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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공공미술 | 인문사상 2017-09-3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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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

홍경한 저
재승출판 | 2017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공공미술, 도시 곳곳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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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공공미술

- 홍경한,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

 

 

 

홍경한이 쓴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재승출판, 2017)는 공공미술의 역사와 현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공공미술은 말 그대로 공공성미술을 합친 말이다. 미술은 예술적 자의식이 두드러진 장르이다. 예술적 자의식은 개인의 창조 정신과 이어진다. 철저하게 사적인 작업을 나타내는 말이 예술적 자의식인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자의식에 공공성을 묶으면 모순이 아닐까? 실제 지은이는 공공미술은 공공공간에 미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들여다 놓는 수준”(20)에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공공성보다는 예술적 가치에 비중을 두었다는 이야기일 게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놓인 장소를 오가는 대중들이 예술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는 공공미술은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고 개입하여 유익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20)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미적 공간을 공공미술이 창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미적 공간을 개인의 상상에 한정 짓지 않고 사회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지은이는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공미술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장소, 상처, 정체성, 평화, (), 만남, 교감, 호흡과 같은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한다. 공공미술은 대중들을 미적 공간으로 이끌어 들인다. 그곳에서 대중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기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갖는다. 누군가와 만나 교감하는 세계를 공공미술은 대중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용에 있다. 대충 버무려 놓은 듯한 겉모습과 달리 <아마벨>20세기 물질문명사회가 만들어낸 상처를 담고 있다. 원제목이 꽃이 피는 구조물Flowering Structure’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추구한 형상은 이었다. 작가는 문명의 잔해로 만든 꽃을 통해 혼돈의 오늘을 성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명세계를 피워내는 자극이 되길 바랐다. (34)

 

작품 앞 현판에는 여기 한 쌍의 남녀가 있다. 그들은 포옹하고 있지만 여자는 하늘을 보고 남자는 땅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의 만남, 미래와 과거의 만남, 미디어와 인간의 만남 등 이 모든 것이 오직 각자의 무대 속에서 개인의 환영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아주 힘껏 껴안아야 할 것이다라고 적혔다. 그저 남녀의 모습을 담았더라면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녀를 넘어선 사람을 가리키며 가 아닌 인간에게 꼭 필요한 관계를 담아냈다. 서로 기댄 이 남녀는 인간과 인간의 포옹을 대변하는 것이다. (140)

 

 

   <아마벨>

 

 

인용문 은 포스코센터 앞에 세워진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Amabel>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금속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철강기업 포스코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포스코라는 기업의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점만으로 공공미술의 특성을 살리기는 힘들다. 지은이는 이 작품에서 “20세기 물질문명사회가 만들어낸 상처를 보고 있다. 철강은 근대산업의 상징이다. 근대산업은 인간을 풍요로움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인간은 그 대가로 자연과 공존하는 마음을 잃었다. 이 작품의 원제인 꽃이 피는 구조물은 무생물에서 생물=꽃이 피어나는 금속을 표현하고 있다. 지은이는 앞만 보고 치달리던 근대산업의 현재를 성찰하는 마음이 이 작품에는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THEY>

 

인용문 DMC 홍보관 앞에 있는 이진준의 <그들THEY>을 분석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 쌍의 남녀가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보며 귀를 맞대고 기댄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다. 이 작품 앞 현판에는 여자는 하늘을 보고 남자는 땅을 바라보고 있다고 적혀 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차별의식을 의도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작품에서 남녀를 넘어선 사람의 관계를 끌어내고 있다.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극단적인 말들로 남자와 여자를 적대적인 관계로 몰아가는 지금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상반신만 묘사한 조각이고, 눈동자도 그리지 않아 괴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작품을 보며 남녀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거라고 지은이는 생각한다.

