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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리뷰어 모집]『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 이벤트 2018-05-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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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이야기

딘 버넷 저/임수미 역/허규형 감수
미래의창 | 2018년 06월


신청 기간 : ~6 10일 24:00

모집 인원 : 5명 

발표 :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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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과학교사모임 추천 도서★

인간의 경험과 뇌의 경험은 서로 다르다

속이려는 ‘뇌’와 속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격 공존 탐구서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100%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잠들기 전 자기 손으로 직접 벽에 외투를 걸어놓고서도 한밤중 눈을 떴을 때 벽에 있는 형상을 낯선 침입자라고 생각하고 화들짝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치에서 기어가는 저 거미가 독거미가 아니란 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글자 되지 않는 이름은 기억 못하면서도 그의 얼굴 생김새, 그와 주고받은 시답지 않은 농담, 그가 입고 다니던 외투의 색깔까지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툭하면 실수를 연발하고, 제멋대로이며, 왕고집인 뇌와 그에 항상 속아 넘어가면서도 어느새 다시 귀 기울이는 인간의 기묘한 공존에 관한 탐구서다. 낮에는 신경과학자이자 밤에는 스탠딩 코미디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는 슈퍼컴퓨터를 능가한다는 뇌가 얼마나 엉뚱하고 기이한지,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일상생활 속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책 속으로 


사실 뇌의 기억체계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머릿속에는 믿을 수 있는 정확한 정보가 안전하게 저장되어 있고, 이를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우리 뇌에게는, 특히 기억체계에는 ‘믿을 수 있는’, ‘정확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뇌가 불러온 기억은 고양이가 몸 안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헤어볼을 토해낸 것처럼 형편없을 때도 있다. 다시 말해 기억이라는 것은 책 속의 문장처럼 변형 없이 그대로 기록된 정보나 사건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욕구에 맞춰 뇌가 해석하는 대로 (사실과 다르건 말건) 변형되고 수정된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기억은 상당히 가변적이고, 여러 방식으로 뜯어고치거나 억제할 수 있으며, 혹은 원인을 잘못 기억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기억편향(memory bias)’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억편향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자아에 의해 발생한다.

--- p.93~94


만약 여러분이 어떤 것(낯선 사람, 전기 배선, 쥐, 세균 등)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면, 뇌는 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나쁜 경우를 추론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맞닥뜨리면 여러분의 뇌는 추론해낸 ‘가능한’ 모든 상황을 활성화시킨 다음, 투쟁-도피 반응 체제를 가동시킨다. 그리고 기억에 공포라는 요소를 인코딩시키는 편도체는 이 경험의 기억에 위험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따라서 똑같은 대상을 다음번에 또 만나게 되면, 여러분은 위험을 떠올리게 되며 동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즉, 어떤 것에 대해 두려워하도록 학습하면, 그것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 이처럼 연상학습 과정을 살펴보면, 무엇이든 공포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공포증의 목록을 살펴보면 이 추측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치즈공포증(turophobia), 노란색공포증(xanthophobia, 노란색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 증상으로 치즈와 겹치는 부분이 분명 있다), 긴 단어 공포증(hippopotomonstrosesquipedaliophobi, 긴 단어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증상으로, 심리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악랄한 부류라 이런 긴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공포공포증(phobophobia, 공포증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이 있다.

--- p.139~140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자신만만하게 되는 현상을 과학에서는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부른다. (…) 더닝과 크루거는 여러 실험을 하기 위해 실험자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신이 테스트에서 얼마나 잘했다고 생각하는지도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놀라운 패턴이 발견되었다. 시험 성적이 나쁜 사람은 거의 항상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잘했다고 생각했고,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은 항상 자신이 더 못했다고 생각했다. 더닝과 크루거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은 지적 능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일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을 억제시키는 뇌의 자기중심적 성향이 여기서 다시 발현된 것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경험도 없으면서 평생 그 분야에 몸담았던 사람과 격렬히 논쟁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지능이 필요한 일이다. 즉, 지적이지 못한 사람은 실제로 훨씬 더 지적인 것을 ‘인지할’ 능력이 없다. 이는 색맹인 사람한테 빨강과 녹색 패턴을 설명해보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 p.197~198


