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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리뷰어 모집]『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이벤트 2018-07-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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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이라영 저
동녘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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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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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가 페미니즘이다

‘진정한 페미니스트’ 프레임에 던지는 날렵한 돌직구


‘진정한 페미니즘을 모른다’고 훈계하거나 ‘진짜 페미니스트다’라고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왜 똑같이 불편할까? 이 책은 무엇이 ‘진짜’와 ‘가짜’인지 논하는 대신, ‘진짜’가 언급되는 맥락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진짜란 애초부터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억압된 목소리가 다양하게 분출되는 것은 페미니즘의 중요한 특징이고, 일단 ‘눈치 없이’ 활발하게 말할 수 있어야 페미니즘 논의 자체도 진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할 말 많은 여성의 몸과 공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일이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에서 한국 사회의 소수자 이슈를 시원하게 해설해주며 인간 존중의 의미를 환기시켰던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신문과 블로그에 발표한 글들과 새로 쓴 글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폭발적인 ‘미투’의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 입문서를 인상 깊게 읽었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며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씩 뜯어본다.


저자에게 페미니즘은 정체성이기에 앞서, ‘보편’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지식, 문화,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통로다. 이 책은 그러한 통로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풍경을 가감 없이 전한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상식과 논리는 책의 중요한 무기다. 이를 통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도록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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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이덕무 청언소품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인문사상 2018-07-2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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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정민 저
열림원 | 2018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덕무가 걸은 길을 정민이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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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와 여룡(驪龍) 사이, 말똥과 여의주 사이

- 정민, 『이덕무 청언소품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이덕무는 책에 미친 사람이다. 배가 불러도 그는 책을 읽었고, 배가 고파도 그는 책을 읽었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그는 책을 읽었고, 한겨울 강추위에도 그는 책을 읽었다. 집에서 책을 읽을 상황이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 책을 읽었다. 그는 왜 이리 책읽기에 모든 인생을 건 것일까? 이덕무는 책에서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양반가 서자로 태어난 가난한 선비가 글 읽기 말고 할 게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는 책으로 가슴 속 울분을 풀었고, 그는 책으로 가슴 속 울분을 삭였다. 책을 읽으면 울분이 가라앉고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돌았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에 있을까?

 

이덕무는 책으로 살았고, 책으로 죽었다. 책으로 살고 죽은 사람이 남긴 글은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엄청난 위안을 준다. 추운 겨울, 문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한서(漢書)로 이불을 삼고 논어(論語)로 병풍을 삼아 책을 읽었다는 이덕무의 글을 읽다 보면, 찬바람이라곤 새어들 수 없는 따뜻한 방에서 책과는 인연을 끊은 채 사는 우리네 삶이 자꾸만 떠오른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수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데, 책을 꼭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 속 정보와 책 읽기는 과연 같은 것일까? 인터넷 정보는 생각의 흐름을 끊는다. 정보를 찾으면 그뿐이라는 얘기다. 책 읽기는 다르다. 생각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다. 책을 읽는다는 건 곧 생각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민이 해제를 한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열림원, 2018)은 조선 후기 학자인 이덕무가 지은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추려 뽑은 글을 모은 책이다. 이덕무가 일상에서 느낀 마음을 표현한 글들을 읽노라면 글과 글을 쓴 사람의 품성이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이덕무가 사물에서 정감을 느낀다면, 정민은 이덕무가 쓴 글에서 정감을 느낀다. 두 사람이 느끼는 정감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이룬 셈이다. 글은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정민이 읽은 이덕무는 과연 어떨까? 이덕무가 읽은 사물이나 세상은 과연 어떨까? 여기서 정민이 읽은 세상살이가 보태지면 이 책은 조선 후기와 현대를 잇는 새로운 정경으로 거듭난다. 이덕무가 쓴 글에는 과거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우리가 왜 옛사람이 쓰는 글을 굳이 찾아 읽겠는가?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외면하지 못할 삶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덕무는 쓴다.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하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으면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즐거움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찌 이다지도 그런 기회가 오기 드물단 말인가? 일생에 무릇 몇 번일 것이다. (29)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하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란다. ‘마음에 맞는이라는 어구를 네 번이나 반복하며 작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에둘러 드러낸다. 마음에 맞는 시절에 태어나는 것부터 힘들다. 태어나는 건 우리가 선택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마음에 맞는 벗과 말과 시문은 상황에 따라 이룰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마음에 맞는 벗이라고 해서 마음에 맞는 말을 꼭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말이 그런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건 더하지 않겠는가? “일생에 무릇 몇 번이라고 이덕무는 말한다. 그 몇 번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후회만 하다 저세상으로 간다. 짧은 글 속에 마음에 맞는 무언가를 만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게 드러났는지 알겠는가? 절실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도 일생에 무릇 몇 번인데, 그 마음조차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민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쓴다.