 

두 편의 작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공공미술은 미술품이 설치된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교감이 부족한 사례로 지은이는 청계광장에 있는 클레스 올덴버그의 <스프링Spring>을 들고 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형성된 청계천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는 녹아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성의 부재는 곧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가 청계천을 찾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지은이는장소를 보지도 않고 장소 특정적 예술품을 만든다는 건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41)라고 비판한다. 장소를 보지 않았으니 청계천이라는 말에서 상기되는 관념으로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예술품이 놓일 장소의 사람들과 애초부터 소통할 마음이 없었다고 말해도 상관없겠다.

 

지은이는 공공미술로서 성공한 사례로 심연지의 <물고기>를 꼽고 있다. 다음 인용문은 지은이가 <물고기>라는 작품이 성공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물고기>는 직선과 회색이 주를 이루는 여의도 주변 환경과 대조적으로 우아한 곡선에 빨간색과 금색 계열이라서 도시의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상쇄한다. 형형색색의 유리와 골드 모자이크가 비늘처럼 뒤덮인 몸통은 빛을 받으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다. 이 작품은 삭막하고 건조한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심미적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62)

 

 

<물고기>

 

 

여의도 한화손해보험빌딩 앞에 있는 이 작품은 일단 여의도 주변의 사각 빌딩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아한 곡선으로 그려진 물고기의 몸을 빨간색과 금색 계열로 채색을 해서 도시의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상쇄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판단한다. 삭막하고 건조한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심미적 오아시스와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실제 책에 실린 그림을 보노라면 도시 빌딩숲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물고기의 형상을 볼 수 있다. 만약 이 물고기가 이곳에 없다면 주변 풍경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본다. 사각의 빌딩숲에 막혀 한없이 답답한 도시공간이 언뜻 떠오른다. 도시의 메마른 풍경에 단비를 내리는 공공미술의 장점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이처럼 기업이미지를 홍보하거나 예술적 성찰을 하는 데 주로 이용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한정되는 건 아니다.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 도시에 예술적 감흥을 불어넣기도 하고, 낙후된 마을을 새롭게 바꾸는 양식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책 2, 3부에서 지은이는 도시 곳곳으로 퍼진 공공미술과 쓸모가 사라진 건물을 재생 공간으로 활용하는 공공미술의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고창 돋음볕 마을의 벽화에서 느릿함이 예술이 되는 마을을 보고, 서울 ‘SJ. 쿤스트할레에서는 컨테이너가 예술을 실어 나르는 신기한 경험을 말한다. 한편으로 그는 통행에만 신경 썼던 한강 나들목에서 감성을 불어넣는 공공미술을 확인하고, 예술의 거리 정동길에서는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역사적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생되는 현장을 기록하며 공공미술의 공공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기도 한다.

 

도시 뿐만 아니라 섬 지역까지 파급되고 있는 공공미술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지은이는 공공미술이 공공의 이익과 부합해야 한다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미술품이 놓이는 지역=장송에서 특정한 이슈를 창출하지 않으면 그 미술품은 지역민들에게 흉물로 비치기 쉽다. 그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교감이 이루어져야 공공미술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화동 벽화마을에서 벌어진 사생활 침해 논란은 공공미술의 공공성이 결국은 그 장소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예시한다. 공공미술은 공공성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하나로 엮어야 제대로 꽃필 수 있음을 지은이는 새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공공미술의 공공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술품이 그 지역의 명물이 될지 아니면 흉물이 될지는 행정당국이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들여 설치한 후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공공미술품은 금세 흉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지은이는 시민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지역관계자들이 무계획적으로 벌이는 공공미술 작업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 강남구에서 선보인 <강남스타일 말 춤> 조형물을 지은이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 하나만 이야기한다. 공공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곳곳에 전시한 미술품을 그림으로 그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지은이가 쓴 내용을 그 그림들만으로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아쉬웠다. 지은이가 서술하는 작품 하나하나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봐야 했다. 자료를 찾으며 읽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술품을 설명하는 책에서 시각 자료가 미흡하게 제시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라 여기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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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시간의 구도에서 탈주하기-신해욱, 『간결한 배치』 | 시집 읽기 2017-09-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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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간결한 배치

