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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광,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사회사상 2020-01-3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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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양승광 저
씽크스마트 | 2020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하게 사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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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와 시간의 공평성

- 양승광,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갓난아기도 24시간을 살고, 비정규직도 24시간을 살고, 기업 회장도 24시간을 산다. 사람들은 그래서 말한다. 24시간을 동일하게 주어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빈자가 된다고. 부자가 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해진 거라고. 지은이는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라고 묻는다. 시간의 공평함을 묻다니?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 부자라고 해서 25시간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그런 것 같다. 겉으로 보면 누구나 24시간을 산다. 부자도 24시간을 살고, 가난한 자도 24시간을 산다. 다만 그 시간을 누구는 즐기며 살고, 누구는 슬픔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문제는 개인에게로 돌려진다. 같은 직장에 같은 날 입사했는데도, 누구는 승진을 하고 누구는 승진을 못한다. 승진한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인가? 아니다.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누구는 성과를 냈고, 누구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낸 성과를 다른 사람은 내지 못했다면,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휴일도 반납하고 회사를 위해 일한 사람이 승진을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 승진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 한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된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러면 회사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 그러면 회사가 알아서 당신을 성공의 광장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공정한 기회 균등은 공직과 사회적 지위가 형식적 의미에서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것을 차지할 공정한 기회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공정한 기회의 관념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천부적 재능의 분배를 가정할 때, 동일한 수준의 재능과 능력, 그리고 이러한 자질을 이용하려는 동일한 의욕을 가진 이들은 그들의 출신 사회 계급, 즉 그들이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하는 계급과 무관하게 동일한 성공의 전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과도한 재산과 부의 집중, 특히 정치적 지배로 이어지기 쉬운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자유 시장 체계는 경제 세력들이 장기 동향을 조정하는 정치적, 법적 제도의 틀 안에 놓여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사회는 가족의 소득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립하여야 한다. (114)

 

존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공을 개인 문제로 돌리려면, 그 개인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 균등은 공직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할 공정한 기회에서 비롯된다고 선언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과연 공정한 기회를 얻고 있는가? 어떤 학생은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닌다. 어떤 학생은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집에서 등록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국가 장학금도 기준이 맞아야 받을 수 있다. 설사 국가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해결한다고 해도 생활비는 어찌 하는가? 누구에게는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빚을 지는 일이다.

 

같은 해에 졸업을 한 학생들이 있다. 누구는 몇 천 만원의 빚을 지고 있고, 누구는 전혀 빚이 없으며, 또 누구는 회사에서 버는 돈을 용돈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뉜 사회이니, 비정규직은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 하청업체를 통해 들어간 비정규직은 제대로 된 혜택도 받지 못한다. 더 공부를 해서 다른 직장을 찾고 싶어도, 먹고사는 게 급해 다른 공부를 할 생각도 못한다. 모든 시간을 일을 하는 데 소비하는 것 같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없이 적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받는 액수가 적다. 정규직은 제도의 보호를 받고, 비정규직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어릴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라고? 웃기는 말이다.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공부를 해도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공평하지 않은 시간을 살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시간이 많고, 돈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그만큼 없다. 돈이 많으면 어릴 때부터 고급 교육을 받으며 성장을 한다. 당연히 돈이 없는 아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영어유치원에 다닌 학생과 일반 유치원에 다닌 학생의 영어 실력이 같을 리 없다. 기업 회장의 아이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근근이 살아온 아이가 하루 24시간을 동일하게 활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돈이 많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능력을 개발하지만, 돈이 없는 아이는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오지 않는다. 롤즈가 얘기하는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는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려 속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동일한 의욕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출신 계급이 다르다고 그 의욕을 펼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과연 공정할까, 하는 물음이 내포되어 있다. 권력자들은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들여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 있는 아이들은 쌓는 스펙을 돈이 없는 아이들은 쌓을 수 없다. 돈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당연하게 받는 고액 과외를 돈이 없는 아이들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을 말한다. 출발지가 다른데도 경쟁은 공정하다고 외친다. 시간을 사유하는 건 곧 이 사회를 사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아이들이 살 세상의 공정성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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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 이벤트 2020-01-3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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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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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설’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저서
    2,400년 동안 읽히고 연구되어 온 ‘설득의 기술’