진화론적 심리학자들이 제기한 화의 재조정 이론에 따르면 화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발달된 자기방어기제의 일종이라고 한다. 화는 여러분이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에 대해 잠재의식적으로 빠르게 대응해서 균형을 잃지 않고 자기보호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의 조상인 영장류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새로 발달된 피질을 통해 돌도끼를 아주 공들여 만들었다. 이런 최신식 ‘도구’를 만들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도구는 쓸모가 많다. 그래서 만들기만 하면 누군가 와서 가져가 버린다. 만약 한 영장류가 조용히 앉아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유와 도덕성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는 좀 더 똑똑한 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길이 날뛰며 도둑놈의 턱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놈은 자신의 도구를 지킬 수 있고 다시는 침입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지위는 높아지고 짝짓기 가능성도 커진다. 화의 재조정 이론은 어쨌든 이런 내용이다. 진화론적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지나친 단순화의 소질이 뛰어난 것 같다.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을 화나게 할 만큼 말이다.

--- p.288~289


여러 연구를 보면 이별을 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뇌 영역과 똑같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뇌가 사회적 문제를 실제 물리적인 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예시를 수도 없이 살펴보았다(예를 들어 사회적 공포심은 실제 육체적 위험과 똑같이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별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사랑은 아프다’고 말한다. 맞다, 이 말은 사실이다. 실제로 파라세타몰(진통제 종류)이 ‘가슴앓이’에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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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희곡 「파수꾼」 | 소설 읽기 2018-05-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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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강백 희곡전집 1

이강백 저
평민사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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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권력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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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파수꾼」에 나타난 한국사회

 

 

 

 

이강백의 파수꾼(희곡)에 등장하는 파수꾼 는 울타리 바깥에 늑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늑대를 파수꾼 는 보고 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파수꾼 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가 맞는 것일까? 파수꾼 는 어린아이이다. 군대로 따지면 신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파수꾼 는 늑대를 지키는 일로 잔뼈가 굵었다. 당연히 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어른이다. ‘가 늑대는 과연 있는가라는 생각을 내보일 때마다 는 그를 겁쟁이로 몰아붙인다. ‘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을 뿐인데 겁쟁이라는 낙인이 붙어버렸다. ‘로서는 미칠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마을과 망루를 오가는 식량 운반인을 통해 마을의 촌장에게 늑대는 없다는 사실을 적은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보자마자 촌장은 곧바로 망루로 달려온다. 늑대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는 꼭 막아야 할 존재이니 촌장이 이렇게 대처하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파수꾼 는 촌장에게 늑대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울타리 밖에는 다만 흰 구름만 흘러가고 있다고 덧붙인다. 밖에 나가 산딸기를 따도 늑대가 나타날 리 없다는 의 말을 촌장은 순순히 인정한다. 마을의 질서를 위해 늑대라는 가공의 적이 만들어졌다고 촌장은 고백한다. 파수꾼 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는 이 사실을 지금 당장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 모르는 진실을 알았으니 파수꾼 는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겠는가. 노회(老獪)한 정치인인 촌장이 파수꾼 의 이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사실 촌장이 망루에 재빠르게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운반인이 미리 편지를 뜯어보고 그 내용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늑대는 없다는 운반인의 말에 흥분한 사람들이 그 소문의 진실을 알기 위해 망루를 방문하려고 한다. 촌장은 마을사람들이 망루에서 소문을 사실로 확인하기 전에 이 상황을 정리하려고 한 셈이다. 지금 마을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세 사람뿐이다. 파수꾼 와 촌장, 그리고 편지를 본 운반인이다. 촌장은 일단 파수꾼 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는 망루에서 늑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이 오기 전에 어떻게 하면 를 설득할 수 있을까? 촌장은 어린아이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흥분한 마을사람들이 도끼로 자신을 죽일 거라고 촌장은 이야기한다. 과연 도끼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린다. 공포에 사로잡힌 아이를 다루기는 아주 쉽다. 아이가 처한 상황만 과장하면 된다. 촌장은 진실이 밝혀지는 첫날 살인이 벌어지고, 그러면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내릴 거라며 파수꾼 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촌장이 늑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만 해도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는데, 이제는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따라 촌장은 도끼에 맞아죽을 수도 있고, 마을은 혼란 속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조금 있으면 마을사람들이 망루에 와서 소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혼란에 빠진 파수꾼 에게 촌장은 진실 고백을 하루만 미루자고 제안한다. ‘내일진실을 발표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은 마을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고, 마을도 안정을 찾을 거라는 논리로 촌장은 를 회유한다. 드디어 마을사람들이 망루에 도착했다. 흥분한 마을사람들이 파수꾼들에게 진실을 묻는다. 파수꾼 의 대답에 따라 이 마을의 미래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파수꾼 는 진실을 고백했을까?