신해욱 저
민음사 | 200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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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갇혀 나를 지운 사람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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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시간의 구도에서 탈주하기

 

 

 

 

신해욱의 시집인 간결한 배치(민음사, 2005)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는 시간에 갇혀 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지우고 / 나를 흉내내는 / 무서운 선율”(모르는 노래)을 듣고 있다. 시간은 분명히 흐르지만 모르는 이름이 나를 가”(某某)두고, 시간은 분명히 흐르지만 그때부터 오늘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전복). 흐르는 시간은 흐물흐물하고 축축하다. 화자는 축축한 세계”(안내인)에 있고, “무수한 눈이 축축하게 / 내 몸 위로 기어오”(눈들의 시간)르는 환상에 끊임없이 빠진다. 그 환상은 나를 가두기 위해 번식하며 / 귓 속으로 / 입술 사이로 / 기어드는 차갑고 축축한 벌레들”(변신)로 변신하게 할 정도로 끔찍스러운 환상인데, 그러한 환상에 대응하는 화자의 태도는 뜻밖에도 웃음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신해욱의 시에서 웃음은 근본적으로 화자의 을 일으키는 웃음으로 표현된다. “모든 표정을 요약한 / 하얀 선으로 / 당신이 나를 감으면 나는 마구 웃음이 난다 / 그리고 나의 웃음은 끝난다”(해괴한 윤곽)라는 시구처럼, 화자에게 웃음은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웃음이고, 그 환상을 환상으로 유지하게 하는 웃음이다. 웃음은 당신의 실재를 지우고, 당신의 실체를 대체한다. 시간이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차가운 웃음”(초상)이라면 당신역시 시간 속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일까? 세상을 하얀 색으로 물들이는 공포스런 시간 앞에서 나는 자꾸 사실 바깥으로 / 벗어나고 있다”()고 화자는 고백한다. 시간의 바깥으로 벗어난다는 것. 그렇다면 시간의 바깥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소실점이 살아 있다.

 

그러나 맥박은 나의 귀에서,

목덜미에서,

허벅지에서, 뛴다.

 

소실점이 다가온다.

 

끈적끈적한 맥박이

나를 반쯤 벽 속에 묻는다.

등이 뜨겁다.

 

소실점이 속삭인다. 너의

숨소리가 들려.

- 낡은 복도부분

 

 

시인은 소실점을 말하고 있다. 소실점은 사물이 사라지는 지점이므로 공간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소실점이 살아 있다는 것은 공간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맥박은 나의 귀에서, / 목덜미에서, / 허벅지에서, 뛴다.” 맥박이 뛴다면 시간이 여전히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고, 시적 화자는 시간 속에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맥박(시간)이 가라앉기 위해서는 소실점이 다가와야 한다. 화자 앞에서 속삭일 정도로 소실점이 다가와야 시간의 압박에서 화자는 벗어날 수 있다. “어딘가로부터 와서 나를 빌어 빠져나가는 / 불규칙한 파동간격이 무너짐으로써 생성되는 시간의 외부를 이름한다.

 

하지만 소실점을 통해 구현되는 시간의 외부는 화자의 시선으로 규정되는 외부라는 점에서, 완결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화자의 앞쪽에서만 펼쳐지는 시간의 전복을 의미할 뿐, 실제 화자가 갈망하는 등 뒤의 시간은 근시안적인 시선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나의 등 뒤로는 자꾸만 / 그가 오고 있었는데, 화자는 등 뒤로 오는 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내보이는 간교한 전략은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변화를 부정한다는 데 있다. “정말로 그에게 있었던 건 / 불기 전의 바람과 / 어쩌면 이미 지나간 바람”(초상)이라는 화자의 깨달음은 시간 속에 내재된 역설이 결국은 의 복원을 계속 연기하게 하는 근본 원인임을 암시한다. 오지 않은 시간과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은 화자에게 기다림만을 재촉할 뿐, 그 기다림이 다하는 순간에야 이루어질 복원의 순간을 거부한다. 시간으로 물든 하얀 세상에서라면 나와의 간격도 / 나에 대한 태도도 / 눈부신 여백에 겨운 / 고통스러운 반짝임도 / 그리고 눈물 / 그리고 나의 웃음도 / 한결같이 요원하다.”(빛나는 얼룩).