    수사학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과이다. 정의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사학』은 그 정점에 있는 저술이다. 왜냐하면 수사학은 그가 제시한 변증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대중 연설과 법정에서 현실 정치로 구현해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논증 수사학, 문예 수사학, 기호론적·언어학적 수사학에 의한 담론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수사학이 관심 받고 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2,400년 동안 수사학 체계에서 ‘논증’ 이론에 관한 성찰의 기본서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로마의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빼놓고 새로운 수사학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정의와 윤리를 다 배제한 채로 오직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학적 기초 위에서 어떤 것이 국가에 이롭고 정의로우며 훌륭한 것인지를 개연적으로 증명해내는 수사학이야말로 ‘설득의 기술’로서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서는 전체적으로 내용을 개관한 후에, 연설가가 사용해야 할 설득 수단이자 수사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 중 논리적 추론에 해당하는 ‘로고스’와 관련한 전제들을 집중 설명한다. 제2권에서는 ‘에토스’와 ‘파토스’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제3권은 연설가가 신경 써야 할 추가 문제, 즉 문체와 배열, 그리고 전달의 문제를 다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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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 『황진이 2권』 | 소설 읽기 2020-01-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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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황진이 2

    전경린 저
    이룸 | 2004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온몸으로 마음이 가는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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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는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 전경린, 『황진이 2권』

     

     

     

    그래도 사랑은 시작되고

     

    진은 뭇 사내의 정인이 되는 길에서 가부장제를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고 한다. 가부장제는 여자를 한 사내의 정인으로 자꾸만 묶으려 한다. 여인이 뭇 사내의 정인이 되면 가부장제를 세우는 틀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진을 마음에 품은 사내들은 그래서 진을 독점하려고 한다.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기생을 선택한 진은 사내들의 이러한 독점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욕망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가부장제의 바깥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아무 남자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가부장제에 매이지 않는 이 상황을 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내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그녀 스스로 억제하기는 힘들다는 점에 있다. 양반가 서자로 태어나 방랑을 하는 이사종을 진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대한다. 한 사내에게 얽매일 수는 없다는 데서 진은 이사종을 뭇 사내와 같이 대해야 한다. 그와 즐기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 그와 다른 삶을 사는 시간=미래를 꿈꾸면 기생이라는 신분은 진에게 속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 사내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게다가 마음에 품은 사내를 기생인 진은 언제든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진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사종이 떠날 것이 두려웠고 자신이 길가의 꽃인 것이, 아무도 잡아둘 수 없는 길가의 꽃인 것이 두려웠다.”(2, 57)

     

    두렵기는 진을 마음에 품은 이사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생인 진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뭇 사내와 연인을 공유하고 싶은 남자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는 야밤에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기는 연인을 두 눈 뜨고 바라봐야만 한다. 겉으로는 한없이 정답고 평온해 보이지만, 두 사람은 언제 터질지 모를 한 아름의 폭탄을 안고 사랑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송도 유수가 조정 대신의 접대를 부탁한다. 진은 망설인다. 연인인 이사종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진이 사랑 놀음에 빠진 사이 명월관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진은 기생이 된 이유를 잊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면 이사종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 진은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 방법을 선택한다.

     

    진은 연인 관계는 끊되 이사종이 객사에 머물길 바랐지만, 진의 마음이 뜬 마당에 이사종이 객사에 머물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객사에 머물라는 진의 말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사실 진은 이사종을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그저 연인 관계만 끊어지길 바란다.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연인 관계가 끊어져서도 같은 집에 사는 게 가당키나 한가. 진이 처한 상황을 잘 아는 이사종이 집을 떠나자 진은 아득한 절벽에 누운 심정이 되어버렸다. 한 유수와 헤어질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슬픔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사그라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사종을 잃은 마음은 칼이 되어 진의 몸을 쳤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길고도 긴 그 시간을 견딘 사람에게만 통할 말이었다.