 

망루 위로 올라간 는 울타리 너머를 바라본다. 흰 구름이 떠다니는 평화로운 풍경이 보인다. 저게 바로 진실이다. 하지만 파수꾼 는 곧바로 늑대가 왔다고 외친다. 신이 난 가 북을 치며 늑대와 왔다고 소리친다. 마을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늑대가 저 울타리 밖에 왔다고 하지 않는가. 공포가 밀려온다. 도망가야 한다는 마음이 마을사람들을 지배한다. 이제 촌장이 나설 때이다. 그는 방문인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죄를 묻는다. 마을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하나 마을로 돌아간다. 망루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촌장이 파수꾼 를 부른다.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파수꾼 를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촌장은 에게 마을로 들어오지 말라고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마을사람들로부터 파수꾼 를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는 촌장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는 것을, 작가는 파수꾼 의 사례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강백의 파수꾼1974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희곡이다. 1970년대면 박정희 유신 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때이다. 계엄령이나 긴급조치권을 남발함으로써 유신 정권은 국민의 입과 귀를 철저히 막으려고 했다. 그들은 한편으로 공권력이란 명분 아래 국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당시에는 북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을 적절히 이용하여 유신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남한에서 일어나는 시국 사건은 대부분 북한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북한은 남한 체제의 질서를 위협하는 늑대와 같은 존재였으며, 사실을 의심하는 것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이강백은 이런 역사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썼다. 교묘한 논리로 파수꾼 를 설득하는 촌장처럼 당대의 권력자들은 지식인들을 회유하여 권력의 시녀로 만들었다. 마을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진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하나 제거되었고, 마을사람들은 울타리 밖의 늑대를 무서워하며 마을의 질서를 지키는 권력의 인형들로 살아가야 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파수군 를 어린아이로 묘사한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파수꾼 는 진실을 알고 있으므로 지식인유형에 속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지식인을 어린아이로 설정한 밑바탕에는 당대의 지식인 세계를 우의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식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수꾼 는 무엇보다 진실을 보려고 했고, 그 진실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촌장의 비리를 인정하고 말았다. ‘사회 질서라는 명목이 지식인의 진실을 가려버린 셈이다. 작가는 사회 질서의 파괴에 공포를 느끼는 지식인의 정서를 어린아이의 정서에 빗대고 있다. 어린아이는 공포에 빠지면 상황을 분간하지 못한다. 공포가 곧 현실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지식인들의 이런 속성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식인들을 겁박하고 회유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공포에 빠진 아이를 회유하는 건 아주 쉽다. 공포로부터 안전하다는 마음을 아이에게 심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파수꾼 는 스스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 바로 권력이 파놓은 함정이라는 걸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파수꾼 는 교활한 촌장의 정치력을 애초부터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진실을 알리려 했지만, ‘순수라는 말 따위는 아예 촌장의 사전 속에는 없는 말이었다. 아니, 그는 순수를 떠벌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겠다. 순수의 반대편에는 비순수가 있는 게 아니다. 순수의 맞은편에는 다만 공포가 있을 뿐이다. 공포에 빠진 가 진실을 외면하듯, 공포에 빠진 지식인들은 진실과 거리를 둠으로써 공포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회일수록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묻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권력은 지식인에게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그들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파수꾼 는 바로 권력이 파놓은 이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는 이러한 권력의 논리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한 부류들이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왜 빨갱이가 되었는가? 아니, 그 전에 그들을 빨갱이로 부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빨갱이라는 말은 한국사회가 여전히 냉전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입증한다. ‘빨갱이라는 말은 요즘은 종북이라는 말로 대치되고 있다. ‘종북은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남한에서 과연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북한에서 벌어지는 참상(3대 세습, 인권 유린 등)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남한에서 벌어지는 참상(부익부빈익빈, 권력의 부패 등) 또한 알고 있다. 남한 사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것과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이다. 남한은 완벽한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는 게 왜 빨갱이라는 이념과 이어져야 하는가?