 

시간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화자는 집요하게 / 뒤를 바싹 밟고 있”(두 사람이다)는 그림자를 상상하고, “멋진 가면을 꿈꾸기도”(같은 시) 한다. 그림자는 등 뒤에 있고, 가면은 나의 얼굴을 가린다. 시간으로 빚어진 하얀 얼굴바람이 불면 웃기도 하고 / 심심하면 노래도 부르지만 / 너에게는 반쯤 / 지워진 데가 있다.”(가부키). 가면은 그처럼 반쯤 지워진 얼굴을 가리고, 그림자는 존재의 등 뒤에서 항상 존재를 기다린다. 그리하여 화자(주체)가 가면을, 그림자를 인식하기 시작할 때, 가면과 그림자는 시간의 하얀 얼굴에 빗금을 내기 시작하고, 그 빗금을 통해 완결된 시간의 구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가늘게 갈라져간 목소리에

그림자가 생겼다.

 

갈라진 웃음들이

갈라진 노래들이

갈라진 의미들이

나를 긋고

나를 복원하고 있었다.

 

엇붙은 입술 사이로

다른 입술이 나오고 있었다.

 

해묵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뱉어

목을 놓아버리고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 반향전문

 

 

의 복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으로 빚어진 하얀 얼굴을 나 스스로 그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의 바깥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 치루어야 할 상징적 죽음의 과정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입술이 나올 수 없고, “다른 입술이 없으면 해묵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뱉어낼 수 없다. 화자가 도망치고 싶은 이곳은 시간이 지배하는 세상이며, 가부키의 하얀 얼굴이 본질처럼 인식되는 세상이다. 그곳을 도망치고 싶다는 화자의 열망은 시간의 외부에서 복원되는 가 시간 속의 나와는 결정적으로 단절되는 주체임을 입증한다.

 

시간이 이룬 모든 세상을, 시간이 뒤덮은 하얀 세상을 갈라지게 만드는 힘은 이렇듯 시간의 외부로 탈주하는 주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탈주는 성공할 수 있을까? 도망치고 싶어하는 화자가 실제로 하얀 세상의 외부로 도망칠 수 있을까? 그것은 신해욱이 펼쳐나갈 시의 미래를 암시한다. 시인은 하얀 세상에서 탈주할 방도를 알고 있지만,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방도이기에 시간의 역습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역습하는 시간들 앞에서 시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시집의 마지막 시 그때에도에서 시인은 당연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시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흐를 것은 흐를 것이고, 있을 것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오늘 화자가 행하는 일은 그때에도누군가가 행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삶이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시인의 생각을 함축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당연한 것을 우리는 그때에도당연히 보고 싶을 것이다. “간결한 배치라는 시집의 제목은 바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그리워하려는 화자의 내면을 드러낸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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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의 근원 | 생각들 2017-09-2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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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김형수 공저
아시아 | 2017년 09월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의 대담집 『고은 깊은 곳』을 읽다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 여기에 적어둔다. 고은 시의 근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만인보』를 끝낸 후의 소감이다.