     

    명월관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이사종은 돌아왔다. 그는 진이 만 사람의 연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고, 진은 그와 함께라면 지옥이라고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몸은 그의 몸에 안기는 순간 씻은 듯이 나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진을 만인의 연인으로 인정한다고 외쳤지만, 진이 다른 사내와 동침을 할 때마다 이사종은 술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손님방에 뛰어들어 상을 엎기도 했고, 진을 끌어내 대문 밖에 팽개치기도 했다. 말이 사랑이지 사실은 집착과 다르지 않았다. 진은 다시 선택을 해야 했다. 이전처럼 아무 조건이 없는 이별을 하기는 싫었다. 진은 이사종에게 5년 후에 만나자고 말했다. 기생 신분을 벗고 자유로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5년 후면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살기로 다짐했던 진은 왜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만이 서로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대로라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쳐 누구든 이별을 통보할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멀리 떨어져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게 낫다고 진은 판단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실을 충실히 살자는 계획인 셈이다. 진의 이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기생이 된다고 했다. 한데, 지금 진은 이사종을 얻기 위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그토록 부정했던 한 남자의 소실이 되는 길이 아닌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사는 길

     

    이사종이 떠난 자리에 양곡 소세양이 들어선다. 마흔다섯에 이조판서에 오른 이 인물은 시와 서화에서도 명성을 얻은 풍류객이다. 그는 아무리 절세가인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한 달 이상 머물지 않는 것을 자기 기율로 삼고 있다. 그런 그가 진이 있는 송도에는 얼마나 머물지 내기까지 걸렸다. 수많은 기생들과 어울리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지키던 소세양도 진 앞에서는 결국 거리를 허물려고 했다. 그는 거리를 허물려고 했지만 진은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고 했다. 소세양이 거리를 두는 이유를 묻자 진은 아득한 우주 가운데 있는 저마다의 자리를 이야기한다. 그 자리를 버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한곳에 의지하면, 남는 것은 흘러버린 시간밖에 없다. 진은 그 시간에 매이느니 그 시간을 뚫고 가려고 한다.

     

    진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마음을 화담 서경덕을 만나면서 비로소 체험한다. 진은 화담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눈빛의 새로움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어떤 색깔도 닿은 적이 없는 듯 순결한 흰빛의 시선이었다. 그가 진을 직시하는 순간 진 자신도 모든 색을 넘어 하얗게 남는 듯했다.”(2, 132) ‘순결한 흰 빛의 시선은 감정이 묻지 않은 시선을 가리킨다. 이사종이 진을 바라보고, 진이 이사종을 바라볼 때는 이런 시선이 개입할 수 없다. 욕망에 물든 시선이니까. 화담은 진을 격물(格物)하듯 바라본다. 젊은 여자라는 선입견이 없이 그저 한 사물로서 그녀를 대한 것. 지금까지 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에서 숱한 욕망을 보아온 터였다. 화담은 무엇보다 욕망에 물들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담담하고 편안하게 다만 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화담의 시선은 처음으로 진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었다. 피해 의식도 없고 가해의 죄책감도 없는 화평을 느낀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조차 그녀 앞에서는 비굴해지거나 시기하며 외면하지 않았던가. 진은 화담의 공활하고 따뜻하고 명쾌하고 자유로운 시선으로부터 구원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그러나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는 화곡의 초당에 은둔하는 학자였고, 진은 저자거리의 꽃인 기생이었다. 이틀을 지내는 동안 이따금 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을 뿐이었다. 진은 오직 예를 다할 뿐,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몸의 교태로 화담을 향한 공경심을 내색하지 않았다. (2권, 137)

     

    소세양에게 거리를 둔 것처럼, 진은 화담에게도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상대에게 얽매이게 된다. 진과 거리를 두려 하지 않는 소세양이 진을 욕망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진과 거리를 두는 화담은 욕망이 없는 눈으로 진을 바라본다. 상대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그 앞에서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몸의 교태로 반응을 보일까. 진은 그저 스승을 기리는 마음으로 화담을 대우한다. 그녀는 화담의 시선에서 자신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마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몸을 욕정이 그득한 시선으로 탐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몸 자체를 관조하는 시선을 화담은 내보이고 있다. 저 시선을 지닌 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과도 자연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되 그 사내에게 예속되지 않는 마음을 진은 화담의 시선에 담긴 무욕에서 이끌어낸다. 진은 이 마음으로 이사종과 헤어진 5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관아에 종을 하나 사 넣고 기적에서 이름을 뺐다. 5년 전 그녀는 기생이 아닌 신분으로 이사종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생의 신분을 벗던 바로 그날 진을 돌보던 옥섬이 명을 달리한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진 또한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절대 타자와 마주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인생을 함께 한 옥섬의 죽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몸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은 이럴 때도 쓴다. 시간이 흐르면 몸에 새겨진 기억이 흐려질 테고, 그러면 자연히 마음 또한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풍덕 군수가 되어 돌아온 이사종을 진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무예가 뛰어났던 그는 무과 시험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다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외직으로 나왔다. 진은 진대로 그녀의 삶을 살았고, 이사종은 이사종대로 그의 삶을 산 것이다. 다만 어머니가 정한 혼처를 물리지 못해 그는 3년 전에 혼인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진은 통곡을 했다.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곡을 했다. 이사종에 매이는 눈물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눈물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탐을 낸 사내를 진은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녀는 풍덕에서 3, 한양 본가에서 3, 도합 6년을 이사종과 살기로 했다. 아무리 이사종의 품이더라도 담 안에 묶여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았다. 기생이 됐을 때 스스로 서약한 일이기도 했다.

