와 마주합니다. 공포는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움직이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몸만 그런 게 아니고 정신 또한 그렇습니다. 정신이 마비되었는데 글을 쓴다고요? 시인은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욕망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사랑을 잃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흰 종이에서 피어오르는 공포와 마주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이리 보면 글쓰기는 단순한 유희가 아닙니다. 글쓰기는 목숨을 내놓고 자기와 맞서는 일입니다.

 

시인이 들여다보려고 하는 자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글쓰기의 공포에 빠진 주체일까요? 사랑을 잃고 글을 쓰는 주체일까요? 그도 아니면 시간을 향해 미리 작별을 고하는 주체일까요?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을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무엇을 망설인 것일까요?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망일까요? 표현할 수 없는 것은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따라서 그는 다만 눈물로 제 마음을 표현할 것일까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에도 작별을 고하는 걸 보면 시인이 글쓰기를 통해 나아가려는 지점이 어디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됩니다. 그는 사랑을 비롯한 모든 욕망과 작별을 하려고 합니다. 욕망과 작별을 한다고요?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현실을 사는 주체라면 물론 가능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쓰는 주체가 되어 스스로 빈집에 갇힙니다. 빈집에서라면 자기를 괴롭히는 그 지독한 욕망들과 작별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시인은 그래서 글=시를 씁니다.

 

사랑을 잃고 글을 쓰는 존재는 스스로 장님이 됩니다. 장님은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장님이 된 시인은 더듬거리며 바깥과 이어진 문을 잠급니다. 빈집은 이제 완벽하게 막힌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당연히 밤과 낮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는 세계에 겨울 안개가 있을 리 없고, 흰 종이도 있을 리 없습니다. 장님이 되어 빈집에 갇힌 시인은 드디어 삶의 고통=욕망으로부터 벗어난 것일까요?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결구가 눈에 띕니다. 빈집에 갇힌 건 가엾은 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내 사랑을 가엾게 생각하는 주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전히 글을 씁니다. 장님이 된 사람은 빈집에 제 사랑을 가둬놓고 글을 씁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이미 욕망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얘기가 아닌가요? 이리 보면 이 시에 나오는 빈집은 정말로 비어있는 집이 아닙니다. “가엾은 내 사랑을 가둔 집이 어떻게 빈집이 될 수 있을까요? 욕망은 이토록 질기게 사랑을 잃고 글을 쓰는 이에게 들러붙습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은 지금도 빈집에서 사랑을 잃은 공포를, 아픔을 곱씹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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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 소설 읽기 2020-09-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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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년이 온다

한강 저
창비 | 2014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그 날 소년은 왜 그 곳에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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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년이 온다』

 

 

 

소년은 왜 그곳에 남았을까?

 

친구를 찾아 나선 중학생 소년이 있다. 시체가 안치된 곳이면 어김없이 들렀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소년은 도청 민원 봉사실에 들렀다. 그곳 복도에 죽은 이들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었기에 이들은 병원이 아니라 민원 봉사실 복도에 누워 있는 것일까? 중학교 3학년이라는 열여섯 소년은 왜 이런 곳에서 (죽은) 친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피비린내가 봉사실 복도를 덮고 있다. 복도 벽을 따라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워 있다. 소년은 친구를 찾기 위해 그 사람들(사실은 시체인)을 들여다본다. 차근차근 살피고 싶은데 오래 들여다볼 수가 없다. 저리 끔찍한 모습을 한 존재가 한때는 숨을 쉬고 말을 하는 생명이었다니.

 

교복을 입은 누나가 손이 너무 모자라다며 소년에게 도움을 청한다. 천을 잘라 복도에 누운 사람들, 그러니까 시체들을 덮는 일이다. 여고 3학년인 은숙, 양장점 미싱사인 선주와 한 조가 되어 소년은 총에 맞고, 칼에 찔려 몸 곳곳이 허물어진 시체들을 수습했다. 죽은 이들의 성별과 나이, 입은 옷과 신발 등을 장부에 기록하고 하나하나 번호를 매겼다. 이 기록을 보고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들을 찾았다.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간단하게 염을 하고 입관을 하는 과정까지 소년은 장부에 기록했다.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을 태극기로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가족들이 소년은 참으로 이상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바로 나라가 아니던가.