 

"나는 세상과 약속한 30권을 일단 마쳤으나 내 마음 속에서는 이 작업을 끝내지 않고 있어. 이것은 내가 한 생애라도 그 한 생애에 갇히는 시간의 폐쇄성을 사절하고 한 생애를 생애 이전의 생애들과 생애 이후의 생애들로 연장함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의 구애 없는 거래(去來)의 내 시적 세계의 역정과도 무관하지 않다네. 이것은 굳이 인도와 불교의 전생관(轉生觀)이나 니체의 영겁회귀의 소환론과 상관없는 것이네. 끝난다는 것은 없어. 끝나지 않는 것이 진리이고 변하는 것만이 진리이네. 그것이 무한변동 유물사관의 내 신조라네. 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찰나도 멈추지 않는 이 세계와 우주의 운동 자체를 뜻하지. 존재와 물질이란 움직임이라는 파동에 불과한 것이네. 그러므로 모든 품사는 동사라네. 특히 명사는 동사의 소산이네. 정신이나 영혼도 하나의 동사(動詞)이네. 이 세계의 명사는 거의가 다 동사가 낳은 것들이 아닌가." (10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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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성과 거리두기를 하는 역사동화 | 그림책+동화 2017-09-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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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를 삼킨 아이들

김기정 저/김환영 그림
창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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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성과 거리두기를 하는 역사동화

- 김기정, 『해를 삼킨 아이들』

 

 

 

김기정의 장편동화 『해를 삼킨 아이들』(창비, 2004)은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만은 않는 어린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만한 작품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장면들을 구비전승의 다양한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비극적 역사 앞에서도 익살을 멈추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작소설 형태의 이 동화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8깡통로봇과 가진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1970~80년대 아이들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던 태권브이에 흠뻑 빠진 어린 주인공 가진이를 중심인물로 펼쳐지는 광주의 비극적 이야기는 익살과 슬픔의 경계에서 어린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일단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느 녀석이고 집에 돌아오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이래저래 놀 궁리를 하는 거였다.” 놀 궁리를 하는 아이들의 관심은 무엇보다 태권브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에 쏠려 있다. 멀쩡한 양철 양동이와 새로 산 주전자와 주워 온 깡통을 조립하여 깡통로봇이 되고, 그로써 태권브이를 만날 날만을 기다리는 가진이의 모습은 당대의 어린이를 대표하는 형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태권브이와 깡통로봇에 흠뻑 빠져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던 가진이에게 광주의 비극적 역사가 말 그대로 찾아온다.’ 철공소에서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가진이의 소망을 믿어주던 큰대장과 작은대장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죽거나 불구가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총알도 튕겨 낼 것처럼 튼튼하게 보이던 큰대장은 죽고, 태권브이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한 작은 대장은 영영 일어설 수 없는 불구가 되면서, 태권브이라는 문화적 아이콘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가진이는 드디어 현실의 악당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가진이에게 악당은, 자신을 믿어주고 보살펴주던 사람들을 죽인 광주의 점령군(군인)들이다. 큰대장을 죽이고 작은대장을 불구로 만든 사람들이기에, ‘광주를 진압한 군인들은 악당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가진이는 태권브이가 어서 나타나 악당들을 이 땅에서 내몰아 주기를 기대한다. 기대와는 어긋나게 악당들을 그냥 놔두는 태권브이에게 분통을 터트리던 어느 날 밤, ‘깡통로봇이 된 가진이앞에 드디어 멀리 보이는 무등산 너머로 태권브이가 나타난다. 가진이의 환상(물론 그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이 개입되는 이 부분은 가진이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명확한 현실로 인식될지 모른다. 그에게 악당을 물리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태권브이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진이 앞에 등장한 태권브이는 말이 없다. 깡통로봇 가진이가 소리 높여 악당들의 부당성을 외쳐도 태권브이는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태권브이는 지그시 깡통로봇을 내려다보고는, 무릎을 한 번 굽혔다 세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로 사뿐 날아올랐다.

태권브이……

깡통로봇은 떨리는 목소리로 태권브이를 불렀다. 태권브이가 검은 비구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태권브이는 왜 악당들을 그냥 두는 걸까?’