     

    풍덕 3년을 보내고 한양 본가로 올라간 진은 이사종의 부인이 지정한 부엌 곁방으로 들었다. 사랑채에서 심정적으로 가장 먼 곳이었다. 이사종은 당장 사랑채 손님방으로 진의 처소를 옮기려 했지만, 진 스스로 부인이 내준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낮추어 집안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었다. 딱 한 번 위기가 있었다. 소세양이 보낸 편지가 사람들 손을 거쳐 본가로 온 것이다. 이를 문제 삼는 부인에게 진은 자신은 이 세상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으니 평생을 두고 이어갈 귀한 인연들과 교류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 다행히 부인은 진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더불어 3년 뒤에 이 집을 떠날 여자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다시 송도로 돌아온 진은 이사종에 대한 그리움을 춤과 노래로 풀어냈다. 거문고가 바깥에 있는 사물이었다면, 춤과 노래는 몸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마음이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몸으로 진은 춤을 추었고, 그로써 어디든지 당장 떠날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화담 선생을 찾아 배움을 청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송도의 거상인 백고정의 정실 자리도 마다했다. 화담의 말마따나, 진은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절대고독을 지키려고 했다. 절대고독이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리를 의미한다. 인연에 매이고, 돈에 매이고, 권력에 매이면 절대고독의 경지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진은 몸으로 들어오는 그 숱한 욕망들을 춤으로 녹여내고, 노래로 녹여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길을 만든 여인

     

    몇 해 동안 세상을 떠돌고 송도로 돌아온 진에게 스승인 화담이 네게서 몸은 무엇이더냐?”라고 묻는다. 그동안 전쟁터에 나간 이사종이 죽었고, 아버지인 황 진사가 죽었다. 남편과 아이를 잃은 동생 난을 명월관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중국으로 떠난 줄 알았던 수근이 지족사에서 등신불이 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수근을 그 길로 내몬 지족선사가 진의 미모에 반해 세속으로 흘러들어 진을 찾아 여기저기를 들쑤시기도 했다. 벗으로 지낸 이생과 금강산 여행을 떠나서는 온몸으로 세상을 떠돌았다. 문둥이 가족의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팔아 곡식을 사기도 했다. 하루를 기약한 삶이 석 달 동안 이어졌다. 온몸으로 세상을 어루만진 여인에게 스승은 몸에 대해 묻는다. 진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진은 몸은 곧 길이라고 말한다. 걸어온 길을 버려야 새 길을 걷는다. 지나온 길에 집착하면 새 길로 들어설 수 없다. 몸도 그렇다. 지나온 몸에 집착하면 새 몸을 얻을 수 없다. 사내들이 진의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 진 또한 제 몸을 지나 자기 길로 끊임없이 왔다. 길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인다. 권력이 높은 사람이 걷는 길을 권력이 없는 사람 또한 걸을 수 있다. 길을 가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제 몸을 팔았다. 제 몸을 팔아 더 많은 길을 만들어냈다. 화담은 진이 걸은 이 길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올 여름이 되면 하늘로 돌아갈 것이라며 줄이 없는 거문고를 보여준다. 줄이 없는 거문고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으려면 소리를 들으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몸을 버려야 비로소 몸길이 보이듯이.