 

빨갱이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남한에선 이들을 보수라는 말로 치장하지만, 실제로 이들을 보수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은 이념에 사로잡힌 광인일 뿐이다)은 항상 늑대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의 바깥에는 북한이라는 주적이 있으며,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따라서 주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한국사회 비판이 주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이 사용한 논리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과정-근거는 없고 오직 결론-주장만 나와 있다. 한국사회는 선이고 북한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는 자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게 만든다. 요컨대 내 주장이 옳기 때문에 다른 주장은 그르다고 그들은 맹목적으로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은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옳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다. 동어반복을 논리적 사고의 틀로 사용하다보니 당연히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늑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촛불집회라는 민심의 향연장이 예시하는 것처럼, 늑대의 논리에 빠져들 만큼 한국 국민들이 무식하지도 않다. 파수꾼 의 입을 막는다고 소문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무식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은 항상 그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시대 상황과 유리된 이념은 다만 우리의 삶을 옥죄는 사슬로만 작용할 따름이다. 고정된 이념이 주는 폐해를 우리는 이미 그 누구보다 더 심하게 겪지 않았는가. 그런 우리들이 왜 이념의 굴레 속에 여전히 빠져 있어야 하는가? 이념의 늑대는 저 울타리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을 이념에 현혹되어 세상의 진실을 어떻게든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빨갱이라는 한 마디 말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눌러버리는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빨갱이라는 언어는 우리가 얼마나 닫힌 사회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적 사례일 뿐이다. 설사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더라도, 그들이 한국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논리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의 현실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통일 국가로 상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빨갱이를 주장하는 사람들 스스로 빨갱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수꾼의 촌장이 바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는가. 울타리 밖에 없는 늑대를 만들어 마을사람들에게 늑대에 대한 공포감만 심어주지 않았는가. 이제 촌장의 이런 논리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대의 문제이다. ‘늑대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야 합니다.’ 따위의 거짓말이 먹혀 들 세상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행동으로 그들에게보여주어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두 번 만났다. 마음을 먹으면 쉽게 이루어질 일인데, 권력 논리를 따르다 보니 이 쉬운(?) 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정은을 보니 '늑대'라는 생각이 드는가? 한민족 구성원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람일 뿐이다. 그가 늑대면 우리 또한 늑대란 얘기다. 거짓말이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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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질병

김태훈 저
블루페가수스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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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산업사회는 
어떻게 질병을 만들어내고 판매하는가??

의학의 발전이 왜 우리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지 못하는지,
그 질문에 답하는 전문가 4인의 진지한 비판과 성찰!

건강 주권과 행복한 삶의 영위를 위한 현대의학의 교양을 읽다!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지켜지지 않는 진짜 이유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명연장’의 꿈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다. 의학과 과학이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이는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문명과 의학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우리는 더 건강해지고 있는가? 우리는 과거에 비해 질병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운가? 그리고 인간의 수명 연장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축복일까?《만들어진 질병》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다. 산업화와 더불어 모든 문명이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는 더 건강하지 않다. 질병은 인류의 발전과 함께 그 탄생과 진화를 반복하고 있다. 첨단 의학 기술로 포장된 현대의학은 그 눈부심만큼이나 그림자도 짙다. 바로 이것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 김태훈은 전문가 4인, 박용우, 서재걸, 양재진, 임종필을 소환한다. 그는 이들과의 대담을 통해 현대사회를 ‘질병사회’로 규정하는데, 그 대표적 예로 비만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과 문명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지만, 그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다양한 질병들이 새롭게 발명되거나 몇몇의 특수한 사례였던 질병들이 대중에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비만은 1970년대 이전까지 선택된 소수의 인류만이 경험해봤던 희귀질병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아에 고생하는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하면 전 세계인들을 위협하는 가장 두려운 존재로 떠올랐다. 그리고 고혈압과 당뇨 같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며 무서운 속도로 세계를 감염시키고 있다. 