    

회심會心은 순간은 기약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려 한다 해서 되지 않고, 만들려 한 대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순간은 아무도 기약하지 않은 그때에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긴 날 동안 그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힘을 충전시켜준다. 또 언젠가 올 회심의 그때를 기다리면서. (29)

 

회심(會心)은 마음먹은 대로 되어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덕무가 사용한 회심을 정민은 마음에 맞는으로 옮긴 셈이다. 정민은 회심의 순간은 기약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 순간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어느 순간 다가왔다가 갑작스레 가버리는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고 정민은 이야기한다. 이덕무가 한 얘기와 같으면서 다르지 않은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회심의 순간이 오는 거라면, 그리고 그때를 그리워하며 우리가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거라면, 인생은 언제나 이 순간을 얻기 위한 기대로 넘쳐나게 된다. 이덕무는 그 순간을 책 읽기를 통해 이루려 했고, 정민 또한 그 길을 따르려고 한다. 책을 읽는 일이 이들에게는 새로운 순간을 여는 길이다. 이만하면 책을 미친 듯이 읽는 사람으로서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驪龍)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또한 여의주를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33)

 

어린아이가 거울을 보다가 깔깔대며 웃는다. 뒤쪽까지 터져서 그런 줄로만 알고 급히 거울 뒤쪽을 보지만 뒤쪽은 검을 뿐이다. 그러다가 또 깔깔 웃는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밝아지고 어째서 어두워지는지는 묻지 않는다. 묘하구나, 구애됨이 없으니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105)

 

말똥구리는 말똥을 아낀다. 여의주를 주어도 말똥구리는 말똥을 아낀다. 여의주 대신 말똥을 선택한 말똥구리를 사람들은 바보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바보는 사람들이다. 말똥구리에게 여의주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말똥구리는 그저 말똥이 좋을 뿐 여의주를 탐하지 않는다. 여의주를 가진 여룡은 어떨까? 여룡은 여의주를 가졌다고 스스로 뽐내지 않는다. 교만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도 않는다. 여룡은 말똥구리에게 여의주가 필요 없다는 걸 잘 안다. 말똥구리는 오로지 말똥을 최고로 삼는다는 걸 잘 안다. 상대를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상대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말똥구리와 여룡의 처세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행하는 방식과는 참으로 다르다. 우리는 말똥과 여의주를 비교하여 여의주를 말똥 위에 세운다. 여의주는 좋고 말똥은 나쁘다.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그래서 벌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유행하는 말이 무엇인가?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아닌가? 말똥구리가 웃고, 여룡이 웃을 말이다.

 

말똥구리와 여룡은 생각하는 방식이 거울을 보는 어린아이와 닮았다.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깔깔대며 웃는다. 거울 뒤쪽으로 가더니 또 깔깔 웃어댄다. 거울에 비친 사람을 찾으러 뒤로 갔는데, 뒤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린아이는 묻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다. 아이에게는 거울 앞과 뒤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놀이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그냥 놀이일 뿐이다. 거울 앞과 거울 뒤가 다른 이유를 캘 수도 있지만,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똘똘한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거울 앞뒤를 오가며 그저 웃는 아이가 어찌 보면 가장 아이다운 아이인지도 모른다. “구애됨이 없으니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고 이덕무는 말한다. ‘구애됨은 한곳에 얽매이는 것이다. 아이는 거울에 얽매이지 않는다. 구애됨이 없으니 저리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말똥구리와 여룡도 마찬가지 아닐까? 말똥구리와 여룡은 사람들처럼 여의주에 구애되지 않는다. 작가는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삶을 사물에 구애되지 않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게 되면 작게는 쿨쿨 잠자거나 바둑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여색에 힘쏟게 된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 (272)

 

이러이러한 일이 있게 되면 이러이러한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295)

 

천리마의 터럭 하나가 희다고 해서 그 말이 백마일 거라고 미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온몸의 억천만 개의 터럭에 혹 누런 곳도 있고 검은 부분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어찌 한갓 사람의 한 면만을 보고 그 전체를 논단하겠는가? (330)