     

    온몸으로 길을 만든 여인이 있다. 그 길은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가부장제를 만든 남자들을 맞아들이는 길이었다. 가부장제의 안과 밖을 유유히 오가며 황진이는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욕망처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마음까지도 놓아야 한다. 화담이 순결한 흰 빛의 시선으로 젊은 진을 바라보았듯, 사욕이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진은 온몸의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이 마음에 이른다. 진흙탕 연못 위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온몸을 세속의 진흙탕 속에 기꺼이 내던졌다. 그것뿐이다. 바로 그것으로 진은 온몸으로 난 길을 서슴없이 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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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 『황진이 1권』 | 소설 읽기 2020-01-2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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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황진이 1

    전경린 저
    이룸 | 200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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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길로 자유를 얻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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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는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 전경린, 『황진이 1권』 

     

     

    천한 기생의 딸로 태어난다는 것

     

    조선 사회는 신분제가 명확한 사회였다. 신분이 높으면 대우를 받았고, 신분이 낮으면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아비의 신분이 높아도 어미의 신분이 낮으면 대우를 받지 못했다. 판서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를 둔 홍길동을 생각해 보라.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 아버지의 신분이 높아 노비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노비여서 노비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노비면서 노비가 아닌 이 모순을 온몸으로 품고 살자니 홍길동의 가슴은 당연히 분노로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홍길동은 그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능력 있는 이로 태어나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홍길동은 결국 나라 밖에 율도국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에게 조선의 왕은 병조판서를 제수했지만, 그것은 홍길동의 역심을 다스리기 위한 고육책일 뿐이었다.

     

    얼자(어미가 노비)로 태어난 홍길동은 그래도 남자였다. 능력만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살 길을 도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길마저 막혀 있었다. 양반의 서녀(庶女)로 태어난 여자는 양반 첩이 되거나,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살 길을 도모해야 했다. 시댁 식구들이 신분이 낮은 여자를 어미로서 인정할 리가 없었다. 아이를 낳아도 서자나 서녀를 낳은 격이니, 신세가 바뀔 리도 없었다. 숨을 죽이고 살면 그나마 목숨을 붙일 수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등에 업고 안방을 노리기라도 하면 몰매를 맞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조선 사회에서 처첩 갈등이 왜 일상사로 일어났겠는가? 처는 집안에서 자기 권위를 지키려고 했고, 첩은 어떻게든 그 권위를 빼앗아 신분을 높이려고 했다. 남자들이 만든 가부장제 하에서 여자들은 살기 위해 이런저런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황진이는 바로 이런 시대에 기생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거문고에 빼어난 실력을 보인 진현학금이었고, 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한량으로 보낸 황 진사였다. 기생이면 칠천(七賤) 중의 하나다. 가장 천한 신분이라는 말이다. 정절이 중시되는 시대에 뭇 사내를 상대로 몸을 파는 기생이니 냉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현학금은 폭군 연산의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머는 약을 먹었다. 기적에서 풀린 여인은 금강산에 들어가 6년 동안 거문고를 연마했다. 다시 2년이 지나 송도의 젊은 한량이 현학금을 사랑했다. 황 진사였다.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현학금은 황 진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았다. 어미는 딸을 낳으려고 했고, 아비는 어떻게든 딸을 지우려고 했다.

     

    황 진사의 정실인 신씨 부인이 진을 데려가 키웠다. 서녀가 아닌 적녀(嫡女)로 키워 대갓집에 시집을 보낸다는 약속을 받고 현학금은 기꺼이 황 진사의 곁을 떠났다. 부인은 틈이 날 때마다 진에게 <여교(女敎)>를 읽혔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게 중심 내용이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진은 답답함을 느꼈다. 양반 남자들이 갈 길은 참으로 무진한 듯한데, 양반 여자들이 갈 길은 사대부가의 안방을 차지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진은 다른 생의 가능성을 찾고 싶었지만, 가부장제가 공고한 사회에서 다른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꿈이었다. 부인은 진을 사대부가의 정실로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다.

     

    부인이 죽자 이내 진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부인이 죽기 전 정한 혼처가 동생인 난에게로 돌아가면서, 부인이 그토록 숨겼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다. 진은 남자들이 만든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속절없이 내몰렸다. 이제 가문은 그녀를 보호하지 않는다. 가문의 보호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자기를 지킬 수 있을까? 진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황씨 집안에서 정해주는 혼처를 아무 말 없이 받거나, 그것을 거부하고 홀로 사는 길을 걷는 것. 진이 후자를 선택하면 집안에서는 난리가 날 것이다. 가부장제를 어기는 일이니까. 실제로 황 진사는 부잣집 후처로 가라는 말을 진이 거부하자 나랏법을 들먹인다. 남자들도 나랏법에 매여 있는데, 여자가 어떻게 나랏법을 벗어날까? 가부장제에 매이면 가부장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진은 황 진사와 얽힌 끈마저 끊어냄으로써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스스로 뛰쳐나간다.