 

은숙이 소년의 물음에 답한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 권력을 잡기 위해 시민들을 죽인 군인들은 결코 나라가 아니라고 은숙은 말한다. 그럼 나라는 무엇일까? 당연히 국민들을 지키는 게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군인들을 보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을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에게 맞선 시민들은 따라서 나라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못된 권력자와 맞서 싸우는 게 된다. 그러니 죽은 이들의 몸을 태극기로 감싸고, 뜨거운 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를 수밖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시신들은 이제 상무관으로 모여졌다. 말없이 누워 있는 그들을 보며 소년은 임종한 순간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소년은 그때 분명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빠져 나가는 어린 새 같은 것을 보았다. 지금 이곳에 누워 있는 저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어린 새가 빠져 나갔을까? 원래대로라면 소년은 지난주에 중간고사를 봐야 했다. 시험을 마친 일요일에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인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지도 모른다. 시험을 보고, 친구와 더불어 운동을 해야 할 소년은 왜 시신들이 널려 있는 이곳에 있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하는 사회를 살고 있어서일까? 소년이 그런 사회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누가 소년을 이런 끔찍한 상황에 빠뜨린 것일까?

 

계엄군이 오늘 밤 도청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식이 도청에 퍼졌다. 은숙은 소년에게 집에 가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도청에 남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시간을 산 날보다 살 날이 많이 남은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다. 도청에 남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도청에 남았다. 친구를 찾아 길을 나선 소년 또한 도청에 남았다. 소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보았다. 소년과 정대는 손을 맞잡고 뛰다가 귀를 찢는 총소리에 놀라 뒤돌아 뛰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는 총을 맞았다. 그런 정대를 놔두고 소년은 계속 달렸다. 빌딩 옥상에서 총을 쏴대는 저격수가 무서워 소년은 정대에게 가지 못했다.

 

그날 밤, 소년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정대는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정대 누나인 정미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장에 다니는 정미는 동생을 대학 보낸 후에 자신 또한 대학에 가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년이 정대를 찾아 나선 게.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지만, 끝내 소년은 친구를 찾지 못했다. 그 대신 소년은 죽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묵묵히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도청을 찾아와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 손을 뿌리치고 끝내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는 곳에 남았다. 소년은 엄마에게 여섯 시가 되면 도청의 문이 닫힌다고 했다. 문이 닫히면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안심을 하고 집으로 갔다. 엄마와 소년이 만난 마지막 날이었다.

 

소년은 왜 이 날 도청에 남았을까? 소년은 그날 죽은 이가 정대가 아니라 형들이었다고 해도, 아버지였다고 해도, 엄마였다고 해도 달아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였다고 해도 역시 달아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생명의 본능이니까. 소년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45)라고 거듭 다짐한다. 저격수의 총에 맞는 게 두려워 친구를 외면한 그 상황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소년은 죽음이 도사린 도청에 끝까지 남았다. 자신까지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소년은 꿋꿋이 도청에 남았다. 죽음으로 양심을 지킨 이 소년의 결단에 그 누가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있을까?

 

열여섯 소년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외쳤다. 친구가 왜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죽어야 했는지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이 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는지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상무관에 놓인 저 끔찍한 주검들을 볼 때마다 소년은 가슴이 한없이 미어진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소년을 도청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엄마 또한 소년을 도청 밖에 있는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도청에 남았다. 이것만이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친구의 죽음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이 소설의 2장인 검은 숨에서 소년이 찾는 친구(정대)의 행방을 밝히고 있다. 총에 맞아 죽은 정대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 버려졌다. 수많은 시체들이 탑을 이룬 곳에서 정대는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51)라고 묻는다. 그는 한편으로 자신을 죽인 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들의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 왜 자기를 총으로 쏘았느냐고, 왜 자기를 죽였느냐고 묻고 싶다.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이 아이의 깊은 슬픔을 그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죽은 이는 말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살아 있는 우리가 그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 죽은 이들이 내뱉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말을 한다.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를 기억하지 않으면 죽는 자는 결코 말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 날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죽은 이들의 한을 풀려면 산 자들이 똑똑히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어떻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산 자는 어떻게든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려 할수록 죽은 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자기들을 기억해 달라고 한사코 매달린다.