 

사물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사물을 무시하는 삶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물에 기대어 앎에 이른다는 말뜻에 나타나듯, 옛사람들은 사물을 세심히 관찰하되 거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물에 구애되지 말라는 말은 그러므로 사물에 휩쓸리지 말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잠을 자되 잠에 휩쓸려서는 안 되고, 바둑장기를 두되 바둑장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재물과 여색도 마찬가지다. 재물과 여색에 휩쓸리면 본질을 잃어버린다. 이덕무는 책을 읽을 뿐이다.”라는 다짐으로 사물에 구애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그가 생각하는 군자의 길은 이렇듯 사물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에서 뻗어 나온다. 사물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은 고요하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자기를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오로지 자기 마음만 들여다볼 뿐이다.

 

이덕무는 격식이 고착화된 형식(295)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격식이 고착화되면 우리는 격식에 휩쓸리는 꼴이 된다. 격식은 왜 있는 것인가? 사람살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살이를 위해 있는 격식에 휩쓸리면 우리는 정작 사람살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린다. 실학자다운 발상이다. 허례의식에 젖은 당대 양반 사회를 향한 비판의식이 밑바탕에 담겨 있다고 봐도 좋겠다. 이덕무는 이러이러한 일이러이러한 격식을 갖추면 된다면 말한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은 연후에야 이러이러한 격식이 따르는 것이다. 격식을 형식으로 만들어놓고 거기서 벗어나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그는 애초부터 거부한다. 상황에 따라 격식을 차리는 실용론을 그는 당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있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을 옭아매는 형식이 격식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덕무는 천리마의 터럭 하나가 희다고 그 말이 백마일 거라고 미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한 면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겠다. 온몸에 있는 억천만 개의 터럭에 누런 곳이 있을 수도 있고, 검은 곳이 있을 수도 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네 삶을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말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사회는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기 생각이 곧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옳으면 남이 하는 생각도 옳을 수 있다. 남이 하는 생각이 틀리면 자기 생각도 틀릴 수 있다. 내 생각만 옳고 남이 하는 생각은 틀리다는 이분법이 우리 사회를 자꾸만 전쟁터로 만든다. ‘터럭 하나에 담긴 진실을 우리는 이제라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조선 후기에 서자로 태어나 평생을 책을 쓰고 글을 쓰며 지낸 한 서생(書生)이 하는 말을 우리가 지금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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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가재미」 | 시집 읽기 2018-07-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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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재미

문태준 저
문학과지성사 | 200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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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만들어진 인연 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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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미가 되어 우는 그녀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 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 준다

  - 문태준, 가재미

 

 