     

    지독한 사랑은 죽음을 부르고

     

    진은 기생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벼랑으로 내몰렸다. 기생의 딸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태어나 보니 기생의 딸이다. 신분이란 이런 것이다. 정승판서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리 되는 것도 아니고, 천민의 딸로 태어나기 싫다고 그리 되는 것도 아니다. 운 좋게 양반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 운으로 운이 나쁘게 태어난 사람들을 천한 자들이라고 구박한다. 신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누가 천민으로 태어나고 싶을까? 인간이 만든 신분이 정작 인간의 삶을 갉아먹는다. 인간은 제도를 만듦으로써 같은 인간을 귀하고 천한 신분으로 나눈다.

     

    사랑 또한 이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랑하기 싫다고 그 사랑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한이 맺혀 죽은 젊은 선비의 상여가 진의 집에서 멈추었다. 진이 절에서 요양을 할 때, 병에 걸린 노모를 돌보던 선비가 있었다. 그는 처음 본 날로부터 진을 마음에 품었다. 병든 노모가 죽어 더 이상 절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그는 야밤에 불쑥 별채에 나타나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진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요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진은 진관 스님에게서 이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사랑에 빠져 이도저도 못하고 말라가는 한 남자의 슬픔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뒤늦게 편지를 본 진은 아무것도 아닌 여인에게 목을 매는 선비가 참으로 서글펐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마음속에 이는 미묘한 아픔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 선비가 망령이 되어 진의 집 앞에 멈춘 것이었다. 상여꾼들은 여인의 속곳으로 망자를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천출 소생이라고 해도 진은 엄연히 황 진사의 딸이다. 양반가 정실이 되기 힘들 뿐이지, 진을 첩이나 후처로 원하는 남자들은 많은 터였다. 그런 여인에게 속곳을 내어달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때는 여름이다. 이대로 시신을 방치하면 언제 고약한 냄새를 풍길지 모른다. 거기다 굵은 비까지 내린다. 진은 선택을 해야 한다. 황 진사가 구한 장정들과 상여꾼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복을 입은 진이 대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계집종인 연두 손에 진의 흰 속곳이 들려 있다. 진은 속곳을 제 손으로 상여 위에 올려놓는다.

     

    나와 남이 다르거늘, 저마다의 목숨이 다르거늘, 홀로 사랑하고 내 잔에 피를 쏟아 붓고 간 이시여, 어찌 이런 사무친 일이 있단 말이오. 빌고 또 비나니, 맺힌 것을 푸소서. 이승의 일은 까맣게 잊고 훨훨 극락왕생 하소서. 정녕 혼자 못 가겠거든, 내 넋까지 거두어 가소서. 정녕 혼자 못 가겠거든, 내 넋 속에 둥지 틀고 원 없이 살고 가시오.’ (1, 170)

     

    속곳을 상여에 올리는 순간 진은 죽은 사내와 통정한 것이 된다. 그녀는 죽은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일을 벌인 것이지만, 가부장제에 물든 사람들은 정조를 잃은 여인으로 진을 판단한다. 만약 진이 아니라 적녀인 동생 난이 이런 일을 벌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소문을 들은 한양 집에서는 당장 혼인을 물릴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황 진사는 진에게 통혼을 넣은 상대가 이 일을 알기 전에 시집을 가라고 말한다. 진은 그럴 생각이 없다. 시집을 가지 않으면서 양반가에 머물 수는 없다. 시집을 가지 않는 것도 나랏법을 어기는 것이니까. 사람이 곧 재산이 되는 사회였으니, 혼기가 찬 여인이 시집을 안 가는 것은 곧 나라의 재산을 좀먹는 일이기도 했다.