김태훈은 “우리 시대의 질병은 우리와 사회, 곧 우리들의 세상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고 단언한다.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도착한 것이 아닌, 사회의 진화와 함께 성장해온 생물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가파르게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온 현대의학은 어째서 우리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기는커녕 전에 없던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김태훈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과, 전문가 4인이 답하는 과정 속에서 현대사회에 등장한 질병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찾아본다. 또한 현대의학의 오늘을 진단함으로써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물론, 의료 기술이 산업을 만나 생성되는 문제들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좀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무엇으로 가능한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 책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현대인, 자신의 건강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현대의학의 공과 실, 명과 암, 그리고 반성과 대안이 담긴 교양서다.

책 속으로 

비만을 본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느냐, 아니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냐에 따라서 비만이 질병이냐, 질병으로 가는 위험요인이냐를 판가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비만은 본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비만은 질병에 가깝다고 보지요. 사실 전문가들도 비만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획기적으로 부작용 없이 장기간 쓸 수 있는 약이 아직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p.28

사실은 몸에 나쁜 음식이 반복적으로 들어와서 시스템이 무너진 거기 때문에 그런 나쁜 음식을 끊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칼로리를 줄이기 위해 식사량을 확 줄여버리는 거죠. 망가진 몸을 회복하려면 몸에 필요한 영양소들을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 상황인데 말이에요. 오히려 치료를 거꾸로 받는 셈입니다. 적게 먹는다는 건 필요한 영양소들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몸이 회복되지 않는 거죠. --- p.57

수면 부족 또는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딥슬립(deep sleep)’이라고 이야기하는,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잠을 자는 동안 깨어 있을 때 올라가 있던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춰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거죠. 
우리가 잠을 푹 자게 되면 몸이 개운해지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기 때문에, 어제 스트레스를 받았던 자극도 스스로 스트레스라고 인식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잠이 부족해서 몸이 피로하고 예민해지면 작은 스트레스도 크게 받아들이게 되죠. --- p.84

옛날 유대인들의 교육지침 가운데 그날 받은 스트레스는 자기 전에 꼭 푼다는 게 있어요. 엄마가 아이들 교육하면서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그걸 반드시 해결하고 잡니다. 이게 바로 해독능력이죠. 오늘 술?담배를 많이 했어도 배출능력이 있는 채소와 과일을 먹어 해독을 하고 자는 거예요. 그런 습관이 결국 그 사람의 몸을 지키는 겁니다. 몸에 쌓인 쓰레기를 어떤 사람은 내년에 한꺼번에 치워야지, 더 심한 사람은 10년 뒤에는 치우는 일만 할 거야, 하면서 미룹니다. 하지만 몸은 절대로 그때까지 건강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그렇게 미루면서 산 결과가 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데, 가장 심각한 것이 암입니다. 10년간 쌓인 쓰레기가 암이 됐다는 선고를 받는 거죠. 운이 좋으면 도려내기만 해도 되는데, 운이 나쁘면 전신에 퍼져 있어서 손을 댈 수 없죠. 사람을 다 도려낼 수는 없잖아요.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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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솔론 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사회사상 2018-05-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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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파블로 솔론,크리스토프 아기똥,주느비에브 아잠,엘리사벳 페레도 벨트란 공저/김신양,김현우,허남혁 공역
착한책가게 | 2018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신자유주의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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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대안 논리