김천 의료원에 암으로 투병 중인 그녀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누워 있다. 산소마스크를 쓴 걸 보니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어야 하지만, 그래도 죽음은 언제나 우리를 가누기 힘든 슬픔에 빠뜨린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누워 있는 그녀가 서러워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된 그녀 옆에 가재미가 된 시인이 눕는다. 죽음과 삶이 겹치는 지점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죽은 자가 가야 할 곳이 있고, 산 자가 있어야 할 곳이 있다. 그녀는 지금 죽음과 삶 사이에 맞물린 경계에 있다. 시인은 가재미가 되어 이 경계로 들어간다. 가재미가 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경계에 죽음으로 기운 그녀가 있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넨다.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는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를 보며 시인 또한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죽음을 보고 있고, 시인은 죽음을 앞둔 그녀를 보고 있다. 죽음이라는 심연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다. 그래도 시인은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생각한다. 그녀가 걸은 오솔길을 떠올리고, 그 길에 돋아나던 뻐꾸기 소리를 떠올린다.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남는다. 이제는 가재미가 되어 만난 두 사람은 추억 속에서 하나가 된다.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 거기에는 있고,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가 거기에는 있다. 깊은 바다 바닥에 납작하게 몸을 대고 사는 가재미처럼 그녀 또한 누대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든 삶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가 졌고, 노동에 지친 등뼈는 구부정해졌다. 한쪽으로 몰린 두 눈으로 그녀는 옆에 누운 시인을 처연하게 바라본다. 숱한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 곁에 있다. 물려준 거라고는 가난 밖에는 없지만, 곁에 누운 사람으로 하여 그녀는 고통스런 삶을 견뎌냈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거칠어진 숨으로 그녀는 옆에 누운 이를 어떻게든 보려고 눈을 돌린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이다. 더 이상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눈으로 그녀는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일까? 기억에 남은 사람을 떠올리며 그녀는 한쪽으로 쏠린 눈에 힘을 준다. 세상은 온통 캄캄하다. 자신이 내쉬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곁에 누운 사람이 내뿜는 체온을 느낀다. 눈으로 볼 수 없으면 귀로 들으면 되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면 몸으로 느끼면 된다. 눈으로도, 귀로도, 몸으로도 안 되면 마음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시인은 온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녀가 사는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가재미가 되었으니 이들이 사는 삶터는 이제 물속이 되었다. 언젠가 그녀가 헤엄치던 물속을 이제는 시인이 헤엄친다. 한 죽음은 다른 삶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비운 자리를 시인이 새롭게 채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삶과 죽음은 다른 자리에 있지만, 그렇다고 삶과 죽음을 마냥 다른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죽음 바깥의 세상을이제는 볼 수 없는 그녀를 향해 시인이 왜 헤엄쳐 가겠는가? 그녀가 살아온 물속에 나란히 누워 시인은 생명이 꺼져가는 그녀를 느낀다. 이별은 언제나 아쉽다. 사별이라면 더욱 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같은 세상에 태어나 바로 어제까지 본 사람을 오늘은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생명으로 태어난 비애를 느낀다. 그녀는 마지막 이별 의식을 치르기 위해 두 눈을 한쪽으로 모으고 간절하게 시인을 바라본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형체나마 그녀 눈에 비쳤을까?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로 그녀가 마른 내 몸을 가만히 적셔 준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녀는 나에게 물=생명을 준다. 그녀 몸을 빌려 나는 태어났고, 그녀 몸을 통해 나는 다시 생명을 얻는다. 죽음은 이렇게 삶으로 이어진다.

 

문태준 시인은 죽음 속에서 삶을 보는 눈이 참 뛰어나다. 죽음에서 삶을 보려면 죽음을 상상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상상이란 삶 너머에 있는 새로운 힘을 불러내는 능력이 아니던가? 암과 치열하게 싸우는 그녀를 보며 시인은 가재미를 상상한다. 그녀는 가재미를 닮았다. 납작한 몸으로 깊은 바다를 견디는 가재미를 상상하며 시인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인연을 떠올린다. 인연 줄로 보면 세상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를 낳은 엄마가 어느 순간 내가 낳은 아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돌려 말하면 가재미가 되어 그녀 옆에 누운 시인의 상황은 과거 어느 때인가 일어난 일이 반복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은 그렇게 또 다른 생명이 된다. 오늘 내가 겪는 모든 일이 과거에, 미래에 내가 겪었고, 겪어야 할 삶을 구성한다. 우리가 한 번 태어난 삶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시인은 바로 이 인연 줄로 변함없이 이어질 생명의 그물망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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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 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이 사람 시리즈) | 이벤트 2018-07-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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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 영혼의 열망을 증명하는 위대한 이야기


지난 1월 30일 워싱턴 의회 국정연설 연두교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우(NAUH) 대표 북한이탈주민 지성호 씨를 소개하며 “지성호의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자유 갈구를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월 8일 워싱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다시 한 번 지성호 씨의 이야기를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재차 언급한 지성호는 누구인가. 198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했고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6년 열차 사고로 한 손과 한 다리를 잃고 꽃제비 생활을 했다. 2006년 북한을 탈출했고, 목발을 짚은 채 중국에서 라오스, 미얀마, 태국까지 1만여 킬로미터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북한인권단체 ‘나우’를 설립했고, 한국과 해외에서 북한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 


『팔과 다리의 가격』은 이 시대 가장 첨예한 현실의식을 가진 작가 장강명이 소년 지성호 이야기를 토대로 쓴 논픽션이다. 그는 그저 눈을 감고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 없이 굶어 죽은 비극에 대해 더 슬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한편 작가는 책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고난의 행군’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책에 쓰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정치·이념 지형에서 북한 문제는 진영 간 정쟁 소재로 소모되다가 갈피를 잃기 일쑤인데 이 책이 그런 길을 걷지는 않았으면 한다.