 

살아남아서 슬픈 사람들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죽은 자들과 더불어 사는 게 된다. 3일곱 개의 뺨에 나오는 은숙이 그렇고, 5밤의 눈동자에 나오는 선주가 그렇다. 그들은 소년과 더불어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했지만 소년과 함께 죽지는 못했다. 어린 아이가 죽은 자리에서 그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그들은 뼈저리게 느낀다. 소년이 죽은 자리에서 그들도 죽어야 했다. 그러면 살아서 겪는 이 아픔을 저 멀리로 내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은 살아남았다. 몸만 살아남은 게 아니다. 기억도 살아남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 끔찍한 기억이 곧 삶이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는 은숙은 서적을 검열하는 사내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요철이 없는 얼굴에 입술이 얇은 사내는 수배 중인 번역자가 어디에 있는지 대라고 했다. 은숙은 보름 전 교정지를 보여주기 위해 번역자를 만났을 뿐이다. 사내는 이를 빌미 삼아 은숙의 뺨을 일곱 대나 때린다. 그녀는 뺨을 때린 사내에게 맞서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어찌 하면 이 순간을 잊을까 생각한다. 다음 날, 부풀어 오른 뺨을 목도리로 가리고 은숙은 출간 예정인 희곡집을 받기 위해 검열과에 들른다. 가제본 여기저기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먹줄이 그어진 부분을 빼면 책으로 낼 수도 없을뿐더러 공연을 할 수도 없다.

 

광주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죽은 자는 여전히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고, 산 자 또한 여전히 깊은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 살고 있다. 열아홉 살의 여름이 오기 전만 해도 그녀는 사과처럼 볼이 붉은 삶을 살았다. 끔찍한 여름을 보낸 후 은숙은 이십 대의 청춘을 즐기기보다 어서 빨리 늙기를 바랐다. 늙어서 그 여름에 일어난 기억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다. 빨리 늙기를 소망하는 여자에게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흐른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아픔은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사내에게 맞은 뺨이야 시간이 흐르면 아물 테지만, 그 여름 이후로 텅 비어버린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채워질 줄 모른다.

 

은숙은 말한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87). 그날 밤 열한 시 경 희생자를 파악하고 시신 관리를 총괄하는 ()진수가 총을 맨 채로 여자들이 모인 방을 찾았다. 그는 여자들을 향해 세 명만 남아달라고 했다. 아침까지 가두방송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죽는 게 두렵기도 했다. 끔찍하게 죽은 이들을 많이 봤는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기로 한 세 여자 중에는 같이 시신을 수습하던 선주도 있었다. 진수는 도청을 나서 집으로 가는 여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나오도록 해달라고 외쳤다. 도청 앞에 시민들이 꽉 차면 군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전남대 부속병원의 한 병실에서 은숙은 메가폰을 쥔 여자의 가냘픈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라고도 외쳤다. 그 소리가 지나간 자리를 수천 사람이 내딛는 군홧발 소리가 지나갔다.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은숙은 귀를 막지도, 눈을 감지도, 고개를 젓지도, 신음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녀는 다만 같이 나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난 동호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온몸을 떨면서 동호에게 말했다. 지금 나가야 살 수 있다고. 그렇게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 날 이후 은숙은 죽은 이들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라는 연극 속 대사가 곧 그 날 이후 그녀가 살아온 삶이었다. 장례식으로서 삶이란 무엇일까? 죽은 이와 사는 삶 말고 달리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연극 무대에 오른 소년을 보고서도 동호를 떠올릴 만큼 그녀는 그 날의 현장에 깊이 매여 있다. 죽은 자를 애도해야 산 자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법이다. 자기 삶을 장례식으로 삼은 여자가 어떻게 마음 편히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녀는 죽은 자를 가슴에 품음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살아남은 게 끔찍한 비극이 되는 상황이 참으로 애달프지 않은가.

 

은숙만 그런 게 아니다. 4쇠와 피에 나오는 또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힘겹게 생을 붙들고 있다. 도청에서 살아남은 는 곧바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내 삶의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105) 몸 속 깊이 체험했다. 21조로 나오는 한 끼 식사를 상대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 도청에서 함께 싸운 동지(김진수)를 외면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김진수는 자살을 했다. ‘는 광주의 그 현장을 증언해 달라는 연구자에게 김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추체험은 체험이 아니라는 것. 온몸을 파고드는 그 지독한 아픔은 오로지 그것을 겪어본 이들만 알 수 있다는 것.