- 파블로 솔론 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자본주의, 생산주의, 채굴주의, 금권주의, 가부장제, 인간중심주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지구라는 생명체의 역동적 균형 상태dynamic equilibrium을 해치는 사안들이라는 점이다. 주지할 사실은 이 모든 문제점들을 가로지르는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대목이다. ‘인간을 풍요로운 문명으로 바꿔 말해도 좋겠다. 인간은 풍요로운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채굴주의)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자본주의와 생산주의)의 악순환을 일으킨다. 자본의 논리는 이익을 얻기 위한 운동을 가리킨다. 이익이 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본의 논리가 개입한다. 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생각해 보라. 자본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연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산을 관통하는 경제가 자본 순환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만 따진다. 자본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래서 풀 한 포기 살지 못한다. 인간 문명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생명 다양성이 사라진다고 하던가? 이리 보면 자본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은 참 많이도 닮았다.

 

파블로 솔론 등이 지은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김신양 외 옮김, 착한책가게, 2018)은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문명적 위기에 직면한 인류에게 7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비비르 비엔(Vivir Bien), 탈성장, 커먼즈(commons),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이라는 7가지 대안은 발전과 성장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상에 근거한 현행 자본주의는 성장과 발전의 신화에 얽매여 있다. 경제성장 패러다임은 1945년 이후 등장한 세계와 경제 정책을 대표하는 말이다.”(68) 소위 경제 선진국들(북반구)은 한정된 자연자원을 무분별하게 약탈함으로써 지구의 생태시스템을 교란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 신화가 남반구에 위치한 저개발 또는 개발도상 국가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장신화에 집착할수록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정도는 그만큼 더 심해진다. 자연, 나아가 지구의 죽음을 담보로 인류는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7가지 대안은 무엇보다 위기에 처한 지구시스템을 살리는 데 집중되고 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등장하여 이론화되기 시작한 비비르 비엔 개념은 소련식 사회주의의 실패와 신자유주의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소외된 남미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의 실천과 전망을 비비르 비엔은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비비르 비엔은 전체the whole, 즉 파차Pacha의 비전을 가지는 것으로, 다극성多極性의 공존, 균형, 다양성 속에서의 상호보완성 그리고 탈식민지화를 추구한다.”(23) 안데스인들은 파차를 끊임없이 운동하는 전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우주로 생각했다. 전체로서 파차는 무수한 생명들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곧 파차는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않는 생명관을 지니고 있다. 다름 속에서 공존하기(27)라는 말 속에 파차의 의미가 뚜렷하게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안데스인들은 인간을 소유자, 생산자가 아니라 돌보는 자’, ‘경작자’, ‘촉진자라고 본다. 순전한 생산력을 가진 힘은 어머니자연과 그것의 다양한 형태인 물, 광물, 탄화수소와 일반적인 에너지 같은 것들이다. 인간은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고 창조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머니자연이 주는 것을 경작하고 기를 뿐이다. 인간은 어머니자연이 생명을 주도록 도울 뿐이다. 인간은 가교chakana나 매개자 역할을 하며 자연이 준 것을 지혜롭게 경작함으로써 균형을 찾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관건은 더 오래 살거나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구촌의 서로 다른 구성요소들 간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비비르 비엔의 핵심 요소로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는 지배적인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제기일 뿐 아니라 다른 구성요소들 간의 균형을 모색함으로써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생명력은 성장의 정도에 따라 측정될 수 없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균형, 사람과 자연과의 균형에 어떻게 기여하느냐에 다려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자연의 생산자’, ‘정복자’, ‘변형자로서 사고하지 않고, 자연의 돌봄자’, ‘경작자’, ‘매개자로서 인간의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31)

 

인간은 자연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자연을 상품으로 생각하는 순간 자연은 파괴해도 상관없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안데스인이 돌보는 자’, ‘경작자’, ‘촉진자로 자연을 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순전한 생산력을 가진 힘은 어머니자연에 있다. “인간은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고 창조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새겨진 대로, 인간은 자연이 창조한 산물을 매개로 문명을 이루었다. 자연이 없으면 창조될 수 없는 문명이 도리어 어머니자연을 파괴하는 길로 나아간다. 인간이 자연의 우위에 섬으로써 지구의 생태계 균형이 깨지는 결과를 빚은 셈이다. 비비르 비엔은 정복자인 인간을 돌봄자인 인간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균형 관계를 지향한다. 나아가 비비르 비엔은 강자에게 침탈당하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론으로 나아간다. 자연을 파괴하는 밑바탕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비비르 비엔이 탈성장이나 생태여성주의와 이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고 하겠다.