장강명 작가가 기록한 20세기 한반도의 마지막 비극

‘굶어서 죽기까지’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대기근이 일어나 약 33만 명이 숨졌다. 이 기근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장강명은 고난의 행군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집중한다. 굶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면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인간의 존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런 가운데에서도 동시에 인간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치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사람이 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매우 배가 고파진다. 몸에 축적한 지방층이 없는 상태에서 두 끼 이상을 연속해서 거르면 허기가 통증에 가까운 감각으로 바뀐다. 2, 3일을 내리 굶으면 소화기관이 활동을 멈추고, 더 이상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여성들은 생리가 끊긴다. 윤리감각이 무너진다. 


조금 더 굶으면 위생관념이나 수치심마저 사라진다. 헛것을 보거나 환상에 자주 빠진다. 미래를 대비하는 태도와 능력을 잃어버린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며, 먹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된다. 더 시간이 지나면 이기심도 이타심도 모두 증발한다. 고통마저 사라진다. 마지막에는 항문이 열린다. 숨을 가쁘게 내뱉고 들이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얼마 뒤에는 그 일조차 멈추게 된다. 죽는 것이다. 


미증유의 대기근 ‘고난의 행군’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1990년대 중후반 당시 그들이 겪던 대기근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미공급’이라고 불렀다. 식량배급이 끊어졌다는 의미다. 이 참사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북한 당국자들이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는 김일성이 일제시대에 벌였다는 항일운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북한 당국자들은 김일성의 당시 투쟁정신을 본받아 위기를 극복하자며 대기근에도 같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보통 4인 가정이 한 번에 받아오는 배급량은 25킬로그램이었다. 어린 아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자루에 옥수수를 한가득 받아 온다. 다음 배급일까지 그걸로 지내는 것이다. 1993년이 되자 제 날짜가 아니라 며칠 뒤에 식량이 나오는 식으로 식량배급에 차질이 생기는 날이 생겼다. 1994년 여름이 되자 식량 사정이 더 안 좋아졌다. 공장에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이번 달에는 배급이 없다’는 공지를 했다. 


1995년에 완전히 배급이 끊겼다. 이제 ‘굶어 죽는다’는 것은 운 없는 몇몇의 문제가 아니었다.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국가관이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배급이 끊기자 전력이나 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도 급속도로 엉망이 되어 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는 누가 굶어 죽었다더라, 누구도 굶어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뿐이었다. 이제 이웃이 죽어도 문상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배급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학포탄광, 그리고 소년의 팔과 다리


이 책에서 다루려고 하는 사건은 거의 대부분 함경북도 회령시의 한 탄광마을에서 일어난다. 학포탄광은 정치범수용소는 아니었지만 몹시 척박한 땅이었고, 마음대로 이사를 할 수 없는 북한에서 일종의 유배지였다. 마을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출신 성분이 안 좋은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6·25 전쟁 때 잡힌 국군포로 중 북한으로 전향한 사람들과 그 가족, 북한 출신이지만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이들 ‘소개민’, 그리고 출신 성분이 좋은, 일종의 특권 계층. 소년의 집은 여기에 해당했다.


1996년 3월 7일, 며칠 만에 학포탄광에 화물열차가 밤 시간에 들어왔다. 소년과 어머니는 여동생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자신이 하겠다고 소년이 나섰다. 회령역이 가까워졌다. 소년은 화물칸 아래로 내려갔다. 부담감에 가슴이 떨렸다. 소년은 무서웠고, 의식도 가물가물했다.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소년은 이날 끝내 기차에서 뛰어내리지 못했고,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전봇대에 부딪혔다.


소년의 왼쪽 다리의 무릎과 발목 사이가 잘려져 있었다. 피는 잘린 부위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숨을 쉴 때마다 물총을 쏘듯이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절단 부위는 너덜너덜했다. 허벅지 뒤쪽의 살가죽은 다리에 붙어 있는 상태였고, 허연 다리뼈도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 아래로 살덩어리들이 핏물 속에 떨어져 있었다. 허벅지 뒤쪽의 피부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반면, 허벅지 옆과 앞의 피부는 위로 말려서 올라오고 있었다. 소년은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왼손 역시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넷째와 새끼손가락은 잘려 없었고, 중지는 덜렁거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직 남은 팔과 다리가 있잖습니까.”