 

는 스무 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집으로 보낸다는 지도부의 지침을 바로 그들 자신이 거부했다고 고백한다. 살 날이 많이 남은 그들은 왜 죽음의 광장에 남은 것일까? ‘는 양심을 이야기한다. 양심이란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116)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죽기 위해 도청에 남은 게 아니다.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 느낌을 실천하기 위해 그들은 도청에 남아 기꺼이 죽음을 맞았다. 계엄군이 도청에 다다를 즈음 김진수는 어린 학생들을 향해 항복하라고 외쳤다. 총을 버리고 살아남으라고 외쳤다. 자신은 목숨을 걸면서도 다른 이는 살라고 외치는 이 숭고한 마음이 양심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고문자는 무엇보다 사람들 마음 깊이 자리한 양심을 깨뜨리려고 했다. 식판에 담긴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으면서 와 김진수는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식욕만큼 강렬한 욕망이 어디에 있을까? 실제로 어떤 이들은 더 많이 먹으려고 으르렁대기도 했다. 이 장면을 본 고문자가 얼굴에 득의의 미소를 짓는 순간, 한 아이가 그들 사이에 몸을 밀어 넣으며 , 우리는…… ,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119)라고 더듬대며 말했다. 고문자는 양심을 말하는 이들을 짐승으로 만들려고 했다. 한 줌의 음식 앞에서 그들이 외치는 양심이 덧없이 무너져 내리기를 바랐다.

 

밥 앞에서 양심이 무너지려는 찰나 한 아이(이름이 김영재이다)죽을 각오를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는 김진수의 공허한 눈과 마주쳤다. 영재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외삼촌의 목공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두 살 많은 외사촌형을 따라 시민군이 되었다. 도청을 사수하는 마지막 새벽 외사촌형은 죽었고 영재는 잡혀서 이곳까지 들어왔다. 외사촌이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는 울지 않던 아이가 지금 뭐가 가장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눈물을 흘렸다. 카스테라가 먹고 싶다던 아이는 이후 십 년 동안 여섯 차례 손목을 그었다. 사람을 죽일 뻔했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는 영재의 얘기를 김진수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그 김진수마저도 자살을 했다.

 

김진수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피투성이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는 사진이었다. 연구자는 에게 김진수가 이 사진을 남긴 이유를 묻는다. ‘는 무슨 권리로 자신에게 그것을 묻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는 연구자를 향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거냐고?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이냐고?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동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던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은 더 많은 포상금을 타기 위해 가차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 죄 없는 시민들이 죽어간 자리에서 살인을 명령한 권력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는 말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이라는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135)라고. 그리고 묻는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같은 쪽)라고. 날마다 싸우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인가? 오로지 죽음으로만 인간이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또 어떤 말을 들려줄 것인가? 살아남아서 슬픈 사람들이 던지는 이 질문을 그저 망연히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으로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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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의 아내는 어디에? | 연인들 사랑을 묻다 2020-09-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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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시대를 불문하고 「처용가」에는 아내가 서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왕이 처녀를 처용에게 선물했고, 처용은 아내를 역신에게 선물했습니다. “내 것으로만 표현되는 아내의 자리를 지움으로써 처용은 역신을 물러가게 합니다. 이런 처용은 왜 시간이 흐르면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 것일까요? 여기에는 역신에 대한 백성들의 한없는 두려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대문에 처용의 가면을 붙이는 일로는 이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자, 백성들은 아예 아내를 빼앗기고 분노하는 (또 다른) 처용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도 아내는 여전히 역신에게 겁탈을 당합니다. 관용이 끝난 지점에서 처용은 드디어 분노를 터뜨립니다. 물론 그 분노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역신에 대한 백성들의 공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처용의 가면을 쓰고 역신을 향해 소리를 칩니다. 백성들이 있는 자리로 처용이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백성들은 열병신을 횟감으로 만들려고 있지만, 정작 열병신에게 겁탈 당한 처용의 아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처용이 아내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처용은 아내의 복수를 하려는 게 아니라, “내 것을 앗아간 열병신을 저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처용은 자신을 위해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113~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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