     

    여인이 시집을 가지 않으면서 나랏법을 어기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진은 어미인 진현학금이 걸은 길을 선택한다. 기생의 길이다. 기생이 되면 시집을 가지 않아도 된다. 한 사내의 여인이 되지 않고 뭇 사내의 여인이 되는 삶. 당대 사회에서 보면, 여자로서는 가장 비천한 삶을 사는 길이었다. 상여에 속곳을 얹는 순간 진은 제 몸속에 남아 있던 경계를 무너뜨렸다. 경계를 세우면 분별이 일어난다. 분별이란 나와 너를 나누고, 나와 사물을 나누는 것이다. 처녀 몸으로 속곳을 죽은 시신에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진은 기꺼이 그 일을 했다. 죽은 사내와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여인을 그리워하다가 사내는 한이 맺혀 죽었고, 출생의 비밀을 안 진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가 간신히 현실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잊어야 기생이 된다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 진은 어미인 현학금과 친했던 퇴기 옥섬을 찾는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진에게 옥섬은 어미 원한을 풀기 위해 기생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 진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런 거 없어요. 어머니가 죽어간 그 자리에서 나는 거꾸로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 자리가 저라는 씨앗을 떨어뜨린 자리이니, 그곳에서 꽃 피울 수밖에요. 진흙 연못의 연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가 꽃을 피우는가요? 세상 바깥에서 온몸을 더러운 물에 담그고 천하게 살겠지만 내 생은 길고 짧거나, 천하고 귀한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 자유로울 거예요.”(1, 191~192) 진은 자유를 말하고 있다. 천하고 귀한 것으로 세상 이치를 나누는 세상을 벗어나 그녀는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고 천하고 귀한 것을 따지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한다.

     

    가부장제는 남자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자를 구속하려고 한다. 남자의 대를 잇는 일은 여자를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남자는 자신의 권력을 여자가 낳은 아들에게만 물릴 수 있다. 참으로 묘한 제도가 아닌가. 권력은 남자가 쥐고 있는데, 그 남자를 낳는 이가 여자라는 것이. 여자가 자식을 낳으니 가부장제는 어떻게든 여자의 삶을 통제하려고 한다. 여자들이 제 뜻대로 살면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체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여자를 어머니와 창녀로 나누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집안의 대를 잇는 아이를 낳는 여자, 곧 아내=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순결해야 했다. 아내를 숭고한 자리에 남겨둔 남자들은 기생을 통해 아내에게서 얻지 못한 즐거움을 얻으려 했다. 기생은 그러니까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당대 사회에서 맡고 있었던 셈이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포기한 진은 쾌락을 원하는 남자들을 몸과 마음으로 사로잡아야 했다. 사대부 남자들은 기생에게 몸을 원하는 동시에 기예 또한 원했다. 기예는 악기를 타는 솜씨나 시와 글씨를 다루는 솜씨를 가리킨다. 진은 옥섬에게 잠자리 기술을 배우는 한편으로 뛰어난 기예를 익히는 데 힘을 쏟았다. 기예가 탁월해야 사대부 남자들과 담론을 즐길 수 있다. 잠자리 기술만으로는 그들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그녀를 거쳐 간 남자들은 무엇보다 그녀가 내보이는 기예에 탄복한다. 사대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진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몸을 통해 뭇 사내들을 받아들인 여인은 이렇게 기예를 통해서는 제 뜻을 펼치는 길을 새로이 연 것이다.

     

    열다섯에 동기(童妓)가 되어 송도 관아의 교방에 들어간 진은 2년여 만에 기예와 행실과 예법과 시서 교육을 마치고 머리를 올리게 되었다. 머리를 올린다는 건 남정네와 첫날밤을 보내는 걸 말한다. 거액을 내놓은 신청자가 있어 그 돈으로 별채와 난간 두른 대청마루와 연못까지 달린 호화로운 집을 마련했다. 거액을 낸 신청자는 그러나 약속한 날, 진의 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진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유기장 정씨의 아들 수근이 벌인 일이었다. 돈을 댄 사람이 천한 신분의 수근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까? 게다가 진은 기생에게는 당치 않은 정()에 제 뜻과는 상관없이 얽매인다. 기생이 되면서 진은 지금까지 제 몸속에 새겨진 모든 내용을 비운다고 다짐했다. 여기에는 물론 연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

     

    수근 문제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송도 유수가 진을 부른다. 송도 바닥이 명월이라는 이름으로 들끓으니 그 또한 보고 싶었으리라. 성은 한, 이름은 일규, 호는 묵지인 송도 유수는 진의 첫 정인이 된다. 정인(情人)은 말 그대로 정을 나누는 사람이다. 진은 세상 남자들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들을 기예로 다스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녀에게 정인은 몸으로만 부딪치는 남자가 아니라, 그녀의 기예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인 셈이다. 이를 따른다면 송도 유수 한일규(묵지)는 정인이 맞다. 낮 잔치 자리에서는 진의 기예만 보던 유수가 늦은 밤에 다시 진을 부른다. 첫날밤을 치를 날이 다시 다가온 것이다. 큰돈을 주고 떠난 수근이 자꾸만 진의 마음을 얽어맨다. 자신을 비우기로 한 맹세가 처음부터 깨질 판이다.