 

탈성장을 논의하는 글에서 지은이는 성장을 자본과 부의 축적 과정으로 정리한다.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는 시장의 가치를 벗어나는 삶의 형태와 생계를 빼앗고 파괴함으로써 자라난다. 1980년대 이래로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는 자연자원과 살아 있는 유기체를 상품화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자원의 채굴을 가속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 논리로는 자본주의 경제가 더 이상 성장 신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탈성장 이론은 자본주의의 성장 이론이 한계에 부딪힌 지점에서 시작된다. 탈성장은 에너지와 자원 이용에 있어서 자발적이고 계획적으로 축소를 지향하고, 우리의 필요와 선택을 검약한 풍요frugal abundance’로 재정의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선택이다.”(77) 경제 및 금융의 세계화, 자연자원의 대규모 개발, 광고와 소비주의, 환경 부정의 등이 판을 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성장은 자연=생명에 대한 균형 감각을 찾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인간만 풍요롭게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는 다른 자리에서 탈성장의 담론은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탈성장을 지향하면서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대안으로 지은이들은 커먼즈(commons)’를 제안하고 있다. 커먼즈란 물질이나 비물질적인 것을 인간 집단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특별한 사회관계 양식(92)을 의미한다. 커먼즈를 단순히 공공 영역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공기와 물처럼 자연재들도 커먼즈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나 버스가 없어도 우리는 살 수 있다. 하지만 공기나 물이 오염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커먼즈가 비비르 비엔에서 논의되는 돌봄caring’과 이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은 삶을 영위하기 힘들다. 인간 삶에 꼭 필요한 자연재나 공유재는 커먼즈라는 이름 아래 공동 관리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 커먼즈는 이리 보면 민주주의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자연재나 공유재, 공공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지구상에서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자연을 정복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이미지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다양한 여성생태주의 이론들은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동의한다.”(119) 가부장제 관점에서 보면 자연과 여성은 다르지 않다. 둘 다 길들여서 최대한의 이익을 빼낼 착취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모성과 일치시킨 후, 여성=자연에게 어머니로서 희생을 강요한다. 희생 담론은 억압 담론과 다르지 않다. 사회=남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여성=모성은 항상 사회적인 비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말이 왜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것은 철저히 남성의 세계관(여성을 집안에 가두려는)을 반영한다. 남성은 자연을 개척하는 존재이고, 개척자로서 남성을 보조하는 존재가 여성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이렇게 가부장제에 근거한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를 거부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식민주의는 자연과 여성을 착취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지구의 권리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지역 원주민들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비비르 비엔에서 논의되는 전체로서의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좋겠다. 어머니지구의 권리는 우리 모두가 어머니지구의 일부분이라면 왜 일부가 다른 것들보다 우월해야 하는가? 왜 일부 존재들이 보호와 특권을 누리고 다른 존재들은 사물의 지위로 격하되는가?”(151)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이론가인 토머스 베리는 인간중심주의적 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구법과 야생법을 제안한다. 그는 지구공동체의 모든 구성요소는 존재할 권리, 거주할 권리, 그리고 그 지구공동체의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과정들 속에서 그 역할을 실현할 권리.”(168)를 갖는다고 선언한다. 곤충은 곤충의 권리를 갖고,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갖는다. 그 권리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자연의 권리 개념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만 적용되며, 인류에게만 그 의무가 부과된다. 정복자로서 인간은 여기서는 당연히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지구법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권에 제약이 가해져야 한다. 자연을 재산권으로 묶으면 자연은 결국 상품이라는 말밖에는 안 된다. 어머니지구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 단순히 환경보호 운동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하겠다.