깡통로봇 안에서 가진이는 오랫동안 눈물을 글썽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딱 한 번 깡통로봇을 찾아온 태권브이는 그렇게 떠나간 것이었다.

 

 

태권브이가 악당들을 물리치러 오지 않은 이유를, 또 큰대장을 죽이고 작은 대장을 불구로 만든 악당이 누구인지를 가진이가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린 가진이가 깡통로봇 안에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해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소망은 태권브이가 나타나 악당들을 쳐부수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그러한 소망을 태권브이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진이의 행동에 아마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리라. 가진이를 어리석게 생각할 수도 있고, 가진이의 마음을 이해하며 같이 슬퍼할 수도 있으며,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 악당들을 물리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찾기도 할 것이다.

 

광주를 다룬 다른 역사동화가 어린이의 반응을 한곳(작가의 계몽적 생각이 집중된)으로 모이게 한다면, 김기정의 이 동화는 어린이의 반응을 한곳에 고정하지 않고 여러 길로 풀어 놓는다. ‘광주란 무엇인가? 그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누구인가? ‘광주의 시민군을 죽인 악당들을 힘이 센 태권브이는 왜 그냥 놔두고 있는가? 등의 질문들은 이 동화를 읽은 어린 독자들의 다양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계몽적 목소리에 짓눌리지 않은 어린이의 목소리와,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는 어린이의 진실어린 마음이 이 작품에는 잘 나타난다. 역사의 무거움을 버리고 익살스런 목소리로 어린이의 순수한 무지를 내세우는 서술전략이 역사동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셈이다.

 

물론 김기정의 󰡔해를 삼킨 아이들󰡕의 밑바탕에 스며있는 아이러니를 어린 독자들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전달하기에는 이 작품이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광주문제에 한정하여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장편동화를 썼다면, 현재의 단편동화와는 다른 문제들이 많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기정의 이 동화에는 분명 계몽성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까지는 절제되어 표현되고 있다. 역사가 어느 면에서 보면 익살스런 희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은 분명하게 내보이고 있다. 역사적 사실의 전달에 치중하거나, 역사적 피해자의 비극적 이미지에 집착하는 역사동화의 일반적 문법에서 벗어나 당대 어린이의 문화적 아이콘에 관심을 가진 점 역시, 2000년대의 역사동화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는 역사적 교훈을 전달하는 동화가 아니라, 역사와 더불어 놀 수 있는 동화를 원한다. 어두운 역사를 들으면서도(읽으면서도) 아이들은 항상 어두운 세계 너머의 밝은 세상을 추구한다. 그것이 아이들의 본래 마음, 곧 동심(童心)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역사동화에 그려지는 어린이의 동심은 분명 이러한 성향과는 어긋나게 형상화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역사동화가 활발히 발표되고 있다. 창작동화에서 실제 인물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한 편이다. 하지만 계몽성이라는 그늘에 안주한다면, 역사동화 속 어린 인물들의 동심은 어른들의 논리에 끊임없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동심이 계몽성의 힘에 억눌릴 때, 역사동화는 어린 독자들의 눈에서 멀어진다. 계몽성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역사와 놀이하는 역사동화의 출현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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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역사

로저 백하우스 저
시아(SIAA) | 2017년 07월

 

안녕하세요, 리벼C입니다.

『경제학의 역사』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신청 기간 : ~10월 11일(수) 24:00

모집 인원 : 10명 

발표 : 10월 12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이 책은 경제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경제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경제현상을 이해하려고 애써왔는가를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등을 비롯하여 이들보다는 덜 유명한 수많은 인물들이 경제라는 세계를 어떻게 분석하고 인식했는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책의 바탕을 이루는 관점은, 경제사상은 고대에도 존재했으며 현대 경제학의 기원과도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21세기에도 경제학은 규범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으며, 이 질문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고대인들이 제기했던 것과 유사하다는점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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