     

    옥섬은 마음에 매이지 않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 또한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마음이 제 뜻대로 움직이던가. 송도 유수의 명령이니 거부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기생으로 살려면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을 자꾸만 버려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진은 보름 동안 유수와 낮밤을 같이 했다. 그 사이에 유수를 모시던 기생 죽선이 소복 차림에 머리를 풀고 방으로 뛰어들어서는 은장도로 제 손목을 긋는 일이 일어났다. 기생 일이란 이런 것이다. 남자의 시선이 다른 여인에게로 옮기면 이전 여인은 속절없이 버림을 받게 된다. 유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박차고 방을 나간다. 진은 자신이 모욕을 받은 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남자의 정에 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없이 어떻게 몸으로만 다른 남자의 몸을 받아들일까? 남자들은 기생에게 마음이 없이 몸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기생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니까. 죽선은 이 마음을 잃고 그만 유수에게 정을 주었다. 언제 떠날지도 모를 남자에게 정을 주었다. 진은 몸도 정도 마음도 제 것이 아니라는 옥섬의 말을 인정한다. 애초부터 그녀는 자신을 채운 모든 것을 비우려고 했다. 남자의 정에 연연하면 기생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 이 때문일 것이다. 진은 소실로 들어오라는 한 유수의 청을 거절한다. 그녀는 소실이 되지 않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이 뜻을 버리고 소실이 되면 그녀는 한 남자의 품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 자유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한양으로 떠나는 유수와의 이별 자리에서 진은 몸도 정도 마음도 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유수가 그것들은 그럼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강의 것이고, 바람의 것이고, 소나무의 것이고, 백학의 것이고, 작은 풀의 것이고, 모래 것이라고 진은 말한다. 한마디로 진은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면 제 몸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매이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한 유수는 진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진과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진을 떠난다. 다만 묵지라는 백마를 남겨 제 마음을 표현할 따름이다. 진은 한 유수와 첫날밤을 보냈다. 그에게 첫 정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매이지는 않았다. 첫 정인과 무사히 만나고 무사히 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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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원, 죽기 전에 한 번은 심리학을 만나라 | 인문사상 2020-01-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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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죽기 전에 한 번은 심리학을 만나라

    서상원 저
    스타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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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을 얻는 심리 기술을 익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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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비워야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

    - 서상원, 『죽기 전에 한 번은 심리학을 만나라』

     

     

     

    심리학은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 심리를 왜 연구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면 굳이 인간 심리를 연구하지 않은 것이다. 이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그래서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데서 이 책을 시작한다. ‘각인imprinting’이라는 말에 드러나는 대로, 인간은 머릿속에 각인된 그림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이것은 그만큼 어린 시절에 겪은 일들이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인간관계의 기본은 모자관계로부터 시작(23)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타인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지은이는 동기가 있어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를 한다. 물론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지만, 아이를 그저 방치하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는 게 아이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헤론이 실시한 감각 차단 실험에서도 나타나는바, 인간은 욕구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행동하는 존재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 말라고 해도 밥을 먹는다. 자격이 필요하면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를 한다. 말년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때는 미래가 현재의 삶을 다그치는 자극이 된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자기효능감이 높아야 한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확신을 일컫는다. 앨버트 반두라가 창안한 이 개념은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걸 명확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일을 하면서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이 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 아무래도 불안할 것이다. 이 사람이 자기효능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성공한 사람의 케이스를 알아보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려를 받거나, 일단 시도해 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격려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면, 성공한 사람의 케이스나 일단 시도하는 일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이다. 자기효능감을 높이려면 스스로 움직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겠다.

     

    이 책은 사람을 아는 기술, 사람을 읽는 기술, 사람을 얻는 기술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읽을 수 있고, 사람을 읽어야 사람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이론과 기술이 이 책에 서술되어 있지만, 지은이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 사람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라는 내용으로 모인다. 남을 잘 웃기는 것보다 자신이 잘 웃는 게 좋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타인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겠다. 사소한 일 하나만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법이다.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그 누가 싫어하겠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심리학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람을 알고, 읽고, 얻는 기술은 다른 사람을 마음을 헤아리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발걸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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