소년 지성호는 다리 끝에서부터 가슴으로 어떤 의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걸 느꼈다. 어느 맑은 봄날이 그런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풀과 나비와 제비가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방에는 온통 피와 고름 냄새가 가득했는데 문풍지를 올리니까 싱그러운 풀냄새가 나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보고, 봄에 벚꽃 구경도 했지만, 그날처럼 아름다운 봄날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남은 팔과 다리가 있잖습니까. 그걸로 뭐든지 할 수 있다, 살아야겠다,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소년 같은 얼굴을 한 청년이 말한다. 이 피와 고름의 이야기에 창문을 만들어 열어주면서. 잘려 없어지지 않은, 그가 갖고 있는 팔과 다리의 힘에 대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 그건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물 논픽션/픽션 ‘이 사람’ 시리즈


인물 스토리텔링 논픽션/픽션 ‘이 사람’ 시리즈를 론칭한다. 김민정 작가가 만난 모델 ‘한현민’, 장강명 작가가 만난 북한이탈주민 ‘지성호’, 정지아 작가가 만난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 소설가 ‘김명순’, 이승우 작가가 만난 ‘최형상’, 박민규 작가가 만난 ‘보통 사람’, 김응교 작가가 만난 일본의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 그리고 김현 시인까지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평범/특별, 생존/작고, 내국인/외국인, 실재/가상 상관없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을 자유롭게 집필하여 깊숙이 들여다본다. 


□ 차례


0.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1. 굶을 때 생기는 일에 대하여

2. 탄광마을의 삶에 대하여

3. ‘미공급’ 사태에 대하여

4. 귀신이 나오는 집

5. 비명을 지르는 밤

6. 어떻게 살 것이냐

작가의 말


□ 지은이 소개


장강명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공대를 나와 건설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한국기자협회 이달의기자상, 관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동아일보 대특종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장 등을 받았다.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호모도미난스』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르포 『당선, 합격, 계급』이 있다. 뮤지션 요조와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www.podbbang.com/ch/11897)를 진행한다.


□ 책 속으로


이 책에서 다루려고 하는 사건은 거의 대부분 함경북도 회령시의 한 탄광마을에서 일어난다. 탄광의 이름은 학포탄광이라고 한다. 동네 이름은 따로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학포탄광을 마을 이름처럼 쓰겠다. 행정구역이 합쳐지고 쪼개지는 등의 이유로 마을의 공식 이름이 여러 번 복잡하게 변했고, 사실 탄광이 곧 마을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1982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_‘2. 탄광마을의 삶에 대하여’ 중에서


처음에 아사(餓死)는 소문이었다.

어디서 누가 죽었다더라. 누구도 죽었다더라.

그러다 아는 사람 중에 죽는 사람이 생겼다.

얼마 뒤에는 이웃 중에 죽는 사람이 생겼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먼저 죽었다. 소년 일당이 곯리던 지적장애인도 두 사람 모두 죽었다. 하늘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걸어 다니던 20대 남자 장애인은 가족들도 모두 다 같이 굶어 죽었다고 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침을 자주 뱉던 여자 장애인은 가족들이 어떻게든 보살피려 했으나 자신들도 형편이 좋지 않다 보니 끝내 굶어 죽었다고 들었다.

_‘3. ‘미공급’ 사태에 대하여‘ 중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눈을 떴을 때에는 아직도 열차가 다 지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기차의 뒷모습이 거짓말처럼 평화롭게 멀어졌다.

소년의 왼쪽 다리의 무릎과 발목 사이가 잘려져 있었다. 피는 잘린 부위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숨을 쉴 때마다 물총을 쏘듯이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뜨거운 피가 땅에 떨어질 때마다 그 부위의 땅이 푹푹 꺼졌다. 몇 달 동안 쌓여 있던 눈이 핏물에 녹았기 때문이다.

_‘5. 비명을 지르는 밤’ 중에서


그는 얼마 뒤에 아버지에게 목발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었다. 그렇게 집을 나서서 때로는 목발을 짚고, 때로는 한 발로 뛰어다니며 굶주린 아이들을 지휘할 것이었다. 그러다 청년이 되면 페인트 회사를 세우고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질 것이었다. 딸을 낳고, 얼마 안 있어 잃을 운명이었다. 청년은 목발을 들고 두만강과 메콩강을 건너고, 포장마차를 끌고, 대학생이 되고, 단체를 만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폭행당하는 여성들을 구할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려 애쓸 것이었다.

아직 소년은 그걸 몰랐다. 그러나 다리 끝에서부터 가슴으로 어떤 의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걸 느꼈다.

_‘6. 어떻게 살 것이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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