 

탈세계화는 세계화 담론과 연동되어 있다. 세계화는 자본, 생산, 시장의 통합으로, 이것이 이윤증대라는 목표 하에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가속화되는 과정을 말한다.”(187) 한마디로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의 자본 논리가 전 세계에 적용되는 걸 가리킨다. 세계화 담론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근원을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소비자들만이 존재로서 인정을 받는다. 진보와 현대성은 소비와 생산성의 향상과 관련될 뿐, 인간과 자연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는 만성적인 위기를 겪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혁명이 이루어진다. 최근에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술혁명을 통해 새로운 이익을 취하려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핵심 정책을 대표한다.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권위주의,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인종주의 등 온갖 차별 논리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는 지금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저항을 받고 있다. 탈세계화는 이리 보면 민주주의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세계화는 요원한 문제가 될 거라는 얘기다.

 

이 책에서 7번째 대안으로 제시된 상호보완성은 지금까지 제시한 대안들이 외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호보완성이 작동해야 할 전체는 바로 안데스 원주민들이 파차라 부르는 지구공동체, 즉 과학자들의 용어로는 지구시스템이다.”(214) 지구시스템이 위기에 빠지면 인간 또한 그 피해자가 된다. 지구를 살리는 길이 곧 우리가 사는 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구라는 생명체는 역동적인 균형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 문명을 세우면서 이 균형상태는 점점 망가지고 있다. 자본과 성장의 논리에서 보면 자연은 그저 상품에 불과하다. 생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변화된 자연을 통해 분명히 알고 있다. 인간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향해 비수가 되어 날아오는 걸 우리는 자연의 습격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 또한 파괴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얹혀살면서 자연의 주인이 되려는 인간의 오만을 우리는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다른 사회를 위한 7가지 대안은 무엇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서야 비로소 실천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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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서쪽 하늘」 | 디카시 읽기 2018-05-2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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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디카시 서쪽 하늘

 

 

 

 

 

  칸나를 쏟았다

  너만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기어코 한 몸으로 지구를 돌리겠다는

  저, , 치열하게 무모한

  스러짐

  - 김효선, 서쪽 하늘

 

 

저녁 하늘에 붉은 색 칸나 꽃이 피었다. 하늘만 붉은 게 아니다. 하늘을 보는 시인의 얼굴 또한 붉게 물들어 있다. “너만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라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부끄러움일까? 저녁 하늘을 뒤덮은 붉은 빛 칸나를 보며 시인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시인은 저 붉은 저녁 하늘에서 기어코 한 몸으로 지구를 돌리겠다는의지를 본다. “, , 치열하게 무모한/ 스러짐에 드러나는 대로 저녁 하늘에 핀 칸나는 온몸으로 지구를 돌린다. 무모한 듯싶어도 결국은 저렇게 붉은 빛을 발하며 스러지는 세상을 만들었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면 서쪽에서 해가 진다. 시간이 내보이는 자연이다. 언뜻 보면 이런 자연 현상은 한없이 단순해 보인다. 저녁이 되면 해가 지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해가 뜨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다르게 생각한다. 아침에 해가 뜨는 건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인 칸나가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다음 날 해는 떠오를 수 없다. 돌려 말하면 오늘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으면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칸나 꽃은 피어날 수 없다.

 

서쪽 하늘에서 펼쳐지는 저 치열한 스러짐은 이런 점에서 결코 무모한 게 아니다. 칸나 하나에 해가 뜨고 달이 진다. 칸나는 꽃 한 송이에 불과하지만 그 꽃 한 송이에 담겨 있는 우주의 힘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제 한 몸으로 지구를 돌리는 칸나의 무모함이 서쪽 하늘을 붉은 빛으로 뒤덮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칸나 한 송이에 새겨진 우주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쪽 하늘에 드리워진 붉은 빛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시인은 너만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라고 했다. 어찌 붉어지지 않겠는가. 칸나 한 송이가 쏟아낸 붉은 빛을 보며 시인은 서녘 하늘을 감도는 무모하지만 치열한 열정을 상상한다. 저 무모함이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무모한 일이라고 저버린 바로 그 일을 칸나 한 송이가 서쪽 하늘에 저리 펼쳐놓았다. 그러니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 일상에서 우주를 보는 시인은 그래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에 더욱 깊이 물들어갈수록 더욱 더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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